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7

“많이 못 해줘서 미안해” 왜 부모님은 이런 말을 할까? | ㅍㅍㅅㅅ

“많이 못 해줘서 미안해” 왜 부모님은 이런 말을 할까? | ㅍㅍㅅㅅ

“많이 못 해줘서 미안해” 왜 부모님은 이런 말을 할까?
2024년 2월 27일 by 허용회


엄마가 많이 못 해줘서 미안해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었다. 우리 집은 솔직히 꽤 불행했다. 가정불화가 있었고, 집은 가난했다. 급기야 내가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부모님께서는 이혼을 결정하셨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떠나고, 아버지 밑에 남았지만 아버지는 출장으로 바쁘셔서 얼굴을 보기 어려웠다.

혼자 떨어져 있는 내가 유독 안타까우셨나 보다. 어머니는 못 해도 이주일에 한 번은 ‘엄마 집’에 나를 오도록 했고 1박 2일 동안 내가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다 들어주셨다. 나중에 암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어머니는 매일 내게 전화하시며 행여 엄마 없는 빈자리를 느끼지 않도록, 그렇게 신경을 많이 써 주셨다.

그때는 나도 많이 어렸다. 마냥 좋았고 슬펐을 뿐, 어머니가 마음속에 지니셨을 어떤 무게감을 가늠할 수 없었다. 지금에야 조금이나마 알겠는 거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딸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니 그때의 ‘부모 마음’ 생각이 나서 이따금 먹먹한 기분이 들게 된다.


그땐 그 의미를 몰랐지… / 사진: Unsplash의Kelli McClintock
부모는 늘 이상적인 부모가 되고 싶어 한다. 조금이라도 부족하게 해 준 것은 아닐지, 아이가 잘못되는 건 아닐지 노심초사, 전전긍긍하며 조금이라도 더 아끼고 보살피려 마음 쓰는 것이 부모 마음이다. 기왕이면 더 좋은 곳 데려가고 싶고, 더 맛있는 것 먹이고 싶고, 자식이 하고 싶다는 거 다 지원해 주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늘 해주고 싶은 것은 많은데 현실의 벌이가 고달파서, 기력이 쇠해서, 몸이 두 개가 아니라서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는 하지만 늘 자식에게는 더 못 해주는 아쉬움이 남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TV에 나오는 부자 연예인들 육아를 보고 한탄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걸 해줄 수 없는데, 저 부모들은 원하는 걸 다 해주는구나.

 

양육 죄책감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 그리고 실제의 부모의 모습 간에는 언제나 ‘격차’가 있다. 그리고 부모는 그 ‘격차’를 못내 아쉬워하고 미안해한다. 마음의 짐처럼 여긴다. 심리학자들은 그 부모 마음을 가리켜 양육 죄책감(parenting guilt)이라고 부른다.

양육 죄책감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도구로는 모성 죄책감 척도Maternal Guilt Scale(Mann & Thornberg, 1987)라는 것이 있다.

아이에게 엄마로서 따뜻한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내면 죄책감이 들고 후회가 된다.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뒤처진다고 느껴질 때 내 탓인 듯 속상하다.
양육 죄책감은 ‘양육 스트레스’라는 개념의 하위 요소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부 심리학자들은 양육 죄책감만의 고유한 특징에 주목하여, 양육 죄책감만을 별도로 다루기도 한다. 그렇다면 양육 죄책감은 양육 스트레스와 뭐가 다를까?

1) 서로 다른 양상

주 양육자의 취업 여부에 따라 양육 죄책감, 양육 스트레스의 양상이 서로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여기서는 ‘워킹맘’과 ‘전업주부’를 비교해 보겠다. 워킹맘과 전업주부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워킹맘: 양육 죄책감↑, 양육 스트레스↓
전업주부: 양육 죄책감↓, 양육 스트레스↑
워킹맘은 일하느라 바빠서 전업주부 대비 아이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다. 그래서 양육 죄책감이 높은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양육에 많이 참여하지 않는 만큼 양육 활동 그 자체로부터 경험하는 스트레스의 정도는 낮다.

전업주부는 반대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아이에게 헌신할 수도 있기에 양육 죄책감은 낮은 편이다. 하지만 늘 아이와 씨름하는 과정에서 받는 양육 스트레스는 높다.

2) 지향성의 차이

양육 스트레스는 낮을수록 좋다. 양육 스트레스가 낮은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더 안정되어 있고, 아이에게 더 좋은 애착 습관을 물려준다.

하지만 양육 죄책감은 묘하다. 일견 생각하기에 양육 죄책감이 낮으면 좋을 것 같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절한 수준의 죄책감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설명이다.

 

양육 죄책감은 ‘적당히’ 있어야 한다.
먼저 양육 죄책감이 너무 높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이들은 낮은 자존감, 높은 불안과 관련이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이 양육을 잘해 나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남들만큼 해주지 못할 것이 두렵고, 그런 자신이 원망스러운 사람들이다.
양육 죄책감이 높으면 자식을 과보호하고 통제하려 든다. 해주지 못해 미안하니까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는 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심리학적으로 과보호, 통제는 그다지 바람직한 양육 스타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과도하게 의존적이거나 반항하는 아이를 만들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양육 죄책감이 아예 없는 사람들보다, 적절히 양육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더 안정적인 양육 스타일을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왜 그럴까?

죄책감(guilt)이라는 감정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죄책감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과하면 자신을 잡아먹지만, 적정 수준의 죄책감은 자기 각오이자 반성, 그리고 책임감으로 연결된다. 미안하니까, 부끄러우니까 아이에게 더 잘하려 노력하게 된다는 말이다.

 

아이에게 미안한 당신은 오히려 좋은 양육자이다
혹시 양육 죄책감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가? ‘적절한’ 죄책감은 오히려 아이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상기하자. 죄책감이 있는 양육자가, 그렇지 않은 양육자보다 더 아이에 대한 배려와 책임도 높다.

죄책감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툭 터놓고 받아들이자.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다. 없애려고 무리할 필요도 없다. 내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차분하게 인지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객관적인 시야가 생기고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하지 못하는 일이 구분되기 시작할 것이다.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뿐이다(이는 심리학의 마음챙김(mindfulness), 자기자비(self-compassion)의 원리를 응용한 것인데, 양육 죄책감에 대해 효과성이 검증된 전략이다).

 

참고 논문
김지선, 유성경 (2023). 어머니 불안정 성인 애착과 양육 죄책감의 관계에서 지각된 남편 협력과 자기-자비의 매개효과.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35(4), 1429-1453.
이경숙, 정지현 (2020). 양육죄책감 감소를 위한 마음챙김 -자기자비 집단상담 프로그램의 효과. 인문사회과학연구,21(4), 333-355.
Mann, M. B., & Thornburg, K. R. (1987). Guilt of working women with infants and toddlers in day care. Early Child Development and Care, 27(3), 451-464.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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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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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플레이팅 대표. 서강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으며,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대학원에서 문화 및 사회심리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심리학 강연 및 심리학 대학원 입시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1인 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실험/실습 코디네이터 일을 겸하고 있다. 저서로는 『당신은 심리학에 속았다』 『게으른 사람들의 심리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