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홍성 2030 기획인터뷰<7·끝>/ 정해진 고려대 사범대 강사
이번영 기자
승인 2019.01.10
아이보다 성인교육이 먼저 필요하다
정해진(40세) 박사는 우리나라 대안학교 원조로 불리는 풀무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여대에서 교육심리학을 전공한 뒤 고려대 대학원에서 교육철학 박사 학위를 받아 정통 교육학자의 길을 가고있다. 고려대 석사학위 논문은 ‘그룬트비 교육사상’, 박사학위 논문도 ‘그룬트비 평민사상’으로 덴마크의 세계적인 교육이론가 니콜라이 그룬트비에 대해 손꼽히는 전문가다. 지난해에는 영국 런던에서 20여 개 나라 전문가들이 참가한 그룬트비 컨퍼런스에 한국측 대표로 참석해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고려대와 건국대 사범대에서 교육학개론, 교육철학, 교육사를 강의하고 있다. 홍성의 젊은 피, 신세대 학자를 만나 우리교육의 진단과 처방을 요청했다.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게 문제
-지난해 서울 해누리 초중 혁신학교 지정 문제로 집값이 떨어진다며 반대하는 주민들로부터 교육감이 폭력까지 당했다는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 교육개혁의 당위성은 모두 공감하는데 그 실천은 왜 이렇게 어려운가?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문제점은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는 점이다. 교사, 교육정책 수립가, 행정가, 교육학 전공자들이 모두 분리된 채 서로 소통이 안 되고 있다. 교육학 전공자들은 교육현장을 모르고 현장을 안다는 행정가들은 교육적 내용을 모른다. 교육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 이론만 파고든다. 자기 외 다른 분야를 너무 모르며 종합적으로 매치가 안 된다. 개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두 번째, 교육개혁은 교육 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정치, 사회구조와 뗄 수가 없다. 초등학교가 상대적으로 혁신이 되는 건 대학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 아이가 행복하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잘 살게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대학 입시에 까워질수록 그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대학에 가까워 질 수록 개혁은 안 된다. 고등학교쯤 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공고화된 입시제도가 무너지지 않는다.
대학 입시 제도가 바뀌어야하는데 그러려면 사회가 안정돼야 한다. 어떤 직업을 가져도 안정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한다. 배우고 싶으면 언제나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북유럽의 경우 사회가 안정되니 교육을 통해 뭔가 하려는 경쟁이 줄어든다. 우리 사회는 지금 직업을 갖기 힘들고 불안정하다. 대학을 나와 봐야 소용없다고 하지만 그것마저도 안 나오면 진로가 없으니까 이 불합리한 입시제도를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보통사람들은 오직 좋은 대학 가는 것 만 생각하며 살고 있다. 혁신학교는 노는 학교, 좌파교육이라는 생각으로 굳어져있는 사람이 아직도 많아 해누리시티 주민들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지역의 학생도 대학도 모두 서울로 올라가 지역교육이 몰락하고 있다. 대안 없나?
▲공립학교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교육 때문에 서울과 지방 교육의 차이가 큰데, 지방에서는 마을교육공동체를 활성화해서 지역사회가 서울의 사교육을 대처할만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뾰족한 대안 찾기가 어렵다. 지역균형이 잘 돼 있는 덴마크 같은데 보면 그런 점은 부럽다. 코펜하겐 시청 안에는 교육청이 들어가 있다. 일반 행정책임자가 교육행정까지 책임을 지고 일을 한다. 우리나라는 일반 행정기관과 교육행정기관이 따로 있으며 서로 협력도 잘 안 돼 마을교육공동체 활성화도 어렵다. 이런 제도적인 문제도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홍성출신으로 외지에서 보니 홍성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홍성만의 문제를 찾기는 어렵고 전국이 같다. 정보와 인프라가 모두 입시만 바라보는 점이 문제다. 우리나라의 근대 공교육은 일제시대부터 국가중심으로 운영하는 교육이었다. 교육방식이 개인을 어떻게 잘 키울것인가, 그들의 삶을 잘 만족시켜줄 것인가가 목표가 아니라 사람을 국가의 하나의 자원으로 보고 국가가 필요한대로 조절해야되는 자원으로 보고 교육해왔다.
풀무 인간교육 의미 크지만 한국주류사회 안 받아들여
-대안학교의 원조로 불리는 풀무학교 교육을 받고 교육학자가 됐는데 교육계에서는 풀무교육을 어떻게 보나?
