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5

알라딘: [전자책]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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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가 아닌 새로운 생활의 이해다  epub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은이),박홍규 (옮긴이)들녘2016-06-24

종이책
16,000원 14,400원 (마일리지800원)
전자책정가
11,200원


기본정보
제공 파일 : ePub(6.55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504쪽, 약 37.8만자, 약 9.5만 단어
ISBN : 979115925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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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톨스토이가 1891년 63세에 쓰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893년에 집필을 종료했으나 바로 검열에 걸려 러시아에서는 출판되지 못하고 1년 뒤인 1894년 독일과 영국에서 출판된 저작이다. “권력과 억압, 강제를 거부하고, 신의 계율인 사랑과 평화, 자유를 받아들여 개인의 인식을 바꾸고 생활을 바꾸어야만 인민 각자가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었고, 특히 간디의 생활을 바꾼 것으로 유명하다.

톨스토이는 세 가지 인생관―개인적인(동물적) 인생관, 사회적인(이교도적) 인생관, 신적인(영성적) 인생관―에 따른 인류의 발달 과정과 각 차원에 수반되었던 모순들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하면 ‘신의 나라’라고 일컫는 고차원적인 삶에 이를 수 있는지 그 길을 안내한다.

권력의 악행을 비판하는 무저항 사상 소개를 시작으로 기독교 내부와 학자들에게 만연한 그리스도 가르침의 오해, 전쟁이나 병역의무 같은 국가 권력에 대한 복종 및 불복종, 그 결과로 인민들이 당면하게 되는 생활과 양심 사이의 문제 등을 거쳐 진정한 해방은 외부적 조건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더불어 인생관의 변화 아래에서만 가능함을 논리적으로 정연하게, 그리고 아름답고 풍성한 은유와 함께 보여준다.

톨스토이는 ‘신의 나라’가 ‘네 안에 있다’고 말한다. 천국이나 천당이 있다면 그것은 곧 나의 실천, 나의 생활, 나의 삶 속에 있는 것으로, 이는 우리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도무지 접근 불가능하다는 뜻이다.‘기독교는 신비의 종교가 아닌 새로운 생활의 이해’라는 부제와 함께 생각할 때 한층 명확해진다.
목차
옮긴이 해제
머리말

제1장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의 사상사
퀘이커파의 무저항 사상 | 게리슨의 무저항 사상 | 발루의 무저항 사상 | 발루의 무저항 교리 문답 | 헬치츠키의 무저항 사상 | 디몬드의 무저항 사상 | 무서의 무저항 사상 | 러시아의 양심적 병역 거부

제2장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에 관한 비판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종교적 비판의 무책임성 | 진실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성직자와 당국의 잘못된 태도 | 여러 비판의 공통된 문제점 | 러시아 자유사상가들의 비판 | 외국인 자유사상가들의 비판 | 자유사상가들이 오해한 그리스도의 가르침

제3장 기독교도의 기독교 오해
대다수가 오해한 기독교 교리 | 그리스도 최초의 가르침 | 교회에 의한 기독교의 신비화 | 그리스도가 교회를 세웠을 리 없다 | 교리 문답에 따른 교회의 정의 | 교회는 언제나 여럿이고 서로 적대적이다 | 이단이란 무엇인가? | 이단에 관한 아놀드의 견해 | 교회들은 인민을 분열시키고 기독교에 적대적이다 | 러시아 교회가 하는 일 | 산상수훈인가, 사도신경인가 | 러시아 정교회는 기독교의 진정한 의미를 숨긴다 | 다른 나라 교회도 마찬가지다 | 교회 교리를 파괴하는 현대 생활의 외부 조건 | 교회의 최면술과 기만술

제4장 학자들의 기독교 오해
종교란 무엇인가? | 세 가지 인생관 | 기독교적 인생관에 대한 학자들의 오해 | 기독교의 무저항 교리에 대한 학자들의 오해 | 학자들이 주장하는 사회적 인생관과 신적 인생관의 차이 | 학자들의 첫째 오해_실천 불가능성 | 산상수훈의 다섯 가지 계율 | 학자들의 둘째 오해_신에 대한 봉사를 인류에 대한 봉사로 대체 | 인류란 무엇인가?

제5장 생활과 양심의 모순
생활을 바꾸어야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있다 | 기독교적 인생관은 생활의 진행에 의해 필연적으로 선택된다 | 빈부 갈등의 경제적 모순 | 정치적 모순은 더욱 심각하다 | 국제적 모순과 동시대인에 의한 인식_코마로프스키, 페리, 부스 | 국제적 모순과 동시대인에 의한 그 인식_파시, 로슨, 윌슨, 바틀렛, 디푸르니, 모네타

제6장 전쟁 비판
생활과 양심의 모순 | 평화회의 | 맥심 드 캄프의 주장 | 중재 법정의 가치와 군대의 감축 | 모파상의 전쟁관 | 로드의 전쟁관 | 두스의 전쟁관 | 클라레티의 전쟁관 | 졸라의 전쟁관 | 드 보그의 전쟁관

제7장 병역의무의 문제
병역의무는 사회적 인생관에 내재된 모순의 극치다 | 권력의 기초는 신체적 폭력이다 | 권력은 폭력을 수행하기 위해 특별한 기구를 필요로 한다 | 노동자 대중에 대한 권력의 태도 | 카프리비의 연설 | 군대는 지배 계급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 | 병역의무는 국가가 보존해야 하는 사회생활의 이로움을 파괴한다 | 국가는 과연 필요한가? | 국가에 대한 불복종과 복종의 비교

