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7

Namgok Lee | 크릴의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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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2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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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릴의 공자 15장 ‘유교와 서구민주주의’를 읽고 있다.

근대 서양에 중국의 유교를 전한 것은 예수회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선교 목적으로 중국에 가서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중국의 전통 사상과 접했고, 그것을 서양에 전했다.
원래 목적인 선교의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근대 서양에 중국의 사상 특히 공자 사상을 전한 가교 역할을 한 것이야말로 그들이 역사에 남긴 큰 공적이었다.
일부를 발췌 소개한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선교 목적의 수행을 위해 “주자철학(신유학)과 공자 도덕철학을 결합하고 있는 긴밀한 유대를 파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예수회 선교사들이 서신을 통하여 그토록 열광적으로 유럽에 보고한 유교가 17,8세기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된 정통 유교가 아니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흔히 신유교라고 불리는 그 정통유교는 복합적인 학설로서 공자사상을 구체화시킨 점도 많지만, 불교의 요소를 받아들인 정교한 형이상학적 철학체계이다. 그러므로 공자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으며 예컨대 볼테르 같은 유럽인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얻을 수도 없었거니와 명석하고 비판적인 정신을 가진 예수회 선교사들의 마음을 끌지도 못하였다. 더욱이 그들은 독자적인 형이상학체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유교 경전을 연구하면 할수록 당시 유행하고 있는 철학이 원시 유교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어떤 개종자는 유교를 배신하였다는 비난을 받자 자신은 전혀 그런 일이 없으며 ‘후세 유가들’의 ‘왜곡된 유교’보다는 가톨릭 안에 공자의 가르침과 더 가까운 교의가 있음을 발견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마테오리치의 말이다. “이  책(유교경전)들을 모두 주의 깊게 조사해보면 이성의 빛과 상반되는 것은 거의 찾을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과 조화되는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이 책들은 서구 어떤 철학자들의 저술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요점을 정리해보자.
중국철학은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유럽에 소개되었으며 그들이 주로 보고한 것은 그들이 최선으로 생각한 것 즉 공자 개인의 사상과 초기 유교 사상이었다. 이 철학은 성격상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영향을 가졌기 때문에 다른 세상에서 온 혁명의 복음처럼 환영받았다. 그러나 얼마 뒤에 유럽인들은 유교의 후세 형태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군주권의 목적에 봉사하도록 공자 철학의 일부를 전도시킨 것이었다. 동시에 그처럼 높이 찬양되었던 중국정치에는 적어도 전제정치의 특성이 실제로 많다는 것이 강조되었으며, 실제 중국 예찬자 가운데는 전제정치의 모범으로 중국을 찬양한 사람도 있었다. 공자의 덕성도 중국정치의 미점도 모두 예수회 선교사들이 선전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발명한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와 동시에 예수회 선교단도 철저하게 불신되었기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추방된 끝에 1773년 교황의 명에 의해 해산되었다.  환상은 철저히 깨졌으며 ‘중국의 꿈’은 사라졌다. 18세기 서양은 중국에 대한 관심과 존경이 그처럼 높았지만, 18세기 말 이래로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없었다.
이 일련의 기이한 사건 결과 프랑스혁명이나 미국혁명의 배경을 추적하는 사람 가운데 많은 사람이 중국사상이 민주주의 철학의 성장에 기여한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게 되었다.>
선교 목적으로 중국에 간 예수회 선교사들이 동서 문명의 가교 역할을 한 것과 같은 일들이 원래의 선교 목적보다 더 큰 역사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일들은 긴 역사를 볼 때 너무나 많다.


Namgok Lee
17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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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가페 정원!!!


Namgok Lee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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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릴의 공자를 읽고 있다. 
제14장 승리(勝利)의 일부분을 발췌한다.

“한무제(漢武帝)의 치세(유교의 왜곡) 이후 약간의 기복은 있었지만, 유교는 정부의 후원을 계속 받았으며 때로는 너무 지나칠 정도의 지원을 받기도 하였다. 그 결과로 유가를 자처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의 요구에 어느 정도 부응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유교는 때때로 백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고, 때로는 백성을 억압하는 데조차 이용되었다. 어느 시대건 정부가 학문을 후원하면 사상의 표준화 경향이란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한무제 같은 황제들이 유교를 후원함으로써 유교를 지배하려고 노력한 것도 결코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누가 누구를 삼키느냐?’는 것은 긴 역사의 안목으로 봐야 한다.
정치에 끼친 유교의 영향은 시대에 따라 강도가 달랐지만, 그 영향은 구석구석 스며들었고, 대체로 민주주의라고 할만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정부란 백성의 만족과 복리를 위하여 존재하며 그 책임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 비판은 물론 전복되는 것조차 당연하다는 이론이 2천년간 이처럼 일반화되었던 대국(大國)은 아마 유례가 없을 것이다.
민주정치를 위한 공자의 출발은 괄목할만한 것이었지만, 그 후 그가 제시한 원리에 추가된 것도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그 원리 자체도 충분치 못하였다. 민주정치가 효과적으로 구현되려면 일반 백성들이 군주를 선택하는데 효과적인 발언권을 가져야하며 이 목적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창출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이것이 발전되지 못하였으며 다른 곳에서 이것이 성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는 이와 관련하여 흥미있고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이 문제를 고찰하려면 유럽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제 15장 유교와 서구 민주주의)”
마르크스 주의는 러시아 혁명 과정과 만나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변모하면서  한 때 세계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작동하였으나 70년을 넘기지 못하고 그 생명력을 잃었다, 중국에 와서는 중국의 현실과 만나 변모하였다. 마오쩌뚱, 덩샤오핑을 거쳐 시진핑에 이르고 있다. 
유교의 2천년 역사에 비하면 중국 공산당의 역사는 짧은 것이다.
요즘 공자를 들어올리고는 있지만, ‘누가 누구를 삼킬 것인가?’라는 크릴의 흥미로운 질문 앞에 서게 되는 것 같다.
☆ 7년전  아시아 경제신문에 유학의 왕초보가 '시진핑 주석에게 보내는 공자의 메시지'를 써봤군요.
이진홍님의 댓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진홍
https://cm.asiae.co.kr/article/2016113013282113027
[이남곡의 인문의 창]시진핑 주석에게 드리는 글(3)
CM.ASIAE.CO.KR

