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4

영적 안내로서의 복음 전도 - 다종교 시대의 기독교 영성과 선교의 새 방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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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영적 안내로서의 복음 전도 - 다종교 시대의 기독교 영성과 선교의 새 방향 (1)

10/16/14 고동원

고동원 목사는 실천 신학(Practical Theology) 분야에서 기독교 영성을 전공하고 2012년 5월에 보스톤 대학 신학대학원(Boston University School of Theology)으로부터 Ph. D. 학위를 받았다.

(논문 제목: A PRACTICAL THEOLOGICAL EXPLORATION OF CHRISTIAN EVANGELISM IN RELATION TO CONTEMPORARY CHRISTIAN-BUDDHIST DIALOGUE IN THE U.S.A.)

현재 호주 멜본한인교회의 담임목사로 일하고 있다.
이 글은 일반 독자들을 위하여 필자의 학위 논문 일부를 평이한 표현으로 풀어서 번역한 것임을 밝힙니다.

-편집자 주 -


I. 이야기 하나 : 하바드에서 미국 카톨릭 대학생이 한국 불교 선사를 만나다

제가 신학 박사 과정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가기 바로 전에 서울에 있는 카톨릭 대학교 의과대학 강의실에서 벽안의 미국 불교 승려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의 불교 이름은 '끝없이 심오한 깨달음' 이라는 뜻의 현각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는 한국 소백산 자락에 소재해 있는 현정사의 주지승이었는데, 전통적인 한국의 선불교 사찰의 주지승으로 임명된 최초의 서양인이었습니다. 그는 1964년에 미국 뉴저지주의 한 독실한 카톨릭 가정에서 태어난 폴 뮌젠(Paul Muenzen)입니다. 어린 시절에 로마 카톨릭교 성당에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사제가 되길 희망했었습니다. 하지만 카톨릭계 사립 학교에서 받은 교리적이고 구식의 기독교 교육에 대해 점차 회의적이고 비판적이 되어 갔습니다. 그는 예일 대학을 다녔는데, 그가 거기서 열정적으로 추구한 진리를 제도권 기성 교회 안에서 찾을 수 없었고 나중에 그 진리를 찾을 목적으로 하바드 대학 신학 대학원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하바드 대학교는 기독교 성직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이1636년에 설립한 미국 최초의 대학인데, 1989년 12월 어느 날 젊은 폴이 한국인 숭산 선사 를 우연히 만난 곳이 바로 유서깊은 이 대학이었습니다. 그는 그 때를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 스님의 설법은 세련되거나 복잡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간단하면서도 심오했습니다. 그는 학문적인 스타일의 강의나 설법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불교 철학에 대해서도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이 질문을 했습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로 이 나는 사고/생각에서 온 것입니다. 그럼, 이 사고/생각은 어디서 옵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태어났을 때, 어디서 왔습니까? 죽어서는 어디로 갑니까? 많은 교수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청중들은 그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힌트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앎은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이 하바드 대학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들을 수십번 읽었을지라도 여러분은 자신의 참 자아를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스님의 질문에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숭산스님)가 제게 준 답도 역시 직접적인 답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다음과 같이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 모르겠다는 초심을 가지고 정진, 정진 그리고 또 정진하십시오."
숭산 스님의 영적 지도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폴은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불교 수행자가 되기를 "선택했고" 미국과 한국에서 열정적으로 참선을 수행했습니다. 그럼, 그는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포기한 것이었습니까?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저는 공식적인 기독교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불교의 영적인 길을 걸어가면 갈수록 예수님 복음의 진정한 의미를 더욱 더 깊이 깨닫고 제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수행을 통해 예수님의 길을 따르고 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침내 그는 1992년에 중국 남부에서 계를 받았고, 한국에 있는 통도사의 금강계단에서 비구계를 받았으며, 3회의 100일 집중 단독 안거 그리고 약15회의 3개월 집중 그룹 참선 안거를 포함해 깊은 산중 동굴 여러 곳에서 수행해 왔습니다. 그의 자서전인 '만행: 하바드에서 화계사까지'가 1999년에 한국에서 출판되었고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한국과 해외에서 한국 선불교 포교에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은 물론 기독교-불교간 대화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불교가 미국에 전파됐을 때 공백 상태나 텅빈 공간에 상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국 문화의 유대교-기독교 뿌리는 아직도 미국인들의 삶 안에 살아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그 신앙의 뿌리는 제도화된 종교에 대한 깊은 불만으로 인해 다만 숨겨져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종교적인 맥락에서 우리들은 폴의 스토리를 통해 새로운 종교적 현상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서구 사회에서 가장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회로 알려져 있는 미국에서 기독교에 대한 대안이나 혹은 상호보완적인 영적인 길로 불교의 수행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점점 더 보편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불교 참선 센터가 많이 늘어나고 있고 다양한 강습회들이 많은 장소에서 개최되고 있으며, 또한 교리적이 아니고 실천적인 방법을 통한 영성 체험에 적지 않은 미국인들이 매료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파송 선교사들이 개종시키려 했던 그 "이교도들"이 지금은 미국 본토에서 기독교인들을 개종시키고 있고, 기독교의 배타적인 주장에 도전하고 있으며 타 종교를 향한 기독교인들의 태도에 심각한 신학적 반성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들과 신학자들이 폴의 스토리와 그의 영적 여정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며 과연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기독교 교회의 복음 전도 사명에 불교의 영적 수행은 위협적인 경쟁 상대일까요 아니면 기독교의 실천이 변혁되는 일의 새로운 자원이 될 수도 있을까요?

