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6

알라딘: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인문학의 눈으로 본 신자유주의의 맨 얼굴

알라딘: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 인문학의 눈으로 본 신자유주의의 맨 얼굴 
엄기호 (지은이)낮은산200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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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쪽

책소개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문화·예술에서도, 근본적으로 삶의 철학에까지 침투해 우리를 온통 피폐화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은 도대체 어떤 녀석인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언제 어떻게 태동했으며, 지금 한국에서는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끝은 어디일까? 이 책은 ‘우리 삶은 도대체 왜 이렇게 팍팍해지기만 하는 걸까’ 하는 질문을 한번쯤 던져보았던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인문적 성찰을 제공한다.


목차


2012년 새로 찍으며_신자유주의만 극복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까?
들어가는 말_신자유주의, 넌 도대체 누구냐?

1부. 신자유주의에 포박된 신인류의 삶

1. 태어날 때부터 발버둥 쳐야 한다
-브랜드 아파트 단지와 특목고, 탈락하지 않기 위한 성채
2. 청년, 시한부 사랑을 하는 무산자 계급이 되다
-지방대생과 비정규직의 운명
3. 평생, 언제나 누구나 망하리라는 공포와 함께한다
-외환위기 이후, 자유에 권리를 빼앗긴 우리 모두

2부. 탈락한 자들의 귀환

4. 팔 것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내 생명을 나눠 갖고, 소비하는 신자유주의
5. 탈락한 자에게는 쓸쓸한 묘비명조차 없다
-시장도 복지도 외면한 사람들
6. 국가의 반격
-사회 운동의 범죄화와 끊이지 않는 전쟁
7. 탈락한 자들의 급진적 귀환
-조류독감, 광우병, 촛불의 급진성

나오는 말_사유와 연대의 페다고지를 향하여
작업 노트_신자유주의를 조금 더 깊고 다양하게 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하여

접기


책속에서


뉴타운을 둘러싼 정치적 소동은 신자유주의가 ‘예외’라는 기제를 작동시켜 어떻게 민주주의와 주권을 압도하고 국민을 내부로부터 분할하는지 여실히 보여 준다. 뉴타운에 몰표를 던진 이들처럼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먼 미래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모습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현재와 가까운 미래만을 내다보며 자신의 경제적 이익만을 계산할 뿐이다. (49쪽)

전세계 곳곳에서 경찰은 치안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작전을 펼치고 있다. 작전을 펼쳐야 하는 지역을 포위하거나 점거하고, 그 안에서 군사작전을 펼치듯이 신속하게 속도전으로 일을 처리한다. 행정에 속하는 치안과 경찰의 영역이 국방의 영역으로 옮겨간 꼴이다. (…) 이러한 탄압은 단지 독재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의해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야만이다. 초국적 자본과 대지주, 개발업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사회적 타협도 시도하지 않은 채 속도전을 펼치는 것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 이것은 페루나 카메룬처럼 못 사는 먼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촛불에서부터 시작하여 미네르바를 거쳐 용산으로 이어진, 바로 한국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184-185쪽) 접기
그런데 음주도 상당 부분 유전자의 영향이 작용한다. 즉, 아버지가 알코올 의존증이었다면 그 자녀들 또한 그렇게 되기 쉽다는 것이다. 실제한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로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 중 약 87%에서 유전자 영향이 나타났다. - 라스티
이처럼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지위와 몸은 점점 노동자도 자영업자도 아닌 모호한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산업은 존재하지만 노동은 존재하지 않고, 노동은 존재하지만 노동자는 존재하지 않고, 노동자는 존재하지만 자본에 대항하고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노동권은 존재하지 않는 꼴이 되어 가고 있다. - 라스티
신자유주의는 이 소비의 사회에서 태어나, 이 소비의 사회를 극단으로 밀어붙였다. 어떤 소비인지는 내가 어떤 부류의인간이며, 어떤 사회에 속해 있는지를 드러낸다. 나는 소비함으로써만 존재한다. 이 말의 논리적 귀결은 당연히 소비할 힘,
즉 돈이 없는 사람은 존재할 가치도 없다는 말이다. 인간의 권리는 바로 소비자로서의 권리이다. 단지 시장에서만이 아니 접기 - 라스티
아이들은 ˝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직시하라!˝는 주문에 대해
˝사는 것도 힘든데 왜 우리로 하여금 이런 현실까지 보게 하느냐?˝고 거칠게 저항한다. 고통받는 타인의 얼굴을 보며 내 존재의 정당성이 흔들리고 새로운 윤리를 세워야 할 필요성을느끼기는커녕, 그것이 내 미래의 얼굴이 되지 않기 위해 그 얼굴을 외면하거나 반면교사로 ... 더보기 - 라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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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엄기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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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고 뺄 것 없는 ‘범생이’로 고등학교 시절까지 보냈다. 대학에 들어가 학생운동의 언저리에 머물며 ‘민중의 고통’을 중심에 둔 해방신학의 세례를 받았다. 국제단체에서 일하며 세계 곳곳의 현장에서 고통을 인권의 언어로 읽는 법을 배웠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가르치는 곳과 사는 자리에서 곁에 있는 이들의 곁에 서는 연습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닥쳐라, 세계화!』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단속사회』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공부 공부』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큰글자도서]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큰글자도서] 공부 공부>,<재난의 시대, 교육의 방향을 다시 묻다> … 총 50종 (모두보기)


