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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
최근 수정 시각: 2022-07-29 00:38:56
샤먼
무교
민속학
직업
KBS 드라마에 대한 내용은 무당(KBS) 문서
를 참고하십시오.
八賤
조선시대의 여덟 천민
기생
노비
승려
백정
무격
광대
공장
상여꾼
1. 개요2. 분류
2.1. 세습무2.2. 강신무3. 설명
3.1. 유래3.2. 특징3.3. 다른 종교와의 관계4. 구성
4.1. 무당이 되는 법
4.1.1. 세습 계열4.1.2. 강신 계열4.2. 굿4.3. 무구5. 무당의 종류
5.1. 세습무와 강신무5.2. 법사, 점쟁이5.3. 박수와 무녀5.4. 악사, 잽이5.5. 애동제자, 신딸/신아들6. 지역별 무당: 만신/화랭이/단골레/심방/소미7. 현대의 무당
7.1. 현대를 사는 모습7.2. 여러가지 문제7.3. 무당과 관련된 질병7.4. 인간문화재도 많은 극한직업8. 창작물의 무당
8.1. 푸대접 받는 직업8.2. 무당의 자식8.3. 기타8.4. 무속인/관련 캐릭터8.5. 무속인, 심령 관련 프로그램9. 관련 문서10. 둘러보기
휘두르는 칼에 악귀가 도망가네, 남색 두루마기에 너의 염원 싣고
쩔렁 방울 소리에 잡귀가 물러나네, 붉은 소맷자락에 무당의 정성이
춤추는 무당이여 신들린 무당이여...
- 산울림의 <무녀도> 가사 中
1. 개요[편집]
무당이란 신내림을 받아 신을 섬기며 굿을 하는 여성 무속인을 뜻한다. 남성을 지칭하는 말로 '박수'라는 단어가 있으나, 현재는 거의 쓰이지 않고 혼용되고 있다.
장사의 신 - 객주 2015에 나온 홍철릭 무복.[1]
굿을 하는 무당의 모습. 꽃갓, 무복, 신장대, 서울 지역에서 하는 이북굿의 무신도가 보인다. 6.25 전쟁 당시 월남한 북한 지역의 무당들에 의해 전해진 북방지역 굿. 서울 지역에서는 기존의 서울-경기도 지역의 굿과 북부지역에서 온 이북굿이 공존한다.
무당의 의례는 상당히 다양하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몇 시간 동안 원색 천을 흔들며 춤을 추는 의례가 있는가 하면, 이와는 정반대로 그저 앉아서 몇 시간동안 독경을 외는 충청도 방식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샤먼들은 비속(非俗)의 영역을 표현하기 위해 비일상적이고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행하는데, 이는 무당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죽은 돼지를 삼지창으로 꿰거나, 작두 계단을 올라타는 의례가 대표적이다.
2. 분류[편집]
무당의 대를 이어서 무당이 되는 세습 계열과 신내림을 받는 강신(降神)계열로 나뉜다. 어떤 계열이든 행사가 한번 이루어지려면 엄청난 운동량이 필요하고, 신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이 상당한 체력소모를 요한다. 무당 자체가 엄청난 단련을 요구하는 직업이고 오랜 수련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이 정결하더라도 허상이 보이기도 하지만 이를 주술이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지혜롭지 못한 단어로 무당이라 일컫길 좋아하고, 지혜롭게 받아들여 몸과 마음에서 적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가꾸어 나가면 큰 병을 미리 고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으니 올바른 지식과 지혜로 몸과 마음을 흩으리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간에 열이 가득차면 시력이 내려가고, 잠을 올바르게 취하지 못하면 환청을 듣기도 하는데 이를 지혜롭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2.1. 세습무[편집]
학자에 따라서 사제무라는 분류명을 쓰기도 하며, 고고학적으로는 정주문화의 발전으로 인한 마을사회의 어르신 내지는 현자의 개념이 발전한 지위로 본다. 마을의 운을 점치고 마을 구성원의 통과의례를 봐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정주문화가 먼저 발달했고 오랫동안 이어져온 한반도 남부 무교에서 세습무 특징이 자주 보인다. 현대 이전까지는 각 마을에서 신관에 가까운 입지를 지녔으나, 마을 축제의 전통이 대부분 사라진 현대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훨씬 생존에 유리한 강신무보다 찾아보기 힘들다.
특정 지역의 역사적 신앙과 깊이 연관되고, 민속학적으로도 주목을 받아서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는 등의 혜택이 있다. 상기 문단에서 이미 비추어진 바와 같이 충청도는 이런 식, 어느 지역은 저런 식 등의 고장 특유의 무례(巫禮) 방식은 전적으로 세습무에 해당하는 서술이다. 대부분 절기에 따라 때 되면 행사를 진행하는 데다, 국가로부터 지원도 받으니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그러나 부모가 세습 계열의 무당이 아니라면 세습무에는 발도 들여놓을 수 없다. 대신 계보나 서열이 분명하여서 본인을 어필하지 않더라도 본인의 신분이 보장된다. 한편, 도시화로 인해 지역 무속이 쇠퇴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는 것도 세습 계열의 무당들에게 좋지 않은 전망을 준다. 대신 신앙의 색채를 낮추고 지역 축제 개념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세습무 무당들도 있다.
현대의 세습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별신제. 출처는 영상 참조. 신관에 해당하는 제주, 굿을 하는 무녀, 다양한 도우미들이나 주민들의 역할까지 볼 수 있다. 이를 통틀어서 하나의 '당골판'=신도들의 모임에서 각 무당들이 지니는 역할을 볼 수 있다.
2.2. 강신무[편집]
철저히 프리랜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고 행사 등에 초청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홍보전략을 사용하며 행사[2]가 없을 때에는 신점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신점을 계기로 연을 만들어서 행사를 유치하기도 한다. 즉, 일이 잘 안풀린다고 신점을 보러 온 사람에게 부적을 써주며 넌지시 "굿판을 벌이면 좋다"고 처방을 주는 것이다. 강신 계열 무당들의 또 다른 특징은 본인의 전문성을 고객이나 동료 무당들 사이에 상당히 어필한다는 것이다.
큰 행사를 치르는 경우 여러 명의 강신무들이 협업하는데, 따라서 이쪽 계열 무당들 사이에서 알음알음으로 본인의 전문성을 알리고, 다른 무당들의 전문분야를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신점에 능하든지 작두타기에 능하든지 영업에 능하든지 자신의 일을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덕분에 유명한 강신무들은 전문성이 매우 높다. 또한 실제 굿판에서 정해진 분업을 완벽히 해내고 다른 무당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눈치가 매우 중요하다. 행사 중에는 티를 내지 않지만, 뒤에서 무당들 사이에서 갈등이 표현화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이 있다. 즉 팀워크를 잘하는 것이 강신무 계열 무당으로서 중요하다.
3. 설명[편집]
정식 명칭은 무속인(巫俗人). 보통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여성 샤먼을 가리키는 말이다. '무당'이라는 표현은 한자어가 아니니 주의. 남성 샤먼은 박수, 박사 혹은 무격이라 불린다. 이 둘을 박수 무당이라 칭하기도 하지만, 현대에는 한국의 샤먼들을 죄다 묶어서 무당이라고 부른다.
지역마다 호칭이 다른데, 이북 지역이나 6.25 전쟁 당시 이북 출신 무당들에 영향을 받은 서울 지역에서는 만신,[3] 충청도에서는 법사/보살, 경상도에서는 화랭이[4]/양중, 전라도에서는 단골레,[5] 제주도에서는 심방, 소미 등으로 불린다.
영어로 번역하기가 애매한데, 일단 한자의 "巫" 를 가져와서 Wu 라고 부르거나 그냥 샤머니즘의 한 종류로 보아 샤먼(shama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양의 영매(mediumship)와는 다른 개념이다. 한국의 경우 영매를 무당의 일부로 인식하였다.
무당은 민족적인 단어이자 일반 명사로 취급받는다. 현대의 무교인들이 지역에 상관 없이 자신을 호칭할 때는 불교와 도교의 영향을 받아서 남자는 법사/도사, 여자는 보살/선녀/무녀[6]라고 자칭하는 경우가 많다.
법률상으로는 종교가 아닌 상업적 서비스이기 때문에 면세자가 아니며 목사, 사제, 수도자, 승려와는 다르게 종교적인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 당연히 납세의 의무를 지닌다. 한국 표준 직업 분류에 의한 직업 코드는 41622 정식 명칭은 점술 관련 종사원. 참고로 조선시대에는 정식 직업으로 인식되어 무세(巫稅)를 걷기까지 했다.
고려시대 이전에는 꽤나 위상이 높은 직업이었다. 신라시대의 차차웅은 무당을 뜻하는 말이라는 설도 있을 정도. 즉, 고대에는 대다수의 왕들이 무당을 겸했다. 원래 세계사적으로 고대 사회는 대부분 제정일치, 즉 종교와 정치가 하나인 사회여서 왕은 신관을 겸직했다.
그러나 조선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천한 계통으로 취급했으며, 사이비 무당이 엉터리로 굿을 해 괜한 삽질 벌인다는 의미의 "선무당[7]이 사람 잡는다" 는 속담도 있다.[8]
현대에 들어서는, 사람은 생존을 위해 늘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데 옛부터 이를 이용한터라 무속인들 대다수는 거짓된 무속인이라 보는것이 바람직하다. 불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올바른 지식과 지혜를 겸비해 늘 바로 올바로 보는 식견이 필요하다.
3.1. 유래[편집]
한민족을 유목민족 전체 역사에 한국 역사를 어떻게 해서든 포함시키려는 유사역사학자들의 단골 떡밥이 되기도 하는데, 여기서 떡밥으로 텡그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들의 주장에서 텡그리란 바로 환인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당연히 위에서 나오듯이 텡그리 신앙은 지역에 따라서 특성들이 상당히 판이했으며, 천신(天神) 신앙 자체가 원래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퍼져있던 신앙이었기 때문에 해당 주장은 무리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텡그리가 환인과 완전히 같다는 주장이 무리수인 것이지 아예 관련이 없는 건 절대 아니고, 오히려 굉장히 관련이 크다. 단군 왕검 할 때의 그 '단군'이 '텡그리'와 어원이 같다는 주장과 이에 대한 근거는 상당히 많다. 이건 주류 역사학계에서도 제기한 주장이며, 일제강점기에 최남선[9]이 무당을 지역에 따라 '당골네'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당골네'가 '단군'에서 온 말이라는 주장을 세우면서 같이 제기됐을 만큼, 상당히 오래된 설이다.
한민족의 기원도 시베리아에서 수렵과 채집으로 먹고 살던 고(古)아시아계 민족[10]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고조선의 발원지를 요서지역으로 비정하는 것이 2000년대 이후 고고학계의 통설인데, 요서지역은 몽골의 시초로 여겨지는 동호와 인접해 있으니 자연스레 교류가 잦았을 테고 부여, 고구려, 발해 역시 오랜 기간 동안 만주 일대를 통치하며 읍루, 거란, 선비족, 말갈, 돌궐 등 몽골계, 튀르크계, 통구스계 종족들을 포섭하거나 지배하면서 그들의 고유신앙을 융합시키려는 시도를 자연스레 했을 만큼 한국인들의 전통 신앙이 텡그리 신앙의 한 분파였거나, 최소한 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고조선이 멸망한 뒤 고조선 영역에서 세워진 나라인 고구려 또한 북방계 몽골, 튀르크 부족들의 가한신을 섬긴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추정대로라면 고구려는 고조선 계승 의식과는 별개로 고조선 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학술적인 논의는 유목민족 문화를 전부 한국사로 분류하려는 환빠성 주장과는 별개다. 오랜 과거에 A부족이 B부족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A민족의 역사=B민족의 역사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사실 어느 문화권이든 이와 비슷한 경우가 존재한다. 더 구체적으로 짚어보자면, 북방(시베리아)에서 유입된 수렵·채집·유목민이 한국인과 한국 문화의 탄생에 중요한 기원이 되었다는 것 자체는 정설이며[11] 이 북방계 민족들이 샤머니즘이나 텡그리 신앙과 같은 시베리아-스텝 문화권 요소를 가지고 들어왔을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 하지만 환빠들의 주장이 빈축을 사는 이유는 여기서 선후관계나 포함관계를 대놓고 뒤집어 버리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조상이 북방계 유목민족의 한 갈래'인 것이지 '유목민족이 한국인의 한 갈래'가 아닌 것이다.
다른 국가 사례로 비유하자면, 영국과 미국은 모두 탄생 과정에서 앵글로색슨족 비중이 큰 국가라는 것은 당연히 사실이다. 하지만 환빠식 주장을 여기 맞춰 어레인지 하면 '미국의 주요 민족 집단인 앵글로색슨족은 영국인의 주류이기도 하니 영국인은 미국인의 한 갈래'라거나 앵글로색슨족이 게르만족의 한 갈래임을 내세워 '영국 뿐 아니라 독일,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인들도 미국인의 한 갈래'라고 주장하는 격인 것이다.
한마디로 설명하면 한국인의 기원이 된 민족이 말타고 활쏘고 다니던 북방계 사람들인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말타고 활쏘던 사람들이 모두 다 한국인인 것은 아니다라는 것. 즉, 오히려 우리가 동북아의 고대 범 유목문화에서 독자적으로 갈라져 나왔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비록 아직은 이 마저도 가설일 뿐인지라 일단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선에서 이해하는 것이 적당하다.
고대에는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신라와 고려의 팔관회처럼 무속 신앙에 관련된 행사가 열렸다. 고려 초기까지만 해도 정식적인 사회 계급으로서 인정받았다. 하지만 성리학이 국학으로 올라서자 철저한 탄압을 받았고, 근현대 이후로도 비과학적, 비합리적이라 하여 사회적으로 홀대받는 형편이다. 괴력난신을 인정하지 않는 유학자들의 입장에서 무교는 토속적인 문화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체계적인 종교의 모습을 잃고 지금처럼 사업가 형태로서 살아남았다.
일본의 미코를 포함한 동아시아 무녀들과 한국의 무당은 유래가 같은 것으로 보이나, 각 나라에서 전통 신앙을 대하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크다. 한국은 세습무의 전통이 많이 사라지고 민중들에게 친화적인 분위기로 광대적인 문화가 발달했으나, 일본은 천 년 가까이 세습무들이 보존되고 체계적인 무교 문화가 정착되어 '무녀'라는 한자 표현을 널리 쓰고 전국적으로 정해진 복장을 입는다.
한국에서는 무당이 사회 제도에서 배척받고, 민중의 호감을 사기 위한 광대이자 주술사로서 살아남았다. 덕분에 박사, 무녀라는 '한자어'보다는 토속적인 표현인 '박수'와 '무당'으로 널리 부른다. 또한, 지방이나 개인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다른 옷을 입는데, 무복이나 화려한 굿의 의복들을 참고하자. 단, 한국에서도 세습무의 전통이 남아있는 당골 문화는 일본의 미코와 개념이 상당히 유사하다.
"한국의 무당은 일본의 무녀처럼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말이 퍼져 있는데, 일본에도 도호쿠 지역의 이타코(イタコ), 오키나와 류큐 신토의 유타(ユタ)는 한국의 무당과 마찬가지로 신내림을 받는다. 또 한국에서도 무교 행사가 치러져야 할 때는 부채춤[12]을 추는 아르바이트 무녀들을 모집하는 경우가 있다. 현대 한국에서 무턱대고 무녀라는 표현이나 현대 무교 행사를 배척하는 것은, 무교가 얼마나 일반인들의 사회에서 밀려난 존재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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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노비
승려
백정
무격
광대
공장
상여꾼
1. 개요2. 분류
2.1. 세습무2.2. 강신무3. 설명
3.1. 유래3.2. 특징3.3. 다른 종교와의 관계4. 구성
4.1. 무당이 되는 법
4.1.1. 세습 계열4.1.2. 강신 계열4.2. 굿4.3. 무구5. 무당의 종류
5.1. 세습무와 강신무5.2. 법사, 점쟁이5.3. 박수와 무녀5.4. 악사, 잽이5.5. 애동제자, 신딸/신아들6. 지역별 무당: 만신/화랭이/단골레/심방/소미7. 현대의 무당
7.1. 현대를 사는 모습7.2. 여러가지 문제7.3. 무당과 관련된 질병7.4. 인간문화재도 많은 극한직업8. 창작물의 무당
8.1. 푸대접 받는 직업8.2. 무당의 자식8.3. 기타8.4. 무속인/관련 캐릭터8.5. 무속인, 심령 관련 프로그램9. 관련 문서10. 둘러보기
휘두르는 칼에 악귀가 도망가네, 남색 두루마기에 너의 염원 싣고
쩔렁 방울 소리에 잡귀가 물러나네, 붉은 소맷자락에 무당의 정성이
춤추는 무당이여 신들린 무당이여...
- 산울림의 <무녀도> 가사 中
1. 개요[편집]
무당이란 신내림을 받아 신을 섬기며 굿을 하는 여성 무속인을 뜻한다. 남성을 지칭하는 말로 '박수'라는 단어가 있으나, 현재는 거의 쓰이지 않고 혼용되고 있다.
장사의 신 - 객주 2015에 나온 홍철릭 무복.[1]
굿을 하는 무당의 모습. 꽃갓, 무복, 신장대, 서울 지역에서 하는 이북굿의 무신도가 보인다. 6.25 전쟁 당시 월남한 북한 지역의 무당들에 의해 전해진 북방지역 굿. 서울 지역에서는 기존의 서울-경기도 지역의 굿과 북부지역에서 온 이북굿이 공존한다.
