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4

육사외문(六師外門)과 불교의 등장 - 오마이뉴스

육사외문(六師外門)과 불교의 등장 - 오마이뉴스

육사외문(六師外門)과 불교의 등장올바른 사찰답사를 위하여(8)
06.09.17 
김성후(intar)

변화의 시대

다시 복습하는 기분으로 시작합니다. 석가모니가 출생하기 이전부터 인도는 카스트제도에 의해 사람의 신분과 계급이 정해졌습니다. 카스트는 ①지식계급이자 사제계급인 바라문(brahman), ②정치적 지도자이자 전사계급인 크샤트리아(kshatriya), ③일반인들이자 상인계급인 바이샤(vaishya), ④육체노동자들이자 노예계층인 슈드라(shudra)라는 4개의 계급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실력과는 상관없이 오직 부모의 카스트에 의해 자신의 카스트가 결정되며 음식이나 옷, 종교, 직업, 결혼 등 삶의 모든 부분을 카스트가 결정하였습니다.




▲ 보물 제295호. 관룡사 반야용선대 석가모니불.(위치는 적당히 넣어주세요.)

ⓒ 김성후
그러나 철기시대가 도래, 상공업과 도시의 발전, 강력한 군주국가의 등장, 새로운 종교의 등장 등으로 인도의 사회에는 바라문의 지위를 뒤흔드는 새로운 변화의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합니다. 아리아인들은 갠지즈강 동쪽으로 점차 거주지를 넓혀가면서 쇠를 이용하여 황무지를 개간하고 농사를 짓자 자연히 생산물도 많아집니다. 생계에 필요한 것 이외의 생산물, 즉 잉여생산물을 사고파는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도시가 새롭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상업을 주도하는 상인들은 자신들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강한 세력을 형성하여 바라문 중심의 카스트 제도에 대하여 불만을 표출하게 됩니다. 여태까지는 농업과 씨족의 유대관계를 기반으로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제사를 관장하던 바라문의 지위는 감히 범접할 수 없었습니다만 상업과 도시의 발달로 경제력을 획득한 바이샤 등의 하층계급이 바라문의 권위에 도전하게 된 것입니다.

마가다(Magadha)국이나 코살라(Kosala)국 같은 강력한 군주국가가 등장하여 주위의 자그마한 부족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하자 정치적·사회적으로 대혼란이 생길 뿐만 아니라 아리아인들과 원주민의 혼혈도 생겨 순수 혈통을 강조하던 카스트제도의 권위는 점점 약화됩니다.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된 상인들은 베다의 권위 및 카스트의 속박을 대신할 개인적 자유를 추구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자유를 지지해줄 새로운 사상에 대하여 물질적으로 후원을 하기도 합니다. 불교나 자이나교 및 육사외도는 이렇게 격변하는 시대에 발생한 자유사상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자유사상 운동과 육사외문

자유사상 운동을 펼친 사람들을 보통 사문(沙門, sramana)이라 칭하는데 바라문들과는 달리 새로운 수행 방식으로 새로운 사상을 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바라문과 다른 사상을 가진 스승을 중심으로 모여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마을이나 도시를 떠돌면서 밥을 얻어먹고 수행을 하였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런 수행 공동체를 승가(samgha)라고 하는데 승가는 사회나 계급 등 신분의 차별을 두지 않는 개방적인 모임이었습니다.

모시는 스승에 따라 승가가 만들어지다 많은 종류의 승가가 탄생하였고 또한 승가들마다 그 성격과 가르침은 달랐지만 도덕적으로 비슷한 내용을 지키고자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이 지키고자 한 내용을 보면 대체적으로 비폭력, 진리 추구, 성적 금욕, 재산의 포기 등이었습니다. 이들은 순결과 청빈을 지켜 육체적 욕망이나 가정과 가족 그리고 사회로부터 그들에게 주어지는 제약과 구속을 뛰어넘으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자유사상 운동은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지만 이들을 대표하는 6명의 스승을 일컬어 육사외도(六師外道)라고 부릅니다. 외도(外道)라 함은 인도의 정통적인 가르침인 베다와 우파니샤드를 부정하고 가르침의 내용이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많기 때문입니다.

육사외도의 첫 번째는 푸라나 카사퍄(Purana kassapa)로 사람들이 지켜야할 도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합니다. 그는 윤회와 인과응보를 믿지 않아 윤리나 도덕이 필요하지 않으며 그래서 어떤 사람이 착한 행동이나 악한 행동을 해도 그 행동이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두 번째는 파쿠다 카챠야나(Pakudha Kaccayana)입니다. 파쿠다 카챠야나는 사람이나 사물 등 존재를 이루는 네 가지 요소인 지수화풍(地水火風)은 영원불멸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생명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기 때문에 죽이는 자도 없고 죽는 자도 없으며, 가르치는 자도 없고 가르침을 받는 자도 없다고 하였답니다.

세 번째는 아지타 케사캄발린(Ajita Kesa-kambalin)으로 환생이나 윤회설을 인정하지 않는 유물론을 주장합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살아있는 육체를 이루던 네 가지 요소들이 단지 원래 위치인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네 번째로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ala)를 드는데 이 사람은 운명이 모든 것을 좌우하며 그 누구도 냉혹한 운명의 힘을 막을 수 없다는 숙명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삶은 숙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입장을 취하여 사람의 삶에는 인연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하였죠.

다섯째는 산자야 벨라티풋다(Sanjaya Belattiputta)입니다. 그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서술하기란 불가능하다는 회의론을 펼칩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피하고, 판단을 보류하고, 진리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니간타 나타풋타(Nigantha Nataputta)로 자이나교의 지도자입니다. 절제된 행동 특히 금욕생활에 의해서 과거에 지은 업(業)의 결과를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감각의 억제, 욕망으로부터의 해방, 세상으로부터의 초연함, 재산의 포기나 고행 등과 같은 수행으로의 몰입을 강조했습니다.

불교의 등장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는 인도의 전통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때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 또한 육사외도처럼 시대적 요청에 의해 새로운 가르침을 펼친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석가모니는 앞서 말한 것처럼 베다나 우파니샤드의 핵심적인 가르침에 반발하여 새로운 사상을 주장합니다. 형식과 절차에 따른 제사를 통해 해탈이 가능하다는 베다를 거부하였으며 범아일여(梵我一如)라는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에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베다나 우파니샤드 등 과거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삼아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였습니다. 석가모니의 불교가 육사외도(六師外道)와 달리 세계를 대표하는 종교가 된 까닭은 한쪽으로 치우친 가르침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관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는 인도 전통의 윤회의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여 사람들의 삶의 목적은 끊임없는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해탈이라는 사상을 수용합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자유사상 운동의 큰 흐름이었던 가족과 사회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종교적 삶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석가모니 당신을 가장 특징짓는 가르침은 바로 육체적 고통의 거부와 함께 감각적 욕구 충족도 거부하는 중도(中道)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석가모니와 불교의 역사적인 탄생 배경과 당시 가르침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아야 절의 답사는 쉬워질 것입니다. 이후로 석가모니의 생애, 근본적인 가르침, 그리고 불교가 인도에서 탄생하여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 많은 세월 속에서 사상의 흐름과 변화를 차례차례 살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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