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지구윤리학】지구와 인간의 공생을 위한 지구윤리 허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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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문 본 연구는 지구위험시대의 새로운 지구윤리(earth ethic) 정립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데 목표가
있다. 지금의 지구위험시대는 우리의 경제 체제뿐만 아니라 세계관에 의해 초래됐다. 펜데믹, 기후위기를 통 해서 인간은 지금까지 인간의 번영이 지구를 황폐화[지구학살]시키면서 이룩한 결과임을 깨닫게 되었다. 기 존의 윤리체계는 인간중심적이다. 인간의 경우는 개인의 권리나 이익면에서 평등하고 공정한 것이 이상으로 여겨졌으며, 또 개인을 그렇게 대우하는 사회야말로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라고 간주돼왔다. 인류세로 지칭되 는 지구위험시대에 인간이 자연을 조종하고, 억압하는 행위를 전통전인 윤리 개념을 기준으로 비윤리적인 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구적 위험 문제는 인간중심주의로 가득 찬 인문주의 적 윤리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제는 윤리의 기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자살, 살인 등과 같은 문제 들은 기존 윤리적 전통으로 풀어낼 수 있지만, 지구의 생명체계가 멸종되는 생명살해와 지구살해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태적 죄’교리 신설을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 다. 이러한 이유에서 레오 폴드는 윤리의 확장을 생태학적 진화의 과정으로 보았고, 토마스 베리 역시 인간 의 윤리학을 생태학적 의무의 파생물로 보고, 포괄적인 공동체의 복리 안에서 인간의 복리를 실현하는 것을 윤리학의 규범으로 삼을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지구행성 전체의 맥락에서의 윤리, 즉 인간과 인간이 아닌 지구를 포함한 다른 구성원들 사이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지구윤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제 인간과 지구가 공생할 수 있도록 인간과 지구를 통합적 공동체[지구공동체]로 전환시킬 수 있는 지구윤리가 마련되어야만 지구를 생존력과 자생력 있는 행성으로 지속시킬 수 있다.
차 례
Ⅰ. 머리말
Ⅱ. 윤리는 진화한다.
Ⅲ. 새로운 윤리의 요청
Ⅳ. 지구공동체(earth community)와 지구윤리
Ⅴ. 지구윤리로서 지구헌장
Ⅵ. 맺음말
*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Ⅰ. 머리말
본 발표는 지구위험시대에 새로운 지구윤리(earth ethic) 정립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데 목적이 있
다. 지금의 지구위험시대는 우리의 경제 체제뿐만 아니라 인간중심적 세계관에 의해 초래됐다는 것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 펜데믹, 기후위기를 통해서 인간은 지금까지 인간중심의 번영이 지구를 학살시키면서 이룩한 결과임을 깨닫게 되었다. 기존 서양을 중심으로 한 윤리체계는 인간중심적이 었다. 이러한 윤리체계에서 인간 개인의 권리 그리고 평등하고 공정한 것이 이상적으로 여겼으며, 또 개인을 그렇게 대우하는 사회야말로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라고 간주돼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이 자연을 억압하는 지구를 약탈하는 행위를 인문주의적 윤리 개념을 기준으로는 비윤리적인 것으 로 판단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차원의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윤리의 진화가 요청된다.
인류가 지구 시스템을 교란하게 된 시대가 바로 인류세(Anthropocene)이다. 인류가 지구를 약탈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구시스템의 교란은 지구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하며, 지구가 위험에 놓인 지구위험시대의 도래를 재촉했다. 인류세는 인간과 지구의 어긋난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 운 윤리를 요청한다.
