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3

유달영 [새 역사를 위하여] 1.덴마아크로의 志向

발해마을


선의산 2019. 3. 1. 06:58

새 역사를 위하여

 

 

유달영

 

 

1.덴마아크로의 志向

 

오늘 우리의 조국 산천이 피로 물들지 않았던 곳은 없다. 물론 주택도 공장 지대도 재로 화하지 않은 곳은 없다.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은 더 한층 살벌하였다.
이 국토에 서서, 기아선상(飢餓線上)에방향 없이 헤매는 수백만 동포를 바라보며, 진정으로 민족과 나라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누가 능히 암담한 느낌올 금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우리가 이 참담(樓擔)한 현실 앞에 서서 그대로 낙망하고만 있다면 영원의 암혹이 우리를 둘러싸고 떠나지 않올 것이다.

 

우리는 있는 지성(至誠)과 지혜와 정열을 다하여, 참으로 꾸준하게 이 세기적인 큰 재화(災禍)를극복하고,폐허로 화한 이 국토 위에 새 역사롤 창조하고 새 낙원을 건설하겠다는 철썩같은 결심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전고(前古)에 없는 참혹한 환란의 날에,과연 우리는 희망을 어디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꺾이지 않는 용기를 어떻게 북돋울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이렇게 허덕이고 있을 때에 멀리 북 유럽 변두리에 유난히 반짝이는 덴마아크의 찬란한 역사는 우리의 앞을 밝혀 주는 유일한 등대가 될 것이다. 절망의 깊은 골짜기에서 기어이 희망을 찾아내어 일찌기 안류역사상에  유례가 없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서 농업 문화의 창초와 복지 국가 건설에 성공한 덴마아크의 부흥사(復興史)가 곧 등대라고 나는 확신한다.


덴마아크는 독일 북쪽에 붙어 있는 작은 반도와 수백의 섬으로 된 작은 나라이다. 이번 우리 나라에 6· 25사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우리와는 직접적으로 밀접한관계는 없었으나,유우엔군이 참전하게 되자 즉시 그 일원이 되어 의료와 식품과 병원선(病院船)을보내고 우리와 함께 인류의 자유를 위하여 잘 싸웠다.

 

오늘날 세계 사람들은 덴마아크롤 일컬어 「지상 낙원」이라고 말한다. 빈곤울 물리쳐 어느 나라 국민보다도 부유하고,체육올 진흥시커 어느 나라 국민보다도 건강하며 장수하고,국민의 교육 수준은 세계에서 최고이며 복지 사회의 건설은 빈틈이 없다.특히 일반 농민의 교육 정도(程度)는 비교할데가 없을 만큼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종교와 과학과 경제를 잘 조화시켜 건전하게 평화를 이룩하였고,국민들은 즐겁고 보람 있는 생을 누리고 있어 온 세계의 선망의 대상이 된 것이다.

 

우리 나라 평안도보다 조금 넓은 국토와 당시 3백만 미만의 국민으로서 최악의 모든 조건올 극복하고 오늘의 영광을 가져온 것은 그대로 역사상 하나의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세기적인 비참의 도가니가 된 이 한국에서 찬연히 빛나는 오늘의 덴마아크의 농업 문화를 바라보면,그들은 참으로 우리의 앞길을 비치는 아름다운 비젼 (vision) 이요,희망의 등대가 아닐 수 없다.

 

덴마아크는 교육으로 성공한 나라이다. 그들의 오늘은,그 독특한 국민 교육이 가져온 것이다. 교육 없는 문화를 우리는 상상할수가 없다. 넓은 의미에서 인류의 문화는 곧 교육의 피어난 꽃이요 열매인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곧 교육의 역사라 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30여년동안 일제의 우거운 사슬에 얽매여 신음하였을 때에 이 민족과 이 나라의 광복을 꾀하던 모든 지사들이 직접 간접으로 뜻을 한결같이 교육에 두고 분투 노력하지 않은 이가 없었던 것도 결국 이 때문인 것이다.

 

건전한 교육을 떠나서 누가 감히 나라의 재건과 민족의 번영과, 인류의 발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인가? 덴마아크는 비상한 정열과 노력으로 확실한 교육 목표와 특유한 교육 제도를 창안(創案)하여 전국민을 단시일에 교육하기에 성공하였다. 이 교육의 성공이 덴마아크의 오늘의 번영의 근저가 된 것이다.


