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학교/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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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본 항목은 계명대학교 관련 사건 사고를 다루는 항목 입니다. 계명대학교 관련 문서는 계명대학교 를 참고해주십시오.
2. 대명캠퍼스 의양관 화재 사건[편집]
1992년 5월 26일(축제 시작 당일 새벽) 오전 3시 30분께 당시 학생회관으로 쓰던 대명캠퍼스 의양관에서 불이 나, 축제 준비로 학교에 남아 2층 동아리방에서 자던 대학생 4명이 숨지고 10명의 학생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망자 4명 중에서 국어국문학과 1명, 신학과 2명, 경영학과 1명이 나왔다.[1]
29년 전 사건이지만 이 사건은 당시 "학교에서 데모하던 학생들을 상대로 방화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는 주장 등 여러 소문이 돌았다. 또 다른 소문으로는 당시 죽은이가 4명이 아니라 4.5 명이라는 고인 능욕성 유언비어도 돌고있었다. 당시 피해자 상당수가 운동권 계열의 동아리에서 주로 나와서 비권 중심에서 이런 소문이 퍼졌다. 안타까운 것은 피해자 중 한 명의 희생자(3명이 동시에 발견된 동아리 방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발견된 1명의 희생자)는 당시 의양관 내의 각방에 화재를 알리며 다른 사람을 구하다가 희생을 당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물론 어느 언론이고 이와 관련된 소개는 없었다(화염병 얘기만 했음). 사고가 난 의양관의 2층 이상은 매우 독특한 구조의 건물로 그 내부가 매우 복잡한 미로 같은 건물이었다. 이런 복잡한 건물에서 30명중 4명만 사망한것으로 봤을때 희생자 중 한명이 실제로 사람을 구한것은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어보인다. 이 화재의 여파로 축제는 취소되고 그 날부터 강의가 바로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 운동권측은 교내에 희생자 학생들의 동상을 만들어 줄것을 요구했지만 묵살되었고 자그마한 추모비만 세워졌다.
하지만 사건의 진상은 27년이 지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당시 수사를 맡았던 대구 남부경찰서는 이 사건을 유야무야 덮고 넘어갔다. 그나마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총학생회 차원에서 '5.26참사 추모대회'등을 개최하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지만 그 이후에는 총학생회가 비권을 넘어 반권으로 돌아서고 완전한 어용상태에 이름에 따라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사건이 되었다. 현재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영암관 앞 화단에는 추모비가 건립되어 있다. 하지만 깊숙한 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졸업 때까지 이 추모비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계명대학교 건축물의 역사' 책자 142쪽에 짤막하게 이 사건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것이 학교 측에서 이 사건에 대해 유일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날짜가 잘못 적혀 있다.
29년 전 사건이지만 이 사건은 당시 "학교에서 데모하던 학생들을 상대로 방화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는 주장 등 여러 소문이 돌았다. 또 다른 소문으로는 당시 죽은이가 4명이 아니라 4.5 명이라는 고인 능욕성 유언비어도 돌고있었다. 당시 피해자 상당수가 운동권 계열의 동아리에서 주로 나와서 비권 중심에서 이런 소문이 퍼졌다. 안타까운 것은 피해자 중 한 명의 희생자(3명이 동시에 발견된 동아리 방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발견된 1명의 희생자)는 당시 의양관 내의 각방에 화재를 알리며 다른 사람을 구하다가 희생을 당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물론 어느 언론이고 이와 관련된 소개는 없었다(화염병 얘기만 했음). 사고가 난 의양관의 2층 이상은 매우 독특한 구조의 건물로 그 내부가 매우 복잡한 미로 같은 건물이었다. 이런 복잡한 건물에서 30명중 4명만 사망한것으로 봤을때 희생자 중 한명이 실제로 사람을 구한것은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어보인다. 이 화재의 여파로 축제는 취소되고 그 날부터 강의가 바로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 운동권측은 교내에 희생자 학생들의 동상을 만들어 줄것을 요구했지만 묵살되었고 자그마한 추모비만 세워졌다.
