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전자책]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eBook]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인간의 아름다운 소멸을 말하다
강영안,최재천,정재현,김종성,김상근,황농문,김애령,윤영호 (지은이)21세기북스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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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288쪽, 약 14.7만자, 약 3.6만 단어
책소개
플라톤 아카데미 총서 인문학 아고라 시리즈. 전작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이어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삶과 죽음의 연속성을 이야기한다. 생태학자, 공학자, 철학자, 건축가, 신학자, 종교학자, 의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섬세한 시각을 발휘하는 학자 8인은 죽음을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삶과 죽음이 그리 멀리 있지 않으며, 죽음에 대한 물음이 도달하는 자리가 결국 삶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죽음을 삶의 흐름이 가져오는 결과로 보든 고통스러운 삶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보든 죽음은 우리 삶의 영역 안에 자리한다. 이것이 곧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물음이 존재의 의미를 물었던 '나는 누구인가', 공동선으로의 확장을 고민했던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마무리하는 대단원의 주제인 이유다.
목차
발간사 피할 수 없는 생명의 역설,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1부 삶의 순간에 마주한 죽음
생명, 너와 나를 잇는 자연의 영원성 / 최재천
자연과학자가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이유 | 모든 생명의 공통적 속성, 죽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협력형 경쟁 | 인간의 이기적 유전자 | DNA를 알아버린 유일한 존재
몰입, 최고의 나를 만나다 / 황농문
행복한 삶을 여는 열쇠 | 몰입의 즐거움 | 성장을 위한 필수조건, 숙고하는 삶
인간은 후천적으로 발달한다 | 간접 고통을 통한 정신의 성숙
아름다운 삶을 비추는 영혼, 친구 / 김애령
인간의 유한한 시간 그리고 삶 | 우리를 살게 하는 이야기의 힘
이야기는 잠정적 죽음이다 | 타인과 함께 만들어가는 삶 | 아름다운 삶을 위한 노래
삶을 담는 공간, 건축의 미학 / 김종성
건축이란 무엇인가 | 조화와 일치, 건축의 아름다움
안정적인 구조가 돋보이는 건축물들 | 인간을 위한 공간, 삶을 담는 그릇
2부 죽음의 숙고로 완성하는 삶
죽음, 벽인가 문인가 / 김상근
죽음에 대한 성찰, 그 이유 | 르네상스 시대의 성찰 |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성찰
그레코-로만과 히브리 전통의 성찰 | 『아이네이스』에 나타난 로마인들의 성찰
죽음에 대한 히브리 전통의 해석
죽음, 숙명인가 해방인가 / 정재현
죽음, 삶을 향한 물음 | 운명과 자유, 죽음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숙명 대 해방, 삶의 바깥으로 내몰린 죽음 | 유한한 초월, 삶 안으로 들어온 죽음
죽음의 가르침, 자신의 현재를 사랑하라!
죽음의 연습, 멜레테 타나투 / 강영안
삶과 죽음에 관한 물음 | 인간은 죽음에 대해 알 수 있을까
죽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 죽음은 끝인가 또 다른 시작인가
새로운 나의 발견 vs. 타자의 발견 | 탁월한 삶을 위한 선택
의미 있는 삶, 아름다운 마무리 / 윤영호
보이는 것만 볼 것인가 |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인생의 위기는 곧 새로운 도전의 기회 | 삶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 |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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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20 오랫동안 생명에 대해 공부하면서 깨달은 점 중 하나는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하나의 공통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은 ‘죽음’입니다. 생명의 가장 보편적인 속성이 바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P. 71 죽음을 직면하면 온갖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외부의 기대들이 모두 떨어져나갑니다. 그리고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습니다. (…) 살아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P. 78~79 시간은 많은 것을 피어나게 하고 성장하게 하고 탄생하게 하고 변화하게 합니다. 또 많은 것을 파괴하고 해체하고 늙게 하고 낡게 하고 저물게 하고 죽게 합니다. (…) 인간의 시간은 존재론적인 결함이기도 하고, 유한한 자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슬픔이기도 합니다.
