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재발견 - 불교 사상의 제로포인트
우오가와 유지 (지은이),이광준 (옮긴이)조계종출판사2017-03-27
깨달음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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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쪽140*200mm374gISBN : 9791155800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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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깨달음의 정의와 깨달음에 도달했을 때의 상태를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하나하나 설명한다. 특히 깨달음을 설명하기 위해 무상, 고, 무아라는 테마에서 시작해 연기까지 이어지는 저자의 설명은 이의가 있을 수 없어 보인다. 그 명징한 설명으로 이 책은 일본 불교학계에서 일가를 이뤘다는 수많은 학자들로부터 추천사를 받기도 했다.
목차
제1장
절대로 얼버무려서는 안 되는 것
: 불교의 ‘방향’
불교는 ‘올바르게 사는 길’?
밭을 가는 바라드바자
노동(production)의 부정
마간디야의 딸
생식(生殖, reproduction)의 부정
흐름에 거스르는 것
재가자(在家者)에 대한 가르침의 성질
절대로 얼버무려서는 안 되는 것
이 책의 입장과 목적
다음 장으로의 이행
제2장
불교의 기본 구조
: 연기(緣起)와 사제(四諦)
‘전미개오(轉迷開悟)’의 한 가지 의미
유루(有漏)와 무루(無漏)
맹목적인 버릇을 멈추게 하는 것이 ‘깨달음’
의지해서 생기는 것
기본적인 큰 줄기
고(苦)와 무상(無常)
무아(無我)
가면(假面)의 예속(?屬)
혹업고(惑業苦)
사제(四諦)
불설(佛說)의 매력
다음 장으로의 이행
제3장
‘탈선악(脫善惡)’의 윤리
: 불교에서의 선과 악
명상으로 인격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선(善)도 악(惡)도 버리기
명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십선십악(十善十惡)
선인낙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因苦果)
소박한 공리주의(公利主義)
유루선(有漏善)과 무루선(無漏善)
사회와 대립하지 않기 위한 ‘율(律)’
‘탈선악(脫善惡)’의 윤리
다음 장으로의 이행
제4장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하지 않고
: ‘무아(無我)’와 윤회
‘무아(無我)’라고 말은 하지만
‘무아(無我)’의 ‘아(我)’는 ‘상일주재(常一主宰)’
단견(斷見)도 아니고 상견(常見)도 아니고
붓다의 ‘무기(無記)’
‘엄격한 무아(無我)’도 ‘비아(非我)’도 아니다
무상의 경험아(經驗我)는 부정되지 않는다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윤회한다
‘무엇’이 윤회하는 것인가
현상의 계기(繼起)가 윤회이다
붓다는 윤회를 설하셨다
윤회는 불교 사상의 암이 아니다
‘무아(無我)’와 ‘자유(自由)’
다음 장으로의 이행
제5장
‘세계’의 끝장
: 현법열반(現法涅槃)과 그곳으로 가는 길(道)
아집이 형이상학적인 인식으로 이어진다?
‘세계’란 무엇인가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
‘세계’의 끝장이 고(苦)의 끝장
집착에 의한 고(苦)와 ‘세계’의 형성
희론적멸(戱論寂滅)
나[我]가 ‘세계’상(像)의 초점이 된다
왜 ‘무기(無記)’였던 것인가
염리(厭離)하고 이탐(離貪)하여 해탈하다
마음챙김(sati)의 실천
현법열반(現法涅槃)
다음 장으로의 이행
제6장
불교사상의 제로포인트
: 해탈.열반이란 무엇인가
열반이란 결정적인 것
이르는 길은 어렵지 않다(至道無難)
지혜는 사고(思考)의 결과가 아니다
직각지(直覺知)
불생(不生)이 열반이다
세간과 열반은 다른 것
적멸위락(寂滅爲樂)
불교의 실제
‘실제로 증명되는 것’
불교사상의 제로포인트
다음 장으로의 이행
제7장
지혜와 자비
: 왜 죽지 않았던 것인가
성인(聖人)은 어질지 않다
자비와 친절
범천권청(梵天勸請)
의미와 무의미
‘유희’
이타행은 선택하는 것
다양성을 생각한 인간
불교의 본질
다음 장으로의 이행
제8장
‘본래성(本來性)’과 ‘현실성(現實性)’
사이에서
: 그 후의 이야기
하나의 참고 의견
‘대승’의 기묘함
‘본래성’과 ‘현실성’
무엇이 ‘본래성’인가
중국선(中國禪)의 경우
미얀마불교와 태국불교
‘불교로 산다’는 것
마치면서
후기
미주
접기
책속에서
P. 41 오늘날의 테라와다 불교에서도 수행자가 아라한이 되면 설사 그 사람이 재가자였다 하더라도 그 후의 인생은 죽거나 출가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 그 안에 담긴 사정도 위의 이야기와 같다.