무당의 의례는 상당히 다양하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몇 시간 동안 원색 천을 흔들며 춤을 추는 의례가 있는가 하면, 이와는 정반대로 그저 앉아서 몇 시간동안 독경을 외는 충청도 방식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샤먼들은 비속(非俗)의 영역을 표현하기 위해 비일상적이고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행하는데, 이는 무당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죽은 돼지를 삼지창으로 꿰거나, 작두 계단을 올라타는 의례가 대표적이다.
2. 분류[편집]
무당의 대를 이어서 무당이 되는 세습 계열과 신내림을 받는 강신(降神)계열로 나뉜다. 어떤 계열이든 행사가 한번 이루어지려면 엄청난 운동량이 필요하고, 신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이 상당한 체력소모를 요한다. 무당 자체가 엄청난 단련을 요구하는 직업이고 오랜 수련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이 정결하더라도 허상이 보이기도 하지만 이를 주술이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지혜롭지 못한 단어로 무당이라 일컫길 좋아하고, 지혜롭게 받아들여 몸과 마음에서 적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가꾸어 나가면 큰 병을 미리 고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으니 올바른 지식과 지혜로 몸과 마음을 흩으리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간에 열이 가득차면 시력이 내려가고, 잠을 올바르게 취하지 못하면 환청을 듣기도 하는데 이를 지혜롭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2.1. 세습무[편집]
학자에 따라서 사제무라는 분류명을 쓰기도 하며, 고고학적으로는 정주문화의 발전으로 인한 마을사회의 어르신 내지는 현자의 개념이 발전한 지위로 본다. 마을의 운을 점치고 마을 구성원의 통과의례를 봐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정주문화가 먼저 발달했고 오랫동안 이어져온 한반도 남부 무교에서 세습무 특징이 자주 보인다. 현대 이전까지는 각 마을에서 신관에 가까운 입지를 지녔으나, 마을 축제의 전통이 대부분 사라진 현대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훨씬 생존에 유리한 강신무보다 찾아보기 힘들다.
특정 지역의 역사적 신앙과 깊이 연관되고, 민속학적으로도 주목을 받아서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는 등의 혜택이 있다. 상기 문단에서 이미 비추어진 바와 같이 충청도는 이런 식, 어느 지역은 저런 식 등의 고장 특유의 무례(巫禮) 방식은 전적으로 세습무에 해당하는 서술이다. 대부분 절기에 따라 때 되면 행사를 진행하는 데다, 국가로부터 지원도 받으니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그러나 부모가 세습 계열의 무당이 아니라면 세습무에는 발도 들여놓을 수 없다. 대신 계보나 서열이 분명하여서 본인을 어필하지 않더라도 본인의 신분이 보장된다. 한편, 도시화로 인해 지역 무속이 쇠퇴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는 것도 세습 계열의 무당들에게 좋지 않은 전망을 준다. 대신 신앙의 색채를 낮추고 지역 축제 개념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세습무 무당들도 있다.
현대의 세습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별신제. 출처는 영상 참조. 신관에 해당하는 제주, 굿을 하는 무녀, 다양한 도우미들이나 주민들의 역할까지 볼 수 있다. 이를 통틀어서 하나의 '당골판'=신도들의 모임에서 각 무당들이 지니는 역할을 볼 수 있다.
2.2. 강신무[편집]
철저히 프리랜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고 행사 등에 초청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홍보전략을 사용하며 행사[2]가 없을 때에는 신점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신점을 계기로 연을 만들어서 행사를 유치하기도 한다. 즉, 일이 잘 안풀린다고 신점을 보러 온 사람에게 부적을 써주며 넌지시 "굿판을 벌이면 좋다"고 처방을 주는 것이다. 강신 계열 무당들의 또 다른 특징은 본인의 전문성을 고객이나 동료 무당들 사이에 상당히 어필한다는 것이다.
큰 행사를 치르는 경우 여러 명의 강신무들이 협업하는데, 따라서 이쪽 계열 무당들 사이에서 알음알음으로 본인의 전문성을 알리고, 다른 무당들의 전문분야를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신점에 능하든지 작두타기에 능하든지 영업에 능하든지 자신의 일을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덕분에 유명한 강신무들은 전문성이 매우 높다. 또한 실제 굿판에서 정해진 분업을 완벽히 해내고 다른 무당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눈치가 매우 중요하다. 행사 중에는 티를 내지 않지만, 뒤에서 무당들 사이에서 갈등이 표현화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이 있다. 즉 팀워크를 잘하는 것이 강신무 계열 무당으로서 중요하다.
3. 설명[편집]
정식 명칭은 무속인(巫俗人). 보통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여성 샤먼을 가리키는 말이다. '무당'이라는 표현은 한자어가 아니니 주의. 남성 샤먼은 박수, 박사 혹은 무격이라 불린다. 이 둘을 박수 무당이라 칭하기도 하지만, 현대에는 한국의 샤먼들을 죄다 묶어서 무당이라고 부른다.
지역마다 호칭이 다른데, 이북 지역이나 6.25 전쟁 당시 이북 출신 무당들에 영향을 받은 서울 지역에서는 만신,[3] 충청도에서는 법사/보살, 경상도에서는 화랭이[4]/양중, 전라도에서는 단골레,[5] 제주도에서는 심방, 소미 등으로 불린다.
영어로 번역하기가 애매한데, 일단 한자의 "巫" 를 가져와서 Wu 라고 부르거나 그냥 샤머니즘의 한 종류로 보아 샤먼(shama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양의 영매(mediumship)와는 다른 개념이다. 한국의 경우 영매를 무당의 일부로 인식하였다.
무당은 민족적인 단어이자 일반 명사로 취급받는다. 현대의 무교인들이 지역에 상관 없이 자신을 호칭할 때는 불교와 도교의 영향을 받아서 남자는 법사/도사, 여자는 보살/선녀/무녀[6]라고 자칭하는 경우가 많다.
법률상으로는 종교가 아닌 상업적 서비스이기 때문에 면세자가 아니며 목사, 사제, 수도자, 승려와는 다르게 종교적인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 당연히 납세의 의무를 지닌다. 한국 표준 직업 분류에 의한 직업 코드는 41622 정식 명칭은 점술 관련 종사원. 참고로 조선시대에는 정식 직업으로 인식되어 무세(巫稅)를 걷기까지 했다.
고려시대 이전에는 꽤나 위상이 높은 직업이었다. 신라시대의 차차웅은 무당을 뜻하는 말이라는 설도 있을 정도. 즉, 고대에는 대다수의 왕들이 무당을 겸했다. 원래 세계사적으로 고대 사회는 대부분 제정일치, 즉 종교와 정치가 하나인 사회여서 왕은 신관을 겸직했다.
그러나 조선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천한 계통으로 취급했으며, 사이비 무당이 엉터리로 굿을 해 괜한 삽질 벌인다는 의미의 "선무당[7]이 사람 잡는다" 는 속담도 있다.[8]
현대에 들어서는, 사람은 생존을 위해 늘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데 옛부터 이를 이용한터라 무속인들 대다수는 거짓된 무속인이라 보는것이 바람직하다. 불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올바른 지식과 지혜를 겸비해 늘 바로 올바로 보는 식견이 필요하다.
3.1. 유래[편집]
한민족을 유목민족 전체 역사에 한국 역사를 어떻게 해서든 포함시키려는 유사역사학자들의 단골 떡밥이 되기도 하는데, 여기서 떡밥으로 텡그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들의 주장에서 텡그리란 바로 환인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당연히 위에서 나오듯이 텡그리 신앙은 지역에 따라서 특성들이 상당히 판이했으며, 천신(天神) 신앙 자체가 원래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퍼져있던 신앙이었기 때문에 해당 주장은 무리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텡그리가 환인과 완전히 같다는 주장이 무리수인 것이지 아예 관련이 없는 건 절대 아니고, 오히려 굉장히 관련이 크다. 단군 왕검 할 때의 그 '단군'이 '텡그리'와 어원이 같다는 주장과 이에 대한 근거는 상당히 많다. 이건 주류 역사학계에서도 제기한 주장이며, 일제강점기에 최남선[9]이 무당을 지역에 따라 '당골네'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당골네'가 '단군'에서 온 말이라는 주장을 세우면서 같이 제기됐을 만큼, 상당히 오래된 설이다.
한민족의 기원도 시베리아에서 수렵과 채집으로 먹고 살던 고(古)아시아계 민족[10]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고조선의 발원지를 요서지역으로 비정하는 것이 2000년대 이후 고고학계의 통설인데, 요서지역은 몽골의 시초로 여겨지는 동호와 인접해 있으니 자연스레 교류가 잦았을 테고 부여, 고구려, 발해 역시 오랜 기간 동안 만주 일대를 통치하며 읍루, 거란, 선비족, 말갈, 돌궐 등 몽골계, 튀르크계, 통구스계 종족들을 포섭하거나 지배하면서 그들의 고유신앙을 융합시키려는 시도를 자연스레 했을 만큼 한국인들의 전통 신앙이 텡그리 신앙의 한 분파였거나, 최소한 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고조선이 멸망한 뒤 고조선 영역에서 세워진 나라인 고구려 또한 북방계 몽골, 튀르크 부족들의 가한신을 섬긴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추정대로라면 고구려는 고조선 계승 의식과는 별개로 고조선 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학술적인 논의는 유목민족 문화를 전부 한국사로 분류하려는 환빠성 주장과는 별개다. 오랜 과거에 A부족이 B부족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A민족의 역사=B민족의 역사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사실 어느 문화권이든 이와 비슷한 경우가 존재한다. 더 구체적으로 짚어보자면, 북방(시베리아)에서 유입된 수렵·채집·유목민이 한국인과 한국 문화의 탄생에 중요한 기원이 되었다는 것 자체는 정설이며[11] 이 북방계 민족들이 샤머니즘이나 텡그리 신앙과 같은 시베리아-스텝 문화권 요소를 가지고 들어왔을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 하지만 환빠들의 주장이 빈축을 사는 이유는 여기서 선후관계나 포함관계를 대놓고 뒤집어 버리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조상이 북방계 유목민족의 한 갈래'인 것이지 '유목민족이 한국인의 한 갈래'가 아닌 것이다.
다른 국가 사례로 비유하자면, 영국과 미국은 모두 탄생 과정에서 앵글로색슨족 비중이 큰 국가라는 것은 당연히 사실이다. 하지만 환빠식 주장을 여기 맞춰 어레인지 하면 '미국의 주요 민족 집단인 앵글로색슨족은 영국인의 주류이기도 하니 영국인은 미국인의 한 갈래'라거나 앵글로색슨족이 게르만족의 한 갈래임을 내세워 '영국 뿐 아니라 독일,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인들도 미국인의 한 갈래'라고 주장하는 격인 것이다.
한마디로 설명하면 한국인의 기원이 된 민족이 말타고 활쏘고 다니던 북방계 사람들인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말타고 활쏘던 사람들이 모두 다 한국인인 것은 아니다라는 것. 즉, 오히려 우리가 동북아의 고대 범 유목문화에서 독자적으로 갈라져 나왔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비록 아직은 이 마저도 가설일 뿐인지라 일단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선에서 이해하는 것이 적당하다.
고대에는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신라와 고려의 팔관회처럼 무속 신앙에 관련된 행사가 열렸다. 고려 초기까지만 해도 정식적인 사회 계급으로서 인정받았다. 하지만 성리학이 국학으로 올라서자 철저한 탄압을 받았고, 근현대 이후로도 비과학적, 비합리적이라 하여 사회적으로 홀대받는 형편이다. 괴력난신을 인정하지 않는 유학자들의 입장에서 무교는 토속적인 문화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체계적인 종교의 모습을 잃고 지금처럼 사업가 형태로서 살아남았다.
일본의 미코를 포함한 동아시아 무녀들과 한국의 무당은 유래가 같은 것으로 보이나, 각 나라에서 전통 신앙을 대하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크다. 한국은 세습무의 전통이 많이 사라지고 민중들에게 친화적인 분위기로 광대적인 문화가 발달했으나, 일본은 천 년 가까이 세습무들이 보존되고 체계적인 무교 문화가 정착되어 '무녀'라는 한자 표현을 널리 쓰고 전국적으로 정해진 복장을 입는다.
한국에서는 무당이 사회 제도에서 배척받고, 민중의 호감을 사기 위한 광대이자 주술사로서 살아남았다. 덕분에 박사, 무녀라는 '한자어'보다는 토속적인 표현인 '박수'와 '무당'으로 널리 부른다. 또한, 지방이나 개인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다른 옷을 입는데, 무복이나 화려한 굿의 의복들을 참고하자. 단, 한국에서도 세습무의 전통이 남아있는 당골 문화는 일본의 미코와 개념이 상당히 유사하다.
"한국의 무당은 일본의 무녀처럼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말이 퍼져 있는데, 일본에도 도호쿠 지역의 이타코(イタコ), 오키나와 류큐 신토의 유타(ユタ)는 한국의 무당과 마찬가지로 신내림을 받는다. 또 한국에서도 무교 행사가 치러져야 할 때는 부채춤[12]을 추는 아르바이트 무녀들을 모집하는 경우가 있다. 현대 한국에서 무턱대고 무녀라는 표현이나 현대 무교 행사를 배척하는 것은, 무교가 얼마나 일반인들의 사회에서 밀려난 존재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에 가깝다.
3.2. 특징[편집]
무당은 본래 특정한 마을의 신체를 모시거나, 몸 안에 받아들인 신을 따르는 샤먼이자 축제를 주관하는 사제였다. 그러나 전통적인 세습무들의 세력이 사회적 방치 속에서 훼손되었기 때문에, 현대에는 점술, 퇴마, 부적, 굿, 각종 비방을 파는 종교 서비스가 되었다. 당연히 '신'에 대한 믿음은 존재하지만, 다른 종교와는 달리 체계적인 직급이 있는 사제들이 아니기에, 다른 종교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특이한 인간 군상들이 존재한다. 물론 사제로서 체계적인 직위가 없는 것이지, 도덕적인 교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착각하여 단순한 무속인들과 명백히 무교의 종교 계율을 지닌 무당까지 주술사로 묶는 사람들이 많다.
대중에게 유명한 인물이면 누구든지 신으로 만들어서 섬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당들이 믿는 신령은 귀신과 영혼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신' 을 초월적 존재로 인식하는 체계적인 종교들과는 다르게, 다양한 형태의 '영혼' 을 인간의 영리를 위해서 이용하는, 현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종교와는 많이 동떨어진 상업적인 사제의 개념에 굉장히 가깝다.
이에 대한 재미있는 실화가 있는데, 선교사가 함경도의 한 무당에게 개신교로 개종하라고 권유하며 야훼의 좋은 점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무당은 개종을 흔쾌히 받아들였는데, 다음 날 선교사가 다시 와보니 선교사에게 받은 예수 성화를 걸어놓고 무속신을 받드는 굿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원래 민속신앙(다신교)이 다른 신을 쉽게 받아들인다. 특히 중국이나 인도처럼 자국의 토속 종교가 체계를 잡고 뿌리를 내린 지역에서는 예수가 그냥 도교나 힌두교의 신으로 흡수되어 버릴 정도.
고대에는 크게 이름을 떨친 영웅이나 지도자들을 하늘이나 태양에 비교하며 신으로서 섬겼다. (참고: 환인, 해모수, 주몽) 사실 지금도 역사적 위인들을 신으로 섬기는 경우는 많이 있어서 예를 들어 신라의 문무왕[13], 장보고[14]나 고려의 장수 최영[15], 조선의 이순신[16], 임경업[17]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는 삼국지연의의 관우[18]나 더글러스 맥아더 같은 사람도 신으로 모신다.[19] 심지어는 가톨릭에서 성녀로 공경하는 잔 다르크와 예수 그리스도(!) 를 모시는 무당도 존재한다.(#)
물론 무당들이 모시는 신들이 모두 인간 출신인 것은 아니다. 옥황상제, 삼불제석, 칠성신, 도깨비, 산신령, 감흥신령, 부처, 미륵 등 천신, 자연신, 초월자적 존재도 많다. 한국 신화 문서 참고.
이는 샤머니즘의 자체가 현세구복적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평화와 인류애 같은 큰 문제는 전 세계의 샤먼(무당)들에게는 2차적인 문제로 취급되며, 눈앞의 인간들의 부귀영화를 이루어주는 일에 관심이 많다.
따라서 대통령 선거 시즌만 되면 어디선가 무당이 유명 일간지 혹은 시사지와 인터뷰하며 "누가 차기 대권을 가질 것이다"라는 뜬금 없는 설을 내미는 무당들을 볼 수 있다. "찍어도 하나는 맞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에 대선 기간에 뜬금 없이 매스컴을 통해 이런 발언을 하는 무속인은 제대로 된 무교의 무당이기보단, 사회적 중대사에 편승해 이목을 끌어보려고 하거나 뒷돈을 받아 홍보하는 사이비 무속인일 가능성이 높다.
대선 때 이목을 끌려는 케이스라면 당연히 될 법한 당선권의 후보를 꼽아봤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니 화젯거리가 안 되므로, 다른 후보를 고르게 마련이다. 홍보 목적의 경우 정상적인 거물 후보에겐 국민적으로 이미지가 영 좋지 않은 무속계의 주술적 예언을 내세워봤자 마이너스만 될 뿐이니, 역시 의뢰가 들어오는 건 당선 가능성이 없는 군소 후보로 한정될 것이다. 고로, 이런 발언을 하는 무속인이 진짜 당선될 법한 후보자를 지목할 일은 없을 수밖에 없다.
무교에서 바리공주는 무조신(巫祖神)[20]으로, 모든 무당들의 조상으로 대접받는 신이다.
