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룬트비와 삶을 위한 교육
이웃추가
최근 몇 년 사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학교와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 관심은 이
제 단순한 생각과 관찰을 넘어, 현장에서의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시도에 영향을 준 모델
중 하나로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efterskole)와 평민대학(Folkehøjskole)을 들 수 있다. 이 학교들은
한국 사회가 그동안 유지해온 기존의 교육제도, 즉 6-3-3-4제 라는 틀을 과감히 깨고 학생 개개인의
삶과 시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덴마크의 교육제도는 얼마
전까지도 한국에 대중적으로는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OECD 가입국 중 덴마크의 행복지수
가 가장 높다는 발표를 통해 사람들은 덴마크 사회에 대중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중요한 행복
요인의 하나로 “교육”을 꼽았다. 그 과정에서 찾아낸 눈에 띄는 교육제도가 에프터스콜레(efterskole)
와 평민대학(Folkehøjskole)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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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많은 학생들은 17살 무렵, 스스로 선택한 배움에 온전히 집중하고, 자신을 탐색하기 위해
에프터스콜레(efterskole)라는 학교에 간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에 해당하는 기초교육을 마치고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기 전, 자신을 돌아보고 진로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받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다. 물론 이 제도는 모든 학생들에게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주어진 다양한 선
택지 중 하나다. 성인이 되어서도 덴마크 사람들은 필요하다면 평민대학(Folkehøjskole)을 비롯해
다양하게 열려있는 교육기회들을 선택하여 쉼과 성장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덴마크12사람들은2이처럼 다양하고 유동적인 교육제도를 활용하여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형성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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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
그렇다면 덴마크는 어떻게 이러한 방식의 유연하고 자유로운 교육제도를 만들어냈을까? 그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덴마크의 근대사회가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고, 그 바탕에는 어떤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는가를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덴마크의 근대 사회제도와 교육제도는 그룬트비
(Nikolay Frederic Sevrin Grundtvig, 1783-1872)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룬트비의 영향
을 많이 받았다.
젊은 시절의 그룬트비.
1783년 태어난 그룬트비는 신학자, 목사, 시인, 역사가, 고대 스칸디나비아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
및 철학자, 정치가, 그리고 교육사상가로 활동하며, 덴마크가 새로운 근대 사회를 형성하는 과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과정에서 그룬트비가 늘 핵심으로 삼고 있었던 것은 덴마크 국민의 대다수
를 이루는 “평민(folk-덴마크어)의 삶과 교육”에 관한 문제였다. 그룬트비의 교육에 관한 생각 또한
여기서 출발하며, 이것이 오늘날 덴마크 사회가 비교적 이상적인 시민사회로 성장하게 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덴마크는 1814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의무교육을 법제화한 나라로 국가가 국민의 교육을 책임지고
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로 가난한 농부에 이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으로 돌
아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또한 열악한 조건에서 한꺼번에 많은 학생들을 가르칠 수밖에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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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던 초기의 의무교육은 학생들에게 획일적인 지식의 암기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룬
트비는 이러한 당시의 학교를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토대로 “죽음의 학교”라고 묘사하며 크게 비
판하였다.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의미로 “삶을 위한 학교”라는 의미를 담은 평민대학을 구상하여, 그
러한 학교를 세울 것을 왕에게 직접 건의한다. 그룬트비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평민대학의 교육을
통해 덴마크 사회를 바꾸어낼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 덴마크 사회를 변화시키고 진정한 민주
주의를 정착시키는 첫걸음이라 생각했다.
덴마크는 왕이 자신의 권력을 국민에게 평화롭게 이양하는 방식으로 정치개혁이 이루어진 나라다.
이후 부르주아 계층의 사람들이 하나의 정치세력을 이루었지만 그룬트비는 국가의 모든 사람들이
정치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그룬트비의 생각은 거리에서, 강
연장에서 여러 사람들이게 전달되었고, 그의 생각을 따르는 사람들과 평민대학에서 온전한 시민으
로 성장한 사람들은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정치적 주체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입헌군주제가 실시되면서 1849년 제정된 덴마크의 헌법 조항에는 “폴케스콜레(Folkeskole-초중등
단계의 공립학교)에서 요구되는 정도의 교육을 자기 아이들에게 스스로 제공하고자 하는 부모들과
안내자들은 아이들을 폴케스콜레에 의무적으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조항은 현
재까지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즉, 덴마크의 교육제도는 “의무취학(compulsory schooling)이 아닌
의무교육(compulsory education)”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법과 전통에 따라 덴마크의 부모들
은 지역공립학교 또는 다양한 형태의 자유학교들이나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사립학교들 중 하
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만일 부모들이 용기와 의지가 있다면, 자신들이 동의하는 원칙을 기
반으로 한 새로운 자유학교(Friskole)를 설립할 수도 있다. 이러한 덴마크의 교육법은 덴마크 사회에
자연스럽게 국가가 운영하는 공교육제도와 나란히 병행하는 일종의 대안교육체제인 자유학교 제도
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가치들이 덴마크 사회 전반에 자리 잡기까지는 그룬트비가 설계했던 평민대학이 중요한 역
할을 했다. 그룬트비가 초기에 의도했던 큰 규모의 학교는 아니었지만, 그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하
는 작은 학교들이 덴마크 각 지역에 생겨나면서, 평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적 효과는 극대화되었다.