Editor Blog
[인터뷰]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엄기호 선생님 l 2010-11-17

엄기호, 일상 속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예민하게 짚어내며 조근조근 자기 발언과 활동의 공간을 넓혀온 문화인류학자 혹은 사회학자(물론 중요한구분은 아니다). '88만원 세대'와 '김예슬 선언'이후 20대를 둘러싼 세대론이 넘쳐나는 요즘. 오랜 기간 지근거리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함께 생활해온 그는, 남의 입을 빌리지 않고 20대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며 공...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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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너를 위한 증언>,<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빈 일기>등 총 171종
대표분야 : 전쟁/평화 이야기 8위 (브랜드 지수 1,675점), 한국사회비평/칼럼 11위 (브랜드 지수 37,335점), 국내창작동화 15위 (브랜드 지수 250,955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인문학의 눈으로 본 ‘신자유주의’라는 괴물
이 시대를 진단하는 키워드는 단연코 ‘신자유주의’라 할 만하다. 그런데 정작 “당신이 생각하는 신자유주의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비정규직 확산, 노동의 유연화, 금융자본주의… 같은 개념 몇 가지 외에는 더 말을 잇지 못하는 독자라면 이 책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를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문화·예술에서도, 근본적으로 삶의 철학에까지 침투해 우리를 온통 피폐화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은 도대체 어떤 녀석인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언제 어떻게 태동했으며, 지금 한국에서는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끝은 어디일까?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는 ‘우리 삶은 도대체 왜 이렇게 팍팍해지기만 하는 걸까’ 하는 질문을 한번쯤 던져보았던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인문적 성찰을 제공한다.

저자 엄기호는 최근 10년 가까운 기간을 아시아를 중심으로 남미에서부터 유럽까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국제연대운동을 해왔다. 그 덕분에, 신자유주의가 발흥하고 번성하는 모습을 다각도로 지켜볼 수 있었다. 현재 연세대 문화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철학·윤리학·인류학의 눈으로 다시 정리하면서 신자유주의의 영향 아래 대다수 사람들의 삶과 감수성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유년기, 청?장년기, 그리고 죽음까지 일련의 과정을 통해 고찰해본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는 ‘언제나 누구나 망하리라는 공포’에 사로잡혀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칠 수밖에 없는 사회라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가 펼쳐내는 일련의 경제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개인과 가족, 사회 차원의 경제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수성이 통째로 바뀌었다. 자유의 이름 아래 인간의 권리는 인간의 의무로 교묘하게 바뀌었고, 노동은 자기 관리의 문제, 즉 자기 자신에 대한 경영의 문제로 바뀌었다. 가족이나 친구처럼 지속적인 친밀한 관계도 순간적이고 소비적인 관계로 대체되었으며,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나누어져야 하는 주권과 시민권은 능력에 따라 차등을 두어 들쭉날쭉하게 나누어졌다.


언제나 누구나 망하리라는 공포
아이들에게 저축하는 법 대신 ‘투자’하는 법을 가르치는 사회, 대학등록금이나 연금기금을 통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자본주의 도박판에 베팅하게 하는 사회, 사회가 무엇을 해주기 바라거나 남에게 의지하는 사람은 비굴한 노예 취급하는 사회, ‘개인’의 집합체를 이끄는 최고 지휘자는 국가가 아니라 세계화된 금융자본인 사회. 사회운동은 범죄화 되고 통치는 군사화 되며, 국가는 각종 ‘전쟁’을 통해서만 버틸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바라본 신자유주의의 맨얼굴이다.
저자는 힘주어 이야기한다. “여전히 소시민적인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이며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지금은 극히 일부의 ‘예외’적인 사람만 탈락하고 망하는 시대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언제든 예외가 되어 버리는 그런 시대이다. 현실은 이미 나의 문제로 다가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나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교묘하게 우리 자신을 속이도록 만들고 있다. 그런데도 이 착각에 말려 버리면 우리는 세상을 보는 눈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렇게 누구나 예외가 될 수 있는 이 시대에는 새로운 도덕이 탄생한다. “아무도 믿지 마라.” “이것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취해야 하는 마지막 도덕이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아무에게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자기 몸은 자기가 돌보라!’는 명령에 따라야 한다. 누구에게도 위로를 기대하지 말고 너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고 살라는 명령이다.”