P. 103 아름다운 삶은 고통이나 슬픔을 경험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그 고통이나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이해하느냐를 통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삶은 결코 확신이나 확실성으로 가득 찬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삶이 가지고 있는 그늘, 고통, 눈물, 불확실성, 연약함을 끌어안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 아름다운 삶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접기
P. 139 이런 요소들이 갖춰질 때 건축물로서의 아름다움이 완성되어 제대로 빛을 발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죽음 또한 우리 삶의 일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삶이 있어야 아름다운 죽음이 있고, 그때 비로소 하나의 인생이 완성되는 것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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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강영안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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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와 미국 칼빈신학대학원 철학신학 교 수로 재직 중이다. 198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칸트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네덜란드 레이든대학교 철학과 전임 강사로 형이상학과 인식론을 맡아 강의했고, 귀국 후 계명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거쳐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했다. 벨기에 루뱅대학교 초빙 교수로 레비나스를 연구했으며, 미국 칼빈 칼리지에서 초빙 정교수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강의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 기독교학문연구회, 한국칸트학회,... 더보기
최근작 : <레비나스 철학의 맥락들 (큰글자책)>,<철학이란 무엇입니까>,<대화> … 총 52종 (모두보기)
최재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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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동물학을 전공하고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생태학 석사 학위를,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10여 년간 중남미의 열대를 누비며 동물들의 생태를 탐구한 뒤, 국내로 돌아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명에 대한 지식과 사랑을 널리 나누고 실천해 왔지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한국생태학회장, 국립생태원 초대원장 등을 지냈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와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를 맡고 있어요. 지은 책으로는 『개미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 더보기
최근작 : <최재천 교수의 어린이 개미 이야기 세트 - 전15권>,<살아보니 행복은 이렇습니다>,<모든 이가 스승이고, 모든 곳이 학교다 (큰글자도서)> … 총 299종 (모두보기)
정재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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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철학과, 문학사
미국 에모리 대학교 신과대학원, 철학적 신학 전공, MTS.
미국 에모리 대학교 일반대학원 종교학부, 종교철학 전공, Ph.D.
현재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종교철학 전공주임교수
연세대학교 미래융합연구원 종교와사회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부설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소장
한국종교학회 종교철학분과위원장
한국종교철학회 회장
저서
『티끌만도 못한 주제에』(1999), 『신학은 인간학이다』(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우수연구도서, 2003), 『자유가 너희를 진리하게 하리라』(문화체육관광부 선... 더보기
최근작 : <망치로 신-학하기 (반양장)>,<미워할 수 없는 신은 신이 아니다>,<우상과 신앙> … 총 18종 (모두보기)
김종성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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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가협회 명예건축가, 미국건축가협회(AIA) 원로회원이며 (주)서울건축 명예대표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과 2년 수료 후, 일리노이 공과대학교(I.I.T.)에서 건축학 학사 및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동 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서울 힐튼호텔>으로 1985년 서울시 건축상 금상, <올림픽 역도경기장>으로 1987년 서울시 건축상 은상 및 1989년 IAKS(국제스포츠여가시설협회) 금상, <SK 본사 사옥>으로 2000년 한국건축가협회상 등을 수상했다.
최근작 : <내진설계와 건축물의 형태>,<전원주택 집짓기를 위한 건축구법계획>,<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총 14종 (모두보기)
김상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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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교수이며, 학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미국 에모리 대학을 거쳐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와 명나라 말기의 종교 교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인문학과 고전, 그리고 르네상스 예술로 연구 분야를 확장시켜 나간 독특한 연구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전작 《르네상스 창조경영》과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에서 창의적 사고와 르네상스 시대를 연결시켰고, 화가인 카라바조와 엘 그레코, 정치사상가인 마키아벨리의 전기를 썼다. 피렌체의 문화와 예술을 소개한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는 SBS 특집 다큐멘터리... 더보기
최근작 : <나의 로망, 로마>,<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어떻게 살 것인가> … 총 57종 (모두보기)
황농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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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선임 및 책임연구원, 미국 국립표준기술원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and Technology과 일본 금속재료연구소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Metals의 객원연구원으로 근무했고 현재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절정의 몰입상태에서 수행한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몰입적 사고를 통해 두뇌를 최대로 활용할 수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을 살 수 있는 방법임... 더보기
최근작 : <저절로 몸에 새겨지는 몰입 영어>,<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우리는 무엇으로 행복해지나> … 총 21종 (모두보기)
김애령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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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에서 철학공부를 시작했고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현재 이화인문과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고, 주요 관심분야는 해석학, 여성주의 철학, 포스트휴먼 연구에 걸쳐 있다. Metapher und Mimesis, 『여성, 타자의 은유』, 『은유의 도서관: 철학에서의 은유』 등의 저서와 “Resisting the Power of the Gendered Gaze”, 「이방인과 환대의 윤리」, 「다른 목소리 듣기」, 「사이보그와 그 자매들」, 「글쓰기 기계와 젠더」 등... 더보기
최근작 : <듣기의 윤리>,<포스트휴먼이 몰려온다>,<은유의 도서관 (큰글자책)> … 총 18종 (모두보기)
윤영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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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암 환자와 그 가족의 삶에 대해 연구해 왔다.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암센터 설립 시 ‘삶의 질 향상 연구과’를 만들어 연구와 정책기획에 힘썼다. 서울대학교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 한국호스피스·완화 의료학회의 설립위원, 윤리이사, 학술이사를 역임했으며, 지금은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로 건강사회정책실장을 맡고 있다.
