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3

유달영 [새 역사를 위하여] 11 조국(祖國)의 구원(救援)을 교육(敎育)으로

새역사를 위하여 - 11.조국(祖國)의 구원(救援)을 교육(敎育)으로

유달영

11.조국(祖國)의 구원(救援)을 교육(敎育)으로

이상으로 나는 국민 고등 학교의 교육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실천되어 거둔 바 그 두드러진 성과의 일부를 소개하였다. 북 유럽의 스웨덴, 노르빠이, 핀란드, 독일의 여러 나라에서 국민 고등 학교식의 교육이 국가 면목올 일신하였고, 또 국난 (國難)을 극복한 역사도 찾아 볼 수가 있었다.

어느 나라이고 초기에 있어서 선구자들이 한결같이 가시밭을 걸었으나 보람없는 수고를 한 사람은 없었다. 또 반드시 어느 기간올 지나면 국민들은 각성하여 이를 국가적 인 사업 으로 발전시켜 가게 되었고, 이 교육 사업의 발전에 따라서 국민의 퇴폐상은 일소되고 문화, 정치, 산업, 경제 등의 건실한 발전을 예외없이 성취한 사실을 여러 나라의 역사가 한결같이 실증하였다.

영국은 노동자의 교육 수준을 높이고자 착수하였으나 국가의 협력이 없었고, 미국도 이민한 덴마아크 사람들에 국한되었다. 또 일본에도 선각자들이 그 우수성을 깨닫고 노력하고 있는 중인데 만일 국책으로 적극적인 발전을 시킨다고 하더라도 전전(戰前)과 같이 편협하여 국민 고등 학교의 토양과 근간이 되는 종교 교육을 거세하고 다만 그 형식적인 제도만을 수입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서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비단 일본뿐만이 아니라, 장차 우리 나라에 있어서도 이같은 의구는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추측된다.

스웨덴의 선각자들이 국민 고등 학교와 농학교를 병설하여 그 수학 기간(修學期間)을 늘리고 유기적으로 두 학교를 능률적으로 활용하여 성과를 거둔 것은 새로운 시험으로 주목 할만한 일이다. 독일이 1차 대전에 패배한 후에 형언하기 어려운 핍절속에서 국민 고등 학교를 교육의 1대 사업으로 하고 단결과 인내의 힘을 길러 갱생의 토대를 만든 것도 우리가 지내쳐 볼 바가 아니다. 국민 고등 학교의 도입으로 큰 성과를 거둔 나라들의 공통된 특징은, 그 국가가 큰 고난 속을 헤매면서 단결되지 못하였거나, 국민의 교육 수준의 차이가 심히 커서 문맹이 많았거나, 국민 정신의 불통일로 역사의 방향을 바로 잡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 있었던 경우들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우리도 이상의 여러 요소를 지니고 있다. 전 국민 들은 이 공전절후(空前絶後)의 시련 속에서 각 부면으로 새로운 비역이 없이는 살 길이 없다고 절감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해방 직후의 상태대로 살아나아갈 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못한다. 국민들은 문화, 정치, 경제의 각 부면에 위대하고 청신한 인물을 대망하고 있다. 국민의 종교적 신념, 높은 도덕,광범한 지식, 단결과 협동이 절실히 요청된다.