은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몇몇 외에는 이러한 상황이 공포일 수밖에 없는데도, 타인과 고통에 대한 감수성 역시 바뀌어 버렸다. “자신의 삶에 대한 공포가 우선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서 부정한 사회에 대해 분노를 느끼기보다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먼저 느낀다.” “이런 세상에서 타인과의 연대, 아니 하다못해 연민의 감각이라도 생겨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반값등록금’을 위해 연대투쟁하기보다는 ‘스펙’을 조금이라도 더 쌓는 것으로 불안을 해소하는 청년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편에 서지 못하는 정규직 노동자들, 노숙자나 성 소수자, 이주노동자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가혹한 공격… 이런 모습은 신자유주의적 가치의 확산에 따른 필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유와 연대의 페다고지를 향하여
오랜 기간 동안 독재 정권에 맞서 온 한국의 역사에서 ‘자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체절명의 가치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제 또다른 ‘자유’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자유에 맞선 자유”를 “상상해 낼 수 있는 힘과 영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이야기한다. 진리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교육, 다 알고 있다는 착각에 맞서는 깊은 사유가 필요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맞서고자 하는 사람들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은 더욱 유연하고 재빠르게, 필요하면 급진적인 조치들까지도 취하며 진화하고 있다. 최근의 경제 위기 이후에 엄청난 규모의 은행 국유화나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현상으로 알 수 있듯이…. 상황이 이렇다면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우리로서는 어떤 급진화를 이루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저자는 아도르노의 말을 인용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실천이 아니라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사유임을 강조한다. 황우석 사건과 같이 사유를 중단시키는 배타적 민족주의·국가주의를 넘어서고, 우리 사회의 불화와 적대에 민주주의로 맞서는 사유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세계의 변혁과는 무관한, 그저 세계를 해석하는 그런 사유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머무르지 않으려는 치열한 급진화의 운동이다. 그것은 개인의 사변과 이념으로 고립되지 않고 세상으로 나오려는 치열한 협력적 운동이다. 이 사유의 운동만이 이념을 이념의 자리에만 남겨두지 않고, 무게가 느껴질 수 있는 우리의 역사로 만들 수 있다.”
국제연대운동을 통해 다져진 실천적 사유와 이론적 사유로 무장한 저자의 성찰이 빚어낸 결론에 공감하며 ‘사유의 힘’을 통해 연대할 수 있는 독자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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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분포

9.6




우석훈보다는 엄기호! 신자유주의 비판서 중 가장 일상적이다. 그래서 가장 흥미롭다.
얼음장수 2011-06-10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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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에 대해서 한번쯤 짚고 생각해봐야 될 이야기
스카이블루 2014-04-12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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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20대들은 결혼을 할 수 없다. 결혼을 해서 가족을 가질 수 있는 자들은 특권층
nature68 2010-01-2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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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의 책은 손이 먼저 가는 책이다. 그의 인문학 책은 언제나 늘 반갑고 생각나게 한다.
블랙겟타 2012-06-2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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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예!! 잘 읽을 수 있게 만들어진 책입니다^^
윤재홍 2011-01-0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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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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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참으로 가혹한 말이다. 철저히 자신의 욕구와 욕망에 충실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라는 의미다. 굳이 이와 같은 정언 명령 형태로 지침(?)을 내리지 않더라도 이 시대의 사람들은 충분히 제 이익에 충실하고, 자기 이외에 남을 돌보지 않는다. 그러니 이 말은,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앞으로 그리해라, 라는 의미가 아니라, 있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정반대의 정언 명령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혹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이 시대에 개인이 살아가야... + 더보기
마늘빵 2009-05-30 공감(1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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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청년죽음을 보고...



지하철 9호선은 <골드선>이라고 한다.

역이 만들어지는 곳마다 집값을 올려줘서 붙여진 별명이다. 유럽 선진국인 로마나 파리,뉴욕 등의 지하철에 비하면 한국의 지하철은 깨끗하고 정확하고 무엇보다 싸다.

이렇게 좋은 지하철을 이용하다보면 감사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잘 될런지 의문들이 늘어간다.