최근작 : <2040, 서울을 묻다>,<습관이 건강을 만든다>,<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총 1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아름다운 삶에서 죽음을 보다
삶에 던져진 마지막 물음과 인문학에서 찾은 최후의 답
인문학에 던져진 대단원의 물음,
삶과 죽음의 연속성을 이야기하다
인간에 대한 학문인 인문학의 열풍 끝에 남은 본질적인 물음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신학에 대한 반발로 인문학이 탄생했던 중세의 시대적 요구와 지금 현대인들이 느끼는 삶에 대한 체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삶 자체가 황폐해지고 사회 가치가 희미해지면서 현실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이 부재한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반발로 일어난 인문학에 대한 소구는 다양한 사회적 함의를 낳았고 현대인들은 인간과 삶,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품기 시작했다.
이에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플라톤 아카데미의 시리즈 강연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아름다운 삶과 죽음 Beautiful life’에 10만 명 청중은 열광했다. 그리고 이를 묶어낸 책 『나는 누구인가』『어떻게 살 것인가』를 통해 수만 명의 독자가 인간의 정체성과 인생에 관한 본질적인 물음에 답을 찾았다. 그리고 이제 인생에 관한 대단원의 물음을 책으로 담은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삶과 죽음의 연속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생태학자, 공학자, 철학자, 건축가, 신학자, 종교학자, 의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섬세한 시각을 발휘하는 최고 학자 8인은 죽음을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삶과 죽음이 그리 멀리 있지 않으며, 죽음에 대한 물음이 도달하는 자리가 결국 삶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번 책은 주로 해외 학자의 논의를 통해서 접할 수 있었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국내 최고 학자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삶의 순간에 마주한 죽음
- 생태학자, 과학자, 철학자, 건축가의 시선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는 죽음이야말로 생명의 가장 보편적인 속성이라고 말한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DNA가 복제를 통해 만들어낸 우연의 결과물이기에 모든 생명은 태초에 하나로부터 나뉘는 일원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즉 원래 하나였던 자연과 공생하는 법을 알고 평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아름다운 삶과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임을 전한다.
공학자가 바라본 죽음은 명확한 결론을 향해 전개된다. 황농문 교수는 죽음을 삶을 위한 필요조건이라 본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의식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꺼려하지만 이를 온전히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죽음에 직면하는 순간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으며 살아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김애령 교수는 죽음 앞에서 철학자의 역할을 고민한다. 죽음이란 존재론적인 결함이자 유한한 자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슬픔이기에 우리 모두는 결국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아름답게 사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늘과 고통으로 얼룩진 삶이라도 이를 이야기로 만들어 스스로를 관조하고 이를 함께 나눌 친구가 있다면 좋은 삶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종성 건축가는 건축이 언뜻 죽음과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건축이야말로 삶을 오롯이 담고 있는 공간이며, 그렇기에 건축의 미학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삶과 그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비잔틴 양식부터 신고전주의 양식에 이르는 건축의 역사를 통해 건축에 담긴 우리의 모습을 찾아본다.
죽음의 숙고로 완성하는 삶
- 신학자, 종교학자, 철학자, 의학자의 시선
신학자 김상근 교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의 성찰에서 시작한 인문학적 사유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공공 이익에 대한 실천으로 발전되었음을 짚고 넘어간다. 그리고 이제 인문학에 남겨진 마지막 과제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우아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레코-로만과 히브리 전통에서 죽음의 의미를 찾는다. 이와 함께 죽음은 벽이 아닌 평화(Shalom)의 세계로 나아가는 문이라는 희망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종교철학자 정재현 교수는 오늘날 삶 밖으로 내몰린 죽음을 삶 안으로 다시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래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은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 과정에 있으며 죽음으로써 몸 전체가 살아가는 생명의 역설이 우리 몸 자체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죽음을 숙명과 해방의 대립 구도로 보는 것을 떠나 ‘유한한 초월’, 즉 삶 안에서 죽음을 발견해 남은 삶인 자신의 현재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원로 철학자 강영안 교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현상학, 그 의미를 살펴보는 해석학, 관계를 생각하는 윤리학을 통해 죽음을 분석한 뒤, 선물과 같은 삶을 ‘감사(Eucharist)’라고 표현한다.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이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했고 플라톤은 철학의 가장 중요한 임무를 멜레테 타나투, 즉 죽음에 대한 수련이라고 했다. 이는 죽음에 대한 철학의 분석에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어린 나이에 가까운 이의 죽음을 접하고 의사의 길을 결심한 윤영호 교수는 죽음을 절망이 아닌 희망의 순간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삶은 선택으로 주어진 것이기에 건강한 목표와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삶이며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라는 것이다.
