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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강 『노자』와 성인 1 |
◆ 『노자』가 말하는 성인 자, 오늘은 제왕과 대인입니다. 『노자』에 나오는 용어로 하면 당연히 성인을 가리키는 거죠. 성인하면 동아시아에서는 당연히 가장 이상적인 통치자란 뜻입니다. 그리고 성인이라는 말은 성리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 시대의 군주가 아니라 실제로 완벽한 인격을 체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 전통 사회에서 성인이란 말은 그대로 군주를 지칭하는 은유로써 쓰입니다. 그러니까 유학자들이 텍스트 속에서 그렇게 쓴다고 하더라도 공자는 성인이고 당시 황제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성인에 대해서 쓴다는 것은 당시의 황제에 대한 비판적 표현이거나 우회적인 표현이라고 얘기하면 맞아요. 그래서 성인이란 말은 쉽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한 번 생각 해 보세요. 조선 시대에 율곡이라든가 퇴계 이런 분들의 저술의 제목이 『성학집요』,『성학십도』이런 책이죠. 그럼 그 책이 과거 이전에 나와 있던 책들과 뭐가 다르냐. 공자가 꿈을 꿀 때, 주공을 꿈꿨다라고 하는 것. 주공을 꿈에서 못 뵌 지 오래 되었다고 한탄했던 이유는 뭐냐면 자기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가 주공이고 실제로 유학적 가치의 체현자는 왕이 아니라 신하에요. 제자.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에 있는. 공자가 괜히 주공을 꿈꾼 게 아니에요. 이유가 있으니까 꿈 꾼 거죠. 그런데 그것이 당대를 거쳐 가면서 새로운 힘을 받는데.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혁명 사대부들, 조선조로 따지면 신흥사대부라고 하는 사람들 있죠. 훈구파가 아니라 사림파라고 불리는, 이런 방식과 유사한 방식의 지식인들이 당대에 출현하게 되는데, 언제 출현하게 될까요. 바로 즉천무 휘하에서 대거 출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이 나중에 우리가 성명 성리학이라고 알고 있는 도학파를 이루게 만드는 성명 유학파들이고 그 무대에서 출현하게 되요. 측천무후가 역사적으로는 엄청난 독재자처럼 회자되지만, 중국의 사학자들은 이런 평가를 해요. 측천무후가 굉장히 가혹한 정치적 탄압을 했지만, 황실의 담벼락을 넘지는 않았다. 즉 황실의 담벼락 안에서는 엄청난 숙청과 정치적 탄압이 있었지만 황실 바깥은 최고의 황금기를 누리던 시대라고 평가를 하거든요. 측천무후 시대에 지식인들이 대거 성장을 했고, 이들이 나중에 송대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유학 사조를 이루게 되는 지식인들이 거기서 출현합니다. 그 사람들은 실력을 중시했던 사람들이고, 귀족적 배경 보다는 문학적, 유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대거 득세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먼저 하는 까닭은 유학이라고 하는 것은 도학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우리는 윤리의 틀에서 주로 많이 논의합니다. 하지만 윤리라는 큰 틀, 넓은 의미로 볼 때는 말이 되지만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윤리 하나하나의 과목 명칭으로써의 윤리하고는 상관이 없다는 거죠. 정치 위에 윤리가 있었기 때문에. 자, 개념적인 차이. 개념이라는 것이 아무리 명확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얼마만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지, 외연의 확장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해요. 예전에 제가 한 번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대학에 처음 올라와서 공부를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요. 경찰과 군대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법적으로 보면 그렇잖습니까. 군대는 국방부 소속이죠, 경찰은 내무부 소속이란 말이에요. 즉 경찰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 법을 훼손하는 자들에게 공권력을 집행하는 대리인일 뿐이죠. 이와 달리 군대라는 조직은 외적, 국가 바깥으로부터 들어오는 외적을 방어하는 것이 기본적인 목적입니다. 그런데 그 군대가 바깥의 적을 향해서 가는 게 아니라 내부의 시민을 향해서 휘둘러졌다는 것은 경찰이란 얘기죠.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적어도 5·18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경찰과 군대가 구분이 안 되는 국가였다는 거죠. 제가 5·18에 대한 것을 그 두 개를 가지고 생각을 해 봤는데 최근의 경찰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5·18때와) 행동이 참 구분이 되는 게, 시민들하고 몸싸움 하고 부딪치고 하다가 전경 가운데서도 다치는 사람이 생기잖아요. 끌어내가지고, 치료해 주고 보내주고. 시민들 사이에서는 그 때 같이 나갔던 분들 머릿속에는 내 친구, 내 형제, 나와 같은 시민이라는 울타리가 있었다는 거죠. 하지만 공권력을 집행했던 몸으로 실제로 막았던 졸병들, 그 사람들에게 무슨 힘이 있습니까. 바로 성인하고 제왕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다른데, 성인(聖人) 제왕(帝王). 제왕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지만, 뭐 다양한 얘기가 많이 있어요. 그 가운데서 제(帝)자와 왕(王)이라는 자는 거의 동류에 속하는데, 점점 두께가 사방이 같다가 점점 위와 아래 두께가 넓어지면서 가운데가 좁아지는 방식으로 제의 상형문자가 갈라진다고 합니다.
