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6

완전히 새로 태어난 선영씨 - 성장마인드셋의 증인

 완전히 새로 태어난 선영씨 - 성장마인드셋의 증인


by민혜숙May 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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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나에게 살아 숨 쉴 수 있는 시간이 딱 5분 남았다면?


“영하 50도가 되는 겨울날 형장에 끌려와 기둥에 묶였다. 사형집행 시간을 생각하며 시계를 보니 땅 위에 살 수 있는 시간이 딱 5분 남았다. 28년을 살아왔지만 단 5분이 이라도 천금 같기는 처음이다. (...) 28년 세월이 지나도록 매 순간 아껴 쓰지 못한 것이 아프게 후회됐다. 이윽고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죽음의 공포에 몸을 떨었다. 바로 그때였다. 형장이 떠들썩하더니 한 병사가 흰 수건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다. 황제의 특사령을 받아 온 병사였다.”

1849년 4월에 있었던 도스토옙스키의 유명한 이야기를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한근태 작가가 소개한 글에서 다시 읽었다. 총살 집행 직전 황제의 특사로 기적적으로 살아난 도스토옙스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매일 생각하면서 이 사건 이후에 인생을 전과 다르게 새롭게 살았을 것 같다.

나에게는 주어진 시간을 마냥 흘려보내고 싶었던 30대가 있었다. 아기인 딸아이를 키울 때 하루종일 아이를 먹이고 놀아주고 집안일을 해도 시간이 너무 안 가고 지루해서 어서 40대가 되고 싶다고 소망했다. 40대에는 딸아이의 입시 전쟁을 치르고 돈 버는 일이 힘들어서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을 것 같은 50대가 어서 되고 싶었다. 드디어 50대가 되었더니 도스토옙스키가 형장에서 맞닥뜨린 5분처럼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귀하다.

육체가 온전히 건강한 내 인생의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과 내가 하루하루 노화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나와 생각이 너무 다르고 불편한 사람을 굳이 만나지 않고 소중한 사람을 귀하게 만나려고 한다. TV를 집에서 없애 버린 지 20년은 되어서 TV 보는 데 시간을 보내는 대신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면서 살았다. 학생이나 취준생도 아닌데 시간을 아껴서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인데 선영씨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선영씨는 2014년 패이스북으로 알게 된 친구인데 학창시절에 수학을 너무 싫어했다는 내용을 보고 내가 친구신청을 했고, 서로 집 근처의 카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카페에서 오프라인으로 만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선영씨가 기독교신앙을 갖고자 하는 것을 알고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면서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었는데, 점점 선영씨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어서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그녀가 마치 중고등학교 단짝 친구처럼 매일 카톡으로 변화무쌍한 자신의 생각과 사진을 보내왔고, 내 가족이나 지인들에게도 너무 친근하게 다가와서 나는 무척 피곤해졌다. 그래서 결국 관계를 내 쪽에서 끊어버리는 극단적인 행동을 했다. 관계에는 서로가 원하는 거리가 있고 그 거리에 대한 기대가 서로 다를 때는 조율해 하면서 관계를 흘려보낼 수도 있었는데 나에게 그런 지혜가 없어서 감정적으로 그녀를 대했다.

연락 없이 지낸 세월을 한 2년 보내고 나는 내가 잘못했다는 양심에 가책이 심했다.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다시 만난 선영씨는 그 전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너무 달라서 다른 사람 같았다. 태도가 안정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독서와 여행을 즐기고 유머 넘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떤 사람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180도 바뀐 것을 경험한 바가 없어서 너무 경이롭고 반가운 일이었다.

선영씨는 자신을 괴롭혔던 문제들을 가지고 심리치료가를 찾아갔다고 했다.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며 상담을 마치고 어머니와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고 나아가 헤어졌던 남편과 재결합했다고 했다. 어머니의 경우 심리치료를 거부하셨는데 선영씨가 10회기 상담료를 다 지불했으니 가셔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 역시 평생 처음 자신의 말을 경청해주는 심리치료가와의 경험으로 그녀처럼 완전히 다른 삶을 사시게 되었다고 했다. 같이 살던 아들 내외를 분가시키고 유치원에서 동화를 읽어주시는 할머니가 되셨다.

그녀의 스토리는 심리학자 캐롤 드웩이 <마인드셋>에서 말하는 성장마인드셋의 더 없이 좋은 예였다. 자신의 상황을 고쳐보겠다는 의지와 자기 성찰을 위한 독서와 배움 그리고 전문가를 찾아가서 자신의 불행을 다시 이야기하는 용기가 있었다. 그리고 헤어진 남편에게 다시 손을 내밀어 화해를 청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 즐거움도 누리고 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진리를 확인시켜 주었다.

