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3

김시천 제2강 『노자』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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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강 『노자』에 관하여

◆ 도가에 관하여


▲ 도가

두 번째 얘기로 가죠. 그러면 노자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는 것을 말할 때, 이렇게 텍스트를 읽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도가. 도가를 말할 때 유가를 반대했고, 인의를 부정하고. 도가라는 말은 사마천의 『사기』에 처음 나오는 말이에요.

노자라는 텍스트는 한대의 불법 속에서 도가계열에 속하는 문헌이고, 허무(虛無), 인순(因循), 무위(無爲)를 주창하고 이걸 통해서 “여러 신하가 한꺼번에 몰려와도 각각의 능력이 저절로 드러나게 한다.”

혹시 <영웅>이라는 영화 보셨나요. 진시황이 저 안에 있고 신하들이 떼거지로 와서 “폐하, 아니되옵니다.”라고 다 같이 외치죠. 그런 모습들이 바로 이런 거예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대통령이 있고 재무부 장관이 있고. 물론 그때도 그렇게 했겠죠. 하지만 오늘날 생각하는 방식은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강력한 대통령중심제라서 힘이 세긴 하지만 다른 나라는 그렇지도 않잖아요. 그 이상의 상상력을 발휘해야지만 볼 수 있어요. 말 한마디 잘못하면 죽는 건 물론이고 내 가족까지도 죽어요. 말 한마디 조심하지 않을 수 없죠.

노자를 읽는 사람의 심경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런 영화를 보면서 확인할 수 있어요. 그 영화를 보면서 섭섭하기도 하고 기분 나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 영화를 통해 노자를 읽는데 도움이 돼요.

제가 사실 노자를 이렇게 해석을 안 하다가 언제 이런 해석을 하게 됐냐면 2000년도에 중국엘 처음 갔어요. 중국 가면 전부 다 자금성 같은 걸 보지 않습니까? 자금성을 봐도 별 느낌은 없었는데, 천당공원이라는델 가면 커다란 재단이 있고 가운데에 돌이 있어요. 거기서 말을 하면 벽이 있는데도 다 들리는 특수한 양식이거든요.

사방이 뻥 뚫려서, 원나라 수도를 가면 호구산이라고 해서 해발 39m를 올라가면 온 사방이 다 보이거든요. 제가 기차를 타고, 오후 네 시쯤 탔나, 해질 때까지 산을 한 번도 못 봤어요. 밤새도록 달리다가 아침에 일어났는데 열한 시쯤 도착했는데, 산을 한 번도 못 봤어요.

대여섯 시간동안 산을 한 번도 못 본 나라에서, 수많은 인간들이 깃발 들고 있는데 황제라는 종류의 인간이 어떤 종류의 인간이고 어땠을까 하는 느낌이 백분의 일 정도 느낀 거예요. 노자라는 책을 제왕들이 주로 읽었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러니까 텍스트가 전혀 달리 느껴져요.

똑같은 단어지만 마음속에 와닿는 느낌이 다르다는 거죠. 그런 느낌을 <영웅>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느낄 수 있고. <황후화>라는 영화를 보면, 자식과 아버지가 온 가족이 다 적 아닙니까? 적과의 동침이에요. 이 사람들에게 장생이라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죠.

그러니까 이게 얼마나 비정한 책입니까? 비정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한 책이라고 하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는 가까울 겁니다. 도가라는 문헌군이 전부 다 그렇지는 않지만, 그에 들어있는 상당수가 그에 가까워요.

그리고 황제가 신하들을 만나서 무슨 얘길 하겠어요? 술 마시면 다른 얘길 할 수도 있겠지만, 신하들과 만나서 나라를 다스리는 시국의 문제를 얘기하지 않겠습니까? 뻔하잖습니까.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말처럼 당연히 그렇게 그 책을 쓴 사람들이 그렇게 했고,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면 우리는 일단 그것이 일차적인 문제의식이라고 하는 걸 인정하고 읽어야 된다는 거죠.

『한서·예문지』 에서도 도가는, 人君南面之術(인군남면지술) 즉, 남면이라고 하는 것은, 군주는 남쪽을 향합니다. 신하들은 북쪽을 향해요. 원래는 군주는 서면하고 신하는 동면하는 거예요. 이게 고대 신정적 질서가 깨지면서 등장한 건데, 이 얘기하면 길어지는데 잠깐 할까요?