철도가 잘 돌아가려면 누군가는 고된 일을 해야 한다.

영화로 만들어진 아사다 지로 원작 <철도원>은 철도에 평생 바친 역장의 최후를 그려낸다. 정년퇴직과 폐선이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역장은 가족도 없이 산 인생을 쓸쓸히 역에서 마감한다.

설국 속의 애잔한 장면을 뒤로 하고 원작 소설에서 한 대목을 끄집어 내고 싶다. 도시에 나가 있는 동기 철도원은 곧 역에 새로 만들어지는 백화점에 취업하기로 내정되어 있었다.




철도는 가지고 있는 자산, 주로 토지를 이용해 개발사업자로 변신하면서 퇴직자들을 옮겨 수용한 것이다. 막상 이들이 실무를 잘 못하니 당연히 <관계관리> 중심으로 포지션하게 된다.

이들을 가리켜 <관계자산을 가진 노동자>라고 칭해보고 싶다.
일본 철도 산업의 변화는 한국에 많은 참고 모델이 되었다.
일본에서 백화점 임원으로 퇴직간부를 보내듯이 한국의 철도들은 자회사로 대거 내보내왔다.




이번에 구의역에서 발생한 19세 청년의 죽음은 큰 아픔이지만 여기서 더 많은 생각들을 끄집어 냈으면 한다.

관계로 만들어진 자회사가 얼마나 열악하게 가치 창출을 하는 노동을 취급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사회가 저성장으로 가면서 구조조정은 일상화되어 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대립들이 나온다.

19세기의 사회적 프레임이 계급과 계층이고, 주로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주목해 보았다. 재벌은 악, 노동은 선이라는 가치관도 그 파급물이다.

하지만 현재 세상의 대립은 오히려 "관계자산을 가진 정규직 노동자"와 "관계자산이 없는 신종 프롤레타리아"이 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물어야 한다.

관계자산을 지속적으로 울궈먹는 노동자들은 창의적 파괴를 하려고 분투하는 경제의 타주체들 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가?




구체적으로

철도노조는 과연 선일까?

최근 메트로와 도시철도의 합병은 무산되었다. 그럴때마다 철도노조는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앞세워왔다. 잘 만든 명분 하나는 오랫동안 전가의 보도처럼 쓰인다.

하지만 그 공공성이 과연 얼마나 보편적이고 공정한지를 이제 심각하게 물어야 할 떄가 되었다.




구의역 사건은 비극이지만 이어서 발생하게 된 큰 관심은 새로운 시야를 주고 있다.

문제는 철도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보편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조선산업의 쇠퇴에도 중공업 노조들의 극단적 노동운동이 큰 기여를 했다고 하는 건 과단일까? 자식들의 고용을 필히 보장하려는 기업들이 많다.

저성장에 얼마 남지 않은 먹거리일수록 더욱 치열하게 내 것만 챙기려는 심보다.

한국 사회는 점점 중요한 문제에 심각하게 직면해갈 떄가 되어가고 있다.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전가의 보도로 써먹던 노조는 절대선이라는 고집을 깨야만 한다.




이 책의 제목대로 남을 돌보지 않는 "절대선"은 중세 교회나 절들이 벌였던 수취를 위한 종교놀음과 다를바가 없다.
- 접기
사마천 2016-06-06 공감(7)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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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대한민국은 자유의 얼굴을 한 싸이코패스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요즘 <남자 이야기>라는 시청률 꽝의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다.
이 드라마가 재밌는 게 너무 티나게 지금 정권을 타깃으로 하고 있어서 슬쩍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정확하게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짚어 주고 있기 때문에
그 대담한 지적을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싸이코패스 재벌(김강우)은
'나는 우리나라에서 500만명만 남으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라고 이야기하고
'나머지 4천500만은 어쩌고?'라는 질문에
'글쎄, 결국 모든 건 500만에 들지 못한 사람들의 변명 아닐까?'
'다들 그 500만에 들기 위해 안달하지 않을까? 당신은 아니야?'
라는 식의 대답을 한다.

이 싸이코패스가 꿈꾸고 있는 모로코, 혹은 두바이 같은 경제특구의 이름은
바로 '명도시'이다.
그리고 그 명도시 개발을 위해 세입자들을 몰아내는 모습은
'용산 철거 참사'와 다를 바 없다.
특히 이 드라마가 무섭도록 정확하게 짚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도, 경찰도, 그 무엇도
그저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점이다.
돈이 정치가를 내세우고
공권력이 돈의 눈치를 보고
언론은 그저 편의에 따라 쓰는 도구인 세상.