고따마 붓다의 불교는 그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종종 ‘염세주의’라거나 ‘허무주의’ 혹은 ‘생(生)의 부정’이라고 평가되어 왔다.
뒤에 가서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고따마 붓다의 불교가 ‘생’ 그 자체를 철두철미하게 부정하였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그 가르침에는 ‘범부(깨닫지 못한 중생)가 생(生)의 내용이라 생각하는 것들’을 적어도 일단은 부정하고, ‘해탈’로 나아가게 하려는 의도가 확실히 있었다. 그러므로 고따마 붓다의 불교는 평범한 현대인들이 생각하듯 ‘인간으로서 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설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같은 관념의 전제로 되어 있는 ‘인간’이나 ‘올바르다’라고 하는 이야깃거리[物語]들을 부셔 버리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접기
P. 88 불교의 본질은 ‘탈선악’이지, ‘반선악’이 아니라는 점이 불교 윤리관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선악을 부정하는(이 또한 구애받음의 일종이다)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초탈 (超脫)한 경지를 지향하는 이상 수행자가 일상의(즉 ‘세간(世間)’의 범위 내에서의) 행동에서 선을 행하는 것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자업자득’이라고 하는 불교의 세계관에 따라 보면 악한 행위는 수행자에게 고통의 결과를 뒤따르게 하므로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을 구하는 불교인이라면 악한 행위를 피할 이유는 있다. 접기
P. 121~122 “무엇이 윤회하는 것인가?”라는 문제는 불교의 문맥에서 보면 애초부터 분류 오류(category error)인 문제이다. 존재하고 있는 것은 업에 의한 현상의 계기(繼起)뿐이고 그 과정, 프로세스가 ‘윤회’(돌아 흐르는 것)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지, 거기에 ‘주체’라고 말할 수 있는 고정적인 실체는 내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회’라고 하면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이 죽어서 다른 존재로서 다시 태어나는 ‘전생(轉生)’이라는 이야깃거리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윤회라는 건 전생의 순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당신에게도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현상의 계기(繼起)라는 프로세스로 계속해서 생기(生起)한다. 전생이라고 하는 말은 이를 알기 쉽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우오가와 유지 (魚川祐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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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출생. 도쿄대학교 문학부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했고 같은 대학에서 인도철학?불교학을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마쳤다. 2009년 미얀마로 건너가 현재까지 테라와다 불교의 교리를 배우고 수행하면서 불교, 가치, 자유 등을 주제로 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15년 첫 선을 보인 이 책(원제 『불교 사상의 제로포인트』)은 일본에서 깨달음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촉발시키며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최근작 : <깨달음의 재발견>
이광준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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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박사.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석사를 거쳐 일본 고마자와대학(駒澤大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카운슬링, 치료심리학, 선심리학 등을 전공했다. 백상창신경정신과 임상심리실장, 한림성심대학 교수, 일본 고마자와대학(駒澤大學) 심리학연구실 연구원,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際日本文化硏究センタ?) 국제선학연구소 연구원, 일본 류코쿠대학(龍谷大學) 비상근 강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동서심리학연구소 소장, 일본 류코쿠대학(龍谷大學) 세계불교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불교심리학과 태아학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저... 더보기
최근작 : <붓다의 법담학 연구>,<정토불교의 참회사상>,<법화사상사> … 총 11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조계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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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북한불교 백서>,<발길닿는 그곳에서 부처님을 친견하리>,<몽유록 夢遊錄>등 총 163종
대표분야 : 불교 6위 (브랜드 지수 100,174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불교를 수행하는 목적, ‘착하게 사는 길?’