중국 고대 신화를 얘기하면서 특히 대만 “중국 신화는 서양과 달리 태음 신화다.” lunar mythology. 즉 달 중심의 신화, 음 중심의 신화. 저는 사실 동조하지 않는데.

이런 논의를 하게 된 까닭은, 중국에서 태양신 숭배 흔적이 많아요. 특히 요 임금, 순 임금 전부 다 태양신의 이름이란 연구가 많이 나와 있거든요. 그 흔적이, 조금 나이 드신 분은 알겠지만. 조(朝). 이게 무슨 뜻이죠? 아침 조라고 하죠. 이거 언제 하죠? 80년대까지 초중고 생활하신 분들은 다 아실 텐데 월요일 가면 조례하지 않습니까. 그 조례에 조 자잖아요. 원래 조례는 해가 뜨는 시간에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해맞이 조 자예요.

원래 황제 밑에서 일하는 신하들은 언제 출근하는 거냐? 아홉 시까지 출근하는 게 아니라 해뜨기 전에 출근하는 거예요. 그래서 거의 다 아침을 먹어요.

왜 군주가 서면하고 신하가 동면하느냐.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해 뜨는 시간에 제가 동쪽에서 해가 떠오를 때 가요. 거울 들고. 고대 백제나 신라를 봐도 그렇지만 동경이 있잖아요. 왜 있는지를 생각해보셔야죠. 자기 얼굴 보려고? 뭐 볼 게 있다고.

해가 동쪽에서 뜨고 있을 때, 제가 해를 등지고 올라가면 눈 부셔서 못 봅니다. 신이예요, 신.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장치가 대단해요. 진짜 그런 건지 속설인지는 모르겠는데, 심리학 하는 사람한테 배운 게 있어요.

악수를 한번 해볼까요. 이렇게 해서 여자 손도 한번 만져보고. 관찰력이 예리하신 분들은 보시는데. 정치인이나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악수를 할 때는, 반드시? 두 손으로 할 때도 있죠, 다시. 손바닥을 절대로 위로 향하게 하지 않는답니다. 손이 인간의 심리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고 하는데, 특히 뽕티(메를로 뽕티)는 악수에 엄청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잖아요.

손바닥이 아래로 가는 것, 즉 너는 내 안에 있다. 너는 내 아래라는 심리적이고 육체적인 제스츄어랍니다. 실제로 제가 관찰을 해봤어요. 평소에 권위가 있다는 분들을 봤는데 텔레비전에서도 관찰해보고. 잘 안 보이는데 제가 확인했던 것들은 대부분 정말 그렇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하다가 잡는 순간 돌려요. 이게 진짜 심리학이 밝혀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인간들. 고대인은 지금처럼 다양한 장치를 통해서 할 수 있는 게 예식이잖습니까. 특히 몸을 통해서. 황제는 말을 안 해요. 저처럼 목소리가 되면 얘기하겠지만. 찢어지는 목소리, 애기 같은 목소리로 얘기하면 권위가 서겠습니까? 아, 얘기가 자꾸 새면 안 되는데.

그래서 해맞이 조자가 원래 그런 뜻이에요. 요임금, 순임금 전부 태양신인데 나중에 이와 같은 신정질서가 무너지게 되는 과정을, 시(市)와 연결시켜요. 시가 원래 사통발달의 거리를 뜻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에게 복종하는 부족이 물건을 바치고 하사하는 일이 벌어진 곳이 시예요. 동문에는 무기창고가 있었고 예를 들면 은나라 주왕이 도망간 데가 동문이고, 거기에 무기창고가 있고 바깥에 정원이 있고 엄청나게 높은 망루가 있고 거기에 시녀가 살고 있고. 그 앞이 세예요. 여긴 굉장히 신성한 장소예요.

이와 같은 신정적 질서에 의해서 정치적 정통성을 가지지 못 했던 사람들이 이 시를 공격했어요. 그리고 여기서 죄인들을 참수하는 거예요. 더러운 피를 뿌리는 거죠. 조직적으로 거기를 죽이는 거죠. 나중에 조정이 오고. 고대 정치사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태양신화를 강하게 얘기하다보니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태양신화를 연구했던 사람들이 중근동에서 태양신화가 만들어져서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 따라서 중국문명도 중근동문명이 전파돼서 문명이 이룩됐다는 식의 문명전파설의 강력한 근거가 태양신화설.