제8장 무저항 수용의 필연성
기독교는 새로운 인생관으로 소수에 의해 인정되었다 | 무저항 수용의 필요성에 대한 예언 | 분쟁을 조정하는 두 가지 방법 | 예수의 가르침_권력의 악행에 대한 저항 금지 | 폭력을 사용하는 네 가지 방법_협박, 매수, 최면, 군사적 강압 | 국가 폭력은 폭력적 국가 전복으로 억제될 수 없다 | 권력의 악행에 대한 저항과 무저항의 문제 | 구원의 시기와 방법 | 이교적 인생관의 사회는 반드시 사라진다 | 현대 모순의 극치인 징병제 | 이교적 생활은 극한에 도달해 전멸할 것이다

제9장 기독교적 인생관의 수용이 유일한 해방
기독교인의 외부적 생활은 아직도 이교적이다 | 인간은 오직 기독교를 통해서만 권력으로부터 해방된다 | 해방은 생활의 외부적 조건이 아니라 인생관이 변할 때 가능하다 | 국가에 의한 물질적 상태의 변화라는 구원 추구는 잘못된 것이다 | 인민은 스스로를 노예로 만든다 | 인민의 자유는 오로지 개인의 자유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 러시아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 다른 나라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 충성 선서, 세금 납부, 통행권, 경찰의무, 병역의무에 관한 러시아인들의 불복종

제10장 국가는 필요 없다
국가의 필요성에 대한 논쟁 | 기독교인의 국가 불필요론 | 보수주의자의 국가 옹호론 | 가장 악한 자는 권력자다 | 권력자의 변명 | 폭력은 기독교에 의해 감소된다 | 외부적 방법에 의한 진리 인식 | 여론과 폭력 | 소위 야만인에 대한 기독교의 영향 | 범죄자에 대한 기독교의 영향 |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제11장 기독교적 인생관이 폭력을 끝낸다
폭력은 여론으로써 파괴될 수 있다 | 상류 계급의 변화 | 폭력 기관의 변화 | 폭력적 국가 기관을 두어야 하는가? | '벌거숭이 임금님'의 이야기 | 구원은 인민 자신에게 달려 있다

제12장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폭력에 기초한 특권 | 군대 | 권력의 노예에서 탈출하라 | 과학적 개선 방법의 문제점 | 참된 자유 | 반성하라