▲풀무학교는 우리나라 교육의 고전, 혁신학교, 대안학교 모델로 여기며 많은 교사들이 한 번은 가봐야되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유럽에서 발도르프 학교, 교육개혁, 신교육이 등장해 우리나라 김정환 고대 교수, 송순재 감신대 교수가 교육개혁을 위해 들여왔다. 그런데 똑같은 학교가 한국 홍동에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알고보니 그보다 훨신 전 안창호가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우고 이승훈이 정주에 오산학교를 세웠으며 그 후손 이찬갑이 남한에 내려와 홍동에 풀무학교를 세운 것을 알게됐다. 안창호는 페스탈로치와 그룬트비 영향을 받아 인재를 길러 나라를 제대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됐고 이승훈은 그 안창호 연설을 듣고 오산학교를 세웠던 것이다. 더불어사는 공동체교육, 노작교육 등 유럽에서 들여온 교육개혁 내용들과 똑같은 내용의 교육이 더 일찍 한국에서 선각자들에 의해 시작됐던 것이다. 국가중심의 제도교육에 매몰되어 개별적이고 자율적인 교육활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풀무학교가 정체성을 지키며 독자적인 교육활동을 지금까지 유지해왔다는 점은 우리나라 교육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995년경 대안학교들이 생겨 이런 교육을 이어보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흐름에 대해 아직 한국의 주류사회에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한국 교육의 주류사회에서 풀무교육을 왜 안 받아들이나?
▲우리나라 교육자들은 거대담론에 매몰돼 있다. 서구 사상가들만 찾고 큰 그림만 그린다. 한국의 시골 작은 학교 같은 건 생각을 안 한다. 내가 풀무학교의 가치를 이야기하면 네가 나온 학교니까 그렇게 말한다고 치부하고 풀무학교에 와보지 않은 사람은 실체를 모른다.
-교육학을 전공하게 된 이유는 풀무교육 영향을 받았나?
▲풀무학교에서 홍순명 선생님이 김교신, 페스탈로치, 그룬트비 이야기를 많이 하셔서 그분들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다. 내가 경험한 교육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지금 대학에서 교사가 될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때문에 처음 생각한 일을 하는 셈이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학한 유명 대학 학생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이 그동안 받은 교육이 너무 억울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학 중요치 않은 시대 왔다
-2030년 우리나라 교육은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나?
▲크게 변할 것 같지 않다. 인프라와 기술은 변하겠지만 10년 정도로 내용은 변하지 않을것 같다. 책 대신 컴퓨터를 사용하고 칠판 대신 동영상을 사용하는 등 기술과 인프라는 발전하겠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컨텐츠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가 어느정도 자율화시킬 것인가가 관건이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이제서 검정으로 바꾼다지 않나. 선진국에서 오래전부터다 하는 제도를. 교사 문제가 중요하다. 지금 사범대학에서 무엇을 가르치나가 중요한데 변화가 없다. 그렇게 배운 사람들이 나와서 전과 같은 교육을 하게 돼 변화의 기대가 어려운 것이다. 이제부터 배출되는 교사들은 자기가 배운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 가르치는 교사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같은 지식이 더 이상 필요없는 세상이 오는데 그걸 어떤 방식으로 따라가는가가 관건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어떻게 되기를 바라나?
▲각자 교사들에 부여되는 교육의 내용, 방식, 평가에 자율성을 부여해 신뢰받는 교육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은 현재의 입시제도에서 벗어나야 가능할 것이다.
-홍성교육을 특화시키는 방안이 없을까? 풀무학교 교육을 홍성교육으로 특화시키면 안 될까?
▲그건 안 될 것이다. 중요한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이 교육을 뭐라고 생각하는가다. 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가장 우선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교육의 목적을 대학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평민교육이 중요하다. 덴마크 그룬트비는 아이들 교육을 한 게 아니라 평민대학을 만들어 성인교육부터 했다. 그룬트비한데 배워 생각이 바뀐 성인들이 교육, 정치, 경제, 사회를 바꾸며 협동조합도 하고 나라를 바꿨다. 직업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교육이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해누리시티의 혁신학교 반대 폭력사태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끝으로 가장 바라는 점 하나만 강조한다면?
▲사람들이 진실을, 미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교육은 왜 하나, 왜 필요한가를 제대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좋은 대학이 의미가 없어지는데, 좋은 대학에가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시대가 오고 있는데, 아이들 스스로 살아갈 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등 새로운 시대가 오고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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