이제 지구위험시대를 대응할 수 있는 윤리로 진화/전환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구적 위 험 문제는 인간중심주의로 가득 찬 인문주의적 윤리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윤 리의 기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본 발표문의 문제의식 출발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본 발표의 주제는 ‘지구와 인간의 공생을 위한 지구윤리’이다. 여기서 ‘지구윤리(earth ethi c)’는 지구, 인간, 만물을 포괄하는 지구공동체(earth community)의 윤리를 의미한다. 동아시아 사 상 용어로 표현하자면, 만물동포의 윤리이다. 지구윤리를 인간이 지구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지켜 야 할 도리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Ⅱ. 윤리는 진화한다
레오폴드가 윤리를 생태학적 진화의 결과로 보았듯이, 윤리를 시대에 따라 진화하는 것으로 보
았다. 현대 자본주의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전환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고 있는 존 캅 주니어(John B. Cobb Jr.)는 ‘새로운 문명을 위한 다섯 가지 토대’ 중 하나를 관습도덕에 대한 ‘반문화적 도덕’에서 찾고 있다. ) 이들의 공통된 관점은 도덕진화론 혹은 윤리진화론에 있
다. 피터 싱어는 “도덕은 진화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2008년 UN총회가 채택한 「세계인권 선언」을 인류의 도덕적 진화의 사례로 보고 있다.2) 피터 싱어에 따르면 윤리는 진화발전하며 발전 과 더불어 도덕적 고려의 대상 역시 점차 확대되는 양상을 나타낸다. 오늘날 도덕적 고려의 대상 이 동물, 식물 그리고 무생물에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도 윤리의 진화의 결과인 것이다.3)
존 갑 주니어의 ‘반문화적 도덕’은 한국 개벽사상가 이돈화의 ‘반항도덕’논의와 상통한다. 이돈화는 ‘반항도덕’을 “기성의 윤리 혹은 정치체제[政制] 안에서 그 결합을 알아가지고 감정과 의지로써 그 부자연에 대하여 반항함”으로 정의한다. 이돈화에 의하면, 인류 최초의 반항은 자연 에 대한 반항으로 시작되었고, 자연과학은 반항에서 탄생했다. 자연의 이용은 자연에 대한 반항이 며, 반항이 없는 이용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반항은 인류와 인류 간에서도 전개되 었다. 신시대에 필요한 도덕은 구시대에서 금하는 법으로, 새로운 도덕도 반드시 반항에서 나오는 것이다.4) 인간중심주의적 윤리에 결함이 있다면, 새로운 차원의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면, 기존 윤 리에 대한 반항이 제기되어야 한다.
인류세 관점에서, 지금까지의 윤리 체계는 수천 년 동안 운영되는 지구 전체의 체계인 홀로세(H olocene)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는 인류가 윤리적 담론을 고안하고 이를 사회생활과 조직행위에 통 합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지구위험시대에 지구는 우리에게 새로운 윤리를 요구한다. 기 존 환경 윤리에는 인간중심주의와 관련되어 있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 다시 말해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환경’은 주변을 뜻한다. 여기서 주변은 ‘자연’을 의미하며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환경은 인간의 이익을 위해 보호되어야 한다는 인간중심주의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클라우스 미하엘 마이어 아비히(Klaus Michal Meyer-Abich)는 ‘동료세계’의 윤리를 제안한다. 그는 환경(Umwelt)이라는 용어는 오류를 불러일으키는 표현이기 때문에, 인간과 자연과의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 ‘동료세계(Mitwelt)’로 대체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그들 둘러싼 자연의 동료세계인 동물, 식물, 땅, 물, 공기는 진화의 역사에서 친척이기 때문 이다.5)
이렇듯 자연은 인간의 환경으로만 인지되었고,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관념이 강했다. 일찍이
김지하가 ‘환경’이라는 용어의 폐기를 주장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지하는 생명계과 무 생명계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는 생태 또는 생태학의 근본적 한계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에게 생 명은 자기 조직화하는 속성을 가지고 생활형식을 만들어가는 활동을 의미하는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6) 이제 윤리의 지평이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새로
2) 피터싱어, 더 나은 세상: 우리 미래를 가치 있게 만드는 83가지 질문, 박세연 옮김, 서울: 예문아카이 브, 2019, 24-27쪽.
3) 김성한, 「도덕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과 싱어의 입장」, 인문과학연구 54,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2017,
91-92쪽.
4) 이돈화, 「개벽 방식과 삼대개벽」, 신인철학, 일신사, 1963.