하지만 사건의 진상은 27년이 지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당시 수사를 맡았던 대구 남부경찰서는 이 사건을 유야무야 덮고 넘어갔다. 그나마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총학생회 차원에서 '5.26참사 추모대회'등을 개최하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지만 그 이후에는 총학생회가 비권을 넘어 반권으로 돌아서고 완전한 어용상태에 이름에 따라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사건이 되었다. 현재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영암관 앞 화단에는 추모비가 건립되어 있다. 하지만 깊숙한 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졸업 때까지 이 추모비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계명대학교 건축물의 역사' 책자 142쪽에 짤막하게 이 사건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것이 학교 측에서 이 사건에 대해 유일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날짜가 잘못 적혀 있다.
3. 정모양 의문사 사건[편집]
1998년 10월 중순, 간호학과 1학년 정모양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는데 거의 15년이 다 된 2013년 9월 초, 진실이 밝혀졌다. 단순한 사고사가 아니었으며 성폭행당하고 정신없는 사이에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하다가 덤프트럭에 치여 사망한 사건이었다. 자세한 것은 대구 여대생 사망 사건 항목 참조. 아직까지도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너무 크다.
4. 계대정문 버스 보행자 추돌 사망 사고[편집]
2000년 12월 쯤, 계대정문 앞에서 U턴하던 시내버스에 치여 여학생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결국 이 사고로 인해 2001년 1월 5일, 당시 계대정문에서 회차하던 305번, 504번, 508번, 524번, 549번이 개편되었다. 504번, 524번은 삼성명가타운으로 연장되었고[2] 305번, 549번은 계대동문으로 단축되었으며 508번은 계명문화대학교로 종점이 변경되었다. 2006년 개편으로 504번, 524번[3], 549번[4]은 폐선되었고 305번은 방천리로 연장되었으며 508번은 성서산단 내 신흥버스 차고지로 연장되었다.
5. 에베레스트 원정대 조난 사고[편집]
2004년 5월 18일, 개교 50주년을 맞이하여 꾸려진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박무택 등반대장과 장민 대원이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하산 중 장 대원은 탈진 증상을 보였고, 박 대장은 설맹으로 앞을 못 보는 상태가 되어 장 대원을 먼저 하산시켰다. 다음 날, 이들을 구하러 간 백준호 원정부대장이 박 대장을 만났으나, 결국 세 명 모두 하산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2005년 5월 29일, 엄홍길이 조직한 휴먼원정대가 박 대장의 시신을 수습하였으나,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인해 시신을 밑으로 운구하지는 못하고 양지바른 곳에 직접 돌무덤을 만들어 줬다. 이 사건은 2015년 12월 16일에 개봉한 영화 히말라야로 영화화되었다.
2005년 5월 29일, 엄홍길이 조직한 휴먼원정대가 박 대장의 시신을 수습하였으나,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인해 시신을 밑으로 운구하지는 못하고 양지바른 곳에 직접 돌무덤을 만들어 줬다. 이 사건은 2015년 12월 16일에 개봉한 영화 히말라야로 영화화되었다.
6. 장기 인신매매 미수 사건[편집]
2006년에 있었던 사건으로, 각종 포털 사이트에 '계명대 인신매매'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내용이다. 참고 이 사건은 크게 두 가지 바리에이션이 존재하는데, 먼저 기사를 토대로 한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어느 학생이 우연히 길을 물어보는 모자 (母子)를 만나 길을 가르쳐 주고 나서 감사의 표시로 음료수를 받아 마셨다. 근데 그 음료수에 수면제가 들어 있었고, 깨어 보니 어느 외진 곳의 불법 장기 적출 시술소였다는 것.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학생은 이 사실을 바로 학생처장에게 알렸고, 학생처장은 이에 주의를 당부하는 문자 메시지를 교내 학생 대부분에게 전송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앞서 설명한 사건을 바탕으로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붙는데, 연초 서울에서 내려온 신입생이 자취방을 알아보던 도중 한 아주머니로부터 학교에서 좀 떨어진 곳에 신축 원룸을 싸게 내놨다는 말을 듣게 되고, 방을 보러 가기 위해 아주머니와 함께 온 승합차에 탑승하는데 승합차 안에는 이미 같은 처지의 학생 3명이 더 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차 안에서 커피를 받아 마시고 가는 도중 잠이 들었고, 깨어 보니 역시 포항 어느 외진 곳의 불법 장기 적출 시술소였다는 것. 그리고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한 끝에 납치된 2명의 학생은 탈출에 성공했지만 나머지 2명은 실종, 범인은 현장에서 아주머니와 운전사를 제외한 2명만 검거되고 현재 경찰서 조사중에 있다는 이야기이다.