고대의 은·주 시대 즉 상주시대만 하더라도 왕의 지위가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 바뀌는 과정을 거치면서 왕권이 강화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 때 이들은 주술적 왕이에요. 즉 왕이라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당시 사회에서 보면 하늘이라고 하는 상재와의 소통을 담당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주된 사람들이 정인(貞人)이라고 해서 점치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이 갑골문. 근데 이 정인 집단이라는 것은 이른바 부족장, 씨족장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거죠. 그래서 달리 말하면 이게 점치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치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합의 기구에요. 왜냐하면 갑골에다가 금이 가는 것을 보고 해석을 하는데, 이게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거든요. 나중에는 이 정인 집단이 해석의 권리를 갖고 있다가 왕이 해석권 자체를 장악하는 방식으로 변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상형문자의 변천하고도 일치된다고 사학자들은 해석을 해요. 물론 이것은 합의된 해석이라기보다 몇 가지 해석 중에 한 가지를 내가 소개하는 건데, 적어도 역사적 맥락과 상당히 부합하는 거죠. 그래서 제왕이라는 존재는 사실은 그 자체로 본다면 우주의 주제자란 뜻이에요. 그리고 주나라에 있어서 주대의 세계에 있어서 하늘과 땅과 인간의 세계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존재라는 뜻에서 똑같은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주술적 왕, 심지어는 우주적 왕이라고 표현해도 맞습니다. 특히 재정일치 사회였기 때문에. 그런데 제왕이라는 의미가 주나라에서 춘추전국시대를 거쳐서 한나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맞습니다. 진시황이 제왕이라는 말의 대격이 되는 새로운 용어로써 황제라는 말을 쓰게 되는 까닭하고도 동일한 패턴을 보입니다. 즉 봉건제사회에서 군현제사회로의 변화, 변법이라고 하죠. 이것이 갖고 있는 가장 커다란 특징은 봉건시대만 하더라도 집단 지배체제에요. 그래서 신분제사회였고. 하지만 군현제 사회로 가면 왕의 권력이 개개의 인간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체제로 바뀝니다. 역사학계에서는 이것을 개별인신지배라고 표현합니다. 즉 개개인의 신체자체까지 국가의 권력이 미치는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것, 그것을 우리는 중앙집권화라고 부르고 군현제라고 부릅니다. 군현제를 상징하는 말이 바로 제왕이에요.
그런데 제왕이라는 말 속에는 또 다른 함축이 들어가 있어요. 하상공주석에서 성인 지치라고 하는 성인의 다스림이라고 표현할 때 그것은 치신(治身)과 치국(治國)을 아우르는 거다. 그러면서 황로학적 배경에 있는 수많은 사상가들은 치신에 관련된 논의, 즉 몸속의 기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서 얘기해요. 예를 들면, 직하학궁(稷下學宮)이라고 전국 시대에 수많은 지식인들을 모아서 포섭했던 직하학궁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에 수많은 지식인들이 몰려 있는데, 그 중에 순자도 대표적으로 직하학궁의 좨주를 세 번이나 지냈던 대표적인 지식인이죠. 그 가운데 전병, 뭐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 전병이라는 사람이 치신과 관련된 논의만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왕이 치국의 도리에 대해서 알려 달라 하니까, 치신의 도리를 잘 이해하면 그 것에 치국의 도리가 포함되어 있다고 얘기를 합니다. 즉 치신을 한다는 것은 곧 그 자체가 번역하면 치국이 되고, 치국에 관한 논의는 곧 치신의 논리가 되는 거예요. 제가 지난번에 그런 얘기를 했죠. 『황제내경』이라고 하는 책은 실제로는 치신에 대한 책이지만 다른 방법으로 해석하면 정치적으로 응용될 수 있는 치국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라고 말씀드렸죠. 그러한 것들을 전부 포괄하는 논의가 이른바 황로학이라는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죠. 그런데 이 말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재해석해보세요. 즉 국가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모든 노력, 모든 시도는 제왕 한 사람의 신체에 집중된다는 거죠. 