산업의 방면에서 보면 우리 나라는 유사이래 농업 국가일 뿐 더러,국토는 농업의 천혜적(天惠的)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농업은 우리 나라 산업의 흔들릴 수 없는 기본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인망이 높은 일본의 한 학자는 그의 「건국 이상원] 라는 논문에서 농(農)을 주로 하고 공(工)을 부로 하는 산업 국가만이 국민에게 참 행복을 줄 수 있는 이상국가라고 지적하였다. 그 학자는 농업만이 건전하고 순박한 국민성과 높은 국가 교양을 오래 유지할 수가 있어서 참 평화와 참 행복을 영구히 누리는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현명한 생각은 덴마아크의 역사가 확실하게 뒷받침하여 온 세계에 실증하여 준 것이다.

 

우리가 눈앞의 이 난국을 타개함에 있어서나,멀리 앞날의 번영을 건설해감에 있어서 나,교육과 농업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전진하는 데 서로 결(缺)할 수 없는 기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급하더라도 이상의 2가지 가본을 확립하지 않고서는 만사에 어느 하나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옛날에 없던 역경에 처하여서 본다면, 모든 조건이 좋아서 순풍에 돛을 펴고 기름 같은 바다 위를 달리듯이 발전한 나라들은 우리의 길잡이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역사에서 탐색하며 또 갈구(渴求)하는 바는 [어떤 국민이 어떻게 절망의 역경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서 가장 건실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빛나는 역사와 번영의 날을 자기의 것으로 가져왔나] 하는 역사적 원리와 사실인 것이다.
이모저모로 깊이 검토하여 볼수록 덴마크의 분투한 역사를 우리의 등대로 하고, 덴마크의 높은 이상을 우리의 비전으로 함이 무엇보다도 튼튼하고 가까운 길임을 확신케 한다.
 


2.절망의 바닥에서

 

1).덴마아크의 국토와 자연

농민의 낙원으로 불리워지는 덴마아크는 독일 북쪽 북해에 튀어나온 작은반도와 그 부근의 수다한 작은 섬들로 된, 4만 3천 평방킬로미터의 작은 왕국으로 우리나라의 평안도보다 약간 넓다. 인구는 제 1차 세계 대전후에 독일로 부터 슬레스비히의 일부를 회복하고서도 겨우 3백 6십만 가량이었으며 1968년의 통계로서는 4백 8십만 가량이다. 그러므로 이 나라는 일대 왕국이 아니라 일소왕국(一小王國)이다. 영토로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가 있으나 전자는 이미 독립하였고 후자는인구 2만가량의 물산(物産)이 희소한 쓸모 없는 섬이다.

 

국토의 주요부인 유틀란드 반도는 원래 빙하 시대에 이루어진 황무지로 땅이 메마르고 서북의 해안은 사구(沙丘)로 둘러져 있다. 북위 54도로부터 57도의 사이에 있어서 우리 나라보다 훨씬 북쪽이며 동양의 캄차카 반도의 위도에 해당한다. 해발 평균 30 미터에 이르지 못하며 2백 미터를 넘는  산이 없는 지대이다. 덴마아크의 최고봉은 유틀란드 동펀에 있는 에이르바브네회 (Ejr Bavnehoj)라는산으로 그 높이가 겨우 172 미터이다. 서울의 남산이 2백 6십미터의 높이이니 우리는 덴마아크의 지세를 이로써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로 산악의 나라 스위스와는 국토의 됨됨이가 여러 가지점으로 대조적이라 하겠다. 서북을 가로막는 산맥이 없으매 차고 습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 1년의 대부분이 대부분이 음산하고도 을씨년스럽다. 1년의 강우량은 겨우 6백밀리에 지나지 않으나 평균 비오는 날이 158 일이오,눈내리는 날이 30 일이며,안개 깊은 날이 94 일 평균이다. 가장 기후가 좋다는 덴마아크의 수도 코펜하겐조차 태양을 바라불 수 있는 날이 겨우 50일에 지나지 않는다.