여러 가지 사건의 정황으로 볼 때, 아무래도 두 번째 이야기가 신빙성 있어 보이나 인터넷에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에 의해 인신매매에 관련된 괴담과 근거 없는 내용이 추가되고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크다.[5] 하지만 중요한 건 실제 이러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 충격과 공포 낯선 자의 호의는 항상 주의할 필요가 있다.
2013년과 2014년에 각각 비슷한 내용의 괴담이 다시 한 번 유행했다. 내용은 약간씩의 변형이 있지만 대충의 궤는 강창역 주변에서 봉고차나 수면제등을 이용해 학생들을 납치하고 장기 밀매를 시도했다는 것.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장기밀매 괴담과 맞물려 주변 거주, 통학생들의 불안감을 자아냈다. 이후 학생회에서 나서서 확인한 결과 납치되었었거나 실종된 학생은 없으며 근거없는 괴담이므로 안심하라는 공지까지 했다.
그리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약 10년전(97년경)에는 성추행 미수 사건도 일어났다. 사건의 개요는 인문대 모 학과 여학생이 인문대 건물인 영암관의 한 강의실에서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는데, 인문대 또다른 모 학과(과사무실이 두 칸 건너 붙어있다)의 재학중인 남학생이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추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 당시 여학생 혼자 있는 강의실에 범인이 들어와 문을 잠그고 범행을 저지르려 하였으나 저항 및 소리를 치는 바람에 인근 학생들이 듣고 문을 부수고 들어가 범행은 미수. 당연히 해당 학과의 재학생들은 난리가 났으며, 결국 범인이 해당 학과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공개사과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앞서 설명한 사건을 바탕으로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붙는데, 연초 서울에서 내려온 신입생이 자취방을 알아보던 도중 한 아주머니로부터 학교에서 좀 떨어진 곳에 신축 원룸을 싸게 내놨다는 말을 듣게 되고, 방을 보러 가기 위해 아주머니와 함께 온 승합차에 탑승하는데 승합차 안에는 이미 같은 처지의 학생 3명이 더 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차 안에서 커피를 받아 마시고 가는 도중 잠이 들었고, 깨어 보니 역시 포항 어느 외진 곳의 불법 장기 적출 시술소였다는 것. 그리고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한 끝에 납치된 2명의 학생은 탈출에 성공했지만 나머지 2명은 실종, 범인은 현장에서 아주머니와 운전사를 제외한 2명만 검거되고 현재 경찰서 조사중에 있다는 이야기이다.
여러 가지 사건의 정황으로 볼 때, 아무래도 두 번째 이야기가 신빙성 있어 보이나 인터넷에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에 의해 인신매매에 관련된 괴담과 근거 없는 내용이 추가되고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크다.[5] 하지만 중요한 건 실제 이러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 충격과 공포 낯선 자의 호의는 항상 주의할 필요가 있다.
2013년과 2014년에 각각 비슷한 내용의 괴담이 다시 한 번 유행했다. 내용은 약간씩의 변형이 있지만 대충의 궤는 강창역 주변에서 봉고차나 수면제등을 이용해 학생들을 납치하고 장기 밀매를 시도했다는 것.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장기밀매 괴담과 맞물려 주변 거주, 통학생들의 불안감을 자아냈다. 이후 학생회에서 나서서 확인한 결과 납치되었었거나 실종된 학생은 없으며 근거없는 괴담이므로 안심하라는 공지까지 했다.