유한의 시간 속에서
불변의 진리를 논하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이지만 그 누구도 죽음을 경험해본 적은 없다. 죽음은 살아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으며 죽어서는 절대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은 삶의 바깥에 자리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중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 허락된 유한의 시간은 삶의 끝에 자리한 불변의 진리를 조금씩 앞당겨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죽음과 삶을 떨어뜨려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다. 죽음을 삶의 흐름이 가져오는 결과로 보든 고통스러운 삶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보든 죽음은 우리 삶의 영역 안에 자리한다. 톨스토이는 죽음을 의식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을 신과 동물의 상태로 비교하는데, 이는 죽음을 삶 속으로 소환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느끼게 한다. 죽음이야말로 나를 나일 수 있게 하는 고유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물음이 존재의 의미를 물었던 ‘나는 누구인가’, 공동선으로의 확장을 고민했던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마무리하는 대단원의 주제인 이유다. 강연을 한 8인 학자들의 입, 이를 담아낸 10만 청중의 귀, 마지막으로 이를 되새길 수만 독자들의 눈에는 이제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아름다운 세상이 담길 것이다. 삶과 죽음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자연의 원리임을 우리 모두 깨달았기 때문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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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어떻게 정의하고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수 있는가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wongku 2016-03-1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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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아고라 3,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이어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화두를 잡고 진행된 인문학 아고라를 책으로 만났다. 책을 읽다 보면 학창시절 즐겨 듣던 노래가 마치 배경음악처럼 계속 들려온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플라톤 아카데미 총서에서 나오는 책들을 좋아해서 이 인문학 아고라 3부작을 다 챙겨 보았는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한 책보다 이 책을 읽을 때 더욱 잘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 교수 강영안이 ‘죽음의 연습, 멜레테 타나투’에서 언급한대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오히려 삶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은 간절함(p218)이 생겨서 일수도 있다. 서울대학교 재료공학과 교수인 황농문의 말처럼 ‘나는 누구인가’와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것(p43)이여서 그럴 수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면 행복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황농문은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도록 만들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매우 잘 속는 뇌가 착각에 빠지도록 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뇌라는 것은 생명의 위험을 느낄 때 더욱 몰입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죽음에 직면해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주지시켜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일이라는 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처럼 살아간다. 하지만 내일이 없다면,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우리는 지금처럼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필멸의 존재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남의 이야기인것처럼 생각하는 살아간다. 그래도 죽음이 ‘삶의 완성이고 아름다운 마무리’까지는 아니라도, 죽음 앞에서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정도는 간직하고 있기에 더욱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이미 후회가 너무 많아서, 후회없지 죽어가는 것까지도 바라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나니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 후회없이 몰입하여 살아가는 법, 그리고 경쟁과 협력을 통해 공생하는 법에 대한 강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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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5-10-07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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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죠. 불로장생의 꿈을 원했던 진시황도 어려질 수만 있다면 어떤 미용법도 불사하지 않았던 클레오파트라도 결국 다 죽었습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생명과 죽음 앞에 인간을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대교체야말로 종족 번식과 진화를 위한 가장 보편적인 방법일 텐데요. 그만큼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기에 욕망 또한 한계가 없습니다. 한계를 모르는 불만들이 모여 문명의 발전을 이뤘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죽음'이란 소재에 대해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책입니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읽어볼 수가 있어요. 1부 '삶의 순간에 마주한 죽음'과 2부 '죽음의 숙고로 완성하는 삶'으로 나뉘어 있는데요. 철학, 신학, 인문학, 건축학, 의학, 과학, 공학의 분야에서 말하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 단순히 부정적이고 무거운 내용이 지배적일 거란 편견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유용한 독서였답니다.
