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3

유달영 [새 역사를 위하여] 5 히이드의 개척자들

 5.히이드의 개척자들 


 


1).극(劇)같은 조림사(造林史) 


히이드 협회(황무지개간협회)의 동지들의 동지들의 헌신적 활동은 날로 눈부신 성과를 거두어 같다.조국부흥사업의 영예에 참가하는 국민의 수는 점차로 늘어갔다. 달가스를 비롯한 히이드 동지들의 사업가운데 가장 고심(苦心)이 컸고 또 농업전반에 걸쳐서 초석이 된 사업은 식림사업(植林事業)이다. 이 덴마아크의 식림사업은 세계에 다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난(難)사업이었었고, 또 그 억척스럼고 꾸준한 점과 그 난관의 해결이 거의 한개의 각본을 읽는 것 같은 극적흥미까지를 이르키게 하는 것이다.


 


이미 말한바와 같이 덴마아크는 예로부터 황무의 광야는 아니었다. 자연의 큰 혜택을 돌보지 않고 자연과의 협조를 무시한 사람들이 삼림(森林)을 함부로 버히기만 한 결과, 북해의 사나운 바람과 거친 물결과 무자비한 사풍(砂風)이 자연의 노한 채찍으로 되어 불모의 죽은 들로 변해 놓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뉘우쳐도 이미 및이지못하는 국민들이 이 동산에서 추방된 것이었다.


 


이와같은 실례는 덴마아크 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중앙아시아의 광막한 사막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일찌기 중앙아세아는 동서문화의 중심지로 고대에는 인류발전의 따뜻한 보금자리었든 영광의 낙토이었다. 2000 년전만 하드라도 서역의 여러나라가 여기에서 번영하였고 중국에 불교와 서역의 문명을 제공하였다. 그뒤에는 대하국(大夏國)이 자리잡아 성장하였지마는 지금은 몇천만리의 끝없는 사막으로 화하여 오직 약대를 탄 대상들의 쓸쓸한 그림자를 간혹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면 그렇게 무서운 변화를 가져온 원인은 대체 무엇이었나?  중앙아시아의 옛 주민들이 건조한 기후에서 삼림의 관리를 게을리 하고 또 함부로 채벌(採伐)만 하였기 때문에, 무성한 삼림은 초원으로 바뀌었고 식물의 생육은 더욱 어렵게 되었으며, 또 초원은 차차로  사막으로 다시 사구(沙丘)로 변하였다. 다시 사구는 바람에 마음대로 이동하여 길과 촌과 도시들을 점차로 묻어버려 상전(桑田)이 벽해(碧海)라는 옛 문자대로 오늘의 대사막을 이루게 된 것이다. 20세기의 탐험가들이 옛 문헌을 더듬어 사구 밑에서 대도시를 파내고 있으니 우리가 어찌 느낌이 없이 이 사실(史實)을 바라볼 수 있으랴. 


 


자연을 무시하고 목전의 이익에 급급한 우리들의 저지르는 것의 결과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면, 다시 우리 자신으로 돌아와 헐벗은 산천을 이윽이 바라보고 마음에 결정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근래(近來) 만주의 넓은 평원도 사막으로 인하여 년년이 좁혀지고 있다고 전하니 어찌 전률(戰慄)을 금할 수 있으랴.


 


달가스와 그 동지들은 제일 먼저 삼람을 만들어 북해로 부터 불어오는 사나운 북풍을 막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모든 개척사업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가장 잘 자라고 억세인 나무는 노르웨이산의 붉은 전나무이었다. 그러므로 이 붉은 전나무를 개척초기에 덴마아크 전토(全土)에 전력을 기우려 심으게 되었었다.


