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5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 - 한중일 승려들의 임종게 박노자,에를링 키텔센

알라딘: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 - 한중일 승려들의 임종게
박노자,에를링 키텔센 (지은이)책과함께2013-06-25


















































8.0100자평(0)리뷰(1)

271쪽
145*215mm
495g
책소개
한국과 중국, 일본 승려들의 임종게 60편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임종게를 풀이한 사람은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역사학자 박노자, 한 편의 임종게를 두고 함께 대담을 나눈 사람은 노르웨이 시인 에를링 키텔센이다. 두 사람이 각 편의 임종게를 두고 함께 대담을 나누었다.

선사들이 ‘나’와 ‘만물’을 상대화시키는 데 성공한 그 순간의 희열로 쓰는 오도송(悟道頌), 또 죽는 순간에 이해되는 ‘나’와 ‘세계’의 진상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임종게(臨終偈), 이 작품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복종을 전제로 하는 사후 안락의 세계관이 아니라 나와 만물의 상대화를 통해 삶과 죽음을 긍정하라는 것이다. 덧붙여 임종의 순간 발휘하는 놀라운 타자 지향성이야말로 죽는 사람의 인생 전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임을, 그리하여 “잘 죽으시기 바랍니다!”라는 인사가 얼마나 복된 축사인가를 말하고자 한다.


목차


추천글 신비화를 넘어 대화의 장을 열다 ─ 박성배
추천글 삶의 근본을 뒤흔드는 지혜의 경책에 대한 탐구 ─ 김환수

머리말 “잘 죽으시기 바랍니다!”

1 요람 줄을 끊다 ─ 혹암 사체(或庵師體)
2 커다란 고요함, 열반의 문 ─ 진각 혜심(眞覺慧諶)
3 수중에 겨우 지팡이 하나 ─ 원감 충지(圓鑑沖止)
4 이제서야 바로 섰다 ─ 무문 원선(無文元選)
5 죽음은 빈 하늘로 가는 달 ─ 무문 원선(無文元選)
6 벼락도 오히려 느리다 ─ 남포 소명(南浦紹明)
7 하늘엔 둥근 달만 ─ 오석 세우(烏石世愚)
8 불 속에서도 시원하오 ─ 쾌천 소희(快川紹喜)
9 산짐승이나 먹이게 ─ 고한 희언(孤閑熙彦)
10 알맹이를 전해주지 않았네 ─ 원이 변원(圓爾辨圓)
11 한평생 속였으니 ─ 퇴옹 성철(退翁性徹)
12 백억의 털끝마다 ─ 무학 조원(無學祖元)
13 다 보여주고 ─ 대우 양관(大愚良寬)
14 오호, 맙소사 ─ 몽창 소석(夢窓疎石)
15 허공에 입을 맞추다 ─ 종봉 묘초(宗峰妙超)더보기



추천글

박노자 교수의 임종게 해설은, 종래의 불교계에서 감히 뛰어넘지 못하던 고질적인 벽들을 과감하게 뛰어넘는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말투는 생각나는 대로 적어 내려가는 수필식이지만, 그의 생각은 항상 도전적이다. 첫째, 그는 임종게를 신비화하지 않는다. 그동안 불교계에서 쏟아져 나온 무수한 오도송이나 임종게를 한마디로 후려쳐버리는 도전적인 태도를 뚜렷하게 나타낸다. 원래 선사들이란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둘째로 그는 항상 죽음 자체를 신비화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거기서 생의 의미를 찾는다. 소홀히 넘겨서는 안 되는 중요한 대목이다.

- 박성배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부룩캠퍼스 불교학과 교수)

책을 읽으며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우주 종교를 제안한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다. “나의 영원은 지금 여기 이 순간, 나의 우주는 지금 여기, 나 자신 우주의 태어남과 죽음, 영원의 태어남과 죽음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다른 하나는 《화엄경》 이야기다. “우주 생명의 바다 위에 나라는 한 인간의 물결이 일고 가라앉네. 물결이 일고 가라앉음은 생명바다의 일상이네, 태어남은 무엇인가? 물결이 일어남이네. 죽음은 무엇인가? 물결이 가라앉음이네. 삶은 무엇인가? 물결이 일어나고 가라앉음이네. 내일과 죽음에 대한 최고의 준비는 무엇인가? 자비의 마음으로 현재를 온전히 사는 것이네.” 지금 순간에서 영원을, 지금 여기에서 우주를 살아간, 그리하여 삶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그들의 죽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고 유쾌한 일이다. 일독을 권한다.

- 도법 (조계종 화쟁위원장)

이 책 속엔 저자 자신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고민이 절실히 묻어나 있다. 자칫 우리와 차원이 다르게만 느껴지는 수행자들의 임종게에 저자는 비판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 또한 저자는 임종게를 자본주의 현실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타자를 배제하는 척박한 우리의 삶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지혜의 경책(警策)으로 제시한다. 단순하게 한 번 훑어보고 말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언제든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놓일 것이다.

