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사상사 - 기후변화 시대 철학의 전환 |
다른백년 2023 총서 2
조성환 (지은이)다른백년2023-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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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금 우리는 인간이 기후를 변화시킨 시대, 즉 ‘인류세’를 살고 있다. 인류세는 인간의 행위 하나하나가 지구시스템을 변화시키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음을 일깨워줬다. 인간에 대한 정의가 ‘이성적 동물’에서 ‘지질학적 행위자’로 전환하고, 사물의 위상도 무기력한 물질이 아니라 힘을 지닌 ‘행위자’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의 영역도 인간 이외의 존재까지 염두에 두는 ‘지구민주주의’ 또는 ‘정치생태학’으로 확장되고 있다.
아울러 그동안 무한하게 주어졌다고 여겼던 ‘자유’가 실은 화석연료라는 자연에 기반한 조건적 자유였음을 자각시켜 주었다. 이처럼 인류세는 그동안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여 사유했던 근대 철학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요청하고 있다. 저자는 바로 여기에 한국의 근대 철학자, 최한기의 기학(氣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기학 체계에서는 인간의 기화와 자연의 기화, 기술의 기화가 하나로 어우러진 ‘기화체’로 우주를 설명하며, 따라서 기후변화는 세 차원의 기화가 얽혀서 일어난 지질학적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차
프롤로그_인류세의 기학(氣學)
제1장 인간의 행위
제2장 기학의 귀환
제3장 유학의 경장
제4장 인간의 위상
제5장 사물의 위력
제6장 정치의 확장
제7장 행성의 대두
제8장 근대의 종언
제9장 자유의 제한
제10장 자연의 변화
제11장 생명의 평화
제12장 철학의 회고
에필로그_‘ 개벽파선언’은 ‘지구학선언’이다
참고문헌
책속에서
P. 29~30 인류세와 가이아, 가이아와 인류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인류세라는 시대 인식은 가이아의 관점에서 인간을 다시 생각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마치 해월이 “하늘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게 서로가 서로를 길러주는 기화(氣化)의 작용이다”라고 설파했듯이, 가이아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야말로 기화의 작용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다만 그 기화가 대기의 변화, 즉 ‘기후변화’라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_ <제1장 인간의 행위> 중에서 접기
P. 53 인류세란 기학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활동운화로 지구의 활동운화가 바뀌기 시작한 시대를 말한다. 그리고 그 변화된 지구의 활동운화가 다시 인간의 활동운화를 제약하는 시대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자연의 활동운화에 주목한 최한기의 기학이야말로 인류세 시대에 다시 조명되어야 할 한국 철학이 아닐까? _ <제2장 기학의 귀환> 중에서 접기
P. 68~69 학살, 비애, 울부짖음….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측은지심이다. 이들은 모두 만물에까지 연민의 정서를 느낀다. 성리학자들이 외쳤던 만물일체의 인을 오늘날의 생태사상가와 환경운동가들이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은 ‘생태적 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생태적 비애는 ‘지구적/행성적 차원에서 느끼는 비애(planetary grief)’라고 볼 수 있다. 나와는 무관한 듯 보이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까지 아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_ <제3장 유학의 경장> 중에서 접기
P. 81 플럼우드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최상위 포식자’에서 ‘타자의 음식’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것을 ‘생태적 관점’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그런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볼 때 다른 존재와 연대가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이를 철학적으로 말하면 생태 위기에 대한 ‘인식론적 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_ <제4장 인간의 위상> 중에서 접기
P. 102~103 베넷이 인간과 비인간 존재에 공통으로 들어 있다고 본 요소는 ‘힘(power)’이다. 즉 사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략) 지금과 같이 과학기술이 발달한 사회에서 사물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인공 사물에 기대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힘을 가졌다는 것은 그것이 두려워할 만한 존재라는 뜻이다. 고대인이 태양을 경배한 것은 그것이 인간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제1의 조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마찬가지로 오늘날 사물은 인간에게 외경할 만한 존재로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공자의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표현을 빌리면 ‘사물가외(事物可畏)’라고 할 수 있다. 최시형의 경물(敬物)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재조명될 수 있다. 즉 사물은 힘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외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_ <제5장 사물의 위력> 중에서 접기