두의미같은 사람이 반박하는 이유는 중국 문화의 독자성을 얘기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황하 얘기나 여러 가지를 얘기하면서. 학문이라는 게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많은 부분, 특히 중국 학자는 굉장히 정치적이에요. 학문의 생명입니다.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토론을 위해서 학문을 하는 게 아니라, 그렇다고 해서 이데올로기에 봉사한다고만은 할 수 없어요. 그 가운데서도 내부의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치고 들어가는 얘기가 많으니까요.

하지만 일단 인문학은 정치적인 거예요. 인간의 삶 자체가 정치에서 벗어나기 힘든 한. 다만 어느 쪽 정치를 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하는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죠. 이렇게 표현하니까 이상한데, 억압받고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서느냐 아니면 가지고 있는데 더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 편에 서느냐로 표현하는 게 더 정당하겠죠.


▲ 노자에 관하여

이렇게 본다면, 노자라고 하는 문헌이 분류됐던 도가에 대한 공통된 목소리도 기본적으로 정치담론이란 게 드러납니다. 노자는 어떠냐? 한참 후에 조선조에서도 노자에 대한 주석서가 나와 있어요. 노자가 이단서라고 주희가 엄청나게 공격한 다음에도 다들 주석서에다, 읽지 말아야 할 책이지만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하기에 내가 주석을 한다면서 몇 번 주석을 하는 게 있어요.

이분들이 뭐라고 하느냐. 특히 박세당이라는 분은 『신주도덕경』라는 책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도서관장을 하다가 정치에 중용되지 못 했던 사람인데 오히려 노자가 말하는 도는 성인의 법에 합치하지는 않지만, 즉 공자가 말하는 공맹지도와는 다르지만 그 의도가 역시 수기치인에 있다.

이건 도덕수행론이 아닙니다. 수기치인을 대만계열의 현대학자들이 단순히 도덕수행이라고 하는데, 치인이라는 즉 나를 닦는다는 것은 나가서 올바르게 하기 위해 자기를 닦는 거예요. 도덕수행이 내가 윤리적으로 괜찮은 사람이 된다는 게 아니라, 이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일반 소시민으로 살아가면서 크게 나쁜 짓 할 일도 없고 기회도 없어요.

하지만 위에 있는 사람은 순식간에 엄청나게 나쁜 짓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럴 가능성이 높아졌죠. 예를 들면 은행창구 직원도 10억 빼돌릴 수 있잖아요. 과거에는 그런 시스템이 발달돼 있지 않으니까 지위가 높아져야지만,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도덕성을 요구하는 정도는 엄청난 거죠.

내가 잘못 생각하고 한 마디 잘못 말하고 잘못 정치를 하는 한 엄청납니다. 중국의 인구가 몇 명입니까? 그 수많은 사람들의 생사존망이 나의 판단에 따라 이렇게 휘둘리고 저렇게 휘둘릴 수 있는 사람에게 강력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 당연하지 않습니까.

유가가 요구했던 게 바로 그런 것이거든요.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격이 떨어지는 해석이에요.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간이 돼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렇지 않았을 때 끼치는 해악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요구하는 거예요.

그런데 “‘공손하고 말 없는 교화’를 행할 수 있었고, 밑으로 신하된 자는 ‘청정한 정치’를 행할 수 있었다.” 이 속에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수양에 관한 얘기이긴 하지만 기본적인 목적인 수기치인에 있고 결국은 군주가 다스리고 신하가 올바로 정치를 행하기 위해서. 동일한 계보에 있는 얘기라고 할 수 있겠죠.

홍석주라는 분을 조금 더 내용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는데, “욕심을 줄임으로써 신명을 기르고 다투지 않음으로써 세상에 순응하며 다툼을 줄이고 살육을 없앰으로써 백성을 다스리는 것에 대해 말했으니” 앞의 얘기랑 다른 것 같지만 결국은 똑같은 말이에요. 즉, 이건 치서라는 얘기입니다. 통치에 관한 책이라는 거죠.


▲ 노자와 기독교

자, 그랬던 노자가 20세기에 들어와서 서양적 방식의 학문을 배우면서 위치 이탈을 하게 돼요. 사실 곡절이 많습니다. 노자와 장자라는 책은 환영받지 않았던 책임에도 불구하고 왜 환영받게 됐느냐? 기독교 종교사랑 관련이 있어요.