 


이 나무들은 제법 잘 자라서 푸른 숲을 이루고 국민들의 마음에 청신(淸新)한 희망의 싹을 움트게 하였다. 그러나 순조로이 자라던 숲들은 몇해 후에 일제이 성장을 정지하였다. 히이드 동지들은 물론 온 국민들의 가슴에 검은 그림자가 떠 돌았다.붉은 전나무조차 자라지못한다면 덴마아크이 식림은 방도가 없는 것이고  또 식림사업에 실패한다면 농지의 개척도 하나의 꿈으로 되는 까닭이다.


무엇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발틱 바다를 지나 휘모라쳐 오는 차고 거친 바람을 막을 것이며 또 저 사구(沙丘)의 이동을 방지할 수가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온 국민은 침울(侵鬱) 싸여 있었다. 


 


그러나 근기 있는 지성(至誠) 주밀한 연구는 마침내 그 원인을 찾아 내었다. 붉은 전나무들이 성장을 중지하는 이유는 그 붉은 전나무들이 자라다가 어느시기에 일으면 극도로 좋지못한 환경으로 인하여 질소(窒素)성분을 흡수하는 성분을 읽어버리게 되는 까닭이었다. 그러면 대체 이능력을 어떻게 이 굳게 닫힌 또 하나의  회복시켜서 다시 성장을 계속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 또 다시 부닥친 난문제인 것이다.


 


이 굳게 닫힌 또 하나의 문도 저들의 진실 앞에는 열리었다. 알프스 산에서 나는 프랑스 종의 산 전나무의 일종은 질소를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나게 강한 것을 알아내게 되었으므로 곧 이 나무들을 붉은 전나무의 숲에 혼식하여 본 것이다. 그 결과 과연 붉은 전나무는 신기롭게도 새 생명이 주입되어 싱싱한 빛으로 다시 자라나는 것이었다.죽엄의 모든 숲들은 차례로 생명의 푸른 빛이 넘치게 되었다.


이산(山)전나무 뿌리에 생기는 일종의 세균이 붉은 전나무에도 생기게 되어 질소 성분 흡수의 능력을 부활시키는 까닭에 붉은 전나무들은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식림으 난관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생명이 창일(漲溢)하여 자라던 숲들은 또 다시 어느시기에 이르러 성장이 지지(遲遲)하게 되었다. 달가스의 장남인 푸레데릭 달가스의 열심스러운 실험과 연구끝에, 붉은 전나무의 고사를 방지하고 질소 성분 흡수의 능력을 회복시켜 주든 산전나무를 다시 간벌하여 냄으로 붉은 전나무는 다시 순조로운 성장을 계속하여 삼림을 완성할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산전나무가 붉은 전나무의 성장을 순조롭게 하여 보모(保母)와 같은 구실을 함은 세계조림사(造林史)에 가장 흥미있는 발견으로 덴마아크의 조림사업에 참으로 획기적인 중대역할을 한 것이다. 간벌해낸 산 전나무는 재목으로 탄화수소의 원료로, 광산의 지주로, 연료로 빈틈없이 이용되고 있다. 


 


사시(四時)로 늘 푸른 전나무의 숲들은 모래와 티끌을 휘몰아오는 해풍의 광폭(狂暴)을 양처럼 순하게 만들었고 또 기후를 부드럽게 하였으며, 여름철에 나리는 무서운 서리를 완전히 막아서 황야의 빈들에 낙원의 노래를 드높게 하였다.


 


아, 


저 상록(常綠)의 푸른 빛은 그대로 덴마아크 애국자들의 산 넋의 상징인양, 이를 바라보는 가슴에엔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여 무한한 감개를 자아낸다.


 



2).신앙의 등화(燈火), 과학의 무기


히이드 동지들의 열성으로 덴마아크의 부흥의 업적은 날을 따라 각방면으로 그 새로움을 더 하였다. 저들의 가슴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 덴마아크의 모습이 더욱 확실하게 되었다. 승리를 눈앞에 보고 추격하는 장병들은 주검이 두렵지 않은 법이다. 성공을 확신하는 일군들에게는 비상한 용기가 생긴다. 덴마아크의 부흥은 식림사업의 성공으로 확호(確乎)한 자신이 서게 되었다.


