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8

반드시 출가해야 해탈하는가 < 수행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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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출가해야 해탈하는가
수행
입력 2003.10.15 

부처님이 왕사성 죽림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 무렵 앵무라는 바라문이 볼일이 있어 왕사성의 어느 거사 집에 가서 기숙하고 있었다. 앵무 바라문은 그 거사에게 ‘때때로 찾아 뵙고 존경하며 가르침을 받을만한 스승’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했다. 거사는 서슴없이 부처님을 천거했다. 이에 앵무 바라문은 부처님이 계신 죽림정사로 찾아가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을 여쭈었다.

“도를 닦으려면 집에 있으면서 하는 것이 좋습니까, 집을 나와서 하는 것이 좋습니까?”

“나는 도를 닦는 사람이 집에 있느냐 혹은 집을 나오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집에 있거나 나오거나에 관계없이 삿된 행(邪行)을 하면 나는 그를 칭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삿된 행을 하는 사람은 바른 지혜를 얻지 못하며 법다움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에 있거나 나오거나에 관계없이 바른 행(正行)을 하면 나는 그를 칭찬한다. 왜냐하면 바른 행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바른 지혜를 얻으며 법다움을 알기 때문이다.”

“한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큰 공덕과 이익을 얻으려면 집에 있는 것이 좋습니까, 집을 나와서 하는 것이 좋습니까?”

부처님은 출가 강조한 적 없어 진실한 수행여부가 더 중요

“그것은 일정하지 않다. 집에 있는 사람으로서 큰 재앙이 있고 다툼이 있으며 원망과 미움이 있어서 삿된 행동을 하면 큰 결과를 얻지 못하고 공덕이 없다. 또 집을 나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작은 재앙이 있고 다툼이 있으며 원망과 미움이 있어서 삿된 행동을 하면 큰 결과를 얻지 못하고 공덕이 없다. 그러나 집에 있는 사람으로서 큰 재앙이 있고 다툼이 있으며 원망과 미움이 있더라도 바른 행을 실천하면 큰 과보를 얻고 큰 공덕이 있다. 또 집을 나와 도를 배우는 사람이 작은 재앙이 있고 다툼이 있으며 원망과 미움이 있더라도 바른 행을 실천하면 과보를 얻고 큰 공덕으로 얻는다. 이것은 진실이며 허망한 말이 아니다.”-중아함 38권 152경 〈앵무경(鸚鵡經)〉

- 출가생활이란 가정과 가족을 떠나 수행에 전념하기 위한 최상의 선택이다. 부처님도 수행을 위해 출가를 했고, 수많은 제자들도 같은 길을 걸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출가수행을 결행하자 부처님은 한때 외도들로부터 ‘과부들의 눈물’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출가수행자가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서 남편을 잃은 과부들의 눈물도 늘어난 데서 생긴 일이었다. 특히 산자야의 제자 사리불과 목건련이 250명의 추종자와 함께 개종을 하자 외도들의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캄바라라는 외도는 이를 막기 위해 마나기라는 여제자를 거짓으로 임신시켜 부처님을 모함하는 음모를 꾸미기도 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출가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가급적 부모와 가족의 동의를 받도록 권하기까지 했다. 출가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일종의 고육책이었다.이 경전은 바로 그 무렵에 설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주목할 점은 여기서 부처님은 결코 ‘출가지상주의’를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가르친 해탈이란 올바른 방법으로 수행하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출가라는 형식이 아니라 누가 더 진실하게 수행하느냐 하는 내용에 있다. 실제로 〈증일아함경〉 3권 청신사품에는 우바새로 법을 증득한 사람이 40명이나 거명되고 있다. 우바이도 30명이나 된다. 이는 법의 증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를 말해주는 증거들이기도 하다.
홍사성/ 불교평론 편집위원[불교신문 1973호/ 10월17일자]
[불교신문 1973호/ 10월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