접기
책속에서
사람은 혼자서 살인을 하지 않는다. 그가 같은 인간을 죽인다면 그는 살인자다. 만일 2명, 10명, 100명이 그렇게 한다면 그들 역시 살인자들이다. 그러나 국가나 국민이, 그들이 좋아하는 만큼을 죽인다면 그것은 살인이 아니라 위대하고 고귀한 행위가 된다. 사람들을 대규모로 함께 모은다면 수만 명의 학살은 무죄의 행위가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정확히 몇 명의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다. 혼자서는 약탈하거나 강탈할 수 없으나 전 국민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려면 정확히 몇 명이 필요한가? 왜 1명, 10명, 100명으로는 신의 율법을 깨어서는 안 되는데, 엄청나게 많은 수의 국민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_1장 <발루의 무저항 사상> 중에서  접기
어린이의 의식이 가장 먼저 일깨워질 때부터 교회는 그를 속인다. 그들 스스로도 믿지 않는 것을 최고의 엄숙함으로 포장하여 어린이들에게 주입시키고, 이것이 어린이의 본성 안에 습관으로 고착될 때까지 계속해서 주입하고 또 주입한다. 즉 그들은 매우 교묘하게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에 대하여 어린이를 기만하고, 그 기만이 어린이와 함께 자라게 하여 그것을 뿌리 뽑기조차 어렵게 만든다. 물론 그런 다음 그들에게 전체 세상의 학문과 현실을 보여주지만, 이것은 결코 어린 시절 이미 주입된 믿음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교회는 이제 인민들 각자가 이러한 모순으로부터 최선을 다해 자기 길을 찾아가도록 책임을 돌려버린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려면, 특히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주입한 두 가지 반대되는 이론 때문에 영혼이 혼미하여 명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게 만들거나 생각 자체를 할 수 없게 만들려면,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 사회에서 교육받도록 권유하면 된다. 아마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_3장 <교회의 최면술과 기만술> 중에서  접기
그러나 인간의 삶은 우리 안에 있는 동물적 존재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신의 뜻에 오롯이 부합한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다. 인간의 삶은 동물적 삶과 신적인(또는 영성적인) 삶의 합성이다. 이러한 합성이 신적인(또는 영성적인) 삶에 접근하면 할수록 인간의 삶은 더더욱 신적인(또는 영성적인) 삶 속에서 더욱더 커지게 된다. 기독교에 의한 삶은 신적인(또는 영성적인) 완성으로의 꾸준한 전진이다. 따라서 어떤 상태가 다른 것보다 높거나 낮을 수 없다. 이 모든 각각의 상태는 도달할 수 없는 완성을 향한 길 위에 있는 특정한 단계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자체로서 위대하다거나 초라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우리가 신적인(또는 영성적인) 생활의 완성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는 길만이 삶의 향상을 가져올 따름이다. 그러므로 세리 삭개오나 간통녀,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렸던 강도가 완성을 향해 떼었던 그 발걸음들은 바리새인의 정체된 정의보다 더 높은 정도의 생활임을 암시해준다. 따라서 이 종교에는 반드시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는 계율이 없다. 낮은 단계에 있더라도 완성을 향하여 계속 움직이는 사람은 완성을 향해 계속 움직이지 않는 비록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갖춘 사람이라 해도 사람보다 더욱 도덕적이며, 더욱 나은 삶을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더욱 많이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양이 잃어버리지 않은 양보다 아버지에게 더욱 소중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나 잃어버린 몇 푼을 다시 찾은 이야기 등도 마찬가지다._4장 <학자들의 첫째 오해_실천 불가능성> 중에서  접기
압제자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비록 스스로는 원한다 할지라도 압제자들은 압제를 끝낼 수 없다. 그들이 압제의 강도를 늦추는 그 순간에 바로 그들 스스로가 멸망하리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노동 계급의 복지, 8시간 노동제, 연소자와 여성의 노동, 저축은행과 연금에 대해 배려해주는 척하면서 한편으로 압제를 늦추지 않는다. 이 모든 기만은 그저 사탕발림이거나, 노예들이 그들의 일을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도록 제자리에 잘 묶어두려는 제스처일 뿐이다. 그러나 노예는 여전히 노예이고, 노예 없이 살 수 없는 주인은 이전보다 더욱 단단하게 그를 얽매고자 한다. 노예를 자유롭게 풀어줄 마음을 가진 주인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동자에 대한 지배 계급의 태도는 적을 땅에 넘어뜨린 뒤 꽉 붙잡고 있는 사람의 태도와 같다. 그러나 이는 그에게 적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단 1초라도 적에게 자유를 허용할 경우, 손에 칼을 든 채 성이 잔뜩 난 적이 자신을 찔러 죽일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_5장 <빈부 갈등의 경제적 모순> 중에서  접기
애국적 미신은, 인민으로부터 거두어들인 돈으로 국경일 행사라든지 구경거리, 기념물 제작이나 축제 등 행사들을 벌여 인민이 자신의 국가와 통치자들의 권위를 느끼고 이에 중요성을 부여하도록, 그리고 자기 국가를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자국과 그 통치자들이 위대하다고 인식시키며, 다른 국가에 대해 반목하고 증오심을 느끼도록 유도하고 장려하는 제반 행동에 있다.
이런 목적을 가진 독재 국가에서는 인민을 계몽하는 책을 인쇄하거나 배포하거나 연설하는 것을 금지하게 마련이다. 인민을 무감각으로부터 깨우려는 사람은 누구든 추방되거나 투옥된다. 어디 그 뿐인가? 모든 국가에서 예외 없이 인민을 해방하여 자유롭게 만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억제되고, 인민을 부패하게 만드는 것은 도리어 장려된다. 가령 종교적 및 애국적 미신 같은 야만주의에 그들을 묶어두는 것은 문학 작품, 모든 종류의 감각적 오락, 구경거리, 서커스, 극장, 그리고 심지어 중독을 초래하는 담배나 술 같은 육체적 수단 같은 것인데, 이것들은 대개 국가의 주된 수입원이다. 심지어 매춘도 인정되고 장려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가 앞장서 조직하기도 한다._8장 <폭력을 사용하는 네 가지 방법_협박, 매수, 최면, 군사적 강압>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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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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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남러시아 툴라 지방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가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 밑에서 성장했다. 1844년 카잔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학교육에 실망하여 삼 년 만에 자퇴하고 귀향했다. 고향에서 새로운 농업경영과 농민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1851년 큰형이 있는 캅카스로 가 군대에 들어갔다. 1852년 「유년 시절」을 발표하고, 네크라소프의 추천으로 잡지 『동시대인』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한편, 농업경영과 교육활동에도 매진해 학교를 세우고 교육잡지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대작을 집필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 명성을 얻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뒷부분을 집필하던 1870년대 후반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는다. 이후 원시 기독교에 복귀하여 러시아 정교회와 사유재산제도에 비판을 가하며 종교적 인도주의, 이른바 ‘톨스토이즘’을 일으켰다. 직접 농사를 짓고 금주와 금연 등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빈민구제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1899년에 발표한 『부활』에서 러시아정교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1901년 종무원으로부터 파문당했다. 1910년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부인과 불화가 심해지자 집을 나와 방랑길에 나섰으나 폐렴에 걸려 아스타포보 역(현재 톨스토이 역)에서 82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접기
최근작 : <인생이란 무엇인가 3>,<예술은 무엇인가>,<안나 까레니나 3-2 (큰글자도서)> … 총 1195종 (모두보기)
박홍규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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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학교, 노팅엄대학교, 프랑크푸르트대학교에서 연구하고, 오사카대학교, 고베대학교, 리츠메이칸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영남대학교에서 1991년부터 2018년까지 노동법 등을 가르쳤고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법은 무죄인가』로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주요 저서로『내 친구 빈센트』,『자유인 루쉰』,『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마라』,『조지 오웰』,『아나키즘 이야기』,『자유란 무엇인가』,『철망 속에서도 희망을』,『함석헌과 간디』, 『몬테베리타... 더보기
최근작 :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놈 촘스키>,<존 스튜어트 밀> … 총 207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러시아 교단은 이 책을 읽고 톨스토이를 파문했고,
마하트마 간디는 이 책을 읽고 비폭력운동을 시작했다!
모든 권력과 억압, 강제를 거부하고, 우리의 의식 앞에 소환된 사랑과 평화, 자유의 계율을 받아들이라고 권면하는 사상가 톨스토이의 명저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국내 최초 완역판!
이 책은 톨스토이가 1891년 63세에 쓰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893년에 집필을 종료했으나 바로 검열에 걸려 러시아에서는 출판되지 못하고 1년 뒤인 1894년 독일과 영국에서 출판된 저작이다. 사실 톨스토이가 1880년대 집필했던 저서 가운데 대다수는 그의 조국 러시아에서 출간 금지를 당했다. 그 바람에 그는 러시아보다 유럽에서 먼저 유명세를 타게 되었는데, 그중 특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이다. “권력과 억압, 강제를 거부하고, 신의 계율인 사랑과 평화, 자유를 받아들여 개인의 인식을 바꾸고 생활을 바꾸어야만 인민 각자가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었고, 특히 간디의 생활을 바꾼 것으로 유명하다. 간디는 1894년 막 영국에서 출판된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를 남아프리카에서 읽은 뒤 비폭력운동을 시작했고, 그것은 곧 20세기의 마틴 루서 킹을 비롯한 많은 비폭력운동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이후로도 종교인은 물론 다양한 위치에서 활동하는 여러 사람들에게 국가와 종교, 진리와 자유, 평등과 평화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 책에서 톨스토이는 세 가지 인생관―개인적인(동물적) 인생관, 사회적인(이교도적) 인생관, 신적인(영성적) 인생관―에 따른 인류의 발달 과정과 각 차원에 수반되었던 모순들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하면 ‘신의 나라’라고 일컫는 고차원적인 삶에 이를 수 있는지 그 길을 안내한다. 권력의 악행을 비판하는 무저항 사상 소개를 시작으로 기독교 내부와 학자들에게 만연한 그리스도 가르침의 오해, 전쟁이나 병역의무 같은 국가 권력에 대한 복종 및 불복종, 그 결과로 인민들이 당면하게 되는 생활과 양심 사이의 문제 등을 거쳐 진정한 해방은 외부적 조건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더불어 인생관의 변화 아래에서만 가능함을 논리적으로 정연하게, 그리고 매우 아름답고 풍성한 은유와 함께 보여준다. 이 책의 1장은 비폭력에 관한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고, 2장은 러시아 정교회의 기독교 복음에 대한 해석에 대한 반론이다. 3장은 기독교에 대한 기독교도의 오해를 비판한 것이며, 4장은 학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비판한 것이다. 5장에서는 생활과 양심의 모순에 대해 말한 뒤, 6장과 7장에서는 각각 전쟁과 병역의무를 비판한다. 그리고 8장에서는 무저항 수용의 필연성, 9장에서는 기독교적 인생관의 수용이 해방의 길임을 강조한다. 이어 10장에서는 국가를 거부하고, 11장에서는 폭력을 끝내기 위해 기독교적 인생관을 다시 강조한다. 마지막 결론인 12장에서는 앞의 여러 장을 요약하며 그 요지를 반복하고 있다. 톨스토이의 사상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을 위한 옮긴이의 친절하고 명쾌한 해제, 당대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게 해주는 관련 이미지들은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를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켜줄 것이다. 국내 인문학자들 가운데 톨스토이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가장 뛰어난 영남대 박홍규 교수는 ‘고전 중의 고전’인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상황을 애통해하던 끝에 2016년 5월 이를 국내 최초로 완역하여 소개하게 되었고, 이어서 톨스토이가 경제 불평등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번역·출간할 예정이다.

