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⑥원톄쥔 “내년 안에 식량위기…글로컬라이제이션이 새 트렌드 될 것” - 경향신문
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
[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⑥원톄쥔 “내년 안에 식량위기…글로컬라이제이션이 새 트렌드 될 것”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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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6.11 06:00 수정 : 2020.06.11 08:15글자 작게글자 크게
7인의 석학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묻다...오늘부터의 세계
코로나19 위기는 전 지구를 가로질러 덮쳐왔다. 이번에는 아시아의 농업경제학자인 원톄쥔(溫鐵軍)의 시선을 따라 글로벌 경제를 이끌어온 서구 중심 논리와 코로나19 위기 해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원톄쥔은 강단을 넘어 생태운동가로서 중국 전역 2000여개 지역에서 로컬경제 시민조직인 공동체 기반 농업(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CSA) 운동을 20여년간 이끌고 있다. 그는 과거 냉전시기를 거쳐 현재까지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지구의 다른 반쪽 현장을 누비며 연구하고 대안을 모색해왔고, 중국 주류 기득권에게도 거침없이 발언해왔다. 5월14일 인터넷 화상 인터뷰로 진행했다.
중국의 농업경제학자이자 생태운동가인 원톄쥔 전 런민대 교수는 ‘7인의 석학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묻다…오늘부터의 세계’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화의 실패’는 명확해졌다고 진단한다. 그는 생태마을 등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인류에게 충고했다. 2014년 6월 중국 런민대 사무실에서 ‘문명, 그 길을 묻다’ 기획 당시 안희경씨와 인터뷰하는 원톄쥔 교수. ⓒ안선영
인구 절반 이상 농촌 사는 중국
자립할 수 있는 생계 있어서
고립 선택하고도 코로나 견뎌
안희경(이하 안) = 중국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이 진정세로 돌아선 듯한데, 특별히 진행한 정책이 있나요.
원톄쥔(이하 원) = 바이러스와 싸우는 나라들에 도움이 되고자 전하고 싶은 두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중국에선 한의학을 사용해서 병자들을 돌봤습니다. 중국 한의학 병원에서는 서양의학과 혼용해서 환자를 치료하는데요. 코로나19 환자들에게 전통 한의학 약재를 처방했어요. 이 과정에서 사망에 이른 사람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한서도 한의학 병원은 사망자가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주류 언론은 아주 드물게 보도합니다. 중국에서도 한의학이 주류가 아니기 때문이고, 그들은 신냉전 이데올로기 덫에 빠져 세계로부터 비판을 받을까 몸을 사리기 때문이죠. 2003년 사스가 발생했을 때 홍콩 일부 지역에서는 중국 전통의학을 꺼렸습니다. 그 지역은 사망률이 높았죠. 뭔가 잘못된 것을 알고 광둥성에 한의학 의료진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어요. 광둥성 의료진이 한의학 약재를 사용해 도움을 줬습니다. 매우 효과적이었죠. 두 번째로 말하고 싶은 점은 농촌의 바이러스 대응입니다. 중국에는 아직 50% 넘는 사람들이 농촌에 삽니다. 농촌에는 마을에 의사가 없어요. 병원도 없습니다. 상상해보세요. 의사도 없고 병원도 없는 곳에서 사람들이 바이러스 공격을 무엇으로 막을까요? 그들은 자신들 마을을 폐쇄했습니다. 스스로 고립시킴으로써 자립을 이뤘죠. 마을 안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보낼까요? 모두들 농작물을 키웁니다. 광활한 경작지가 있고, 닭을 치고 소와 돼지를 기르고, 작은 가게들이 즐비하며 목수도 있고, 전기 기술자도 있고, 식당과 술집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을 안은 하나의 독립적인 사회죠. 자립할 수 있는 생계가 있어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외부인이 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라면 안전할 수 없겠죠. 저는 지난겨울과 봄에 푸젠성에 있는 산골 마을에 있었어요. 인터넷으로 강의하고 회의도 하며 숲에 나가 죽순도 캐고 봄나물을 뜯어 만족스러운 생활을 했습니다.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었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지냈어요. 중국이 이 심각한 바이러스를 다스릴 수 있는 이유는 중국 인구의 반이 어떤 보살핌도 필요치 않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에 관한 일체의 비용을 치를 필요가 없죠. 당신이 진실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기 바랍니다.
