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2

16] 【지구평화학】종교평화론을 통한 지구평화의 모색 원영상*

 16] 【지구평화학】종교평화론을 통한 지구평화의 모색 원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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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문   코로나19, 환경 재난, 대규모의 전쟁 등으로 인해 지구는 여명이 얼마 남지 않는 상태가 되었

다. 모든 것은 인간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특히 전쟁은 인간 자신을 파멸시키기도 하지만, 과학, 자본, 이념 등이 총동원되어 자기 파괴로 가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다. 지구가 멸망한다면 아마도 세계대전이 원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인간 간의 증오에 의한 전쟁을 막는 일이다. 물론 환경재난 등 시시각각으로 밀려오는 지구 붕괴의 위기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이 지구적 컨센서스가 필요하다. 그 럼에도 지구평화학이 시급한 것은 자기 파괴를 스스럼 없이 자행하는 몰인격적 무분별 행위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존적 인간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일이 무시간적으로 발생한다. 지구평화학은 모든 위기를 막는 지구적 차원의 지혜를 발산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지구평화학은 현대문명에 필 수적이다. 그리고 그것의 구조는 종교평화학이다. 즉, 폭력이 극대화되는 세계의 아노미 상태를 자기반성을 거친 종교평화학으로 새롭게 길을 놓아야 한다. 코로나19의 고통의 세계화에 대한 긴급한 진단과 처방을 위 해 도덕과 윤리를 소환하는 시점에서 동시에 또한 지구평화학이 요청된다. 이를 위한 종교평화학 구축을 통 해 세계의 분쟁만이 아니라 이성과 이성의 과잉으로 초래된 이 문명에 대해 새로운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물론 그 방법은 기존의 인문학적 종교연구, 사회과학적 평화연구를 융합하는 것이다. 서울대를 중심으로 평 화인문학을 개진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결국 종교의 ‘오래된 새길’에서 모색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 아와 우주가 합일되는 영성을 창구로 하여, 사회와 지구, 나아가 우주로 향하는 열린 인식을 종교 그 자체 의 본질을 기반으로 현실 사회에 대응 가능한 종교평화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지구평화학, 평화인문학의 기반 구축에는 종교평화학이 가장 핵심적 토대가 될 것이다.

차 례

Ⅰ. 머리말

Ⅱ. 지구위기와 종교의 복귀

Ⅲ. 종교평화론에 대한 담론

Ⅳ. 지구평화를 향한 종교평화론

Ⅴ. 맺음말

 

*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교수

Ⅰ. 머리말

지구의 미래는 있는가? 지구 온난화, 코로나19 팬데믹, 끊임없는 전쟁 등 지구는 질서보다도 무 질서가 증가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욕망에 의해 뒷받침된 자본주의의 세계화는 지구의 한계를 더 욱 명확히 하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자정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인간 개개인이 결정하고, 실천해 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 세계는 공동의 의지로 이 난국을 해결해 나가지 않는 한 결코 누가 구원해 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특히 현실적 삶을 불안으로 몰아넣는 폭력과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

상 무기의 발달로 인해 한 순간에 지구를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익과 감정에 위배되면 상대를 절멸시키고야 말겠다는 야만적 본능은 인간만이 발현되며, 전쟁은 그 과 정이다. 전쟁만큼 인간을 불안으로 몰아넣는 일은 없을 것이다. 21세기는 과학과 자본에 힘입어 본 격적인 대량살상이 이루어졌다. 

