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기독교를 잇는 가교 '도마 복음'[책] 오강남 교수의 <종교, 심층을 보다>
11.07.10
권성권(littlechri)
공감22

관련사진보기
모든 종교에는 표층과 심층이 있다고 한다. 표층이란 내가 복을 많이 받아 이 땅에 보란 듯 잘 살고 영생 복락을 누리는 데 집중한다면, 심층이란 내 욕심을 줄일 뿐만 아니라 나를 부인하고 남을 위한 이타적인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더욱이 표층종교는 문자주의에 갇힌 맹목적인 믿음을 강조하지만, 심층종교는 문자주의를 넘어 그 '깨달음'을 중요시한다.
물론 모든 종교인들은 대부분 표층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 단계에만 머물러 있다면 종교를 병이나 고치고, 돈이나 벌게 하는 미숙한 수준을 넘지 못한다. 오히려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심층 차원의 단계로 올라서야 한다. 이를테면 자신의 영적인 눈이 열리는 세계관으로 한 단계 넘어서는 것이다.
오강남 교수의 <종교, 심층을 보다>도 그런 눈을 트여준다. 이 책은 표층과 심층의 차이를 알려주고, 각 종교가 지닌 심층 차원을 깊이 들여다볼 수 돕는다. 이는 각 종교가 치중하고 있는 외형과 기복에서 벗어나 진정어린 종교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취지도 담겨 있다. 아울러 폴 틸리히가 이야기한 바 있듯이, 각 종교의 전도 차원보다도 대화의 장을 넓히고자 하는데도 그 목적이 있다.
물론 비교종교학을 전공한 학자들은 나름대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특정 종교에 심취한 상태에서, 다른 종교를 파악하는 게 그것이다.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책을 통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서 얻는 간접 경험에 해당된다. 자신의 종교를 벗어난 타종교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개론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나열하고 있는 이슬람교의 성인이나, 인도의 영성가들, 그리고 불교의 선지자들에 관한 내용도 그런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렇지만 그가 이 책을 통해 기독교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신선한 내용도 없지는 않다. 극단적인 보수주의자가 아닌 이상 모세를 실제 역사적 인물로 보는 이가 거의 없다는 지적, 유대인 사상가 에리히 프롬과 아브라함 헤셸이 현대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안식일 준수의 의미를 밝혀냈다는 것, 기독교인들이 표층적 문자적 의미에 집중하는 경우 천국은 하늘 어디에 붕 떠 있는 '장소'로만 생각하게 된다는 것, 아울러 <도마복음>도 '참나'를 아는 '깨달음'을 강조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게 그것이다.
"모든 종교의 심층에는 종교 자체의 중요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경지가 있다. 그 경지는 종교의 특수성을 관통한 영적 자유로, 그리고 그와 더불어 인간 실존의 궁극 의미를 표현한 다른 표현들 속에 나타난 영적 현존을 감지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그리스도교의 선각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신학자 폴 틸리히가 이야기한 것을 그대로 옮긴 내용이다. 오강남 교수가 종교의 심층을 강조한 것도 모두 그의 영향을 받은 까닭이지 싶다. 물론 그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도마복음>의 영향력도 그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마는<도마복음>에서 제자들 중 가장 위대한 제자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가 도마를 특별히 '인류의 스승' 반열에까지 올리는 것은 그가 전해주는 <도마복음>이 그리스도교는 주로 현교적인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던 많은 사람에게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만큼 심층적 기별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필자가 <도마복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이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잇는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잃어버리거나 등한시되던 심층적 가르침을 되살리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 준 그가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이 책을 대하는 나는 사실 기독교인에 속한다. 오강남 교수에게는 어느 종교에 속한다는 게 무의미할 수 있다. 그에게 모든 종교의 심층은 하나의 통섭을 이루고, 같은 근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와 붓다와 예수와 공자를 세계 4대 성인으로 추앙하는 종교인들에게는 모두가 오십보 백보다. 그런 통섭도 실은 각 종교의 경전 속에 들어 있는 문자주의의 유사성에 매달릴 때 갖게 되는 시각일 수 있다. 각 종교의 경전을 '통'으로 깨우치는 이들은, 문자주의의 유사성을 넘어 더 깊은 심층의 이면을 깨닫기도 한다. 그것이 내가 오강남 교수에게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종교, 심층을 보다
오강남 지음, 현암사(2011)
이 책의 다른 기사'문맹자' 예수가 존경받는 이유...'깨달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