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4

알라딘: 죽은 자들의 웅성임 - 한 인문학자가 생각하는 3.11 대재난 이후의 삶 이소마에 준이치

알라딘: 죽은 자들의 웅성임

죽은 자들의 웅성임 - 한 인문학자가 생각하는 3.11 대재난 이후의 삶 
이소마에 준이치 (지은이),장윤선 (옮긴이)글항아리2016-03-04
원제 : 死者のざわめき: 被災地信仰論 (2015년)






























미리보기

정가
15,000원
판매가
13,500원 (10%, 1,500원 할인)
마일리지
140원(1%) + 멤버십(3~1%)
+ 5만원이상 구매시 2,000원
배송료
유료 (도서 1만5천원 이상 무료)
Sales Point : 154

8.7 100자평(1)리뷰(2)
- 품절 확인일 : 2020-10-29

308쪽
책소개

2011년 3월 11일, 리히터 규모 9의 지진이 일본 태평양 연안을 강타했다.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다. 곳곳에서 땅이 갈라졌다. 도로가 부서지고 전봇대가 쓰러졌다. 차라리 시간이 멈추었다면 좋았을 그때, 10미터 높이까지 치솟은 쓰나미가 덮쳤다. 뒤이어 원전이 폭발했다. 여기까지가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동일본대지진의 참상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5년 동안 재난지역을 둘러싼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도무지 믿기 힘들 만큼 참혹한 광경에 눈물 흘리던 이들이 사라졌고, 재난지역을 다룬 기사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재난이 끝났기 때문이 아니다. 재난은 깊은 상흔을 남겼고, 그것을 결코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다. 사건은 단지 빠르게 잊히는 중이다. 일본의 저명한 종교학자이자 인문학자인 저자는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재난지역을 4년간 걸었다. 재난지역 바깥에서 비당사자, 외부자로 머물기를 그만두고 재난지역에 직접 찾아가 그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들어가며

서장
죽은 자死者의 웅성임│나라, 하세 신앙│히사노하마, 연인들│아라하마, 관음상을 다시 찾다

제1장 재난지역의 목소리들
교토, 지진의 현기증│오나가와, 중유와 모래먼지│이시노마키, 상처 입은 지장상│센다이, 카페 드 몽크

제2장 부재하는 고향
후쿠시마, 나카도리, 방사능이 내린 밤│교토, 희생의 공동체│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주변, 금이 간 고향│후쿠시마 하마도리, 유령이 없는 마을

제3장 죽은 자를 애도하다
쓰가루, 가와쿠라 지장상│무라야마, 사자의 결혼식│미나미산리쿠, 방재청사│도쿄, 메이지 신궁의 봉납의례

종언終焉, 진혼의 노래
미나미소마, 끊어진 교통망│사와다 겐지 라이브Ⅰ, 바다를 향해서│사와다 겐지 라이브Ⅱ, 가만히 입맞춤을│고베, 어둠 속의 루미나리에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접기