II. 영적 안내로서의 전도 (Evangelism As a Spiritual Guidance)

저의 논문을 통해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불교 영성에 참여함으로써 경험한 것들을 선교적 관점에서 반성해 볼 때, 영적으로 갈급한 포스트 모던 시대에 기독교 복음 전도의 새로운 활로를 영성 지도(Spiritual direction)에서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카톨릭 크리스챤이었다가 영적 구도자로 방황하고 있었던 현각이 불교에 입문한 것은 숭산 스님의 선불교식 영성 지도에 의해서 였다는 점을 우리 시대의 기독교 선교가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이지만, 불교가 영적인 경험을 갈망하고 구체적 실천법을 찾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불교의 철학적 교리를 설파하는 대신에 일대일 영성 지도를 통하여 "불교식 선교"를 하는 것처럼, 기독교의 전통적인 영성 지도 속에서 오늘날 복음 선포의 새로운 비전과 대안적 실천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영성 지도의 뿌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의 영성 지도 사역 이래로 기독교 전통에서는 다양한 방법의 영성 지도가 존재해 왔습니다. 현대 사회가 세계화와 종교 다원주의를 동반하는 다문화적, 다종교적 사회로 발전하면서 기독교안에서 에큐메니칼 운동과 더불어 다양한 종교적 영성이 만나고 교류하는 가운데 기독교 영성 지도도 그 영향을 받으면서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다양한 영성과 영성 지도법이 있다는 것은 단지 문제적 현실로서만이 아니라 신앙과 삶의 갱신 혹은 변혁의 기회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기독교 영성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캐롤린 그래톤은 그 잠재적 이점들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다양한 영적 방법들을 존중하는 동시에 우리들 자신의 전통속에서 받은 독특한 선물들에 깊이 생각하고 감사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적인 은혜/은사와 심도있는 종교간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컨텍스트가 우리를 정화시키고, 공식, 아이디어, 이미지 저편의 신앙의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다리며 나아갈 수 있도록 신앙의 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는 심오한 길들이 될 수도 있다."

영성 지도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다양한 단어들이 있고,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역이나 기술은 영적 지도, 영적 안내(Spiritual Guidance), 동행, 우정 등으로 불려집니다. 영성 지도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처럼 가장 규범적이며 최소한으로 평등주의적입니다. 영적 안내는 권위 보다는 경험의 차이를 반영합니다. - 영적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숙달된 여행자가 새로 이 길에 들어선 비교적 낯선 여행자들에게 길을 알려주며 도와줄 때 그들 자신의 통찰력을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 동행과 우정은 상호간의 상담과 지원을 제공하는 동등한 관계로서의 영성 지도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영적 안내를 간단히 정의하자면, 거룩한 신비이신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적 여정을 다른 사람과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영적 안내]는 두 사람이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함께 추구하면서 경청, 응답, 확인, 명료화, 가르침(가끔), 도전(적절한)들의 다면적 경험이다."

