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4
[특집]묘지문화가 바뀌고 있다 -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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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묘지문화가 바뀌고 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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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률 증가하면서 새로운 장묘 등장… 선조합동묘·납골평장에서 수림장까지
장묘시설이 삶의 공간으로 들어오고 있다. 산자와 죽은자가 공유하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징후를 보이는 것이다. 장묘문화가 매장에서 화장으로 급속히 변화하면서 생긴 일이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1997년에 23.2%이던 화장률이 2004년에는 50%를 상회했다. 일부 장묘시설이 도심으로 들어오면서 집단화·소형화 추세도 보인다. ‘품위 있는 주검’의 관리가 곧 생활 속 장묘문화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친환경적인 장묘방법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와 국민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장묘문화 변화의 핵심적 원인은 가족해체 현상과 공공화장시설의 부족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묘지 및 장묘시설의 부족이라는 현상을 타개하려는 게 장묘문화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장묘문화적 관점에서 변화의 동력이 부족한 이유다. 박복순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약칭 장개협) 사무총장은 “장묘시설조차 유행이나 추세를 따라서는 안 된다”면서 “‘죽음의 복지’도 책임지는 나라의 바탕에는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이 선결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양한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장묘문화가 자리잡아야 전통적 미풍양속의 훼손없이 우리의 문화로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최근 들어 작지만 의미있는 장묘문화의 변화 조짐들로 주목받고 있는 몇몇 사례를 소개한다.
선조합동묘 광주 장등동 장등마을. 나지막하지만 대지를 향해 힘차게 달리는 산자락 끝에 작은 하천이 산 어귀를 감아돌고 있다. 울창한 숲 한가운데 왕릉처럼 커다란 묘지가 하나 있다.
지난해 12월 단장한 이 묘지는 교육공무원 출신의 풍수학자인 윤갑원씨(정통풍수지리연구학회 이사장)가 조성한 파평윤씨 ‘선조합동묘’다. 이 묘지는 파평윤씨 시조인 태사공 23대 후손부터 29대 후손까지 7대에 걸친 23위를 모신 합동묘다. 그러나 이 무덤은 흩어져 있던 선대의 무덤을 한 곳에 모아서 합장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다. 우리 현실에 맞는 새로운 매장문화를 창조하여 이를 정착시키고 국토를 합리적으로 활용하려는 연구의 결실이다. 윤갑원씨는 “어렸을 때 선산에서 벌초할 때마다 선조묘가 물기에 젖어 있는 것을 보았고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죄책감을 금할 수 없었다”면서 “적지(適地:부드럽고 습기가 없는 땅)로 이장하겠다는 생각에 5년여 동안 풍수학적 탐색, 문헌 및 선례 연구 끝에 얻은 결론”이라고 말했다.
‘선조합동묘’란 신위를 모시는 소목법(중국의 장법)과 한국의 암장법을 원용해서 5대조 이상의 선조를 한 곳에 모신 장묘법으로 유골을 추려 나무 상자에 넣어 작은 웅덩이를 파고 그대로 안장하던 옛날의 암장법을 응용했다. 이런 장법으로 활용한 묘지는 납골당처럼 소요 면적이 작다.
그는 “5대 이상의 세월이 흐르면 시신의 원형체는 사라진다”면서 “오직 유골을 적지에 안전하고 정중하게 봉안하여 자손의 도리를 다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윤갑원씨는 “지면은 납골당처럼 작은 면적만 소요돼 국토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국가정책에 어긋나지 않고 묘는 후손들이 선조의 성묘나 제사 등으로 효심을 표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고 말하고 “나도 죽으면 결국 이 묘에 합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조합동묘의 설치는 간단하다. 크기는 가로 28㎝, 세로 38㎝가 적당하다. 또 간격은 부부간은 15㎝, 세대간은 20㎝ 정도로 파면 한 봉분에 40~50구를 매안(埋安)할 수 있다. 매안 순서는 신위를 모시는 소목법과 사후 남우여좌(男右女左)의 예법을 따른다.
이 선조합동묘가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이 묘지를 찾아온다. 석비 아래에 비닐로 싼 방명록이 있는데 참관자 일련번호가 200번을 넘었다. 윤갑원씨는 “멀리 경상도에서 왔다는 한 사람은 ‘왜 이 방법을 미리 생각지 못했을까’라고 눈물지으며 ‘지난 해에 가족납골묘를 만든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고 전하면서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필도 서울보건대학 교수(장례지도과)는 “이런 시한부 매장방법이 국민의 정서나 우리의 문화에도 어울리는 바람직한 형태의 장묘”라고 전제하면서 “특히 공공장묘시설이 부족한 현실에 좋은 아이디어로 보인다”고 말했다.
