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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성
3 July 2019 · Public
꾸준히 주님을 바라보는 유익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사람이 도를 깨닫기 위해 산 속에 들어가, 기도에 전념하기 위하여 산 아래 마을에 사는 한 농부에게 자기를 위하여 식사를 날라 주도록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래 기도하여도 깨달아지는 것이 없어 한 수도사를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수도사는 식사를 날라다 주는 농부가 신앙이 아주 깊은 사람인데 농부의 집에 가서 며칠 머물면서 농부가 사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면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농부의 집에 가서 ‘이 농부에게 어떤 면이 있기에 배울 것이 있다고 했을까?' 생각하면서 유심히 지켜 보았습니다.
그런데 농부의 생활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주여!" 한 마디 외치고는 밭에 나가 일합니다. 저녁에 들어와서 저녁을 먹고는 또 "주여!" 한 마디 외치고는 누워 곤하게 잡니다.
이 사람이 수도사를 찾아가서 농부의 삶에서 깨달은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수도사는 그러느냐고 하면서 기름병을 하나 내 주면서 농부의 집에 다녀오는데 기름이 밖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수도사가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 기름병을 가지고 농부의 집에 다녀오는 동안 주님을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까?" 그는 기름이 흐르지 않도록 하는 일에 신경을 쓰느라고 한 번도 주님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수도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 보시오. 당신은 그 간단한 일을 하면서도 주님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농부는 그렇게 피곤한 삶 가운데서도 하루에 두 번이나 주님을 찾지 않소? 그대는 그저 기름이 흐르지 않도록 하는 것, 하나만 걱정했지만 농부는 걱정할 일이 얼마나 많소? 날씨 걱정, 씨 뿌린 것이 제대로 자랄까 하는 걱정, 새들이 와서 쪼아먹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 그렇게 걱정할 일이 많은 가운데서도 주님을 두 번이나 찾지 않소?"
이 사람이 크게 깨닫고 산에서 내려 왔다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주님을 갈망하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만 바쁘면 주님을 까맣게 잊어 버리고 사는 것을 풍자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이 마음에 거하신다는 것을 듣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믿지는 않습니다. 아니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을 생각하는 시간이라도 늘려 가자는 목적으로 매일 일기를 씁니다.
그런데 이처럼 꾸준히 주님을 생각하는 것이 주님과의 친밀함을 가지는데 너무나 유익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막연하게 여겨지던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물론 예수동행일기를 쓴다고 당장 큰 변화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꾸준히 일기를 쓰면서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주님께서 제가 일기를 쓰는 것을 보시고 말씀을 많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꾸준히 주님을 바라보려고 하니 이제야 귀가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느 간사님이 실패했던 일을 일기에 쓸 때는 마음이 무겁지만 다음에 같은 일을 겪을 때, 이전에 일기를 썼던 일이 기억나 달리 행동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매사에 주님을 생각하려고 하니 주님이 바라보아지는 것입니다.
만약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같은 실패를 계속 반복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아내가 임신하였을 때, 유난히 주위에 임신한 여자가 눈에 많이 뜨였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군에 입대한 후, 주위에 군인들이 더 많이 보인다는 권사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계속 생각하기에 그런 사람이 더 많이 보이는 것입니다.
24 시간 예수님을 생각할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달라질 리 없습니다.
그러나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을 경험하는 일이 많아집니다.
주님을 바라보되 꾸준히 그리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동행일기를 쓰되 주님을 사모하는 이들이 함께 쓰기를 권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