노자와 관련된 해석서나 주석서를 내는 분들이 세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대학에서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있고, 또 하나는 기독교 계통 사상가에서 꽤 많이 나오죠. 함석헌 선생님도 그렇고 류연모 선생님도 그렇고 이은주 목사님의 책도 있죠. 신학자 가운데서 노자와 관련한 책을 쓰거나 번역서를 내는 뿐이 꽤 있어요. 왜 그럴까.

그냥 개인적인 관심이 아닙니다. 한국사회에서 역사가 있는 거예요. 처음 마틴 호리치를 통해서 이 사람들은 유학과의 대화를 통해서 즉, 최고 상류층 지배층을 대동시키면 전체를 대동시킬 수 있다는 포부를 갖고 쥬이스트들이 노력을 하죠.

나중에 로마 교황청과 싸우고 나서 이 세력이 약화됩니다. 19세기 중반부터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와요. 이 사람들은 전도 방식이 달라요. 노방전도예요. 예수 선도사들은 굉장히 정치적이에요. 큰 걸 노려요.

그런데 개신교 선교사들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서 멘투맨으로. 사람대사람으로 만나서 직접 전도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유학을 통해서 했던 것이 실패했다, 그런데 민간을 지배했던 건 불교와 도교였거든요. 이 사람을 지배하고 있던 민간신앙의 정체를 알아야겠다는 차원에서 노자나 장자 텍스트가 원류니까 그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읽다보니까 왕필이 보이고. 굉장히 철학적으로 보이잖습니까, 다른 사상가에 비해서.

하상공과 왕필을 비교해보면, 하상공이 크게 해석되지 않았던 이유가 도교와 연결되는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에 도교에서만 연구했거든요. 왕필은 철학 쪽에서. 최근에는 그런 벽이 허물어졌지만.

그래서 기독교사상가들이 도가에 대한 호감이 높아요. 유가를 상당히 비판하지만 도가나 노자에 대해선 상당히 호의적이에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쪽을 연구했던 서구학자들 가운데 일부가 필드워크를 했어요. 중국 남부 쪽에서 실제 도교의 생산을 한 장 연구를 하면서 자신들이 생각했던 신비주의의 틀로 노자를 해석하기 시작했어요. 기독교에서도 신비주의적 요소가 상당히 많고 통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까 훨씬 더 이해가 쉬운. 유교는 굉장히 합리적이죠, 그에 비하면. 그런 부분이 상당히 결합하기 쉬었고 더구나 큰 기폭제 역할을 했던 사람이 조셉 미담이라고 하는 중국 과학사상사를 연구했던 사람이 특히 두 가지 역할을 했는데, 하나는 도가 계열의 사상가로부터 이른바 객관적 자연을 관찰하는 눈이 생겼고 거기서 중국의 과학이 태동했다는 주장. 그 다음에 페미니즘적인 사고를 연결시켜서. 두 가지가 한국 사회에 퍼지게 된 계기가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지형도를 갖게 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팔리고 있는 박이문 선생님의 『노장사상』. 상당히 많은 지식인이나 독자들이 노장사상에 관심을 갖게 환기시키는 데 촉발제가 된 책이에요. 동양사상을 전공한 사람이 쓴 책이 아닙니다.

이런 마당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함석헌 선생님이 구축한 또 다른 마당이 있었기 때문에 김용옥 선생님이 와서 강의를 했을 때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거예요.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와서 개인적인 요인만으로 그렇게 파급력이 큰 건 불가능하거든요.

그런 전사가 있었기 때문에 김용옥 선생과 같은 방식이 굉장히. 80년대가 목소리를 높일 만한 때였잖습니까? 목소리가 독특하고 높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었고. 그런 면에서 김용옥 선생 본인이 탁월한 부분도 있었지만 시대적으로 잘 맞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특히 우리 식의 동양 사상이라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배경이, 70년대에 움트기 시작해서 80년대에 퍼지기 시작했거든요. 그걸 우리가 보통 386문화라고 하잖아요. 386이라는 것이 특정한 나이대라기 보다는, 그런 현상을 지칭하는 문화표현이 맞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분들을 보면, 거의 서양책과 차이가 없어요. 노자와 장자 텍스트로 사상을 얘기하지만 누가 봐도 이건 때깔만 동양이지 서양서적과 비교해 봐도 차이가 없다는 거죠.