납골평장(平葬) 화장과 매장을 혼합한 형태의 장묘법인 납골평장도 새로운 장묘 형태로 기대를 모은다. 납골평장은 화장한 유골을 나무함에 담아 봉분없이 묻고 와비(臥碑)를 설치하는 방식이다. 부산에 있는 UN묘지와 같은 매장법이다. 남해군이 지난해 10월 고현면 갈화리에 640평 규모로 묘역을 조성, 일반분양에 들어갔다. 납골평장은 지방자치단체가 도입한 첫 사례다. 사실상 실험적 장묘법인 셈이다.
640평 공원 가운데 300평이 묘역이다. 총1200기의 유골을 안치할 수 있다. 묘역 주변에는 나무와 꽃 등을 심어 공원 개념의 휴식공간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장명정 사회복지과 노인청소년계장은 “문중 단위로 9곳의 시범묘지를 둬 흩어져 있는 선조묘를 가족묘로 개장(改葬)하게 홍보하고 있다”면서 “남해군의 대성인 연안 차씨도 가족묘를 만드는 등 지역주민의 호응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장묘문화에 일대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방식”이라면서 “‘장묘법’이 개정되어 공원묘지 조성이 수월해지면 마을 어귀 등에 쌈지공원 형태로 공원묘지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묘사업 담당자인 김재실 주사보는 “유골이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가려면 15년 정도가 걸릴 것”이라며 자연회귀성을 강조하고 “만일 15년 매장시한의 연장을 원하면 두 차례 연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시신을 매장해서 봉분을 세우면 한 봉분에 3~5평이 필요하다. 지역주민에게 분양되는 납골평장 시범묘역은 1기에 가로 세로 90㎝, 0.25평으로 가로 40㎝, 세로 30㎝. 묘역당 1개의 와비를 설치할 수 있다. 1기 안치 비용은 15년에 4만9500원, 부지사용료는 1만2000원, 그리고 묘비와 설치재료비 8만8000원 등 1기 안치비용은 모두 15만9500원이다. 이는 남해군내 기존 매장묘역을 분양받았을 때 소요되는 묘역면적 2.5평, 사용료 49만5000원, 관리비 12만원의 10분의 1이다. 박복순 사무총장은 “세계 어디에 개인이 마음대로 장묘시설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결국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공공 장묘시설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렵지만 공공시설에서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남해군은 ‘우리 시설만이라도 법대로 시행하자’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납골평장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수림장 묘지난 해소와 산림보호라는 이중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수림장도 자연회귀형 장묘법이다. 수림장은 사람이 죽으면 화장한 다음 유골을 나무 밑에 묻거나 뿌리는 것이다. 나무와 숲과 함께 영생하도록 한다는 자연친화적 장묘형태다. 스위스·독일·영국 등에서 수림장은 대중적인 장묘문화다. 이 방법이 한국에서 관심을 끌게 된 계기는 지난해 가을 임학계의 거목인 김장수 고려대 교수의 장례식이다. 김 교수가 “나의 유골을 나무 밑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영천 은해사가 사찰 주변 소나무 군락지 5000평을 수림장으로 개방했다. 주지 법타스님이 김 교수의 얘기를 듣고 불교의 윤회설과 접목시킬 수 있는 수림장을 개장한 것. 지난 1월 개장 이후 18구의 유골이 나무 밑에 안치됐다. 수림장된 나무에는 고인의 이름과 출생·사망일자 등을 적은 명패를 가지에 매어둔다. 비석 등 일체의 조형물은 설치할 수 없다. 은해사 윤광스님은 “장례문화를 바꾸는 의미가 있고 무엇보다 산림관리까지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하루에 3~4건의 문의가 오는 등 비교적 호응이 좋다”고 말했다. 법타스님을 돕는 전진우씨도 “국내에 모델이 없어 시작하기까지 많은 고생을 했다”면서 “이른 시일내 대중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물론 수림장이 김장수 교수 장례식 때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 이전부터 문중이나 개인적으로 선산 등에 수림장 형태의 장례를 치른 사례가 적지 않다.