‘행복에 이르는 길’, ‘인간으로서 바르게 사는 길’ …
명상을 비롯해 불교 수행을 하는 이들의 목표를 물으면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적어도 불교의 개조(開祖)인 고따마 붓다에게는 그런 게 아니었다. 붓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의 수행 목적은 ‘해탈(解脫)’이며 또 그것을 달성한 경지인 ‘열반(涅槃)’이었다. 통상 ‘깨달음’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와서 유달리 명상의 ‘효과’들이 강조되면서 불교 수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것을 달성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담론은 먼 나라 이야기다. 심지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이유로 불교는 자기계발이나 처세에 동원되기도 한다. 나름의 이유는 있겠지만 본래 목적인 깨달음이라는 목표와는 궤를 달리한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듯 애당초 ‘과학성’과 ‘합리성’을 바란다면 불교 관련 책보다는 자연과학 관련 책을 읽으면 되고, ‘처세술’을 알고 싶다면 2,500년 전의 인도인이 현대인의 상황에 딱 맞게 말하는 자기계발서를 읽는 게 훨씬 참고가 될 것이다. 속세의 처세가 불교의 문제였다면 수천 년의 시간과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넘어서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왔을 리가 없으며, 과학성과 합리성이 불교의 특장(特長)이라고 한다면 그 점에 관해서는 근대과학 쪽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에 구태여 불교를 배워야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다시 질문한다. 불교 사상의 제로포인트인 ‘깨달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해탈- 열반을 증득하게 된다면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 맹목적인 버릇을 멈추는 것
사실 해탈-열반의 경지가 애매한 형태로밖에 묘사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 경지가 언어를 넘어선 그 이상의 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탈-열반 그 자체에 대해서 언어로 완전하게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성질이나 그 경지를 달성한 결과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세한 해명이 이루어져도 좋지 않겠는가, 라고 저자는 반문한다. 또한 언어로는 충분히 묘사하기가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그 경험이 실천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로서 그들이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다. 저자는 빨리어 경전과 아함경전 등 비교적 초기에 쓰였다고 전해지는 경전들에서 그 깨달음의 전제와 과정 그리고 그 경지에 대한 단초들을 찾아내고 또 현대 실천자들의 증언으로부터 유추해 그 대강을 찾아간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한마디로 “중생이 자신의 버릇 때문에 맹목적으로 계속하는 행위를 끊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불교에서는 전통적으로 마음에 번뇌가 있어서 더렵혀진 상태를 ‘유루(有漏)’라고 불러왔는데 이런 루의 영향 아래 있는 중생의 행동 양식을 다른 말로 바꾸면 ‘나쁜 버릇’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습관적이고 맹목적인 행위로서 ‘이건 나쁜 짓이다. 무의미한 일이다’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정신이 들면 어느새 또 저지르고 마는 행위이다. 불교에서 ‘수행’이 필요하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머리로는 제대로 이치를 깨달았다고 해도 습관적인 행위를 끊을 수가 없는 한 달성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게 ‘깨달음’이라는 것의 성질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깨달음’을 지향한다는 것을 현상의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맹목적이고 습관적인 행위, 즉 버릇(漏와 비슷한 것, 번뇌)을 영원히 정지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간단히 설명하면 ‘중생이 버릇에 의해서 맹목적으로 행위를 계속하는 상태’가 ‘미혹[迷]’이고, ‘이것이 끊어진 상태’가 ‘깨달음’이다. 특히 남방불교에서 강조하고, 최근 대승의 승려들도 채용해서 흔히 사용하는 ‘마음챙김(sati)’이 이를 위한 실천이다.
