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4

해방철학과 마르크스의 만남은 무엇을 낳았는가  - 엔리케 두셀과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 -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해방철학과 마르크스의 만남은 무엇을 낳았는가 - 엔리케 두셀과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 -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해방철학과 마르크스의 만남은 무엇을 낳았는가 - 엔리케 두셀과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
전지윤 |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
승인 2021.08.09






“저는 앞서가는 예언자가 아니라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하도록 그것을 밝혀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삶 속의 경험을 보다 명확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론입니다.”

(엔리케 두셀Enrique Dussel, 2008년 방한 인터뷰에서)



아르헨티나 출신의 ‘해방철학’의 주창자이자 독창적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엔리케 두셀의 저서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를 읽는 것은 그렇게 만만하고 수월한 경험은 아니다. 다루는 내용 자체가 추상 수준이 높은 이론들이고, 문장도 친절하거나 대중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두셀은 철학, 역사학, 교회사, 신학, 윤리학 등의 분야에서 무려 70권이 넘은 책을 쓴 지식인이고, 국내에서는 아직 그의 주된 저작들이 번역 소개돼 있지 않다.

이 책은 그의 사상과 이론을 종합적으로 잘 보여주는 책이기 보다는, 그가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무엇을 디딤돌삼아 어떤 궤적을 밟아 나갔는지 일부분을 보여주는 책이다. 처음에 소개한 인터뷰에서 두셀은 자신의 작업이 ‘예언이 아니라 삶의 경험을 뒤따라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 책뿐 아니라 그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그가 삶 속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물론 이것은 모든 사상가에게 적용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의 삶과 사상적 궤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것은 바로 1968년의 세계적 반란이다. 신학, 철학, 현상학, 해석학을 탐구하던 그가 본격적으로 고민을 확장하게 된 계기가 바로 ‘68년 반란’이었기 때문이다. ‘68년 반란’은 물론 주로 프랑스 등 서유럽을 중심으로 맹렬하게 불타올랐지만 라틴아메리카도 예외는 아니었다.

두셀의 모국이던 아르헨티나에서도 1969년 코르도바에서 학생 투쟁이 분출했고, 이것이 두셀과 같은 지식인들에게도 강한 영향을 끼쳤다. 두셀은 ‘해방신학’의 영감을 이어받고 확장하면서 ‘해방철학’을 발전시켰다. ‘해방신학’이 교회를 기반으로 했다면, ‘해방철학’은 대학을 기반으로 했고, 모든 억압받는 자들의 입장에서 저항의 철학을 발전시켰다.

물론 해방신학과 해방철학 모두 유럽과 미국에 의한 침략과 학살, 정복과 식민지배를 겪은 라틴아메리카의 처절한 역사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해방신학과 해방철학은 1968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모두 그 출발점은 종속이론이며, 독재에 대항한 민중의 참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두셀의 2008년 방한 인터뷰에서) ‘해방철학’은 미국과 유럽의 시각을 벗어나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주변부에서 가난하고 억눌린 빈민, 여성, 소수자, 원주민들의 연대와 해방을 추구하는 철학이었다.

“타자로 취급받는 무가치한 인간을 해방시켜라!”, “억압받는 자들을 지금, 여기에서 해방시켜라!”, “배제된 자들을 참여시켜라!”라 그들의 구호였다. 두셀은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타자의 수용과 환대’의 윤리학, 위르겐 하버마스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의사소통행위 이론 등을 접목하고 비판적으로 극복하며 ‘해방철학’을 발전시켜 나갔다.(<해방철학 선언문>이 발표된 것은 1973년이고, 두셀이 『해방철학』을 출판한 것은 1977년이다.)



해방철학과 새로운 발전

아르헨티나가 폭압적인 군부독재 시절로 들어서면서 대학에서 추방당하고, 정치적 테러와 폭력의 위험 등을 피해서 1975년 멕시코 망명한 두셀은 그 시기를 전후로 해서 사유를 더욱 급진적으로 확장해 갔다. 그 시기 아르헨티나의 많은 지식인들이 군부에 굴복하거나 문화 연구 등으로 시야를 좁혀간 것과는 대조적인 일이었다.