책속에서


P. 19~20 지진이 일어난 것은 14시 46분. 쓰나미가 덮친 것은 15시 37분. 이 50여 분 동안 아이들은 계속 교정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부모가 데리러 온 아이도 있었다. 선생님에게 산으로 올라가 피하자고 한 아이도 있었다. 그중 몇몇은 스스로의 판단 하에 산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교사들에게 제지당했고, 대부분은 나중에 온 쓰나미에 목숨을 잃었다. (…) 불안에 짓눌려 있었을까?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 교사의 말과 행동을 포함해 그날의 모습은 아직까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쓰나미가 그곳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을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안 되는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건의 무게에 눌려 입을 닫아버렸다. 기억이 공백이 된 시간. 죽은 자의 시간뿐만 아니라 유족들의 시간도 그때 멈추었다. 접기
P. 59 산 자는 절대 산 자만의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니다. 쓰나미로 남편을 잃은 한 여성은 ‘이곳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고 사실 남편과 함께 죽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라고 짧게 중얼거렸다. 현재를 사는 것은 과거 사람들의 삶 위에 마지막으로 놓인 돌멩이 하나 같은 것이다. 삶은 사자에 대한 생각으로 이루어진다. 접기
P. 103~104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택시 기사들과 재난지역 사람들의 유령 이야기는 한 사람이 짊어진 피해 상황이 개인의 합리적 정신으로 쉽게 처리되지 못한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유족들은 시체 안치소를 돌면서 많은 시신을 보고, 화장을 할 수 없어 가매장을 해야 했고, 본매장을 위해 가묘를 허무는 것을 보는 등 말로도 글로도 표현하기 힘든 경험을 강요받았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일상생활에 지장 없이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지금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혼자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감정의 덩어리가 오간다. 접기
P. 155~156 오쿠마 정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과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 복잡합니다. 원자력발전소로 괴롭지만 생활을 지탱하는 일 역시 원전에 관련된 일이라서 그 이후로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이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계속 원전과 관련된 일을 해서 이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어업을 할 수 있을까요. 농업을 할 수 있을까요. 낙농을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 피난생활을 하고 있지만 원전 일에 대한 망설임은 없어요. 여러 번 말하지만 저는 이 일밖에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접기
저는 희망이란 깊은 어둠을 아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아픔을 모른다는 무력감에 기초하지 않으면, 깊은 절망에서 헤매는 타인의 기분을 받아들일 수 없겠지요. 자신의 무력감을 통감할때 인간은 무용한 존재이고 자신도 사자와 다름없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전후 경제 성장으로 들뜬 일본사회는 이런 사자의 웅성임에 귀를 닫아왔습니다.
이것이 이번 대지진에서 제가 무력한 비당사자로서 배운것입니다.사자의 원통함을 끌어올려줄 힘 있는 말이야말로 미래를 향한 희망의 빛을 가져올 것입니다. 접기 - chika



저자 및 역자소개
이소마에 준이치 (磯前順一) (지은이)

일본 도쿄(東京)대학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 문학박사. 하버드대학, 런던대학, 취리히대학 등에서 객원교수를 지냈고 현재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교수. 주요 저서로는 『근대 일본의 종교 담론과 계보-종교·국가·신도』, 『죽은 자들의 웅성거림-피재지 신앙론』, 『종교와 공공 공간-재검토되는 종교의 역할』(공저), 『상실과 노스텔지어』, 『기기(記紀)신화와 고고학-역사적 시원(始原)의 노스텔지어』 외 다수가 있다.

최근작 : <탈국민국가라는 외재적 식민주의와 제국>,<일본脫국가론>,<근대 일본의 종교담론과 계보> … 총 13종 (모두보기)

장윤선 (옮긴이)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 대학원에서 일본문화사와 미술사를 전공했다. 저서로 『도쿄 미술관 산책』, 역서로 『아웃사이더 아트』, 『책벌레 이야기』, 『그림 속 고양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죽은 자들의 웅성임』 등이 있다.

최근작 : <도쿄 미술관 산책>,<아웃사이더 아트> … 총 7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 한가운데로 뚫고 들어가
그 의미를 물은 기록!
재난지역을 4년간 돌아본 한 인문학자의 르포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에서 ‘역사의 웅성임’을 포착하다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책이다.
재난지역을 둘러싼 정성스런 일기만도 아니고, 저자의 진혼여행 기록만도 아니며, 재난지역에서 죽은 자들의 목소리가 되지 못한 ‘웅성임’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_야마가타 다카오 도호쿠대 교수

“이 책은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사고가 지니는 중요성을 통절히 드러내고 있다.”
_사토 히로오 도호쿠대 교수