1, 2차 세계대전은 물론, 중국 내전, 6·25전쟁, 남북베트남 전쟁,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 미국과 이라크 전쟁 등 이 외에 수없는 국지전은 손으로 헤아리기도 어렵다. 전문가들은 1~2억명이 20세 기 전쟁에서 죽었다고 한다. 강인철은 1999년도의 세계 분쟁 45건이 무력충돌 가운데 24건이 종교 분쟁으로 53.3%에 이른다고 한다. ) 이 외에도 언론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종교분쟁이 아닌 전쟁에 도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쟁과 종교는 유사 이래 서로 불가분 의 관계로 그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18 세계 군비 지출 동향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국가의 군비 지출액이 1조 8220억 달러(2,122조)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전세계 1인당 군사비 지출은 평균 239달러에 해당한다. ) 이는 더욱 늘고 있다. 첨단무기는 갈수록 살상성능이 강화된다. 국가와 자본은 결탁하여 전쟁마저도 외주화 하는 일이 일어난다. ) 이처럼 약육강식이 횡행하는 지구는 과 연 희망이 있는 것일까. 이를 비판하고, 이에 저항해야할 논리를 제공해야할 학문마저도 자본의 의 지에 눌려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에게는 희망을 걸 수 있을까. 필자를 비롯한 종교인, 학자들은 2015년부터 ‘종교폭력-평화-국가’의 관계를 중심 테마로 하여 토론하는 레페스(REligion and PEace Studies, 종교평 화연구)포럼을 개최해왔다. 그 목표는 ‘종교평화론 구축’이다. 그 토론의 성과를 묶어 종교 안 에서 종교를 넘어: 불교와 그리스도인의 대화(2017), 지속적 폭력과 간헐적 평화(2020)를 출판하 고 종교평화론 담론(가제)을 금년 4월에 출판할 예정이다. 세 번째 공저는 한일 간에 종교인, 학 자들이 양국을 오가며 토론한 내용이다. 금년에는 ‘아시아 종교평화학회(Asian Association For Rel igion and Peace)’를 출범시킬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무기한 연기되었다. 본 연구도 이 선상에 놓여 있다. 지구적 평화의 희망을 결국 다시 종교로부터 찾고자 하는 열망인 것이다. 

Ⅱ. 지구위기와 종교의 복귀

후기마르크스주의적 문학비평가인 테리 이글턴은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에서 계몽주의 이래 

신의 죽음을 기획했던 이성은 실패했다고 한다. 그는 신의 임시 대리역할을 했던 모든 지적 현상 이 담당했던 사회적 역할은 종교가 짊어졌던 이념적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종교는 세속화의 길을 통해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제 모든 것이 상대화되고, 무의 미해진 포스트모던사회에서 ‘전능한 신’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 하여, 자아의 증 폭과 폭주로 무질서해진 현대에 다시금 종교를 소환시키고 있다. 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으로 서의 종교는 여지없이 비판하지만, 종교가 연마해온 실천적 삶, 존재의 혁명을 추종하는 종교의 

‘실천적’가치를 재조명하면서 현대문화에 대한 해독제를 종교에서 발견하고 있다. )  이에 “종교적 믿음이 사회 질서의 실존을 위한 일련의 근거를 제공하는 부담에서 자유로워진다

면, 종교적 믿음은 정치의 비판자로서 진정한 목적을 자유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6)라고 보며 종교를 현실로 이끌어 내고 있다. 인간의 주체성에 담긴 오만은 신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예 들 들어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해 점령했을 때, 미국은 자신들의 동맹들과 함께 1991년 1월 이 라크를 공격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는 전 세계를 향해 전쟁을 선포하는 TV연설에서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개시한다”고 했다. 신은 이 전쟁에 개입하라고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 도 그는 신의 대리자임을 내세워 전쟁에 개입했던 것이다. 

이후 2001년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 침공 등 주권을 가진 국가에 무력으로 침입하여 수많은 백성을 살상으로 몰아넣었다. 물론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나 테러를 일삼은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 알카에다에 일차적 문제가 있다. 그러나 전체적 상황을 분석해보면, 이 러한 국가 간 분쟁이나 테러리스트를 키운 세력은 미국이기도 하다. 현실의 한 면만을 가지고, 힘 센 나라가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며, 전쟁을 전쟁으로 막으려고 하는 악순환을 세계는 눈뜨고 바 라보아야만 한다. 전쟁은 무의미하다. 역사 이래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다. 실 제 희생자들은 전쟁터의 힘없는 군인들, 노약자, 여성, 어린이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이유도 모른채 화염 속에 던져야 했다. 

여기에 새삼스럽게 통계를 제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군대는 인간을 죽이 기 위한 조직이다. 어떤 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 국가와 전통에 속해 교육을 받고, 적을 인정 하고 유사시 전쟁터에 나간다. 과연 개인의 의지는 있는 것인가. 국가와 자본은 전쟁을 수행하는 양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념과 무기를 제공하는 한, 군대는 존속한다. 지구의 현실적 위기는 갈등 과 분열, 폭력과 전쟁이다. 

