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6

ステファヌ・マラルメ - Wikipedia

ステファヌ・マラル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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ステファヌ・マラルメ
Stéphane Mallarmé
Mallarme.jpg
1896年当時のマラルメ
誕生1842年3月18日
フランスの旗 フランス王国パリ
死没1898年9月9日(56歳没)
フランスの旗 フランス共和国セーヌ=エ=マルヌ県、ヴァルヴァン
職業詩人
言語フランス語
ジャンル
文学活動象徴主義高踏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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ステファヌ・マラルメ(Stéphane Mallarmé, 1842年3月18日 - 1898年9月9日)は、アルチュール・ランボーと並ぶ19世紀フランス象徴派の代表的詩人。代表作に『半獣神の午後』『パージュ』『詩集』『骰子一擲』(とうしいってき、『サイコロの一振り』とも)、評論集『ディヴァガシオン』など。

生涯と詩作[編集]

パリに生まれる。本名エティエンヌ・マラルメ(Étienne Mallarmé、フランス語の男子名でStéphaneはÉtienneの異形である)。若いうちにユーゴーらのロマン派の影響を受けて詩作を始め、ボードレールの作風やアメリカの詩人・作家のエドガー・アラン・ポーの『詩の原理』をもとに創った詩が文壇に知られるようになる。第三共和政下パリで、コンドルセ中学の教師として英語を教える傍ら、生涯にわたって詩の可能性を探り、難解な詩や批評を書き綴った。

初期詩篇と呼ばれる1860年代前半までの詩はボードレールの問題系である「理想と現実の差異への葛藤と苦しみ」が、その後は「詩が書けないこと」そのものを主たるテーマにおいている。マラルメがある時期から生涯を通じて目指していたのは、詩を創作する上で生じる「偶然」を排した完全・完璧な美しい詩を書くことであった。その並外れた困難さゆえに、極度の詩作の不毛に悩まされた。それこそが後に着想される「作品」Œuvreである。彼の詩集に収められた詩は、幾つかの例外を除いて、ほとんどがこの「作品」(更なる後に「書物」Livreに置き換わる)の制作過程の副産物であったとも考えられる。

1866年、その「作品」の重要な位置を担うはずの『エロディヤード』(古序曲)を書き進めていくうちに「形而上学的危機」(友人に宛てた手紙の中で「幸いにも私は完全に死んだ」との文言を書き記すが、これがモーリス・ブランショの思索に強く影響を与える)と呼ばれる精神状態をもたらす。この世の一切が虚無であることに遭遇し、キリスト教におけるの死を悟り、ロゴスコギトが解体され、存在の根拠を失う。しかし詩の根源的なあり方へとその思索と魂の探求を深めていくなかで、詩人は「美」Beauを発見し、それを詩と宇宙の中心原理とする。

このころ執筆された『イジチュール』は、文法も意味も極限まで拡散された最たるものであるが、かなり判別できない文法を辛うじて読み進めると、書く行為(エクリチュール)が人間存在の根底に関わっている所作であることの物語として読める。この体験を契機とし、マラルメはフランス文学史上(あるいは世界文学史上)、初めて詩と人間の根源について問いを立て、それを体系的に提示し(あるいは提示しようとし)、今でも多くの示唆を我々に与えている。

1870年代に入ると、地方の中学を転々と赴任していたマラルメはパリへと赴き、英語教師の職を再び得て、積極的にジャーナリズム活動を始める。1873年ごろ、画家のマネと知り合い、1874年にポーの『大鴉』の散文訳、1876年『半獣神の午後』の挿絵で豪華本のコラボレーションを行う。この作品にインスピレーションを受けてドビュッシーが『牧神の午後への前奏曲』を作曲した。

1880年代以降の後期詩篇は、主に詩にまつわるさまざまな精神的事象を、詩そのもので説明するメタポエムが多い。

最晩年、『コスモポリス』誌に『骰子一擲』を発表。これは「詩と偶然」について扱われたものだが、さまざまに異なる書体や文字の大きさを用い、それまでの西洋詩のもつ諸概念を根本的に覆した。「賽(サイコロ)の一振りは決して偶然を排さないだろう」"UN COUP DE DÉS JAMAIS N'ABOLIRA LE HASARD"という軸になる一文と、それにまつわる複数の挿入節の文章で構成されている。詩の内容のみならず、その視覚的形態はいまなお革新的で斬新である。

次に『エロディヤードの婚礼』の執筆に着手したが、1898年、咽喉痙攣によって窒息し急逝、未完作となった。

詩と思索[編集]