P. 129 토머스 베리가 인간의 생존 및 지구와의 화해를 위해서 일종의 ‘생명민주주의’를 말했다면, 그리고 라투르와 베넷이 비인간의 ‘행위성’과 ‘힘’ 개념에 주목하여 ‘사물민주주의’를 제안했다면, 김대중은 비인간 존재의 ‘생존권’에 주목하여 ‘지구민주주의’를 제창했다. 그 시기는 베리(1988)와 라투르(1999)의 중간에 위치한다(1993년 전후). _ <제6장 정치의 확장> 중에서 접기
P. 147 글로브에는 인간의 강건함이 묻어난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이 지구를 인간화할 수 있다는 신념이 깔려 있다. 이와 같은 확신은 근대에 대두된 진보(progress)라는 이념과 궤를 같이한다. 반면에 플래닛에는 인간의 취약함이 드러난다. 인간은 행성을 인간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행성은 인간화되지 않는다. 문제는 근대 이후로 진행된 산업화와 글로벌라이제이션으로 인해 인류가 행성이라는 존재를 망각했다는 점이다. 차크라바르티가 행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행성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곳에서 홀로(獨) 존재한다(立). 노자의 개념을 빌리면 ‘자연’이고 ‘독립’이다. 그래서 인간이 개변할 수가 없다. 거주 가능한 임계영역은 과학기술로 개조할 수 있지만, 행성적 차원은 인간이 대면하거나 돌볼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은 무위의 영역이고 불인(不仁)한 존재이다. _ <제7장 행성의 대두> 중에서 접기
P. 165~167 차크라바르티는 이와 같은 과학적 성과에서 통찰을 얻어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과 ‘거주가능성(habitability)’을 대비시킨다. (중략) 즉 거주가능성은 행성의 영역이고, 지속가능성은 글로브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 점은 ‘지속가능’ 뒤에 ‘발전(develoment)’이라는 말이 따라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중략) ‘지속가능성’ 개념은 (중략) 인간의 개발에 ‘지구가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가’에 관한 물음이다. 주어진 화석연료를 인류가 언제까지 사용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의도 이에 해당한다. 이처럼 지속가능성은 인간의 지속가능성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중심적 개념이다. (중략) 반면에 지속가능성과 대비되는 ‘거주가능성’은 인간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이외 생명의 생존 조건을 묻기 때문이다. _ <제8장 근대의 종언> 중에서 접기
P. 192~193 자유는 서구적인 것, 근대적인 것을 대변한다. 반면에 자연은 그런 자유를 억압하는 전통적인 것, 동양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자연은 발전이 없고 정체되어 있으며, 자유는 진보적이고 발전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중략) 사실 동아시아에서 자연이라는 말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술어로 쓰였고, 그 의미도 억압보다는 오히려 해방이나 ... 더보기
P. 210 ‘인류세’ 개념이 등장한 2000년에 한국에서는 ‘생명평화’라는 말이 탄생했다. 따라서 나이로 치면 생명평화와 인류세는 동갑이 된다. 생명평화 개념이 탄생한 해가 인류세 개념이 주창된 해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마치 인류세 시대의 윤리를 ‘생명평화’로 제안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실제로 생명평화에서 ‘생명’은 인간의 생명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을 아우른다. 그래서 생명평화는 ‘모든 생명의 평화’라는 뜻이다. 종래에는 인간에게만 적용되었던 평화 개념을 인간 이외의 존재에까지 확장한 것이다. 마치 김대중이 1994년에 민주주의의 대상을 인간 이외의 존재에까지 확장하여 ‘지구민주주의’를 주창한 것과 유사하다. _ <제11장 생명의 평화> 중에서 접기
P. 239~240 여기에서는 가이아, 한울, 생명이 동일한 층위에서 논의된다. 한울이건 가이아건 모두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본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울은 동학의 가이아이고, 가이아는 서양의 한울인 셈이다. 이처럼 <한살림선언>은 한울을 지구학적으로도 해석한다. 결국 <한살림선언>에는 생명학과 지구학이라는 두 가지 차원이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한살림선언>은 동학을 생명학으로 현대화하고, 이를 다시 서구의 지구학과 대화하는 일종의 ‘지구지역학’ 텍스트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_ <제12장 철학의 회고>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조성환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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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조교수. 지구지역학 연구자.