종교는 여전히 삶의 유용한 요소다. 정진홍은 종교란 “존재론적 차원에 이르는 모든 물음을 수 용하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해답을 수렴하면서, 바로 그 존재론적 차원으로부터 표상화 되는 물음과 해답의 상징체계이다” )라고 한다. 과거처럼 종교의 사회적 지배나 역할이 줄어든 현 재에도 종교는 다양한 형태로 삶에 침투해 있다. 정진홍이 말하는 존재론에 대한 물음에 답을 얻 고자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의 개인적 종교를 갖는다. 테리 이글턴 또한 “종교는 지금까지 인류가 이루어낸 가장 강력하고 끈질기며 보편적인 상징형식이다.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와 개별적 일 상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연결시켜주었던 상징형식이 어디 있었단 말인가” )라고 하며 종교의 복원 을 주장한다. 종교는 상징을 상징으로 해석하지 않고 사실로 해석하기 때문에 수많은 전쟁과 갈등 이 초래되었다 )고 한다.  과거에 집착된 종교를 역사로 보지 않고, 내적 초월의 세계와 일상의 삶 을 잇는 가교로 보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는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따라서 위기의 시대에 종교가 다

시 복원된다고 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미 종교적 차원에서 인간의 한계상황에 대한 물음을 종교는 지속적으로 해왔다. 문제는 이러한 한계상황이 개인적 차원만이 아니라 집단적 차 원, 지구적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종교는 이 세상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의 질서를 구축하는 데에도 기여해 왔다. 윤리나 도덕의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인류가 현재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질서의 원천을 종교로부터 다시 얻고자 하는 것이다. 나아가 세계를 통합하 고, 새로운 가치를 주조해냄으로써 불투명한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종교가 소 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Ⅲ. 종교평화론에 대한 담론

세계의 많은 지성들은 종교와 평화의 관계에 대한 언설을 내놓고 있다. 특히 평화학의 창시자 

요한 갈퉁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에서 전쟁과 같은 폭력을 직접적 폭력, 전쟁이 없는 상태 의 간접적 폭력을 구조적 폭력이라고 본다. 전자가 없는 상태가 소극적 평화, 후자가 없는 상태가 적극적 평화이다. 그리고 이 폭력들의 이면에는 문화적 폭력이 존재한다. 이는 “모든 상징적인 것 으로 종교와 사상, 언어와 예술, 과학과 법, 대중 매체와 교육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 다. ) 그 중에서도 종교는 문화적 폭력의 제1순위에 놓여 있다. 

요한 갈퉁은 종교는 초월적 목표에 초점을 두는 강한 측면과 대중의 기본적 욕구 충족과 같은 현세의 문제에 초점을 두는 부드러운 측면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두 측면이 각각 문화적 폭력과 문화적 평화에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종교의 강한 측면, 즉 형이상학적 세계나 이를 담보로 한 권력적 측면이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갈퉁 은 종교의 생명 중시의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간디 사상 속의 생명의 통합(unity-of-life)과 수단과 목적의 통합(unity-of-means-and-ends)

의 원칙들을 존중한다. 그리고 이 원칙들은 모든 생명의 신성함을 존중하라는 것과 수단과 목적을 소중히 하는 것은 스스로를 소중히 하는 것이 될 것이라는 교훈을 수용하라는 것이라고 한다. ) 갈퉁은 서양의 종교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이처럼 동양 종교들의 가르침 속에서 여러 가지 교훈을 찾아낸다. 이병욱은 문화적 폭력에 대한 처방으로써 불교의 공(空)사상은 모든 이데올로기 의 그물에서 벗어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불교에 대한 집착마저 벗어 날 때 진리의 눈을 얻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어떠한 이데올로기에도 집착하지 않는 유 연함과 개방성이 열리는 것이다”  )고 한다. 수행의 관점에서 평화와 관련한 동양종교의 본질을 꿰뚫는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울리히 벡의 언설 또한 이 점에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그는 “종교란 수백 년 동안 거대한 초국적 장벽 쌓기 또는 허물기를 전문적으로 수행한 건설재벌이다”라고 하며, “종교는 서로에 대항하거나 서로 힘을 합쳐 종족, 민족, 아니 대륙을 넘어 장벽을 헐거나 세운다” )라고 비판한 다. 종교적 보편주의들 간의 충돌은 폭력을 양산한다. 이에 민족, 종교, 폭력의 상관성이 19세를 관 통하는 특징이었고, 20세기에는 세계대전을 통해 그 정점에 도달했다. 따라서 현재의 글로벌 위험 사회에서는 “평화가 진리를 얼마나 대신할 수 있는가에 따라 인류의 존속이 결정된다”며, “종 교는 세계정치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극한사회에 이른 인류는 신자유주의의 통로를 종교의 보편적 가치로 재포장해야 한다. 폭력이 