 


국민들은 히이드 협회의 일원이 되는 것은 국민의 영예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사업은 국민의 절대의 지지를 얻게 된 것이다. 이 열성은 위정자의 압력으로 일어난 것도 아니오 정치의 책략으로 부자연하게 불 달린 것도 아니다. 그대로 자연스러이 민족의 가슴속에서 타오른 것이다. 그러므로 저들은 개인의 손실을 돌보지 않고 고생을 달가이 참고 열중하여 마침내 부흥의 대사업을 성취한 것이다.


 


부흥사업중에 수위조정(水位調整)과 소택배수(沼澤排水)의 사업도 볼만한 것의 하나이다. 200 미터 이상의 고지(高地)가 없는 나라는 유럽에서 오직 덴마아크 뿐으로 이 나라는 가장 저습하기로 유명한 나라이다. 그러므로 강물의 흐르는 속도가 몹시느리고 따라서 강의 굴곡이 심하여 곳곳에 늪과 못이 널려있다.


 


하천을 곧게 하여 수위를 조정함으로 홍수의 피해를 막으며 늪과 못들을 메워 농지로 바꾸려는 이 사업은 국가적인 일대사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사업도 그리 오래지 않아서 백여개소의 건척(乾拓)사업을 훌륭히 완성하였고 이로 인하여 직접 6만에이카에 가까운 습지개간에 성공을 보게 되었다. 하천을 곧게하여 물을 빠르게 하고 운하를 깊게하여 수위를 나리게 하여 농경지의 표면에서 수분의 증발하는 과정과 흙의 모세혈관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그 학리를 실지에 활용한 것이다. 


 


수위를 낮추어 배수를 좋게 할 뿐 아니라 가물에 대비하여 서도 여러 곳에 저수지를 만들어 수위의 지나친 강하를 가늠하게 하였으니 그 사업이 얼마나 확실하고 또 생각이 얼마나 치밀한가를 볼 수 있다.이 과학적인 국토개척으로 기름진 농장은 날마다 그 면적이 넓어가고 국민의 기쁨과 감격은 나라안에 넘쳐 흘렀다.


 


이제 그 한 실례를 들어 그 실상을  스카르스 강(江)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이 스카르스 강은 45 마일 길이의 유역을 구불구불 돌아 흘러서 린호르트 만(灣)으로 들어가는 강이다. 이 강이 히이드 협회으 공사완성으로 말미암아 길이는 전장(全長)의 4분의 1인 10 마일이 짧아지고 강의 넓이는 25-50 피이트(1피트는 약1척)로 좁아지고 수위는 2-5 피이트나 낮아졌으며 그 결과로 14,500 에이카의 농장도 생겼으며 수리도 훌륭하게 된 것이다.


 


당시의 신문은 그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우리나라 국경안에 이 훌륭한 새 영토를 얻게 된 기록을 덴마아크의 역사에 영구히 남기게 되었다.이것은 우리 민족의 우리국민의 크나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이 막막하던 히이드(荒蕪地)는 이제 백성의 풍요한 옥토로 바뀌었고 쓸모없던 못과 늪들도 목장으로 농장으로 변하여 있다....]



이것은 이것은 덴마아크 전 국민을 대표하는 감격의 소리이다. 이밖에 관개배수(灌漑排水) 사업, 토지개량사업등 그 혁혁한 업적의 볼만한 것이 적지 않다.


저들은 [흙의 신성(神聖)]을 주장한다. 조상으로 부터 전해받은 귀중한 토지를 더욱 기름지게 만들어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을 농민의 최상의 의무로 믿고 있는 것이다.



히이드 협회의 동지들의 걸은 길이야 말로 덴마아크 역사에 영구한 감격일 것이다.


신앙을 등(燈)으로 과학을 무기로 히이드의 정열들은 국토를 개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