서강대학교와 와세다대학교에서 수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원광대학교에서 역사와 종교를 공부했다. 20대에는 집합론과 대수학에 빠졌고, 30대에는 노장사상에 끌려 중국 철학을 공부했다. 40대부터는 한국학에 눈을 떠 동학사상과 개벽파를 연구했다. 최근에는 1990년대에 서양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지구인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2019년에는 이병한과 함께 사단법인 다른백년 홈페이지에 칼럼 〈개벽파선언〉을 연재했고, 2022년에는 단독으로 〈K-사상사〉를 연재했다.
지은 책으로 『키워드로 읽는 한국철학』(모시는사람들, 2022),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퇴계・다산・동학의 하늘철학』(소나무, 2022), 『한국 근대의 탄생: 개화에서 개벽으로』(모시는사람들, 2018)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인류세의 철학: 사변적 실재론 이후의 ‘인간의 조건’』(시노하라 마사타케 지음·공역, 모시는사람들, 2022),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리(理)와 기(氣)로 해석한 한국 사회』(오구라 기조 지음, 모시는사람들, 2017), 『일본에서 일본인들과 나눈 공공철학 대화』(김태창·이케모토 케이코 공저, 모시는사람들, 2017)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K-사상사>,<동북아, 니체를 만나다>,<키워드로 읽는 한국철학> … 총 1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울은 동학의 가이아, 가이아는 서양의 한울이다”
근대적 인간관과 자연관이 무너진 자리에서,
인류세 철학과 기학의 대화로 ‘인류세의 기학’을 모색하다
지금 우리는 인간이 기후를 변화시킨 시대, 즉 ‘인류세’를 살고 있다. 인류세는 인간의 행위 하나하나가 지구시스템을 변화시키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음을 일깨워줬다. 인간에 대한 정의가 ‘이성적 동물’에서 ‘지질학적 행위자’로 전환하고, 사물의 위상도 무기력한 물질이 아니라 힘을 지닌 ‘행위자’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의 영역도 인간 이외의 존재까지 염두에 두는 ‘지구민주주의’ 또는 ‘정치생태학’으로 확장되고 있다. 아울러 그동안 무한하게 주어졌다고 여겼던 ‘자유’가 실은 화석연료라는 자연에 기반한 조건적 자유였음을 자각시켜 주었다. 이처럼 인류세는 그동안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여 사유했던 근대 철학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요청하고 있다. 저자는 바로 여기에 한국의 근대 철학자, 최한기의 기학(氣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기학 체계에서는 인간의 기화와 자연의 기화, 기술의 기화가 하나로 어우러진 ‘기화체’로 우주를 설명하며, 따라서 기후변화는 세 차원의 기화가 얽혀서 일어난 지질학적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편으로는 인류세라는 새로운 시대 인식이 우리의 사고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차크라바르티(행성론)와 라투르(행위자 네트워크 이론), 그리고 제인 베넷(신유물론)과 같은 서양 현대철학자들의 논의를 빌려 소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시대 인식과 한국 근대철학 및 생명담론이 어떻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깊이 탐색하고 있다. 과거 자연과학과 물질개벽이라는 서구 문명의 충격에 대한 반응에서 기학과 동학이 형성되었듯이, 현재 우리가 직면한 인류세와 기후변화라는 새로운 시대 상황에 걸맞은 한국 철학, ‘K-사상’의 탄생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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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써먹지 못했던 혜강 최한기의 ‘기학’을 오늘날 기후변화 시대의 인류세 철학으로 다시 발명한다는 것이 독창적이고 놀랍고 재미있다. 물론 실천해야 할 과제마저도 안겨준다. 쉽게 읽히면서 쏙쏙 들어오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코카추잉 2023-05-1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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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인간이 기후를 변화시킨 시대, 즉 ‘인류세’를 살고 있다. 인류세는 인간의 행위 하나하나가 지구시스템을 변화시키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음을 일깨워줬다. 인간에 대한 정의가 ‘이성적 동물’에서 ‘지질학적 행위자’로 전환하고, 사물의 위상도 무기력한 물질이 아니라 힘을 지닌 ‘행위자’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의 영역도 인간 이외의 존재까지 염두에 두는 ‘지구민주주의’ 또는 ‘정치생태학’으로 확장되고 있다.