그룬트비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인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그에 따라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성하다고 보았다. 실제
로 앞에서 언급한 자녀들의 교육을 스스로 결정하고, 보다 자유로운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새로운
학교를 세울 수 있었던 학부모들의 대부분은 그룬트비가 설계했던 평민대학에서 온전한 사회의 구
성원으로 성장한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그룬트비의 교육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정리될 수 있을까? 그 바탕의 생각들은 다양한 방
식으로 정리될 수 있겠으나, 이 글에서는 네 가지의 중심개념을 들어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삶”이다. 그룬트비는 “삶을 위한 교육” 또는 “삶의 계몽”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개인이 자신의 삶 속에서 온전히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었다.
그는 아무리 12 권위2있는 지식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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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학교에서의 배움은 개인이 삶에서 직면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고, 그것을 일깨워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교육의
내용 역시 삶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위해 그룬트비가 제시한 것이 삶의 이야기와 생
각이 담긴 평민의 역사와 이야기(신화), 그리고 대화 등이다.
둘째, “자유”다. 그룬트비가 주장하는 자유의 개념은 오늘날의 덴마크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룬트비에게 있어서 자유란,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
동체에서 함께하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담보할 때 주어지는 자유이다. 이를 통해 그룬트비는 자유
로운 개인과 공동체 속의 개인이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그룬트비는 평민
대학에서의 공동체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이러한 자유, 즉 타인을 전제로 한 자유를 누리는 법을 그
곳에서의 삶을 통해 충분히 연습할 것을 제안하다. 우리가 바라보는 덴마크 사회의 행복지수는 자신
의 자유와 더불어 타인의 자유를 지켜주는 공동체의 자연스러운 문화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셋째, “공동체”다. 그룬트비가 이야기하는 공동체는 근대적 제도 등에 의해 의미 없이 구성된 인위
적 공동체가 아니다. 그룬트비는 민족의 역사와 말(모국어)을 매우 중요한 교육의 도구로 보고 있는
데, 그 이유는 이러한 요소들은 개인과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내는 중요한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사
실상 개인은 공동체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는데, 개인이 속한 가장 근본적인 공동체는 가족과 그
것을 넘어서는 민족공동체다. 그러한 공동체에서 오랜 시간 공유되어온 삶의 역사와 이야기, 모국어
는 한 개인의 정체성의 일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공동체 속에서 개인은 자아를 더 잘 드러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온전히 성장한 개인들은 그들이 속한 공동체가 더 선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
도록 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그룬트비는 따라서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매우 중요시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평민대학에 해당하는 에프터스콜레도 평민대학과 똑같이 모든 학생들이
생활관에서 1년간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를 경험하도록 하는 것은 이러한 정신이 구현된 부분이다.
이러한 과정은 학생들이 성장하면서 자신이 속한 사회와 개인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인식하고, 더불어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공의 이익을 자연스럽게 추구할 수 있는 성인
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개념 또한 우리가 바라보는 행복한 복지국가 덴마크가 가능한 중요한 이
유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넷째, “살아있는 상호작용”이다. 그룬트비는 교육은 기본적으로 상대방과 나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룬트비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 학생과 학생의 관계, 그리고
수업 및 학교생활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룬트비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진정한 교류가 이루어질 수
없는 강의식 수업의 단점을 지적하면서, 진정으로 살아있는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사
도 가르치는 입장이 아닌, 함께 배우는 입장에 설 것을 주장했다. 수업 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과 공동
체 생활 속에서 이루어진 상호작용은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룬트비가 제안한 평민
대학은 단순히 수업을 통한 학습만이 이루어지는 닫힌 공간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학교 안에서
함께 생활하고 학교를 운영해 나가는 열린 삶의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 속에서의 상호작용은 생활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이 될 수 있다.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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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룬트비는 어떤 면에서는 실천가라기보다 이론가였다. 실제로 그가 학교를 세우거나 교육활동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철학과 생각은 평민대학에서의 삶을 위한 교육을 통해 덴마
크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사회를 구성하는 건강한 평민을 만들어냈다. 실천은 이러한
덴마크의 “작은 그룬트비”들, 즉 수많은 평민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덴마크 교육과 그룬트비의 사상을 살펴보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해 본다
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제안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평민교육”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청소년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의 변화를 위한 시도는 현장에서 끊임없이 이어
지고 있다. 문제는 교육적 변화와 시도를 기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어른들이 교육의 변화를 온전
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를 구성하
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사회와 교육에 대한 생각과 개념을 일깨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
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글은 함께여는교육연구소에서 진행했던 "삶을 배우는 교육, 그룬트비의 교육철학"을 강의해주신
정해진선생님께서 쓰신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