새로 태어난 것처럼 완전히 변한 선영씨는 나의 완벽한 책벗이 되었다.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리지만 우리는 분명 친한 친구다. 그녀도 나처럼 책을 읽으며 글을 쓴다. 우리는 분명 학교 school의 어원인 schola 스콜라의 의미대로 살고 있다. 라틴어 스콜라는 ‘여가 시간’이라는 뜻이라는데, 고대 그리스인들이 여가시간에 토론 논쟁 강의를 하던 장소를 skhole 라 불러서 그렇다고 한다. 어원대로 우리는 여가시간에 책을 읽고 만나면 책 이야기를 나눈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존재가 열린다. 자기 자신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지난 수년 동안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했고 통찰을 얻었으며 홀가분한 자유함으로 자신의 지난 모습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배운 척 아는 척 있는 척하느라 애쓰지 않고 오래된 자신을 깨부시고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말해주었고, ‘존재의 용기’를 가지고 진짜 나됨을 찾아갔다고 했다. 그녀의 컴백은 나에게도 용기가 되었다. 특히 여가시간에 책보는 것이 기이한 취미가 아니라 삶이 자양분이라는 것을 공유할 벗이 생기면서 나의 독서는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녀는 온라인으로 좋은 글을 읽으면 나와 공유해준다. 내가 좋아하는 튤립을 너무 멋지게 그린 데이비드 호크니 화가도 알게 되었고, 작가도 많이 소개해 주었다. 나는 이슬아, 김혼비, 남궁인 정지우 등의 작가를 알게 되었고 그 작가들의 글을 즐겁게 읽게 되었다. 그녀가 추천하는 작가의 글을 열심히 읽고 간단히 나의 평가를 말해주면 내가 비평가가 되었다면 많은 작가를 울렸을 거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녀가 나에게 좋은 작가의 글을 소개해 주듯이 나도 정보가 많거나 감동을 주는 책을 만나면 늘 소개해 준다. 여행기를 쓰거나 글을 쓰면 그녀에게 제일 먼저 보낸다. 내 글을 열심히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든든하고 즐거운 일이다. 내 글을 읽고 칭찬을 해주면 나는 날아갈 것 같고 마치 내가 열망하는 사람이 이미 된 것 같은 자기 초월감을 느끼면서 다시 열심히 읽기 혹은 쓰기 모드에 들어간다.

선영씨는 무자녀 가정이어서 조카들을 일주일에 한 번 만나 놀아주는데 육아나 교육에 대한 조언은 내가 아낌없이 해준다. 내 아이가 다 컸지만 여전히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는 그녀와 교육학이나 심리학에 관련한 책들에 서로 관심을 공유한다. <감정코칭>이나 <공부머리 독서법> 같은 책들이다. 무자녀인 여성은 자녀가 있는 여성과 대화를 하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깨버린 그녀가 너무 멋지다.

책이라는 매개를 통한 만남은 공고하다. 책을 통해 우리가 함께 깨달은 것을 공유할 때 우정이 깊어짐을 느낀다. 인생을 살면서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일을 방해하는 요소는 바로바로 버린다. 그것이 나의 미니멀리즘이라고 할까. 나와 의견이 너무 다른 사람은 비난하지 말고 그들이 잘 되기를 빌어 주자가 그녀의 조언이다. 나와 맞지 않는 그들을 나의 감정에서 차단하고 나의 삶에 몰입하는게 나의 귀한 삶을 위해 해야할 일이다. 만나면 오직 남편, 자식, 주식, 명품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과는 만날 필요가 없다.

도스토옙스키가 생애 최후 남은 5분을 쓰듯 삶을 대하려고 한다. 5분은 너무 짧으니 생애 최후 하루는 어떨가 생각해보니 20년 전 쯤 읽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모리 교수님이 떠올랐다. 다시 그 책을 꺼내 20년전에 내가 줄친 부분을 쫒아가다 보니, 모리 교수님의 이야기에 노란 색으로 줄이 쳐저 있다. 20년 전에도 나는 노란 색연필을 썼나보다. 다시 건강한 24시간이 주어진다면 맛있는 스위트롤과 차로 아침식사를 하고 수영을 가고 친구들과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고 저녁에는 레스토랑에 가서 오리고기로 식사를 하고 저녁 시간 동안 파트너들과 춤을 추고 지친 몸으로 잠이 들 것 같다고 했다. 모리 교수님과 화요일마다 만나 제자 미치는 ‘그게 다에요?’ 하고 묻는다. 스승은 유언을 남기거나 거창하고 대단한 일이 아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나도 모리 교수님처럼 인생의 마지막 24시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맛있는 아침식사후 신정호를 한바퀴 달리고 샐러드와 파스타로 점심을 먹고 다시 신정호를 한바퀴 산책하고 저녁 식사후 와인 한잔 하면서 나의 남편과 딸과 그리고 책벗인 선영씨와 밤 늦도록 좋아하는 책, 영화, 교육, 피아노치기, 달리기, 하나님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