1부에서는 생명과 죽음을 연결 짓는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의 글이 흥미로웠어요. 흔히들 자연과학과 인문학은 동떨어진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과학자도 인문학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공생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이 공감을 주네요. '생명의 가장 보편적인 속성이 바로 죽음이란 것!'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만들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매체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무척 충격적이었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에 대한 의문이기도 한 이 부분은 닭이 달걀을 낳는 게 아니고, 달걀이 닭을 만들어 낸 뒤 그 닭에게 더 많은 달걀을 만들어내도록 부추긴다는 뜻입니다. 유전자적 관점으로 볼 때 태초의 DNA 혹은 RNA가 계속 다른 종을 만들어 이어져 오고 있다는 건데요. 그렇기 때문에 생명과학 쪽에서 보자면 우리는 태초의 어떤 식물이 조상일 수도 있으며, 누가 누굴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말입니다. 즉, 지구는 자연과 인간 모두가 유기적인 연결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거죠.
'송과체'라는 척추동물의 뇌 가운데에 위치한 솔방울 모양의 지름 약 12밀리미터쯤의 내분기 기관에 주목한 데카르트. 오로지 인간에게만 존재한다고 생각했기에 데카르트는 "송과체는 영혼의 자리이다. 고로 인간만이 영혼을 가진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지구 상에서 가장 우월하다고 믿고 싶은 자만심을 보여주는 좋은 예기도 하죠. 하지만 인간은 우연히 만들어진 생물일지도 몰라요. 적자생존을 통해 강한 놈만 살아남았고, 계속 진화했고, 앞으로 유한한 지구에서 복작거리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우주의 끝없는 영원성 앞에 인간은 그냥 티끌만도 못한 존재인데 말이죠.
2부로 넘어가면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나는 누구인가'로 시작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지나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이어지는 삼위일체.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해 죽음을 직시합니다. 그 후 흑사병이라는 사상 초유의 공포 앞에서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다양한 예술과 철학으로 승화됩니다.
용타 스님은 "죽음은 벽인가, 아니면, 문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합니다. 죽음을 생명 단절로 보느냐,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가능성으로 보느냐에 대한 깊은 성찰의 질문입니다. 이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현대에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는 '스티브 잡스'의 죽음에 관한 명언이 생각납니다. 그는 17살 때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라, 그러면 언젠가는 의인의 길에 서 있게 될 것이다'라는 글에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50대에 짧은 삶을 마감할 때까지 '죽음'이란 단어를 상기하며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보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천재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뭘 할 건가요? 3개월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면 버킷리스트에 무얼 적을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할 때 인간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배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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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na09 2015-10-07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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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min 2016-02-13 공감(4)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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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또 다른 탄생이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공부'입니다. 인간이라면 반드시 묻고 답해야 할 질문을 다루는 것이 인문학의 기본적인 과제입니다. 이 질문들은 어떤 대상에 대한 분석이나 무엇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과학이나 공학이 제기하는 질문입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우주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은 과학자들의 질문입니다. 인문학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해서 어떻게로 이어지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멋진 삶은 어떻게 가능하고, 우아한 죽음은 어떻게 맞이할 수 있는가? - '발간사' 중에서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일, 죽음
우아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멋진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는 막연한 짐작이 우리를 미美의 추구로 이끌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죽음의 실체를 완전하게 파악한 사람은 없기에, 이런 짐작만 가능했을 뿐이다. 그래도 한 가지, 마지막 순간이 아름다워야 할 것이라는 당연한 요구가 수반됐다. 아름다운 최후를 맞으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지금 바로 이 순간이 아름다운 삶의 연속이어야 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생태학자, 공학자, 철학자, 건축가, 신학자, 종교학자, 의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섬세한 시각을 발휘하는 최고 학자 8인은 죽음을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삶과 죽음이 그리 멀리 있지 않으며, 죽음에 대한 물음이 도달하는 자리가 결국 삶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는 죽음이야말로 생명의 가장 보편적인 속성이라고 말한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DNA가 복제를 통해 만들어낸 우연의 결과물이기에 모든 생명은 태초에 하나로부터 나뉘는 일원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즉 원래 하나였던 자연과 공생하는 법을 알고 평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아름다운 삶과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임을 전한다.
