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3

설날에 만난사람 /홍순명 전 풀무고 교장 - 홍성신문

설날에 만난사람 /홍순명 전 풀무고 교장 - 홍성신문

설날에 만난사람 /홍순명 전 풀무고 교장
 이번영 승인 2002.02.01 


''교육은 살아있는 생명, 현재진행형''

홍동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달 19일에는 일본 국영 TV 방송인 NHK 보도국장이 취재팀을 만들어 풀무학교와 홍동을 촬영하러 온다. 23세의 젊은 나이로 이 학교에 부임, 42년간 전인교육을 통해 '풀무교육'이라는 신화를 만들어 내고 퇴임하는 홍순명 교장을 만나보았다. 선생이 풀무에서 평생을 바치며 일구어낸 교육 철학과 사상을 살피려면 별도의 연구가 필요할 정도로 지금은 불가능 하다. 새해 설을 맞아 간단한 근황과 퇴임 소감, 지역에대한 메시지 한마디만 들어봤다.

"1937년 강원도 횡성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대대로 서당 훈장을 하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시절 김교신, 노평구, 함석헌 선생같은 무교회 기독교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6.25 전란통에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초, 중, 고등학교 교사 시험을 봐 20세 되던 해에 고향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 했다. 그러나 늘 꿈 꾸어오던 교육과는 달리 권위주의적이고 군대식인 교육관행에 많은 실망을 느꼈다. 그러다가 군대 입대 했을 때 무교회 잡지를 통해 이찬갑, 주옥로 선생이 풀무학교를 세웠다는 소식을 보고 1960년 병역을 마치자 마자 달려가 그 뜻에 동참해 그대로 이 학교에 머물게 되었다. 개교 직후부터 오늘까지 풀무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함께 학교공동체를 일궈오고 있다. '풀무학교 교장'이라고 누가 소개하면, 그저 행정적으로 필요해서 '교장'이라는 이름을 쓸 뿐 풀무학교는 사실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는 학교라고 다시 소개하곤 한다."

홍순명 선생이 지은 책 <풀무학교 이야기(내일을 여는책 발행)> 표지 뒷면에 실은 저자에 대한 소개문이다. 그리고 이 구절은 그가 쓴 수많은 글들이나 책중에서 '홍순명'이란 개인에 대한 유일한 설명 글이다. 이 설명글에서 빠진 것은 그가 전란으로 중학교를 중퇴하고 17세에 교사 자격시험을 봐 고향에서 초등, 춘천농고 교사를 지낸 일, 그후 영어, 일본어, 중국어, 독일어 등 7개국 말을 자유스럽게 구사할 만큼 독학을 한 일 등은 스스로 내세우지 않았다.

-선생에 대해서는 '풀무학교 하면 홍순명' 할 정도로 동일시하는게 일반적 시각인데 정년퇴임을 하신다면 이제 무슨 일을 하시게 됩니까? 연세대 대학원, 성공회대 대학원 등에서 강의 교섭이 오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쪽으로 가십니까?

=퇴임후 책 읽고 농사 지으며 제2의 인생을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전공부 환경농업과를 시작해 놓고 방임하면 무책임하다는 주위 여론때문에 소박한 꿈을 접고 당분간 전공부를 뒷받침하기로 했습니다. 국어, 성서 등을 강의하게 됩니다. 고등부는 정년이지만 전공부는 취임인 셈이지요. 몇개 대학원에서 강의 나오라고 하는건 사실인데 전공부쪽이 더 중요해 이곳에만 전념할 생각입니다.

-전공부에 대해 좀더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풀무학교에서 세운 전공부는 친환경농업의 실무자를 기르는 주민, 풀뿌리, 지역 대학의 새로운
시도입니다. 현재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의 창립취지문에 천명된 '그리스도인 농촌의 수호자, 세계의 시민'을 기르는 건학 정신의 연장입니다. 주민에게 배우고 주민이 가르치며 2년 과정에 여러 단기연수과정을 두고 지역 친환경농업을 뒷받침하려고 합니다. 풀무는 1975년부터 4반세기 동안 한국 최초로 유기농업을 가르쳐왔습니다. 13년의 준비 끝에 한국과 동북아에서 처음으로
환경농업 전공부를 탄생시켰습니다. 내년은 전세계 친환경농업대회가 한국에 유치되는 등 친환경농업은 이제 농촌의 재생과 국민 건강과 환경 회복을 위해 우리 생활에 피부로 다가오는 세계적 추세이자 생존전략이 되고 있습니다.