이 드라마를 보면서 계속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가 생각났다.
'언제나 누구나 망하리라'는 공포에 사로잡혀서
어릴 때부터 착실하게 돈을 모으는 법보다는
당연히 돈을 굴리고, 자신을 관리하고, 남을 올라서는 법을 배우고
88만원 세대가 되지 않기 위해 중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청년기를 통째로 바치고
그렇게 버둥거리다가 결국은 명퇴하여 치킨집을 차려
수십만의 또 다른 치킨집 사장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의 모습.

문제는 이 신자유주의 사회가
그저 경제적 곤란함과 양극화만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까지도 바꾸어 버린다는 데 있다.
그때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내리는 정언명령이 바로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이다.
너무도 무시무시한 사회이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진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를 외면하거나 그러고 싶어한다.
나는 아니다.
나는 탈락의 공포, 예외가 되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는 몇몇 소수의 이야기일 뿐
노력하면 다 벗어날 수 있다고.

하지만 이제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가 아니다.
강남 부자는 3대가 가고
돈이 돈을 낳고
돈이 계급을 낳고
계급이 계급을 낳고
그들끼리 모여서 나머지는 저 멀리 어느 곳으로 쫓아 버리고
따라올 테면 따라오든가 말든가
그렇게 내치고 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이러한 불균등한 사회에서
그것을 깨고, 더 힘든 사람을 돌보기보다는
오로지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라는 쪽으로만 생각한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그토록 소중한 가치였던 '자유'가
이 시대에 신자유주의라는 싸이코패스에 의해
살짝 얼굴을 가린 채 다시 우리를 옥죄고 있다.
자유의 역습이다.

88만원의 현실보다 더 무서운 것은
88만원보다 더 벌기 위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죽도록 뛰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정언명령과
이를 눈치 채지 못하게 만드는
이 공고한 체제이다.

이 책 속의 한 소제목처럼
'탈락한 자에게는 쓸쓸한 묘비명조차 없는'
그런 사회이다.

더 이상 인간을 인간이게 놔두지 않는 사회
요즘 들어 자꾸 마음이 먹먹해진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만은 없다.
또 다른 자유를, 또 다른 대안을
쉬지 않고 생각하고 꿈 꾸고 일궈야 한다.

- 접기
히히 2009-05-25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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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인류의 사랑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대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켜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 장정일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결 수 있다면-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




우리 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라디오는 기계에 달린 단추를 눌러 작동되고, 전파를 통해서 우리에게 방송을 들려 주는 물건이다. 그래서 단추를 누르지 않으면 라디오는 그냥 기계 덩어리일뿐이다. 이 시 속의 화자는 자산이 라디오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군가가 굳어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 주기를 바란다. 버튼을 누르면 자신도 그 누군가에게로 가는 전파가 될 수 있다. 시에서 말하는 전파는 화자와 그 누군가 간에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뜻한다. 서로의 단추를 눌러 주면 서로가 서로에게 전파가 되어 사랑으로 변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라디오는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켜는 기계이다.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라디오를 켜는 것이고, 음악을 듣고 싶지 않으면 라디오를 끈다. 즉 사람들의 편의나 실용성에 의해 라디오는 작동되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의 사랑이 라디오와 같은 것이라면 그 사랑은 편의적이다. 결국, 편의적 사랑은 오래 갈 수 없으며 그저 가볍게만 여기는 사랑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현대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등장

이 시는 장정일의 시집 <길안에서의 택시 잡기>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이 발표된 시기는 1988년이다. 1988년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할 해이다. 서울 올림픽의 개최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해에는 좋은 기억도 있지만, 안 좋은 기억도 있기 마련이다. 1987년에 발생한 KAL 폭파 사건의 범인으로 북한의 대남공작원 김현희가 매스컴에 알려지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국제적인 행사 이후 한국은 반세기만에 급격한 경제 성장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제 한국은 전쟁 때문에 가난한 국가가 아닌 세계적 경제 중심지의 아시아 국가였다. 그리고 서구의 문화들이 유입하기 시작되었으며 그 유입 뒤에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있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시장 개입이 아닌 시장의 기능을 자유화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 기업의 민영화에 의의를 두고 있다. 그리고 시장개방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 예가 바로 '세계화' 이다.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는 1993년에 우루과이 라운드에 타결 합의하였으며 그 후로 세계무역기구(WTO)가 등장하였다. WTO 설립은 산업과 무역 간의 장벽을 무너뜨렸으나 세계의 모든 나라가 무한경쟁 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보다 많은 자본을 창출하고 얻기 위해서 금융업, 부동산업의 강세가 두드러지기 시작하였는데 지금도 우리나라 사회에 강조되고 있는 '재테크' 도 그 강세가 만들어낸 우리나라 특유의 신드롬이다. 사람들은 돈을 단순히 저축하고 모으기보다는 돈으로 이보다 더 많은 돈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요즘 세상에 주식이나 펀드, 그리고 땅 투자를 외면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리고 저축으로만으로 1억을 모을 수 없고, 자신만의 집도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에 사로잡힌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프리카리어트