특히 그가 1980년대 10년간 마르크스의 저작, 원서, 초고 등을 철저하고 엄밀하게 탐구하며 독해한 것이 이러한 급진적 발전과 확장의 주요 동력이었다. 그는 당시에 아직 제대로 소개되거나 번역되지 않았던 마르크스의 초고를 직접 읽기 위해서 독일까지 찾아갔다. 이런 탐구는 그의 사상을 더욱 급진적이고 풍부하게 했다. 그 결과가 ‘해방철학’을 넘어서 『해방윤리』(1998), 『해방정치I』(2007), 『해방정치II』(2009)라는 주요 저서의 출판으로 이어졌다.

사상적 발전의 방향은 크게 봐서 서로 긴밀히 연결된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마르크스주의적 발전이다. 두셀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 방법과 이론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흡수하고 또 그것을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현실을 분석하는 무기로 이용했다. 특히 그는 ‘산노동의 외재성’이 마르크스적 자본주의 분석의 핵심이라고 주장했고, 종속이론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재해석하려는 도전에 나섰다.

둘째는 탈식민주의적 발전이다. 두셀은 유럽중심적 철학과 사상은 식민주의적 억압성을 피하기 어렵다고 봤다. 나아가 유럽중심적 ‘주체’가 추구하는 ‘근대성’ 자체에 의문을 던졌다. 거기에는 비서구의 식민지 피해자들과 여성, 소수자 등이 배제돼 있다는 것이다. 두셀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나는 정복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신랄하게 패러디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근대성에 대한 비판도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보다는 회의주의로 빠졌다고 지적하며 ‘트랜스모던’(transmodern)을 주장한다.

셋째는 두셀의 철학적 독창성이 드러나는 ‘초변증법’(Ana-Dialectic)이다. 여기서 ‘Ana’는 그리스어에서 비롯한 ‘넘어섬’을 뜻한다. 주어진 총체성(전체성)을 ‘너머서’는 새로운 지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존의 변증법이 타자와의 끝없는 투쟁을 강조하며 총체성(전체성)을 옹호한다면 ‘초변증법’은 그것을 거부하며 ‘타자의 외재성’을 바탕으로 배제가 아니라 열린 논리를 추구한다는 게 두셀의 주장이다.

두셀의 고민과 사유는 근래 생태학적 위기에 대한 사고로도 확장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두셀의 사상은 이러한 궤적과 발전을 포괄하면서 소개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앞서 봤듯이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는 그가 1980년대 10년간 철저하고 엄밀하게 마르크스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1988년에 첫 출간된 이 책은 그가 마르크스의 『1861~63년 초고』를 꼼꼼하게 읽으면서 인용, 해독하며 개념적이고 이론적인 주석을 단 내용이다.

두셀이 텍스트 삼은 『1861~63년 초고』는 『자본』의 두 번째 초고이면서 나중에 <자본>1권과 3권, 그리고 『잉여가치론』(또는 ‘잉여가치학설사’)으로 발전하게 된 초고이다. 이 초고는 그동안 우리가 직접 읽어보기 어려웠는데, 마침 올해 5월부터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의 한국어판 출판이 시작되면서 기회가 열리고 있다.(『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 1861~63년 초고 제1분책/제2분책』, 칼 마르크스, 길, 2021)

이런 점들을 볼 때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를 통해서 우리가 두셀 사상의 다양한 측면과 발전 궤적을 충분히 살펴보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마르크스를 탐구하며 고민을 발전시켜 나갔는지, 그 과정에서 두셀 사상의 핵심적 내용들이 어떤 식으로 등장하고 있는지, 이후에 더 다듬어지게 될 가능성은 무엇인지 등이다.