 

평균 기온은 섭씨 8도이므로 위도에 비해서는 따뜻한 편이다.늦 서리는 5월 10일까지 내리고,10월 5 일쯤에는 벌써 첫눈이 내린다. 땅이 메마르고 기후가 또한 이러하니 농작물은 그 재배에 있어서 자연히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어디서나 가꿀 수 있는 콩, 옥수수 따위도 일광 부족으로 결실을 못하게 되니 다른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가축도 1년 중에 9개월 동안은 축사 안에서만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약간의 토탄(土炭)이 유일한 자원으로 그밖에는 아무 것도 땅 속에서 찾아낼 수가 없다. 이처럼 매장된 자원이 전무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웃나라 스웨덴,노르웨이는 모두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력 전기의 나라들이다. 그런데 덴마아크에서는 수력 전기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이 조건이 나쁘다. 덴마아크야말로 창조의 신이 전혀 쓸모가 없어서 북해 기슭에 내버린 몇 조각 불모의 땅인양 싶다. 아무리 여러 모로 살펴보더라도 자연의 혜택이 너무도 빈약한 한심한 나라다.

 

이제 우리의 인구를 덴마아크에 비하면 막대하다 할 것이요,국토는 또한 광대하다 할 것이다. 물과 바다에서 나오는 백, 천 가지 풍성한 자연의 혜택은 거기에 견줄 바가 아니다. 맑은 하늘, 깨끗한 공기, 기름진 들, 아름다운 산, 수많은 강,복잡한 해안선, 풍요한 바다,다채로운 지하 자원, 무엇 하나 어디에 손색이 있으랴.

어느 것 하나 덴마아크 사람들의 부러움이 되지 않을 것이 없다.덴마아크 국민이 저 유틀란드의 참담한 황무지에서 농민의 낙원을 이루기에 성공한 것을 불 때에 우리가 무릉도원과 같은 이 한반도에서 살기 좋은 낙원을 이룩할 수 없다는 생각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설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2).전락(顚落)의  역사 

다음에 우리가 그들의 역사적 윤곽을 살펴보는 것은 무엇보다도 긴요한 일이다. 덴마아크는 원래 북 유럽에 활개를 치던 일대 왕국이었다. 11세기에는 영국을 억눌러 속지 (屬地)로 하고, 17세기 크리스찬 4세 때에는 제해권(制海構)을 잡은 눈부신 해운국이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의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대부분도 덴마아크의 영토이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서 유럽의 역사는 큰 변동을 가져왔다. 프랑스의 혁명을 거쳐 아침 햇살같이 뻗쳐 일어냐는 나폴레옹의 거대한 세력은 프러시아를 단번에 억누르고 다시북진하여 덴마아크와의 동맹을 강요하였다. 프랑스에 본의 아닌 가담을 하게 된 덴마아크는 영국,스웨덴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였다.

 

넬슨이 거느린 영국의 강력한 대 함대에게 덴마아크의 해군은 거의 전멸하였으며 이로 인해서 북해의 제해권(制海構)은 완전히 빼앗기게되었으므로 이 틈에 스웨덴,노르웨이도 모두 독립하였다. 덴마아크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파산의 곤경에 이르게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반목이 한창 심하던 때에 이 큰 두 세력 사이에서 영국에 의지하면 프랑스의 거센 육군의 말굽에 즉시로 유린당하게 되는 것이다.

 

중립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다하던 덴마아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영국 함대의 포격을 받아 떨고 있었다.나폴레옹이 몰락한 뒤에도 다시 프러시아의 압박으로 수차의 충돌을 거듭하였고 1864년에는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연합군에게 무참하게 굴복하게 되어 남부의 유일한 기름진 국토 슬레스비히와  훌스타인의 이주마저 상실하게 되었다.

 

이 전쟁으로 입은 손실이야말로 치명적이어서 덴마아크의 경제의 파탄은 물론 인심도 극도로 침륜(沈倫)하여 실망의 갚은 구렁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스스로 자신을 저주하는 망국의 유령처럼 되었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국민들은 오직 암담할 뿐이었다. 그들이 물려받은 유산은 오직 손바닥만한 황무지 유틀란드 반도와, 몇 개의 섬들과,사구(沙丘)들과 북해 특유의 거센 바람과, 발틱해의 얼음과, 패잔에 피로한 노유와, 자포자기의 저주의 소리뿐이었다.