マラルメの詩と思索は難解さをもって世に知られる。詩作初期からその傾向があったが、前述の危機以降、それはますます強くなる。文法が一般的なフランス語法から乖離していることもその一因である。それは詩に留まらず、後期の散文にも当てはまる。マラルメが好んで難解さを求めたこと、物事を仄めかすことによって何かを伝えることを目的としたこと、文法よりも詩的リズムを重視したことなどが理由として挙げられる。

彼の思索は、その文学中心主義に特徴がある。「世界は一冊の書物に至るために作られている」という彼自身の言葉がそれを表している。後に『ディヴァガシオン』(1897年)に収められるさまざまな分野にまたがる評論・批評(バレエ、音楽、絵画、あるいは政治事件など)は、常に文学の問題へと収斂されていく。例えばバレエを「身体で描くエクリチュール(文字、書く行為)」ととらえて表現した有名なことばなどは、20世紀の舞踊論に大きな影響を与えたが、芸術の表象が記号として機能していることを早くに喝破した。

そしてそのように、文学にまつわるあらゆる事象を読解するその視線は、いまなお多くの可能性を含んでいる。

マネ ステファヌ・マラルメの肖像(1876年)

交友関係[編集]

マラルメはマネをはじめ、諸芸術家とたいへん親交が深かったことでも有名である。ローマ街(パリ17区ローム通り (Rue de Rome) 87番地(現89番地))にある自宅で開かれた「火曜会」と呼ばれる会合には、数えればキリがないものの、画家のモネルノワール、そしてドガなどの印象派をはじめゴーギャンドニホイッスラー、詩人のヴェルレーヌヴァレリー、作家のオスカー・ワイルドアンドレ・ジッド作曲家ドビュッシーなど、錚々たる芸術家が集まった。

評価[編集]

マラルメの、高度に難解な思想の可能性は現代に入ってようやく理解され始めてきた。サルトルブランショらはマラルメの文学に関する思索と営為の可能性を示し、特に「書くとは何か」という点でテル・ケル派や現代思想家、とりわけロラン・バルトミシェル・フーコーデリダらにも影響を与えている。文学者クリステヴァらはマラルメを現代詩人のさきがけととらえ、詩人のイヴ・ボヌフォワは幾分かの留保をしつつも、積極的にマラルメの詩学について多くの思索を行っている。作曲家のピエール・ブーレーズもケージの『偶然性の音楽』に対してマラルメの『偶然性』をモチーフに『プリ・スロン・プリ』を作曲した。

※以上の記事は、(『集英社世界文学大事典 4巻』、1997年)にある「マラルメ」の項目を参照。

日本語訳[編集]

  • 『マラルメ全集』、筑摩書房(全5巻)、1989年-2010年。
    編集委員:渡邊守章清水徹阿部良雄菅野昭正松室三郎 
    • 第1巻「詩・イジチュール」 2010年 。
    • 第2巻「ディヴァガシオンほか 散文作品」別冊解題・註解、1989年。
    • 第3巻「言語・書物・最新流行」別冊解題・註解、1998年。
    • 第4巻「書簡 I」 1991年。
    • 第5巻「書簡 II」 2001年。 
  • 『マラルメ詩集』 渡邊守章訳注・解題、岩波書店〈岩波文庫〉、2014年。詳細な注解での新訳版。
  • 『マラルメ詩集』 鈴木信太郎訳、岩波書店岩波文庫〉、1963年。旧訳版、上記全集の編集委員は弟子。
  • 『西脇順三郎コレクション3 翻訳詩集 マラルメ詩集 ほか』 新倉俊一編、慶応義塾大学出版会、2007年。
    • 旧版『世界詩人選07 マラルメ詩集』 西脇順三郎訳、小沢書店〈小沢クラシックス 世界の詩〉、1996年。
  • ステファヌ・マラルメ『詩集』 柏倉康夫訳、月曜社〈叢書・エクリチュールの冒険〉、2018年。
  • 『ステファヌ・マラルメ 賽の一振りは断じて偶然を廃することはないだろう』
    フランソワーズ・モレル編著、柏倉康夫訳、行路社、2009年。原稿と校正刷、編者による出版 考察・解題
  • 改訂新版『賽の一振り』 月曜社〈叢書・エクリチュールの冒険〉、2022年

伝記・作品研究[編集]

脚注[編集]


外部リンク[編集]








스테파누 마랄메 - Wikipedia

스테파누 마랄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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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누 마랄메
Stéphane Mallarmé
Mallarme.jpg
1896년 당시의 마랄메
탄생1842년 3월 18일 프랑스 왕국 , 파리
프랑스 국기
사망1898년 9월 9일 (56세 몰) 프랑스 공화국 , 세느=에=마르누 , 발반
프랑스 국기
직업시인
언어프랑스어
장르
문학 활동상징주의 , 고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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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릿 표시

스테파누 마랄메 (Stéphane Mallarmé, 1842년 3월 18일 - 1898년 9월 9일 )는 알튀르 람보 와 함께 19세기 프랑스 상징파 의 대표적인 시인 대표작에 『반수신의 오후』 『파주』 『시집』 『코코 이치테츠』(어쨌든 『사이콜로의 한 모습』이라고도 함), 평론집 『디바가시온』 등.