-풀무학교 42년은 긴 세월이었습니다. 너무 통속적인 질문이지만 가장 보람있었던 점과 아쉬었던 점 한가지씩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학교의 처음 교훈은 '위대한 평민'이었습니다. (지금은 더불어 사는 평민) 한국의 위대한 평민들이 학교 설립이나 운영에 참가해서 학교를 오늘까지 함께 가꾸어 왔습니다. 설립자들께 경의를 드리고, 학교를 극진히 사랑해 주셨던 장기려, 최태사, 송두용, 박석현 선생들께 감사 드립니다. 또 함께 고생한 교육동지, 함께 생활하였던 모든 학생들과 수업생, 함께 학교 일을 논의하였던 좋은 학부모님들, 지역 여러분의 협조, 이런 속에서 지나게 된 것을 보람 있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학교란 학생과의 대화, 참된 지적 개발, 가치관과 사상의 형성 등 100 이상의 과제가 늘 움직이고 있습니다. 풀무는 그 중 어떤 것은 자리잡고 어떤 것은 시도도 못한 것이 있습니다. 학교는 살아있는 생물이니까 계속 현재진행형으로 나가야 합니다. 학교는 꿈이면서 현실입니다. 꿈에 비하여 현실은 언제나 거리가 있고 미흡합니다. 그 간격을 좁히기 위해 부단한 창의와 변신과 도전이 필요합니다. 또 학교는 학생의 인격과 만나는 불꽃 튀기는 인생의 현장이라야 하므로 늘 미흡함을 느끼며 구도적 자세로 나가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풀무교육의 의미를 한마디로 정리해 주신다면요?

=풀무 교육은 몇 사람 엘리트 양성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인격과 능력의 고유한 가치를 자각하고 발전시켜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기르려는 교훈 한마디에 요약이 됩니다. 더불어 사는 인생은 혼자만의 세계가 아니라 관계의 세계입니다. 더불어 사는 것은 원리고 방법이고 과정이며 목적이고 사회 형성입니다.

-사람들은 풀무학교를 대안학교라고 말하던데

=대안학교는 외국말에서 따온 말이고, 교육 자체의 논리에 따라 현행 절름발이 교육을 정상적으로 돌려놓으려 모색하고 실천하는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대안학교'만 아니라 한국의 크고 작은 모든 학교가 이제는 교육의 양적 성장위주에서 질적 변화로 방향 전환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학생을 줄 세우는 지식 주입적 입시교육은 지양해야 되지요. 그럴 사회적 여건도 마련되어가고 있습니다. 대신 인간성에 바탕 둔 전인교육을 해야 합니다. 지식도 학생 주도적이고, 공동 학습을 하며, 지적 호기심과 사고력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더불어 살기를 가르쳐야 합니다. 남의 모방을 말고 한국적 인간상을 길러야 합니다. 교육은 20년 뒤 우리 사회의 요청에 대한 대답을 지금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은 생태의 복원과 평화의 실현입니다. 그런 교육이 우리를 구원하고 세계를 감동시킬 것입니다. 페스탈로찌 말대로 교육은 정치의 시작과 목적입니다. 인간교육이 바로 되어야 정치도 경제도 바로 됩니다. 지금 우리 교육은 총론에서는 누구나 같이 말하나 실천이나 각론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 거리를 빨리 좁혀야 합니다.

-선생께서는 지금 우리나라 교육문제를 어떻게 풀어야한다고 보십니까?

-우리나라 교육 문제는 맹목적 성적 신앙을 벗어나야 합니다. 개성의 다양성과 인격의 절대성에 대한 존중과 믿음, 실질적인 전인교육으로의 전환, 한국적 전통에 서서 보편성의 지향, 지식 개념의 새로운 파악, 인생의 의미와 가치의 적절한 탐구, 이 모든 문제에 대해 현장 교사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연구와 토론의 집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지역사회 관계를 다시 정리해주시겠습니까?
=지역과 학교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영국 가디언지의 주필인 슈워츠씨는 앞으로의 학교는 지역과 유기적 관계 속에서 진로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에서 오리농업을 창시한 후루노다카오씨는 '규슈에 풀무 같은 학교가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학교는 지역의 교육력을 활용하고 지역의 종합적 발전에 기여할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지난해 연장한 환경농업과 전공부는 지역의 생태의 복원과 그를 통한 평화 사회 실현을 목적으로 지역의 장래를 위해 시작하였습니다. 누군가 해야할 일이기 때문에 10년 고생을 각오하고 시작한 것입니다.