동일본대지진이 남긴 상흔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에 멈춰버린 시계가 있다. 잿빛 잔해로 남은 마을, 아무도 없는 교정에 덩그러니 서 있는 천사상, 오염된 땅, 버려진 어선……. 동일본대지진이 남긴 상흔이다. 2011년 3월 11일, 리히터 규모 9의 지진이 일본 태평양 연안을 강타했다.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다. 곳곳에서 땅이 갈라졌다. 도로가 부서지고 전봇대가 쓰러졌다. 차라리 시간이 멈추었다면 좋았을 그때, 10미터 높이까지 치솟은 쓰나미가 덮쳤다. 뒤이어 원전이 폭발했다. 지진이 일어난 것은 14시 46분. 쓰나미가 덮친 것은 15시 37분. 이 50여 분 동안 생사生死가 갈렸다.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살아남은 이들은 가족이나 친구를 잃었다. 방사능을 피해 살던 땅을 떠나야 했고, 생업을 잃었다. 여기까지가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동일본대지진의 참상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5년 동안 재난지역을 둘러싼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도무지 믿기 힘들 만큼 참혹한 광경에 눈물 흘리던 이들이 사라졌고, 재난지역을 다룬 기사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연대’나 ‘재난 공동체’라는 말들은 허공을 떠돌아다니다 흩어져버렸다. 무너진 건물 옆으로 천사상만 서 있을 뿐, 사람은 없다. 재난이 끝났기 때문이 아니다. 재난은 깊은 상흔을 남겼고, 그것을 결코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다. 사건은 단지 빠르게 잊히는 중이다. 일본 내 원전은 2015년부터 순차적으로 재가동되기 시작했으며, 재건은 대도시나 번화가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모두가 센다이 시의 재건을 이야기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 해안지역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쓰나미가 가장 먼저, 가장 거세게 덮쳤던 해안지역 마을들은 여전히 귀환 곤란 지역으로 지정된 채 폐허로 남아 있다. 부흥 경기로 떠들썩한 도시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도시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그날 쓰나미로 이 집 딸이 죽었어요. 약혼자가 매일같이 와서 꽃을 바치고 있지요. 곧 결혼할 예정이었습니다. 모두가 재난지역, 재난지역 하고 떠들지만 아무도 모르는 재난지역,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는 재난지역도 있습니다.”

그러나 재건 작업에 들어간다고 해도 모든 지역이 재해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폭발한 원전에서 나온 대량의 방사성 물질은 흙에도, 부서진 건물 잔해에도, 바닷물에도 흘러들어갔다. 제염 작업을 한다고 해도 지표면에서 몇 센티미터를 걷어내는 것이 고작이다. 이제는 ‘연대’라는 말 대신 건물 잔해나 오염토를 재난지역 안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말, 중간저장시설을 우리 지역에 설립할 수 없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보상금을 둘러싼 갈등관계가 생겨났고, 당사자와 당사자가 아닌 이들 사이에 괴리가 커졌으며, 원전 주변에 살던 주민들은 피난 간 지역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재난지역은 일종의 게토가 되어버렸다.
이는 동일본대지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잘 알려져 있듯 전후 일본사회는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를 설립하거나 한국전쟁의 특수를 이용함으로써, 혹은 일본 각지의 주변부에 원전을 지음으로써 경제적 번영을 구가했다. 그 과정에서 희생을 강요당한 이들, 즉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람들의 목소리는 일본사회 중심부에 결코 닿지 못했다. 말하자면 동일본대지진이 드러낸 것은 우리 발아래에 잠재한, 우리를 언제 덮칠지 모르는 위험만이 아니다.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시스템이 전후 일본사회의 번영을 지탱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망각되었다.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도 찾지 않는 유품을 생각하면 복잡한 기분이 듭니다. 어쩌면 쓰나미 피해지에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멸한 사람들도 있겠죠.”

재난지역의 목소리들

일본의 저명한 종교학자이자 인문학자인 저자는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재난지역을 4년간 걸었다. 재난지역 바깥에서 비당사자, 외부자로 머물기를 그만두고 재난지역에 직접 찾아가 그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택시 기사들로부터 재난지역 안내를 받았고, 재난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종교인들을 만났으며, 재난지역 곳곳에 놓인 지장상과 신사를 찾았다.
물론 재난지역에 간다고 해서 혹은 거기 산더미처럼 쌓인 건물 잔해를 본다고 해서 그 일을 직접 겪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당사자가 될 수는 없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수 없듯이 또 산 자가 죽은 자가 될 수 없듯이, 깊은 고통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만들어낸다. 눈앞에서 가족을 잃었는데 유품을 정리하거나 장례조차 치를 수 없을 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닥칠 때, 사람들은 목소리를 강물에 흘려버리고 벙어리가 된 채 강을 건넌다. 누군가에게서 이해받을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로 토해내지 못한 고통의 무게를 견딜 수 없을 때면 신불神佛에서 구원을 찾기도 한다. 그렇지만 소중한 사람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부재, 영영 메워질 리 없는 그 공백을 종교가 위로할 수 있을까. 재난이 그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그에게서 무엇을 앗아갔는지, 강을 건널 때 그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강을 건너지 않은 사람이 알 수 있을까. 한 젊은 승려는 후쿠시마 현에서 이바라키 현으로 피난 온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대피소를 찾았다. 하지만 “간사이의 절에서 왔습니다”라는 인사를 나눈 뒤, 대화가 끊겼다.