안 = 코로나19 치료에 중국 한의학이 효과적이라는 기사를 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원 = 많은 사람들이 웹에 올렸습니다만 중국 공식 사이트에서는 보기 어려울 겁니다. 여러 지방 정부들은 밝히고 있고요. 지금 이 바이러스 위기는 의료적인 위기일 뿐 아니라 사상적 위기이기도 합니다. 중국 공식 매체들은 우리의 경험에 대해서 말하기를 꺼립니다. 서구 언론들이 중국은 거짓말쟁이고 투명하지 않다고 비판의 날을 세우기에 몸을 사리는 겁니다.
인터뷰 1주일 뒤 베이징에서 열린 양회에서 중국 의학계 권위자이자 인민대표인 장보리(張伯禮) 원사가 중의약 관련 법을 발의하며 우한에서 82일간 실시한 임상시험 사례를 보고했다. 한방 치료를 통해 병세를 악화시키지 않고 경증 상태에서 치료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한의학 독감 치료제 가운데 롄화칭원(蓮花淸瘟)은 코로나19 치료 효과를 입증했고, 브라질·캐나다·인도네시아 등 10여개국에 수출됐다(공산당 기관지 베이징 광명일보 5월24일 보도).
안 = 서구 미디어에서는 동아시아 국가가 코로나19 위기를 빨리 극복한 이유는 독재를 경험했고, 민족주의적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합니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전체주의 체제라서 가능했다고 해석하는데요.
원 = 서구 사람들, 특히 미국에서는 각자가 마스크를 벗을 권리가 있다고 하죠. 만약에 당신이 그들의 권리를 막는다면 그들은 총을 들어 싸울 겁니다. 개인 중심 사회입니다. 개인주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하죠. 하지만 동양 토착 사회에서 사람들은 사회 전체를 위해 어떤 종류의 자유는 포기하려 합니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서요. 토착민의 대륙에서 지속 가능한 안전은 무엇일까요? 공동체의 관심사를 중시할 때, 공동체적인 합리성을 가질 때, 지속 가능한 안전을 갖습니다. 두 사회는 서로 다른 합리성을 갖고 있어요. 우리는 미국인들을 비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요구하고 싶어요. ‘그러니 우리를 비난하지 말라.’ 우리를 집단주의, 전체주의, 독재 등등 많은 이름으로 부릅니다. 별스럽지 않아요.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런 종류의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지금은 신냉전 이데올로기예요. 신냉전은 미국에서 조지 W 부시가 권력을 잡고 나서 도래했습니다. 부시는 중국을 새로운 악의 축 동맹으로 만들었죠. 러시아·이란·이라크 등을 포함해서요. 이 중 누구도 스스로 신냉전 이데올로기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무엇이 구냉전 이데올로기냐고 묻는다면 저는 회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고만 말하겠습니다. 떠올리고 싶지 않아요.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방식
평화·안전 위한 새 이데올로기
안 = 그렇다면 평화와 안전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요.
원 = 자연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무엇이 인류를 위해 의미로운지 생각하고 새로운 생태시스템을 갖도록 하는 거죠. 저와 우리 동료들의 새 이데올로기예요. 이는 정부가 아니라 민간에서 일어난 사상입니다. 생태문명 속에서 순리대로 속도를 늦추어 사는 생태마을, 슬로 푸드, 슬로 라이프를 추구하고 그럼으로써 자연자원 소비를 줄이고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생계 방식이죠. 이 방향이 새로운 철학을 위한 목표이고 새로운 연구를 통해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아 가는 길입니다.