-선생의 글이나 강의는 주로 교육, 지역사회 등 큰 문제들이어서 항상 무겁고 때로는 지루하다는 생각까지 들어갑니다. 그런데 65세가 되신 선생께서 요즘 소설을 쓰셨다면서요? 그것도 남여간 사랑을 다루는 춘향전이라면서요?

=저는 그간 국어를 가르쳐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국어는 국정교과서로 배우지요. 국어과는 국어의 실용면과 함께 국어를 통한 국민의 사상과 교양을 높이는 것이 목적입니다. 독일서도 독어권만 아니라 희랍 등 유럽 사상에 영향을 준 여러 나라 사상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전공할 학생이면 모르지만, 우리나라 국어교과서는 일반 국민에게는 너무 세밀한 국어국문학 작품 위주로 교과서가 만들어져 있어요. 그래서 풀무학교에서는 교양국어 세 권을 만들어 부교재로 썼던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춘향 심청 홍길동 흥부등 등 우리 고전은 국민의 심성에서 나오고 심성에 영향을 주어온 점에서 국민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겠는데 내용이 불합리, 황당한 점이나 지금 시대에 안 맞는 부분이 많아요. 고전에 여러 판본이 있는 것은 부단히 개작되어온 과정을 말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익숙한 위의 네 고전들을 순전히 학교 학생에게 읽힐 생각으로 교지에 냈는데, 출판사에서 알고 좀더 너른 청소년층에 읽히는 게 좋겠다고 적극적으로 출판을 제안한 상태입니다.

홍순명 선생이 풀무학교 교지 <풀무>에 연재로 실었던 신 춘향전, 신 홍길동전, 신 심청전, 신 흥부전은 서울 부키 출판사에서 한 권으로 묶어 출판중으로 다음달쯤 시중에 판매될 계획이다. 홍선생이 1998년 쓴 <더불어사는 평민을 기르는 풀무학교 이야기. 내일을 여는 책>은 현재 절판됐지만 일본에서 대동대학의 오바나 기요시라는 교육학자가 문부성의 연구비를 받아 그 책의 번역과 상세한 각주, 그리고 자기 연구논문을 첨부하여 지난해에 일본어로 출판 했다. 일본에서 본격적인 한국 교육 사정이나 중등학교의 소개로는 처음이라고 하는데 '한국과 일본 교육계의 귀중한 선물' ( 동경대학 오다교수 ) '위기의 21세기 민중의 인간상과 교육상을 보이는 책' ( 동경도립대 사카모도교수 ), '인격, 교육과정, 교육방법에서 학교 만들기까지 공동체의 실현에 의한 사회 변화의 일관된 원리를 담고 있다'(철학자 야마카 사부로 ) 등의 평을 받고 있다.

-끝으로 아직 우리 지역에서는 전공부에 대해 잘 모르는데 당부할 말씀좀 해주시죠.

=풀무 전공부가 지역 친환경농업을 뒷받침하는 지역대학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 있습니다. 친환경농업도서관과 연구 실험실입니다. 실험연구실은 지역 가공식품의 안전도 검사, 미생물을 통한 발효 퇴비, 바이오 가스, 천적으로 이용할 곤충 사육 등 지역 친환경농업 촉진을 위한 것입니다. 종자은행도 해야 합니다. 검소하게 지으면 170평 규모로 2억 7천만원 정도 듭니다. 지금까지 전공부는 네델란드를 비롯해 국내의 순전히 외부 후원으로 토지와 건물을 마련했고, 주민 여러분의 뛰어난 창의와 협력, 그리고 학교의 일정부문 역할로 지역은 국내 굴지의 친환경농업단지가 조성되었습니다. 건축문제를 포함해 전공부에 대한 지역적 관심은 지방자치시대 주민 자치 역량의 시금석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풀무가 지역 농민 속에 녹아들기 위해 더욱 여러분의 따듯한 협력과 관심을 바랍니다.

마침 설날을 맞게 됩니다. 올해에도 홍성신문 독자 여러분 건강하시고 감사한 일, 보람있는 일이많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