5) Klaus Michal Meyer-Abich, Wege zum Frieden mit der Natur: Praktische Naturphilosophie für die Umweltpolitik(München: Carl Hanser Verlag1984), p. 99.(몰트만, 희망의 윤리, 대한기독교서회, 2017,
266-267에서 재인용)
운 윤리정립을 위해서 인간은 지구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전지구적 차원 즉 인간과 인간 이 아닌 다른 구성요소들 사이를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Ⅲ. 새로운 윤리의 요청
1992년 ‘의식 있는 과학자 연합(The 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은 「인류에 대한 경고(War ning to Humanity)」라는 글을 통해, 더 이상 지구가 파괴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 바 있 다. 그들은 인간에게 제공할 수 있는 지구의 제한된 능력을 인정해야 하며, 지구에 대한 새로운 태 도전환을 위한 새로운 윤리를 마련할 것을 촉구하였다. ) 토마스 베리(Thomas Berry)도 지구약탈, 지구학살(geocide)의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윤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인간의 윤리학 을 생태학적 의무의 파생물로 보고, 포괄적 공동체의 복리 안에서 인간의 복리를 실현하는 것이 윤리학의 규범으로 자리잡아야 함을 주장한 바 있다. 더불어 지구행성 전체맥락에서의 윤리, 즉 인 간과 인간이 아닌 다른 구성원들 사이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지구윤리’의 필요성을 강 조한 바 있다.
이들이 새로운 지구윤리를 제창하는 이유는 지금의 지구위험은 새로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의 지구적 위험 문제를 인문주의적 윤리학으로는 비판할 수도 없으며,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자살, 살인 등과 같은 문제들은 기존 윤리적 전통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해도, 지구의 생명체계가 멸종되는 생명살해와 지구약탈 그리고 지구살해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기반 한 것 이었다. ) 이처럼 지구의 주요한 생명체계들이 지구 안에서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임계점에 직면 에서 전통적 윤리에 결함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공기와 땅, 물이 오염되 고, 살림이 대규모로 파괴되는 현상과 그러한 일을 벌이는 행위를 ‘생태학살(ecocide)’로 보고, 이 같은 지구를 파괴하는 행위를 ‘생태적 죄(ecological sin)’로 규정한 이유도 동일한 맥락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적 죄’는 경(敬)을 우주의 관계도덕으로 보는 천도교의 ‘불경물(不敬物)의 죄’, 원불교의 천지은(天地恩)에 대한 ‘배은’과도 상통한다.9)
종교갈등, 전쟁, 빈곤 등과 같은 전 지구적 문제들은 개인이나 국가 차원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 는 문제의식에서 더 넓은 공동체를 포괄하는 세계 윤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한스 큉(Hans Kün g)과 피터 싱어(Peter Singer)를 중심으로 세계윤리(Global Ethic)가 제안되었다. ) 하지만 현재의 펜 데믹, 기후변화 등은 지구위험시대를 드러내는 지표 중 하나다. 인류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위험에 처하고 있다. 지금은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 다시 말해 지 구공동체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이전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새로운 지구위험시대가 도래했
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윤리는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 지구와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이 공생할 수 있는 새로운 윤리적 지평에 근거해야 한다.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는 인간중심주의와 존재들의 상대적 자율성의 부인, 지구의 지배, 지구 자원의 약탈, 우주의 영성적 깊이에 대한 무시 등 잘못된 윤리적 전제들과 깊은 영성적 공백 위에서 지구와 우리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윤리 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인간적 이익만아 아니라 모든 존재들 사이에서의 연대와 경외를 추구하는 책임의 원리와 연민(compassion)의 원리를 제시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를 착취하지 않고 존중 하고 존경하듯, 지구와의 인격적인 관계만이 우리가 지구를 사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11)
이렇듯 인류세로 지칭되는 지구위험시대에 지구-인간-만물의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태도 의 전환과 새로운 지구윤리의 필요성이 요청되고 있다. 지구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태도전환을 위 한 새로운 윤리의 정립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인류는 지구위험시대를 맞이 하여 모든 존재가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과 함께 지구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자각을 지녀야만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 윤리는 ‘지구와 인간, 그리고 비인간 존재들까지도 포함하는 지구공동체 구성원들과 화해를 모색하는 지구윤리’로서, ‘지구와 인간 그리고 만물의 공생[상 생]윤리’라 할 수 있다.
발표자는 그 새로운 윤리를 지구와 인간 그리고 만물을 포괄하는 지구공동체의 윤리 즉 지구윤 리로 지칭하고자 한다. 이후에 자세히 논하겠지만, ‘지구공동체’에는 인간을 넘어서는 만물과 자 연의 영역까지도 포함된다.
Ⅳ. 지구공동체와 지구윤리
해러웨이는 「반려종 선언」에서 지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인류는 비인간 타자들과의 책임 있는 관계 맺기로 나아가야하며, 인간 중심적 세계화(worlding)가 야기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종들이 서로 얽혀 함께 만들어 가는 다른 세계화를 제기한다. 특히 해러웨이는 고통, 동정과 연민, 책임과 의무를 주체/타자의 문제가 아닌 관계의 문제로, 그리고 상호 연결된 삶의 문제로 옮겨야 한다고 본다.12)
11) 베르나르도 보프, 생태공명: 지구의 울부짖음,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 황종렬 옮김, 대전가톨릭대 출판부, 254-256쪽.