 

어디를 바라보아도 희망의 서광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소망을 가지고 걸어갈 모든 길은 완전히 막힌 것이었다. 덴마아크의 국민들은 이 황량한 북해 기슭에서 탄식과 불평을 안고 스스로를 저주하면서 그대로 시들어 벼리는 수밖에 헤어날 길이 없는 것 같았다. 비참한 극이었다. 아무도 그들의 자포자기를 탓할 수는 없었다. 국민들은 순간의 향락으로고통을 잊고자 환략가를 찾아 헤매었다.

정치의 이념이 서있지 못한데다가 수 많은,정당이 생겨서 당파의 싸움은 날로 심하여 갔다. 인심도, 국토도, 가속도로 황량의 길을 채찍질하여 전략해 갔다. 덴마아크의 소수의 지성인들도 자기들 앞에 닥쳐 올 종말의 날을 상상하고 공포에 떨고 있었다. 인생에서 희망의 태양을 상실한 것보다 더 큰 비참한 일은 없을 것이다.

"너의 일체의 희망을 버리라" 이것은 지옥문 앞에서 시인 단테가 발견한 지옥의 간판이다. 단테의 불후(不朽)의 명작 신곡(神曲)의 지옥편에 기록된 유명한 구절이다. 이 한 마디 짧은 구절이야말로 지금까지 인류가 표현한 문구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다. 지옥문 위에 붙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비참과 공포롤 가창 단적으로 표시한 구절인 것이다.

 

「일체의 희망을 포기하라」는 명령이다. 영원의 암흑, 영원한 고통인 것이다. 무한의 날에 무한한 고통을 뜻한 것으로 생명을 스스로 끊어 모든 것을 망각할 희망초차도 없는 것이다. 희망을 잃어버린 것은 비참 가운데서도 가장 큰 비참이다. 그런데 덴마아크 국민은 릐망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들은 절망의 바닥에서 자신올 저주하면서 헤매고 있었다. 이와 같은 막다름에 이르러서는 「멸망으로서의 전락이냐, 초인적 비약이냐」의 두 가지 길밖에 다른 길은 없었다. 그 당시의 덴마아크는 희망의 태양이 사라진 세상이었다. 그대로 지옥이었다.

 

 

3. 復興의 횃불

 

1).갈구하는 광명 

오늘 우리 겨례가 갈구하는 것은 평화와 행복의 태양이다. 우리 민족의 저 마다의 가슴속에는 초인간적인 위대한 힘과 능력의 출현을 바라고 있다. 마치 사막 한 가운데에서 고달픈 나그네가 오아시스(生命泉)를 안타깝게 찾듯이 갈구하고있다. 이 심정은 우리들이 스스로 의식하든지 못하든지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잠재하여 있는 것이다. 우려 자신들의 수난이 너무도 끔찍하고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우리는 덴마아크의 겪은 바 암담한 역사의 날을 남 다른 동정과 흥미로,아니 거의 내 것으로 느끼면서 더듬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한데 연결된 신경처럼 옛날 그들의 심경을 지금 우리의 심경으로 덴마아크의 캄캄한 역사 속을 응시하게 되는 것이다. 과연 그들은 그 어둠 속을 어떻게 걸었나 하고 뚫어지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이나 국가가 민족이나 역경의 시련 속에서 단련되지 않고서 이루어진 위대한 것은 없다. 도가니 속에서 수천도의 열로 달구어지고 망치로 두들겨 맞아서 정련되지 않고서는 예리한 보검 (寶劍)이 만들어질 수는 없다. 그러므로,우리가 수난의 골짜기에서 발밑만 내려다 보고 허덕인다면 마지막 이르는 곳은 멸망의 함정일 뿐이다. 높은 곳을 바라보고 초인적인 힘으로 뛰쳐나와야 비로소 새로운 광명의 세계를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 비참할수록 가슴 속에 품은 이상은 높아야 한다.

 

인류의 역사를 읽을 때에 갈피마다 느끼는 진진한 홍미는 역사적 사명을 다한 민족과 국가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억척스리 극복하고 눈부신 발전을 이룬 대목에 집중된다.
덴마아크는 그 가흑한 시련올 가장 훌륭하게,의의있게 살린 나라의 본보기이다. 그들은 그 고난으로 하여 오늘의 특수한 문화를 이룩했다. 평화와,수(壽)와,부(富)와,지 (知)를 모두 가지게 되었다. 온 세계 사람들이 찬양하는 농민의 낙원올 성취했다. 만일 심각한 역사적 수난이 그들에게 없었던들 오늘의 덴마아크의 귀중한 문화는 인류의 문화사 위에 피어보지 못하였올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덴마아크가 그 수난을 가장 의의있게 살린 점에 크나 큰 매력을 느끼는 것이며, 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달 없는 칠암(漆暗)의 깊은 밤에 험한 골짜기를 벗어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앞을 보게 하는 등불과 걸어갈 방향올 분명하게 판단하는 현명한 인도자이다.