안 = 코로나 위기가 경제위기가 됐습니다. 식량위기로까지 번질까요.
원 = 식량위기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2008년 월스트리트에서 금융 혼란이 일었을 때 미국 정부는 양적완화를 했어요. 대규모로 화폐를 발행한 다음 식량시장에 투자했죠. 그리고 밀 가격이 100% 올랐습니다. 옥수수 가격은 70%, 쌀 가격은 40% 올랐어요. 그 결과 38개의 식량 부족 국가가 나왔습니다. 이들의 배고픔은 사회불안으로 변했고, 카이로 혁명이 일어났죠. 이집트를 비롯해 북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광장에 집결했어요. 국제시장에서 식량을 사오던 이들 나라에 국제시장의 위기가 급속도로 번져 그린 인플레이션이 뜨거워지자 국민들이 일어난 겁니다. 이것이 지난 위기에서 우리가 배운 수업입니다. 이번에는 더 큰 파장이 일 거예요. 미국이 양적완화를 6조달러 이상 늘렸습니다. 2008년에는 4조달러였어요. 만약 유럽 국가들과 일본마저 양적완화를 한다면 거품 자본은 10조달러를 넘어섭니다. 식량위기는 어떤 나라의 생산이 부족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는 금융자본에 의해서 생성됐습니다.
안 = 2008년에는 금융권에 공적자금이 지원됐습니다만, 이번에는 민간에 직접 전달되는 성격이 강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긴급지원금 논의가 상원에서 난항을 겪은 이유가 법안에 트럼프 호텔 지원을 포함한 여러 기업 지원 방안이 포함되었기 때문인데요. 지속적인 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식량위기는 언제쯤 올 것 같습니까.
원 =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아마도 올해 혹은 내년일 겁니다. 왜냐하면 바이러스 위기는 미국이 보유하는 제품량이 상당히 줄어들도록 했어요. 글로벌 산업 사슬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농업도 산업화되었고, 이 산업화된 농업의 글로벌 사슬 역시 끊어졌죠. 재건하는 데 2~3년 걸릴 겁니다. 제조업 시장 또한 심각한 위기죠. 생산이 중단됐습니다. 아시아는 특히 중국·한국·일본은 여유 생산품을 갖고 있습니다. 서구는 여유분이 부족합니다. 원래 우리는 글로벌 사슬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시장이었는데, 이 사슬이 끊어지면서 우리의 초과 생산품은 이동이 막혔습니다. 이는 큰 재앙이 될 겁니다. 이 위기는 정치·사회, 심지어 문화 위기로까지 이어질 거예요. 복합적인 위기가 벌어지는 거죠. 저는 이 위기를 ‘세계화의 내부 통제에 의한 세계화의 위기’라고 이름 짓습니다.
글로벌 산업 사슬 끊어지면서
초과 생산품 이동 막혀
정치·사회 위기로 이어질 것
안 = 자초한 위기군요. 리쇼어링이 일어나리라 예상하는가요. 한국 대기업 대표들이 정부에 더욱 강도 높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요구했습니다. 이제 외국에 있는 생산공장을 국내로 이전하려 하는데, 국내 생산비용이 너무 부담스럽다며 내놓은 요청이었습니다.