아울러 그동안 무한하게 주어졌다고 여겼던 ‘자유’가 실은 화석연료라는 자연에 기반한 조건적 자유였음을 자각시켜 주었다. 이처럼 인류세는 그동안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여 사유했던 근대 철학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요청하고 있다. 저자는 바로 여기에 한국의 근대 철학자, 최한기의 기학(氣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기학 체계에서는 인간의 기화와 자연의 기화, 기술의 기화가 하나로 어우러진 ‘기화체’로 우주를 설명하며, 따라서 기후변화는 세 차원의 기화가 얽혀서 일어난 지질학적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차
프롤로그_인류세의 기학(氣學)
제1장 인간의 행위
제2장 기학의 귀환
제3장 유학의 경장
제4장 인간의 위상
제5장 사물의 위력
제6장 정치의 확장
제7장 행성의 대두
제8장 근대의 종언
제9장 자유의 제한
제10장 자연의 변화
제11장 생명의 평화
제12장 철학의 회고
에필로그_‘ 개벽파선언’은 ‘지구학선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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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9~30 인류세와 가이아, 가이아와 인류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인류세라는 시대 인식은 가이아의 관점에서 인간을 다시 생각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마치 해월이 “하늘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게 서로가 서로를 길러주는 기화(氣化)의 작용이다”라고 설파했듯이, 가이아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야말로 기화의 작용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다만 그 기화가 대기의 변화, 즉 ‘기후변화’라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_ <제1장 인간의 행위> 중에서 접기
P. 53 인류세란 기학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활동운화로 지구의 활동운화가 바뀌기 시작한 시대를 말한다. 그리고 그 변화된 지구의 활동운화가 다시 인간의 활동운화를 제약하는 시대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자연의 활동운화에 주목한 최한기의 기학이야말로 인류세 시대에 다시 조명되어야 할 한국 철학이 아닐까? _ <제2장 기학의 귀환> 중에서 접기
P. 68~69 학살, 비애, 울부짖음….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측은지심이다. 이들은 모두 만물에까지 연민의 정서를 느낀다. 성리학자들이 외쳤던 만물일체의 인을 오늘날의 생태사상가와 환경운동가들이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은 ‘생태적 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생태적 비애는 ‘지구적/행성적 차원에서 느끼는 비애(planetary grief)’라고 볼 수 있다. 나와는 무관한 듯 보이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까지 아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_ <제3장 유학의 경장> 중에서 접기
P. 81 플럼우드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최상위 포식자’에서 ‘타자의 음식’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것을 ‘생태적 관점’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그런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볼 때 다른 존재와 연대가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이를 철학적으로 말하면 생태 위기에 대한 ‘인식론적 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_ <제4장 인간의 위상> 중에서 접기
P. 102~103 베넷이 인간과 비인간 존재에 공통으로 들어 있다고 본 요소는 ‘힘(power)’이다. 즉 사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략) 지금과 같이 과학기술이 발달한 사회에서 사물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인공 사물에 기대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힘을 가졌다는 것은 그것이 두려워할 만한 존재라는 뜻이다. 고대인이 태양을 경배한 것은 그것이 인간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제1의 조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마찬가지로 오늘날 사물은 인간에게 외경할 만한 존재로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공자의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표현을 빌리면 ‘사물가외(事物可畏)’라고 할 수 있다. 최시형의 경물(敬物)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재조명될 수 있다. 즉 사물은 힘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외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_ <제5장 사물의 위력> 중에서 접기
