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칼럼] 한국 자본의 ‘통념’, 인종주의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모바일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여주었던 <톰 아저씨의 오두막> 장면들은 필자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혹서의 미국 남부 여름에, 뙤약볕에 땀을 흘리는 흑인 노예, 그
리고 채찍으로 그들을 위협하면서 “야, 이놈들아, 해는 아직 지지 않았으니 열심히들
하라”고 고함을 지르는 백인 지배인…. 소련 텔레비전에서 이와 같은 영화들을 ‘제국
주의 역사 바로 알기’ 차원에서 보여주었는데, 필자 또한 이 장면이 현재와는 무관하
다고 믿으면서 자랐다. 대한민국이 앞장서는 요즘의 신자유주의적 ‘노동착취의 지구
화’ 현상을 알게 되고서야 인종주의적이며 폭력적인 노동자 혹사가 현재형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
“열대의 뜨거운 공기 속에서 수백명의, 주로 피부색이 가무스름한 인디언 계통의 젊
은 여성들은 방직 작업에 열중한다. 옆에 있는 동료에게 말 걸기조차 무섭다. ‘잡
담’하다가 걸리면 한국인 관리자가 와서 머리를 마구 때리거나 적어도 폭언을 쏟아
붓기 때문이다. 체벌을 당하면 악취 나는 화장실로 도망가듯이 가서 실컷 울기라도
하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화장실을 자주 다닌다고, 한국인 관리자가 면박 주거
나 또 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관리자가 보통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로 고함 지른
다. 그러나 이러다가 ‘빨리빨리’와 ‘개새끼’ 등 일부 단어들을 가무스름한 피부의 모
든 노동자들이 알게 되는 것이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 장면을 연상시키는 위의 이야기는 한 인권활동가가 묘사한
1980년대 말 과테말라 한국계 방직회사의 일상이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에
국내에서 과거와 같은 마구잡이 임금착취가 어려워지자 방직업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친한적인’ 극우정권이 다스리는 과테말라와 같은 나라들로 ‘진출’하기 시작했
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과테말라에서 제1위 투자국가였는데, 그 ‘성
공’의 이면에 피부색이 검은 인디언 노동자들에 대한 기록적인 혹사와 일상화된 체
벌·폭력이 있었다. 한국계 공장에서의 폭력이 어느 정도 심했기에 한국과 과테말라
양쪽 정권의 ‘기둥서방’ 격인 미국의 국무부마저도 결국 ‘조사’를 해야 할 정도였을
까? 한국 기업들에 의한 폭력과 초과착취, 군사주의적 노동자 통제의 ‘해외수출’의
효시 중 하나였던 과테말라 투자 붐은 결국 중국과 베트남의 부상으로 끝났지만, 한
가지는 바뀌지 않았다. 백인이 아닌, 특히 피부색이 까만 외국 노동자에 대한 끝이
없는 인격적 무시와 끔찍한 폭력의 연속, 즉 살인적 인종주의다.
[박노자 칼럼] 한국 자본의 ‘통념’
, 인종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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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2-01-31 16:29
수정 2012-02-01 17:23
사설.칼럼
물론 한국 기업의 착취와 부당노동행위의 일차적 피해자는 누구보다도 국내 노동자
들이다. 또한 백인 노동자라고 해서 이윤추구에 눈이 먼 국내 자본가들로부터 각종
권리침해를 당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한국 학원업자들의 영어 원어민 강사
(주로 미국 등 국적의 백인)에 대한 임금체불, 잔업강요, 퇴직금 지급 거부 등 각종
부당노동행위는 이미 국제적으로 문제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이나 백인에
대해서는 적어도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거나 ‘노예취급’ 하듯이 대하는 경우는 그
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검둥이’, 피부색이 가무스름한 노동자들에 대한 대접은 완
전히 다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2011년 12월호에서 보도된 한국 참치
배에서의 인도네시아 선원에 대한 상습적 가혹행위 등의 만행은 예외라기보다는 다
반사에 가깝다. 한국 기업의 착취 대상이 된 피부색이 까만 사람은 언제나 폭력이나
폭언을 각오하고 살아야 한다.
최근 국내에서 벌어지는 인종주의 관련 논의의 초점은 국내 거주 동남아인이나 흑
인 등에 대한 몰상식한 일부 일반인의 모욕 등에 맞추어져 있다. 서민들까지 지배자
들의 ‘통념’을 그대로 배우는 것도 물론 한탄스러운 일이지만, 문제의 핵심은 미국식
‘인종 질서’를 그대로 익혀 인종주의를 착취의 무기로 삼는 한국 자본가들이다. 그들
이야말로 한국을 피부색이 다른 사람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살기가 어려운 곳 중 하
나로 만들었다. 과연 우리들이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는 연대정신으로 그들의 ‘통
념’에 맞설 수 있을 것인가?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