저는 그런 게 틀렸다는 게 아니라, 다만 그것이 노자의 본래 목소리라고 까지 강하게 주장하는 건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물론 이렇게 하다보면 누군가 종합해서 새로운 사상가가 나올 수도 있겠죠. 제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자신은 없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노자라는 모습은 길어야 100년 밖에 안 됐어요. 좀 더 가면 조선조에 걸치고. 함석헌 선생님의 노자 강의 경우는, 송대부터 태동해서 조선시대를 거쳤던 방식의 여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담론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하게 생각을 해볼까요? 기독교 사상가가 성경이 아닌 다른 책을 대단한 의미가 있는 진리가 있는 것처럼 대한다. 기독교 계통에 있는 분들 중에 그런 분 보셨나요? 지금도 별로 없죠. 그런데 왜 그 시기에 가능했느냐? 이건, 조선시대의 지식인들, 노자나 장자의 주석을 달았던 분들이 노자나 장자의 텍스트를 대했던 태도와 상당히 유사한 방식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는 거예요.

함석헌 선생님이 노자 강의를 하면서 쓴 글들을 보면, 이 분은 기독교인이지만 상당히 선비 정서를 갖고 있고 그래서 오히려 이단에 대해서도 자유분방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성리학 논쟁에 지치다보니까 거기에 미비한 부분들을 노자나 장자를 통해서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방식처럼, 노자나 장자를 통해서 유가에 없는 부분이 있으니까 기독교에 없는 부분이 없으니까 혹은 대중에게 소통이 잘 되는 언어니까, 하는 방식으로 이용된다는 거죠.

진정한 뜻, 의도가 중요한 거고 텍스트는 그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모습을 저는 상당히 많이 느꼈거든요. 경전의 권위는 중요하지 않고 내가 그걸 통해서 무슨 말을 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얼마나 어려운 개념이 나오는가를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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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하이퍼텍스트인 『노자』


▲ 새로 발굴된 노자

마지막으로 조금 더 이야기한다면, 새로 발굴된 노자들이 있어요. 1973년도에 비단으로 된, 두루마기라고 합니다, 비단은 두루마기이기 때문에 둘둘 말렸다가 쫙 펼쳐져요. 그래서 여기에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편장구조가 없고 을본에 약간의 편장구조를 구분하기 위한 약간의 표시가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도덕경의 81장이다, 그래서 요즘도 한동안 그런 논문 쓰는 분들이 있어요. 노자가 왜 81장인가. 송나라가 별의별 얘기들. 그건 노자가 문헌화될 때, 초창기 지나서 전한 말 후한 초기의 상수왕, 참이 사상이 엄청나게 유행했어요. 그래서 황제내경 텍스트도 81편으로 이뤄졌고, 노자도 81편으로 이뤄졌어요. 완전수라는 거죠.

또 더 신기한 일이 벌어졌는데, 93년도에 오늘날 노자의 5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죽간. 이게 왜 중요하냐면, 우리가 책 하면 이런 걸 생각하잖아요. 이게 책이에요. 이게 발견될 때 가죽은 이미 헤어져서 뭉치로 발견됐어요. 순서가 어떤지 몰라요.

물질성의 제한 때문에, 책이야 페이지를 넘기면서 글을 쓸 수 있죠 비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얼마나 많이 쓸 수 있겠어요. 제한돼 있죠. 그래서 표현이 간략한 게 좋습니다.

사실 이런 기록들이 생긴 건, 원래는 다 구전입니다. 말로 하는 거예요. 말로하는 것이었다가 흐릿해지면서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고 해서 문헌으로 만든 건데. 따라서 이렇게 하다보니까 편장의 구조가 생긴 겁니다.

논어의 경우는, 짧막 짧막한 대화니까 어디서 맺고 끝어지는지 알 수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구절과 어떤 구절을 연결시키냐 아니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자는? 더하죠. 고유명사가 하나도 안 나오고 전부 다 일반명사로 나오는데 예를 들면, 이런 대나무 쪽편들이 막 섞였다가 하나씩 뽑아서 책을 1장부터 다시 배치한단 말이에요. 그럼 순서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엄청나게 변화가 커요. 가장 커다란 변화 중 하나가, 비단 책에 발견된 건데, 우리는 도덕경이라고 부르지만 당시에는 덕도경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책을 딱 펼쳤을 때, 도가도비상도가 아니라 상덕부덕시유덕. 이런 구절부터 먼저 읽는다고 하면 굉장히 실천적이고 구체적으로 와 닿죠. 노자라는 텍스트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 거예요.