[이남곡의 인문의 창]시진핑 주석에게 드리는 글(3)
입력2016.12.01 


국가는 인간과 사회의 진화를 가로막는 직간접의 범죄와 부정과 부패를 제거하는 가장 강력한 기구입니다. 개방을 하고 자본주의를 도입하면 덩샤오핑(鄧小平)의 말대로 창(窓)을 열면 파리 모기와 온갖 벌레가 함께 들어오듯 여러 부정적 현상들도 나타나게 됩니다. ‘부패와의 전쟁’이라는 말을 할 정도의 시 주석의 노력을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지향하는 이상만은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 또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들입니다. “법제로 다스리고 형벌로 질서를 유지하면, 인민들이 형벌을 면하는 데 급급하여 부끄러움을 모를 것이다. 그러나 덕으로 다스리고 예로써 질서를 유지하면 부끄러움을 알고 바르게 될 것이다.”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제2편 위정)


“송사를 듣고 판결을 함에는 나도 다른 사람과 같으나 반드시 송사가 없도록 해야 한다.”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제 12편 안연)


위의 구절들은 국가와 정치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고금을 통해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최고 최선의 인권 보장은 좋은 정치와 좋은 제도입니다. 그러나 범죄자의 인권 보장을 포함한 근대 서양의 형벌 제도에 대해서는 진지한 검토와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철저히 보장하는 것은 오래된 동양의 이상주의에 더 부합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목적을 가진 당(黨)이나 국가일수록 그 절차나 과정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남곡의 인문의 창]시진핑 주석에게 드리는 글(3)


물론 저 같은 촌부(村夫)가 짐작할 수 없는 많은 고충이 거대한 국가를 경영하는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충분히 존중합니다만,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자본주의 국가의 불평등이나 차별 같은 실질적인 수많은 합법적인 인권침해보다 오히려 중국의 정치범 탄압이나 범죄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이 더 이슈화되는 것에서 하루 빨리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 시 주석님,


마지막으로 민족문제와 새로운 문명에 대해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중국은 광활한 영토와 55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그 자체로 세계국가입니다. 미국이 이민(移民)에 의해 몇 백 년 동안에 인위적으로 형성된 세계국가라면, 중국은 수천 년의 역사, 수많은 분열과 통일을 경험해 온 세계국가입니다.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 이후로 '이념의 종언'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불완전한 정치 이데올로기로서의 사회주의를 이념이라고 하면 성립하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이념을 '우주 자연의 리(理)에 부합하는 인간의 관념'으로 해석한다면, 그런 이념의 시대는 온 적이 없습니다. 이제 와야 합니다.


중국에게는 패권다툼이라는 현재의 세계질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의연히 대처해야겠지만, 그 힘의 원천은 내부에 진정으로 리(理)에 바탕을 둔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권력은 총구(銃口)에서'라는 말은 지금까지의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는 맞는 말일지 모르지만, 진정으로 새로운 질서는 '이념'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공자와 제자의 대화입니다.


"위나라 임금께서 선생님께 정치를 맡기신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하시겠습니까?"
"반드시 명(名)을 바로 세울 것이다."子路曰, 衛君 待子而爲政 子將奚先 子曰, 必也正名乎


이 '정명(正名)'을 여러 가지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정하지 않음'은 공자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정명' 또한 고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시대정신을 가장 바르게 실현할 수 있는 종합철학을 세우는 것'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정명'은 진정한 의미의 '이념'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이제 인간과 자연 ·인간 상호간·물질과 정신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 것이 우주 자연의 '리'에 부합하는지가 엄청난 파국적 위기와 함께 근원적으로 물어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중국 공산당이 진정한 이념정당으로 진화하여 민족문제를 원활하게 해결함으로써 미래에 도래할 세계정부의 모델을 만드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 여러 민족의 자치와 분권을 최대한 확대하면서, 동시에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협력 통합하는 실험은 중국 같은 나라가 아니면 어려운 일입니다.


동시에, 지구적 인류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지금의 소비와 소유 중심의 문화를 정신적 예술적 가치나 욕구가 증대되는 생태적 삶의 문화로 전환하는 새로운 문명의 선두에 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현실에서 더욱 절실한 요구로 됩니다. 8500만명의 중국 공산당원들이 이런 문명적 전환을 시도한다면 인류에 대한 최대의 기여로 될 것입니다.


과거 혁명 시기의 '조사 없이는 발언권 없다'라는 실사구시의 전통을 넘어, '생활 없이는 발언권 없다'는 자각이 중국공산당의 자율적 문화로 자리 잡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화혁명의 길입니다.


존경하는 시진핑 주석님,


저의 글을 이제 마치려 합니다. 너무 잘 아시고 실천하고 계시는 것들에 대해 촌부의 중언부언을 너그러이 받아들여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중국과 중국 인민을 사랑하고, 시 주석의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에서라는 것을 헤아려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