12) 도나 해러에이, 해러웨이 선언문, 황희선 옮김, 책세상, 2019.
해러웨이는, 윤리적 책임은 윤리적 명령에 따르는 의무가 아니라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응답하 기에 있고, 응답하기는 존중이며 ‘더불어 되기(becoming with) ’의 실천을 통해 가능하다고 지적 한다.13) 해러웨이의 세계화(worlding)는 인간과 비인간 세계 사이의 엄격한 구분을 넘어서 물질이 정동의 방법으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다.14) 이러한 의미에서 해러웨이가 사 용하는 ‘다른 세계화’는 신자유주의 반지구화 (anti-globalization)가 아닌, 인간과 비인간적 존재 들이 보다 평화로운 ‘ 다른 지구화(other-globalization)’를 의미한다.15)
해러웨이의 다른 세계화 논의는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지구화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에 따르면, 글로벌화(globalization)라는 용어에는 글로벌화될 수 있는 것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의미를 전제하고 있다. 로컬에서 글로벌로의 관점 전환은 관점 늘리기, 더욱 많은 변수를 사용하기, 더 많 은 수의 사물, 문화 현상, 생명체, 인간을 고려하기를 의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글로벌화 플 러스(globalization-plus)와 글로벌화-마이너스(globalization-minus)로 구분하면서 지금의 지구화는 이 런 수적 증가와는 정반대의 상황을 의미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해러웨이의 ‘다른 세계화’와 라 투르의 ‘지구화’에 대한 비판은 지구공동체의 논의로 귀결된다.
20세기 서양에서도 지구와 자연에 대한 윤리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산업사회가 급속도로 진행됨에 따라 지구와 자연이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을 앞세워 자연을 식민지화하고 약탈한 결과이다. 최근에는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간주하면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윤리적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흐름들을 알도 레오폴드의 ‘대지공동체’, 토마스 베리의 ‘지구공동체’ 그리고 반다나 시바와 김대중의 ‘지구민주주의’ 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레오폴드의 ‘대지공동체’와 ‘대지윤리’
지구공동체 개념은 미국의 생태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알도 레오폴드((A. Leopold)는 그의 저서 모래 군의 열두 달에서 시작된다. 그는 서문에서 오늘날 대지(land)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대지(land)를 우리가 소유한 상품으로 보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남용하고 있다. 대지를 우 리가 속한 공동체로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사랑(love)과 존중(respect)으로써 이용하게 될 것이다. (중략) 대지가 공동체라는 것은 생태학의 개념이지만 대지가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한다는 것은 윤 리의 확장이다.16)
레오폴드는 자본주의에 물든 현대인들이 대지를 상품화하여 남용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그에
13) 김애령, 「‘다른 세계화’의 가능성: 해러웨이의 「반려종 선언」 읽기」, 코기토 92, 2020, 7-35쪽.
14) 브뤼노 라투르,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기, 박범순 옮김, 이음, 2021, 32쪽.
15) Haraway,D.J.,Staying with the Trouble:Making Kin in the Chthulucene (Experimental Futures:Duke University Press, 2016), p. 3 ; 김애령, 앞의 논문, 28쪽.
16) A. 레오폴드, 모래 군의 열두 달, 송명규 옮김, 도서출판 따님, 18쪽.
대한 대안으로 ‘대지공동체(Land Community)’개념과 ‘대지윤리(Land Ethic)를 제창한다. 여기에 서 ‘공동체’란 “긴밀한 상호의존 체계 하에 있는 생물과 무생물로 이루어지는 집합체”를 말한
다. 대지가 공동체인 이유는, 대지는 단지 물리적인 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흙, 식물, 동물의 회로를 통해 흐르는 에너지가 솟아나는 샘이고, 대지 위의 모든 존재는 대지 피라미드의 연결망[생 명의 연결망] 속에서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 그래서 대지공동체 안에는 지 구에 거주하는 모든 존재, 즉 동물, 식물, 토양, 물 등이 포함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대지공동 체’ 개념은 ‘지구공동체’와 상통한다.