그런 변화가 한나라 때 일어났어요. 덕도경에서 도덕경으로. 달리 말하면, 굉장히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식의 텍스트 접근법이 어느 순간에 상당히 형이상학적이고 우주발생적인 체계를 갖춰가면서 노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는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각의 생산물이 나중에 왕필에게도 흘러가고 하상공에도 흘러가고. 우리는 한 대에 다시 태동하게 된 노자를 바라보는 그 이전의 시각을 몇 군데서 확인해볼 수 있죠.

한비자에서 찾을 수 있고, 그 다음에 여기 제시했던 것. 이건 노학사에서 별로 다루지 않는 부분입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그와 같은 역사적 일화들과 더불어서 노자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가 나중에 바뀐다. 특히 한 무제 때 도가 계열의 텍스트들이 이른바 정치와의 매개관계, 유착관계가 덜어져 나가면서 훨씬 더 추상화됐을 가능성이 높고. 그것이 왜 중요하냐.

노자가 아니라 한나라 때 일어난 일이라는 거죠. 따라서 우리가 보는 노자는 지금 20세기의 시각 그리고 왕필이라는 시각이 엮여서 노자를 보고 있다는 겁니다. 노자를 보는 수많은 방식 중에서 하나의 방식이 지금 보편화된 거예요. 왜? 철학이라고 하는 이름 때문에. 역사를 하는 분만 하더라도 노자를 그렇게 읽지 않아요.

그 다음에 곽점에서 발굴이 될 때, 같이 발굴된 문헌이 몇 개 있는데 대부분의 문헌들이 이른바 자사와 맹자 계열의 문헌군이 발견됐어요. 『태일생수』(太一生水)라는 문헌과 노자계열의 문헌이라고 추정되는 노자 외에는 다 유가 문헌이었어요.

그럼 이건 뭐냐는 거죠? 그 때가 대략 BC4세기 말, 3세기 초로 추정되는데. 이 당시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도가와 유가라는 학파도 없었고 개념도 용어도 없었어요. 모종의 텍스트들을 통해서 자신들의 사회적 입지, 학문적 실천들을 이루려고 했던 어떤 집단들이 있었던 것 뿐이에요.

나중에 텍스트를 중심으로 해서, 이 사람은 유가다 이 사람은 도가라고 했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대나무 죽간 속의 노자를 읽었던 사람들은 도가사상가라고 하는 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 곽점본과 백서본의 차이

그리고 곽점본에서 백서본으로 넘어갈 때 굉장한 차이가 있어요. 첫 번째 우리가 도가하면 가장 유가를 반대했다고 하는 구절로 알고 있는

絶聖棄知, 絶仁棄義.(절성기지 절인기의) 즉, 성스러움과 지혜를 끊어 버리고 유가가 말하는 인의를 끊어버려라. 이 구절이 곽점본에서는, (절지기변 절위기려) 즉, 번역하면 지혜를 끊어라 그리고 버려라. 그리고 생각하지 말라. 기의하죠? 도가는 생각하는 걸 철저하게 거부하는 학파예요. 내가 생각하면 내 꾀에 당하거든요.

특히 제왕통치술에 나오는 얘긴데 나중에 무의지술을 얘기할 때 다시 한번 말씀 드릴게요. 慮(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려가 아니라, 걱정입니다. 생각이 많다는 건 걱정이 많다는 거예요.

만약에 내가 대통령이 됐다. 아무 생각도 안 한다. 곤란하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대통령이 아무 생각이 없는 세상이 가장 좋은 세상이에요. 왜. 할 일이 없단 얘기거든요.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거든요. 거꾸로 반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지면 생각할 이유가 없어진다는 거예요.

또 한 가지, ‘내가 생각하지 말고 니가 생각해라. 그리고 니가 책임져라.’ 이게 바로 혁명기술이라고 해서 한비자가 강조하는 중요한 통치술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떤 사태가 있을 때, 지금도 써먹는 방식이에요. “저기 누가 쳐들어온다, 어이할꼬” A라는 장순이 와서 “제가 가서, 군사 오천을 주면 처치하고 오겠습니다.” 라고 가요. 오천의 무슨 장군이 졌어. 그럼, 사형. 격퇴하고 오면 상을 주는 거예요. 나는 아무런 말도 안 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이건 외교로 나가야 합니다. 제가 옆에 진나라로 가서 적의 후방 쪽으로 출전시키겠습니다. 그럼 왔다가 퇴각할 겁니다.” “갔다와” 잘 했어요, 그럼 상 줘요. 못 하면 벌 줘요.