이렇다보니, 신자유주의 사회에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생하였다. 불황과 실업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빈부격차는 계속 벌어져만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한경쟁 시스템 속에서 나 한 몸 잘 살기 위해서 상대방을 짓밝고 불법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경쟁 체제 속에 살아남은 자만이 어마어마한 자본들을 손에 쥘 수 있는 승자가 되었다. 무조건 이기는 자만이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IMF 한파 이후 무너져버린 중산층들은 오직 잘 살아야한다는 신념 하나로 발버둥을 처야만 했다. 그러나 발버둥을 쳐봐도 가난한 생활은 이어졌다. 자신들의 노동력을 받아주는 직장은 없었고, 그나마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주는 쥐꼬리만한 보수만으로 삶을 연명하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행복하고 안정된 삶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 머리속에는 자신의 직업이 언제 짤리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이 가난한 삶이 이어진다는 불투명한 미래를 생각하면서 고달픈 노동으로 하루를 보낸다.

'잃어버린 10년' 이후로 경제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일본과 같은 경우에는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자못 심각하다. 우리들이 많이 알고 있는 '워킹푸어'(Working Poor)는 일본 사회의 병리적 문제가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이는 일하는 빈곤층을 가리키고 있다. 일을 해도 가난하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프리카리어트'(Precariate)라는 신조어도 만들어졌는데 '불안정한' 이라는 뜻의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e)를 합성한 것이다. 미래가 없는 불안정한 삶을 사는 비정규직 노동자 계급을 뜻한다.

프리카리어트의 등장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직 이 단어가 우리나라에는 통용되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프리카리어트는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프리카리어트는 아르바이트에 의존하려는 88만원 세대 그리고 정규직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신자유주의 인류의 사랑

'무한경쟁' , '승자독식사회' 가 주를 이루고 있는 신자유주의 사회는 '아무도 안 믿는 세상' 이 되어 간다. 신자유주의는 경쟁을 부추기고, 이에 따라 사람들은 자본을 얻기 위해서 상대방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고 만다. 인간 사이의 친밀감, 연대감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아르바이트와 취업 준비에 혈안이 된 88만원 세대들에게는 사랑과 연애는 사치일 뿐이다. 자신이 경제적인 자립이 안 되어있는 이상, 이들에게는 결혼이라는 것도 꿈도 꿀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오죽했으면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이 10대들의 섹스를 '슬픈 섹스' 라고 표현하였다. 이들에게는 그나마 이성 간의 사랑을 해갈해줄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는 동거뿐이다. 하지만 동거는 오랫동안 유지될 수 없는 사랑의 방식이다. 동거를 한다해도 부부로 연결되는 커플은 드물다. 이 시대에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은 88만원 세대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여성들 대다수는 결혼보다는 싱글을 택하고 있다. 경제적 자립을 이루어서 혼자서 편안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병든 사회에서 경제적 자립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이다. 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이다. 치열한 경쟁다툼 속에서 살아남은 자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여성들은 고액 연봉의 직장에서 일하는, 앞으로의 삶이 보장되는 신랑감을 찾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사랑의 감정으로 만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오직 '돈' 을 가져야한다는 감정으로 이성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장정일의 시가 신자유주의 사회에 지배당한 사회를 예견했을지도 모른다. 서울 올림픽 이후로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우리 사회에도 불기 시작하면서 이 시 속 내용처럼 '아무도 안 믿는 세상' 으로 변하고 있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인간들은 누군가 자신의 버튼을 눌러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버튼이 눌러짐과 동시에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전파는 사랑이 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살기 바쁜 마당에 무일푼이며 보잘것없는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그럴수록 그는 사회 속에서 소외되어 간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없으며 사랑을 가볍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나마 새 것처럼 보이던 라디오에 사랑의 버튼을 눌렀다가, 점차 헌 것으로 변하게 되면 버튼을 끄고 헌신짝처럼 버리게 된다. '돈' 으로 사람을 만났다가, '돈' 이 궁하면 쉽게 헤어지는 요즘 사람들처럼 말이다.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단순히 책 제목이라고 보기에는 우리 사회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어서 무시무시하기도 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남 관심 가져줄 여유가 없다. 일을 해야만 앞으로 남은 일생을 살아갈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남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는 이제 시대의 화석이 되었다. 지금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가 대세이다. 신자유주의 사회의 인류에게는 상대방의 매력에 이끌려 정열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사랑은 이제 없는 것일까? 88만원 세대로 살아가고 있는 나로써 이 책을 읽고 세상을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더욱 더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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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1-08 공감(2)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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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맨 얼굴이 드러나다.