“어려웠습니다. 그분들은 계속 미소로 대해주었지만, 재난을 겪지 않은 제가 무엇을 위해 왔고 뭘 알겠느냐는 냉랭한 분위기에 싸여 있었습니다. 당연해요. 그곳에는 재난을 입은 사람과 입지 않은 사람, 피난해야 했던 사람과 피난할 필요가 없었던 사람이라는 선명한 차이만 있었어요.”

그렇지만 강을 건널 도리가 없다는 무력감에 젖어들 때, 강을 건넌 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때, 죽은 자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만다. 사자死者는 말이 없다는 현실 앞에서 산 자는 절망하고 만다. 재난지역의 목소리는 재난지역 안에서만 메아리치다 갈라진 땅속으로, 부서진 건물 잔해 속으로, 그리하여 망각 속으로 잠겨들고 만다. 대지진 3년째를 맞이했을 무렵에는 재난 피해자의 증언집도 몇 권 나왔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고, 말하고 싶지 않고, 말할 수 없”어서 괴로워하는 이도 많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들의 생각을 증언집으로 읽을 수 있을까. 그런 책이 또렷하게 전하는 것은 사자는 말이 없다는 현실이지 않을까. 그것은 살아남은 증언자들에게 깊은 고통을 남긴다. 재난지역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름 없는 이들의 죽음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그들의 목소리는 정치인이나 지식인의 그것과 달리 공적 장소에서 표명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삶의 궤적은 비록 작은 흔적일지라도 주변 사람들에게로 파장을 넓혀, 표면적으로는 매끄럽게 다듬어진 역사의 깊은 곳에서 잊히지 않는 ‘역사의 웅성임’을 일으킨다. 사람들은 평온하게 살아가면서도 사자의 기억을 떨쳐낼 수 없다. 바닷물을 보면서 거대한 해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거기 휩쓸린 사람들을 완전히 잊을 수 있을까. 그것은 과거로 밀려나면서도 끊임없이 현재로 되돌아온다. 쓰나미가 3층 옥상까지 밀어닥쳤던 한 병원에서는 70명에 가까운 환자와 직원이 사망했다. 살아남은 사람 중 한 명이었던 여직원은 자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그 도시를 떠났다.

“살아 있어도 좋은 것일까. (…) 나는 ‘그것’에서 도망칠 수 없다. 눈앞에는 오가쓰 만이 펼쳐져 있다. 거리에 남은 대지진의 자취는 지금도 생생하다. 아는 사람과 만날 때마다 “힘들었지요”라는 말을 듣는다. 모두 신경 써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때의 풍경으로 돌아간다.”

왜 그녀만 살아남았을까. 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야 했을까.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은 어떻게 떨쳐낼 수 있을까. 이때 진혼鎭魂이란 산 자가 일방적으로 사자를 성불시키는 것이 아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를 구별하고 그 두 세계를 다시 묶는 행위, 사자의 혼뿐만 아니라 산 자의 혼까지 달래는 행위다.
그렇다면 4년에 걸친 재난지역 방문과 이 정성스런 기록은 하나의 진혼 행위이지 않을까. 역설적으로 위안은 자기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자기 자신이 외부자라는 것, 그들과 같은 고통을 느낄 수 없고 그 고통을 헤아릴 수 없음을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목소리가 되지 못한’ 재난지역의 웅성임이 들려온다. 살아남은 자들은 자신의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죽은 자들에게는 말할 입이 없으니, 비당사자로서는 그들의 웅성임을 받아 써내려가는 것이 최선의 진혼 행위이지 않을까. 그러나 (다시 한번 반복해서 말하자면) 이는 동일본대지진에만 관련된 일이 아니다. 광주에서, 제주에서, 진도에서, 아우슈비츠나 히로시마에서, 또 팔레스타인이나 시리아에서 무참한 죽음을 맞은 이들이 있다. 그들의 목소리는 지금 어디를 떠돌고 있는가?
 




우리의 현실은 저기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낮에뜬별 2017-01-20 공감 (0) 댓글 (0)


마이리뷰



죽은자들을 위한 진혼, 산자들을 위한 위로


벌써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지 5주년!