달리 말하면 노자의 치술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독재입니다. 독재의 논리를 아름답다고 미화하는 방식의 해석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죠. 적어도 고대인들에게 황권을 수호한다는 것의 의미는 나름대로 있을 수가 있어요. 하지만 그 자체의 해석이 유학자가 바라보는 해석과 도가에서 바라보는 해석이 다르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성인이라는 말은 고대에 등장하는 맥락, 특히 예를 들면 김희옥선생이 논어를 강의하면서 성인이라는 말이 문자를 해득하고 있는 특별한 존재, 이른바 샤먼에 가까운 존재로 풀었단 말이에요. 하지만 성(聖)이라는 글자를 명확하게 정의한다라기 보다는 좀 더 멋있는 해석, 이미 김희옥 선생이 여자란 무엇인가라는 책 속에서 그런 얘기를 했는데. 꼭 맞는다고 보기 보다는 파자해서 하는 방식이 좋을 때도 있지만, 사실은 의미의 다양한 맥락을 제한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적어도 여기서는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에 성인이라는 말을 파자를 해보면 밑에 있는 것이 단입니다. 제단이죠. 혹은 치소, 성소. 과거에 치소와 성소는 동일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귀가 있습니다. 누구의 귀겠습니까? 제 귀는 상형문자에 안 나와요. 위대한 인간들의 귀만 나옵니다. 그의 귀가 다른 사람의 입 옆에 있습니다. 귀는 뭐하기 위해 있는 것이죠? 들으라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인이라는 존재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불온지교라고 하죠. 처무위지사행불언지교(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물론 그로부터 명령이 나오지만 그로부터 명령이 나오는 까닭은 자신이 하고 무언 가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럼 제왕이 되는 겁니다. 즉 들은 얘기를 해소하는 말이 명령으로 나가는 거예요. 어떤 문제 사안이 있다. 현명한 수많은 신하로부터 듣는 거예요. 그러면 회의를 통해서 또 명령해. 나가는 거죠. 이게 바로 성인의 위치입니다. 이러한 성인의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 풍우란이라고 하는 철학사상가가 장자 철학편에 나오는 용어를 받아들여서 내성외왕지도라고 표현한 겁니다. 기본적으로 귀가 막혀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사대문에 들어가면 귀가 막힐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캐비넷이란 얘기를 많이 하지 않습니까. 외국의 경우, 대기 차기정권주자라고 할 때는 일 년 전 혹은 몇 년 전부터 자기 캐비넷들을 이 차에 걸쳐서 이미 조각을 한 상태에서 뜨잖아요. 만약에 왕 주위에 열 사람의 중요한 신하들이 있다. 그러면 이 열 사람의 열 개의 입은 왕이 들어야 하는 열 개의 방향으로부터의 말을 들어야 하는 자일뿐입니다. 말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럼 뭘 들어야 되느냐. 하늘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늘의 소리는 바로 백성의 소리가 되는 거고. 그래서 맹자에게는 ‘민심’이고 ‘천심’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고. 위민이라는 말의 논리도 그 맥락에서 나오는 겁니다. 사실 공자의 텍스트 속에는 위민적 의식이라는 것 보다는 제도적으로 볼 때는 귀족제, 그 다음에 재상 정치의 모습이 훨씬 더 많이 구현 돼 있어요. 그리고 거기에 위민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깔려 있던 것이 맹자 철학인데, 왕필과 같은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그러한 위민의 의식이 굉장히 깊게 개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왕필이 공자의 철학을 어떤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는지, 왜 그에게 제왕이 아니라 성인이라는 단어가 그대로 나오면서 포개어지고 노자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는지 같은 것들을 확인하는 것이 오늘의 과제입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다루는 이 주제들 때문에 노자의 텍스트 속에 들어있는 내용이 그나마 유학자들의 귀에 부드러운 이야기로 바뀔 수 있었던 배경을 이룹니다. 왜냐, 바로 재상 정치에 관한 논의가 여기에 나오고, 위진 시대에 특수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http://artnstudy.com/PLecture/scKim02/lecture/11_02.htm ◆ 『노자』의 ‘왕’에 대한 해석 그러면 두 번째 페이지로 넘어가서, 그럼 도대체 이 때 현실의 치자(治者), 지배자로서의 왕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제왕론적인 해석을 지지하는, 이거는 사실 노자 원텍스트의 맥락하고 거의 맞는 텍스트 독해법이라고 했죠. 따라서 노자 자체의 목소리를 훨씬 가깝게 드러내고 있는 목소리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와 달리 왕필은 이를 재해석 합니다. 