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30

희론戱論, 산스크리트어 prapanca쁘라빤짜

amisan511

<희론戱論, 산스크리트어 prapanca쁘라빤짜>

여기서 희戱는 진실이 모자란다는 뜻이고 론論은 사물에 대한 생각이 진리에 맞지 않는
언론을 말한다 따라서 희론이란 허망한 언어 무의미한 말 부질없는 말 헛소리에 가까운 쓸데
없는 말장난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희론戱論은 잘못되고 무의미한 말로서 다듬어지지 않은 생
각이며 진리에 어긋나고 그릇된 집착과 차별에서 비롯돼 사람들을 망상의 세계 속에 빠뜨리는
것이다
탐ㆍ진ㆍ치 삼독심에 오염된 마음작용이 희론이다
주객전도된 전도몽상 번뇌 망상이 희론이다
사실본래성품 그대로 자각 인식하지 못하고 알음알이로 사유하고 고집하는 것이 희론이다 희론은 나는 존재한다라는 자아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일상적 지각의 확산 즉 망상을
의미한다 세상사람 가운데는 가장 중요하고 근원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정론正論보다도 「닭이 먼저
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결론이 나지 않는 끝없는 쟁론만을 생산해내는 희론戱論에 빠져
허송세월하는 안타까운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따라서 무익한 희론戱論을 일삼는다면 마음
만 산란해진다 이러한 망상은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모든 질병의 근원이다 이것이 개인
적으로 나타나면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수반하고 사회적으로 나타나면 싸움 논쟁 언쟁 교만
중상 질투 인색을 수반한다
희론은 산스크리트어 쁘라빤짜prapanca의 한역인데 이는 어근 prapa 또는 prapac
- 상세히 설명하다 흩뜨리다에서 나온 명사형이다 원래는 현상 확장 다양화 상세한 설명
발산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이율배반적인 사유의 개념적 확장 등의 의미를 가졌다
이 말이 점차로 철학적 영역에서는 현상 환상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희곡에서는 어리석은
말을 뜻하게 된다 한역에서는 희론을 허위虛僞), 망상妄想과 같이 좋지 않은 뜻으로만 쓰
인다
이는 희론이 무언가 진상을 꿰뚫지 못하고 언저리로만 얼쩡거리는 알갱이를 꿰차지 못하고
모호하게 흩뜨리는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행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면서 말로만 떠드는 것



경전經典에 어떤 구절을 기억해 가지고 어떤 경전에 이런 말이 있다느니 해서 자기를 과시하
는 것이 희론이다 그래서 희론은 진정한 깨달음과는 거리가 멀다

용수龍樹는 <중론中論>에 희론戱論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용수는 희론을 무대 위에서
춤추는 광대 같은 것이라 했다 허구적인 관념을 실재하는 대상으로 간주하는 마음작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희론에는 어디까지나 전도된 인식이 전제된다 예컨대 우리가 나라는 표현을
할 때 마치 그 말에 따라 어떤 영속적인 나라는 실체가 존재한다는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과 같다

〈중론송〉의 다음 게송을 대비시켜 생각해보면 그 의의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업과 번뇌가 소멸함으로써 해탈이 있다 업과 번뇌는 분별심에서 생기고 분별심은 희론에서
생기지만 희론은 공성空性에서 소멸한다185고 했다
이 말을 중국에서 희론적멸戱論寂滅이라 멋지게 한역했다 참된 궁극적 실재에서는 희론
이 절멸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용수는 공성空性은 연기와 같은 말인데 연기緣起는 세간의 무수한 속설로써는
접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연기는 바로 공성空性이라고 했다 그리고 희론은 생사윤
회의 원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하고 연기와 대극적對極的인 자리에 놓았다

그리하여 중도中道나 중관中觀은 바로 이런 망상희론을 없애고 세상을 똑바로 보는 방법
을 말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망상의 소멸 번뇌의 소멸이 바로 깨달음이고 해탈이라고 했다
부파불교 당시 무성했던 아비담마abhidhamma에는 희론이 너무 많았다 이를 공격하기
위해 등장한 대승불교였기에 용수는 <중론中論>에서 심도 있게 희론을 다룬 듯하다
허긴 침체한 우리 불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남방불교의 아비담마 중에도 이해하지
못할 허황된 희론이 많이 보인다 사몰심死沒心), 그리고 재생연결식再生連結識이니 존재지
속식存在持續識이니 결생심結生心이니 하는 바왕가찌따bhavanga citta 등은 언뜻 보기
엔 제법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깊이 사유해보면 완전히 무대 위에서 춤추는 광대 같은 소리다
때문에 오늘날 남방 상좌부불교 이론에 열광하는 범부들을 위해 마구 퍼다 옮기는 식의 행태는
곤란하다
희론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간화선看話禪이라는 기제에 맞서려는 듯한 아비담마가 오히려
희론에 가까운 것은 아닌지 냉정히 검토해봐야 한다 숭고한 부처님 법을 다룸에는 조심스러워
야 하는데 얼마간의 알음알이로 신중하지 못하고 종횡무진 하는 일부 남방 아비담마 전공자들
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