그리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약 10년전(97년경)에는 성추행 미수 사건도 일어났다. 사건의 개요는 인문대 모 학과 여학생이 인문대 건물인 영암관의 한 강의실에서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는데, 인문대 또다른 모 학과(과사무실이 두 칸 건너 붙어있다)의 재학중인 남학생이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추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 당시 여학생 혼자 있는 강의실에 범인이 들어와 문을 잠그고 범행을 저지르려 하였으나 저항 및 소리를 치는 바람에 인근 학생들이 듣고 문을 부수고 들어가 범행은 미수. 당연히 해당 학과의 재학생들은 난리가 났으며, 결국 범인이 해당 학과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공개사과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7. 체육대학 태권도학과 학생 이명박 대선후보 선거운동 단체동원 사건[편집]
제17대 대통령 선거 유세가 한창이던 2007년 11월경 계명대학교 체육대학 소속 태권도학과 학생들이 태권도학과 학과장 최모씨에 의해 이명박 대선후보의 선거운동에 단체로 동원된 사건이다. 당시 최모 학과장은 한나라당 경북도당 선거대책위원회 대학청년본부장 직을 역임하고 있었다. 태권도학과 1학년 학생들은 과대표 등을 통해 연락받은 뒤 2007년 3~6월 사이에 이명박 후보가 참석하는 시의원 선거 지원유세장, 당원 교육 등에 5차례나 참석하고,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수업을 빼먹거나 주말에 동원되었다.
이 사건이 논란이 되자 최모 학과장과 한나라당 경북도당 사무처장은 "집회 참석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체육대학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집단생활을 강요받는 체대 특성상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이 어떤 불이익을 당하게 될지 생각해보면...
한편 이 사건이 한겨레를 통해 보도된 와중에도 매일신문과 영남일보 등 대구경북 지역 언론들은 사건을 애써 외면했다. 또한 계명대학교 학보사인 계명대신문도 이 사건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당시 계명대학교 총대의원회는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 초청강연회를 개최하기도 했고 학생자치기구들이 반운동권이기도 했다. 당시 계명대 전체가 친이계라고 봐도 무방한 셈.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니 정작 계명대학교 내에서는 큰 반향이 없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 사건이 논란이 되자 최모 학과장과 한나라당 경북도당 사무처장은 "집회 참석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체육대학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집단생활을 강요받는 체대 특성상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이 어떤 불이익을 당하게 될지 생각해보면...
한편 이 사건이 한겨레를 통해 보도된 와중에도 매일신문과 영남일보 등 대구경북 지역 언론들은 사건을 애써 외면했다. 또한 계명대학교 학보사인 계명대신문도 이 사건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당시 계명대학교 총대의원회는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 초청강연회를 개최하기도 했고 학생자치기구들이 반운동권이기도 했다. 당시 계명대 전체가 친이계라고 봐도 무방한 셈.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니 정작 계명대학교 내에서는 큰 반향이 없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8. 2011년 폭우로 인한 축제 중지[편집]
2011년 춘계 축제는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중단되었다.참고
비는 축제 첫 날인 6월 1일에만 진행에 지장을 줄 정도로 내렸고, 다음날부터는 흐리지만 비는 내리지 않아 준비한 학과, 동아리 소속 학생들은 남은 일정은 그대로 진행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축제가 일괄 취소되자 분개하였다. 게다가 단순히 비 때문에 중단한 걸 총학 측에서는 기상상태 악화도 아닌, 마치 홍수가 나고 태풍이라도 온 듯 무려 '자연재해'라는 표현을 써 가며 축제를 중단시킨 사유를 정당화하였다. [6] 이에 학생들은 '(총학 측에서) 미리 기상 정보를 알고 있었으면서 무리하게 추진한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과 함께 축제 관련 예산 회계 결과를 공개하라는 요구를 하였다.
비는 축제 첫 날인 6월 1일에만 진행에 지장을 줄 정도로 내렸고, 다음날부터는 흐리지만 비는 내리지 않아 준비한 학과, 동아리 소속 학생들은 남은 일정은 그대로 진행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축제가 일괄 취소되자 분개하였다. 게다가 단순히 비 때문에 중단한 걸 총학 측에서는 기상상태 악화도 아닌, 마치 홍수가 나고 태풍이라도 온 듯 무려 '자연재해'라는 표현을 써 가며 축제를 중단시킨 사유를 정당화하였다. [6] 이에 학생들은 '(총학 측에서) 미리 기상 정보를 알고 있었으면서 무리하게 추진한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과 함께 축제 관련 예산 회계 결과를 공개하라는 요구를 하였다.