- 김환수 (듀크대학교 종교학과/동양학과 교수, 《Empire of the Dharma》 저자)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3년 7월 1일 교양 잠깐독서



저자 및 역자소개
박노자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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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한국 고대사와 불교사 등을 연구했고 지금은 근대사, 특히 공산주의 운동사에 몰입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당신들의 대한민국』(1·2) 『우승열패의 신화』 『주식회사 대한민국』 등이 있다.


최근작 : <전환의 시대>,<한국지성과의 통일대담>,<러시아 혁명사 강의 (리커버 에디션)> … 총 87종 (모두보기)
인터뷰 : 이중의 타자, 박노자 교수와의 e-만남 - 2002.07.31

에를링 키텔센 (Erling Kittelsen)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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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시인. 2004년에 김남주의 시를 포함한 한국의 시들을 모아 ≪한국명시집≫을 출간했으며, 그 밖에 비서구권 시 작품을 다수 번역했다. 2002년에 스웨덴과 노르웨이 문학상인 도블로(Dobloug)상을 수상했으며, 2006년에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방한한 바 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1. 기획 의도

“삼천대천의 우주를 깨부수고, 산 채 황천에 가리라”

복종을 전제로 하는 사후 안락의 세계관을 넘어
나와 만물의 상대화를 통해 삶과 죽음을 긍정하다

한국과 중국, 일본 승려들의 임종게 60편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임종게들을 풀이한 사람은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역사학자 박노자, 한 편의 임종게를 두고 함께 대담을 나눈 사람은 노르웨이 시인 에를링 키텔센이다. 동아시아 선사들의 임종게가 한국을 비롯해 비서구권의 시 작품을 번역해온 시인과 오슬로 대학의 동아시아학 및 한국학 교수를 만나게 해준 것이다.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부제: 한중일 승려들의 임종게)는 두 사람이 노르웨이어로 펴낸 임종게 모음집 ≪Diamantfjellene(금강산)≫의 번역본이다.

박노자는 동아시아학을 전공한 관계로 임종게들을 불교 전통 속에서 그리고 오늘날 한국 사회의 맥락 속에서 해석하려 했고, 에를링 키텔센은 스칸디나비아 신화 등 자국 문화를 이용해서 임종게를 새롭게 이해하고자 했다. 변화무쌍한 세상의 고통 속에서 이고득락(離苦得樂)한 인간이 남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그 체질적 무의식에 어떤 이론적 근거를 대려고 하는 인간의 본원적 마음을 불교라고 폭넓게 바라본다면, 이러한 시도는 낯설지만 유의미하다. 불교적 시구를 이질적인 맥락 속에서 풀이함으로써 그 전복적 성격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며, 제자들과의 대화 일부분인 임종게들을 독백이 아닌 대화로 풀어냄으로써 상대적인 깨달음의 언어를 더욱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인과 불교학도가 함께 선별해서 주석한 뒤에 낭송하던 임종게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새롭게 읽어줄 독자들을 기다린다. 선사들이 ‘나’와 ‘만물’을 상대화시키는 데 성공한 그 순간의 희열로 쓰는 오도송(悟道頌), 또 죽는 순간에 이해되는 ‘나’와 ‘세계’의 진상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임종게(臨終偈), 이 작품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복종을 전제로 하는 사후 안락의 세계관이 아니라 나와 만물의 상대화를 통해 삶과 죽음을 긍정하라는 것이다. 덧붙여 임종의 순간 발휘하는 놀라운 타자 지향성이야말로 죽는 사람의 인생 전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임을, 그리하여 “잘 죽으시기 바랍니다!”라는 인사가 얼마나 복된 축사인가를 말하고자 한다.