평생과 시작 편집 ]

파리 에 태어난다. 본명 에티엔느 마랄메 (Étienne Mallarmé, 프랑스어의 남자명으로 Stéphane는 Étienne의 이형이다). 어린 시절 유고 의 로망파 의 영향을 받아 시작을 시작하여 보드 레일 작풍과 미국 시인 작가 에드가 알란 포 의 '시 원리'를 바탕으로 만든 시가 문단에 지 된다. 제3공화정 하 파리에서 콘도르세 중학교의 교사로서 영어를 가르치는 곁에, 평생에 걸쳐 시의 가능성을 찾아, 난해한 시나 비평을 적었다.

초기 시편으로 불리는 1860년대 전반까지의 시는 보드 레일의 문제계인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 대한 갈등과 고통」이, 그 후에는 「시를 쓸 수 없는 것」그 자체를 주된 테마에 있어. 말라루메가 어느 시기부터 평생을 통해 목표로 하고 있던 것은, 시를 창작하는데 있어서 생기는 우연」을 배제한 완전・완벽한 아름다운 시를 쓰는 것이었다그 뛰어난 어려움 때문에 극도의 시작의 불모에 시달렸다. 그것이 나중에 착상되는 "작품" Œuvre이다. 그의 시집에 담긴 시는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작품"(추후에 "책"Livre로 바뀐다)의 제작 과정의 부산물이었다고도 생각된다.

1866년 그 '작품'의 중요한 위치를 담당해야 할 '에로디야드'(고서곡)를 쓰고 가면서 '형이상학적 위기'(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 '다행히 나는 완전히 죽었다”는 문구를 적었지만, 이것이 모리스 브랜쇼 의 사색에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라고 불리는 정신 상태를 가져온다. 이 세상의 일체가 허무한 것에 조우하고, 기독교 에 있어서의 하나님 의 죽음을 깨닫고, 로고스 와 코기토 가 해체되어, 존재 의 근거를 잃는다. 그러나 시의 근원적인 방식으로 그 사색과 영혼의 탐구를 깊게 해 나가는 가운데, 시인은 「미」Beau를 발견해, 그것을 시와 우주의 중심 원리로 한다.

요즘 집필된 『이지튤』은 문법도 의미도 극한까지 확산된 가장 큰 것이지만, 꽤 판별할 수 없는 문법을 굳이 읽으면서 쓰는 행위( 에크리츄르 )가 인간 존재의 근저에 관련된 소작 인 이야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체험을 계기로 해, 말라루메는 프랑스 문학 사상(혹은 세계 문학 사상), 처음으로 시와 인간의 근원에 대해 물어, 그것을 체계적으로 제시(혹은 제시하려고), 지금도 많은 시사를 우리 에 주고 있다.

1870년대에 들어서자 지방의 중학교를 전전에 부임하던 마랄메는 파리로 가서 영어 교사의 직업을 다시 얻어 적극적으로 저널리즘 활동을 시작한다. 1873년경, 화가의 돈 과 알게 되고, 1874년에 포의 『오가리』의 산문역, 1876년 『반 수신의 오후』의 삽화로 호화책의 콜라보레이션을 실시한다. 이 작품에 영감을 받아 드뷔시 가 ' 목신의 오후에 전주곡 '을 작곡했다.

1880년대 이후의 후기 시편은 주로 시에 관련된 다양한 정신적 사건을 시 자체로 설명하는 메타포엠 이 많다.

최후년, 『코스모폴리스』 잡지에 『코시이치 테츠』를 발표. 이것은 「시와 우연」에 대해 다루어졌지만, 여러가지 다른 서체나 문자의 크기를 이용해, 지금까지의 서양시가 가지는 여러 개념을 근본적으로 뒤집었다. 「주(사이코로)의 한 모습은 결코 우연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다」 " UN COUP DE DÉS JAMAIS N'ABOLIRA LE HASARD "라는 축이 되는 한 문장과 거기에 관련된 복수의 삽입절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 시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시각적 형태는 여전히 혁신적이고 참신하다.

다음에 『에로디야드의 혼례』의 집필에 착수했지만, 1898년, 인후 경련에 의해 질식해 급속히, 미완작이 되었다.