그러나 이것이 자연히 얻어지기를 바랄 수는 없다. 우리는 스스로의 새 교육 운동의 전개로 이를 성취하는 외에 다른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현실 아래서 덴마아크의 국민 고등 학교의 진수를 소화하여 우리의 것으로 하는 것 이 가능하냐 하는 문제는 중대하고도 절실한 문제라 할 것이다. 필자는 덴마아크의 교육의 연구와 도입을 주장한다. 이 교육 은 확실히 우리 나라의 새 교육사의 전개에 있어서 큰 구실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첫째로 덴마아크의 문화가 농업 문화로서 최고 수준에 도달한 점이다. 우리는 과반수의 국민이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의 나라이지만 우리가 농촌에 발을 들여 놓고 검토해 보면 농업의 경영은 그대로 원시적이다. 농업을 과학적으로 경영하는 사람은 매우 드믈다. 그러므로 그밖의 것은 더도 못된다. 이들을 최단시일에 교육하여 세계와, 국가와, 민족과, 인생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정도에까까지 시급히 끌어올려야 하고 또 그들의 근로와 정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방법으로는 정신과 지식을 단기에 교육하는 멘마아크의 교육이 최적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로 우리 민족의 큰 결합의 하나는 정신적 기반 결함이다. 국민의 정신적 기반이 없이 번영을 누릴 수 없음은 역사의 법칙이다. 우리 나라가 동방의 하나의 문화국으로 역사를 가져왔던 것도 빈약하나마 국민의 정신적인 중추와 기반이 있었던 까닭이다. 삼국시대의 불교와 조선 시대의 유교와 같은 것이 곧 그것이었다. 오늘 우리의 수난은 전쟁이 없었다 할지라도 역시 다른 형대로 혼란에 빠졌음을 면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불교도 유교도 이것을 고도로 소화시키지 못하여 그대로 낡아 버렸고 기독교는 아직 우리 국민 전체의 것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사상(砂上)의 건축같이 국가는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서게 된 것이다. 모래밭을 기반 으로 한 거대한 건축은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 20 전후의 청년을 바라보라. 그들에게 정신적인 무엇을 우리가 주었나? 무엇을 도덕의 기준으로 넣어 주었나? 고귀한 인생관과 정신적인 민족의 유산도 없이 허덕이는 청년들이 얼마나 가엾은가? 해방 후에 자유는 방종(故縱)과 혼돈되고,전제는 진보적 민주주의로 오신(誤信)되었다. 본성이 선하다고 자타가 믿고 있던 이 동방의 예의의 민족이 동족상잔의 흘린 피속에 둥둥 떠서 흐르게 되었다. 한 마디로 정신의 중추의 결여로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부동 하는 정신의 기반이 있었던들 이렇게 참혹한 비참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엔, 눈앞의 이익을 위하여서는 신의도 도덕도 헌 신짝과 같이 주저하지 않고 버리는 현상이다. 소위 지식 계급은 더 한층 무력하고 교활하다.

탄식과 한숨은 한갖 무력 한 존재 일 뿐이 다. 칸트가 2대 경이 (二大驚異)로 느낀 도덕은 오늘에는 아무런 경이도 되지 못한다. 도덕의 낡은 줄은 오히려 광란의 춤에 걸려대는 장애가 될 뿐이다. 도덕을 잃어 버린 인류의 손에 쥐어진 고도의 과학은 무어을 거두게 할 것인가 실로 공포와 전율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전력을 기울여 교육의 중심을 영원의 생명과 도덕의 기반 위에 두고 또 전 농민올 무지의 골짜기에서 구해내는 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통일과 번영으로 향하는 가장 확실한 첩경이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의 당면한 여러 가지 모순점을 해결하는데 서광을 가져올 열쇠가 될 것이다.

덴마아크에도, 스웨덴에도, 노르웨이에도 공산주의자들이 지금도 없지 않으며, 또 토지 정책, 대기업 국영, 개인부(個人富)의 제한 등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올 위하여 사회주의적 정책을 현명하게 채택하여 높은 문화와 산업 경제의 발전을 이루어가되, 혁명의 미명 (美名)을 빙자(憑籍)하고 최대의 죄악인 살육을 행하는 야만적인 방법을 취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종교 교육과 도덕 교육으로 튼튼한 기반을 만들어서 민중들이 어떠한 선동에도 뇌동(雷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전체는 한 사람을 위하여, 한 사람은 전체를 위하여]의 투철한 이념을 우리 생활의 기반으로 만들어야 한다. 민족과 국가의 먼 앞날을 추호도 생각함이 없이 오직 목전의 이익만 을 위하여 분주하는 무리들은 마치 제 손가락과 제 다리를 잘라 먹으면서도 이익을 거두는 것으로 착각하는 무지한 자 들이라고 하겠다,

미국에 다녀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가 미국의 문화와 번영의 근원을 찾아 볼 때 그 근저가 기독교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만일 기독교를 미국의 역사에서 제거 하고 본다면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가? 기독교가 미국에 없었더라면 그 풍부한 자원과 눈부신 과학은 미국의 역사를 오늘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갔을 것이다. 우리가 미국에 가서 화려한 고층 건물과 자동차의 홍수 등의 겉 허울만을 둘러 보고 돌아온다면 과연 우리 나라 현실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합중(合衆)의 나라가 유례 없는 자유를 향유하면서 오늘의 통일과 질서와 발전을 이루는 근저에 착안하는 현명이 필요할 것이다.