자 거기 노자 24장에 보면, 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자. 도가 크고, 하늘이 크고, 땅이 크고, 왕 또한 크다. 역 가운데서 커다란 것 네 가지가 있는데, 왕 또한 그 가운데 해당한다. 여기서 나오는 사례에 대한 해석은 하상공과 왕필이 미묘하지 않고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하상공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도가 크다’고 한 것은 하늘과 땅을 두루 감싸서 포용하지 못하는 것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하늘이 크다’고 한 것은 그것이 덮지 못하는 것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땅이 크다’고 한 것은 그것이 싣지 못하는 것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왕이 크다’고 한 것은 그가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팔극(八極)의 영역 안에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왕 또한 그 가운데 하나에 해당함을 말한다. 자, 여기서 세상에 가장 커다란 것, 가장 위대한 것, 도무지 인간의 머리로 헤아릴 수 없는 절대 영역에 속하는 것 네 가지는 도(道), 천(天), 지(地) 그리고 왕(王)까지 해당됩니다. 자 여기서 볼 때 왕은 곧 제왕이고, 제왕은 하늘이나 땅과 동격이지 인간과 같은 격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제왕은 인간이 아니에요. 그리고 하늘과 땅을 두루 감싸서 포용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는 도회된 수사는 전국 말기에서 한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등장하는 황로학적인 표현이에요. 이런 은유적 표현 자체가 상당히 중요한 맥락을 함축합니다. 왜냐면 그냥 ‘도’하면 애매모호할 수 있잖아요. 그럼 이때 말하는 도가 뭐냐. 지난번에 그런 얘기를 들었죠. 새가 날 수 있는 것은 도로 말미암아서 날 수 있고, 들짐승이 잘 달릴 수 있는 것은 도를 말미암았기 때문이다. 이 때 말미암음이 있다, 어떤 매개자가 있다. 즉 그 존재가 그와 같은 행태를 보일 수 있게 하는 가능한 원리, 뭐 이런 표현은 근대적인 표현으로 애매할 수가 있지만 그게 쉽게 이해되니까요. 즉 ‘도’없이는 그게 보일 수 없다는 가능의 조건으로 늘 언급이 됩니다. ▲ 회남자 편에 등장하는 도의 모습 특히 회남자 첫 번째 편에는 도가 그런 모습으로 묘사가 되는데 그와 똑같이 우주론적인 차원에서 이 때 도는 어떤 특징을 갖는지 봅시다. 본래 개천설과 혼천설이 이 당시에 우주론으로서 정립이 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는 ‘팔극’같은 것이 개천설에도 나오고 혼천설에도 나오는데 팔극이라는 표현은 뭐냐면, 천원지방설이 있죠. 개천설에 의하면 이런 방식이에요. 회람자의 어떤 부분을 읽어보면 우주의 모습이 이렇게 되어 있어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요. 여기에 끈으로 묶여있어요. 묶여있어서 동서남북 북서, 북동, 남동, 남서 이쪽까지 합쳐서 팔극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묶여 있는 끈을 팔류라고 하고. 그런데 이 설에서는 본래 한대에 설 자체가 이런 것처럼 얘기하는데 이것이 좀 발전되면 혼천설로 가면은 이렇게 바뀐다고 해요. 여기는 물입니다. 네 부분이 사해, 그 다음에 여기가 팔십일추, 그리고 여기가 물. 그리고 이 물이 모인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아래쪽의 심연이 바로 황천이에요. 그래서 모든 물들이 지하수도 그렇고 모이는 곳이 여기고. 그리고 그 쪽에 부상목이라고 하는 나무가 있어서 열 개의 태양이 달려 있어서 하루에 하나씩 여기로 왔다가 황천을 통해서 다시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열 개의 태양, 십일신화같은 것도 이 배경에서 나오는 거고. 근데 재미난 거는 이렇게 맞닿아있어요. 그래서 전체의 모습이 꼭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혼천설의 모습은 야마다 게이지라고 하는 일본학자가 재구성한 모습이에요. 이것을 천구라고 하고 이것이 땅이에요. 그리고 여기가 기로 꽉 찬 상황이죠. 자 그럴 때 이 구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이 ‘도’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서 보면 하늘의 역할을 덮어주는 거고 땅의 역할은 모든 것들을 실어주는 거고 만물은 이 안에서 나오는 거죠. 그리고 이 전체를 감싸서 이것 자체를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도’에요. 그러니까 하늘과 땅을 둘 감싸서 포용하는 것이 없다고 할 때 도가 가장 큰 것이 되는 거죠. 그래서 도가 우주론적인 도로 확장된 모습이 한초에야 성립되는 내용인데 여기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정립된 내용들이 이른바 계속해서 가는 거죠. 중국에서.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일반적인 우주론적의 모습으로 가게 되는 건데 물론 다양한 방식의 변화 모습이 있지만 이런 모습들은 이렇게 얘기할 수 있죠.