한편 레오폴드는 대지공동체 개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대지윤리’를 도출해 낸다. 원래 서양
전통에서 ‘대지’는 윤리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았다. 윤리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인간과 인간관계 에만 한정되었다. 주지한 바와 같이, 서양의 전통적 윤리체계는 인간중심적이다. 그래서 인간 이외 의 동물이나 식물에는 아무런 도덕적 지위나 권리도 부여해오지 않았다. 레오폴드에게 호모사피엔 스는 대지의 관리자, 정복자가 아니라 대지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과 같이 평범한 구성원이자 시 민(citizens)으로 파악되고 있다. 인간을 대지공동체로 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인간중심적 윤리체계의 반항을 의미한다. 서구의 인간중심적 자연관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윤리적 패러다임의 전환에 이른 것이다.18)
이처럼 레오폴드의 윤리 체계에서는 동물이나 식물, 게다가 흙이나 물까지도 공동체에 포함된다. 테일러가 인간, 동물, 식물이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모든 생명체를 대하 는 태도는 ‘존중’(respect)으로 바뀐다고 주장했듯이, 대지공동체 틀에서는 윤리적 배려의 직접적 대상이 인간 존재에서 자연의 모든 존재에로 확대하게 된다. )
레오폴드는 윤리를 상호의존적인 개인 혹은 집단이 협동의 방식을 발전시키는 성향에서 비롯되 는 것으로 보고, 윤리의 확장을 생태학적 진화의 과정으로 보았다. 여기서 협동의 방식은 ‘공생’ 이다. 최초의 윤리는 개인 간의 관계로 시작되었고, 이후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포함되었다. 하지 만 인간과 대지 및 그 위에 살아가는 동식물과의 관계를 다루는 윤리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윤리 가 대지의 영역으로 확장된 것은 생태학적 필요성이다. 이러한 필요성에서 레오폴드는 진정으로 대지의 모든 존재를 윤리적 관점에서 파악할 것을 강조한다. 레오폴드의 대지윤리는, 인간소외나 전체주의 등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대지공동체들과의 공생을 위한 ‘생태적 전환’의 요구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대지공동체 개념과 대지윤리는 지구윤리의 요소로 자리매김 될 수 있다.
나는 대지(land)에 대한 우리의 윤리관계가 그것에 대한 사랑(love)과 존중(respect) 그리고 존경
(admiration) 또한 그것의 가치에 대한 높은 평가 없이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내
가 말하는 가치란 단순한 경제적 가치보다 훨씬 광범위한 것이다. 즉, 철학적 의미의 가치이다.20)
위의 구절은 대지로 윤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대지에 대한 태도의 전환이 바탕이 되어 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은 대지에 대한 태도의 전환이 가능한가? 레오 폴드는 대지에 대한 생태학적 이해에서 찾고 있다. ) 이를 토마스 베리는 ‘생태학’ 대신 지구의 생명에 대한 이해력이라는 의미로 ‘지구 가독력(Earth literacy)’ 용어를 제시한다. 지구가 교육자 라는 것이다. ‘지구 가독력’은 미래 지구 공동체에서 인간이 통합적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인 도하는 학문 영역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다. )
이러한 인식은 한국 개벽사상에서도 발견된다. 이돈화는 자연은 생명의 원천이며, 사람은 이러한
생명의 원천을 회고(回顧)할 때에 경물(敬物)의 진의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이돈 화는 자연의 도덕을 이질적 기화와 동질적 기화로 논하면서 이것이 자연계의 도덕률이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도덕[天道天德]이라 했다. 생태학 혹은 지구 가독력을 통해 윤리의 대상을 인간에서 만 물로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
2. 토마스 베리의 ‘지구공동체’와 ‘지구윤리’ 토마스 베리는 학문적 정체성은 문화사에 있었지만, 지구에 대한 공경심으로 인해 자신을 "지구 학자(geologian)”라고 지칭했다. 토마스 베리의 출발점은 지구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고, 이것을 바 탕으로 뒤틀린 지구와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있다. 그는 ‘지구생명시스템’이라는 인식을 바 탕으로 인간이 지구와 자연 세계에 대해 친밀하게 대할 것을 요구한다. ) “우주를 객체들의 집합 이 아닌 주체들의 친교”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베리에 의하면, 지구 전체를 착취해야 할 객체 가 아니라 사귀어야 할 주체로의 인식, ‘친밀한 관계(수평적 관계)’ 안에서 인간과 비인간적 존 재들 사이를 철저히 분리하는 정신적 고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
그는, 레오폴드의 대지공동체 개념과 유사하게, 인간과 만물은 지구의 구성원들이고, 그것을 포 함하는 단 하나의 통합된 지구공동체가 있을 뿐이며, 지구공동체 안에서는 모든 존재가 자신의 역 할, 존엄성, 자생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26) 인간이 지구 공동체의 참여 구성원으로써 지구와 교제하는 시대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그가 제시한 생태대의 기획이다.