누군가의 어제이며 또 다른 누군가의 오늘이거나 미래인, 이러한 괴물 같은 신자유주의는 도대체 언제 나타나서 어떻게 세상을 집어삼키기 시작했을까?


저자에 의하면 70년대 영국과 미국이 경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 탄생한 괴물이라고 한다. 즉 시카고 대학을 중심으로 한 시카고학파가 그 자리의 중심에 서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구체적 내용을 요약하면, “1970년대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하게 되자, 기존의 케인스주의(혹은 개입주의)에 반발하여, 시카고 대학을 중심으로 점차 학계에서부터 그 영향력을 확대했다. 신자유주의를 가정 먼저 펼친 나라는 ‘자유’와는 가장 거리가 먼 칠레의 군사독재 정권이다. 이렇듯 신자유주의는 오로지 시장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그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가장 반자유주의적인 체제와도 아주 쉽게 융합되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경제 성장률은 오히려 하락하였고, 다만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 간의 빈부의 격차만 더 심화시켰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는 못 가진 쪽에서 가진 쪽으로 소득을 이전하는 프로그램이다. 즉 “탈취에 의한 축적‘이라고 표현하였다.”( 32p)


저자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누가 탈락하며, 탈락한 사람은 어떤 존재로 취급되고 있는지 명쾌한 논리로 전개해 나간다. 그러면 독자에게 경고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가 만약에 여기에 나오는 완전한 탈락과 몰락은 극히 ‘주변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이고, 자신에게는 여전히 소시민적인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착각이라고.

신자유주의는 시장을 맹신하는 ‘시장 근본주의’로, 사람의 삶이란 머릿속에서 발끝까지 모두 시장의 원리에 의해 작동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기에, 국가는 개인의 자유에 대해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사회는 없으며, 개인의 활동이 모여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오케스트라만 있을 뿐이다. 이 오케스트라의 최고점에는 바로 시장이 있고,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는 국가가 아니라 세계화된 금융자본이다. 돈 스스로가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신자유주의라는 미친 롤러코스터에서 내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팔짱을 낀 비판을 통해서는 오로지 냉소주의에만 도달할 수 있을 뿐이다. (26p)


“비정규직 해고의 경우에는 기업도, 국가도, 여론도, 심지어 정규직 노조도 무서울 정도로 냉담하기 짝이 없다. 비정규직이 되고, 해고가 된 책임은 모두 개인에게 있다고 한다. 개인이 공부를 제대로 안 했고, 무능했고, 게을렀고, 근무 성적이 안 좋았기 때문에 탈락했다는 말이다.” (83p)


“2000년 이후 내가 보아온 이들의 마음은 누구 할 것 없이, 몰락에 대한 공포와 타인에 대한 차가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제 우리는 탐욕스런 욕망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던 모습과 정반대였다. 탐욕의 이면을 지배하고 있는 힘은 몰락에 대한 공포였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삶은 전혀 안정적이지 않았고, 미래는 애측하기도 통제하기도 쉽지 않았다. 누구나 자신이 인생에서 한 번은 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그 두려움은 분명한 실체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태어날 때부터 발버둥 치고, 청년기를 지나면서는 시한부 사랑에 갇혀 버린, 신자유주의에 저당잡힌 삶의 밑바탕에는 바로 이 공포가 있었다. 언제라도 망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서 근근이 하루하루를 살아 나가는 이 삶은 쉽사리 바뀌지 않을 듯해 공포는 더 커 보인다.“(98p)

이명박 정부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기치 아래 승자독식의 사회를 완성하고 있다. 국제 중 설립은 교육을 통해 계급을 통해 계급을 굳건히 하는 화룡점정이 되고, 종부세 폐지와 감세 정책은 부자만을 위한 돈 자치에, 없는 이들을 위한 그나마 복지 정책도 축소시킬 터이다. 수도권에 대한 규제 완화는 지방을 서울 식민지로 전락시키고 지방에 사는 이들을 국민이라는 울타리로부터 추방하고 서울을 진정으로 ‘특별시’로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 온 나라가 난리이다. 정부에 대부분 온건적인 언론이 전체적인 맥락을 집어 주지 않아서 그렇지 노무현 때 이런 사태가 벌어졌으면 아마도 민란이라도 일어났을 것이다. 구제역에 조류독감, 계속되는 강취위에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신종 푸루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가히 전쟁 중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런데 저자는 조류독감도 신자유주의 정책의 폐해로 설명하고 있디.

