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5

jeanfrancois :: 톨스토이와 메이지 일본: 종교사상가로 소개된 톨스토이 [1]

jeanfrancois :: 톨스토이와 메이지 일본: 종교사상가로 소개된 톨스토이 [1]



. 11. 17:38

니콜라스(1836-1912). 1970년 시성. 러시아 정교회를 일본에 소개한 정교회의 사제.





개인적으로 톨스토이에 대해 관심이 많은 터에 우연히 접하게 된 책에, 공교롭게도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톨스토이를 유별난 방식으로 수입한 연유에 대해서 추적한 논문이 실려 있었다.

기연이라면 기연일텐데. 암튼 필리핀에서 시간도 보내던 차에 포스트나 만들자는 심사로 소개한다.



Translation and Conversion beyond Western Modernity: Tolstoian Religion in Meiji Japan, Sho Konish, in Converting Cultures:

 Religion, Ideology and Transformation of Modernity

(ed. by Dennis Washburn and A. Kevin Reinhart, Brill: Leinden and Boston, 2007)



Translation And Conversion Beyond Western Modernity: Tolstoian Religion In Meiji Japan

In: Converting Cultures

Author: Sho Konishi

Page Count: 233–265

DOI: https://doi.org/10.1163/ej.9789004158221.i-507.49







필리핀에 오기 직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책. 당시 톨스토이-러스킨-간디의 계보에 관심이 많았던 때, 우연히 일본에서의 톨스토이 종교의 수용에 관한 흥미로운 아티클

을 만난 것이다.



도덕경과 톨스토이, 고니시



니콜라이라는 정교회의 사제가 일본에 처음 들어와서 정력적으로 일본 정교회를 정초할 때 그의 총애를 받았던 일본인 정교회 신자가 바로 고니시 마쓰타로Konishi

Masutato였다. 고니시는 1886년 니콜라스의 기대를 한몸에 안고 키에프의 신학교로 유학을 가게 된다. 이 때 고니시는 도덕경을 러시아의 사교계에 소개를 하게 되는데, 특히

모스코바 심리학회에서 고니시가 도덕경을 강의하면서 톨스토이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왜 도덕경인가? 왜 도덕경이 당시 러시아의 지성계에 깊은 공명을 이끌어낼

수 있었는가?



저자-고니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그 이유를 메이지 연간의 정교회 신자 고니시가 이해한 노자라는 인물은 당시 러시아 지성계에 만연해있던 아나키즘과 사상적

인 공명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찾고 있다.



“고니시의 설명은 도덕경의 신학적인 측면과 그 사회적인 측면을 통합시켜 대중들에게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민들을 조직할 제도나 국가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무

정부주의자들에게도 말이다. N. N. Bazhenov는 고니시의 발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하고 있다. ‘노자의 윤리관은 흥미롭다. 로자는 루소의 선구자처럼 보인다. 그에게 자

연상태의 모든 것은 선한 것이다. 종종 노자는 무정부주의자나 허무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국사회를 파괴적인 전쟁과 불신으로 가득찬 인간관계에서 구하고자 한 노

자는 협동적인 소규모 자치공동체의 단순한 삶을 변호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고니시의 견해에 따르면, 러시아의 청중들이 노자를 무정부주의자로 수용하는데 관심을 갖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244-245)



톨스토이 역시 노자의 이런 무정부주의적인 면모에 매료되었다. 그가 도덕경에서 발견한 것은 제도종교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무기였다. 톨스토이는 고니시에게 도덕경을

함께 러시아로 번역 소개하자고 제안한다. 논문의 저자 고니시의 다음의 묘사를 보면 도덕경이 톨스토이의 무정부주의적인 종교관을 매개하는 방식, 즉 도덕경을 통해 톨스토

이가 그 자신의 무교회주의적인 종교관을 심화시키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크로포트킨과 같은 당대의 무정부주의자는 나중에 이를 톨스토이의 ‘새로운 보편종교’라고 부르고 있다. 1세기 이후 전개된 그리스도교의 제도적인 상황, 예컨대 경제적

사회적 계서제를 정당화하거나 톨스토이가 미신적인 관습이라고 부르는 교회의 정치에 대한 개입과 같은 모습 등에 실망한 톨스토이는 도덕경에서 종교적인 목소리를 발견

한 것이다. 톨스토이의 개인적인 편지나 일기를 보면, 도덕경이 톨스토이가 그리스도교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전개하는데 있어 멀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248)

톨스토이와 고니시의 협력의 산물인 러시아어 판 도덕경은 1894년 인쇄, 1913년 재판되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