사상가 톨스토이의 진수를 만나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세상사 전반에 관한 톨스토이의 사상을 집약한 책인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를 국내 최초로 완역한 것이다. 톨스토이는 우리나라에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굵직한 작품을 쓴 ‘세계문학전집’용 작가로, 혹은 <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등의 짧고 교훈적인 소설을 쓴 계몽적인 작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읽을 게 별로 없는,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톨스토이”라는 기형적 이미지와 함께. 하지만 톨스토이는 대중이 곧잘 오해하는 것처럼 ‘앞뒤가 꽉 막힌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다. 박제된 도덕과 계몽을 강조하는 ‘꼰대’도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귀족 신분이라는 현실과 자신의 이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했던 인간적이고 소박한 인물이며, 자연에 반하는 인위적인 것들을 거부하고, 인간 각자의 개성을 찾아가는 진정한 교육에 헌신했던 인류의 교사였다. 따라서 톨스토이의 진면목은 소설이 아니라 그가 쓴 일련의 저작에서 더욱 명징하게 드러난다. 이를 테면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를 비롯하여 <교의 신학 비판>,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전쟁을 끝낼 것인가> 등의 저작들이 바로 그 예이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종교서일까?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라는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종교서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책은 무조건 기독교를 찬양하는 흔한 종교서가 아니다. 오히려 국가 권력과 결탁한 부패한 기독교, 특히 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제멋대로 왜곡하여 이를 널리 퍼트림으로써 군대로 상징되는 국가 권력을 어떻게 옹호하는지, 그리스도 가르침의 정수인 사랑과 용서, 평화와 평등, 폭력 거부와 무저항 등의 진리를 어떻게 변색시켰는지 보여주는 가장 반(反)기독교적인 책이다. 19세기 말 러시아 정교에서 톨스토이를 파문시킨 것도 이해 가능한 일이다. 톨스토이가 이 책에서 예수의 가르침에 따르면 가능해진다고 하는 ‘새로운 생활’이란 곧 비폭력 무저항, 반(反)권력의 자유와 평등 및 평화의 삶을 말한다. 그것은 모든 폭력 특히 전쟁을 거부하는 삶이며, 군대에 가거나 무기를 드는 것조차 거부하는 삶이고, 국가기구와 관련된 모든 법제와 억압을 거부하는 삶이다. 그러므로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톨스토이가 당대 러시아의 국가 종교였던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국가의 무용성과 아나키즘을 강조한 책인 동시에 그가 개인적인 삶의 문제를 다루었던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를 잇는 사회적 확대판이자 학문·예술·사회·문화·경제 등 세상사 전반에 걸친 톨스토이 사상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는 저작이라 할 수 있다.