극대화되는 세계의 아노미 상태의 타개를 위해 약자나 소수자 문제 등에 종교적-세속적 경계를 넘 어선 협동을 통한 일상적 실용주의적 측면에서 그 유용성을 찾는다. ) 종교가 지닌 내적 연대, 나 아가 열린 종교의 외적 연대로까지 확장되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제도 종교의 문제는 자기중심적 선교, 포교로 인해 갈등을 일으킨다. 밖으로도 배타적 분열을 일 으키는 한편, 안으로도 분리되어 진보와 보수, 전통과 혁신 등의 파벌로 나뉜다. 당연히 폭력이 배 태될 수밖에 없다. 밖으로는 정의의 전쟁론인 성전(聖戰)을 일으키며, 안으로는 권력을 향한 교단주 의가 횡행한다. 여전히 강한 뿌리가 남아 있긴 하지만, 종교의 권력화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실질적 으로 해체되어 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인 해방신학과 참여불교다.

해방신학은 남미에서 1960년대 말부터 정치적 억압과 경제 수탈에 대항해 신학이 사회에 참여하

여 고통을 극복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개진되었다. 60년대 전반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고 사회구조를 인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정, 위르겐 몰트만 등 신학자 들이 나치 독일과 유대인 대학살을 경험하고 나온 기독교 복음의 사회적 책임 주장, 마르크스주의 적인 경제사상 등이 배경이 되었다. 해방신학에는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정치, 경제적인 폭력에 대 항하는 평화의 논리로써 대화, 비폭력, 중재 등의 평화적 수단이 들어 있다. ) 여전히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에 앞에 해방신학은 더욱 요구된다. 

참여불교 ) 또한 20세기에 일어난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불교계를 말한다. 불법승 삼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사회에 개입한다. 스리랑카 내전에서 불교계의 중재 와 화해의 역할, 일본 내 현대적 재가불교 단체들의 세계평화운동, 원불교와 정토회를 비롯한 한국 현대불교의 평화운동은 등은 매우 적극적이다. 오늘날 해방신학과 참여불교는 종교의 무정부적 차 원의 지평을 기반으로 지구적 차원의 신자유주의 하에서 전개되는 자본의 폭력적 상황과 그 하부 구조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갈등의 사회구조를 뛰어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Ⅳ. 지구평화를 향한 종교평화론

지구평화를 위한 종교평화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어떤 측면에서 종교는 지구적 차원의 갈등구조

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종교가 가진 다양한 가치는 지구를 실제로 통합시키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까. 종교를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종교적 가치를 사회적 가치로 전환하는 데에 성 공할 수 있을까.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레페스포럼은 이처럼 거시적 문제 해결을 위한 첫 걸음이다. 이러한 담

론이 가능한 것은 한국사회가 다종교 사회이기 때문이다. 독점적 종교가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류 미래에 희망을 선사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노마드(nomad) 사회에서 지구 내에 영향력을 가진 종교들과 한반도 자생 종교들이 때로는 연합하여 사회문제 해결을 시도 하고 있다는 자체가 고무적이다. 최근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한국의 종교환경연대 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한반도가 고통 받는 곳에서는 종교의 일상적인 연대가 일어난다. 그렇다 면 타국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러한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어떠한 측면인가? 종교의 심층적 차 원의 세계로부터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차원, 나아가 세계적 차원으로까지 종교평화론은 확장 가 능할까?

필자는 무엇보다도 종교가 가진 최초의 속성, 예를 들어 세계의 근원과 소통하는 통찰적 예지로

써 인류가 형제·자매라고 하는 하나의 가족, 또는 모든 존재는 연기(緣起)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가르침은 그 어떤 혁명보다도 근원적이며 보편적이다고 판단한다. 현재 평화는 이러 한 종교적 세계관이 실질적으로 투영되고 확장되어 가는 과정이다. 이는 종교가 지구적 차원에서 근본적 평화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는 증거에 다름이 아니다. 종교가 가진 인간적 연대는 그렇 다면 지구적 평화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 수 있을까. 다음의 네 가지 측면에서 보고자 한다. 첫째, 정의의 전쟁론에 대한 대응을 위한 종교평화론이다. 