경북 상주시 내서면 북장리에 있는 진주 강씨 집의공파의 가족묘원도 수림장이다. 200여평의 부지엔 모두 49명의 골분이 묻혀 있다. 앞으로도 70여명이 더 안치될 수 있다. 이 골분은 인근 야산과 제주도 등에 흩어져 있던 유골을 화장처리한 것. 그 골분을 땅에 묻고 그 위에 70×80㎝ 정도의 좌대와 검은 표석을 하고 고인의 이름을 새겼다.
묘 터는 항렬에 따라 28칸의 자리를 잡고 부부는 합장했다. 제단도 하나다. 강신해씨가 앞장서 이 가족공원을 조성했다. 강씨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은 묘지로 덮인 수많은 산을 비행기에서 본 뒤다. 강씨는 “금수강산이 묘지산으로 변해가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면서 “앞으로 공동묘지나 무연고 묘지 재개발 때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영천시 고경면 오룡리에 있는 ‘인덕원’도 2002년 경주 최씨 진사공파가 세운 산골 방식의 가족묘원이다. 500여 평의 부지에 마련된 인덕원에선 흙과 유골을 1대1 비율로 섞어 잔디 밑에 묻고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는다. 고인의 표식은 입구에 50여명의 이름을 새겨 놓은 돌(名單石) 위에 ‘몇년 졸(卒)’이라는 글자를 추가로 새겨 넣는 것으로 끝이다. 문중회장인 최봉진씨는 “우리 매장 문화는 죽은 뒤에 효도한다는 허례허식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한다”며 “대대로 골분을 공원 내에 모실 수 있고 장례 치르는 일도 아주 간편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와 같은 장묘법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선 수림장을 빙자한 상업주의의 침투를 우려한다. 서울보건대학 이필도 교수는 “벌써 몰지각한 산림업자나 산림조합이 나무장사를 할 궁리를 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장례시설에 상업주의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도심 속의 납골당 서울 시청앞 덕수궁과 영국대사관 사이에 있는 성공회 서울교구주교좌성당에 납골당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본관 지하에 500여기의 유골을 모신 납골당이 있다. 정길섭 신부는 “당초 원스톱 장례시스템를 갖추려 했으나 신자들의 정서를 고려해서 1997년 성당을 증축하면서 납골당만 만들었다”면서 “4대문 안의 유일한 납골 시설”이라고 말했다.
이곳의 이름은 ‘안식의 집’. 25평 규모의 지하 납골당에 들어서자 아늑할 뿐 혐오시설이라는 느낌은 전혀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방에는 다른 성당 부속실과 달린 어떤 표식도 없었다. 정길섭 신부는 “다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이름표를 붙이면 그 순간부터 혐오시설이 된다”고 말했다. 이준 신자회장도 “서울교구주교좌성당에 어린이 참관객들이 오면 꼭 납골시설을 둘러보게 한다”면서 “이런 시설을 견학함으로써 주검은 두려운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지 않게 한다”고 말했다.
유골을 모시는 납골장을 봉합하지 않고 보관하는 게 이곳의 특징. 한 젊은 망자의 납골장 속에는 향초, 조화, 작은 액자, 고인의 유품 등 추모의 뜻이 담긴 소품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안식의 집’에 안내한 이승철 성당사무장은 “다른 납골장에선 납골장의 액자만 보는 데 유골함이라도 만져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의정부 신곡2동 성당도 2002년에 5000기를 안치할 수 있는 납골당 시설을 완비했다. 현재 300기 유골이 보관되어 있다. 신곡2동 성당이 있는 곳은 의정부 제2청사, 상가, 주택가 등이 혼재하는 지역. 이 성당 납골시설에 대해 자문을 했다는 박복순 사무총장은 “혐오시설로 치부되는 납골시설이 들어선 것은 지역주민들의 이해가 따랐기 때문”이라면서 주민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물놀이를 하던 한 어린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몸을 던져 그 아이를 구하고는 힘이 빠져 끝내 목숨은 잃은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이 납골당 시설 증축의 간접적인 계기가 됐다”는 것이었다. 이 성당 관계자는 “그런 일은 잘 모르겠다”면서도 “아직 납골당 시설을 못마땅해 하는 지역주민과 마찰을 없애기 위해 성당 안으로 영구차를 못들어오게 하는 등 여러 가지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흑석동 성당, 절두산 성당 등도 납골시설을 갖추었다.
서울 태릉성당은 지역주민의 반대로 계획하고 있던 납골당을 건립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3200기 정도 유골을 모실 수 있는 납골시설 허가를 받기 위해 노원구청에 신고를 했으나 노원구청측이 주민반대를 이유로 사업신고서를 받아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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