덴마아크의 온 국민이 어둠 속에서 비탄에 쌓여 있을 때에도 전혀 실망하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전쟁에는 패하였으되 정신은 패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야 말로 파멸 속에서 덴마아크를 구원해 낸 횃불(炬火)들인 것이다. 세월이 지나갈수록 더욱 찬란히 밝아지는 횃불들인 것이다.

 

2).E.M.달가스 

달가스(E.M. Dalgas) 는 36세의 공병장교였다. 무너진 전선에서 돌아온 그를 만나는 친구마다,

『오늘이야말로 우리 덴마아크의 가장 불행한 날이다.]
하고 부르짖었다.
"당신 말대로 우리는 불행하다"
그는 서슴치 않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달카스의 대답이 이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반드시 말끝을 이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나,우리에게는 다시 살아갈 희망의 길이 있다. 우리는 밖에서 잃어 버린 모든 손실을 안에서 회복해야 한다. 이 유틀란드의 황무한 들을 장미꽃의 향기가 풍기는 기름진 들(沃野)로바꿀 수가 있단 말이다."

 

달가스의 얼굴에는 굳은 신념이 엿보였다. 그러나,그의 말을 망상(妄想)으로 돌리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달가스의 가슴 속에는 총검(銃劍)으로 잃은 것을 괭이와 쟁기로 회복 할 결심이 되어 있었다. 그는 일선 포탄 밑에서 싸울 때에 벌써 패전한 조국 덴마아크를 구원할 계획올 세웠던 것이다. 달가스야말로 참담한 덴마아크 천지의 어둠을 비치는 한 개의 희망의 횃불이었다.

 

3).그룬트비히 

덴마아크의 어둠 속에 또 하나의 더 큰 횃불이 있었다. 그룬트비히 (N. F. S. Grundtvig) 가 곧 그 사람이다. 이 음울한 나라 안에 있어서도 그의 이상은 동쪽 하늘의 샛별처럼 찬란하였다. 그는 결코 그 환경에 지배되어 시들지 않았다. 시인이며, 종교인이며, 역사가이며, 철학자인 참 애국자 그룬트비히야 말로 덴마아크의 구국의 원동력이 된 선각자이었다.


그는 북 유럽 신화(神話)의 대저(大著)를세상에 내어 유명해진 사람으로 문예계에서는 「덴마아크의 카알라일」이라고 기림을 받던 사람이었다.

18세기에 온 유럽을 휩쓸던 이성주의(理性主義)를 배격하고 독일의 로맨티시즘(浪漫主義)에 경도(碩倒)하여 실러,피히테,셀링과 같은 정열척인 시인과 철학자들로부터 깊은 감화를 받아 대성한 사람이다. 그룬트비히는 또한 수많은 애국시(愛國詩)를지었는례 그를 덴마아크 최대의 시인이라고까지 평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미국이 독립 천쟁에서 승리를 얻어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1783년 질란트에서 출생하였다. 다감한 23세때에는 조국의 전통을 자랑하는 덴마아크 합대가 영국의 넬슨에게 격멸당하는 것을 친히 보았고, 수도 코펜하겐이 영군(英軍)의포격으로 말미암아 두 번이나 불바다로 화하는 것을 또한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조국의 수난을 몸소 겪은 사람이었다.

 

그의 생애에 있어서 우리가 특기할 것은 그가 전 날의 적국이었던 영국을 시찰하던 중 조국 덴마아크의 걸어갈 새 방향을 발견한 사실이다. 당시 영국은 기계 문명이 바야흐로 융성하여 공업의 눈부신 발달에 따라 농촌 청년들이 도시로 모여들고 있었다. 이렇게 청년들이 홍수처럼 도시로 밀려드는 동안에 농촌은 피폐의 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영국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불 수 있었던 경향이었다. 그룬트비히의 머리 속에는 번개와 같은 섬광(閃光)이 비쳤다.