베리는 여기에서 할 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의 지구공동체 논의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인간의 책임의식과 윤리적 판단은 미시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고 비판하면서, 거시적 차원의 윤리학을 제안한다. 여기서 토마스 베리의 지구중심주의적 시각이 드러난다. 베리는 “생태대는 지구가 일차 적이며 인간은 부차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라는 점이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인간의 모든 활동은 지구중심적 관점, 직역하자면 ‘지구살림’에 따라 재조정되어야 한다. ) 그래서 베리의 최대 관 심사는 지구의 건강에 있다. 인간이 거주하는 지구의 안녕이 곧 인간의 안녕을 실현하는 데 필수 적이며, 산업문명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 베리의 지구중심주의는 지구의 안 녕, 즉 인간과 지구의 공생이 가능하도록 지구를 회복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관점에 있다. 에드워드 윌슨의 말처럼, 다른 동물들이 먹이사슬의 균형 속에서 생존해야만 우리 인간도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구의 생명체계에 호혜적인 지원을 하지 않으면 지구도 인간을 지원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 공동체, 국가의 행동까지 포함하는 지구적 차원의 윤리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구중심적 시간에서 베리는 인간의 윤리학을 생태학적 의무의 파생물로 보고, 포괄적인 공동체의 복리 안에 서 인간의 복리를 실현하는 것을 윤리학의 규범으로 삼을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지구행성 전체의 맥락에서의 윤리, 즉 인간과 인간이 아닌 다른 구성원들 사이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지 구윤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
그가 제시한 생태대는 “인간 공동체가 보다 큰 지구공동체 안에서 상호-증진하는 방식으로 현 존”하는 지질학적 시대를 말한다. 인간의 행복과 지구의 건강이 동시에 구현되는 시기라는 점에 서 그가 제창하고 있는 윤리는 지구와 인간이 공생할 수 있는 지구윤리인 것이다.
3. 반다나 시바와 김대중의 지구민주주의
지구공동체 논의는 과학자이자 ‘에코 페미니즘’의 사상가인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로 이 어진다. 반다나 쉬바는 우리는 지구 공동체의 일원이며, 지구시민으로의 전환을 요청하면서 지구민 주주의(Earth Democracy)를 제창한다. ) 지구민주주의의 모토는 지구의 모든 존재가 주체이며, 시 민이고, 권리들을 갖고 있으며, 존경과 경외를 받을 자격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된다.31)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 지구민주주의는 “Vasudhaiva Kutumkam(바수다 이바 꾸뚬깜, earth family)”라는 인도의 토착사상, 모든 종(species)과 모든 사람에 대한 존중(resp ect) 그리고 만물은 객체가 아니라 주체라는 인식에 근거한다. ) 여기서 지구가족(earth family)이라 는 것은 지구에 의존하는 모든 존재의 공동체 즉 지구공동체를 의미한다.33) 지구민주의의 사상적 토대는 모든 생명이 “지구의 시민”, “지구의 자녀”라는 인식에 기초한 내재적 가치와 만물의 생태적 상호의존성으로서, 모든 생명이 지구의 구성원으로서의 생존을 위해 식량, 물, 건강, 교육, 직업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인식에 있다. 당시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이었던 김대중은 For eign Affairs에 기고한 「문화는 숙명인가?」에서 ‘지구민주주의’(global democracy)개념을 제창하 였다.