저는 아무것도 안 하는 거죠. 그게 바로 무위예요. 무위를 얘기하면서 많은 분이 굉장한 중요한 사실을 얘기하는데. 하나부터 청나라 말기까지 황제 용상 뒤에 금박으로 무위라고 써 있어요. 저랑 같이 동양철학 하시는 분이 있는데, 유학을 하신 분이에요, 한국학 하신 분이고. 그런데 내 말 안 믿어요. 가보시라고 했더니, 있더라고 해서 제 말 믿어요.

무위라는 말은 황제의 행동방식 얘기하는 고유한 용어예요.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는 거죠. 물론 그 뒤에 다양한 방식의 의미 변화가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다음에, 곽점본에 비해서 덕도경에서 도덕경으로 가면서, 42장의 경우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이 구절 때문에 서양의 철학자들이 박수를 쳤어요.

달리 말하면 서양에는 없는, 파르마네스 존재론에 의하면, 비존재로부터 존재가 나올 수 없죠.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 속에는 모든 존재들이 다 모든 사물들이 존재로부터 생겨나는데, 그 존재는 비존재로부터 생겨난다고 해석을 많이 했었거든요. being을 해석할 때.

그런데 서양에서도 being을 존재로만 해석하는 게 아니라 이 being 속에도 생물체가 있대요. 여기서 말하는 유무보다는 약간 더 추상적인 내용이지만 유와 무는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특히 이런 맥락에서는 ‘규정되지 않은 상태’, ‘특별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상태’ 비유하자면 흙탕물과 같은 거예요.

물의 형체가 어떻습니까? 물이 도에 비유되는 것처럼 없는 게 아니에요. 분명히 있는 거예요. 있다, 없다고 하는 말의 가장 일차적인 의미는, 지금 탁자에 컵이 있죠. 이게 유입니다. 없죠. 여기에 관한 표현이 유무예요. 그래서 유와 무는 being이나 not being으로 번역할 수 있는 게 아니라, there is there is not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문법적인 해석자들은 그렇게 얘기합니다.

굉장히 강하게 서구 존재론화되어 있는데, 문제는 곽점노자본에는 이 부분이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과 따로 따로 놀아요. 그런데 백서노자본에서는 이 부분이 장 구분이 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바로 연결이 돼 있어요.

이렇게 되면, 우주발생론적인 얘기가 들어가니까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은 분명히 추상적인 얘기입니다. 형이상학적인 얘기고. 그리고 우주생성론적인 얘기죠. 이것이 바로 딱 붙어 있으니까 해석을 할 때 훨씬 더 형이상학화하고 우주론화된 해석을 하기가 쉬워지죠. 이것이 곽점본에서 노자로 바뀔 때를 말해주는 거고.

당시에 이처럼 우주론에 대한 재해석이 엄청나게 일어났던 건 사실이니까요. 그런 것에 대한 반영의 흔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최초의 하이퍼텍스트, 노자

지금까지 얘기를 종합한다면, 원나라 때 주석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노자에 관한 주석서가 삼천 개나 되는데 다 다르더라. 이게 이미 원나라 때 주석사가 아니란 얘기예요. 따라서 노자를 말할 때는 그것이 어떤 텍스트이냐, 어느 시대거냐를 별 개로 두고 다르게 얘기해야 한다는 거죠.

모든 노자 텍스트는 하나의 독립된 텍스트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백서, 죽간노자 다 마찬가지고 왕필본, 하상공본 다 마찬가지라는 거죠.

두 번째, 아까 사진에서 보셨던 것처럼, 한스켈러라는 독일학자가 말하는데 곽점본은 현행본의 5분의 1밖에 안 됩니다. 물질의 제한성이 있어요. 비단으로 가니까 훨씬 여유로워지죠. 나중에 종이가 발견되니까 훨씬 더 여유로워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노자를 보고, “노자는 인류 최초의 하이퍼텍스트다.” 실제로 쓴 표현이에요. 묄러라는 사람이다. 왜냐, 인터넷의 문서가 그렇죠. 마구마구 복사할 수 있어요. 실제로 노자와 관련된 어구가 선진 제자백가 여러 텍스트 속에 굉장히 산재돼 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노자는 완성된 체계를 갖고 있는 한 사람이 쓴 저자라는 말은 틀린 겁니다. 달리 말하면, 책의 형태가 이래요. 이렇게 체계적으로 쓰인 게 아니라. 저는 노자를 읽을 때 어떤 독서법을 권하느냐면, 이 책을 책장에 두지 마시고 화장실 옆에다 두세요. 읽을 때 아무데나 펼쳐서 읽는 거예요. 어떤 분은 1분, 어떤 분은 5분, 길게 가는 분은 길게 공부하시겠죠.