제2차 대전 후에 광대한 영토를 분리당한 영국의 노제국(老帝國)은 무력한 존재가 되어 쇠퇴 일로를 밟을 것으로 생각한 이가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강인한 저력으로 역사의 주동이 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역시 그들의 교육의 힘이요,종교의 힘인 것이다. 오래고 높은 문화의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소련도 가부는 차지하고 공산주의의 일정한 이념으로 국민을 무섭게 훈련하고 교육하고 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최대의 결점 정확히 파악하여 근본적인 기초를 세워 나가지 않으면 번영을 향하여 역사의 바퀴가 결코 굴러가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덴마아크의 교육 정신올 거세함이 없이 스웨덴의 장점까지를 아울러 수입하여 교육 구국의 운동을 전개 함이 무엇보다 현명한 방법으로 확신한다. 우리가 제일 먼저 착안하기 쉬운 덴마아크의 협동 조합의 사업도 국민 교육의 기초 공작이 없이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요, 정상배들에게 이용만 될 것이다. 조직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요, 생명이 일을 하는 것이다,

조직은 일의 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아무리 거듭하여 조직을 뜯어 고쳐 보더라도 부패한 국민의 정신으로서는 바라는 성과를 거둘 수는 없다. 국민의 갈 방향을 분명하게 정하라. 청년들을 시급히 교육 계몽하여 정신적 기반을 만들어라. 이것이 우리 나라 새 역사 창조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온 인류가 친형제처럼 상부 상조(相扶相助)하여 복지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 유일한 평화의 길 일 수밖에 없다. 이 주장에 그릇됨이 없다면 직업 종교가들에 의하여 흐려지지 않은 순정(純正)한 종교심에 의해서만 모래 같은 인류가 콘크리트처럼 굳게 뭉칠 수 있을 것이다. 덴마아크의 교육이 기독교 신앙 위에 서지 않았던들 그들도 일시적 성과는 거두었올지 모르나 독일과 일본이 걸어간 편협한 국수주의의 길을 피할 수 는 없었을 것이고 또 그로 인한 역사의 필연의 심판을 벗어나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도산(島山)도 말년에 덴마아크에 큰 흥미를 가지고 구국의 길을 덴마아크의 역사에서 찾고자 하였다. 그가 강서군(江西 郡) 청태 (靑苔)에서 이 운동을 실현해보고자 분투한 것은 과연 도산 안 창호 선생다운 현명한 일이다.

공자는「시 3백은 일언이 페지(一言而蔽之)하고 사무사(思無邪)j라 하였다. 우리의 현실 타개는 일언이폐지하고 건전한 국민 교육으로 그 기초를 삼아야 할 것이다. 특히 청소년의 교육은 시급을 요한다. 청년은 시뻘겋게 달은 철과 같은 것이다. 식기 전에 때려서 연단(鍊鍛)해야 한다. 이 시기에 잘 못 다루면 재교육은 극난한 것이다. 마치 철이 식은 후에는 이것을 목적하는 형으로 만들기가 어려운 것과 같다 . 철은 달굴 수가 있으나 사람은 다시 달구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청년 교육, 신과 민족과 가정을 뜨겁게 사랑하는 정신과 광범위한 지식을 부여하여 진리 만을 사랑하고 진리에서만 살고자 하는 부동의 인생관과 분명한 이상을 목표로 삼는 교육만이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 낼 수 있음을 덴마아크의 역사는 밝게 우리에게 입증하여 주는 것이다.

옛 성인도「3군은 오히려 빼았을 수 있으나 필부(西夫)라도 그 뜻은 빼앗을 수가 없다.」라고 말하였다. 정신 교육이 얼마나 튼튼한 국가와 민족의 기초이며 방패 인가를 가르쳐 주는 금언이라 하겠다.

우리가 덴마아크의 번영을 말하면 소위 식자(識者)들은 누구나 그 원인을 영국의 좋은 시장 때문이라고 한다. 영국 시장이 덴마아크의 생산품을 잘 소비해 주는 까닭에 번영하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천박을 들어내는데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덴마아크의 조합 조직과 판매 기구에만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덴마아크의 농촌의 내실(內實)이 다른 나라들과 크게 다른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덴마아크의 농촌은 도회지의 낙오자나, 폭리위주의 배금주의자(拜金主義者)나,정치 세력에 밀려난 자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다. 덴마아크의 농촌을 세계 제1로 만들어 보자는 야심가들의 집단도 아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국토를 제몸처럼 사랑한다. 신념과 이상 위에서 자연과 인생을 즐기며 근로하는 사람들의 농촌인 것이다. 그들은 독립 자존(獨立自尊)의 정신으로 스스로 갈고,스스로 뿌리고,스스로 거두고, 스스로 팔아서 넉넉하되 검박 건실한 생을 영위하고 있는 국민들이다.