왜 일본에서는 이 책 때문에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나?
이 책은 깨달음의 정의와 깨달음에 도달했을 때의 상태를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하나하나 설명한다. 특히 깨달음을 설명하기 위해 무상, 고, 무아라는 테마에서 시작해 연기까지 이어지는 저자의 설명은 이의가 있을 수 없어 보인다. 그 명징한 설명으로 이 책은 일본 불교학계에서 일가를 이뤘다는 수많은 학자들로부터 추천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깨달음에 대해 다양한 견지를 갖고 있는 일본 학계는 들썩였다. 심지어 논쟁은 물론 이 책을 비판하는 단행본까지 쏟아졌다. 저자가 던진 도발적인 질문 혹은 신선한 논쟁 중에 수행자와 학계가 가장 불편해 했던 것은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 붓다는 깨달은 다음에 왜 죽지 않았나?
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 후 저자는 “진리를 체득한 다음에 하는 모든 ‘행위’는 순수한 ‘유희’임을 고려”해야 한다며 붓다의 이타행은 ‘선택된 것’이라고 주장했다.(제7장 「지혜와 자비」 부분)
△ 붓다는 인간으로서 바르게 사는 길을 설한 게 아니다.
저자는 붓다의 말씀은 오히려 사회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노동과 생식을 부정하고, 애초부터 그 전제가 되는 ‘인간’이라든가 ‘올바르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을 파괴하는 작용을 한다고 봤다. 그래서 불교는 반선악(反善惡)이 아니라 탈선악(脫善惡)이라는 주장이다.(제3장 「‘탈선악’의 윤리」)
반면 불교를 말하면서 아직도 윤회를 부정하는 사람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논증(127쪽 이하 내용), 무아이기 때문에 윤회한다(115쪽 이하 내용)는 논지와 증명은 불교를 더 불교답게 했다는 높은 평가를 일본 최고의 불교학자들로부터 받기도 했다. 물론 아직도 윤회를 부정하는 일부 학자들과 윤회의 주체가 없을 수 없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비판거리가 되기도 했다.
절대로 얼버무려서는 안 되는 것
저자는 현재 일본 불교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피’다. 아직 마흔도 안 된 젊은 나이라는 것 외에도 학계와 수행자 사이에 여전히 만연한 윤회 부정과 윤회의 주체를 설정하는 문제에 대해 과감하게 비판한다. 이런 비판에는 일본 불교학계의 거장인 나카무라 하지메(비아설)나 와츠지 테츠로(윤회와 불교 세계관의 분리) 등도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이런 거장들의 불교 논지 전개가 경전에서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 솎아 내거나 때론 ‘절대로 얼버무리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애써 무시하는 태도라도 통렬하게 비판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명상으로 인격이 좋아지지 않는다’거나 ‘불교는 착하게 살기 위한 가르침이 아니다’, ‘붓다가 깨달은 후 바로 열반에 들지 않고 법을 설했던 것은 유희다’라는 등의 도발적인 주장과 논지가 합쳐져 그 ‘젊은 피’는 논쟁의 한가운데 서고 말았다.
하지만 ‘깨달음’이라는 불교의 애초 목적을 찾아가는 그의 진지한 여정은 어쩌면 ‘(나의 가르침은)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얘기했던 붓다의 태도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없지 않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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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과 열반을 이해하는데는 많은 도움을 주나, 저자가 교리적으로 인정하는 무아윤회에서는 주체성이 없는 이유에 대한 납득할만 한 세밀한 언급이 없어 많이 아쉽다.. 다음 저작에서는 그러한 부분을 자세히 꼭 다뤄줬으면 좋겠다. 논리적인 추리가 돋보이는 연구서 같은 불교책이라 신선했다. 구매
케이팩스 2017-06-1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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