대중에게 유명한 인물이면 누구든지 신으로 만들어서 섬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당들이 믿는 신령은 귀신과 영혼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신' 을 초월적 존재로 인식하는 체계적인 종교들과는 다르게, 다양한 형태의 '영혼' 을 인간의 영리를 위해서 이용하는, 현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종교와는 많이 동떨어진 상업적인 사제의 개념에 굉장히 가깝다.
이에 대한 재미있는 실화가 있는데, 선교사가 함경도의 한 무당에게 개신교로 개종하라고 권유하며 야훼의 좋은 점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무당은 개종을 흔쾌히 받아들였는데, 다음 날 선교사가 다시 와보니 선교사에게 받은 예수 성화를 걸어놓고 무속신을 받드는 굿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원래 민속신앙(다신교)이 다른 신을 쉽게 받아들인다. 특히 중국이나 인도처럼 자국의 토속 종교가 체계를 잡고 뿌리를 내린 지역에서는 예수가 그냥 도교나 힌두교의 신으로 흡수되어 버릴 정도.
고대에는 크게 이름을 떨친 영웅이나 지도자들을 하늘이나 태양에 비교하며 신으로서 섬겼다. (참고: 환인, 해모수, 주몽) 사실 지금도 역사적 위인들을 신으로 섬기는 경우는 많이 있어서 예를 들어 신라의 문무왕[13], 장보고[14]나 고려의 장수 최영[15], 조선의 이순신[16], 임경업[17]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는 삼국지연의의 관우[18]나 더글러스 맥아더 같은 사람도 신으로 모신다.[19] 심지어는 가톨릭에서 성녀로 공경하는 잔 다르크와 예수 그리스도(!) 를 모시는 무당도 존재한다.(#)
물론 무당들이 모시는 신들이 모두 인간 출신인 것은 아니다. 옥황상제, 삼불제석, 칠성신, 도깨비, 산신령, 감흥신령, 부처, 미륵 등 천신, 자연신, 초월자적 존재도 많다. 한국 신화 문서 참고.
이는 샤머니즘의 자체가 현세구복적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평화와 인류애 같은 큰 문제는 전 세계의 샤먼(무당)들에게는 2차적인 문제로 취급되며, 눈앞의 인간들의 부귀영화를 이루어주는 일에 관심이 많다.
따라서 대통령 선거 시즌만 되면 어디선가 무당이 유명 일간지 혹은 시사지와 인터뷰하며 "누가 차기 대권을 가질 것이다"라는 뜬금 없는 설을 내미는 무당들을 볼 수 있다. "찍어도 하나는 맞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에 대선 기간에 뜬금 없이 매스컴을 통해 이런 발언을 하는 무속인은 제대로 된 무교의 무당이기보단, 사회적 중대사에 편승해 이목을 끌어보려고 하거나 뒷돈을 받아 홍보하는 사이비 무속인일 가능성이 높다.
대선 때 이목을 끌려는 케이스라면 당연히 될 법한 당선권의 후보를 꼽아봤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니 화젯거리가 안 되므로, 다른 후보를 고르게 마련이다. 홍보 목적의 경우 정상적인 거물 후보에겐 국민적으로 이미지가 영 좋지 않은 무속계의 주술적 예언을 내세워봤자 마이너스만 될 뿐이니, 역시 의뢰가 들어오는 건 당선 가능성이 없는 군소 후보로 한정될 것이다. 고로, 이런 발언을 하는 무속인이 진짜 당선될 법한 후보자를 지목할 일은 없을 수밖에 없다.
무교에서 바리공주는 무조신(巫祖神)[20]으로, 모든 무당들의 조상으로 대접받는 신이다.
3.3. 다른 종교와의 관계[편집]
유일신교 계통은 무속신앙과 관계가 영 좋지 않다. 특히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가 무당을 좋게 보지 않는다. 가톨릭이나 정교회,[21] 온건성향의 개신교[22]에서는 그나마 부드럽게 대응하지만, 근본주의 계열에서는 강경하기 이를데 없다.
이미 구한말 때부터 이런 충돌이 잦아서 근대 문학의 소재로 쓰일 정도였다. 그 예로는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가 있다. 가톨릭의 경우 애초에 그 유명한 샤를마뉴가 게르만 박수무당을 완전 개박살내버렸다. 이 과정에서 작센족을 완전히 개박살내고, 그들의 주술에 대한 기록도 활활 태워버렸다. 서유럽에서의 씨족주의 약화에 큰 기여를 한 사건. 아울러 처리에 실패한 것들은 이리저리 비기독교적 요소를 제거해서 기독교화로 흡수해버려 관심이 뜸해보이는 것일 뿐이다.
반면, 무당들은 다른 종교에 별다른 감정이 없는 편이다. 고대의 다신교적 신앙들은 보편화한 종교와는 달리, 비판적으로 다른 것들을 보면서 정통성을 지키려고 하지 않고 그것조차 자기 안으로 혼합시키려고 한다. 이러한 고대 신앙의 모습이 현대까지 남아 있는 단적인 예가 바로 힌두교인데, 경전을 가지게 됨으로써 재구축을 하는 데에 성공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속신앙이 통일된 교리와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보니 무당마다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면 기독교인에게 사막잡귀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소금을 뿌려서 쫒아내는 무당이 있고, 예수를 신으로 섬기는 무당도 있다.
한국에서 민속신앙의 영향력이 강했던 제주도의 경우, 구한말 정식 포교가 시작될 때, 가톨릭과 상당한 갈등을 겪은 적이 있는데 이재수의 난 당시 천주교도 300명이 처형당했다. 이재수의 난을 전후하여 상당한 기록이 남아있다.
불교가 전파되던 시기, 기존 무속신앙과 새로 들어온 불교와 갈등으로 이차돈의 순교가 벌어지기도 하였으나, 수세기가 지나면서 불교와 무속신앙이 서로 융합하여, 무속에서도 불교용어와 개념들을 사용하고, 한국 불교에도 샤머니즘적 요소가 들어오게 되었다. 몽골에서도 티베트 불교가 유입되자, 기존 텡그리신앙의 샤먼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하기도 하였으나, 나중에 서로 융합하게 된다.
현세구복적인 성향은 무당만의 특징은 아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종교적인 성향이 대부분 그렇다. 이북지역에 개신교가 들어오던 시기, 선교사들이 무당에게 전파하고, 무당을 따라서 동네 아녀자들이 교회로 가게 되어서 한국 개신교에는 샤머니즘이 유입되었다. 실제로 대형교회의 설교를 잘 들어보면, 샤머니즘의 현세적 기복신앙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몇몇 한국 불교 또한 달마도, 기와, 부적 장사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심지어 대한민국에서는 민간신앙과 기독교를 혼합한 신흥 사이비종교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이미 구한말 때부터 이런 충돌이 잦아서 근대 문학의 소재로 쓰일 정도였다. 그 예로는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가 있다. 가톨릭의 경우 애초에 그 유명한 샤를마뉴가 게르만 박수무당을 완전 개박살내버렸다. 이 과정에서 작센족을 완전히 개박살내고, 그들의 주술에 대한 기록도 활활 태워버렸다. 서유럽에서의 씨족주의 약화에 큰 기여를 한 사건. 아울러 처리에 실패한 것들은 이리저리 비기독교적 요소를 제거해서 기독교화로 흡수해버려 관심이 뜸해보이는 것일 뿐이다.
반면, 무당들은 다른 종교에 별다른 감정이 없는 편이다. 고대의 다신교적 신앙들은 보편화한 종교와는 달리, 비판적으로 다른 것들을 보면서 정통성을 지키려고 하지 않고 그것조차 자기 안으로 혼합시키려고 한다. 이러한 고대 신앙의 모습이 현대까지 남아 있는 단적인 예가 바로 힌두교인데, 경전을 가지게 됨으로써 재구축을 하는 데에 성공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속신앙이 통일된 교리와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보니 무당마다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면 기독교인에게 사막잡귀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소금을 뿌려서 쫒아내는 무당이 있고, 예수를 신으로 섬기는 무당도 있다.
한국에서 민속신앙의 영향력이 강했던 제주도의 경우, 구한말 정식 포교가 시작될 때, 가톨릭과 상당한 갈등을 겪은 적이 있는데 이재수의 난 당시 천주교도 300명이 처형당했다. 이재수의 난을 전후하여 상당한 기록이 남아있다.
불교가 전파되던 시기, 기존 무속신앙과 새로 들어온 불교와 갈등으로 이차돈의 순교가 벌어지기도 하였으나, 수세기가 지나면서 불교와 무속신앙이 서로 융합하여, 무속에서도 불교용어와 개념들을 사용하고, 한국 불교에도 샤머니즘적 요소가 들어오게 되었다. 몽골에서도 티베트 불교가 유입되자, 기존 텡그리신앙의 샤먼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하기도 하였으나, 나중에 서로 융합하게 된다.
현세구복적인 성향은 무당만의 특징은 아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종교적인 성향이 대부분 그렇다. 이북지역에 개신교가 들어오던 시기, 선교사들이 무당에게 전파하고, 무당을 따라서 동네 아녀자들이 교회로 가게 되어서 한국 개신교에는 샤머니즘이 유입되었다. 실제로 대형교회의 설교를 잘 들어보면, 샤머니즘의 현세적 기복신앙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몇몇 한국 불교 또한 달마도, 기와, 부적 장사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심지어 대한민국에서는 민간신앙과 기독교를 혼합한 신흥 사이비종교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4. 구성[편집]
신앙과 관련된 이상 어느 정도 오컬트적인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감안하고 읽을 것. 아래는 흔히 무당계에서 알려진 구성이다.
4.1. 무당이 되는 법[편집]
4.1.1. 세습 계열[편집]
세습무 계열의 무당이 되는 것은 세습에 의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다. 신통력 등을 따지기보다는 마을 대대로 무당 일을 하는 집안에서 부모가 무당이면 자녀들도 무당이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비혈연 관계라도 신병을 앓다 내림굿을 받아서 신어머니(신아버지)-신딸(신아들) 관계를 맺어 활동하는 강신무들과 구분된다.
접신을 통하여 굿판을 진행하는 강신무와 달리, 세습무의 역할은 마을의 무속 신앙을 유지하는 구심점이었기 때문에 작두를 타는 등의 곡예나 묘기를 선보이기보다는 음악과 춤을 통해 마을에서 모시는 신을 즐겁게 하고 신에게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빌어 주는 의식을 진행하였다.
주로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자주 관찰되는 형태의 무당이었으나, 농촌 공동체가 붕괴된 현대 사회에서는 거의 관찰되지 않는 형태의 무당이다. 그러나 강릉단오제 전수자인 빈순애 회장처럼 강신무 중에서 일부가 결혼 등의 형태로 세습무 집안으로 들어가 가업을 잇는 경우도 있고, 가수 송가인의 어머니로도 유명한 진도씻김굿 전수조교인 송순단 명인처럼 강신무 출신이 세습무의 가무를 배워서 보유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러한 형태로나마 세습무의 전통들이 유지되고 있다. 출처
접신을 통하여 굿판을 진행하는 강신무와 달리, 세습무의 역할은 마을의 무속 신앙을 유지하는 구심점이었기 때문에 작두를 타는 등의 곡예나 묘기를 선보이기보다는 음악과 춤을 통해 마을에서 모시는 신을 즐겁게 하고 신에게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빌어 주는 의식을 진행하였다.
주로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자주 관찰되는 형태의 무당이었으나, 농촌 공동체가 붕괴된 현대 사회에서는 거의 관찰되지 않는 형태의 무당이다. 그러나 강릉단오제 전수자인 빈순애 회장처럼 강신무 중에서 일부가 결혼 등의 형태로 세습무 집안으로 들어가 가업을 잇는 경우도 있고, 가수 송가인의 어머니로도 유명한 진도씻김굿 전수조교인 송순단 명인처럼 강신무 출신이 세습무의 가무를 배워서 보유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러한 형태로나마 세습무의 전통들이 유지되고 있다. 출처
4.1.2. 강신 계열[편집]
강신 계열의 무당이 되는 것도 본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다. 신을 받는 경험을 해야 하는데, 그걸 자신이 받고 싶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다른 강신 계열 무당에게 신점 등을 보러 갔을 때, 강신무가 신을 알아보고 신내림을 받으라고 권하는 경우가 많다.
당신이 고명한 무당에게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들어서 이 문서를 보고 있다면, 우선 그것이 알고 싶다 1259회부터 보자. 사기꾼 무당들이 신내림을 받을 팔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단지 수천 만원의 굿비를 뜯어내기 위해, 뛰어난 연기력으로 사람의 혼을 빼는 걸 알 수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보자마자 눈물을 줄줄 흘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조상님을 외치는데, 가뜩이나 근심 걱정을 가지고 무당을 만나러 온 사람은 안 속을 수가 없다. 정말로 신을 모셔야 할 팔자라면 한 사람의 무당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모든 무당이 똑같이 그렇게 말할 것이다. 최소한 2~3명의 무당은 더 만나보고 결정하길 권한다. 프로그램을 본다면 알겠지만, 사기꾼 무당을 만나서 신내림의 잘못된 길로 들어가게 되면 다단계에 빠지는 것과 다름 없다. 수천 만원 돈이 깨진다!
먼저, 신내림과는 전혀 상관 없으면서 일부러 무당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궁금해하지는 마라. 무당이 된 사람은 자의보다는 신병이나 가족환경과 같은 타의에 의해 된 경우가 압도적이다. 즉,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며 되기 싫다고 안 되는 것 역시 아니라고 한다.
일단 '무당의 자질'이 있는 사람들은 이상한 병에 걸린다. 이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정신병이자 문화고유장애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시베리아 제 민족과 부랴트, 몽골 샤먼들 역시 한국과 유사하게 신내림을 받고 샤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 학자들은 샤먼을 "북구 특유의 정신병적 현상"이라는 식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미르치아 엘리아데 등의 연구를 참고하길 바란다.
귀신이 보이거나, 알 수 없는 고통이나, 각종 기이한 현상에 시달리게 되며 이를 무병(또는 신병)이라 한다. 대개 신내림굿을 통해 무당이 되면 그런 현상이 사라지게 된다. 정확히는 신내림굿을 곧장 받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붙어있는 거짓 신령인 허주를 가려내고 올바른 몸주신을 맞이하기 위한 정화 기간을 갖기도 한다. 무당이 되고 싶지 않다면, 타 종교의 힘을 빌려 신병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더 신성한 힘으로 악귀의 병을 눌러서 치료만을 하고 끝내는 개념이다. 무속에서도 같은 개념으로는 누름굿이 있다. 그러나 개중에는 신에게 직접 점지되어[23] 이런저런 수를 써도 운명을 피할 수 없어 무속인의 길을 밟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당이 되는 사람에게 내려지는 신병은 일종의 저주나 낙인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잡귀들이 무당이 될 사람을 알아보고 그의 몸을 차지하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신병에 걸린다는 것이다. 현대의학자들은 이러한 신병을 진찰해 본 결과 "외압에 의한 정신장애이자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문화고유장애"로 정의하기도 하지만, 이건 결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고유의 것이 아니다.
특히 부모, 조부모 세대가 무당이었을 경우, 자식이나 그 다음세대에 '무병' 등으로 신내림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무당 부모들은 자기 자식만큼은 절대 신내림을 받지 않길 바라지만, 어김없이 무병이 찾아오는 것을 보고 신세를 한탄하는 사례도 많이 나타난다. 외압에 의한 정신장애이기에, 그 외압에 자연스레 노출되는 자식들은 아무래도 발병 확률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신내림을 받았더라도 정식 무당이 되려면 오랜 학습이 필요하다. 내림굿을 해준 무당을 신어머니/신아버지, 내림굿을 받은 사람을 신딸/신아들이라 한다. 신딸/신아들은 신어머니/신아버지를 스승 겸 부모로 모신다. 신내림을 받고 나서 무당으로써의 일(굿)을 배우고 있는 사람이나 아직 굿 경험이 얼마 없는 견습생들은 '애동' 또는 '애동제자' 라고 한다.
간혹 무불통신(無不通神)이라고 해서 신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계룡산 등의 명산에서 치성, 기도, 수행을 하면 내림굿을 하지 않고도 신이 내려온다. 이를 신내림이라고 한다. 하지만 굿 비용이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일부 비양심적인 무당은 단순한 치료를 통해 고칠 수 있는 질환마저 무병이라 속이며 누름굿, 내림굿 비용을 뜯어내는 경우가 있다.
일반인들 사이에선 무불통신이 진정한 무당이라는 인식이 있으나, 정작 무당들 사이에선 무불통신도 내림굿은 필수다 가 정론. 신과 상호적 소통이 되어야 하는데, 무불통신은 일방적 소통으로 내려온 해당 신은 몰라도, 자연의 여러 신과 소통하고 합의를 받는 데에는 불리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고명한 무당에게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들어서 이 문서를 보고 있다면, 우선 그것이 알고 싶다 1259회부터 보자. 사기꾼 무당들이 신내림을 받을 팔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단지 수천 만원의 굿비를 뜯어내기 위해, 뛰어난 연기력으로 사람의 혼을 빼는 걸 알 수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보자마자 눈물을 줄줄 흘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조상님을 외치는데, 가뜩이나 근심 걱정을 가지고 무당을 만나러 온 사람은 안 속을 수가 없다. 정말로 신을 모셔야 할 팔자라면 한 사람의 무당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모든 무당이 똑같이 그렇게 말할 것이다. 최소한 2~3명의 무당은 더 만나보고 결정하길 권한다. 프로그램을 본다면 알겠지만, 사기꾼 무당을 만나서 신내림의 잘못된 길로 들어가게 되면 다단계에 빠지는 것과 다름 없다. 수천 만원 돈이 깨진다!