여기서 왕이라는 존재는 도, 천, 지와 동일한 우주론적인 존재로 격상되어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이런 모습은 초월적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래서 이런 왕을 cosmic king, 즉 우주왕이라고 하면 적당한 논제에요. 따라서 회람자라든가 황제내경 같은 텍스트에서, 예를 들어 하늘에 해와 달이 있는 것처럼 두 눈이 있고. 그 신체는 모든 인간의 몸이 아니에요. 바로 제왕의 신체를 얘기하는 겁니다. 그에게 바람이 불듯이 숨을 쉬고, 피가 흐르고 산과 강이 있듯이 뼈가 있고. 이런 것들을 얘기하는 표현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살아있는 동일한 인간의 인체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제왕의 신체를 가지고 얘기하는 겁니다. 따라서 제왕의 건강을 지키는 것과 천하의 질서를 지키는 것은 동일한 맥락이 성립되는 거죠. 그래서 국가 신체가 유비적으로, 이때 신체는 제왕. 이런 식의 논리는 푸코도 같이 전근대 봉건사회의 공통 보편적인 담론의 특징이라고 얘기한 바도 있죠. 그런데 왕필의 논의로 넘어가보죠. 그런데 왕필은 이에 관해서 이해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요. 2페이지 밑에 있는 박스를 보겠습니다. 천지의 성품을 구현한 인간은 가장 고귀한 존재이다. 자, 도부터 안 나옵니다. 천부터 안 나와요. 누구부터 나옵니까. 인간에 관한 얘기로 나와요. 왕필은, 특히 유가는 철저하게 인간으로부터 모든 것이 출발했다고 생각합니다. 즉 우주를 읽는 방식마저도 인간이 인간에 대해서 알게 된 그 무언가를 가지고 우주에 대해서 확장적으로 조정을 합니다. 물론 이와 같은 방식의 생각이 은·주시대로부터 비롯된 동아시아적인 생각이라고 벤자민 슈왈츠 같은 사람은 얘기하는데요. 그 사람은 뭐라고 하느냐, 우주 전체가 하나의 가족적인 모델로 확장된 의식이 상주시대부터 이미 있었다. 라고 하면서 그것이 유가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구현되었다고 얘기하는데 실제로 문헌검색을 해 보면, 도가계열, 황로학계열의 문헌에서는 천지(天地)라는 표현이 많이 나와요. 그런데 유가 계열의 문헌 속에서는 천지라는 표현이 극히 드물어요. 거의 안 나와요. 많이 나와 봤자, 천하라는 말부터 출현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재미난 것은 천자는 많이 나와요. 그런데 장자에도 그런 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지, 천하, 천 이라는 글자가 많이 나오는데 그래서 사실은 장자마저도 당시의 사상계에서 속에서 도가적 담론을 많이 이용했을 뿐이지 유가적인 정신을 다른 방식으로 구현하려고 했던 공자의 계승자가 아니냐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아요. 저도 그것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죠. 하지만 이것이 전국 시대에 반드시 그랬다고 주장할 수 있는 완벽한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존 메이크햄이라고 하는 미국 학자는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모습, 장자에 나오는 공자의 모습, 사기에 나오는 공자의 모습하고 맹자와 순자에 나오는 공자의 모습을 비교해 볼 때 오히려 장자에서 그려지는 공자의 모습이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의 모습과 훨씬 더 부합됩니다. 오히려 순자나 맹자, 사기에 나오는 공자의 모습은 훨씬 더 정치화되고 사회화되어진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오히려 공자의 개인적인 인격, 품격을 드러내는 것은 장자가 아니냐는 재미난 논문이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읽어보면서 그 설을 강력하게 주장하게 됐는데. 그래서 제가 쓴 논문 제목이, 「장자, 진유가 된 한 사이비의 역사」 장자는 본래는 사이비에요. 후대의 유학자들의 평가에 의하면. 하지만 실제로는 부정적인 유가에 대한 비판 담론으로 장자를 빗대가지고 유가를 비판하거든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진정한 유가라고 하는 이상한 은유적 방식으로 이용이 돼요. 그래서 그와 같은 방식의 맥락을 고려하면서 사실은 노장 전통이라고 하는 체계는 그런 방식으로 장자를 해석하고, 뭐라고 해야 하나요. 친근한 방식으로. 적어도 수용적인 방식으로 장자를 읽어내려고 했던 전통이 노장전통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런 모습이 한국에 가장 강하게 살아남아있습니다. 그러한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한석범 선생이나 유영범 선생의 해석이 나올 수 있었던 거거든요. 중국이나 일본하고 비교해 보더라도 상당히 다릅니다. 자 계속 읽어보죠. 그리고 여기 ‘왕’이라는 표현은 사람의 으뜸이란 뜻이다. 왕도 사람이란 뜻이에요 거꾸로 읽으면. 그렇죠? 즉 왕은 결코 초월적인 존재라고 하는 위격을 갖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더 재밌는 얘기가 맨 마지막에 나와요. 왕은 크게 되고자 하지 않더라도 역시 크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세 가지 큰 것, 즉 도·천·지와 필적할 만하다. 그래서 ‘왕 또한 크다’라고 한 것이다. 사대라고 했는데도 이 사람은 세 가지 큰 것이라고 얘기했죠. 