종교에서의 정당한 전쟁론은 동서 양 세계에서 진행되었다. 불교는 정법으로 다스리는 전륜성왕 은 불가피할 경우 전쟁에 참여할 수 있다. ) 그것은 불의와 악에 대항하는 상황에 해당한다. 그러 나 근본적으로 석존이 직접 부여한 불살생계에 의해 살상이 동반되는 전쟁은 허용되지 않는다. 석 존 또한 전쟁을 막기 위해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가톨릭에서는 중세에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불가피한 정당한 전쟁론이 주장되었다. 이러한 논리 또한 ‘나를 박해하는 자를 사랑하라’는 예 수의 언설에 비추어 본다면 모순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성전론이 가장 횡행하는 지역은 이슬람권이다. 지하드는 신앙의 원리를 위한 투쟁이었지

만, 이슬람 원리주의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지하드 또한 이슬람 신자가 정당방위에 해당하는 경우에 전쟁을 치르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성전 혹은 정당한 전쟁론은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역사를 통해 전쟁은 보복을 위한 악순환이 되고 있으며, 실제 큰 피해자는 전쟁 당 사자보다도 대부분 약자들이다. 역사적으로 정당한 전쟁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본다. 이는 종 교 근본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종교적 신념에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집착, 종교교단주의의 내적 구조화, 경전의 몰역사적이고 폐쇄적인 해석 등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종교평화론의 역 할이 있을 것이다.   둘째, 적극적 평화구현을 위한 감폭력의 종교평화론이다.

이는 종교평화론자 이찬수의 문제 제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평화와 평화들에서 요한 갈퉁 의 ‘적극적 평화’는 이상적 질서의 기독교적 표현인 ‘하느님 나라’, 유학에서 말하는 ‘대동 (大同)’, 한국 신종교들에서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개벽(開闢) 사상의 구조와도 비슷하다고 한다. ) 하느님 나라나 개벽은 적극적 평화에 대한 종교적인 표현 혹은 번역들이라고 본다. 개벽의 구체적 내용을 적극적 평화라고 해도 된다는 뜻이다. 그는 종교 연구는 평화 연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평화학에서의 평화는 종교적 이상과 상통한다고 한다. 

이찬수는 평화는 평화적 수단에 의해 이루어지며, 과정으로서의 평화 역시 평화라는 목적에서 

온다는 평화학의 기본 구상은 종교적 혹은 신학적 구조와 상응한다고 본다. 또한 종교적 혹은 신 학적 언어를 세속화 시대에 어울리도록 변형시키면 평화학이 된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평화학은 ‘세속화한 시대의 신학’, 혹은 종교적 세계관의 ‘세속적 변용’이라는 사실을 밝힘고자 하는 것이다. ‘평화는 종교의 본질이고 이상’이라는 근원적 사실을 주장한다. ) 그는 평화학과 종교적 이상 모두에 공통적으로 담겨있는 평화 개념을 중심으로 평화학과 종교가 결국은 평화를 지향하고 구현하려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평화는 폭력 줄이기, 즉 감폭력(減暴力)의 과정’이라는 지론을 통해 종교평화학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셋째, 보편윤리 제정에 종교평화론의 역할이다.

세계종교자평화회의(WCRP)는 1970년 함께 사는 세계를 위해 행동해야할 내용을 7개 항으로 정 리했다. 공동의 인간성, 공동의 안전, 상호의존성, 공동의 미래, 공동의 삶, 포괄적 교육, 희망과 헌 신이다. 이 내용은 세계보편윤리를 확립하는 기초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유네스코 철학· 윤리국에서는 보편윤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1997년 파리에서 ‘보편윤리를 위한 개념적, 철 학적 기초’를, 1999년 한국에서 ‘보편윤리와 아시아 가치’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가졌다. 이러 한 논의는 지구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시급한 과제이다. 또한 지구 전체의 헌법 제정을 위한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 보편윤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며, 존중하는 가운데 모두에 게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확립해야 된다. 특히 다양한 문화, 국가, 민족, 종교들의 특수한 가치 를 넘어서 이들 가치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 보편윤 리는 전체의 공동 이익과 함께 개인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경우에 그 당위성이 성립한다. 이를 위 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모든 문제를 포용하는 초월적인 가치에 서 있는 종교성에 기반 할 필 요가 있다. 따라서 종교적 가치에 기반한 지구 차원의 평화를 위한 논의가 요구된다. 