원 = 새로운 트렌드가 나올 겁니다.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입니다. 지역 중심 세계화예요. 세계를 이끄는 나라들이 지역에서 생산체계를 통합하여 세계 경제의 축을 이룰 겁니다. 첫 번째 축은 미국이 선도하는 북미 글로컬 체계입니다. 미국이 선도국가가 되어 캐나다의 자연자원, 멕시코의 노동력 자원을 통합하는 재건입니다. 멕시코는 노동력에서 거대한 잉여 자원을 갖고 있고, 캐나다는 천연자원이 풍부하죠. 미국은 금융에 잉여 자본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도국가는 반드시 미국이 됩니다. 미국이 캐나다·멕시코를 재건하여 북미 통합을 조직하는 거죠. 두 번째는 유럽입니다. 유럽연합은 러시아와 가까워질 거예요. 그들 사이에 어떤 논쟁이 진행되건,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건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와 만납니다. 러시아는 에너지와 자연자원으로 지역 통합에 기여할 수 있어요. 인적 자원은 동유럽과 중동 일부에서 충당합니다. 그들은 노동력, 천연자원, 서유럽의 자본으로 지역 통합을 건설하는 조직화를 합니다. 세 번째가 아시아입니다. 인도는 지역 통합에서 선도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대 자본과 거대 산업이 아직 구축돼 있지 않기 때문이죠. 산업적인 잉여와 자본적인 잉여는 중국·일본·한국에 있습니다. 그래서 북아시아 국가들이 선도해야 하는데, 한국 경제 상황으로 이를 혼자 선도할 수는 없어요. 한국은 동북아에서 어떻게 선도 역할을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세 국가가 함께 선도하는 거죠. 거대한 산업화, 자본화된 국가들로서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10+1, 10+2 혹은 10+3을 의미합니다.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를 아우르는 조직화로 지역 통합의 세 번째 축이 됩니다. 이는 삼각형처럼 세 개의 지역 중심 세계화, 글로컬라이제이션 청사진을 갖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 위기를 맞았고, 세계는 이 세 청사진을 인지하게 될 거예요.
안 = 삼각형 구조가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걸린다고 예상하는지요.
원 = 자연스럽게 진행될 겁니다. 이는 생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규칙에 따라 자연스러운 통합이 일어나는 거니까요. 왜냐하면 지역 통합은 수직적 통합으로 가능합니다. 선도국가가 있어야 가능하기에 수평적 통합으로는 힘듭니다. 지금 세계화는 고장났어요. 실패했습니다. 만약에 당신네 대통령이 단일국가로 경제구조를 새롭게 하겠다고 강조한다면 이는 극단적일 만큼 힘들 겁니다. 그러기엔 충분한 천연자원이 없어 기존 구조를 새롭게 하기 어렵죠. 누구라도 경제 규칙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세계화는 무너질 거고 새로운 지역적 통합이 삼각형 구조로 나타나리라 예상합니다.
안 =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을 맹비난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역시 비판하고요. 양 진영이 모두 중국을 비난하는 이유가 뭘까요. 작년에 치열했던 미·중 관세전쟁과 관련이 있나요. 미래 산업을 두고 이어지는 갈등의 연장선인지요.
■“서구문화 답습해온 아시아, 노자의 ‘반자도지동’ 되새겨야 할 때”
전 지구적 차원의 ‘세계화’로 상징되는 세계경제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극도로 취약할 수 있음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글로컬라이제이션’(지역 중심 세계화)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의 코로나19 확산이 다소 진정된 지난 4일 사람들이 늘어선 쓰촨성 청두의 야시장 모습(왼쪽 사진)과 수술용 마스크를 쓰고 키스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모습을 그린 지난 4월29일 독일 베를린 마우어파크의 벽화. 코로나19 사태 이후 벌어진 미·중 간 갈등은 세계의 리더십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금의 ‘세계화’는 고장나
미국의 중국 분리 시도가
지역 공동체 회귀 기회 될 수도
원 = 이 비난의 시작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됐어요. 그가 정권을 잡고 중국을 몰락시키고자 중국을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서구 정치인들과 언론은 하나의 개념을 구축했습니다. 바로 중국 붕괴입니다. 소비에트연합이 붕괴하자 서구 사회는 모두들 다음 차례는 중국이 될 거라고 확신했죠. 그들 속에 중국붕괴론에 대한 비판은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철의 장막이 무너졌으니까요. 중국은 그저 죽의 장막 아닙니까. 우리는 훨씬 더 쉽다는 거죠. 1990년대 초부터 10년 동안 중국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중국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신도 1993년 일어난 동아시아 금융 혼란을 기억할 겁니다.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이 금융위기에 빠졌고 침몰했어요. 한국 역시 심각한 문제를 그때부터 겪기 시작했죠. 이 혼란은 미국이 그들의 전통적인 산업구조를 데이터 산업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소비에트연합이 붕괴하고 3년 뒤, 미국은 그들에게 군사적으로 우위를 갖도록 제공했던 기술들을 풀었습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죠. 오직 군사 시스템에서만 사용했고, 상업적으로는 쓰지 않던 기술들입니다. 기밀이던 이들 기술을 해제하자, 1994년부터 하이테크 기업들이 이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실리콘밸리가 번성했습니다.
