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문학의 서양 콤플렉스 - 오늘의 지성을 찾아서 2
이진우 (지은이)민음사1999-08-10
Sales Point : 57
절판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절판
보관함 +
- 절판 확인일 : 2017-03-09
238쪽
책소개
이진우 교수는 한국 학계의 서양 콤플렉스를 신랄하게 들춰내는 한편, 우리 지성계의 숨통을 옥죄고 있는 식민성의 정체를 밝혀내고 있으며, 한국적 학문의 독자적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학자들의 기존 작업해서 허와 실을 명쾌하게 구별해내고, 앞으로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다.
한국 학문이 식민지화되어 있고 주체성이 없다는 비판은 많지만,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없는 현실에서, 생산적인 논쟁의 방향 제시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의 학계에서 자생적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지나치게 역사와 전통을 강조한다. 한국적 학문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 '전통의 단절'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소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이진우 교수는 우리의 문제가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우리가 창의적으로 계승해야 할 전통을 단순한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현재에 활동적인 문화의 힘이라고 역설한다. 정체정은 본래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것이기에 특수와 보편, 역사와 전통의 변증법적 대결이 없이는 그 모습을 그려낼 수 없다. 그는 현재 유행하고 있는 독자적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시도들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목차
0. 들어가는 말: 세기말의 반시대적 시대 비판
1부
1. 이 땅에서 철학하는 나는 누구인가
2. 왜 <지금 그리고 여기서> 철학을 하는가 - 철학적 글쓰기에 관한 어느 철학자의 편지
3. 한국인과 한국 문화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4. 좌파는 진보적이고 우파는 보수적인가
2부
5. 인문<학>이 죽어야 인문 <정신>이 산다 - 기술 시대의 지식과 지식인의 미래에 관하여
6. 포스트모던 사회와 인문학의 과제 - 이데올로기 비판에서 문화 비판으로
7. 포스트모더니즘과 동양 정신의 재발견
8. 한국 철학의 역사성과 무역사상 - 서양 철학 수용 100년,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망각해야 하는가?
9. 세계 체제의 도전과 한국 사상의 변형 - 독자적 패러다임을 위한 문화 상대주의의 전략
책속에서
사람들은 우리가 퇴계를 읽는 대신에 칸트를 읽는 것을 서양 추수주의라는 이름으로 질타하지만, 그들은 칸트가 우리에게는 퇴계만큼이나 가깝고 퇴계는 칸트만큼 멀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지성계의 식민성과 서양 추수주의를 타박하기 이전에 우리는 먼제 퇴계를 읽지 않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통 사상이 자본주의와 기술 문명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읽어내는 데 있어서 별 의미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 아마 가장 커다란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제는 자본주의와 기술 문명이 지배적인 우리의 현실 환경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또 스스로 구성해 갈 수 있는 언어와 사상을 우리의 전통으로부터 발전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우리 지성계의 숨통을 옥죄고 있는 식민성의 정체이며 본질이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진우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연세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철학과 교수와 동 대학 총장, 포스텍 교수, 한국니체학회 회장, 한국철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포스텍 명예교수이다. 지은 책으로 《불공정사회》, 《의심의 철학》, 《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 《니체의 인생 강의》, 《한나 아렌트의 정치 강의》, 《지상으로 내려온 철학》,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정치철학》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과 《전체주의의 기원》(공역)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큰글자도서]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9명의 철학자와 9번의 철학수업> … 총 94종 (모두보기)
이진우(지은이)의 말
(...)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러한 인식들이 모두 서양 콤플렉스에 젖어 있다는 사실이다. 서양을 무조건 모방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서양과의 부정적 대립을 통해 "우리 것"을 강조하면서도 막상 "우리 것"을 내세우지 못하는 것은 그 폐쇄성 때문에 더욱 문제이다.
다양한 문화를 창조적으로 융합시켜 "우리 것"을 만들겠다는 강렬한 욕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양을 모방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압박에 의해 억압되고 착종되어 나타나는 서양 콤플렉스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eBook] 이진우 - 한국 인문학의 서양 콤플렉스? | 시사만인보 122
강준만 (지은이)
개마고원2017-05-08
전자책정가
1,500원
[신간리뷰] '한국인문학의 서양콤플렉스'
중앙일보
입력 1999.08.19 00:30
지면보기
인문학에 표현된 '우리 것' 은 어떤 모습인가.
20세기와 함께 시작된 서양철학의 '진군' 을 우리는 어떻게 견뎌냈는가.
서양철학 전공자인 이진우 계명대 교수는 '한국인문학의 서양콤플렉스' (민음사.8천원)에서 21세기로 가는 전환기에 다시금 표출되는 이같은 문제에 진지하게 맞섰다.
이교수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긍심을 가지고 내세울 수 있을 만한 고유의 문화적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로 '정 (情)' 을 내세운다.
그러나 서양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은 우리 인문학은 '정' 을 비합리적.비이성적인 것으로 여겨왔다고 비판한다.
이교수는 서양철학을 배타적으로 여기는 것 역시 서양철학에 대한 콤플렉스라고 지적하며, 서양과 동양적 사유에서 발견되는 보편성을 찾아내야 할 것을 주장한다.