넷째, 평화인문학, 녹색평화학과 종교평화론과의 관계 정립이다.

최근 서울대학교 평화인문학단에서는 평화인문학을 주제로 다양한 연구 성과를 도출했다. 지금

까지 사회학의 영역이었던 평화학을 인문학의 영역으로까지 깊숙이 끌어들인 것이다. 홍정호 또한 「한반도 평화인문학의 기초 과제로서의 종교평화학 형성 방안 연구」 )에서 기독교의 신학(선교)적 차원에서 한반도를 필드로 종교평화학을 시도하고 있다. 평화인문학에서는 지구의 실질적 평화구 축을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심층적이고 근원적이며 다차원적인 대응과 치유, 평화형성을 지향 하는 실천성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책적 차원과 구별되는 삶의 종합적 차원을 고려해야 한

다.” )고 한다. 사실 이러한 차원은 이미 일상의 종교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구조, 제도 이 전에 삶에 깊이 침윤된 종교를 근간으로 평화학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나아가 종교평화론의 구체적인 모습인 녹색평화론적 관점이다. 녹색평화는 환경과 평화, 생태적

인 것과 평화의 관계를 설정하고, 탐구해 가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 환경과 사회의 공존과 화해를 지향하는 것이 동원된다. 이렇게 될 때, 평화론의 실질적인 개방인 동시에 지구 내 모든 존재의 공존이 가능하게 된다. 녹색평화는 생태적 질서에 기초한다.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관계성’의 영역이 바로 녹색평화의 지향점이자 목표이다. 타자를 어떻게 환대할 것인가, 타자가 곧 나임을 확인하는 작업이 녹색평화론의 궁극인 종교평화론의 세계인 셈이다. 종교의 이상이 곧 전 지구적 차원의 모든 존재의 이상이자 현실이 되는 것이다.  

Ⅴ. 맺음말

지금까지 시도되었지만, 현실화되지 않았던 종교평화론은 지구가 한계상황에 이른 지금에야 비 로소 조명받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종교 자체의 집단적 속성이나 현실적 상황으로 인해 경원시되고, 논의의 무용함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종교 스스로도 진화하여 자신의 문제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통해 지구적 차원의 평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오고 있 다. 이 점을 박충구는 기독교윤리사 시리즈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해방신학이나 퀘이커의 평화주의 등을 통해 그들이 고난 속에 걸어온 평화노선을 보여주고 있

다.23) 이슬람의 영성주의, 불교의 수행담론 등은 이에 못지않은 일상의 평화를 지향하며, 사회와 지구적 차원의 평화 구축을 위한 이론과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 탈종교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를 미처 평가하지 않았을 뿐이다.

종교평화론은 지구의 마지막 남은 평화론이 될 것이다. 양육강식을 강요하는 인간의 무지와 무

명의 한계를 근본으로부터 파헤치고, 현실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유대를 통한 연대가 가능하다면 종교평화론은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선결되어야 하는 것은 자신의 교의를 넘어서 종교다원주의가 확립되어야 한다. 이는 종래 논의되었던 것처럼 종교 자신의 입장에서 개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고난, 사회적 모순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다원주의가 하나의 기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종교신다원주의’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두 번째는 국제정치에 있어 종교의 역할 비중을 높여가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미얀마 군대의 

쿠데타로 비폭력 저항에 가담한 민중들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UN은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강 대국 중심의 논리는 지구의 평화는 물론 한 국가의 군대에 의한 민중살상을 막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해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한 선택적 개입에만 신경 쓰고 있다. 종교 개개의 힘은 약하지만, 인권이나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연대는 언제든 가능하다. 실질적인 정치의 힘을 종교적 연대 를 통해 발휘할 필요가 있다. 이를 필자는‘생명평화 종교연대’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지구의 한 계를 돌파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종교권도 예외는 아니다. 종교연합(UR, U nited Religions) )창설도 하나의 좋은 방안이다. 특히 종교는 이미 국경을 초월하여 활동하는 실질 적인 평화적 조직이자 집단이다. 인류가 이를 어떻게 적절히 활용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결정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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