영성 지도와 복음 전도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점증하는 다원적이고 탈 기독교적인 문화 속에서 말씀 선포, 혹은 교회 성장으로서의 복음 전도 모델의 약점을 지적하면서, 남감리교 대학교(SMU) 윌리엄 아브라함 교수는 복음 전도의 개념이 확장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확장을 위해 포함되어야 할 것은 "영성 지도, 영성 훈련과 복음의 성례 소개, 기독교 윤리와 교리적 전승의 기초로 입문시키기,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때 동반될 수 있는 다양한 종교적 경험의 소개 등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보다 포괄적으로 교회의 복음 전도적 실천이 수정되기를 추구하며, 복음 전도의 통합적 구성요소로서의 기독교인 제자화의 초기 형성 단계가 여러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회적(지역교회 안으로의 연합), 인지적(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지적인 동의), 인생의 윤리적 비전,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 섬김을 위한 영적인 은사들의 수용과 개발, 그리고 영성 지도를 포함하는 제자도의 성숙을 위한 영성 훈련의 실천 등입니다.

아브라함은 새신자들을 위한 기독교인 형성의 과정으로서의 영성 지도를 말하는 반면, 미국 장로교 소속 컬럼비아 신학교 벤 캠벨 존슨 교수는 "초기의 영적 안내"가 복음 전도의 새로운 방법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존슨은 교묘하게 상품팔듯이 복음을 전하는 종교 판매자로 여겨지는 "복음 선포자"로서의 복음 전도자의 근대적 모델에 대해서 비판적입니다. 대안적으로 그가 제안하는 "영적 안내자" 로서의 복음 전도자 모델은 다음의 세 종류의 그룹에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하나님에 대해 말"함으로써 주류 교회 안에서 복음 전도 실천을 활성화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그룹은 1)믿지만 교회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 60년대에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간 사람들, 2) 무교단적 모임, 근본주의 집단, 뉴 에이지 운동이나 동양 종교에 참여해 봤던 구도자들, 그리고 3) 하나님과의 역동적인 경험없이 교회에서 양육된 사람들 등입니다.

복음 전도의 한 형태로서의 영성지도의 가능성은 둘 사이의 상호 연결된 초점, 목적, 그리고 방향에 있습니다. 존슨은 이 둘을 융합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둘 다 신-인관계에 관련된 것으로서 복음 전도는 그것을 시작하려는 것이며, 영성 지도는 그것을 성숙시키기 위함이다. 인간의 의식 또한 다루고 있는데, 복음 전도는 인간 의식(그리스도의 현존) 안에서 새로운 중심을 만들려고 하고, 영성지도는 그 의식을 확장시키려 노력한다. 복음 전도와 영성 지도는 그 대상으로부터 신뢰의 응답을 기대한다. 복음 전도는 구원자이자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초기의 응답을 , 영성 지도는 인간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활동을 신뢰하는 지속적 성향을 요구하는 것이다."
영성 지도자의 스타일과 접근법에는 현대 미국인들의 구도자적 영성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것을 통해 복음 전도적 과제를 위한 수많은 함의가 담겨 있습니다. 존슨에 의하면,