신의 나라는 개인의 삶이 변할 때 비로소 열린다
톨스토이는 ‘신의 나라’가 ‘네 안에 있다’고 말한다. 천국이나 천당이 있다면 그것은 곧 나의 실천, 나의 생활, 나의 삶 속에 있는 것으로, 이는 우리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도무지 접근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즉 기독교를 아무리 열심히 믿는다 해도 각자의 삶이 그대로라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삶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은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가 아닌 새로운 생활의 이해’라는 부제와 함께 생각할 때 한층 명확해진다. 핵심 내용인 ‘권력에 대한 비폭력 저항’의 문제 역시 신의 존재나 하늘나라의 유무와 관계없이 “새로운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와 연결되는 탓이다. 톨스토이는 위선과 억압으로 자신과 세상을 더럽히지 말고, 그리스도의 본래 가르침에 따라 각 개인이 사랑과 평화·평등의 관계를 유지하며, 병역의무나 전쟁·사형과 같은 국가 권력에 봉사하지 말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탐욕에서 벗어나야만 ‘새로운 생활’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점은 그가 ‘산상수훈’과 ‘사도신경’ 간의 모순을 지적하는 일련의 기독교적 논의에 대한 비판, 날아가고자 애쓰는 벌 떼의 비유, 그리고 무력하게 징병당한 러시아 민중의 예 등에서 가감 없이 드러난다. 현대인이 겪는 다양한 차원의 모순과 갈등의 단초를 분석하고, 역사상의 실책과 오류 비판을 통해 더 나은 삶 즉, ‘신의 나라’로 일컬어지는 이상적인 사회를 제안했던 톨스토이의 ‘고전 중의 고전’을 만나보자.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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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새창으로 보기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으로 <전쟁과 평화,부활,안나카레리나 가 있다. 톨스토이의 작품들은 대체로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한 채 많은 사람들에 의해 회자되었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읽혀왔다 하지만 <신의 나라는 내 안에 있다> 이 책은 최근에서야 처음 들어본 책이다. 톨스토이가 세상을 떠난지 10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이 책이 등장하였고 소개되었는지 궁금하였다. 그리고 기존의 톨스토이의 작품보다 더 위험하고 더 사회적이면서 우리 사회에 큰 파급효과를 주는 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종교적인 색을 보여주는 책..제목만 본다면 기독교적인 느낌을 얻게 된다.그렇지만 이 책은 종교적이면서 종교적이지 않다.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현재 우리의 사회 시스템은 기독교과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 들이지 못하면서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특히 기독교와 가톨릭에 있어서 교회에 대한 의미와 교회가 있음으로서 우리는 세상에 권위를 부여하고 그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성경의 말씀을 왜곡해 왔다.


한편톨스토이는 전쟁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으며, 국가의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여기에 사형제 폐지,병역의무에 대해 거부할 권리를 국민이 기본 권리에 추가하고 있었다. 종교가 만들어지고 종교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가운데 자본주의 사회로 바뀜으로서 국가는 기독교의 교리와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왜곡하였으며, 국민을 통제하고 다스리는데 악용하고 있는 것에 비판하고 있다. 국가가 존재함으로서 국가지상주의,권력지상주의,독재지상주의,자본지상주의가 생겨났으며, 전쟁은 불가피해졌다. 수천년간 수많은 전쟁의 중심에는 종교가 있으며, 지금 테러가 자행되고 잇는 그 가운데에 있는 IS 또한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에서 서방세계가 개입됨으로서 발생하는 것이다.여기서 사람 사이의 갈등을 임의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기독교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왜곡시킨다.



톨스토이는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으며, 국가가 존재하고 종교가 존재함으로서 전쟁이 발생하였으며, 모든 가치를 국가를 중심으로 연결지음으로서 국민들을 탄압하는 구실이 되어왔음을 비판하고 있다.여기에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으며, 이 책은 러시아에서 금서로 묶이게 된다. 한편 이 책은 이후 간디와 마틴루서킹의 비폭력,비저항 운동으로 연결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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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6-07-19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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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 톨스토이 새창으로 보기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톨스토이의 작품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이라면 읽어봤을 만큼. 문학에 있어서 톨스토이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사상가이기도 하다. 톨스토이를 '인류의 교사'라 부를만큼 실제로 가난한 농노들의 자제를 위해 학교를 세우기도 하고, 러시아 문학의 주류와 문명 중심 사상을 끊임없이 비판하기도 하였다. 하여 톨스토이의 사상과 작품은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현재까지도 주고 있다.