먼저, 신내림과는 전혀 상관 없으면서 일부러 무당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궁금해하지는 마라. 무당이 된 사람은 자의보다는 신병이나 가족환경과 같은 타의에 의해 된 경우가 압도적이다. 즉,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며 되기 싫다고 안 되는 것 역시 아니라고 한다.
일단 '무당의 자질'이 있는 사람들은 이상한 병에 걸린다. 이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정신병이자 문화고유장애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시베리아 제 민족과 부랴트, 몽골 샤먼들 역시 한국과 유사하게 신내림을 받고 샤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 학자들은 샤먼을 "북구 특유의 정신병적 현상"이라는 식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미르치아 엘리아데 등의 연구를 참고하길 바란다.
귀신이 보이거나, 알 수 없는 고통이나, 각종 기이한 현상에 시달리게 되며 이를 무병(또는 신병)이라 한다. 대개 신내림굿을 통해 무당이 되면 그런 현상이 사라지게 된다. 정확히는 신내림굿을 곧장 받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붙어있는 거짓 신령인 허주를 가려내고 올바른 몸주신을 맞이하기 위한 정화 기간을 갖기도 한다. 무당이 되고 싶지 않다면, 타 종교의 힘을 빌려 신병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더 신성한 힘으로 악귀의 병을 눌러서 치료만을 하고 끝내는 개념이다. 무속에서도 같은 개념으로는 누름굿이 있다. 그러나 개중에는 신에게 직접 점지되어[23] 이런저런 수를 써도 운명을 피할 수 없어 무속인의 길을 밟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당이 되는 사람에게 내려지는 신병은 일종의 저주나 낙인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잡귀들이 무당이 될 사람을 알아보고 그의 몸을 차지하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신병에 걸린다는 것이다. 현대의학자들은 이러한 신병을 진찰해 본 결과 "외압에 의한 정신장애이자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문화고유장애"로 정의하기도 하지만, 이건 결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고유의 것이 아니다.
특히 부모, 조부모 세대가 무당이었을 경우, 자식이나 그 다음세대에 '무병' 등으로 신내림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무당 부모들은 자기 자식만큼은 절대 신내림을 받지 않길 바라지만, 어김없이 무병이 찾아오는 것을 보고 신세를 한탄하는 사례도 많이 나타난다. 외압에 의한 정신장애이기에, 그 외압에 자연스레 노출되는 자식들은 아무래도 발병 확률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신내림을 받았더라도 정식 무당이 되려면 오랜 학습이 필요하다. 내림굿을 해준 무당을 신어머니/신아버지, 내림굿을 받은 사람을 신딸/신아들이라 한다. 신딸/신아들은 신어머니/신아버지를 스승 겸 부모로 모신다. 신내림을 받고 나서 무당으로써의 일(굿)을 배우고 있는 사람이나 아직 굿 경험이 얼마 없는 견습생들은 '애동' 또는 '애동제자' 라고 한다.
간혹 무불통신(無不通神)이라고 해서 신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계룡산 등의 명산에서 치성, 기도, 수행을 하면 내림굿을 하지 않고도 신이 내려온다. 이를 신내림이라고 한다. 하지만 굿 비용이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일부 비양심적인 무당은 단순한 치료를 통해 고칠 수 있는 질환마저 무병이라 속이며 누름굿, 내림굿 비용을 뜯어내는 경우가 있다.
일반인들 사이에선 무불통신이 진정한 무당이라는 인식이 있으나, 정작 무당들 사이에선 무불통신도 내림굿은 필수다 가 정론. 신과 상호적 소통이 되어야 하는데, 무불통신은 일방적 소통으로 내려온 해당 신은 몰라도, 자연의 여러 신과 소통하고 합의를 받는 데에는 불리하기 때문이다.
4.2. 굿[편집]
마을 행사이자 광대놀이이자 주술적인 기능을 겸하는 제사. 무당이란 말 자체가 굿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전국에는 지역별로 다양한 종류의 굿이 있다. 각 지역마다 효험, 구성, 모시는 신령이나 입는 옷까지도 다르다. 굿 항목 참조.
전국에는 지역별로 다양한 종류의 굿이 있다. 각 지역마다 효험, 구성, 모시는 신령이나 입는 옷까지도 다르다. 굿 항목 참조.
4.3. 무구[편집]
무당들이 사용하는 도구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무당이 사용하는 도구도 지역별로 많은 종류가 존재한다.
※ 직접 휘두르거나 몸에 걸치고 사용하는 무구는 ●
※ 굿판을 장식하여 신령을 부르고 영혼을 대접하는 장식물은 ◎
※ 직접 휘두르거나 몸에 걸치고 사용하는 무구는 ●
※ 굿판을 장식하여 신령을 부르고 영혼을 대접하는 장식물은 ◎
- 신칼●: 무당이 불러내는 신들의 힘을 나타내는 칼. 응원도구처럼 하얀 술이나 회전하는 금속장식을 붙여서 쓴다.
- 오색깃발●◎: 오방색 천을 붙여놓은 깃대이다. 부채와 삼지창의 중간적인 용도를 지닌다.
- 작두●◎: 접신했을 때, 칼날 위에 올라타면서 무당과 신령이 하나가 되었음을 나타내는 용도.
- 경판◎: 주로 독경을 읊는 법사들이 사용하는 소도구. 화려한 예술품이다.
- 지화◎: 종이꽃. 저승의 꽃을 표현하는 장식물로서 영혼을 상징한다. 화려한 장식품.
- 허개등◎: 동해안에서 신령들을 불러들이는 목적으로 높은 곳에 매달아놓는 등불이다. 화려한 장식품.
파라솔 & 비치볼: 본래 무당들은 '대'(삼지창)를 세울 때 '깃'(5색깃발)을 달아서 신령들에게 굿판의 위치를 알렸다. 하지만 현대 무당들이 대부분 개인사업자인 강신무이며, 전통적인 재료에 집착하지 않다보니 흔히 구할 수 있는 장난감이나 일상용구를 활용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근처의 동네 점집에서 파라솔이나 비치볼을 본다면, 파라솔=삼지창, 비치볼=오색기라고 생각하자.
이런 것들은 만물상이나 불교용품점에서도 구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 목록에는 없지만 卍자 모양 스티커가 있는데 불교와 상관도 없는 점집에서도 은근히 卍자를 깃발로 매달고 영업하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들이 이걸 보고 기겁하는 경우가 많다. 기사. 무속인들은 과거처럼 무구를 예전처럼 하나하나 주문제작하기보다는 만물상이나 불교상에서 무속인용 세트를 파는 걸 쓰는 경우가 늘면서 세트로 딸려오는 만자 스티커를 붙이는 것. 실제 2005년 국립문화재연구소 저술, 민속원에서 출판된 학술연구서 《인간과 신령을 잇는 상징 무구》라는 책에 따르면 현대에 들면서 만물상을 통해 구입하거나, 무속인 단체에서 기계로 만드는 경우가 늘면서 예전처럼 개인이 주문 제작하는 경우는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5. 무당의 종류[편집]
5.1. 세습무와 강신무[편집]
한국의 무당은 주로 세습무와 강신무로 나뉜다. 세습무는 사제무이라고도 부르며 신내림 없이도 마을의 축제를 대대로 배우고 물려받는 직책이다. 강신무는 신내림이 와서 자신의 몸 안에 신을 모시는 개인적인 형태의 무당을 말한다. 즉, 세습무는 특정한 지역의 신체를 모시며 대물림되는 축제의 신관에 가까우며, 강신무는 개인적으로 사업을 하거나 세습무를 돕는 프리랜서 형태의 무당이다.
세습무와 강신무의 차이점 | |||
요소 | 세습무 | 강신무 | |
신체 (神體) | 마을의 성물, 성소, 신목 | 자신의 몸 | |
생활 | 축제가 없을 때는 치성과 수행을 제외하면 일반인처럼 생활함 | 평소에도 몸속의 신을 위해 무복을 입고 치성하는 비율이 높음 |
본디 이남에서의 굿은 세습무들이 중심이었다. 강신무는 세습무를 도와 굿하는 날을 잡거나 대[24]를 세우거나 신의 말씀을 사람에게 전하거나, 굿의 부수적인 작업을 전문적으로 단련하여 서로 분업하였다. 기본적으로 굿은 다양한 사설과 노래와 춤과 진행과정을 배워야 하고,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이끌어가는 쇼맨십이 필요한데, 이는 어려서부터 혈족들의 굿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배워 익힌 세습무라야 제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 받은 무당들은 대부분 세습무다. 최근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에 등재된 경우도 있다. 강릉단오제: 빈순애 무당(세습무) -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김윤수 심방(무당의 제주어)(세습무) -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이들은 각각 선대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의 며느리, 조카로 전승받은 세습무이다.
당연하지만, 세습무는 수백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전통이라서 매우 어려운 직업이다. 현재 보존회를 만들고 문화재청에서도 관심을 받는 만큼 꼭 혈연관계가 아니라도 본인이 전수받겠다고 나서면 받아준다. 그러나 무형문화재 전수자를 인정받는데 말 그대로 평생을 바쳐야 하기 때문에 못 버티고 그만두는 경우가 부지기수. 진짜배기 무당이 되려면 수행만으로도 매우 어렵고 괴롭다.
물론, 강신무도 중요한 행사에 초청받는 분들은 인적문화재로서 꽤 중요한 지위를 지닌다. 예를 들면, 작두 계단을 잘 타거나 입담이 좋은 강신무는 다양한 축제마다 서로 모셔가려고 했을 정도로 전문성에서는 세습무보다 더 뛰어난 점이 많은 인력이었다. 세습무는 문화적인 가치가 높은 지역신앙의 중심, 강신무는 전문성과 고급기술로 살아남는 무당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세습무들은 마을 축제가 없을 때는 평범한 동네 주민들과 분간하기 어려운 감이 있다. 심지어, 마을의 바깥 일에는 무속적인 간섭을 하지 않는 편이다. 세습무들은 본디 마을 단위의 성소를 모시는 무당이었으므로, 마을 바깥에 대해서는 깊이 관여하지 않는 편이다. 애초에 자신의 당골판 바깥은 다른 종교 혹은 무당의 영역이기 때문에 함부로 나서지 않는 문화가 있다.
하지만, 강신무들은 평소에도 무복을 입고 지내는 경우가 많고, 특유의 비즈니스적인 태도가 자본주의 사회에도 잘 맞는 편이라서 더욱 유행하게 되었다. 특히, 근대 이후로는 세습무 전통이 파괴되어 버린 마을이 많아서, 강신무들이 지역 축제를 대신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세습무(사제무)들은 마을이나 공동체가 안정되어야 나타날 수 있는 종류의 무당이다. 반대로, 강신무들은 자신의 몸이 신체이기 때문에 몸만 있으면 신령을 모실 수 있으며, 항상 신전을 보살피듯이 수행에 돈이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비즈니스를 벌여야 한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 최적화된 무당이 강신무였던 셈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다양한 문화가 파괴되면서 세습무는 남쪽에서만 그 명맥을 간신히 잇고 있다. 이는 한국전쟁 후 사회의 변천으로 기존의 민간 문화와 성소들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강신무들은 지식이 부족해도 신기로 점을 치거나 신통력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지금은 대다수의 무당들이 강신무이며 '만신' 이라는 이북식 표현도 많이 쓰인다.
5.2. 법사, 점쟁이[편집]
법사(독경쟁이)는 독경이나 주문을 읊어서 굿의 효험을 높이거나 귀신을 쫓으며 무경(무교의 경전)을 배운 사람이다. 점쟁이(역술인)는 굿은 하지 못하고 길흉화복을 점치는 사람이다. 본디 무당은 굿을 하는 사람만을 일컫는 말이지만, 요새는 이들까지 무당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다만, 충청도 지역에서는 독경을 읊는 법사도 공식적으로 무당에 속한다. 당연하지만 법사도 무경만 읽는 건 아니고 주술의례를 행할 줄 안다. 다만 큰 굿을 할 때 보통 가장 중요한 강신을 여성 무당들이 할 뿐이다.
특히 충청도는 앉은굿(혹은 양반굿)이라는 독특한 스타일이 있는 지방이다. 덕분에 전반적인 의례에서 춤은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굿과 제사를 앉아서 진행하는 독특성을 띤다. 덕분에, 독경/주문을 중심으로 하는 법사와 강신을 중심으로 하는 보살(무녀)이 함께 굿을 행하며 비슷한 중요성을 지닌다.
현대에는 법사와 무당을 겸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예전에는 법사와 무당은 엄연히 달리 취급 받았다. 신내림을 받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들을 경을 외워서 법사를 한다고 송경법사라고 하였다. 여기서 수행이나 기도를 통해 영적인 능력을 틔운 도사에 가까운 법사를 영법사라고 하였으며, 신내림을 받은 법사를 영신법사라고 하여 각각의 법사의 역할을 달리 구분했다.
사회적인 부분에서 살아남기 유리한, 강신무를 겸하는 영신법사가 대부분이지만, 도교적 수행법에 몰입하거나 단순히 기도를 하다 무불통신으로, 특히 도사 신령과 접한 이들이 그대로 영법사로 전직하는 경우가 많다.
법사가 무당보다 희소한 직업이다. 덕분에 둘을 겸해서 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위의 충청도 제사에서 법사는 전문적인 무경의 암송과 운율을 맞추는 법, 의례용구 만드는 법처럼 오랫동안 수준 높은 학습이 필요하다. 자연히 힘들고 지원자도 적다. 요즈음은 종종 인터넷 불교용품점에서 충청도 무교에서 쓰는 설경을 팔기도 하는데, 이러한 설위설경(설경)을 보면 토가 나올 정도로 복잡하다. 참고로 충청도의 설경은 직접 손으로 칼을 잡고 하나하나 뜨는[25] 게 원칙이다. 직접 보면 알겠지만 엄청 복잡하다. 보기만 해도 억소리 나올 정도.
다만, 충청도 지역에서는 독경을 읊는 법사도 공식적으로 무당에 속한다. 당연하지만 법사도 무경만 읽는 건 아니고 주술의례를 행할 줄 안다. 다만 큰 굿을 할 때 보통 가장 중요한 강신을 여성 무당들이 할 뿐이다.
특히 충청도는 앉은굿(혹은 양반굿)이라는 독특한 스타일이 있는 지방이다. 덕분에 전반적인 의례에서 춤은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굿과 제사를 앉아서 진행하는 독특성을 띤다. 덕분에, 독경/주문을 중심으로 하는 법사와 강신을 중심으로 하는 보살(무녀)이 함께 굿을 행하며 비슷한 중요성을 지닌다.
현대에는 법사와 무당을 겸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예전에는 법사와 무당은 엄연히 달리 취급 받았다. 신내림을 받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들을 경을 외워서 법사를 한다고 송경법사라고 하였다. 여기서 수행이나 기도를 통해 영적인 능력을 틔운 도사에 가까운 법사를 영법사라고 하였으며, 신내림을 받은 법사를 영신법사라고 하여 각각의 법사의 역할을 달리 구분했다.
사회적인 부분에서 살아남기 유리한, 강신무를 겸하는 영신법사가 대부분이지만, 도교적 수행법에 몰입하거나 단순히 기도를 하다 무불통신으로, 특히 도사 신령과 접한 이들이 그대로 영법사로 전직하는 경우가 많다.
법사가 무당보다 희소한 직업이다. 덕분에 둘을 겸해서 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위의 충청도 제사에서 법사는 전문적인 무경의 암송과 운율을 맞추는 법, 의례용구 만드는 법처럼 오랫동안 수준 높은 학습이 필요하다. 자연히 힘들고 지원자도 적다. 요즈음은 종종 인터넷 불교용품점에서 충청도 무교에서 쓰는 설경을 팔기도 하는데, 이러한 설위설경(설경)을 보면 토가 나올 정도로 복잡하다. 참고로 충청도의 설경은 직접 손으로 칼을 잡고 하나하나 뜨는[25] 게 원칙이다. 직접 보면 알겠지만 엄청 복잡하다. 보기만 해도 억소리 나올 정도.
5.3. 박수와 무녀[편집]
5.4. 악사, 잽이[편집]
5.5. 애동제자, 신딸/신아들[편집]
애동제자는 신기를 받았지만 아직 무당일을 하지 못하는 견습생을 뜻한다. 제자를 빼고 애동이라고만 부르기도 한다.
내림굿을 해준 무당과 받은 사람은 신딸/신어머니라는 관계로도 불린다. 남자의 경우, 신아들/신아버지라고 불린다.
내림굿을 해준 무당과 받은 사람은 신딸/신어머니라는 관계로도 불린다. 남자의 경우, 신아들/신아버지라고 불린다.
6. 지역별 무당: 만신/화랭이/단골레/심방/소미[편집]
만신은 이북에서 영험하고 고명한 무당을 뜻하는 단어이다. 무당이 섬기는 신을 만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북식 무당들이 많이 남하하면서 한국에서도 무당의 별칭으로 자주 쓰이는 명칭이다.
화랭이는 경상도에서 무당을 돕는 보조적인 직위를 나타내는 호칭이다. 잽이(악사)도 화랭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어원은 고대의 화랑이라는 호칭이 천년 정도 지난 이후, 동성애적이고 신관적인 코드가 화랭이라는 호칭으로 열화되었다는 연구도 있다.
단골레는 전라도 지역에서 무당을 부르는 호칭의 하나이다. 한 지역에서 오래 무당일을 하는 세습무와 그 신도들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쓰며, 현대 한국어에서 보편적으로 '한 곳에 자주 들르는 손님'을 뜻할 정도로 자주 쓰이는 말이다.