아름다운 농장과 목장과 화원과 숲과 마을은 모두 교육으로 배양된 것이다. 그리고 건전한 인간성은 해마다 기름져 가는 그 국토에서 자라가고 있는 것이다.

[덴마아크의 국토는 비록 좁지 만 덴마아크 청 년들의 머 리 와 가슴 속에는 경작하기에 족한 넓은 토지가 있다.]고 한 말은 덴마아크의 본질율 잘 표현한 말이다. 덴마아크 영국에서 얻는 경제적 가치는 막대하다. 그러나, 유럽대륙에서는 덴마아크만이 농업을 한느 것도 아니며또 국토가 최적의 자연조건을 구비한 것도 아니다.

어찌하여 영국에 더 가깝고 더 광대하고 더 비옥한 국토를 가진 나라들이 영국의 시장을 약소한 덴마아크에게 양도하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하는 원인을 뚫어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덴마아크의 농민들은 햄과 베이컨과 라이드를 위한 돼지만의 축산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돼지 가공품을 가장 많이 사가는 영국이 이것을 사가지 않는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덴마아크의 모피는 제3의 산업으로서 뉴욕시장을 점령하고 있고, 디젤 엔진은 세계 시장의 4분의1을 공급하고 있다. 모래까지 외국서 실어다 만드는 미술 도자기는 결코 영국시장으로만 팔려가는 것이 아니다. 항상 꾸준하게 새로운 지혜로 세계 시장을 스스로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덴마아크가 지닌 좋은 점의 어느 것이던지 그 근원올 찾아 올라가면 반드시 같은 하나로 돌아가 그치게 될 것이다. 그 것은 곧 청년 교육이다.

20세기의 [참 사람]인도의 간디로 하여금「이 세계에 살아봄직한 나라는 오직 덴마아크 뿐이다]라고 감탄한 것이 결코 영국으로부터의 외화 획득이 아닐 것이다. 누가 덴마아크적 노선이 우리의 전도를 열어가는데 부적하다 할 것인가?

덴마아크의 교육은 결코 세계 각국의 장점을 이것 저것 주워 모아 논것이 아니다. 덴마아크의 흙과, 덴마아크의 사람과,덴마아크의 역사와, 덴마아크의 예술을 열렬히 사랑하는 덴마아크에서 움터 나온 덴마아크 정신의 교육인 것이다. 편협한 애국심에서가 아니라 깊고 넓은 기독교 정신의 반석(盤石) 위에 세워진 교육인 것이다.

우리는 구덩이를 파고 샘물을 길어다 붓는 식의 모방을 해서는 안된다. 덴마아크의 번영의 샘물의 근원을 확실히 찾아 보고 우리 자신도 우리 자신의 샘물을 자신이 파내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덴마아크와 통하는 근본적 원리를 파악하여 이를 우리 것으로 하기에 힘쓴다는 것은 더없는 슬기가 될 것이다.

다음의 노래는 대한 교육 연합회가 제정한 교육의 노래로 교육자들의 이념과 사명감을 확고히하기 위하여 필자가 지은 것이다. 아침 수업 전에 교사들이 한데 모여 이 노래를 우렁차게 합창하고 각각 교실로 들어가는 학교들이 있다. 날마다 교육의 이념과 역사적 사명감을 새로이 다짐해 두는 것은 참 으로 중요하다 하겠다.

교육의 노래

반만년 오랜 역사 민족 삼천만

오 ! 눈부신 세기의 흥망의 날에

재우고 가르치는 타는 정열은

구국의 밝은 횃불 높은 등화대

우리는 찬란한 새 역 사의 창조자

곤을 모르는 불사조(不死鳥)의 날개라

삼천리 아름다운 강과 산위에

오! 높고도 푸르른 조국 하늘은

배우고 가르치는 우리의 가슴

진리의 꽃이 피어 무궁하리라

흐르는 강물처럼 끊임이 없어

오 ! 가슴에 빛나는 태양을 안고

배우고 가르치는 거룩한 사랑

생명의 영광이어 영원하여라.

교육은 분명히 새 역사를 창조하는 근본적 요소이다. 교육자들은 역사적 자각 아래 무거운 사명을 분명히 느끼고 피곤을 모르는 페닉스의 날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