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핵 숨바꼭질’하며 기술 발전 - 중앙일보
美와 ‘핵 숨바꼭질’하며 기술 발전
[중앙일보] 입력 2007.07.23 14:28 수정 2007.07.2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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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원자력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프랑스 원전 기술자들을 만나 담소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1971년 3월 경남 양산군 기장읍 고리(현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에서 한국 최초의 원자력발전소 기공식이 열렸다. 69만㎡(21만 평)의 부지에 사업비 1560억원, 대역사(大役事)였다. 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 고리원전 1호기의 착공은 고리 2호기(74년), 월성 1호기(77년) 착공으로 이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이 원자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5·16 직후부터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있으면서 한국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를 처음 방문한 이래 수시로 찾았다. 토요일이면 헬기를 타고 연구소에 와서 연구원들에게 당시 돈으로 100만∼200만원의 격려금을 놓고 가던 박 대통령을 기억하는 연구원들이 아직도 있다.
권력자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한국의 원자력은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 가정이나 기업에서 싼값에 전기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원자력발전의 초석을 다진 덕분이다. 82년부터 지난해까지 물가는 평균 199.5% 인상됐으나 전기 요금은 3.3%밖에 오르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핵무기 개발을 지렛대 삼아 외교적 실리를 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플루토늄 얻기 쉬운 중수로 도입
77년 착공해 83년 준공된 한국의 초창기 원전, 월성 1호기는 중수로형이다. 경수로와 중수로의 중요한 차이는 후자가 핵무기 개발이 쉽다는 데 있다. 경수로는 원자로를 열고 한꺼번에 핵연료를 교체한다. 경수로의 핵연료 교체는 1년에 한 번 있는 행사다. 이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가 집중되기 때문에 경수로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를 핵무기 개발 목적으로 빼돌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중수로는 다르다. 원자로를 가동하면서 매일 핵연료를 교체한다. 하루에 16개씩 핵연료 다발을 교체하기 때문에 IAEA 감시의 눈길을 벗어날 여지가 있다. 이렇게 뽑아낸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원자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
74년 인도는 카슈미르 지방의 영유권을 놓고 파키스탄과 오랫동안 분쟁을 일으키다 비밀리에 핵실험을 했다. 인도가 핵실험을 성공한 배경에 중수로가 있었다. 영국·캐나다·호주 등은 50년에 인도·스리랑카 등 영연방국가를 돕는 ‘콜롬보 계획’을 세웠고, 캐나다는 이 계획에 따라 인도에 중수로를 공급했는데, 인도는 이를 이용해 핵실험에 성공했다.
한국은 인도가 핵실험에 성공한 이듬해인 75년 1월 캐나다와 중수로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인도가 캐나다에서 공급받은 중수로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를 갖고 플루토늄을 추출하자 미국과 IAEA는 중수로를 도입하려는 나라를 엄격하게 감시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어떻게 중수로를 도입할 수 있었을까. 비슷한 시기 대만은 중수로 도입이 좌절됐다. 원래 한국은 캐나다에서 중수로는 물론이고 중수로 설계기술까지 한꺼번에 도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전력 김영준 사장이 ‘순수발전 목적으로 원자로를 도입하는 것이니 의심을 살 만한 기술은 제외하고 도입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물 건너갔으나 중수로는 도입할 수 있었다. 미국이 한국의 약속을 믿은 것은 박정희 정부가 75년 4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비준한 데도 있다.
박 대통령 핵 개발 의지에 美 긴장
박정희 전 대통령은 외교상황의 변화에 따라 핵 개발 의지를 피력해 나갔다. 미국이 크게 긴장했음은 물론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핵무기 개발 계획의 핵심 실무를 맡았던 아주대 김철 교수는 최근 박정희 정부 시절의 ‘핵연료 재처리 시설 설계서’와 설계도면을 공개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당시 설계는) 순도 높은 플루토늄을 만들기 위한(즉 핵무기 연료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미국은 박정희 정부를 달래기 위해 ‘핵우산을 제공하겠다’ ‘주한미군을 줄이지 않겠다’는 등의 약속을 잇따라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미국과 ‘핵 숨바꼭질’을 벌이면서 원자로와 핵우산을 받고 원자력 기술도 발전시키는 외교적 수완을 발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강민석 ms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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