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사는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김우현 감독의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를 읽고서
05.03.13
l권성권(littlechri)
〈1〉고(故) 최춘선 할아버지는 누구인가.
"일제 치하 암흑기에는 나라의 광복을 위해
광복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사랑과 평화를 꽃피우기 위해
애쓰신 맨발의 전도자 아버님의 그 뜻과 믿음을
저희 자손들이 이어받겠습니다."
이는 대전 현충원에 있는 '제2애국지사묘역906호', 고(故) 최춘선 할아버지의 묘비명에 새겨진 글귀이다.
최춘선 할아버지는 누구인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는 낮선 애국지사다. 그는 또 '맨발의 전도자'란 칭호가 붙을 정도로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과는 달리 신실한 삶을 살았던 그리스도인이다.
그런 그가 우리나라를 위해서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대전 현충원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었으며,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았기에 '맨발의 전도자'란 칭호가 따라 붙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춘선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김구 선생님과 함께 일제 치하에서 광복군 독립투사로 일했고, 광복 후에는 참된 '조선산 기독교'와 '조국 통일'을 위해서, 그리고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의 친구로서 남은 평생을 다 바쳤던 분이다.
그런데 그 분이 광복군 독립투사로서 김구 선생님을 어떻게 도왔는지, 또 어떤 독립운동을 펼쳤는지 알 길은 없다. 다만 그 시대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한 축을 담당했던 까닭에 지금 현충원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것은 분명하리라.
〈2〉김우현 감독의 <맨발천사 최춘선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 분을 좀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김우현 감독이 찍고 쓴 <맨발천사 최춘선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규장·2005)를 보고 읽으면 된다.
인간극장 〈친구와 하모니카〉로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김우현 감독은 '르포'처럼 전혀 의도하지 않고, 그저 지나가다가 8m 카메라에 그 할아버지를 담았다는데, 그것을 편집하고 다시금 글로 옮겨 쓰다 보니까, 그 할아버지에 관한 작품이 나왔다고 한다.
역시 그 책에도 그 할아버지가 어떤 독립운동을 펼쳤는지에 대해서는 나와있지 않다. 다만 그 책에는 그 할아버지가 광복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에 대해서 상세히 소개돼 있다. 묘비명에도 쓰여 있는 것처럼, 그가 어떻게 '맨발의 전도자'로서 살아 왔는지에 대해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대략적인 내용을 훑어보면 이렇다. 그는 잘 살았던 아버지 덕에 부유하게 자랄 수 있었고, 또 일찍 일본에 유학까지 갈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우찌무라 간쪼'와 그의 제자인 '가가와 도요히코' 밑에서 성경과 신앙관을 배우게 된다. 물론 우찌무라 간쪼를 통해 우리나라의 김교신이나 함석헌 선생도 알게 됐고, 그런 분들과 함께 '조선산 기독교'와 '독립'에 대해서 눈뜨게 된다.
그리하여 만주와 상해를 발판삼아 하던 독립 운동 [?]이 끝난 후에는,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참다운 조선산 기독교 운동을 펼치게 되는데, 그 분은 그때부터 기독교 종파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홀로서 복음을 전하게 된다.
이를테면, 지하철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나 빈민구호 단체들을 찾아가서 직접 몸으로 돕기도 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과 탈북자 난민들도 직접 데려다가 씻겨주고 밥도 먹여 준다. 또한 땅이 없는 자에게는 자신이 갖고 있는 땅도 나누어주고, 살아갈 집이 없는 자에게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도 기꺼이 내어 준다.
그러나 그렇게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데도, 그는 구박과 면박을 받기가 일쑤였다. 그것은 그가 지하철 안에서 그리고 길거리에서 맨발로 복음을 전하기 때문인데, 그를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狂人)로 내몰기도 했고, 어딘가 모자란 사람쯤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그 웃는 얼굴 웃는 안광(眼光), 김구 주석 꼭 닮았어, 축하합니다."
"아주머니는 그 인자한 미소와 자태, 신사임당 꼭 닮았어, 축하합니다."(42쪽)
"미스 코리아 춘향이, 다 좋은 데 그 귀걸이는 너무 비싸."
"다 좋은데 그 모자는 비싼 외제야."
"나라의 군비가 너무 많은데. 농가 부채가 너무 많은데."
"미스터 코리아 민영환, 미스 코리아 춘양이, Why two Korea."(88쪽)
더군다나 그가 사람들에게 전혀 맞지 않는 말, 전혀 해석이 안 되는 선문답 같은 말만 하니 좋아할 사람이 있겠는가. 김구 주석처럼 닮았다고, 신사임당 닮았다고 하면 그래도 웃음이 나올 법 한대, 왜 그는 그들을 말하면서 끝머리에 'Why two Korea'를 외치는 것인가.
그것은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유관순과 안중근 같이 나라를 사랑한다면, 그런 분들이 가득하다면, 왜(Why) 두 개의 코리아(two Korea)로, 분단된 조국으로 나뉠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그저 겉만 화려하게 꾸미는 미스, 미스터 코리아가 아니라 신사임당과 김구 선생 같이 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진리와 자유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 던지며 희생할 수 있는 그런 한국인이 되기를 바란 것이다. 그래서 그는 팔십 평생이 되도록 통일 한국을 염원하면서, 삼십 년 간을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맨 발로 살아 왔던 것이다. 오로지 통일 하나를 바라는 마음으로….
"통일이 오면 신어요!"(194쪽)
통일이 오면 신발을 신겠다던, 그토록 통일을 바라시던 최춘선 할아버지는 그러나 2001년 7월에 갑작스레 저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3〉오늘을 사는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고(故) 최춘선 할아버지가 사셨던 삶을 기독교인들은 가슴 깊이 새기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그 할아버지에게서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무엇이며, 또 어떻게 사는 것이 그 할아버지처럼 사는 길이겠는가?
그 분은 우찌무라 간쪼에게서 신탁통치와 자본주의가 맞물려 있는 미국식 기독교가 아니라 자주 독립적인 조선산 기독교를 배웠으며, 가가와 도요히코에게는 낮은 곳을 향하는 삶, 가난한 자를 찾아가는 삶, 밑바닥 삶을 사는 자들과 벗으로 사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배웠다.
그러나 그 분은 그들에게서 배운 것들을 그저 머릿속으로만 깨우치는데 그쳤던 게 아니다.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가, 광복 후 대한민국에 들어온 순간부터 오로지 '조선산 기독교'를 세우는데, '통일'을 맨발바닥으로 바라면서, 가난한 자들과 헐벗고 굶주린 자들의 친구처럼 사는 데 그 온 몸을 던졌다.
그렇기에 오늘을 사는 기독교인들도 고(故) 최춘선 할아버지처럼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사치스런 기독교, 자본주의적 기독교, 몸통만 부풀리는 기독교 교회를 세워 나가는데 혈안이 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둘로 쪼개진 이 나라를 하나로 만들 것인지, 어떻게 하면 가난하고 병들고 헐벗고 굶주린 자들의 친구가 될 것인지, 그것을 더 생각하며 온 몸으로 살아내야 할 것이다.
"이미 60년대 초부터 자가용도 여러 대 있었고, 김포에 있는 아버님 소유의 땅에 학교, 교회, 양로원, 고아원, 양계장 등이 다 있었는데, 주님 말씀을 깨닫고 나서 다 나누어야 한다고 내 놓으신 거죠."(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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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책 + DVD) - 맨발천사 최춘선,
김우현 지음, 규장(규장문화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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