P. 129 토머스 베리가 인간의 생존 및 지구와의 화해를 위해서 일종의 ‘생명민주주의’를 말했다면, 그리고 라투르와 베넷이 비인간의 ‘행위성’과 ‘힘’ 개념에 주목하여 ‘사물민주주의’를 제안했다면, 김대중은 비인간 존재의 ‘생존권’에 주목하여 ‘지구민주주의’를 제창했다. 그 시기는 베리(1988)와 라투르(1999)의 중간에 위치한다(1993년 전후). _ <제6장 정치의 확장> 중에서 접기
P. 147 글로브에는 인간의 강건함이 묻어난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이 지구를 인간화할 수 있다는 신념이 깔려 있다. 이와 같은 확신은 근대에 대두된 진보(progress)라는 이념과 궤를 같이한다. 반면에 플래닛에는 인간의 취약함이 드러난다. 인간은 행성을 인간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행성은 인간화되지 않는다. 문제는 근대 이후로 진행된 산업화와 글로벌라이제이션으로 인해 인류가 행성이라는 존재를 망각했다는 점이다. 차크라바르티가 행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행성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곳에서 홀로(獨) 존재한다(立). 노자의 개념을 빌리면 ‘자연’이고 ‘독립’이다. 그래서 인간이 개변할 수가 없다. 거주 가능한 임계영역은 과학기술로 개조할 수 있지만, 행성적 차원은 인간이 대면하거나 돌볼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은 무위의 영역이고 불인(不仁)한 존재이다. _ <제7장 행성의 대두> 중에서 접기
P. 165~167 차크라바르티는 이와 같은 과학적 성과에서 통찰을 얻어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과 ‘거주가능성(habitability)’을 대비시킨다. (중략) 즉 거주가능성은 행성의 영역이고, 지속가능성은 글로브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 점은 ‘지속가능’ 뒤에 ‘발전(develoment)’이라는 말이 따라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중략) ‘지속가능성’ 개념은 (중략) 인간의 개발에 ‘지구가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가’에 관한 물음이다. 주어진 화석연료를 인류가 언제까지 사용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의도 이에 해당한다. 이처럼 지속가능성은 인간의 지속가능성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중심적 개념이다. (중략) 반면에 지속가능성과 대비되는 ‘거주가능성’은 인간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이외 생명의 생존 조건을 묻기 때문이다. _ <제8장 근대의 종언> 중에서 접기
P. 192~193 자유는 서구적인 것, 근대적인 것을 대변한다. 반면에 자연은 그런 자유를 억압하는 전통적인 것, 동양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자연은 발전이 없고 정체되어 있으며, 자유는 진보적이고 발전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중략) 사실 동아시아에서 자연이라는 말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술어로 쓰였고, 그 의미도 억압보다는 오히려 해방이나 ... 더보기
P. 210 ‘인류세’ 개념이 등장한 2000년에 한국에서는 ‘생명평화’라는 말이 탄생했다. 따라서 나이로 치면 생명평화와 인류세는 동갑이 된다. 생명평화 개념이 탄생한 해가 인류세 개념이 주창된 해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마치 인류세 시대의 윤리를 ‘생명평화’로 제안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실제로 생명평화에서 ‘생명’은 인간의 생명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을 아우른다. 그래서 생명평화는 ‘모든 생명의 평화’라는 뜻이다. 종래에는 인간에게만 적용되었던 평화 개념을 인간 이외의 존재에까지 확장한 것이다. 마치 김대중이 1994년에 민주주의의 대상을 인간 이외의 존재에까지 확장하여 ‘지구민주주의’를 주창한 것과 유사하다. _ <제11장 생명의 평화> 중에서 접기
P. 239~240 여기에서는 가이아, 한울, 생명이 동일한 층위에서 논의된다. 한울이건 가이아건 모두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본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울은 동학의 가이아이고, 가이아는 서양의 한울인 셈이다. 이처럼 <한살림선언>은 한울을 지구학적으로도 해석한다. 결국 <한살림선언>에는 생명학과 지구학이라는 두 가지 차원이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한살림선언>은 동학을 생명학으로 현대화하고, 이를 다시 서구의 지구학과 대화하는 일종의 ‘지구지역학’ 텍스트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_ <제12장 철학의 회고>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조성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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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조교수. 지구지역학 연구자.