지금까지 문학 작품으로만 보아왔던 톨스토이의 세계를 이번에는 전혀 다른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

지극히 기독교적인 느낌이 난다.

톨스토이가 기독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문학 작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라고 말하였지만, 다르다기보단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바탕을 이루는 사상을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먼저 나는 '악에 대한 무저항'이라는 문제의 역사에 대해 내가 얻은 정보를 말하겠다. 이어 종교계, 즉 기독교를 믿는다고 공헌하는 사람들이 지지하는 견해, 그리고 보통사람들, 즉 기독교를 믿는다고 공언하지 않는 사람들이 갖는 견해에 대해 말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의 역사적 사건들에 비추어 이 보든 것에 의하여 내가 이르게 된 결론을 말하겠다. p 29



톨스토이가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를 쓰게 된 이유를 밝힌다.

1884년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였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하는 많은 기독교 교회의 교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의 결여'라고 지적하고 바로 이 부분에서 교회 교리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왜곡하였다고 하였고, 이에 대한 많은 비판들에 대해 새로운 결과와 결론을 드러내고자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를 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의 부제는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가 아닌 새로운 생활의 이해다'라고 되어 있다. 이는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삶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총 9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 1장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의 사상사에서는 퀘이커파, 게리슨등의 무정한 사상사에 대해 들려주고 러시아의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서 말한다.

제 2장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에 관한 비판으로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종교적 비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러시아 정교회의 기독교 복음에 대한 해석에 대한 반론을 볼 수 있다.

제 3장 '기독교의 기독교 오해'에서는 대다수가 오해한 기독교 교리와 그리스도의 최초의 가르침, 이단, 러시아 교회가 하는 일, 교회의 최면술과 기만술에 대해 말한다. 3장에서의 소제목들만 보더라도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기독교들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복음의 진정한 의미는 이처럼 믿는 사람에게는 교회에 의해,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학문에 의해 숨겨져 있다. p 99



제 4장 학자들의 기독교 오해에서는 종교란 무엇인지, 기독교적 인생관에 대한 학자들의 오해와 기독교의 무저항 교리에 대한 오해등에 대해 말한다.

학자들의 오해 두 가지.

첫째 오해, '실천 불가능성'. 이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실천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의무적인 것이 아니고 반드시 우리 사회 안에서 실천 가능한 한계에 맞게 변형되고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둘째 오해 ' 신에 대한 봉사를 인류에 대한 봉사로 대체'. 이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모호하고 신비스러우며 막연한 것처럼 보이며, 따라서 그들은 신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의무를 배제하려 하는 것이며, 이는 인간과 인류를 위한 사랑의 교리가 훨씬 더 명료하고 설득력이 있으며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탓이다.



제 5장 '생활과 양심의 모순'에서는 빈부갈등의 경제적 모순과 정치적 모순등에 대해 말한다.

제 6장과 제 7장에서는 전쟁과 병역의무를 비판한다.

제 8장에서는 무버항 수용의 필연성을, 제 9장에서는 기독교적 인생관의 수용이 유일한 해방임을 . 제 10장에서는 국가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제 11장에서는 기독교적 인생관이 폭력을 끝낼 수 있음을 말하고, 제 12장에서는 앞의 여러 장을 요약하고 요지를 반복하여 주는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로 이 책의 결론을 내리게 된다.



참된 의미의 기독교는 국가를 파괴한다. 기독교의 시초부터 그렇게 인식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국가라는 것을 굳이 인정할 필요가 없었던 기독교인들이 언제나 깨달은 내용이었다. 다만 여러 국가의 수뇌들이 명목상의 형식적인 기독교를 택하면서부터 기독교가 국가와 공존할 수 있다는 불가능한 이론을 교활하게 고안하기 시작했을 따름이다. p 336



국가의 기반을 다지는데 기독교가 이용되었다. 아니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든 힌두교든 종교들이 권력을 갖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용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권력을 사용하여야 하고, 권력을 유지하여야 하고, 국가를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기독교를 이용하여 잘못된 기독교 교리와 예수님의 가르침이 왜곡되어 국민들에게 인식시켰다는 것이다.



당신이 어느 순간에라도 그분의 뜻에 따라 돌아가서,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영원 뒤에 무의식으로 숨어 있는 그분의 뜻에 따라 불려나온 피조물로서, 존재로서의 영원한 당신의 진정한 지위에 대해 생각해보라. 당신의 의무에 대해 생각해보라. 당신의 토지에 대한 지주로서의 의무, 당신의 사업에 대한 상인으로서의 의무, 황제, 장관, 또는 관리의 국가에 대해 가상의 의무로서가 아니라, 당신의 진정한 의무, 이 세상에 부름받고 이성과 사상을 부여받은 존재로서의 진정한 지위에 따르는 의무를 생각해보라. p 491



톨스토이는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에서 권력을 거부한다. 전쟁을 거부한다. 국가를 거부한다.

이 모든 것이 신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런 이유로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정작 톨스토이의 나라인 러시아에서는 출판되지 못했었다고 한다.