심방은 제주도의 무당 구분 중 하나로서, 신의 아이라는 뜻이다. 세부적으로는 남녀에 따라 소나이심방(남)/예폔심방(여), 직책과 영력에 따라 다른 심방들을 이끌며 굿을 주도하는 심방을 수심방, 어느 굿이든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심방을 큰심방, 큰심방만 못한 평범한 심방은 족은심방, 수준이 매우 높아 본향당(제주도에서 마을의 신당을 부르는 말)을 관리하는 심방은 당맨심방이라고 한다.
소미는 제주도의 구분 중 하나로서, 영력이나 경험이 심방만도 못해서 간단한 굿이나 축원, 굿의 보조 일을 하는 주술사를 말한다. 육지의 화랭이와 비슷하다. 다만 소미도 소미 나름이라, 굿과 무악을 잘 알고 능력이 출중해 심방이 종종 실수해도 뒷바라지를 잘 해줄 수 있는 소미는 접소미(신소미, 수소미)로 불린다. 그렇지 못해 잡일이나 하는 소미는 폿소미, 혹은 안체포나 나른다고 안체포소미라고 부른다. 제주도에는 '심방이 서툴어도 굿을 할 수 있지만, 소미가 서툴면 굿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큰 굿에서 소미의 역할은 중요하다.서포터 없이 이길 수는 없는 법 아예 여러 심방들이 합동으로 굿을 하면서 심방과 소미 일을 돌아가며 하기도 한다.
화랭이는 경상도에서 무당을 돕는 보조적인 직위를 나타내는 호칭이다. 잽이(악사)도 화랭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어원은 고대의 화랑이라는 호칭이 천년 정도 지난 이후, 동성애적이고 신관적인 코드가 화랭이라는 호칭으로 열화되었다는 연구도 있다.
단골레는 전라도 지역에서 무당을 부르는 호칭의 하나이다. 한 지역에서 오래 무당일을 하는 세습무와 그 신도들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쓰며, 현대 한국어에서 보편적으로 '한 곳에 자주 들르는 손님'을 뜻할 정도로 자주 쓰이는 말이다.
심방은 제주도의 무당 구분 중 하나로서, 신의 아이라는 뜻이다. 세부적으로는 남녀에 따라 소나이심방(남)/예폔심방(여), 직책과 영력에 따라 다른 심방들을 이끌며 굿을 주도하는 심방을 수심방, 어느 굿이든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심방을 큰심방, 큰심방만 못한 평범한 심방은 족은심방, 수준이 매우 높아 본향당(제주도에서 마을의 신당을 부르는 말)을 관리하는 심방은 당맨심방이라고 한다.
소미는 제주도의 구분 중 하나로서, 영력이나 경험이 심방만도 못해서 간단한 굿이나 축원, 굿의 보조 일을 하는 주술사를 말한다. 육지의 화랭이와 비슷하다. 다만 소미도 소미 나름이라, 굿과 무악을 잘 알고 능력이 출중해 심방이 종종 실수해도 뒷바라지를 잘 해줄 수 있는 소미는 접소미(신소미, 수소미)로 불린다. 그렇지 못해 잡일이나 하는 소미는 폿소미, 혹은 안체포나 나른다고 안체포소미라고 부른다. 제주도에는 '심방이 서툴어도 굿을 할 수 있지만, 소미가 서툴면 굿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큰 굿에서 소미의 역할은 중요하다.
7. 현대의 무당[편집]
7.1. 현대를 사는 모습[편집]
현대 사회는 옛날처럼 대놓고 천민 취급을 하는 유교시대가 아니며, 정말 어려운 수행을 받는 무당은 민족문화의 계승자로서 인정해준다.[26]
수입이 억대를 훌쩍 넘기는 경우도 제법 있다. 굿 한판에 천만 단위의 돈을 벌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작은 굿이라도 명절 상차림의 곱 이상으로 가격이 들어간다. 당골에 한정하면 작은 굿은 수백만원짜리도 있지만, 굿 가격에는 무당의 인건비만 해도 상당하다. 한번 굿을 하면 무당만 있는 게 아니고 독경하는 사람, 상 차리는 사람, 심부름하는 사람, 또 주례하는 무당 혼자 감당이 어려울 경우 따로 초빙하는 무당, 북 같은 악기를 치는 사람 등등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들이 모여 움직이는 회사 같은 건데, 어쨌든 이 사람들에게도 인건비는 나가야 하므로 돈이 많이 든다. 정재계에서도 무당을 믿는 높으신 분들이 많아서 소문만 잘 나면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서울의 무교 문화는 순수한 남한의 문화가 아니다. 6.25 전쟁으로 인해 북한의 무속인들이 대거 남하하여 서울굿은 북한식과 옛 남한식이 뒤섞여 있다. 때문에 서울굿에서는 다른 지역과 달리 이북굿, 이북방울처럼 북한 지역의 흔적이 많다. 상을 차리는 순서나 열의 위치부터 주로 사용하는 무구,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이 지역별 특색이 있다.[27]
하지만, 불과 몇백년전까지 토속신앙의 전문가였던 무당과 그 무속은 기독교, 불교 등 기성 종교로써의 질서와 체계성을 갖추지 못한 채 미신으로 소비되면서,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현세주의, 현실주의자 성향이 강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있어서 표면적으로는 배격하려하지만, 실제로는 음성적인 형태로 소비되는 형태로 왜곡되어 살아남은 상태다.
한 때 tvN을 위시한 케이블 채널에서 인터뷰 대상으로 과도하게 선호하던 직종이었다.[28] 일단 전문직업에 속하는 만큼, 오컬트 프로그램에서 퇴마사로서 자주 등장한다. 물론 활약상은 작가들이 써놓은 각본에 따라서 다르다. 심지어 주작이 아니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서였는지, 현지의 무속인을 섭외했는데 촬영 전에 각본 숙지가 잘 되지 않은 건지, 현지 무속인은 사건의 원인이 된 원혼의 실체를 밝힌 후 위령한다고 술을 원혼이 깃들었다(고 주장하는)는 나무에 뿌렸는데, 옆에서 주연을 맡은(?) 김X기 법사는[29] 그 원혼을 자신의 몸에 가두었다고 얘기했다. 또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귀신이 자주 목격된다는 녹음실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확인 과정에서 카메라가 갑자기 고장나는 기이한 현상이 밝혀졌다. 그런데 잘 보면, 같이 출연한 퇴마사를 자청하는 무속인이 제작진이 확인하기 직전 카메라를 이리저리 만져대고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은 사이비 무당들에게 광고 혹은 뒷광고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엉터리 무당들이 신내림을 핑계로 돈을 뜯어내는 상황을 고발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한 사기꾼 무당은 모 엑소시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대가로 시즌 당 6천만원 정도를 냈다고 인터뷰했다. 재방송을 통해 많은 인지도를 얻어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고.
아무리 고명한 무당이라도 자식에게 무당이라는 직업을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저주와도 같은 신내림을 자녀에게만큼은 피해갔으면 하는 연민과 세간의 시선이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모가 무당이면 그 자식에겐 필히 대물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자식만큼은 절대로 무당이 되지 않길 바랐으나, 시간이 흘러 자식마저도 신내림을 받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하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린다. 사실 자식이 3D직업 종사하는거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물론 반대로 어떤 무당의 딸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굿하는 걸 보고 자라 어머니가 평소에 하는 무사를 달달 외우고 있었는데도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고 있었다. "정작 그 어머니는 생판 남을 신딸, 신아들로 삼고 물려주고 있다"고, 일제강점기 무속을 연구한 일본인 기록에 나와있다.
결론은 케바케. 그리고 그 일본인이 그 책에 진짜 무당과 가짜 무당을 구별하는 법을 썼는데, 제 아무리 연기를 잘하고 분위기를 타도, 굿할 때 눈빛 바뀌는 건 가짜가 진짜를 못 따라한다고.
토요미스테리 극장의 실화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고명한 무당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성이 있었는데, 그는 어머니의 직업이 창피하기도 하고, 미신을 전혀 믿질 않아서 어머니와 다툼이 잦았다.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점을 쳐주거나, 아들의 책가방에 몰래 부적을 붙여놓는 바람에 어머니께 화를 많이 냈다고 한다.
그 후 아들은 성장해서 선원이 되었는데, 어느 날 바다에 나가려던 도중에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는다. 놀라서 급히 집으로 달려갔지만 정작 어머니는 멀쩡했다. 속았다는 사실에 아들은 화를 냈지만, 자기가 타려던 배가 침몰되는 바람에 동료들이 죽거나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사실 어머니는 아들이 그 날 배를 타면 안 된다는 점괘가 나와서, 일부러 아들을 살리려고 꾀병을 부렸던 것이다.아들이 배에 탔으면 아무도 안 죽었을 수도 있다(…)
덕분에 아들은 어머니의 점괘나 신기를 믿게 되었고, 자기도 무당이 되어 가업을 잇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아들의 결심을 들은 어머니는 화를 냈다고 한다. 자기 자식만은 무당이란 직업을 갖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결국 어머니는 아들에게 제대로 된 직업을 찾아보라며 집에서 쫓아내더니, 그 날부로 아예 수십년을 해왔던 점집마저도 그만두었다고 한다.무당도 가족 앞에서는 평범한 사람이다. 실제로 사연의 주인공이었던 그 어머니의 인터뷰까지 나와서 화제가 되었다. 흠좀무.
이 기사에서 볼 수 있듯 의외로 정치인, 재벌, 사업가들이 무당이나 미신을 신봉하는 경향이 강하다. 높으신 분들이 무속인이나 역술인들과 교류가 잦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주변에 큰 사업이나 사회적으로 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교회, 성당, 사찰을 다니더라도 점집에 가는 경우를 봤을 것이다.
물론 가톨릭과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행태를 단호하게 금한다. 출애굽기(가톨릭은 탈출기)에서 Suffer not the witch to live(너는 무당을[30] 살려두지 말라)라는 표현이 있고, 레위기에도 역시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는 구절까지 있다. 신약시대에도 바오로 등 사도, 교부들이 앞장서서 주술과 미신, 이단을 타파한 기록들이 많다.
불교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전통문화와 섞여 절에 산신당이 있다거나 하는 형태로 혼합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근본적으로 점을 치고 미래를 보는 행위를 금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조선 말기 기행으로 유명한 경허선사도 제자 만공이 수행 중 잠시 타심통이 열려 점보는 스님으로 전업하자(?) 따끔하게 꾸짖고 올바른 길로 가게 지도했다는 얘기도 있다. 사실 불교가 오래 된 종교라 친숙함이 있는 바람에, 종단협에 소속되지 않은 불교 군소종단 쪽에서 무당 행세를 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점집 앞에 만(卍) 자 깃발을 올리고 신당에 불상을 놓고 법당이라 부르고, 머리를 깎고 승복도 입으며 스스로 xx법사, OO선사라 칭하며, 한마디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현대에서는 다른 직업을 겸하는 무당이 많다.투잡 타로 카드를 배워서 타로카페를 열고, 타로카드 단 하나만 보는 타 카페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 본래 직업인 점괘, 사주팔자, 굿 등등과 겸하는 케이스가 제일 본래의 적성(?)을 잘 살린 케이스.
하지만 아예 상관없는 직업으로 빠지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부동산, 보험, 비즈니스 관련 직종이면서 무당을 한다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 겉으론 식당주인처럼 소탈한 직업을 지닌 무당이라도, 사업 이야기에서 무속을 언급하면 의심부터 하자. 심지어,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이름이 있는 무당이라서 안심하고 찾아갔더니, 지방 조폭(!)에 연관된 무당이어서 돈을 뜯겼다는 경우까지도 있다.
대중적으로는, 간교하거나 웃긴 직업으로 유머거리가 되는 편이다.외모에 반하면 안 되니까 전화해서는 안 된다
대체로 집값이 싼 단독주택가나 빌라촌에 사는 경우가 많다. 혹은 동네의 집값이 떨어지면서, 멀쩡했던 주택이 무당 암자로 하나 둘 변하면서 무당촌이 되어버리는 사례도 볼 수 있다. 여기에 공장지대가 근처에 있으면 중국 조선족 식당이나 상점들도 같이 있는 경우가 있다. 간혹 낙후된 임대아파트 단지에도 무당이 사는 경우가 있다.
도축업자들 입장에서는 최고의 VIP 고객이다. 일단 큰신을 받은 무당들은 신을 위해 제사를 매일 올리는데, 특히 산신을 모시는 무당들은 고기를 제사상에 꼭 올리다보니 산신을 위해 가장 질좋은 고기를 의무적으로 올린다. 이때문에 가장 값나가고 맛좋은 고기들을 가장 많이 사가는 사람들이 무당들이다. 이때문에 도축업자들 입장으로썬 최고의 단골손님이며, 만약 그 단골이 큰신을 모시는 무당이라면 알아서 돈방석에 올려주는 사람들이다.
수입이 억대를 훌쩍 넘기는 경우도 제법 있다. 굿 한판에 천만 단위의 돈을 벌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작은 굿이라도 명절 상차림의 곱 이상으로 가격이 들어간다. 당골에 한정하면 작은 굿은 수백만원짜리도 있지만, 굿 가격에는 무당의 인건비만 해도 상당하다. 한번 굿을 하면 무당만 있는 게 아니고 독경하는 사람, 상 차리는 사람, 심부름하는 사람, 또 주례하는 무당 혼자 감당이 어려울 경우 따로 초빙하는 무당, 북 같은 악기를 치는 사람 등등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들이 모여 움직이는 회사 같은 건데, 어쨌든 이 사람들에게도 인건비는 나가야 하므로 돈이 많이 든다. 정재계에서도 무당을 믿는 높으신 분들이 많아서 소문만 잘 나면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서울의 무교 문화는 순수한 남한의 문화가 아니다. 6.25 전쟁으로 인해 북한의 무속인들이 대거 남하하여 서울굿은 북한식과 옛 남한식이 뒤섞여 있다. 때문에 서울굿에서는 다른 지역과 달리 이북굿, 이북방울처럼 북한 지역의 흔적이 많다. 상을 차리는 순서나 열의 위치부터 주로 사용하는 무구,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이 지역별 특색이 있다.[27]
하지만, 불과 몇백년전까지 토속신앙의 전문가였던 무당과 그 무속은 기독교, 불교 등 기성 종교로써의 질서와 체계성을 갖추지 못한 채 미신으로 소비되면서,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현세주의, 현실주의자 성향이 강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있어서 표면적으로는 배격하려하지만, 실제로는 음성적인 형태로 소비되는 형태로 왜곡되어 살아남은 상태다.
한 때 tvN을 위시한 케이블 채널에서 인터뷰 대상으로 과도하게 선호하던 직종이었다.[28] 일단 전문직업에 속하는 만큼, 오컬트 프로그램에서 퇴마사로서 자주 등장한다. 물론 활약상은 작가들이 써놓은 각본에 따라서 다르다. 심지어 주작이 아니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서였는지, 현지의 무속인을 섭외했는데 촬영 전에 각본 숙지가 잘 되지 않은 건지, 현지 무속인은 사건의 원인이 된 원혼의 실체를 밝힌 후 위령한다고 술을 원혼이 깃들었다(고 주장하는)는 나무에 뿌렸는데, 옆에서 주연을 맡은(?) 김X기 법사는[29] 그 원혼을 자신의 몸에 가두었다고 얘기했다. 또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귀신이 자주 목격된다는 녹음실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확인 과정에서 카메라가 갑자기 고장나는 기이한 현상이 밝혀졌다. 그런데 잘 보면, 같이 출연한 퇴마사를 자청하는 무속인이 제작진이 확인하기 직전 카메라를 이리저리 만져대고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은 사이비 무당들에게 광고 혹은 뒷광고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엉터리 무당들이 신내림을 핑계로 돈을 뜯어내는 상황을 고발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한 사기꾼 무당은 모 엑소시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대가로 시즌 당 6천만원 정도를 냈다고 인터뷰했다. 재방송을 통해 많은 인지도를 얻어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고.
아무리 고명한 무당이라도 자식에게 무당이라는 직업을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저주와도 같은 신내림을 자녀에게만큼은 피해갔으면 하는 연민과 세간의 시선이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모가 무당이면 그 자식에겐 필히 대물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자식만큼은 절대로 무당이 되지 않길 바랐으나, 시간이 흘러 자식마저도 신내림을 받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하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린다. 사실 자식이 3D직업 종사하는거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물론 반대로 어떤 무당의 딸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굿하는 걸 보고 자라 어머니가 평소에 하는 무사를 달달 외우고 있었는데도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고 있었다. "정작 그 어머니는 생판 남을 신딸, 신아들로 삼고 물려주고 있다"고, 일제강점기 무속을 연구한 일본인 기록에 나와있다.
결론은 케바케. 그리고 그 일본인이 그 책에 진짜 무당과 가짜 무당을 구별하는 법을 썼는데, 제 아무리 연기를 잘하고 분위기를 타도, 굿할 때 눈빛 바뀌는 건 가짜가 진짜를 못 따라한다고.
토요미스테리 극장의 실화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고명한 무당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성이 있었는데, 그는 어머니의 직업이 창피하기도 하고, 미신을 전혀 믿질 않아서 어머니와 다툼이 잦았다.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점을 쳐주거나, 아들의 책가방에 몰래 부적을 붙여놓는 바람에 어머니께 화를 많이 냈다고 한다.
그 후 아들은 성장해서 선원이 되었는데, 어느 날 바다에 나가려던 도중에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는다. 놀라서 급히 집으로 달려갔지만 정작 어머니는 멀쩡했다. 속았다는 사실에 아들은 화를 냈지만, 자기가 타려던 배가 침몰되는 바람에 동료들이 죽거나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사실 어머니는 아들이 그 날 배를 타면 안 된다는 점괘가 나와서, 일부러 아들을 살리려고 꾀병을 부렸던 것이다.