2. 내용과 특징

임종하는 선사가 베푸는 마지막 자비심, 임종게

선사들은 오도송(悟道頌)이나 임종게(臨終偈)를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완성하고 아무런 집착 없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의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전했다. 한중일 선사들의 임종게 60편을 모은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에는 ‘나’와 ‘만물’을 상대화하는 데 성공한 순간의 희열로 가득하다. 그리하여 세계에 대한 고정관념의 전복, ‘나’와 ‘세계’의 상대화를 통한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의 해방을 노래한다. 눈이 이마까지 덮을 정도로 내리는 가운데 참선을 하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던 혜심 스님은 죽기 직전에 쓴 시를 통해 죽음을 '고통이 없는 열반의 커다란 고요함'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기근과 전화로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다간 세우 스님은 언젠가 생사의 고통을 끝낼 수 있다는 희망을 '하늘에 뜬 둥근 달'로 표현했다. 이처럼 선사들의 임종게는 '최후의 설법' 역할을 했다. 나아가 한 편의 문학작품처럼 전복적인 표현으로 가득한 임종게들도 있다. “나무 사람 고개에서 옥피리 부니, 돌여자가 시냇가서 춤을 추노라”(향곡 혜림), “나이 마흔여덟에, 성인도 범인도 모조리 죽였네. 영웅이라서 아니고”(도솔 종열), “이제는 모든 걸 떨쳐버려 삼천대천의 우주를 깨부수네. 어허, 이제 온몸으로 구할 것 없으니 산 채 황천에 가리라”(도원)에서처럼 도발적이며 자극적인 글들을 통해 '깨침'을 더 빨리 이루게 하는 마지막 ‘사자후’가 곧 임종게다. 또한 생의 한계를 벗어난 선사들의 임종게는 삶과 죽음의 순환 속에서 한 개체의 자리가 얼마나 미미한지를 보여준다. “강법에 잘못과 실수가 많아, 서쪽을 가리키는데 도리어 동쪽을 향한다”(호암 체정), “아무것도 해놓은 것 없거니, 임종게를 남길 이유가 없네”(원오 극근), “육십삼 년 동안 한마디 설법도 안 했었네”(경당 각원) 등에서 죽음을 앞둔 사랑의 교훈을 깨달을 수 있다.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원, 공(空)을 직시할 용기를 주는 것보다 더한 자비심은 없을 것이다.

“잘 죽으시기 바랍니다” 인사를 보내는 박노자

박노자 교수는 한국에 대한 애정과 약자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더 나은 한국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자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아울러 근현대 불교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인물과 사상≫ 등에 불교 관련 글을 다수 연재하기도 했다. 이 책은 승려들이 죽어가는 순간에 궁극적 진리를 전달한 임종게에서 진정한 진보적 심성, 곧 ‘자비심’을 발견하고 그 국역 및 해설 작업에 몰두한 결과물이다. 그가 선불교의 죽음관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그것이 '복종을 전제로 하는 사후 안락'의 세계관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삶과 죽음의 상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책에 수록된 57인의 선사들은, 삶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고 죽음은 삶의 유기적 일부분임을 깨닫고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경지를 보여준다.

박노자 교수가 보기에 이러한 경지는 선불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신비주의자들이 그러했고 인류의 해방을 도모하려 했던 근현대의 혁명가들도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신을 매우 성공적으로 해방시켰다. 이타적인 동기를 강하게 지니고 있는 그들이야말로 달리 보면 선불교에서 다소 소홀히 다뤄지는 자비심이라는 원시불교적 덕목을 더 많이 지니고 있었다고 본다. 그리하여 박노자 교수의 임종게 해설은 선사들 각각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한 편의 임종게만이 아니라, 그들이 남긴 삶의 궤적을 하나의 작품으로 분석한다. 전란의 시대에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국가의 부름에 어떠한 응답을 했는지, 깨달음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등을 통해 임종게를 신비화하지 않고, 임종게 또한 전복시키는 도전적 태도를 보인다. 원래 선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한중일 불교 수행자들이 남겨놓은 임종게 풀이를 통해 박노자 교수는 삶을 냉철하게 되돌아볼 것을 제안한다. 임종게 한 편 한 편에 대한 그의 글들은 자본주의 현실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타자를 배제하는 척박한 우리 삶을 뒤흔드는 지혜의 경책이 되어줄 것이다.

시인이 건져 올린 임종게의 화두들

“인생은 진리를 향한 여행이고, 특정 종교의 가르침이나 신앙 시설 따위는 그 길에 서 있는 여관이다. 여관에서 잠시 머물 수야 있지만, 여관이 우리 길의 종점이 아님을 잘 기억해야 한다.” 불자(佛子)가 아닌 노르웨이 시인 에를링 키텔센이 동양의 승려들이 남긴 임종게를 읽고 찾아낸 화두들은 다양하다. 중생의 최강 무기인 ‘진정성’, 결말을 향한 삶(‘욕망’)의 고통 등을 시인의 언어로 풀이한다. 또한 북유럽 신들의 이야기는 시인의 세계관을 전하는 주요한 매개체이다. 에시르라는 신들이 다른 창세의 신인 요툰 신 등을 없애려 해도 세계의 뿌리에 속하는 그들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는 스칸디나비아 신화를 통해 그만큼 전체를 위해 타자의 존재가 핵심적이며 서로 숙명적으로 묶여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에다≫ 신화에 등장하는 헤임달이라는 초소병 노릇을 하는 신처럼, 현실을 살아가면서 하늘의 관문을 뚫고 지축을 뒤집는 지혜에 귀를 기울여야만 생명을 지속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시인이 마지막으로 전하는 삶의 비의는 단순하다. “마지막 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이 만들 수 있는 모든 기적에 열려 있다……. 바랄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은 낭떠러지를 향해서도 흔쾌히 한 걸음씩 나아간다. 끊임없이 굴러가는 운명의 바퀴와 함께 훨씬 더 쉽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도 임종게 한 편을 전한다. “죽음이란 그저 작은 일일 뿐임을 알게 됨으로써 누군가는 계속 살고, 누군가는 가까스로 살아남고, 누군가는 다시 시작한다.”