'비폭력 무저항'을 말하고 있는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간디에게 영향을 끼쳤고 하여 '비폭력 민족해방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기독교에 관한 책이지만 더 넓게는 세계의 인류를 위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순히 예수를 믿어야 천국에 갔다는 논리가 아닌, 기독교 교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닌..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복음의 진리를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권력자들의 이익에 맞게 왜곡되어졌는지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행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하나님의  진리와 얼마나 모순되고 있는지를 볼 수 있게 해준다.



100년 전에 쓰여진 톨스토이의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이지만 지극히 현실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책이 아닌가 싶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깨닫게 해주고, 기독교인들의 실상과 권력과 기독교, 국가와 기독교에 대한 관계와 모순등에 대해서도 알게 해준다.

간디에게 영향을 준 것처럼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가 많은 이들에게 좋은 깨달음을 줄 것이라 기대한다.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리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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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소망 2016-07-1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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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금지된 사상, 마침내 소개되다 새창으로 보기
이 책은 톨스토이가 63세 되던 해인 1891년에 집필을 시작했다. 2년후 완성된 원고는 검열로 인해 러시아에서 출판되지 못하다가 1894년에 독일과 영국에서 출판되었다. 간디는 이 책의 영어판 출간 직후 읽고, 남아공에서 ‘비폭력 무저항 운동‘을 시작했다. 간디의 운동은 마틴 루터 킹에게 영감을 주었고, 실천적 모델이 되었다. 그 전설 속의 책이 100년도 넘는 시간이 지나서 새롭게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이 책은 톨스토이의 신학과 실천적 관심을 치열하게 논증하는 내용이다. 산상수훈의 원리에 근거한 기독교는 과연 폭력을 용인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전쟁과 폭력에 관한 비폭력 평화주의가 기독교적 원리이자 대안이어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군대와 국가의 존재가 기독교 신앙과 어떻게 양립 가능한가? 이런 질문을 놓고 톨스토이는 동시대 신학자와 사상가들과 논쟁하고, 역사와 문헌을 뒤져 자신의 논지를 입증한다. 100년 전에 이토록 방대한 지적 네트워크를 가동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이 책의 번역자 박홍규 교수는 톨스토이를 ‘아나키스트‘의 반열에 놓고 접근한다. 그러나 톨스토이가 다루는 주요한 관심사는 ‘아나뱁티스트‘ 맥락에서는 낯이 익은 것이다(간간이 기독교 관련 내용에서 오자나 역자 설명의 미진함이 엿보이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 책을 통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나 ‘시민 불복종‘ 등의 사안에 톨스토이는 매우 강력한 논거를 제공하지만, 정작 그의 글을 구해 읽기는 어려웠던 그간의 갈증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어서 고맙다. 아울러, ‘기독교 신앙의 정수란 이런 것‘이라고 불을 뿜는 100년 전의 독자적 지성인이자 신앙인의 한 면모를 확인할 드문 기회가 허락되었다는 것도 기쁜 일이다. http://ichungeoram.com/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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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asmus 2016-07-09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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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쓴 소리, 권력층에 대한 비판 새창으로 보기
톨스토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로서 “전쟁과 평화”, “부활”, “안나 카레니나”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겨서 러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작가로서 그 명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해서는 별로 듣지 못했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이는 원래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을 톨스토이가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신의 나라가 언제 올 것 같은가?”라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언제 온다라고 답하지 않고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천국에 가야 한다는 목적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해법을 말씀하신 것으로 믿음도 중요하지만 실천을 강조하신 것으로 보인다. 아마 톨스토이도 실천을 강조했으리라.



이 책은 톨스토이가 에세이 형식으로 쓴 글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비폭력 무저항, 반권력의 자유와 평등 및 평화의 삶을 말한다. 군대에 가거나 무기를 들고 사람을 죽이는 것도 거부한다. 그리고 전쟁도 반대하며 사형도 반대한다. 이러한 반대는 기독교의 본질이라 주장한다. 비판적인 그는 러시아 정교회를 철저히 비판하다가 파문까지 당한다. 물론 이 책도 러시아에서 출간이 금지되어 독일과 영국에서 먼저 출간되었다고 한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톨스토이가 살던 당시 러시아의 상황에 대해 비판한 고전서일 뿐이라고 선입견을 가졌었다. 그러나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1893년에 이런 급진적인 사고가 들어있는 글을 썼다니,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비폭력에 관한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대해 말하며, 2장은 러시아 정교회의 기독교 복음에 관한 해석에 대해 반론을 펼치며, 3장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기독교도의 오해를 비판하며 4장에서 학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비판한다.

5장은 생활과 양심의 모순에 대해 말하며 6장은 전쟁을 비판하고 7장은 병역의무를 비판하다. 8장은 무저항 수용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9장은 기독교적 인생관의 수용이 해방의 길임을 강조하며 10장은 국가를 거부하고 11장은 폭력을 끝내기 위해 기독교적 인생관을 강조한다. 12장에서는 그 요지를 반복한다.

어느 부유한 지주의 영지안에서 농민들이 지주와 공유하는 목장에서 숲을 키웠다. 농민들은 숲을 키우는데 많은 기여를 했고 그래서 공유한다고 생각했는데, 지주는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벌채를 하였고 농민들은 소송을 제기했으나 당시 러시아 법원은 숲을 지주의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러자 농민들은 판결에 승복하지 않았고 벌채하러온 인부들을 쫓아내자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서 농민들을 협박하고 법의 이름으로 처벌을 한다. 기존 질서가 상류계급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권력을 행사하고 하류계급을 기만한다.