그러면 일차적으로 사대가 아닌 거죠. 달리 말하면 당신은 이제 하늘과 땅과 동격이 아니야. 하지만 일반 우리 사람들하고 똑같지는 않은 것 같아. 그러니까 크다고 해 줄게 이정도의 논의입니다. ‘사대’란 도·천·지·왕을 가리킨다. 대저 어떤 것에 명칭이 있으면, 그것은 궁극적인 것이 아니다. ‘도’라고 말하면 이미 그것에 말미암음이 있게 된다. 다시 말해 말미암음이 있고 난 연후에 그것을 ‘도’라 일컬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도’는 명칭할 수 있는 것 중에서 ‘큰 것’이다. 이것은 언어 문자로 지칭할 수 없는 무칭의 큼이 아니다. 일컬을 수 없으며, 이름할 수 없는 것을 말하여 노자는 ‘역’(域)이라 한다. 도·천·지·왕 이 네 개가 모두 실제로는 일컬을 수 없는 영역 속에 있는 것이기에 『노자』에서는 ‘역 속에 사대가 있다’라고 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군주의 자리에 처하는 것의 큼을 말한 것이다. 자 이거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입니다. 유가 정신이 확장되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제왕론과 유가의 성인론의 차이는 뭐냐. 제왕은 그가 곧 도이고, 존엄한 자예요.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성인은 그가 성인다운 인격을 구현하지 못했을 때 그는 성인이 아닐 수 있어요. 대통령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아무나 올라가는 자리가 아닐 수가 있다.’ 라는 의식이 들어있는 겁니다. 이런 의식이 개화해 나가면 왕필시대 이후에 왕이 꼼짝하지 못하는 시대로 전개가 되요. 하지만 왕필 당시에는 황제 자리에 대한 상당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왕필에 대해 전에도 한 번 말씀 드렸었죠. 조씨, 조위 정권 출현에 상당히 공헌을 했던 집안 출신이고, 왕필 당시만 가도 이미 반역자의 자손이라는 좋지 않은 과오가 있기 때문에, 명문 귀족이지만 조직 내에서 어느 정도의 우선권, 기득권을 상실한 위치에 있던 사람이에요. 나중에 이 사람이 벼슬자리에 나가려고 작업을 꽤 많이 했었는데, 결국 저 쪽 파에서 다른 사람을 추천하는 바람에 거기에 끼지 못하고 훨씬 말단 관직으로 가요. 그리고 249년에 쿠데타가 일어나게 되면서 25살에 요절을 하게 됩니다. 사마씨가 정권을 찬탈 하게 될 때 죽는데, 이 사람이 정치적인 박해에 의해 죽었는지 기록처럼 병사에 의해 죽었는지. 아마도 커다란 좌절로 인한 스트레스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자, 이 속에서 읽을 수 있는 것. 여기에는 몇 가지 미묘한 장치들이 있습니다. 즉 왕이라는 위격을 어디에다 둘 것인가라는 고민이 여기에는 보입니다. 자, 한 대까지만 해도 계속 왔다, 갔다 합니다. 예를 들면 동중서라는 사람이 왕권을 크게 격상시켜 놓은 것 같지만, 사실 동중서라는 사람에 비해서 당시 이른바 참위에서 얘기하는 황제권이라는 것은 초월적인 왕권의 부활을 얘기해요. 한 가지 부연하면 전국 시대에 갑자기 신화적인 문헌들이 대거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런 초인적, 신과 관련된 용어 들이 마구 쏟아진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당시에 다양한 곳곳에 할거 하고 있던 제후들이 자기를 천하의 패자, 혹은 천하의 치자로서의 왕의 위치까지 격상시키기 위한 이른바 이데올로기 조작의 운동과 관련이 아니냐.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가장 성공한 신화가 바로 황제 신화라고 합니다. 이런 해석은 중국 신화를 해석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많이 얘기되는 부분이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춘추시대의 문헌들에 비해서 시경, 서경, 춘추좌전 이런 텍스트들에 비해서 그 후대에 출현하는 텍스트들에 훨씬 고대의 신들에 대한 표현이 많이 나와요. 그런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로써는 상당히 유사합니다. 한대도 마찬가지도 황제권의 초월성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한 새로운 담론이 바로 참위사상 같은 것들이 나오죠. 그러한 자리가 이제 이른바 한나라가 망하고 후한시대에 등장하고, 특히 그런 것에 대한 거부감, 바로 그것이 금문과 공은서의 논쟁과도 관련이 있었다고 했죠. 금문에서는 그런 요소가 상당히 강했지만 공은파는 상당히 합리적인 정신을 소유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리고 공은파의 후예가 바로 왕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1장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할 때, 지사조용이라는 표현이 나오게 된 배경은 설문에서의 한자에서 분류용어라고 했죠. 그래서 그것이 우주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본체론적인 차원의 논리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언어적인 즉 의리적인 차원의 논의로 도에 관한 논의를 바꾸게 된 배경 자체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거기서 말하는 ‘도’는 오경 속에 들어있는 공자의 도를 얼마나 제대로 체득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로 논의의 차원을 바꿨다. 