불교학도라는 겸손의 표현으로 박노자 교수가 시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그가 정신적 통찰과 더불어 평범한 삶의 지혜를 전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진짜 마음’이니 하는 표현이 무의미하지 않은가 하는 질문에 시인은 “‘진짜 마음’의 더 적절한 표현을 찾으려고 노력하거나, 그 의미를 받아들여야 한다. 현실에 대한 욕망 등을 끊고 잠시나마 ‘진짜 마음’만을 직시할 수 있다면,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라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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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48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

박노자·에를링 키텔센

책과함께

2013.6.25.







그 ‘길’이란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기뻐하지도 않는, 이미 가라앉은 마음속에 있지 않은가? (39쪽)




스님으로서 받아야 할 존경을 받기가 하도 싫어서 그랬단다. 비천한 일을 찾아 도맡아 하고, 비천한 옷을 입고, 비천한 음식을 먹고, 막노동꾼으로 살고……. 그는 ‘권위’를 갖게 될 것 같아 늘 도망 다녔다. (63쪽)




그의 장기는 시 외에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는 것이었다. (79쪽)




손을 무릎에 얹어놓고 가만히 있으면서 계속 올라갈 수도 있다. 거리를 두지 않고, 그러고는 가지도 않고 계속 머물지도 않는 그 뭔가를 마음에 늘 간직하면 된다. 빛을 설명해 주는 것은 바로 그 그림자다. (136쪽)




한국에서 제2의 카프카가 태어난다 해도 ‘명문대’ 간판이 없는 한 그의 소설을 실어 줄 잡지조차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궁극의 지점, 즉 죽음의 문턱에 가면 이 모든 간판이 다 우습게 보이지 않겠는가? (167쪽)







한국말에 ‘중·스님’ 두 가지가 있습니다. 불교라는 길을 가는 사람을 수수하게 가리킬 적에는 ‘중’이요, 중이라는 삶길을 슬기롭거나 사랑스레 가는구나 싶으면 ‘스님’이라 해요. ‘스님’은 때로는 달리 쓰기도 합니다. 슬기롭거나 사랑스러운 중뿐 아니라, 우리한테 삶길을 새롭거나 슬기롭거나 사랑스레 밝혀 주는 스승이 될 만한 분한테도 이 이름 스님을 씁니다.




한국말 ‘중·스님’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만, 다른 길을 새롭게 가면서 깊이 배우고 넓게 깨달아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이러한 낱말에 담았지 싶어요. 불교라는 틀을 넘어 목사나 신부 같은 믿음길을 걷는 사람도 어느 모로 보면 ‘중·스님’일 수 있습니다.




예부터 시골사람은 불교나 천주교나 개신교 같은 이름을 따지기보다는, 믿음길을 가니 다들 ‘중’이요, 믿음길이 깊거나 넓으니 모두 ‘스님’으로 여겨 버릇합니다. 아마 어려운 말이나 경전은 알 수 없지만, 됨됨이와 매무새와 몸짓과 말씨를 살펴서 서로 마주하려 했지 싶습니다.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박노자·에를링 키텔센, 책과함께, 2013)라는 책은 믿음길을 배움길로 삼아서 삶길로 다스리려 한 옛어른 가운데 불교라는 자리에서 슬기로운 말씀과 몸짓을 남긴 분들 이야기를 갈무리합니다.




어느 스님(또는 스승)은 말과 책을 남기고, 어느 스님(또는 스승)은 아이들하고 놀거나 흙일이나 막일을 하는 몸짓을 남겼다고 해요. 삶을 배우려고 삶길을 걷다가 깨달아 말이나 몸짓을 남깁니다. 삶길에 배운 아름다운 이야기를 수수한 살림살이에 녹여내어 여느 수수한 이웃한테 부드럽고 쉽게 들려줍니다.




깨달으려는 길이란 스스로 배우려는 길이면서, 스스로 기쁘게 배워서 이웃하고 널리 나누려는 길이겠지요. 그러니 깨달은 스님(또는 스승)은 아이들하고 해맑게 뛰놀 줄 아는구나 싶습니다. 아이들하고 놀 줄 아는 마음,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도록 이끌 줄 아는 몸짓, 스스로 아이로 살아가는 어른인 하루, 이러한 나날을 오늘 우리도 즐겁게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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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8-11-12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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