서강대학교와 와세다대학교에서 수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원광대학교에서 역사와 종교를 공부했다. 20대에는 집합론과 대수학에 빠졌고, 30대에는 노장사상에 끌려 중국 철학을 공부했다. 40대부터는 한국학에 눈을 떠 동학사상과 개벽파를 연구했다. 최근에는 1990년대에 서양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지구인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2019년에는 이병한과 함께 사단법인 다른백년 홈페이지에 칼럼 〈개벽파선언〉을 연재했고, 2022년에는 단독으로 〈K-사상사〉를 연재했다.
지은 책으로 『키워드로 읽는 한국철학』(모시는사람들, 2022),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퇴계・다산・동학의 하늘철학』(소나무, 2022), 『한국 근대의 탄생: 개화에서 개벽으로』(모시는사람들, 2018)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인류세의 철학: 사변적 실재론 이후의 ‘인간의 조건’』(시노하라 마사타케 지음·공역, 모시는사람들, 2022),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리(理)와 기(氣)로 해석한 한국 사회』(오구라 기조 지음, 모시는사람들, 2017), 『일본에서 일본인들과 나눈 공공철학 대화』(김태창·이케모토 케이코 공저, 모시는사람들, 2017)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K-사상사>,<동북아, 니체를 만나다>,<키워드로 읽는 한국철학> … 총 1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울은 동학의 가이아, 가이아는 서양의 한울이다”
근대적 인간관과 자연관이 무너진 자리에서,
인류세 철학과 기학의 대화로 ‘인류세의 기학’을 모색하다
지금 우리는 인간이 기후를 변화시킨 시대, 즉 ‘인류세’를 살고 있다. 인류세는 인간의 행위 하나하나가 지구시스템을 변화시키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음을 일깨워줬다. 인간에 대한 정의가 ‘이성적 동물’에서 ‘지질학적 행위자’로 전환하고, 사물의 위상도 무기력한 물질이 아니라 힘을 지닌 ‘행위자’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의 영역도 인간 이외의 존재까지 염두에 두는 ‘지구민주주의’ 또는 ‘정치생태학’으로 확장되고 있다. 아울러 그동안 무한하게 주어졌다고 여겼던 ‘자유’가 실은 화석연료라는 자연에 기반한 조건적 자유였음을 자각시켜 주었다. 이처럼 인류세는 그동안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여 사유했던 근대 철학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요청하고 있다. 저자는 바로 여기에 한국의 근대 철학자, 최한기의 기학(氣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기학 체계에서는 인간의 기화와 자연의 기화, 기술의 기화가 하나로 어우러진 ‘기화체’로 우주를 설명하며, 따라서 기후변화는 세 차원의 기화가 얽혀서 일어난 지질학적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편으로는 인류세라는 새로운 시대 인식이 우리의 사고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차크라바르티(행성론)와 라투르(행위자 네트워크 이론), 그리고 제인 베넷(신유물론)과 같은 서양 현대철학자들의 논의를 빌려 소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시대 인식과 한국 근대철학 및 생명담론이 어떻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깊이 탐색하고 있다. 과거 자연과학과 물질개벽이라는 서구 문명의 충격에 대한 반응에서 기학과 동학이 형성되었듯이, 현재 우리가 직면한 인류세와 기후변화라는 새로운 시대 상황에 걸맞은 한국 철학, ‘K-사상’의 탄생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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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써먹지 못했던 혜강 최한기의 ‘기학’을 오늘날 기후변화 시대의 인류세 철학으로 다시 발명한다는 것이 독창적이고 놀랍고 재미있다. 물론 실천해야 할 과제마저도 안겨준다. 쉽게 읽히면서 쏙쏙 들어오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코카추잉 2023-05-1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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