추가적으로 보자면, 두셀과 함께 그의 눈을 통해서 마르크스가 『자본』으로 나아가는 사유의 과정을 같이 살펴볼 수 있다. 『1861~63년 초고』는 마르크스가 스스로 말했듯이 “형언할 수 없는 굴욕과 고통과 공포”을 견디고 “건강과 행복과 가족을 희생”하면서 정치경제학을 탐구하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이 땀과 눈물의 산물에 담긴 사유의 깊이를 같이 샅샅이 살펴보는 것은 의미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두셀의 사상적 궤적과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

그래서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에 담긴 내용도 여기서 모두 소개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지 않다. 따라서 인상적인 부분 세 가지만 짚어보겠다. 먼저 두셀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본은 스스로 균열하고 지양하는 총체가 아니고 산 노동이라는 외부의 실존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산 노동’은 모든 가치를 생산하는 “창조적 원천”이며 “산 노동의 ‘외재성’은 마르크스의 담론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 제약조건”이다. “마르크스 이론의 핵심 개념은 외재성(산 노동이 있는 영역)이지, 총체성이 아니다”라는 게 두셀의 주장이다.

나아가 두셀은, 노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노동계급(‘산 노동’)을 “기계장치나 짐 끄는 축생이나 상품과 동일한 수준”에 두는 리카도나 아담 스미스를 “노동자의 인격 또는 주체성이 갖는 절대적 지위”를 보여주는 마르크스와 대비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결정적 차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결국 리카도와 스미스는 노동과 노동력을, 이윤과 잉여가치를 구분하지 못했고, 자본주의의 핵심 동학을 설명하지 못했다.

둘째, 두셀은 마르크스, 레닌, 룩셈부르크, 헨릭 그로스만, 로만 로스돌스키 등의 논의를 검토하면서 종속이론의 마르크스주의적 재해석을 제시한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에는 생산성이 높은 중심부 나라들과 생산성이 낮은 저발전 주변부 나라들이 있고, 중심부 나라들은 초과이윤을 누리고 주변부 나라들은 이윤손실을 본다. 따라서 “주변부 나라들로부터 중심부 나라들에게로의 잉여가치 이전”이 종속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개별 자본가들만이 아니라 국민들도 마찬가지로 교환에서 서로 균등하게 이익을 얻는 일 없이 계속 교환을 행할 수 있다... 한 국민은 다른 국민의 잉여가치 일부를 전하면서도 그것과 아무것도 교환해 주지 않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차용한다. 결국, 폭력, 전쟁, 강탈은 자본주의의 시작부터 종말까지 함께할 수밖에 없고 라틴아메리카의 경험처럼 그것을 잘 보여주는 곳도 없다.

셋째, 두셀은 알튀세르의 마르크스 해석을 비판한다. 알튀세르가 주장하는 ‘인간적이고 변증법적인 청년 마르크스와 과학적이고 유물론적인 만년 마르크스의 인식론적 단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대립’도 잘못된 구도이고 여전히 문제는 “물신화”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알튀세르가 생산양식을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총체와 동일시하거나 다양한 심급들로 편성된 자본 그 자체와 동일시하는 것”도 ‘해롭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구조주의적 해석은 “반유물론적 관념론”이라는 날카로운 비판이다.

두셀의 이러한 비판은 ‘68년 반란’ 전후의 ‘신좌파’의 등장과 정치적 상황의 변화라는 맥락 속에서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당시 활동가와 학생들 속에서는 기계적이고 생산력주의적인 마르크스 해석에 반대해서 인간의 의지와 행위를 강조하는 휴머니즘적 마르크스주의가 등장했고,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을 그 근거로 삼았다.

알튀세르의 마르크스 해석은 이에 대한 논박의 측면이 있었다. 그는 ‘이론적 반인간주의’를 선언하고 인간 주체보다는 ‘생산관계 구조들의 위치들과 기능들’을 더 중심에 놓았다. 마르크스의 후기저작에서도 외면하기가 어려운 ‘인간주의’적 요소는 빼고 과학적 요소만 “징후적 독해”를 하자고 했다. 이것은 ‘68년 반란’의 패배와 신자유주의의 득세 속에서 서구의 일부 지식인과 학계에서 나타난 경향의 반영이었다. ‘이론적 실천’과 ‘이데올로기적 담론 투쟁’의 특권화는 이들의 위치를 강화하는 효과를 냈다.