고규홍 기자
====
출판저널 990905
논쟁서평
여전히 서양콤플렉스가 두려운 포스트모더 니 스트
이진우 지음《한국 인문학의 서양콤플렉스》를 읽고
https://koreascience.kr/article/JAKO199944948264976.pdf
학문의 보편성, 세계화시대의 개방성에 이어 최근 한국인으로서 자기성찰을
슬며시 드러내는 것은 미봉적 구색맞추기에 다름아니다. 그는 여전히 특수의 고민이 체화된 바 없는 담론의 보편주의자에 머문다. 우리의 학문 상황에서 노자와 하이데거, 다산과 칸트를 읽는 것이 왜 다르며 그 차이를 규명하는 것에 어떤 뜻이 있는지 모른 체하고도 사회철학자를 자칭하는가.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스트 철학자' 란 그런가.
이진우 교수의 성취와 장점이 적지 않은 데다, 청탁 받은 사정도 있으니 서평을 생략하고 몇몇 테마에 한정해 그를 소략히 비판한다 이 교수는 우리 학문의 위기가 우리 근현대사의 특이성에 그 연원을 둔다는 점을 인정하되, 오히려 그 연 원에서 '문화적 조형력'과 '다원주의적 생산성' 을 읽어내자고 한다. 원칙상 좋은 제안이다. 그러 나 그는 여전히 학문의 보편성과 학문지형의 특 수성을 제대로 가려주지 않는다.
“이제는 잊어야 한다. 우리의 역사가 단절되 고 전통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그러나 뒤늦게 《친일인명사전》이 화제가 되는 것처럼 망각의 슬기는 낯뜨거운 기억과 철저한 반성 뒤에서야 자연히 생겨나는 법이다. 반성의 이후를 내다보 는 그의 명찰(明察)에 어떤 진정성이 있는지도 문제지만, 반성의 문턱조차 숨가빠하는 우리 학 계의 지배구조는 왜 건드리지 않는가. 심지어 건 드리는 시도를 폄하하고 왜 한결같이 주류만을 좇는가. 그는 근자 '반구제기(反求諸己)' 의 제스 처를 내비치지만 내게 그것은 '어설픈 물타기' 로 보인다.
학문의 보편성, 세계화 시대의 개방성에 이어 최근 한국인으로서의 자기 성찰을 슬며시 드러 내는 것은 내게 미봉적 구색 맞추기에 다름 아니 다. 그는 여전히 특수의 고민이 체화된 바 없는 담론의 보편주의자, 혹은 기껏해야 월러스틴이 말한 '반유럽 중심의 유럽중심주의자(내재적 발 전론자)' , 혹은 손자(孫子)가 말한 '반간(反間)' 의 범위에 머문다. '내가 포八드모더니스트인 까 닦은 서양 이성에 대한 자기반성을 기회 삼아 우 리 사유의 전통으로부터 새로운 이성의 가능성 을 탐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처럼 자 신의 본색을 흘리고 다닌다.
나도 몇 번 충고했지만 이 교수는 여전히 익명 의 두루뭉수리 비판을 영악하게 계속한다. 한가 해지면 이 '영악' 에 대해서 긴 글을 쓰겠지만 이 책에서도 그는 영락없이 유럽에서 파견나온 학 문의 고문관이다. 누구를 익명으로 누르고 누구 를 거명하는가 하는 문제는, 특히 인문학의 글쓰 기에서 예사의 것이 아니다. 가령, 그는 여기저기 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기며 비판하지만 막상 는 생이 벌어지면 '김영민 교수를 의도하지 않91 단다. 그의 책《이성은 죽었는가》(1998)의 참고도 서 수백권 중 국내인의 것은 강영안 교수의 것 한권 뿐이다. “노자를 읽으면 어떻고 하이데거를 읽으면 어떠한가”라고? - 도대체 후안무치다.
나도 훈화는 질색이니 이 점은 제쳐두자. 의당 우리는 노자도 읽고 하이데거도 읽어야 하겠지 만 우리의 학문상황에서 노자와 하이데거, 다산 과 칸트를 읽는 것이 왜 다르며, 그 차이를 규명 하는 것에 어떤 뜻이 있는지를 모른 체하고도 사 회철학자를 자칭하는가. 이른바 '포스트모더니 스트 철학자' 란 그런가.
그는 “서양과의 부정적 대립을 통해 우리 것 을 강조하면서도 막상 우리 것을 내세우지 못하 는 것은 그 폐쇄성 때문에 더욱 문제"라면서, 이 것도 '서양 콤플렉스' 라고 못박는다. 나는 이 비 판에 열낼 일은 없지만 졸지에 서양 콤플렉스를 뒤집어 쓰게 된 동료들을 위해서 한마디. 이것은 그야말로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격 이다. 이처럼 투박한 것은 오로지 지면이 작은 탓. “나 역시도 서양 콤플렉스를 극복하였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다”고? '보편성을 모시고 다니는 자칭 포스트모더니스트 사회철학자인 그 도 서양 콤플렉스가 두려운가.
-----
김영민
전주 한일대학 인문사회과학부 부교수 저서〈탈식민성과 우리 인문 학의 글쓰기〉,〈진리 • 일리 • 무리〉의
24 출판저널 99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