덕분에 아들은 어머니의 점괘나 신기를 믿게 되었고, 자기도 무당이 되어 가업을 잇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아들의 결심을 들은 어머니는 화를 냈다고 한다. 자기 자식만은 무당이란 직업을 갖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결국 어머니는 아들에게 제대로 된 직업을 찾아보라며 집에서 쫓아내더니, 그 날부로 아예 수십년을 해왔던 점집마저도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 기사에서 볼 수 있듯 의외로 정치인, 재벌, 사업가들이 무당이나 미신을 신봉하는 경향이 강하다. 높으신 분들이 무속인이나 역술인들과 교류가 잦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주변에 큰 사업이나 사회적으로 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교회, 성당, 사찰을 다니더라도 점집에 가는 경우를 봤을 것이다.
물론 가톨릭과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행태를 단호하게 금한다. 출애굽기(가톨릭은 탈출기)에서 Suffer not the witch to live(너는 무당을[30] 살려두지 말라)라는 표현이 있고, 레위기에도 역시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는 구절까지 있다. 신약시대에도 바오로 등 사도, 교부들이 앞장서서 주술과 미신, 이단을 타파한 기록들이 많다.
불교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전통문화와 섞여 절에 산신당이 있다거나 하는 형태로 혼합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근본적으로 점을 치고 미래를 보는 행위를 금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조선 말기 기행으로 유명한 경허선사도 제자 만공이 수행 중 잠시 타심통이 열려 점보는 스님으로 전업하자(?) 따끔하게 꾸짖고 올바른 길로 가게 지도했다는 얘기도 있다. 사실 불교가 오래 된 종교라 친숙함이 있는 바람에, 종단협에 소속되지 않은 불교 군소종단 쪽에서 무당 행세를 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점집 앞에 만(卍) 자 깃발을 올리고 신당에 불상을 놓고 법당이라 부르고, 머리를 깎고 승복도 입으며 스스로 xx법사, OO선사라 칭하며, 한마디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현대에서는 다른 직업을 겸하는 무당이 많다.
하지만 아예 상관없는 직업으로 빠지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부동산, 보험, 비즈니스 관련 직종이면서 무당을 한다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 겉으론 식당주인처럼 소탈한 직업을 지닌 무당이라도, 사업 이야기에서 무속을 언급하면 의심부터 하자. 심지어,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이름이 있는 무당이라서 안심하고 찾아갔더니, 지방 조폭(!)에 연관된 무당이어서 돈을 뜯겼다는 경우까지도 있다.
대중적으로는, 간교하거나 웃긴 직업으로 유머거리가 되는 편이다.
대체로 집값이 싼 단독주택가나 빌라촌에 사는 경우가 많다. 혹은 동네의 집값이 떨어지면서, 멀쩡했던 주택이 무당 암자로 하나 둘 변하면서 무당촌이 되어버리는 사례도 볼 수 있다. 여기에 공장지대가 근처에 있으면 중국 조선족 식당이나 상점들도 같이 있는 경우가 있다. 간혹 낙후된 임대아파트 단지에도 무당이 사는 경우가 있다.
도축업자들 입장에서는 최고의 VIP 고객이다. 일단 큰신을 받은 무당들은 신을 위해 제사를 매일 올리는데, 특히 산신을 모시는 무당들은 고기를 제사상에 꼭 올리다보니 산신을 위해 가장 질좋은 고기를 의무적으로 올린다. 이때문에 가장 값나가고 맛좋은 고기들을 가장 많이 사가는 사람들이 무당들이다. 이때문에 도축업자들 입장으로썬 최고의 단골손님이며, 만약 그 단골이 큰신을 모시는 무당이라면 알아서 돈방석에 올려주는 사람들이다.
7.2. 여러가지 문제[편집]
한국 전통문화라는 인식이 있어 주변에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으며, 그에 걸맞은 인품을 지니거나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격자들도 있다. 하지만 반감을 주는 사기꾼들도 있다는 것이 문제. 가족이 점에 빠져서 귀신 쫓아내느라 굿판을 벌인다고 전재산을 홀라당 날려먹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이런 일이 많이 줄었으나, 그래도 완전히 근절되고 있진 않다. 원래 "무당이 지나치게 돈을 밝히면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뿐만 아니라, 무당과 혈연적으로 관련이 있어서 신병[31]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남들에게는 판타지로 보이는 이야기들이 이들에게는 당장 현실로 다가오면서, 남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쉽사리 꺼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세간의 인식도 있어서 무당에게는 잘 어울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례가 공론화되는 일은 거의 없고, 특정한 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겨우 알 수 있을 정도다.
사례를 한 가지 들자면, 어머니가 무당인 어떤 사람은 어릴 적부터 귀신 같은 것이 온 세상을 뒤덮은 모습을 보며 살아야 했으며, 눈앞에서 친구가 트럭에 치여 죽는 것을 목격하거나, 정신을 잠시 잃었다가 차려보니 친구에게 컴퍼스 바늘로 상해를 입히는 등, 일상생활이 어려워져 가는 자신의 과거를 밝혔다. 그런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런 정신병에 걸린 것과 다름없는 경험을 하는 무당 자녀가 많다고 한다. 물론 이것들이 사실이라고 증명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길거리에서 영혼이 맑아보인다며 접근하는 사람들 역시 사이비지만 무당에서 발전한 아류 종파이다.대순진리회가 무당에서 발전한 아류? 그나마 맑은 영혼으로 신을 받든다고 하지만, 굿을 하지 않으면 가족 중 누가 죽는다느니, 조상신이 심하게 노했다느니 하며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린 사람들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는 사례가 많다.
물론, 이는 무당들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 대다수의 무당은 자기 수행 및 생존 비용이 필요한데, 굿판을 벌일 기회는 1년에 4번도 찾아오지 않는다. 게다가 굿은 본래 마을 행사였기에 의외로 준비 비용이 비싸다. 결국, 전국적으로 프랜차이즈 형태의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는 한, 작은 규모의 종교인들은 최대한 비싼 계약을 맺는 사업가 형태로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가톨릭/정교회/성공회 사제에게 받는 고해성사나 개신교 목사에게 받는 신앙상담도, 넓게 보면 카운셀링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에게서 직접적으로 막대한 금전을 지불받는 방식은 체계화를 이룬 현대 종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적어도 고해성사나 신앙상담을 명목으로 금전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본래 어떤 종교든 교회 유지를 위하여 신자에게 어느 정도 금전적인 부분을 요구하게 되지만, 무당처럼 큰 액수의 금액을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현대 기준으로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 일부 종교에서 문제가 있는 종교인(먹사)들의 일탈이 있다고 해도, 제 정신이 박힌 종교라면 직접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강령은 아니다.
무당이 성직자와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 무당은 체계화된 종교의 교리에 따르는 사람들도 아니고 오랜 기간 다듬어진 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러므로 성직자에게 자신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묻고 상담을 받으러가는 느낌으로 무당을 만났다가는 무당의 개인적인 말빨에 휘둘려, 문제가 해결되기는 커녕 그 무당에게 심리적으로 구속된 상태로 돌아오기 쉽고, 진실로 자신의 삶에 깊은 의미가 될만한 대답을 듣기 어렵다.
따라서 무당을 만날 때는 특정 분야(무속)의 사업자와 서로의 필요에 의해 계약서를 쓴다는 생각으로 만나는 것이 현실적이다. 곧 무당에게 내가 어떤 형태의 퍼포먼스를 원하는 지를 정확히 말하고 그 무당이 그것을 할 수 있다고 하면 거기에 드는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또한 무속인은 성직자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사이비가 많다. 무속인이 되는 것은 가톨릭/정교회/성공회 사제는 물론이고 개신교 목사나 불교 승려가 되는 것보다도 훨씬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에, 다른 직업을 갖기 힘든 범죄자들, 사회부적응자들이 무당 행세를 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므로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무당과 혈연적으로 관련이 있어서 신병[31]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남들에게는 판타지로 보이는 이야기들이 이들에게는 당장 현실로 다가오면서, 남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쉽사리 꺼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세간의 인식도 있어서 무당에게는 잘 어울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례가 공론화되는 일은 거의 없고, 특정한 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겨우 알 수 있을 정도다.
사례를 한 가지 들자면, 어머니가 무당인 어떤 사람은 어릴 적부터 귀신 같은 것이 온 세상을 뒤덮은 모습을 보며 살아야 했으며, 눈앞에서 친구가 트럭에 치여 죽는 것을 목격하거나, 정신을 잠시 잃었다가 차려보니 친구에게 컴퍼스 바늘로 상해를 입히는 등, 일상생활이 어려워져 가는 자신의 과거를 밝혔다. 그런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런 정신병에 걸린 것과 다름없는 경험을 하는 무당 자녀가 많다고 한다. 물론 이것들이 사실이라고 증명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길거리에서 영혼이 맑아보인다며 접근하는 사람들 역시 사이비지만 무당에서 발전한 아류 종파이다.
물론, 이는 무당들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 대다수의 무당은 자기 수행 및 생존 비용이 필요한데, 굿판을 벌일 기회는 1년에 4번도 찾아오지 않는다. 게다가 굿은 본래 마을 행사였기에 의외로 준비 비용이 비싸다. 결국, 전국적으로 프랜차이즈 형태의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는 한, 작은 규모의 종교인들은 최대한 비싼 계약을 맺는 사업가 형태로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가톨릭/정교회/성공회 사제에게 받는 고해성사나 개신교 목사에게 받는 신앙상담도, 넓게 보면 카운셀링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에게서 직접적으로 막대한 금전을 지불받는 방식은 체계화를 이룬 현대 종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적어도 고해성사나 신앙상담을 명목으로 금전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본래 어떤 종교든 교회 유지를 위하여 신자에게 어느 정도 금전적인 부분을 요구하게 되지만, 무당처럼 큰 액수의 금액을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현대 기준으로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 일부 종교에서 문제가 있는 종교인(먹사)들의 일탈이 있다고 해도, 제 정신이 박힌 종교라면 직접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강령은 아니다.
무당이 성직자와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 무당은 체계화된 종교의 교리에 따르는 사람들도 아니고 오랜 기간 다듬어진 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러므로 성직자에게 자신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묻고 상담을 받으러가는 느낌으로 무당을 만났다가는 무당의 개인적인 말빨에 휘둘려, 문제가 해결되기는 커녕 그 무당에게 심리적으로 구속된 상태로 돌아오기 쉽고, 진실로 자신의 삶에 깊은 의미가 될만한 대답을 듣기 어렵다.
따라서 무당을 만날 때는 특정 분야(무속)의 사업자와 서로의 필요에 의해 계약서를 쓴다는 생각으로 만나는 것이 현실적이다. 곧 무당에게 내가 어떤 형태의 퍼포먼스를 원하는 지를 정확히 말하고 그 무당이 그것을 할 수 있다고 하면 거기에 드는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또한 무속인은 성직자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사이비가 많다. 무속인이 되는 것은 가톨릭/정교회/성공회 사제는 물론이고 개신교 목사나 불교 승려가 되는 것보다도 훨씬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에, 다른 직업을 갖기 힘든 범죄자들, 사회부적응자들이 무당 행세를 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므로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7.3. 무당과 관련된 질병[편집]
종종 무당의 활동을 눈으로 보면 찾아오는 증상에 대해선 신병 문서 참고.
7.4. 인간문화재도 많은 극한직업[편집]
실질적인 무당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극한 직업이다. 문화재청이나 전통협회에서 밀어주는 제대로 된 무당들도 많다. 특히 국제적인 유네스코에서까지 공인받는 무당들은 위의 사기꾼들과는 비교를 거부하는 엄청난 사람들이다. 문화재급 무당은 육체적, 정신적, 학문적으로 엄청난 수행을 통과한 초인들인데, 실제로 무교에 통달하려면 이게 과연 인간의 삶인가? 싶을 정도로 힘든 고행 속에서 살아야한다.
진짜 무당은 엄청난 고행으로 만들어지는 전문직이다. 흔히 생각하는 개인 사업자 형태가 아닌, 제대로 자리를 잡은 무당 루트를 타려면 최소한 10년 이상은 춤과 노래와 역사 같은 전통문화를 몸으로 수련하고, 관련연구자들과 교류하는게 기본이다. 이 시점에서 이미 단순한 장사치와는 거리가 멀고, 국내외 문화단체에서 인간문화재로서 인정받은 무당들은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이런 분들은, 굿도 못 하면서 유명인들에게 점을 쳐주는 사기꾼들보다도 인지도가 낮다. 높으신 분들은 문화재 보존이랍시고 세금(?)이나 축내는 사람들이라며 전통적인 무당을 무시하고, 젊은 사람들에게도 멸시받기 일쑤다.
대표적으로 만신 김금화 옹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히기를,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맞아서 미국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한국영사관 직원들이 김금화 옹이 차려입은 무복을 보곤 "나라 망신 시킬 일 있느냐. 무슨 굿이냐. 당장 데리고 나가라"며 무대에 못 나가게 막았다.
이 때 다른 공연 다 끝나고 카펫 걷고 관객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는 판에 김금화 만신의 미국 공연을 제의했던 조자용 선생이[32]가까스로 미국 영사를 설득했고, 김금화 만신을 떠밀어서 무대에 올라갔고, 죽기살기로 한두 거리 굿을 하고 작두를 타 보였다. 결과는 공연장에 있던 관객 모두의 기립박수.
김금화 만신은 무속인한테서 "당신은 신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을 찾아온 사람더러 "그렇다, 당신 신 받고 무당되어야 할 팔자다"라고 받아주지 않고 "가서 절이나 교회(!) 다니면서 기도하고 살아라"하고 돌려보낸다. 기사
하지만 현실에서 노래, 독경, 춤까지 몇시간씩 해내는 완벽한 무당은 의외로 숫자가 적다. 무당을 마스터했다면, 돈벌이보다는 무당 자체에 의미를 두고 빡센 수행을 거쳤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사기꾼이 될 수 있는 수단이 널렸는데, 작두타기, 유리밟기, 몇시간씩 노래하고 춤추기 같은 고행을 10년 이상 배우고 싶을 리가 없다. 종교라는 측면에서 볼 때 무당이 점유하는 지위는 사제 혹은 신관과 정확히 같다. 어떤 종교건 제대로 된 성직자라면 속세의 부귀영화와는 자기 직위에 맞는 최소한의 연만 두고 자기 수행과 수련을 하며 이는 무당도 예외가 아니다.
진짜 무당은 엄청난 고행으로 만들어지는 전문직이다. 흔히 생각하는 개인 사업자 형태가 아닌, 제대로 자리를 잡은 무당 루트를 타려면 최소한 10년 이상은 춤과 노래와 역사 같은 전통문화를 몸으로 수련하고, 관련연구자들과 교류하는게 기본이다. 이 시점에서 이미 단순한 장사치와는 거리가 멀고, 국내외 문화단체에서 인간문화재로서 인정받은 무당들은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이런 분들은, 굿도 못 하면서 유명인들에게 점을 쳐주는 사기꾼들보다도 인지도가 낮다. 높으신 분들은 문화재 보존이랍시고 세금(?)이나 축내는 사람들이라며 전통적인 무당을 무시하고, 젊은 사람들에게도 멸시받기 일쑤다.
대표적으로 만신 김금화 옹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히기를,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맞아서 미국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한국영사관 직원들이 김금화 옹이 차려입은 무복을 보곤 "나라 망신 시킬 일 있느냐. 무슨 굿이냐. 당장 데리고 나가라"며 무대에 못 나가게 막았다.
이 때 다른 공연 다 끝나고 카펫 걷고 관객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는 판에 김금화 만신의 미국 공연을 제의했던 조자용 선생이[32]가까스로 미국 영사를 설득했고, 김금화 만신을 떠밀어서 무대에 올라갔고, 죽기살기로 한두 거리 굿을 하고 작두를 타 보였다. 결과는 공연장에 있던 관객 모두의 기립박수.
김금화 만신은 무속인한테서 "당신은 신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을 찾아온 사람더러 "그렇다, 당신 신 받고 무당되어야 할 팔자다"라고 받아주지 않고 "가서 절이나 교회(!) 다니면서 기도하고 살아라"하고 돌려보낸다. 기사
하지만 현실에서 노래, 독경, 춤까지 몇시간씩 해내는 완벽한 무당은 의외로 숫자가 적다. 무당을 마스터했다면, 돈벌이보다는 무당 자체에 의미를 두고 빡센 수행을 거쳤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사기꾼이 될 수 있는 수단이 널렸는데, 작두타기, 유리밟기, 몇시간씩 노래하고 춤추기 같은 고행을 10년 이상 배우고 싶을 리가 없다. 종교라는 측면에서 볼 때 무당이 점유하는 지위는 사제 혹은 신관과 정확히 같다. 어떤 종교건 제대로 된 성직자라면 속세의 부귀영화와는 자기 직위에 맞는 최소한의 연만 두고 자기 수행과 수련을 하며 이는 무당도 예외가 아니다.
8. 창작물의 무당[편집]
8.1. 푸대접 받는 직업[편집]
일본의 무녀&음양사, 서양의 마녀/마법사, 드루이드가 해리 포터 시리즈[33] 등의 매체로 인해 신비한 이미지로도 취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의 무당은 창작물에서도 푸대접을 받는다. 도술은 신선, 도사, 홍길동이나 전우치, 기타 무협물이 더 유명하고, 무당은 약초 등 각종 재료를 이용해 물약 등 각종 약을 만드는 마녀/마법사, 드루이드[34]와는 달리 약을 만들지도 않는다. 대신 병에 걸린 사람에게 굿을 하는 묘사가 나온다. 그래도 춤을 춰야한다는 걸 이용해 무용 관련[35]으로 엮어볼 수는 있지만 후술하듯이 무교 정보도 물론이고 국내 무속 춤 관련 정보도 취재 없이 묘사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다.