"오랫동안 생명에 대해 공부하면서 깨달은 점 중 하나는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하나의 공통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은 '죽음'입니다. 생명의 가장 보편적인 속성이 바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태초에 생명의 늪에서 우연치 않게 자기를 복제할 줄 아는 어떤 화학 물질, 예를 들어 DNA나 RNA가 탄생해 지금까지 계속적으로 화학 물질을 복제해냄으로써 그것이 오늘날 이 어마어마한 생명계를 만들어냈다고 한다면, 태초의 DNA는 지금도 죽지 않고 계속 이어져 온 것이다. 박테리아를 만들고, 오징어를 만들고, 늑대를 만들고, 사람을 만드는 등 모습만 바꿔서 다른 종을 만들어 복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구 생명의 역사는 DNA 혹은 RNA의 일대기에 불과하다. 우리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한계성을 지닌 개체이지만, 인간인 우리를 만들어낸 유전 물질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공학자 황농문 교수는 죽음을 삶을 위한 필요조건이라 본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의식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꺼려하지만 이를 온전히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죽음에 직면하는 순간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으며 살아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기 때문이다.
죽음을 망각한 생활과 죽음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옴을 의식한 생활은 두 개가 서로 완전히 다른 상태다. 전자는 동물의 상태에 가깝고, 후자는 신의 상태에 가깝다. - 톨스토이, <인생의 길> 중에서
고故 스티브 잡스도 생전에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에게 죽음에 대해 얘기했다. 왜 하필 죽음에 대해 얘기했을까? 그는 항상 죽음에 직면해 있음을 의식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죽음을 직면하면 온갖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외부의 기대들이 모두 떨어져나간다. 그리고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는다. 살아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애령 교수는 죽음 앞에서 철학자의 역할을 고민한다. 죽음이란 존재론적인 결함이자 유한有限한 자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슬픔이기에 우리 모두는 결국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아름답게 사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늘과 고통으로 얼룩진 삶이라도 이를 이야기로 만들어 스스로를 관조하고 이를 함께 나눌 친구가 있다면 좋은 삶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시간은 결코 머물지 않는다. 시간은 많은 것을 피어나게 하고 성장하게 하고 탄생하게 하고 변화하게 한다. 또 많은 것을 파괴하고 해체하고 늙게 하고 낡게 하고 저물게 하고 죽게 한다. 인간의 시간은 존재론적인 결함이기도 하고, 유한한 자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슬픔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삶은 고통이나 슬픔을 경험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그 고통이나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이해하느냐를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삶은 결코 확신이나 확실성으로 가득 찬 삶이 아니다. 오히려 삶이 가지고 있는 그늘, 고통, 눈물, 불확실성, 연약함을 끌어안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 아름다운 삶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오디세우스와 세이렌들>
건축가 김종성은 건축이 언뜻 죽음과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건축이야말로 삶을 오롯이 담고 있는 공간이며, 그렇기에 건축의 미학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삶과 그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비잔틴 양식부터 신고전주의 양식에 이르는 건축의 역사를 통해 건축에 담긴 우리의 모습을 찾아본다.
오랫동안 건축 일에 종사하면서 그가 공감하고 확신하게 된 두 가지 요소는 비례와 재료이다. <무량수전>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은 숨어 있는 비례미美 때문일 것이다. 이런 요소들이 갖춰질 때 건축물로서의 아름다움이 완성되어 제대로 빛을 발하게 된다. 우리의 삶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죽음 또한 우리 삶의 일부라고 말하고 싶다. 아름다운 삶이 있어야 아름다운 죽음이 있고, 그때 비로소 하나의 인생이 완성되는 것일 테니까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신학자 김상근 교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의 성찰에서 시작한 인문학적 사유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공공 이익에 대한 실천으로 발전되었음을 짚고 넘어간다. 그리고 이제 인문학에 남겨진 마지막 과제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우아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레코-로만과 히브리 전통에서 죽음의 의미를 찾는다. 이와 함께 죽음은 '벽이 아닌 평화Shalom의 세계로 나아가는 문'이라는 희망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우연의 연속에 불과한 사다리 같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 그리고 그 운명이 다하면 우리 모두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한다. 죽음을 맞이한 우리는 그 미지의 세계를 향해 몸을 날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다.
죽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문화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인류는 특이한 생물이다. 잘났든 못났든, 잘살든 못살든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말 '모두 죽음 앞에 평등한가?'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고개를 젓게 될 것이다.
화가들은 죽음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16세기 북유럽 르네상스를 이끈 독일 화가 한스 발둥(1484~1545년)은 죽음을 묘사할 때 주로 음산한 분위기와 해골을 소재로 활용했다. 1510년에 그린 이 그림 <인생의 세 시기와 죽음>은 한 인간이 늙어가는 모습을 세 시기로 나눠 죽음을 잡아냈다.