실제로 당시 텍스트의 물질 형태가 이러니까, 노자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게 아니라, ‘꼬부라지면 온전해지고’ 보면서 내가 어떻게 실제 현장에 써 먹을까로 읽었단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하면 곤란하겠죠. 여기서 잘한다 잘한다 하면 비민주적일 테니까 다만 읽더라도 고전에서 재미삼아 읽을 때, 특히 한비자나 장자의 책은 우화별로 돼 있어서 그런 방식으로 읽기가 되게 좋아요. 따라서 노자도 특정 방식으로 읽기 보다는 오히려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읽으려고 노력함으로써 노자를 읽었던 사람들의 독해방식에 더 가까이 다가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다음에, 하이퍼텍스트처럼 증식해요, 복사되고. 작은 게 늘어나지 않습니까? 차라리 텍스트의 증식과정으로 보는 것이 훨씬 탁월한 해석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고요.

노자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비유덩어리예요. 번역이 나와 있는데 사라 알란이 쓴 『공자와 노자, 그들은 물에서 무엇을 보았는가』이 채에 물, 식물의 비유체계를 뿌리은유라고 말하면서 유가나 도가 학파와 상관없이 그들이 공유했던 공통된 은유관념이라고 하면서 텍스트들을 다양하게 해석하는 부분이 나오거든요.

따라서 노자를 읽을 때도, 엄격한 논리적 명제들로 추론적으로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연상적인 방식으로, 전부 이미지잖아요. 계곡을 설명할 때 그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매지네이션이죠.

우리가 생각하는, 근거 없는 상상 허구가 아니라 이미지의 운동이라는 차원에서 이매지네이션. 즉 상상력을 발휘해서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 텍스트. 그런 방식의 독해가 상당히 유의미한 게 노자입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이 속에 깔린 가장 중요한 것. 누가, 누구를 위해서, 누가 만들었는가 하는 부분을 제왕학으로 출발했지만 사실은 士계급이 주체였고, 곽점본부터 사 계급이 나옵니다. 적어도 통치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른바 통치 행위에 참여하는 지도자 모두에게 정치적 행위와 이러한 행위의 원리를 터득케 하는 처세 교훈서로서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증식되고 커지고 여러 가지 사상적으로 유가가 되면서 커지면서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방식의 큰 노자 그리고 엄청나게 다양한 주석서들로 분기되는 모습을 보인 게 노자가 아닌가.

따라서 노자는 이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굉장히 좁은 얘기로 가기 쉬워요. 어떤 특정한 텍스트에 대해서 이러하다고 말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지만, 내가 말하는 노자야말로 가장 오리지널한 노자라고 하는 건 상당히 어렵다는 거죠. 그 노자가 뭘 얘기하느냐부터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 첫 번째 얘기는, 그 동안 노자와 관련해 상식적으로 알려졌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의 독해를 여러분이 보셨죠. 그걸 제가 강조하려는 게 아니라, 제 얘기만 맞는 게 아닙니다. 다른 분들이 하는 말도 맞는 부분이 상당히 많아요.

다만, 제가 이 부분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와같은 방식의 해석이 소개돼 있지 않기 때문에 같이 저울질해볼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강조한 것뿐인데.

이 말은 달리 말하면, 노자를 그냥 책으로 읽자. 철학이니 사상이라고 하는 수식어를 붙이고 색깔 낀 눈으로 보지 말고 그냥 읽고 내가 책으로부터 뭔가 의미를 얻는다면, 그때 의미가 있는 거지.

위대한 철학자의 책을 읽었기 때문에 훌륭한 짓을 했다? 그건 무의미한 독서라는 거죠. 왜? 하나도 이해 못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책을 읽는 까닭은 단순하죠. 저는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노자는 놀자로 생각되거든요. 그리고 그것이 유학자들이 노자를 읽었던 정신이고.
저는 어차피 지금 시대와 동떨어진 시대를 살았던 사상가의 저술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도움은 힘들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우리의 상상력을 다양하게 펼칠 수 있는 방식으로 독해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고 건전한 노자 독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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