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그룬트비를 주목해야 하는 까닭
성공회대 고병헌 교수…끊어진 교육의 맥 여기서 찾자
기자명 이경근
승인 2002.10.04
▲ 9월 28일 성공회대학교 새천년기념관에서는 '덴마크교육에서 배우자'란 주제로
하반기 교육사랑방이 문을 열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뉴스앤조이>는 성공회대학교 민주사회교육원이 '덴마크 교육에서 배우자'라는 주제로 진행하는 2002년 하반기 교육사랑방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연재한다. 첫째로 9월 28일 첫 모임에서 발표한 고병헌 교수(성공회대·광명시평생학습원장)의 발표 내용을 요약한다.
6개월 동안 열리는 하반기 교육사랑방 오리엔테이션을 겸한 이날 강의에서, 고 교수는 왜 우리가 덴마크 교육과 그룬트비에 주목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두 번째 모임은 10월 18일 광명시평생학습원에서 진행되며 풀무학교 교장을 지내신 홍순명 선생에게서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예정이다. (편집자주)
대안교육이라는 단어를 한 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지금 정부 교육정책의 큰 그림은 95년 5월 31일의 교육개혁에서 비롯되었는데, 그로부터 한 달 뒤 몇몇 분들과 함께 대안교육에 관한 워크숍을 열었다. 이후 일본·유럽 등지의 대안교육과 대안학교가 소개되면서 국내에서도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아졌다. 대안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짚고 넘어갔으면 한다.
대안교육은 수단이 되어야 한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지금 우리 나라 대안교육은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 대안교육을 크게 법적인 면과 철학적인 면으로 나눌 수 있는데, 우리는 법적인 면만 생각하고 있다. 즉, 대안교육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슨 무슨 대안학교라고 이름 붙인다고 저절로 대안교육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학교를 대안학교로 만들겠다'란 말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거란 말과 같다.대안교육은 철학적인 면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존의 학교교육에서 무엇이 실현되지 않는지, 대안교육으로 무엇을 추구하려고 하는지,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연구해서 추구하려는 가치에 맞는 교육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기존의 교육으로 가능하다면 현 교육제도를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고, 그것과는 다른 교육이 필요하다면 대안이 될 만한 교육을 찾는 것이다.
대안교육은 '무슨 무슨 대안학교'라는 이름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실현하고픈 가치를 기존의 교육과는 다른 대안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안교육의 본질은 대안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아니고 교육을 통해 실현하고픈 이상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살아있는 언어에 대해서
그룬트비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말'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혹자는 교육 3요소를 교사·학생·교재라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3요소에는 학생과 선생의 '만남'이 있어야 하고, 삶을 매개로 한 '내용'도 있어야 한다. 그 때 중요한 것이 서로간의 '말'이다.
덴마크 교육학자 에기디우스 선생은 그룬트비의 정신적 유산이 글이 아닌 말에 의해 전해져 왔다고 말한다. 교육의 기본 수단은 살아있는 언어(the living word), 즉 '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쓰이는 말은 너무나 오염되었다. 한 문장을 말하는데 비속어가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모른다. 뜻이 맞는 우리말을 놔두고 영어 또한 얼마나 많이 쓰고 있는가.
이러니 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실제 쓰는 말로 교육을 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실제로 쓰는 말과 교육을 위한 '정제된' 글이 분리되어 있다. 그룬트비의 영향을 받은 톨스토이는 지식인들이 말로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죽은 글, 거짓 글이 되고 있다고 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어린아이들도 말은 알아듣는다. 말을 올바르게 쓰는 것은 교육에 있어 상당히 중요하다.
그룬트비가 살아있는 언어라고 정의한 '말'은 교사와 학생간에 이루어지는 동등한 입장에서의 대화이며, 감정을 표현하게 하고 듣는 이의 가슴을 파고들어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놀라운 힘의 원천이다. 우리가 그룬트비를 공부하고 덴마크 교육의 본질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앞서 말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한다.
풀무학교는 왜 그룬트비에 주목하는가
▲ⓒ뉴스앤조이 신철민
그룬트비는 19세기 활동했던 사람이며, 덴마크의 괴테라고 불린다. 덴마크 사회 모든 곳에 영향을 끼쳐 지금의 덴마크를 일으켜 세운 사람이다. 그룬트비의 사상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 톨스토이, 간디를 거쳐 마틴 루터 킹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함석헌, 김교신, 이찬갑 등이 영향을 받았다. 즉 우리 나라의 선구자적 교육 사상이 그룬트비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정신적 흐름의 연결선 위에 풀무학교가 세워졌다. 풀무학교는 40년 동안 세상의 관심 밖에 있다가 90년 이후 조금씩 알려졌다. 그나마 아는 사람들도 '시골에 있는 대안학교' 정도로 알고 있다. 하지만 풀무학교는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풀무학교의 교육은 세계적 수준이다.
풀무학교에서 사용하는 국어책에 이런 문제가 나온다. '전쟁 원인이 되는 사회적 긴장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글쓴이는 비폭력 실행의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 현 교육은 논술시험 성적을 매기기 위해 이런 문제에 대한 자기 표현을 평가한다. 하지만 풀무학교는 그렇지 않았다. 풀무학교는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논술을 수단으로 삼는다. 엄청난 저력을 가진 학교다.
'그 나라의 역사와 말'이 아니고는 그 민족을 깨칠 수 없다는 그룬트비의 가르침으로 풀무학교를 만든 이찬갑과 주옥로. 이들이 추구했던 가치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예수를 본 받아 묵묵히 이 세상 짐을 지고 갈 일꾼, 참된 평민을 키워내는 일이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이승훈, 이찬갑 등이 건설하고자 했던 이상촌의 맥박에서부터 지금 시대의 위대한 평민을 기르는 일 까지, 1백년을 이어온 자아 혁신의 이상이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것이 대안교육이며 이 사회를 위한 대안이다. 하지만 규모의 경제학이 위세를 떨치고, 온갖 '화려한' 교육이론과 교육 방법론이 교육현장을 휘두르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저력이 40년 가까이 단절되었다. 그러나 풀무학교는 저 외딴 시골구석에서 반세기동안 서야 할 자리를 조용하고 묵묵하게 지키며 끊어진 우리 교육의 맥을 그룬트비를 통해 찾으려 하고 있다.
이제 우리 정신적 원류를 찾아야 한다. 전통으로부터 이어져 왔어야 할 교육의 맥을 지금 다시 이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덴마크를, 그 중에서도 그룬트비를 주목하는 이유다.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