따라서 그 세계 속, 왕필의 세계 속에서 논의 되는 ‘왕’은 의리가 지배되는 세계 속의 왕이에요. 달리 말하면. 도가에서 말하는, 하상공이 말하는 제왕은 천지라고 하는 우주론적인 차원 속에 존재하는 왕입니다. 그러니까 논의 하는 차원 자체가 상당히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죠. 그럼 우리들의 시각에서 볼 때 어떤 논의가 훨씬 건전한 것인가. 또 오늘 날 우리들에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더 큰 것은 어느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인 듯싶어요. 이런 얘기를 한 번 더 나아가서 보면, 노자에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25장에 나오는 구절을 왕필은 이렇게 해석 합니다. 여기서 ‘법’(法)은 ‘본받는다’는 뜻이다. 사람은 땅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기에 온전하게 편안함을 얻는다. 이것이 곧 ‘땅을 본받는다’는 것이다. 땅은 하늘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기에 온전하게 만물을 다 실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하늘을 본받는다’는 것이다. 하늘은 도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기에 온전하게 만물을 덮을 수 이는 것이다. 이것이 곧 ‘도를 본받는다’는 것이다. 도는 본래 그러함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본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본래 그러함을 본받는다’는 것은 모난 데에 있으면 모남을 본받고, 둥근에 있으면 둥근 것을 본받는 것이며, 본래 그러함에 어긋남이 없음을 말한다. ‘본래 그러하다’는 것은, 말로 할 수 없는 데에서, 그 극을 다했을 때 나온 말이다. 지혜를 쓴다는 것은 지혜가 없음에 미칠 수 없고, 구체적 형체는 추상적 이미지에 미칠 수 없고, 추상적 이미지는 ‘무형’에 미칠 수 없다. 격식이 있는 것은 격식이 없는 것에 미칠 수 없다. 『노자』의 이 구절은 차원을 바꾸어가면서 본받는 것을 말하고 있다. 도는 본래 그러함을 따르기에 하늘은 그로 인하여 도에 말미암고, 땅은 하늘을 본받기에 사람은 그로 인하여 땅을 본뜨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차원을 하나로 관통하는 주체는 사람이요, 사람의 으뜸인 왕이다.
의리의 세계이기 때문에 여기서 왕은 바로 그러한 의리를 천지세계 속에 살아가는 인간이 천지 안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의리의 상징으로써 왕이 있다는 뜻이고 그 왕은 자연의 도리를 적극적으로 본받고 참여하는 정신입니다. 그래서 왕필은 이와 같은 방식의 포섭을 바로 주역의 논리, 대인의 논리로 바꿔가면서 왕필이 말하는 성인은 왕이지만 주역에 나오는 대인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주역에 나오는 대인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에 문제가 있는 거죠. 그래서 왕필이라는 사람이 꿈꿨던 정치가 무엇인가를 엿볼 수 있어요. 여러분들은 갑자기 이 부분을 읽었으니까 도대체 제가 말하는 이유가 바로 처리가 안 될 거예요. 왕필이 제일 처음에 『노자』의 주석을 하고, 그 다음에 『주역』에 주석을 하고 마지막 주석을 했던 텍스트가 『논어』입니다. 『논어』에 대해서 『논어석의』, 즉 논어 중에서 가장 어렵고 의심되는, 회의적인 부분들을 풀이해 본다는 뜻의 책을 지었는데. 그 가운데 공자가 이런 말을 해요. “나의 도는 일지관지했다.” 라는 표현을 쓰죠. 그리고 공자가 나가니까 증자가 “충서(忠恕)일 뿐입니다.” 라고 하면서 충서로 해석을 하죠. 여기서 한 가지 미묘한 게 있어요. 왕필 시대에는 충(忠)자를 쓸 수가 없다고 했죠. 왜그랬냐. 조위정권이 강제로 헌하게 했기 때문에, 선양. 헌재가 왜 헌재라고 그랬죠. 자신의 황제의 자리를 조비에게 바쳤기 때문에. 그것이 시호가 헌재인 까닭이라고 했죠.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조비 입장에서 보면 물론 한나라에서 벼슬 안하고 위에서 벼슬을 했죠. 조조에 뜻에 따라. 조조는 한나라의 신하 역할을 했기 때문에 받으면 반역자가 되기 때문에 정치적 정통성을 유지할 수 없어요. 그래서 자신의 자식에게 승계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가동한 겁니다. 가동하는 가운데 프로그램도 바꾸고. 그런데 조비는 억지로 협박해서 선양을 받았죠. 그리고나서,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이미 그의 치세가 한나라랑 연속됐지 않습니까. 위나라, 그 뒤를 이은 진나라에서는 충을 쓸 수 없어요. 황제가 불충한 자인데 누구에게 충을 요구합니까. 그래서 만적이나 해강 같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할 때 죄명이 ‘불효(不孝)’죄에요. 그리고 이 당시에 효경 같은 텍스트가 엄청나게 권장 된 거죠. 우리는 효경하면 ‘부모님 모시기 위한...’ 이런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텍스트라는 거죠. 물론 그 내용 자체에 의미 있는 당시의 문화적인 부분들이 나타나 있고, 계승할만한 것들이 많긴 하지만, 그런 텍스트를 어떤 방식으로 읽고 권장하느냐의 논리는 당시의 정치 사회적 맥락과 직결된다는 거죠. 자 그런데 왕필은 일이관지를 해석할 때, (증자의) 충서라는 부분을 빼요. 그래서 서(恕)가지고만 얘기해요. 이거는 지난번에 정해인간학이라는 부분을 말씀드리면서 얘기했죠. 이 서라고 하는 것이 공자가 말한 가장 원리적인 우주의 마음이라고 왕필은 해석합니다.