그나마 영매 쪽을 살려볼 수는 있으나 오컬트 장르에서 퇴마사나 구마사제가 활약하는 데에 반해 무당은 취급이 좋지 않다. 사기꾼으로 나와 돈을 뜯어내고 가정을 파탄시키거나 사악한 주술을 부려 저주를 내리는 악역을 도맡는다. 또한 입이 상당히 거친 욕쟁이에 상대를 향해 반말은 기본으로 달고 다닌다.무엇이든 물어보살
또한 시종일관 잡귀의 소행이나 XX하면 부정탄다는 말은 하나의 정형화된 클리셰이다. 영화 곡성만 봐도 황정민이 맡은 무당은 나이 불문하고 상대방한테 반말을 찍찍 하고, 다소 거칠고 무례하게 행동한다. 다른 매체에 나오는 무당들도 대체로 비슷한 말투를 쓴다.
게다가 전설의 고향이나 퇴마물을 다룬 매체에서도 나름 '용한' 무당들이 괴이를 해결한답시고 나서다가 악령에게 역관광 당한다. 더불어 '내 힘으로는 답이 없다'는 대사를 치며 꽁무니를 빼는 것은 옵션. 무당이 데꿀멍하거나 버거워하는 일을 기성종교에서 해결하는 클리셰가 많다. 주로 신앙심이 깊은 승려나 사제 등이 일을 해결하는 식이다. 대표적으로 검은 사제들과 퇴마록이 있다.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무당들 취급이 좋지 않고, 대신 가톨릭 신부들이 신앙의 힘으로 악령을 퇴치한다. <전설의 고향>은 특히 무당이 못하는 걸 지나가던 스님들이 나서서 다 해결해준다.
굳이 따지자면 퇴마록의 경우는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준후가 무속인(도사) 비슷한 포지션에 있는 데다(무속과 밀교 등 동양종교에 해박하다는 설정) 주요 등장인물들이 가톨릭 신자만 있는 아니고 불교나 무속, 중국 도교, 인도 힌두교에 일본의 신토, 이집트 신화, 드루이드교(켈트 신화)까지 등장하니 특별히 가톨릭 하나만 두드러지게 활약하는 것은 아니다.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소설은 기독교(주로 개신교)도 깔 때는 엄청나게 깐다. 다만 박신부나 준후는 주인공이라 보정을 많이 받는 편이라 어찌저찌 해결하지만, 중간중간 짧게 등장하는 무속인들의 취급은 썩 좋지 않다. 그나마 장군신을 모시는 최철기 노인이 등장해 활약하지만, 이 사람도 결국 조연 그 이상의 비중은 없다.[36] 결정적으로 퇴마록에서 준후가 배워서 쓰는 술법 중 밀교나 도교계 술법에 비해 무녀 을련에게 배워 익힌 무속계 술법들은 대부분 수명을 깎아먹는다는 설정이 붙어있고 유독 이 점이 강조된다는 특징이 있다.
검은 사제들의 경우 무당들이 비록 악령을 퇴치하는 데에는 실패했어도, 적어도 신통력 자체는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작중 등장하는 무당인 제천법사는 김범신 베드로 신부와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며 인간적인 교분을 나누는 것으로 묘사되며, 제천법사 일행은 빙의당한 소녀의 몸에 들린 마귀 중 격이 높고 기독교 세계관의 악마인 마르바스는 미처 눈치 못 챘지만 함께 붙은 한국 토종 마귀인 쌍두사 마귀는 감지해냈다. 다만 제천법사와 딸의 존재 자체가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주진 않으며, 둘은 작중에서 전투력 측정기로 소모되는 캐릭터이긴 하다.
심지어 아군으로 나오는 상황도 보기 힘들다. 김은정의 굿타임처럼 주인공으로 나오더라도 뭔가 심하게 비뚤어진 악질이거나 허당이거나 신통력이 시원찮은 개그 캐릭터. 현실에서 각종 편법으로 돈을 벌다 보니, 묘하게 주인공 보정을 못받는다.
그래도 가끔씩, 도덕적이고 신비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내에서는 주로 웹툰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외국 매체에서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이 토착 종교나 원시종교가 다소 부정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애초에 불교나 기독교는 선교 과정에서 현지 종교와 퓨전이 되는 방식으로 뿌리를 내리고 전도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사극의 경우 작중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대부분을 맞히는 신통함을 보여준다.작중 등장인물의 병 하나도 못 고치고 "차도가 보이지 않습니다."라는 말만 입에 달고 사는 어의보다는 훨씬 낫다는 우스개도 있다. 물론 당대에는 바로 얼마 뒤에 벌어지게 될 사건들이고 시대가 훨씬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야 '그렇게 되었다'고 결론이 다 정해져 있는 일들이다. 해당 사극에서 다루는 역사적 사건의 전개와 결말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는 시청자들 입장에서야 웃음이 나오겠지만, 작중 인물들의 시각에서 보면 용하기도 그렇게 용할 수가 없다.
하지만, 비판자들도 진짜 무당이 얼마나 빡센 직업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실 대다수의 창작물에서 선역으로 묘사되는 무당 캐릭터는 현실이라면 지역구 문화재급의 인적자원이다. 특히, 유명한 지역구의 굿거리를 맡는다는 설정이라면, 역사적인 가치까지 지니는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웬만한 사람들은 중도탈락하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는 고행을 평생 해온 사람들이니 그 노력은 말할 필요도 없다.
별개로 국가 막장 테크의 단골 소스로 등장한다. 창작물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런데 당장 조선 말기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고 위세를 떨친 진령군이 있고, 삼국시대(중국) 촉한의 유선이 황호와 무당의 말과 점괘만 믿고 등애의 침략을 등한시 하다가 나라가 망하는 등, 실제 역사에서도 나라를 망치고 좌지우지하는 요사스러운 이미지가 깊게 박혀 있다.
최순실의 등장 이후로 사실상 무당의 이미지는 바닥을 파고 들어갔다. 하지만, 영세교는 무당과 전혀 관계없는 근본없는 사이비 종교임에도, 영세교에서 한국 미신을 여럿 따온 터라, 많은 사람들이 국정농단사태를 비판할 때 최순실을 무당으로 비유하며 비난하고 있다. 그 예로 광주에서 예술인들이 모여 예술인 블랙리스트 사태와 각종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공연이 있었다. 무속인을 초청해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살풀이굿을 하자, 관중들이 "정부 비판 공연인 줄 알았는데 사이비종교 공연이었냐!!"며 욕을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굿이 끝나자 다들 돌아왔지만, 이것을 본 사회자가 "최순실 때문에 이제 한국 민속신앙에 뿌리를 둔 전통예술은 끝장난 것 같다"고 푸념했던 일화가 있을 정도.
무속인들의 모임인 무신교총연합회에서도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비판 때문에 참다 못해서 "최순실은 무당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다"라고 강하게 비난하였다. 생명평화마을 대표 황대권[37]은 경향신문[38]에 "샤머니즘을 욕되게 하지 마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하며, 따지고 보면 한국 기독교(정확히는 개신교)가 한국에서 그렇게 빠른 시간에 성장하고 그 수많은 신자들을 거느리는 메이저 종교가 된 원인도 따지고 보면 샤머니즘의 원리에 기댄[39] 덕분이 아니었냐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그나마 영매 쪽을 살려볼 수는 있으나 오컬트 장르에서 퇴마사나 구마사제가 활약하는 데에 반해 무당은 취급이 좋지 않다. 사기꾼으로 나와 돈을 뜯어내고 가정을 파탄시키거나 사악한 주술을 부려 저주를 내리는 악역을 도맡는다. 또한 입이 상당히 거친 욕쟁이에 상대를 향해 반말은 기본으로 달고 다닌다.
또한 시종일관 잡귀의 소행이나 XX하면 부정탄다는 말은 하나의 정형화된 클리셰이다. 영화 곡성만 봐도 황정민이 맡은 무당은 나이 불문하고 상대방한테 반말을 찍찍 하고, 다소 거칠고 무례하게 행동한다. 다른 매체에 나오는 무당들도 대체로 비슷한 말투를 쓴다.
게다가 전설의 고향이나 퇴마물을 다룬 매체에서도 나름 '용한' 무당들이 괴이를 해결한답시고 나서다가 악령에게 역관광 당한다. 더불어 '내 힘으로는 답이 없다'는 대사를 치며 꽁무니를 빼는 것은 옵션. 무당이 데꿀멍하거나 버거워하는 일을 기성종교에서 해결하는 클리셰가 많다. 주로 신앙심이 깊은 승려나 사제 등이 일을 해결하는 식이다. 대표적으로 검은 사제들과 퇴마록이 있다.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무당들 취급이 좋지 않고, 대신 가톨릭 신부들이 신앙의 힘으로 악령을 퇴치한다. <전설의 고향>은 특히 무당이 못하는 걸 지나가던 스님들이 나서서 다 해결해준다.
굳이 따지자면 퇴마록의 경우는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준후가 무속인(도사) 비슷한 포지션에 있는 데다(무속과 밀교 등 동양종교에 해박하다는 설정) 주요 등장인물들이 가톨릭 신자만 있는 아니고 불교나 무속, 중국 도교, 인도 힌두교에 일본의 신토, 이집트 신화, 드루이드교(켈트 신화)까지 등장하니 특별히 가톨릭 하나만 두드러지게 활약하는 것은 아니다.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소설은 기독교(주로 개신교)도 깔 때는 엄청나게 깐다. 다만 박신부나 준후는 주인공이라 보정을 많이 받는 편이라 어찌저찌 해결하지만, 중간중간 짧게 등장하는 무속인들의 취급은 썩 좋지 않다. 그나마 장군신을 모시는 최철기 노인이 등장해 활약하지만, 이 사람도 결국 조연 그 이상의 비중은 없다.[36] 결정적으로 퇴마록에서 준후가 배워서 쓰는 술법 중 밀교나 도교계 술법에 비해 무녀 을련에게 배워 익힌 무속계 술법들은 대부분 수명을 깎아먹는다는 설정이 붙어있고 유독 이 점이 강조된다는 특징이 있다.
검은 사제들의 경우 무당들이 비록 악령을 퇴치하는 데에는 실패했어도, 적어도 신통력 자체는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작중 등장하는 무당인 제천법사는 김범신 베드로 신부와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며 인간적인 교분을 나누는 것으로 묘사되며, 제천법사 일행은 빙의당한 소녀의 몸에 들린 마귀 중 격이 높고 기독교 세계관의 악마인 마르바스는 미처 눈치 못 챘지만 함께 붙은 한국 토종 마귀인 쌍두사 마귀는 감지해냈다. 다만 제천법사와 딸의 존재 자체가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주진 않으며, 둘은 작중에서 전투력 측정기로 소모되는 캐릭터이긴 하다.
심지어 아군으로 나오는 상황도 보기 힘들다. 김은정의 굿타임처럼 주인공으로 나오더라도 뭔가 심하게 비뚤어진 악질이거나 허당이거나 신통력이 시원찮은 개그 캐릭터. 현실에서 각종 편법으로 돈을 벌다 보니, 묘하게 주인공 보정을 못받는다.
그래도 가끔씩, 도덕적이고 신비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내에서는 주로 웹툰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외국 매체에서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이 토착 종교나 원시종교가 다소 부정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애초에 불교나 기독교는 선교 과정에서 현지 종교와 퓨전이 되는 방식으로 뿌리를 내리고 전도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사극의 경우 작중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대부분을 맞히는 신통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비판자들도 진짜 무당이 얼마나 빡센 직업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실 대다수의 창작물에서 선역으로 묘사되는 무당 캐릭터는 현실이라면 지역구 문화재급의 인적자원이다. 특히, 유명한 지역구의 굿거리를 맡는다는 설정이라면, 역사적인 가치까지 지니는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웬만한 사람들은 중도탈락하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는 고행을 평생 해온 사람들이니 그 노력은 말할 필요도 없다.
별개로 국가 막장 테크의 단골 소스로 등장한다. 창작물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런데 당장 조선 말기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고 위세를 떨친 진령군이 있고, 삼국시대(중국) 촉한의 유선이 황호와 무당의 말과 점괘만 믿고 등애의 침략을 등한시 하다가 나라가 망하는 등, 실제 역사에서도 나라를 망치고 좌지우지하는 요사스러운 이미지가 깊게 박혀 있다.
최순실의 등장 이후로 사실상 무당의 이미지는 바닥을 파고 들어갔다. 하지만, 영세교는 무당과 전혀 관계없는 근본없는 사이비 종교임에도, 영세교에서 한국 미신을 여럿 따온 터라, 많은 사람들이 국정농단사태를 비판할 때 최순실을 무당으로 비유하며 비난하고 있다. 그 예로 광주에서 예술인들이 모여 예술인 블랙리스트 사태와 각종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공연이 있었다. 무속인을 초청해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살풀이굿을 하자, 관중들이 "정부 비판 공연인 줄 알았는데 사이비종교 공연이었냐!!"며 욕을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굿이 끝나자 다들 돌아왔지만, 이것을 본 사회자가 "최순실 때문에 이제 한국 민속신앙에 뿌리를 둔 전통예술은 끝장난 것 같다"고 푸념했던 일화가 있을 정도.
무속인들의 모임인 무신교총연합회에서도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비판 때문에 참다 못해서 "최순실은 무당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다"라고 강하게 비난하였다. 생명평화마을 대표 황대권[37]은 경향신문[38]에 "샤머니즘을 욕되게 하지 마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하며, 따지고 보면 한국 기독교(정확히는 개신교)가 한국에서 그렇게 빠른 시간에 성장하고 그 수많은 신자들을 거느리는 메이저 종교가 된 원인도 따지고 보면 샤머니즘의 원리에 기댄[39] 덕분이 아니었냐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8.2. 무당의 자식[편집]
무당의 자식, 가족, 화신이라는 캐릭터 분류가 있다. 현실의 사이비 무당으로 대표되는 사업자들의 부도덕한 속성을 제거하고, 전통적인 설정만 빌려와서 쓰는 사례. 중대한 클리셰의 하나로서 분류할 정도로 인기가 있는 설정이다. 현대 창작물에서 등장하는 무당은 이런 캐릭터들이 많다. 현실에서 무당의 이미지가 나쁜 것도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진짜 무당을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제대로 강신굿을 할 수 있는 무당들은 최소 10년 이상 수행한 사람들인데, 웬만한 창작자들은 이런 삶을 묘사하는 것조차 고통스럽다고 한다. 애초 취재 없이 묘사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다. 무당에 대한 자료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나마 접할 수 있는 것들 중 쓸만한 자료들은 경우 대개 학술자료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묘사와 설명이 필요한 창작물에서 쓰려면 결국 무당들을 찾아 다니며 직접 취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 '무당의 핏줄, 가족'은 그 자체로도 대단히 매력적인 소재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무당이란 직업 자체는 대단히 고통스러운 수행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자식들에게도 물려주지 않고 평범한 직업을 가지길 원하는 무당들이 많다. 하지만 동시에 무당은 세습무라 하여 대를 이어서 무당을 하거나, '무당의 자식'이라는 그 이유로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신내림을 받아서 강신무로 활동하게 되는 경우도 제법 많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모자식의 세대 갈등,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여기에 현대 대중들의 무당과 그 가족들에 대한 복잡한 형태의 대우까지 더해지면 '무당의 자식'이란 설정은 좋은 클리셰로 각색하기 쉽다.
이런 부류 가운데는 신학을 배워 가톨릭 사제 내지 개신교 목사(집사)가 되어서 자신의 '신실한 신앙심'(?)으로 무속 혹은 불교 등 '미신'에 빠져 살던 부모님을 감화시키고 개심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했다는 식의 간증담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유튜브 같은 동영상 사이트나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꽤 나온다. 물론 불교에서도 비슷한 사례로 사교를 믿던 자들을 부처의 가르침에 귀의하게 하였다는 초기 불교의 전승도 있다. 위에 언급한 소설 무녀도처럼, 이런 식으로 무당과 무교와 연관이 없는 무당의 자녀/손주, 혹은 다른 종교 성직자/신자가 된 무당의 자녀/손주의 충돌을 소재로 한 창작물도 적지 않다.
제대로 강신굿을 할 수 있는 무당들은 최소 10년 이상 수행한 사람들인데, 웬만한 창작자들은 이런 삶을 묘사하는 것조차 고통스럽다고 한다. 애초 취재 없이 묘사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다. 무당에 대한 자료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나마 접할 수 있는 것들 중 쓸만한 자료들은 경우 대개 학술자료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묘사와 설명이 필요한 창작물에서 쓰려면 결국 무당들을 찾아 다니며 직접 취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 '무당의 핏줄, 가족'은 그 자체로도 대단히 매력적인 소재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무당이란 직업 자체는 대단히 고통스러운 수행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자식들에게도 물려주지 않고 평범한 직업을 가지길 원하는 무당들이 많다. 하지만 동시에 무당은 세습무라 하여 대를 이어서 무당을 하거나, '무당의 자식'이라는 그 이유로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신내림을 받아서 강신무로 활동하게 되는 경우도 제법 많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모자식의 세대 갈등,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여기에 현대 대중들의 무당과 그 가족들에 대한 복잡한 형태의 대우까지 더해지면 '무당의 자식'이란 설정은 좋은 클리셰로 각색하기 쉽다.
