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55년 통일교 사건[편집]
1950년대 통일교가 표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포교 1순위로 대학생을 지목하며 적극적인 포교를 하였고 이화여대가 그 첫번째 포교대상이 되었다 포교 도중 한국의 개신교계에서 통일교에 대한 이단시비가 있었고, 개신교(감리회) 선교사가 설립한 미션스쿨로서의 종교색이 강했던 이화여대도 이 사건에 휘말렸다. 1955년 이화여대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 가입한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경고를 내렸고, 끝내 경고를 따르지 않은 19명의 교수와 학생들이 면직/퇴학 처분되었다.[1] 이 와중에 이대 양윤영 교수는 경찰에 끌려가기까지 했다. 당시 김활란 총장이 통일교 반대운동을 주도하며 문선명을 비난하는 투서를 보낸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미션스쿨로서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선명교주와 성관계를 가지면 구원을 받을수 있다는 식의 헛소문까지 돌았고 그때 문선명과 그의 제자들이 이화여대생들을 불법으로 감금했다는 혐의로 고소되기도 했으나, 증거가 없어 고발이 취하되어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화여대뿐 아니라 역시 개신교 미션스쿨인 연세대에서도 동일하게 퇴학과 제명이 있었다. 참조(통일교 신자의 블로그임)
이에 대해 미션스쿨로서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선명교주와 성관계를 가지면 구원을 받을수 있다는 식의 헛소문까지 돌았고 그때 문선명과 그의 제자들이 이화여대생들을 불법으로 감금했다는 혐의로 고소되기도 했으나, 증거가 없어 고발이 취하되어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화여대뿐 아니라 역시 개신교 미션스쿨인 연세대에서도 동일하게 퇴학과 제명이 있었다. 참조(통일교 신자의 블로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