“조류독감이 한 번 발생할 때마다 살처분 당하는 닭과 오리 등 가금류가 수십만, 수백만 마리에 이른다. 인간에게 전염된다는 이유로 가금류 전체가 모조리 도륙당하고 있다.
이렇듯 닭 한 마리에 온 인류가 공포에 떨게 된 그 조건은 바로 신자유의 세계화이다. 식량의 전 지구적 교역은 대규모로 수출하는 공장형 사육식이 아니면 농장이 절대 살아나을 수 없도록 했고, 결국 닭과 오리 같은 가금류 사육 방식을 집약적인 형태로 바꾸었다.“(208p)

이것이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전제로 인간의 삶을 지구화한 근대화가 낳은 잘못이라면, 신자유주의는 이에 대처하는 가장 실패한 통치 방식이다.

결론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독재 정권에 맞서 온 한국의 역사에서 자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체절명의 가치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제 그 자유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자유의 이름으로 시장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였으며, 자본은 노동에 비해 절대 우위에 서 있다. 노동은 자본에 대한 협상력을 잃었을 뿐 아니라 아예 그 존립 근거 자체가 해체되고 있는 듯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절대다수의 인간들은 시간과 공간의 피난민이 되어 부평초처럼 이리저리 떠다니는, 난민도 국민도 아닌 어중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자유의 이름으로 행해진 야만이다.”(235p)

그러면 이 무시무시한 신자유주의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저자는 “지금 우리에게 대안은 여전히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우리에게 대안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대안을 잘 알고 있지도 않다.”고 하면서도 “자유에 맞선 자유, 그것을 상상해 낼 수 있는 힘과 영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세계의 변혁과는 무관한, 그저 세계를 해석하는 그런 사유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머무르지 않으려는 치열한 급진화의 운동이다. 그것은 개인의 사변과 이념으로 고립되지 않고 세상으로 나오려는 치열한 협력적 운동이다. 이를 통해 ‘사우는 우리’가 만들어진다. 그들보다 더 급진적이 되고치밀해지기 위해 사유의 운동을 포기하지 않는 것, 오로지 이 협력적 운동만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특히 저자는 아도르노의 말을 인용해, 우리에게 부적한 것은 실천이 아니라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사유임을 강조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실체는 구체적이고 분명한데, 이에 저항하고 타파해야 할 대안은 좀 모호한 감이 있고, 다분히 관념적이다.


공무원시험 합격 보고서 - 어떻게 스스로를 관리하고자 자기를 다잡아야 하는지.

1. 가지고 있는 책은 무조건 30번씩 읽어라.
시간이 없다고 반복을 소홀히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처음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반복하면 할수록 점점 걸리는 시간은 줄어듭니다. 물론 대충 보라는 뜻은 아닙니다. 충분히 반복하는 것은 학습에 많은 효과를 가져옵니다.

2. 잡생각 하지 마라.
붙기 위한 시험입니다. 공무원 하나에 포커스를 맞추어 온 신경을 집중해야지 딴생각 할 겨를이 없습니다.

3. 규칙적인 생활을 해라.
사람은 규칙적인 사이클로 돌아갈 때 가장 좋은 컨디션을 발휘합니다.

4. 모의고사에 연연하지 마라.
모의고사에 일희일비하는 분들 많습니다. 모든 시험은 끝난 순간 잊어버리십시오. 계속 생각한다고 점수가 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모의고사를 통해서 자신의 약점을 분석할 필요는 있습니다.

5. 운동 꼭 해라.
시간에 쫓기고 귀찮다 보니 대부분의 수험생이 운동에 소홀합니다. 운동을 통해 땀을 빼면 머리도 맑아지고 집중력도 향상됩니다.

6. 아는 사람을 만들지 마라.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든 시간이 듭니다.


이 학생은“혼자인 덕분에 점심을 먹으면서 입으로는 음식을 씹어 넘기고, 눈으로는 글자를 씹어 넘기면서 보냈고, 버스타고 도서관 오가는 중에는 단어를 녹음해서 들었고, 집에 가면 매일 40분 정도 조깅을 했다.” 혼자라고 가능했고, 이 가능성을 위해서 혼자가 되었다. 이 학생은 이 모든 것을 “철드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잠깐 감동하고 다짐하기보다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중요하고,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엄격한 자기 절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것이 철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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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만권서(qkrtkdgh71) 2011-01-1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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