 

「우리 덴마아크의 갈 길은 이제야 확실하다. 영국을 비롯한 여러 공업국에 대하여 덴마아크는 일치 단결하여 협동 농업국으로 매진하는 것만이 조국을 건지는 길이다.그는 조국의 갈 길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또 런던 시민들의 정력에 넘치는 활동의 모습을 바라보고 덴마아크의 청년들을 교육할 국민교육에 대한 새 이념이 비쳐지게 되었다. 덴마아크의 새로운 역사를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청년들을 새로운 길로 교육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청년기는 곧 영혼의 창조기이다. 인생의 최고 이상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이 시기에 반드시 한 번은 열정에 불탈 것이니 이 때 작열한 강철처럼 달구어서 그 열이 식기 전에 덴마아크의 애국자로 두드려 내야만한다.

 

"역사적으로 진실하게"
"윤리적으로 고상하게"
"심미적(審美的)으로 순미 (純美)하게"
"이렇게 개조된 젊은 국민만이 덴마아크를 이 역경 속에서 구원해 낼 수가 있을 뿐이다"

 

그룬트비히가 절실하게 느끼고 분명하게 깨달은 바는 곧 이것이었다. 이 각성이야 말로 덴마아크 새 역사의 진로를 밝혀 준 빛나는 샛별이 된 것이었다. 그룬트비히는 조국의 내일을 바라보고 새로운 희망에 불타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의 가르친 정의와 박애로, 덴마아크의 나아갈 방향을 「역사교육」에서 찾는 것이 새 교육의 가장 건실하고 가까운 길이라고 믿게 되었다.

 

"기독교적 애국 청년으로하여금 덴마아크 자신을 구하게 하고,또 영양이 풍부한 좋은 식품을 만들어 세계 각국에 보내는 것은, 안류에 봉사하는 우려 조국 덴마아크의 올바른 사명일 것이다 "

 

이것이 그가  품은 농업국 덴마아크의 기본 정신이었다. 그룬트비히는 불타는 구국교육의 정열과 이념을 안고 고국에 돌아가서 그의 포부를 국민들에게 열렬히 창도(唱導)하였다.


농민 교육,특히 청년 교육은 민족 갱생의 초석(礎石)임을 깊이 깨닫고, 이 획기적 교육운동을 전개했다.

이것이 덴마아크 부흥의 근본적 첫 출발이었다. 지금 우리가 이 현실에 처하여 그들의 주장을 검토하여 보면 그들은 지엽말초(技葉末稍)에 붙잡히지 않고 확고히 근본적인 점에 착안하여,그 이상과 신념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한 길로 매진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현명하고 꾸준함을 거듭 감탄하게 된다.

 

그룬트비히의 감화로 국민 고등 학교의 교육을 실천에 옮겨 위대하게 발천시킨 크리스텐 콜 ( Kristen Kold) 도 또한 이 나라의 찬란한 부흥의 횃불이며, 덴마아크의 유명한 협동 조합의 장점을 널리 선전 계몽하여 협동 운동의 기초를 닦아 놓은 에반도 회그스부로도 잊을 수 없는 인물이다.

 

역사는 생명을 짜내는 한 폭의 깁이다. 아름다운 생명의 약동만이 빛나는 역사 창조의 씨와 날이 되는 것이다. 이 역사 창조의 소재가 되지 못하는 생을 일러 티끌 같다 할 것이다.

인생이 어찌 신념 없이 살 것인가. 사명 없이 살 것인가. 우리 나라 청년들이 그룬트비히, 달가스, 콜과 같은 덴마아크의 선각자들의 그 신념을 신념으로, 그 이상을 이상으로 한다면 우리의 바라는 비전은 통일된 국토 위에 확실히 실현될것이요,  우리의 문화가 세계에 기여할 날도 반드시 오고 말 것이다.

 

"신은 스스로 돕는 사람만을 돕는다."

라고 갈파한 금언은 천고의 진리가 아닐 수 없다. 덴마아크의 애국자들은 우리에게 요행을 버리라고 경고한다. 스스로 씨뿌리지 않은 땅에서 열매를 거두고자 하는 따위의 근성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가 겪는 역사적 고난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고자 힘을 다하지 않는 한, 결코 우리의 걷고 있는 험난한 골짜기를 벗어날 수는 없다,

 

출처 : 충신사 기독교 문서 선교회
글쓴이 : josep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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