화면에는 젊은 시절의 화려함과 죽음의 불안감이 어지럽게 공존한다. 삭막한 들녘과 스산한 하늘은 암울한 분위기를 더한다. 모래시계를 든 해골이 늙은 여인과 팔짱을 낀 모습이 무척 이채롭다. 죽음을 제대로 바라봄으로써 삶의 어떤 순간도 낭비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그림이다.
십자가에 매달렷던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여준다. 그러자 의심 많은 제자 도마는 예수의 상처에 손가락을 집어넣어본다. 그러나 예수는 분노하거나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평화를 기원한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샬롬"이라고 외친다. 예수에게 죽음은 벽도 문도 아니었다. 후회와 분노를 넘어서는 평화의 길이었다.
종교철학자 정재현 교수는 오늘날 삶 밖으로 내몰린 죽음을 삶 안으로 다시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래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은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 과정에 있으며 죽음으로써 몸 전체가 살아가는 생명의 역설이 우리 몸 자체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죽음을 숙명과 해방의 대립 구도로 보는 것을 떠나 '유한한 초월', 즉 삶 안에서 죽음을 발견해 남은 삶인 자신의 현재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우리의 본능은 죽음에 저항하며 삶과 죽음의 관계를 가능한 한 멀리 떼어놓으려 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심각한 것은 무엇보다도 삶의 바깥으로 내몰린 죽음이 오히려 삶을 일그러뜨린다는 점이다. 그 문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곧 우리의 몫이다. 그래서 바깥으로 내몰렸던 죽음을 삶 속으로 끌고 들어오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죽음과 관련해선 본능이나 욕망 모두 비슷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멀리멀리 밀어낸다. 욕망으로 죽음을 덮어버리면 삶이 일그러지고 만다. 덮어버린 사실을 잊어버리면 그 일그러진 삶을 되돌아볼 기회 또한 잃어버리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삶을 더 풍요롭고 가치 있게 엮어내려는 노력이다. 그래서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삶에서 죽음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밀어냈던 죽음을 삶과 함께 엮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세포들은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 태어나 활동하다가 어느 순간 다시 소멸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몸은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죽음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세포들이 끊임없이 죽음으로써 몸 전체가 살아가는 생명의 역설을 우리 몸은 이미 실천해오고 있다.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 '성서' 중에서
죽지 않을 것처럼, 아직 죽지 않은 것처럼 살지 말고 이미 죽은 사람으로 살라는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말씀이 바로 이를 가리킨다. 그렇게 되면 지금 사는 삶은 덤으로 사는 것이다. 덤의 시간들, 순간들, 그것이 바로 지금이다. 그래서 한마디로 추리자면, "자신의 현재를 사랑하라! Carpe diem!"
원로 철학자 강영안 교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현상학, 그 의미를 살펴보는 해석학, 관계를 생각하는 윤리학을 통해 죽음을 분석한 뒤, 선물과 같은 삶을 '감사(Eucharist)'라고 표현한다.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이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했고 플라톤은 철학의 가장 중요한 임무를 멜레테 타나투, 즉 죽음에 대한 수련이라고 했다. 이는 죽음에 대한 철학의 분석에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하이데거는 "그 끝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끝이 있으므로 해서 너와 나 구별도 없이 군중 속에 무리지어 사는 그런 삶이 아니라 비로소 누구와도 혼돈되지 않는 나 자신, 존재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죽음은 누구의 죽음도 아닌 나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우리의 삶 자체를 내게 주어진 값진 선물이라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죽음은 결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삶이 정말로 살 만한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누나의 죽음을 겪으면서 의사의 길을 결심한 윤영호 교수는 죽음을 절망이 아닌 희망의 순간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삶은 선택으로 주어진 것이기에 건강한 목표와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삶이며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라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우주라는 하나의 몸에 존재하는 세포라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각자의 이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라는 몸을 위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봉사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남을 믿지 않는다면, 그리고 세상을 믿지 않는다면 누군가를 배려하고 봉사하는 삶은 불가능하다. 서로 믿고 조화를 이루며 봉사하는 삶, 바로 이것이 의미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결국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다. 우리는 죽지 않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고, 죽지 못해 사는 것도 아니다. 죽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을 살다가 아름답게 죽음을 마무리하는 것까지가 인생의 완성이다. 나무는 죽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다. 다시 대지로 돌아간 우리 역시 어디선가 다른 생명으로 이어진다. 죽음은 자연으로의 회귀이며 또 다른 시작이다.