우주가 돌아가는 마음이 바로 서(恕)에요. 이 서는 달리 말하면 자연(自然)입니다. 그리고 이 서가 드러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 ‘자효(慈孝)’예요. 왕필이 해석한 부분에서 드러는 용어에요. 이 자효를 자연이라고 해석합니다. 부모가 자식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길러주는 것.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발로이고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자식이 부모에 대해서 보답하고 부모를 모시게 되는 효는 자연스러운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왕필에게는 효제, 자효는 자연의 영역에 포함된 거고 자연의 기재는 마음속에 들어있는 건데 이 마음이 우주의 정신이고, 인간의 이(理)에 해당하는 겁니다. 인간의 궁극적 리라기 보다는 ‘자연 지리’라고 했죠. 왕필 속에서는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라는 자연지리라는 말이 왕필에게는 많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하느냐, 리서(理恕)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즉 서의 감정이 하나의 궁극적인 원리.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런 리서라는 표현을 보고 왕필이야 말로 송대 신유학의 개조 혹은 선구자라고까지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고, 저도 거기에 동조합니다.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해석을 하면 이야기가 판이하게 달라져요. ‘본래 그러함을 본받는다’는 것은 모난 데에 있으면 모남을 본받고, 둥근 데에 있으면 둥근 것을 본받는 것이며, 본래 그러함에 어긋남이 없음을 말한다. 이 얘기는 뭐냐면, 순자에게 있어서. 순자는 한 대의 유학을 지배했던 패러다임입니다. 순자라는 사람에게 있어 예(禮)는 모성이에요. 인간에게서 자연스럽게 발출되는 감정을 어떤 방식의 모양새를 줄 것인가. 그 모양새를 가장 바람직하게 준 것이 바로 예라고 얘기하거든요. 따라서 예라는 것은 인간의 몸속에, 우주의 순리이기도 하고 우주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내 몸을 통해서 발현되는 자체를 얼마나 적절하게 당시 상황에 맞춰서 하는가를 좋은 것을 뽑아 형식화한 것, 코드화한 것이 바로 예에요. 그런데 이 예학 자체가 엄격한 규범체제, 심지어는 법적인 체계로 가서 강제성을 띄게 되면 곤란하다. 즉 자연성을 위배하는 것이라는 논리가 나오는 거죠. 이 논의가 왕필의 논리와 비교해 보면 우리가 사회 속에서 아름답다고 보는 제도나 바람직한 사회의 모델이라고 보는 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 자효의 감정이 어떤 방식으로 그 당시 상황에 적절한 방식으로 드러나게 할 것인가”가 예의 정신이 되는 거지 예가 있으면 예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어진사람, 선량한 사람, 재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리서라는 것, 예가 아니라, 예를 통해서 인간을 평가하고 움직일 것이 아니라 이 리서 그리고 그 실질 내용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자연스러운 감정 자체가 본성에 어긋나지 않는 방식으로 예 자체를 변화케 해야 한다. 이런 방식의 논리는 중국 유학사에서 계속 반복되는 얘기에요. 리서, 이와 같은 내용을 제대로 담고 있는 것은 누구 밖에 없겠습니까. 공자 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여기에 공자 속에는 없었던 새로운 해석, 즉 자연이 들어가고 자효가 들어가는 것은 심성론의 출현입니다. 즉 맹자적인 심성론의 부안이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왕필의 논어에서 유가 해석 속에는 맹학의 대두라고 하는 독특한, 당시에 맹자의 주석서가 처음 출현하기도 하죠. 그러니까 전한 시대 후한 시대가 이른바 순자 계열의 유학의 시대였다면 이것이 후한시대를 거치고 고문학이 흥리함에 따라서 맹학의 심성론 적인 접근이 드러나고 왕필과 같은 사람을 통해서 이와 같이 드러나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그린비 출판사에서 맹자에 관련된 책이 나왔는데, 제가 맹자에 대해서 얘기하려는 방식의 것들을 아주 적절한 예와 관계들을 통해서 잘 서술하고 있어서 아주 저도 재밌게 읽고 있는데 무슨 얘기냐면 제왕이라는 것은 아무리 좋은 비유를 쓰다고 해도 어디까지 가능하냐면 태양이에요. 비유하자면. 그러면 유학에서 말하는 성인은 잡초 뽑아주고 물주는 농부예요. 너무 제가 딱 정의내린 것 같지만. 일단 유학에서 말하는 것은 숫자가 많잖아요. 재상 한 사람이 아니라 재상 한사람을 상주면 신하 전체를 얘기하는 거니까 하지만 제왕은 오직 하나입니다. 나머지는 없어요. 나머지 모든 세력은 제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방편일 뿐이에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