"영성 지도자는 사람을 외부인으로서가 아니라 동료시민으로서, 아웃 사이더가 아니라 형제, 자매로서 관계를 맺는다. 영성 지도의 목적은 한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가 피지도자들로하여금 그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돕는데 있다. 피지도자에 대한 지도자의 관계 맺음의 방식은 "따라 행동하기" 보다는 "함께 찾아가기"이다. 복음 전도와 영성 지도는 종교적 진리의 정리된 신조를 강요하기 보다는 인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영국의 감리교 신학자 필립 메도우는 그의 논문인 "복음 전도의 여정"에서 세 가지의 분리할 수 없는 차원을 동반하는 영성 지도로서의 복음 전도에 관해 웨슬리적 접근 방법을 통찰력있게 설명합니다. (1)복음 선포의 차원은 넓게는 부르심과 응답의 형태로 모든 행위를 특성화 시키는 것이다. (2) 영성 지도로서의 복음 전도는 구도자들에게 은혜의 방편(means)을 제공한다. 구도자의 특정한 필요에 따라 이러한 방편들을 분별하고 추천하는 것이 복음 전도자의 역할이다. (3) 영성 지도로서의 복음 전도는 구도자들 곁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로 들어 가게 하려는 공통의 목적을 공유하며 그 영적 여정에 동행하는 것이다. 복음 전도자들은 구도자들을 그들의 개인적 영적 경험으로 인도하지 않고, 기독교적 친교를 나누기 위해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의 형제, 자매로 또한 하나님 나라에 함께 참여하는 동료로 초대한다.
프린스톤 신학교의 안젤라 리드 교수는 영적 구도자의 정황속에서 복음 전도의 한 모델로서의 영성 지도의 가능성을 지지합니다. "영성 지도는 영적 추구를 하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을 위한 도구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인터뷰한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제이슨은 일요일에 교회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다소 놀랍다. 이것은 그가 기대하지 못했던 바이나, 이곳에 다시 있게 되었다. 그는 개방적인 불가지론자이며, 그렇게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언가가 그를 다시 이곳으로 이끈 것이다. 이 일은 그의 친구인 카리나의 초대로 시작되었고, 어느 주일 아침에 있을 카리나의 연주를 듣기 위해 오게 되었다. 그는 초대에 놀랐지만, 그녀의 초대에 응하고 싶었고, 이 장소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이 있었다. 그의 부모는 그의 어린 시절에 휴일에만 가끔 교회로 데리고 갔고, 그는 굉장한 지루함을 느꼈다. 그리고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안다고 믿는 사람들을 꽤 잘난척하는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카리나는 교회가 믿는 것들에 대해 말을 많이 한 적이 없어서 제이슨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몇가지 종교적 의문들에 대해서 예배때 목사님이 전해 주시는 말씀 속에 무엇을 듣게 되지 않을까 호기심이 있었다.
카리나는 제이슨을 예배후 토마스 목사님께 소개했고, 그들은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토마스는 제이슨의 도전적인 질문들을 들을 때 그리 마음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목사님은 제이슨이 다음 주에 다시 오도록 초청했다. 그들의 관계는 발전했고, 이제 그들은 매달 커피를 마시며 함께 만난다. 토마스는 제이슨이 하나님을 쉽게 믿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였고, 고통과 불의 가운데 있는 세상 속에서의 하나님에 대한 질문들을 반겼다. 그는 심지어 이미 모든 답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이는 사람들 보다는 질문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게 여겼다.

분명하게 토마스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강한 사람이지만, 그의 관점을 다른 사람들에게 밀어부치지 않았다. 제이슨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 토마스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질 때, 제이슨은 그가 있는 바로 그 곳에서 받아들여짐을 느낀다. 제이슨이 그것을 생각하면 할 수록 더욱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고, 카리나를 포함한 공동체 안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길을 걷고 있는 듯 했다. 제이슨은 관점의 급진적 변화를 일으킬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끼지만, 카리나의 교회에서 그가 알게된 것을 감사하고, 한동안 더 머무르며, 무언가 새로운 것이 그를 위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교회 밖에서 동양적 명상의 방식을 찾아 왔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영국의 예수회 소속 제프 골든은 종교간, 혹은 영성간 영성 지도 컨텍스트 안에서 "영적 안내로서의 관상적 복음 전도 모델"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그들은[구도자들] 직접적인 기독교적 가르침을 들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이해할 수 없는 그들에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성령님과 그들의 직감을 믿고 그들이 준비되었을 때에 그들 스스로가 더 직접적인 기독교적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침묵하는 방법을 찾는다면 간단한 호흡과 알아차리기 훈련을 통해서 마음을 안정시키도록 초청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됨을 알찌어다"라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면,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생각들과 방해물들을 알아차리는 가운데, 자신의 몸을 알아차리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간단한 훈련들을 신자나 불신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제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훈련을 계속 하는 가운데 그들이 원한다면 좀더 기독교적인 가르침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제프가 제안하는대로 만약 영성 지도가 기독교인들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적 구도자 혹은 타종교인에게도 적합하다면, 영적 안내자의 역할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구하면서 함께 듣기와 기도, 관상을 통한 대화적, 초청적, 체화된 방법으로서의 복음 전도 과제에 잘 맞을 것입니다.

"영적 안내와 열반에의 도달"
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달라이 라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좋고 튼튼한 영적 공동체를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잘 가르치며 좋은 모범이 되는 교사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 문제에 대한 가르침은 지적인 수준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사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자신이 가르치는 것을 예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교사는 제자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제자들이 진정한 고마움과 존경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