세월은 빠르게 지나가고 그와 함께 많은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망각하게 되지만, 수없이 많은 죽은 자들과 살아서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 책은 죽은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고향을 떠날 수 없는 산자들을 위로하는 깊은 사색과 공감의 결과물이다. 단순히 죽은 자들을 애도하는 선에서 머무르지 않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점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분석도 빠지지 않는다.



“동일본 대지진이 보여준 현실은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시스템이 전후 일본사회의 번영을 지탱해왔다는 것. 많은 일본인이 인정하기 어려운 추한 사실이었습니다. 한국사회도 예외는 아니겠지요”(8~9쪽)



저자는 이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죽은자들의 소리를 듣기위해 끊임없이 귀를 기울인다. 사자의 원통함을 끌어올려줄 힘 있는 말이야말로 미래를 향한 희망의 빛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산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책 곳곳에 그의 깊은 사색의 흔적이 뚜렷이 드러난다.



“........ 사자는 말이 없다는 현실이다. 그것은 살아남은 증언자들에게 깊은 고통을 남긴다.”(60쪽)



“인간은 너무 무참한 현실을 겪으면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침묵의 바닥으로 가라앉아 말을 잃는다. 그렇게 생긴 마음속 구멍은 살아남은 자들의 일상을 파먹는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이 사자를 향한 마음의 빚이다.”(82쪽)



그러나 저자는 청빈한 농민의 삶을 살았던 시인 야마오 산세이(山尾三省)의 말을 인용해 희망을 말한다.



“진정한 어둠이 없는 곳에는 빛도 없다. 어두운 절망의 바닥에는 희망의 빛이 있다.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도 깊다”(100쪽)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큰 고통을 당한 사람들 곁에 승려를 포함한 종교인들이 함께 하는데, 저자가 그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경청’이다.



“바른 답을 줄 수 없지만 최소한 곁에 있어주고 싶다는 것. 그렇다면 경청은 상대의 아픔을 말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 할 수 없는 기분과 감정의 덩어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112쪽)



“신뢰의 기본은 바른 답을 일방적으로 가르치거나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무력함 앞에 선 사람끼리 서로 감정을 나누는 것이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로 그의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 이상의 기쁨은 없다. 경청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유일한 바람으로 생각하고 활동한다.”(113쪽)



다음으로 저자는 원전의 구조적 문제, 천황제, 국민국가 등의 문제점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데, 몇 구절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전후 일본 사회는 거대 도시 도쿄의 경제활동이 후쿠시마에서 온 전력으로 유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난이 벌어졌을 때 그 위험이 전부 후쿠시마에 전가된다는 불평등을 보려하지 않았다. 이런 의존적인 지역 격차의 구조는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오사카나 교토 근방의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153쪽)



『네게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후쿠시마는 식민지였고 지금도 식민지다’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도호쿠 지방은 도쿄로 쌀과 병사, 창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식자재와 부품, 전기를 공물로 보내고 보조금과 함께 유해시설을 받아들이는 곳이 되었습니다』 ....



“..... 가혹한 현실이 일상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지배와 학대 속에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이 놓인 비참한 현실을 인식하기 괴로워서 그것이 폭력과 학대가 아닌 애정과 우정에서 오는 친밀감의 표현이라고 현식을 왜곡하면서 살아간다.”(155쪽)



“내셔널리즘은 국민을 순사(殉死)로 몰아넣는 ‘죽음의 공동체’에 지나지 않는다. 이 국민국가와 사자를 묶는 역할을 한 것이 제사왕이자 현인신인 천황이었다...... 쇼와천황은 미국의 점령국 방침으로 무죄가 되었다. 그럼으로써 천황을 모시면서 전쟁에 종사한 일본 국민도 무죄가 되어 용서 받는다. 전후 천황제 내셔널리즘은 이런 천황과 국민의 공범관계에서 재출발했다.”(214~215쪽)



“한편 이렇게 천황과 국민이 하나가 된 국민국가의 그늘에는 반드시 비국민으로서 배제된 존재가 있다. 비인이나 천민으로 불려온 피차별 부락민들, 일본 제국이 버린 재일외국인,.....배제된 이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국민 개념은 실질적으로 산 자 사이에 차별과 배제를 만들어 냈다. 그럼에도 천황이라는 상징으로 국민을 동일화하고 내부에 있는 국민에게 차별과 배제가 없는 국민 공동체로 오인시킨 점에 근대 천황제의 근본적인 결함demji 2021-07-21 공감(0)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