지구 민주주의는 우리가 서로를 존중해 주는 것이 자연을 존중해 주는 것과 연관된다는 사실을 인 식할 것이며, 후세대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추구해 나갈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동식물에 파괴 의 위기를 가져다주었고 환경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하늘과 땅과 그 안 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참다운 형제애로 감싼다는 의미의 지구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반다나 시바가 인도의 토착사상에 근거한 지구민주주의를 제창했다면, 김대중은 한국의 토착사 상인 동학사상에 바탕 한 지구민주주의를 제안했다. 인간 이외의 존재들까지 주체로 인식하는 지 구공동체의 차원에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34) 반다나 시바와 김대중의 지구민주주의는 인간과 국가중심의 민주주의에서 비인간적 존재들까지 포괄하는 민주주의라는 점에서 ‘지구정치(earth politics)’으로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Ⅴ. 지구윤리로서 지구헌장
지구공동체와 지구윤리는 2,000년 유엔총회에서 발표된 「지구헌장」으로 구체화되었다. 싱어가 「 세계인권선언」을 윤리의 진화로 보았듯이, 「지구헌장」은 지구위험시대를 대응하기 위해 진화된 윤 리로 볼 수 있다.
「지구헌장」 최종안은 16개 주 원칙과 61개 보조원칙을 가지고 있으며, 크게 생태적 온전성, 사회 및 경제 정의, 민주주의와 비폭력 그리고 평화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구헌장」은 우리의 보금자리인 지구의 생명력을 지키고, 지속가능한 지구공동체 건설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지구헌 장」 최종안 이전에 작성된 초안은 총 18개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구는 우리의 집이며 지상 모 든 것의 집이다. 지구는 그 자체로 살아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일 따름이다. 인간은 훌륭한 삶의 형태와 문화를 가진 지구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지구의 아름다움 앞에서 겸손하며 생명성의 가치 를 공유하고 우리자체의 근원을 공유한다”라고 선언했다. 「지구헌장」은 인간과 모든 생명체를 포 괄하는 ‘지구공동체’ 모두의 권리와 의무를 정식화한 문헌이라는 점에서 ‘지구윤리’로서의 의 미가 강하다.
34) 조성환·허남진, 「지구인문학적 관점에서 본 한국종교 –홍대용의 의산문답과 개벽종교를 중심으로」, 신종교연구 43, 2020, 113-114쪽.
1. 지구와 모든 생명을 존중하자. 지구와 모든 생명체 그리고 인간 존재는 내적인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유용한 가치를 갖고 있는가의 유무에 관계없이 이를 존중해야 한다.
2. 지구를 보살피고, 지구 생태계의 다양성과 통일성 그리고 아름다움을 지키고 회복시키자.
7. 비폭력을 옹호하고, 평화는 오직 자기 자신과, 자기 이웃과, 다른 형태의 생명과, 지구와 조화롭 고 균형 잡힌 관계를 맺을 때만 달성될 수 있다.
9. 원주민이 ‘어머니 지구’를 보살피고 지키는 데 핵심적인 구실을 하고 있음을 재확인한다.
15. 만물을 공감으로 대하고, 모든 생명체를 폭력과 자의적인 절멸로부터 보호한다.
18. 지구공동체를 지키는 일에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책임을 지고 있다.
위의 인용구절은 「지구헌장」초안의 내용이다. ‘어머지 지구’, ‘지구공동체’, ‘지구와 조 화’등의 문구는 「지구헌장」이 러브록의 가이아론, 토착사상 그리고 레오폴드와 베리의 영향이 강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35) 특히 ‘만물을 공감으로 대하고’라는 문구는 해월의 경물사상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이제 전지구적 차원에서 지구윤리로서 경물사상이 주창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36)
Ⅵ. 맺음말
또 하나의 지구는 없다! 지구는 단 한번 주어진 선물이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펜데믹과 기후위기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지구 등 어긋난 관계의 결과이다. 이제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지구공동체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지속가능한 지구공동체 건설을 위한 지구윤리의 정립과 실천이 요구된다.
35) Ibid, pp. 176-203.
36) 해월 최시형이 시천주의 구체적인 실천 덕목으로 제시한 십무천(十毋天) 역시 지구윤리로서 충분히 의 의가 있다. 십무천은 모두 10개로 구성되어 있는 지구윤리로 재해석될 수 있다. 동학에 따르면 인간뿐만 아니라 천지만물이 고귀한 하늘님으로 인식하고, 이러한 관점에서 경인뿐만 아니라 경물까지 강조하고 있 기 때문이다. 십무천은 사람, 천지만물을 가장 성스럽고 고귀한 존재로 모시고 섬기라는 행동강령이다. 박 맹수, 「동아시아 고유한 생명 사상」, 개벽의 꿈, 동아시아를 깨우다: 동학농민혁명과 제국 일본, 서울: 모시는사람들, 2011, 5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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