이런 부류 가운데는 신학을 배워 가톨릭 사제 내지 개신교 목사(집사)가 되어서 자신의 '신실한 신앙심'(?)으로 무속 혹은 불교 등 '미신'에 빠져 살던 부모님을 감화시키고 개심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했다는 식의 간증담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유튜브 같은 동영상 사이트나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꽤 나온다. 물론 불교에서도 비슷한 사례로 사교를 믿던 자들을 부처의 가르침에 귀의하게 하였다는 초기 불교의 전승도 있다. 위에 언급한 소설 무녀도처럼, 이런 식으로 무당과 무교와 연관이 없는 무당의 자녀/손주, 혹은 다른 종교 성직자/신자가 된 무당의 자녀/손주의 충돌을 소재로 한 창작물도 적지 않다.
8.3. 기타[편집]
일반적으로 무당, 즉 무속인이 쓴다고 여겨지는 무구나 부적 등을 전투에 활용하는 캐릭터의 비중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이런 영웅은 싫어의 헤이즈는 악령들을 봉인해 놓은 부적으로 인신매매범들을 제압, 구속한 적이 있다. 악령의 포켓몬 마스터 귀전구담의 그 여자 이야기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무당은 '그 여자'에게 비과학적인 힘을 통해 인생을 결정 지을 선택을 하게 하는데, 이처럼 주인공의 인생을 바꾸거나 점을 쳐 주인공의 미래를 예측[40]해 떡밥이나 복선을 뿌리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에는 주인공 역시 귀신을 보거나 다룰 수 있는, 일반적으로 영력이라 불리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경우[41]가 많다.
8.4. 무속인/관련 캐릭터[편집]
완전한 무속인은 ◆. 무당의 자녀/손주, 화신처럼 전통 무속의 설정만 빌린 캐릭터는 ◇.
무녀 문서와 함께 보면 좋다.
무녀 문서와 함께 보면 좋다.
- 강시대소동 - 가영◆, 청기철 부자◇
- 견우와 선녀 - 박성아◆, 박성아의 신어머니◆
- 고수 - 송예린◇
- 귀신별곡 - 처연, 고아령◇
- 귀전구담 - 무당
- 검은 사제들 - 제천법사
- 곡성 - 일광◆
- 달님은 알지요 - 금순◆,[42] 봉동◇, 송화◇
김향이의 어린이 장편소설이자 동화. 1994년 10월 10일[43]에 나왔고 제23회 삼성문예상(현 삼성문학상)을 받았다. 임진강 근처 시골마을이 배경이다. 6.25 전쟁, 등장인물 중 하나의 사망, 사산, 산모사망이 나오는 등, 동화치고는 내용이 어둡다. 1932년생 무당 금순과 1948년생 가출한 아들 봉동, 그리고 손녀 송화까지의 무당 관련 대립을 그리고 있다. 2003년 5월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 선정되었다. 국내에서 6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중국, 베트남, 태국(2005년), 프랑스에서도 출간되었다. - 도깨비신부 - 주인공◇, 도깨비, 귀신과 소통하고 한을 풀어주는 능력을 각성하나 무당은 아니다.
- 랑종 - 님
- 레드문 - 한지화◆
- 무녀도 - 모화◆
- 무당 - 무당◆
박원빈 화백의 만화로 1980년대 작품. 무당들만 모여 사는 시골마을로 농활을 갔던 대학생들이 무속 신앙의 신비함에 대해 서서히 알아가는 내용을 담았다. 완전히 절판된 작품으로 헌책방이나 네이트 만화 같은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 미래의 골동품 가게 - 도미래◆, 서연화◆, 화수련◆, 이매신◆
- 미얄 시리즈 - 소무(미얄 시리즈)◆, 민오,[45] 제인 어셔◆
- 바리공주(웹툰) - 바리◆
- 방구석에 인어아가씨 - 명정◆ 명아연, 납작이◇
- 방법 - 진경◆, 백소진◇
- 봄이 오면 꽃이 피고 - 정윤겸◇
- 불신지옥 - 심은경(소진, 신들린 소녀 역)◇
- 손 the guest - 윤화평◇, 육광◆
- 신비아파트: 고스트볼의 비밀 - 최강림◆[49] 정확히는 무속인이 아니라 퇴마사다.
- 신의 언어 - 신영옥◆, 금난새◇
- 쌍갑포차 - 대무당
- 아주 오래된 농담 - 최청하
- 언데드킹 - 이나연◆
- 옛날 어린이들은 - 무당◆
- 왕꽃 선녀님 - 태극선녀◆
- 이차원용병 - 강철호◇. 특기가 강화돼서 아예 무속인 클래스를 습득했다.
- 좋아하게 될 거야 - 무당◆
- 철권 시리즈 - 클라우디오 세라피노, 자피나
- 태백산맥 - 소화◆
- 헤비스노 - 미치드◇
, 하와이◆ - 1을 줄게 - 무당
8.5. 무속인, 심령 관련 프로그램[편집]
공포체험보단 다분히 오컬트적인 성격을 띈 국내 프로그램이 많다. 이런 류의 프로그램들이 흔히 그렇듯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출연자들의 인격이나 자질도 전혀 검증이 되지 않았다.
제41조(비과학적 내용) 방송은 미신 또는 비과학적 생활태도를 조장하여서는 아니되며 사주, 점술, 관상, 수상 등을 다룰 때에는 이것이 인생을 예측하는 보편적인 방법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방송분 전체가 대놓고 방송심의규정 제41조를 뭉갠 프로그램이고 실제로 경고까지는 줬지만 무사히 방영이 되었다.
9. 관련 문서[편집]
10. 둘러보기[편집]
[1] 시청자들의 눈이 덜 아프도록 단순하고 깔끔하게 만들어졌다.[2] 굿판을 현대적인 의미로 애둘러 '행사'라고 표현한다.[3] 이북에서 큰 무당을 부르는 말. 무당들이 섬기는 신을 만신이라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이북식 강신무가 대세가 되면서 널리 퍼진 말이다.[4] 굿할 때 악사와 보조적인 인원들도 화랭이라고 부른다. 같은 뜻의 말은 잽이.[5] 전국적으로 세습무를 뜻하는 단어로도 널리 퍼졌다. 무당의 신도들을 당골, 단골이라 하기도 한다. 참고로 이러한 신도 조직은 당골/단골판으로 불린다.[6] 시대에 상관 없이 주로 사회적으로 여성 무당을 칭하는 표현 중 하나이다. 현대 한국에서는 사회적인 무교 행사가 적어서 '무녀'라는 호칭을 잘 쓰지 않다보니 '무당'이라는 민족적인 단어에 대비되는 일본식 호칭으로 생각되어 무녀라는 호칭을 꽤 엄격하게 배척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그나마 해를 품은 달도 있었고, 점점 분위기는 얕아졌다. 그래도 이 표현을 쓸 일이 잘 없긴 하다.[7] 설익은 무당, 즉 제대로 배우지 못한 무당을 의미한다. '서있는 무당' 이 아니다.[8] 비슷한 속담으로 '반풍수(어설픈 풍수지리 학자)가 집안 망친다'란 말도 있다.[9] 독립운동가였다가 변절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된 그 최남선이다. 사실 최남선이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던 일제강점기 초기의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일제가 강요하는 역사관'에 대항하여 독립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한국의 역사를 연구해야 할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었고, 특히 일선동조론에 대응하기 위해 상고사 연구를 통해 한국인의 독자적인 민족적 기원을 규명하려는 시도 역시 중시되었다. 최남선이 변절하기 전까지 가까운 사이였다고 알려진 신채호의 조선상고사가 이 분야의 가장 대표적인 산출물이다. 즉, 변절하기 전까지는 최남선의 행보 역시 한용운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단지 끝까지 지조를 지킨 신채호에 비해 최남선은 중도에 포기하고 굴복했기에 후세에 전혀 다른 평가를 받게 된 것 뿐이다.[10] 시베리아 원주민, 퉁구스계 제민족, 아이누족, 한민족을 뭉뚱그려 가리키는 표현이다. 오스트랄로이드가 아시아로 진출 이후 가장 먼저 북아시아와 동북아시아에서 정착한 이들로 추정된다. 언어학적으로는 이들의 언어를 고시베리아 제어라고 하는데 비교언어학적으로 친연성이 입증된 언어군은 아니다.[11] 기존까지 한반도에서 살던 사람들은 일본열도로 밀려나 도래인이 되거나 이들 북방민족과 동화되었다. 반도 일본어설 참고.[12] 부채춤은 현대의 창작무용이다. 즉, 현대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치르는 무교 행사도 전통종교와는 거리가 매우 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런 '비종교적이고 현대적인 민족 행사'를 통하여, 전통 무교에서 주술적인 행위를 줄이고 민족 종교의 체계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낫다는 주장도 있다.[13] 죽어 동해의 용왕이 되어 왜구를 막은 설화가 전해지는 문무대왕릉은 무속인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14] 청해진이 위치했던 완도 일대 중심.[15] 목호의 난을 진압하러 제주도에 가던 중 추자도에서 어업 기술을 전수해 지금도 추자도에서 무속인들이 신으로 모신다.[16] 주로 통영, 진도 등 남해안 일대에서 숭배된다.[17] 연평도에서 조기 조업 대풍을 기원하며 제를 올린 풍습이 존재한다.[18] 관우를 신으로 모시는 것은 중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사들을 통해 들어온 역사가 깊은 신앙이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관우신은 도교에서 매우 메이저한 신으로 취급되고, 국내에서도 실제로 관우신을 모시는 무속인은 꽤 흔하다.[19] 더글러스 맥아더 신앙은 1950-60년대 휴전 직후에 인천 지역에서 꽤 많이 발견되었고, 심지어 지금도 있다! 기사. 과거 양담배 수입이 금지되던 시절 맥아더를 모시는 무당들이 양담배를 밀수하거나 고급 양주를 입수해서 제사를 올리다 뉴스에 난 일도 있다.[20] 제주도에서는 따로 초공신이 무조신으로 섬겨진다.[21] 물론 가톨릭이나 정교회도 무속신앙이나 무당 자체에 대해서 교리적으로 긍정적으로 인식하지 않으며 오히려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다만 가톨릭은 한국에 들어온 시기가 오래 되고 현지화가 되면서 기존의 풍습을 어느 정도 존중하기에 놔두는 편이고, 정교회는 한국인 신자 수가 2천여명에 불과한데다 한국 정교회는 가톨릭이나 성공회와 비슷한 사회적 노선을 걷고 있어서 온건한 편이다.[22] 개신교에서도 무속인을 좋게 안본다.[23] 꿈에서 신격이 현몽을 했다는 식으로[24] 굿이 시작될 때 신이 왔음을 알려주는 영검한 막대 형상의 상징물. 삼지창에 꿰인 돼지, 대나무 대 등등. 대가 똑바로 서면 신이 온 증거이니 굿이 잘 된다고 믿었다.[25] '판다'는 말은 잘 안 쓴다.[26] 만신으로 잘 알려진 김금화의 사례가 대표적이다.[27] 이것은 북한의 교회들이 남하했던 개신교도 마찬가지다.[28] 오늘날 tvN의 프로그램 편성과 방송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하면 굉장히 의외지만, 본래 tvN은 2006년 개국 이래 선정적이거나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프로그램 편성, 잊을만 하면 터지는 사연 조작 등으로 비판을 많이 받던 흔하디 흔한 케이블 채널 중 한 곳에 불과했다. 아니, 사실 욕 먹던 케이블 방송사 중에서도 무속 사랑과 선정성 때문에 막장 케이블채널의 대표주자로 인식되어 가장 많이 욕먹던 방송사라고 봐도 무방했다. 화성인 바이러스나 리얼스토리 묘 같은 프로그램들이 이 당시 tvN의 성향과 수준을 말해주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KBS 출신의 신원호, 나영석 PD를 영입한 2011년~2012년을 기점으로 대대적인 쇄신을 통해 지금의 위상을 구축하게 된 것.[29] 이 사람은 일반적으로 공기중에 떠 있는 먼지가 빛을 반사한 탓에 카메라에 비친 반사광을 "영가의 실체"라고 대놓고 이빨을 깐 사람이다.[30] 또는 마녀. 맥락은 같다.[31] 정신질환과 관련한 유전인자가 대물림될 수 있음을 고려해보면, 과학적으로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32] 조자용 박사는 1926년생으로 호는 대갈. 본래 미국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고 귀국해 건축가로도 명성이 있었으나, 중년 들어 한국민속과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가져 도깨비 관련 설화나 전통 민화를 수집하는데 힘썼다. 2000년 사망.[33] 마녀/마법사는 학원물 하위 장르인 마법학교 장르로 엮을 수 있는데, 동양풍 학교라도 도술학교(작품이 동화 하나밖에 없기는 하나 사람들이 한국형 호그와트라면서 상상하는 것도 잦다)나 무협물의 무림학교(학관)(비뢰도 천무학관, 드라마 무림학교 등)는 있지만, 무교는 보통 도제식 같이 1:1 교육으로 가고, "무속학교에 가면 무당이 될 수 있다"는 학원물로 만든다고 쳐도, 선술할 취재 문제 등으로 인해 써먹기도 힘들다.[34] 드루이드는 의학적, 약학적 지식 역시 필수 조건 중 하나이다.[35] 물론 칼날이나 불 위에서 춤을 춰야하니 판타지가 들어갈 수도 있다.[36] 국내편에서 박신부가 신부가 된 계기를 준 친구 차교수의 딸 미라는 정체불명의 강력한 악귀가 빙의된 상태였는데, 이를 해결하러 온 나름 용한 무당은 굿은커녕 무섭다고 도망을 가버렸고, 현암이 월향검을 얻은 산골의 덕산마을은 파계승 색귀가 짐승의 영혼을 부려 강력한 물리력을 이용해 여인들을 강간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데려온 무당은 힘을 이기지 못하고 강간당해 참혹한 모습의 시체로 발견된다.[37] 1955년생으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유학하던 도중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사람이다. 옥중서간을 모아 엮은 '야생초 편지'의 저자로도 유명하다.[38] 참고로 경향신문은 원래 가톨릭 계열의 언론사였다. 현대에도 가톨릭 성향이 있으나 사회적 소수자, 문화예술인 등의 메시지들을 잘 실어다준 신문사이다 보니 황대권 대표도 이를 선택한 듯 하다. 그리고 황대권 대표 본인도 가톨릭 신자다. 세례명은 대철 베드로. 본인의 호로 '바우'를 쓰고 있는데 베드로의 이름에서 따와 반석, 바위를 뜻하는 순우리말 호를 만든 것이다.[39] 기존의 전통적으로 사용했던 주재신인 ‘하느님’을 ‘하나님’으로 고치고, 샤머니즘의 기복신앙과 무당의 역할을 기독교식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당장 영세교만 봐도 최태민은 개종해 목사가 되기 전에는 박수무당도 했던 작자다.[40] 이는 매체에서의 점쟁이의 묘사와 마찬가지로 점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작품에서 자체적으로 스포일러를 하는 등 스토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묘사될 수도 있다.[41] 당연한 사실이지만 작품에서 무당이 주인공이나 조력자임에도 불구하고 귀신을 보는 데에 실패하면 창작 소재로서 써먹기 어렵기 때문에 작품이 귀신이 존재하는 세계로 설정된다. 그래도 선술했듯이 무당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도 있다.[42] 나중에 무당을 그만두기는 한다.[43] 1993년이라는 말이 있는데, 적어도 초판은 1994년 10월 10일에 나왔다. 삼성문예상(현 삼성문학상)을 1993년에 수상했다는데 출간 이전에 상을 받았는 지는 알 수 없다.[44] 다만 설정상 신아들이므로 ◇도 포함된다.[45] 초반에는 무당으로서의 힘을 행사하는 장면이 나왔으나 말뚝이를 봉인하는 데에 힘을 써서 무당의 힘은 쓰지 못한다.[46] 조폭으로 있던 주인공이 우연히 신내림을 받으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담은 영화.[47] 작중 언급되기를 '남조선 애기동자'를 모신대나 뭐래나.[48] 원래는 세습무의 운명을 타고났으나, 오히려 본인이 령들을 제압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49] 어머니도 마찬가지이다.[50] 월주의 전생.[51] 원래는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려 했으나, 갑자기 나타난 신령이란 존재 때문에 무당이 되었다.[52] 6화의 '장인증서'를 통해 이름이 잠시 등장했다.[53] 연예인 출신. 무당이 될 운명을 거부하려 했다가 연인을 사고로 잃은 뒤 무당이 되었다.[54] 정남의 앞에 나타나는 신령의 진짜 정체.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나 자만에 가득 차 있었던 탓에 작품 최종보스인 애드워드에게 살해당한 뒤 원혼이 이승에 남아 정남을 괴롭히고 있었다. 정남과 힘을 합쳐 애드워드를 무너뜨리고 정남이 진정한 무당으로 거듭나면서 본인도 진정한 신으로 거듭나게 된다.[55] 어머니가 무당일을 하고, 본인은 귀신을 볼 수 있으나 무당은 아니다.[56] 가끔씩은 원주민의 친구로도 나온다.[57] 무당일도 했었으며 본업도 이쪽과 관련있기에 그렇다.[58] 본인의 직업은 경찰이지만 무당이었던 외할머니를 닮아 귀신 보는 눈과 예지 능력 등을 타고났다. 이 힘을 사건 해결이나 범죄를 미리 막는 데 써 먹으며, 석연치 않은 어린 시절의 잃어버린 기억을 추적해 간다.[59] 약간 애매하지만 무당집 가문 출신이기도 하고 최종장에서는 사촌 동생 세미 대신 신내림을 받았고 법운에게 완전한 무당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 표시를 한다.[60] 어머니가 무당이다.[61] 최철기옹의 형. 혼세편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62] 정확히 말하면 부적술을 배워 무당들처럼 부적을 쓸 수 있다.[63] 무당의 딸. 20살 성인이 된 이후에는 어머니와 같은 무당이 되었다.[64] 본업은 산신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