이 책에서 이러한 사례뿐만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통해 폭력, 권력을 비판하며 반성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의 번역을 담당했던 박홍규 교수는 이 책이 사실 아나키즘에 대한 책이라고 주장한다. 톨스토이는 아나키즘을 비판하지만 그것은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폭력주의적 테러리즘의 일종인 아나키즘을 비판한 것이고 실제 책의 내용은 권력주의 비판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아나키즘에 관한 책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 고위 관료, 판검사, 경찰 및 세무공무원 등을 받들고 있고 그러한 지위에 올라야 인생에 성공한다고 칭찬하고 있다. 사실 그러한 권력은 없는 것이고 국민의 위임에 의해 봉사하는 자리일 뿐인데 법의 이름으로 권력의 이름으로 칼을 휘두르고 있다. 톨스토이가 현재의 우리나라를 보면 혀를 내두를 상황이다. 게다가 권력을 가진 자가 교회에 나가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찾는걸 보면 기가 막힌 상황이지만 우리에게는 오랫동안 익숙한 모습이다.

이 책을 권력을 가진 자들이 필히 읽어가며 가슴으로 새겨 들어야겠지만, 실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권력층에 대해 감시와 견제를 한다면 세상은 하나씩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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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다리 2016-08-01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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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권력층에 대한 비판 (톨스토이 지음) : 네이버 블로그


[서평]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권력층에 대한 비판 (톨스토이 지음)

슈퍼울트라맨

2016. 8. 1. 0:57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작가레프 톨스토이출판들녘발매2016.05.20.평점


톨스토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로서 “전쟁과 평화”, “부활”, “안나 카레니나”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겨서 러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작가로서 그 명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해서는 별로 듣지 못했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이는 원래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을 톨스토이가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신의 나라가 언제 올 것 같은가?”라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언제 온다라고 답하지 않고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천국에 가야 한다는 목적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해법을 말씀하신 것으로 믿음도 중요하지만 실천을 강조하신 것으로 보인다. 아마 톨스토이도 실천을 강조했으리라.



이 책은 톨스토이가 에세이 형식으로 쓴 글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비폭력 무저항, 반권력의 자유와 평등 및 평화의 삶을 말한다. 군대에 가거나 무기를 들고 사람을 죽이는 것도 거부한다. 그리고 전쟁도 반대하며 사형도 반대한다. 이러한 반대는 기독교의 본질이라 주장한다. 비판적인 그는 러시아 정교회를 철저히 비판하다가 파문까지 당한다. 물론 이 책도 러시아에서 출간이 금지되어 독일과 영국에서 먼저 출간되었다고 한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톨스토이가 살던 당시 러시아의 상황에 대해 비판한 고전서일 뿐이라고 선입견을 가졌었다. 그러나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1893년에 이런 급진적인 사고가 들어있는 글을 썼다니,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비폭력에 관한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대해 말하며, 2장은 러시아 정교회의 기독교 복음에 관한 해석에 대해 반론을 펼치며, 3장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기독교도의 오해를 비판하며 4장에서 학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비판한다.

5장은 생활과 양심의 모순에 대해 말하며 6장은 전쟁을 비판하고 7장은 병역의무를 비판하다. 8장은 무저항 수용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9장은 기독교적 인생관의 수용이 해방의 길임을 강조하며 10장은 국가를 거부하고 11장은 폭력을 끝내기 위해 기독교적 인생관을 강조한다. 12장에서는 그 요지를 반복한다.



어느 부유한 지주의 영지안에서 농민들이 지주와 공유하는 목장에서 숲을 키웠다. 농민들은 숲을 키우는데 많은 기여를 했고 그래서 공유한다고 생각했는데, 지주는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벌채를 하였고 농민들은 소송을 제기했으나 당시 러시아 법원은 숲을 지주의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러자 농민들은 판결에 승복하지 않았고 벌채하러온 인부들을 쫓아내자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서 농민들을 협박하고 법의 이름으로 처벌을 한다. 기존 질서가 상류계급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권력을 행사하고 하류계급을 기만한다.

이 책에서 이러한 사례뿐만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통해 폭력, 권력을 비판하며 반성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의 번역을 담당했던 박홍규 교수는 이 책이 사실 아나키즘에 대한 책이라고 주장한다. 톨스토이는 아나키즘을 비판하지만 그것은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폭력주의적 테러리즘의 일종인 아나키즘을 비판한 것이고 실제 책의 내용은 권력주의 비판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아나키즘에 관한 책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 고위 관료, 판검사, 경찰 및 세무공무원 등을 받들고 있고 그러한 지위에 올라야 인생에 성공한다고 칭찬하고 있다. 사실 그러한 권력은 없는 것이고 국민의 위임에 의해 봉사하는 자리일 뿐인데 법의 이름으로 권력의 이름으로 칼을 휘두르고 있다. 톨스토이가 현재의 우리나라를 보면 혀를 내두를 상황이다. 게다가 권력을 가진 자가 교회에 나가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찾는걸 보면 기가 막힌 상황이지만 우리에게는 오랫동안 익숙한 모습이다.



이 책을 권력을 가진 자들이 필히 읽어가며 가슴으로 새겨 들어야겠지만, 실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권력층에 대해 감시와 견제를 한다면 세상은 하나씩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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