반면 경제적 참상과 정치적 독재로 뒤덮인 세계체제 주변부에서 두셀의 지적 경로는 달랐던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측면에서 두셀의 알튀세르 비판은 분명히 타당하다. 마르크스의 인간해방에 대한 신념과 주체적 실천에 대한 강조는 초기와 후기를 걸쳐 일관되게 이어지는 것이었고, 이것은 후기 저작인 『자본』뿐 아니라 그것의 초고들에서도 계속 확인되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기에 ‘인식론적 단절’은 설득력이 없다.



라틴아메리카의 투쟁과 두셀

사회는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 등 다양한 심급들로 구성돼 ‘중층결정’된다는 알튀세르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알튀세르는 ‘최종심에서는 경제가 결정’한다면서도 ‘최종심의 고독한 순간은 오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이런 구조주의는 사회변화와 그 동력을 설명할 수 없었다. 두셀은 이런 알튀세르를 반박하면서 “기계적 형태로 이루어지는 도구의 운동, 조작, 처리야말로 ‘생산양식’ 혁명의 물질적 본질”이며, 그 과정에서 ‘산 노동’에 대한 자본의 실질적 포섭과 ‘물신’이 구성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부터 우리는 두셀과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에서 몇 가지 아쉬움과 공백을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마르크스의 ‘생산양식’ 개념 자체가 엄밀하지 않다는 점에 대한 인식과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원시적, 봉건적, 자본주의적 생산양식만이 아니라 가부장적, 슬라브적, 아시아적 생산양식에 대해서도 말했다. 이것은 진화론적이고 유럽중심적이라는 비판만이 아니라, 개념적 엄밀함에 대한 의문을 낳아왔다. 이런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공납제 생산양식’의 개념을 도입하려는 마르크스주의자들도 있었다.

나아가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물질적 대상만이 아니라 인간 자체와 사회적 관계의 생산을 포괄하는 이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돌봄과 가사노동에 대한 페미니즘적 관점을 수용한 ‘인류학적 가치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산 노동’을 마르크스적 자본주의 분석의 핵심 개념으로 제시하는 두셀의 문제의식은 이런 고민들과 연결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본을 스스로 균열하고 지양하는 총체로 보는 것’의 문제가 변증법적 총체성의 논리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이것은 모순을 관념들 사이의 대립으로 보고, 역사를 ‘절대정신’에 의해서 해소되는 정해진 과정으로 보는 헤겔 변증법의 관념론과 숙명론에서 나타나는 문제일 수는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변증법은 물질적 관계에서 비롯한 모순을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의 의식적 행동과 실천을 통해 지양해 나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것이 요구하는 구체적 총체성이 과연 ‘초변증법’이라는 대안을 필요로 하는가.

나아가 『1861~63년 초고』 자체가 마르크스가 스스로 교정과 교열을 마친 출판을 위한 최종 완성본은 아니라는 난점도 외면할 수 없다. 이것은 재해석의 공간을 열어주면서도, 동시에 그 초고를 텍스트로 삼아서 펼쳐진 논의에 제약을 가할 수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두셀이 ‘해방철학’, ‘해방윤리’, ‘해방정치’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회변혁의 주체와 전략을 구성하며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고 실천과 연결하는지의 문제이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은 2008년 방한 당시에 라틴아메리카의 ‘핑크타이드’(브라질의 룰라,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등)에 기대와 지지를 보냈던 두셀이 그 역사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교훈을 이끌어 내는지, 오늘날의 전망과 과제를 어떻게 보는지 이다. 핑크타이드는 분명 성과와 함께 한계를 드러내 왔고, 그 한계를 비집고 등장한 반동이 지나가고 있는 자리에서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는 핑크타이드의 제2물결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뒤를 따라가며 길을 밝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설명하며 수많은 글과 책을 남겨온 두셀은 분명 이것에 대해서 해줄 말이 많을 것이다. 이번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 출판을 계기로 앞으로 그것에 대한 더 많은 소개와 논의를 기대한다.





글 · 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