"나는 쓰러져 죽을 때까지 자연의 길을 여행하겠다. 그리하여 내가 매일 들이마시던 대기 속으로 나의 마지막 호흡을 반환할 것이며, 나의 아버지가 씨를 얻고, 어머니가 피를 얻고, 유모가 우유를 얻었던 대지에 깊이 묻히리라"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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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15-10-0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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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하지 못하고 말하는 그것, 죽음 -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지난 여름 이대에서 플라톤 아카데미 ‘Beautiful Life - 아름다운 삶과 죽음’이란 강의가 있었다. 거의 모든 강의를 직접들었다. 책으로 읽으니 정리가 잘되어 있어 그 당시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도 이해할 수 있었다.
‘Beautiful Life - 아름다운 삶과 죽음’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죽음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삶, 생명과 탄생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탄생과 삶을 살아가지 않고 죽음을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죽음에 대해 잊고 살아간다. 매일 매일의 삶이 너무 바쁘고 버겁기에 죽음을 잊는다. 하지만 잊고 있는 어느 순간 죽음은 우리 앞에 와 있다.
누구나 죽는다. 그런데 왜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멀리 내보내기만 할까? 그것은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세계 곳곳의 이야기를 전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결국 지식과 상식, 통념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고 인정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경험하지 않았기에 죽음을 말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이겠지.
심정지 혹은 뇌사 상태에서 깨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죽음을 경험한 것일까? 죽음은 생명의 영원한 단절이다. 이들이 심정지 후 80년을 살았다 치자. 한 평생에 5분이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인데 이것이 죽음일까? 정지가 아닌 지속이기에 이를 죽음으로 봐야 할까? 현대의학이 심정지를 죽음으로 본다면, 이들이 경험한 죽음을 왜 믿지 않을까? 이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 현대의학의 죽음의 기준도 바뀌어야 하지 않나?
우리는 죽음을 모르고 말하기에 무성한 추측만 남는다. 하지만 생명을 가진 누구나 경험해야 하기에 죽음의 준비는 해야 하지 싶다.
‘아름다운 삶을 비추는 영혼, 친구’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김애령 교수는 친구란, ‘너는 누구인가?’를 묻는 사람이라고 했다. 너에 대해서 알고 싶고 너가 누구인지를 지속적으로 묻는 사람. 그가 친구라고 했다.
삶을 살아가는 중간 우리는 많은 일들을 겪는다. 나에 대해서 묻고 나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완벽한 축복일 수 있을 것이다.
친구가 중요한 이유는 절망에서 찾을 수 있다. 정재현 교수는 ‘왜 사는가?’라는 물음은 우리가 잘 살고 있는 경우에는 던지지 않는다고 했다. “질병, 가난, 이별, 실패, 좌절, 고통 등을 겪을 때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이며, 왜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한다고 했다.
맞다. 일상이 평온할 때,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은 잠시 접어둔다.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나의 삶을 고민하고 방향성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이 과정을 통해서 삶은 성숙된다고 생각한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 이마 이 과정을 여러번 거치면, 심적으로 힘들지는 몰라도 삶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은 더 공고히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이데거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인간은 죽을 힘을 갖고 있다.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죽을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죽는다(sterben)는 것은 죽음에 대해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상 오로지 인간만이 죽는다. 다른 생물들은 단지 분해된다. 그들은 멸망(verenden)으로 인해 그 의미를 캐지 않는다.”
길거리에 피어 있는 꽃에게 왜 사냐고 물어보라. 그들은 왜 사는지 말하지 않는다. 생명이 주어졌기에 충실히 오늘을 사는 생물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왜 사는지를 묻는다. 참 이상한 종이다.
지구의 전체 수명을 놓고 보면, 한 인간이 사는 시간은 점보다 작을 수 있다. RNA와 DNA가 우리를 복제하면서 실험(?)을 진행 중일 수도 있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한 개인의 삶은 어떤 의미도 지닐 수 없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이야기들이 오늘을 사는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냐는 것이다. 철학적, 생물학적 질문이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면 이런 질문은 질문의 힘을 갖지 못한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을 뛰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현실에선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누워있겠지만.
오늘 살아있는 모든 이들은 어느 순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삶과 죽음, 이런 질문들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단 하나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나 참 잘 살았다. 행복했다.’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 어제와 같은 오늘. 삶을 살아가면서 죽음을 잠시 잊게 해준, 평온한 오늘. 오늘 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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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2015-10-0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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