9. 계명대 추락사[편집]
2015년 1월 말, 학생회관으로 쓰이고 있는 구 바우어관 건물(1993년 초 준공) 지하 1층 계단에서 졸업을 한 달 앞둔 재학생[7]이 계단에 발을 헛디뎌 넘어져 머리에 피를 흘리다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학생이 머리에 피를 흘리던 때 경비원이 두 번째 순찰을 하고 있었는데 학생을 바로 발견해서 119구급대에 실려갔으나 결국 사망했다. 학생이 사망 직전 동료 직장인들과 계대 근처에서 술을 마시다가 만취 상태로 모교 생각이 난다며 구 바우어관 밖을 배회하다가 계단에 헛디뎌 쓰러진 것이라 한다. 교직원들과 당시 근무했던 경비원들 사이에서도 취업도 했고[8] 곧 졸업을 앞둔 학생이 운명을 달리한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10. 토목공학과 똥군기 사건[편집]
11. 태권도학과 태권도시범단 폭행 및 성추행 사건[편집]
사건은 2017년 8월 24일 한겨레의 보도 기사로 세상에 알려졌다. [단독] 5시간 원산폭격 시키고 목검으로 때린 대학 선배들
한겨레에 따르면, 태권도학과 산하 태권도시범단 소속이었던 태권도학과 신입생 7명(남학생 4명, 여학생 3명)은 지난 4월 입학이후 꾸준히 해당 학과 2~4학년 남학생으로 구성된 선배 6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들은 주로 동아리방에 해당 신입생들을 집합시켜 목검과 플라스틱 파이프 등 둔기를 이용해 무자비하게 구타하였으며, 몇 시간동안 원산폭격을 하도록 강요하는 등 신입생들에게 가혹행위를 일삼았다.
위 기사에 포함된 사진을 보면 상당히 충격적인데, 신입생들의 다리는 멍이 들다 못해 시퍼렇게 색이 변했고 원산폭격으로 인해 두피와 머리카락이 벗겨진 처참한 상태였다. 이들이 이토록 가혹한 폭행을 당한 이유는 황당한데, 그저 선배를 보고 웃었다, 졸았다는 등의 이유 얼토당토 않는 이유였다. 또 가해 학생들은 신입생들에게 자신의 과제를 대신 시키거나 자신들의 폭력행위가 다른 사람 귀에 들어갈까 싶어 피해학생들의 휴대폰을 수시로 검사하기까지 했다.
한편 4학년 가해학생들은 여학생들을 상대로는 어깨 주무르기를 시키는 등 여학생으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행위를 강요하여 성추행 혐의 또한 짙은 상태다. 해당 피해 학생들은 부모와 함께 가해 학생 6명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며, 현재 가해학생들은 특수폭행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불구속 입건되었다.
이들은 상습적 폭행을 저지른 것은 물론 성추행 혐의까지 더해 엄중한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사건이 보도된 지 약 5시간 후 총학생회를 비롯한 대학 본부측의 입장문이 올라왔다. 내용인 즉, 총학생회는 가해자 처벌 및 피해자 보호, 재발방지책 수립을 대학본부 측에 요구하였으며, 대학본부 측은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진상규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과거 총학생회나 대학본부 측의 대응에 비추어보면 이번 대처는 상당히 빠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해당 사건이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발빠르게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9월 1일, 체육대학장 및 학생처장이 해임됐다. 조사는 현재까지 진행중이며 보직해임 처분을 받을 교수가 더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한겨레에 따르면, 태권도학과 산하 태권도시범단 소속이었던 태권도학과 신입생 7명(남학생 4명, 여학생 3명)은 지난 4월 입학이후 꾸준히 해당 학과 2~4학년 남학생으로 구성된 선배 6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들은 주로 동아리방에 해당 신입생들을 집합시켜 목검과 플라스틱 파이프 등 둔기를 이용해 무자비하게 구타하였으며, 몇 시간동안 원산폭격을 하도록 강요하는 등 신입생들에게 가혹행위를 일삼았다.