시와 사색 편집 ]

말라루메의 시와 사색은 난해함으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시작 초기부터 그 경향이 있었지만, 전술의 위기 이후, 그것은 점점 강해진다. 문법이 일반적인 프랑스어법에서 괴리하고 있는 것도 그 원인이다. 그것은 시에 머물지 않고 후기 산문에도 적용됩니다. 말라루메가 선호하고 난해함을 요구한 것, 사물을 씹어서 무언가를 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 문법보다 시적 리듬을 중시한 것 등이 이유로 꼽힌다.

그의 사색은 그 문학 중심주의에 특징이 있다. "세계는 한 권의 책에 이르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라는 자신의 말이 그것을 나타냅니다. 뒤에 『디바가시온』(1897년)에 담긴 다양한 분야에 걸친 평론·비평(발레, 음악, 회화, 혹은 정치사건 등)은 항상 문학의 문제로 수렴되어 간다. 예를 들면 발레를 「신체로 그리는 에크리츄르(문자, 쓰는 행위)」라고 파악해 표현한 유명한 말 등은, 20세기의 무용론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예술의 표상이 기호 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 빨리 갈라졌다.

그리고 그렇듯이 문학에 관련된 모든 사건을 읽는 그 시선은 여전히 ​​많은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네 스테파누 마라르메의 초상화(1876년)

교우 관계 편집 ]

말라루메는 머니를 비롯해 여러 예술가와 매우 친교가 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로마가( 파리 17구 로옴 거리( Rue de Rome ) 87번지(현 89번지))에 있는 자택에서 열린 '화요회'라는 회합에는 꼽히면 없어도 화가의 모네 , 르누아르 , 그리고 도가 등의 인상파 를 비롯해 고갱 이나 도니 , 휘슬러 , 시인의 베를린 , 발레리 , 작가의 오스카 와일드 , 앙드레 지드 , 작곡가 의 드뷔시 등, 연예인이 모였다.

평가 편집 ]

말라루메의 고도로 난해한 사상의 가능성은 현대에 들어가야 마침내 이해되기 시작했다사르트르 , 브란쇼 등 은 말라루메의 문학에 관한 사색과 행위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특히 "쓰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점에서 텔 켈 파와 현대 사상가, 특히 로랑 발트 , 미셸 푸코 , 데리다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문학자 크리스테바 등은 말라루메를 현대 시인의 사키케케로 파악하고, 시인의 이브 보누포바 는 약간의 유보를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마라루메의 시학에 대해 많은 사색을 실시하고 있다. 작곡가 피에르 부레즈 도 케이지의 ' 우연성 의 음악 '에 대해 말라루메의 '우연성'을 모티브로 ' 프리 슬론 푸리 '를 작곡했다.

※이상의 기사는, 「『슈에이샤 세계문학대사전 4권』, 1997년」에 있는 「마랄메」의 항목을 참조.

일본어 번역 편집 ]

  • 『마랄메 전집』, 쓰 쿠마 서방 (전 5권), 1989년-2010년.
    편집 위원 : 와타나베 수장 , 시미즈 토오루 , 아베 요시오, 스가노 쇼쇼 , 마츠 무로 사부로 
    • 제1권 「시·이지츄르」 2010년 .
    • 제2권 「디바가시온 외 산문 작품」별책 해제·주해, 1989년.
    • 제3권 「언어・서물・최신 유행」별책 해제・주해, 1998년.
    • 제4권 「서간 I」 1991년.
    • 제5권 「서간 II」 2001년. 
  • 『마라루메 시집』 와타나베 수장 번역 주·해제, 이와나미 서점 <이와나미 문고>, 2014년. 상세한 주석으로 신역판.
  • 『마랄메 시집』스즈키 신타로 역, 이와나미 서점 < 이와나미 문고 >, 1963년. 구역판, 상기 전집의 편집위원은 제자.
  • 『니시와키 준사부로 컬렉션 3 번역시집 마라루메시집 외』 신 쿠라 슌이치 편, 게이오 요시카쿠 대학 출판회 , 2007년.
  • 스테파누·마라르메 『시집』카시와쿠라 야스오 역,  요사 <총서·에크리츄르의 모험>, 2018년.
  • 『스테파누·마랄메 분의 한 모습은 거절하고 우연을 폐할 것은 없을 것이다』
    프란소워즈 모렐 편저, 카시와쿠라 야스오역, 행로사, 2009년. 원고와 교정쇄, 편자에 의한 출판 고찰・해제
  • 개정 신판 『배의 한 모습』 요사〈총서·에크리츄르의 모험〉, 2022년

전기·작품 연구 편집 ]

각주 편집 ]


외부 링크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