위 기사에 포함된 사진을 보면 상당히 충격적인데, 신입생들의 다리는 멍이 들다 못해 시퍼렇게 색이 변했고 원산폭격으로 인해 두피와 머리카락이 벗겨진 처참한 상태였다. 이들이 이토록 가혹한 폭행을 당한 이유는 황당한데, 그저 선배를 보고 웃었다, 졸았다는 등의 이유 얼토당토 않는 이유였다. 또 가해 학생들은 신입생들에게 자신의 과제를 대신 시키거나 자신들의 폭력행위가 다른 사람 귀에 들어갈까 싶어 피해학생들의 휴대폰을 수시로 검사하기까지 했다.
한편 4학년 가해학생들은 여학생들을 상대로는 어깨 주무르기를 시키는 등 여학생으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행위를 강요하여 성추행 혐의 또한 짙은 상태다. 해당 피해 학생들은 부모와 함께 가해 학생 6명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며, 현재 가해학생들은 특수폭행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불구속 입건되었다.
이들은 상습적 폭행을 저지른 것은 물론 성추행 혐의까지 더해 엄중한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사건이 보도된 지 약 5시간 후 총학생회를 비롯한 대학 본부측의 입장문이 올라왔다. 내용인 즉, 총학생회는 가해자 처벌 및 피해자 보호, 재발방지책 수립을 대학본부 측에 요구하였으며, 대학본부 측은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진상규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과거 총학생회나 대학본부 측의 대응에 비추어보면 이번 대처는 상당히 빠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해당 사건이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발빠르게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9월 1일, 체육대학장 및 학생처장이 해임됐다. 조사는 현재까지 진행중이며 보직해임 처분을 받을 교수가 더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12. 2020년 계명대학교 서버 디도스 사태[편집]
2020년 9월 8일. 계명대학교 서버에 원인불명의 DDOS 공격으로 오후 1시부터 오후 23시 까지 산발적이고 지속적으로 서버가 마비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전산팀에서 복구를 어떻게든 시도하여 성공하면 얼마안가 다시 서버가 날아가는 현상이 반복되며 이로 인하여 학생들의 수업을 정상적으로 들을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하고있다.
해당 기간은 코로나 19로 인한 비대면 수업기간이었던 탓에 많은 수강생들이 수업을 듣지 못 하고 교수진들도 과제 확인등에 있어서 불편을 겪는 해프닝이 발생하였다.
해당 사건으로 인하여 수강 기간이 늘어나는 등 후속 조치를 하였지만, 이전부터 지속되었던 계명대학교 서버 관련 사건사고들로 인하여 여론은 좋지 못 한 상태.
13. 사회과학대 소속 학과 학회장 단체 직위해제 사건[편집]
2021년 9월, 과잠 구매와 관련된 자금 사용 논란으로 사회과학대 소속 학과의 학회장들이 단체로 해임된 사건이다. 사건 발생 초기에는 자금 관리를 함에 있어서 논란의 여지를 낳은 학회장들의 잘못이라는게 주된 여론이었으나, 사회과학대 학생회의 입장 발표 이후 여론은 완전히 뒤집혔다. 직위해제를 주도한 대의원회와 대의원장의 직권 남용 논란이 화두로 떠올랐다.
[1] 출처 : 영암관 앞 작은 비석,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2] 얼마후 524번은 2015년 개편때 521번을 통해 원래 번호를 되찾아 매곡리공영차고지까지 연장되어 운행중이다.[3] 2015년 개편때 다시 복귀[4] 2015년 개편때 대구 버스 509번이 이어받아 운행중[5] 실제로 승합차나 수면제가 든 음료 등은 인신매매 관련 괴담의 단골 요소[6] 실제로 운동장에 설치된 무대가 무너지고 바우어관 앞 도로가 물에 잠기는 일이 벌어지긴 했다.[7] 해당 학생은 부산에 취업도 했고 취업교육 받다가 모교 생각이 나서 모교로 가는 길이었다고 한다[8] 이 때 술모임이 취업 축하 모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