안 = 컴퓨터, 인터넷, GPS, 터치스크린 다 미국 국방부에서 개발했고, 반도체는 미국 해군에서 개발했습니다. 아이폰에 적용한 기술의 99%가 미국 국방연구에서 나왔죠. 실리콘밸리의 기술력은 미국 정부 자금과 국방부가 주도한 공공 연구에서 출발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원 = 네, 이 새로운 산업은 합병을 반복하며 거대한 자본을 빨아들입니다. 금융자본이죠. 바로 동아시아에서 흘러와 미국 서부 신산업으로 들어온 자금이고 동아시아를 위기로 몰아넣은 자금입니다. 그러나 우리 동아시아 사람들은 이를 분석할 수가 없었어요. 그저 우리가 잘못해서 자초했다고만 자책했습니다. 진실은 우리 땅에서 위기가 일어나고, 미국 신산업 단지가 이익을 차지했다는 거죠. 당시 중국도 혼란에 빠졌어요. 중국의 거대 은행들은 모두 열악한 상태였습니다. 불량 대출이 3분의 1을 넘었죠. 한국보다 심했고,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태국보다 위험했습니다. 그렇지만 중국 금융은 특별한 체계 아래 있었습니다. 재정 시스템이 은행 시스템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어요. 모두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았습니다. 국가가 은행의 모든 불량 대출을 없애라고 명령했고, 재정 쪽에서 모두 가져갔습니다. 그런 다음 해외무역에서 나오는 잉여 자본을 은행에 줬죠. 중국 은행은 그 어느 나라보다 건강해졌습니다. 불량 대출 하나 없이 자기자본으로 채워졌죠. 단 3년 만에 일어난 변화입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3년 동안 중국 정부 소유였던 대부분의 거대 은행은 상업 은행이 됐습니다. 그리고 글로벌 금융자본 시장에 뛰어듭니다. 미국이 선도하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경쟁하기 시작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위협받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미국에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2001년 금융위기입니다. 너무도 많은 금융자본이 미국으로 들어와 거품을 만들더니, IT 버블이 터진 겁니다. 동시에 그해 9월 ‘9·11사태’가 발생합니다. 경제위기에 정치위기가 덮치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내고 전쟁에 4조달러를 씁니다. 미국 경제의 경쟁력이 떨어지게 돼요. 반면 중국은 역대급 성장을 합니다. 하늘은 중국에 성장할 기회를 줬고, 미국은 거대한 위기를 맞아 산업이 대규모로 중국으로 가버립니다. 중국 산업 구조의 3분의 2가 다국적 기업에 의해 움직이게 됐어요. 그들은 중국에서 연 23%의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왜 미국 주식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했을까요? 중국과 같은 새로이 출현하는 경제 발전 국가들 속에서 다국적 기업들이 이익을 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중국은 두 가지 면에서 미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의 산업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의 주식시장입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중국이 세계화로부터 너무 많은 이익을 얻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제가 말할게요. “미국에는 중국을 세계화로부터 분리시키려는 강력한 정치적 힘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미국 달러 체계로부터 분리시키려 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영리하지 않은 지도력이다.” 저는 ‘멍청하다’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어요. 그저 ‘매우 영리하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네, 역으로 이는 우리 중국인들, 또 우리 아시아 국가들에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계화를 내던지고 싶어도, 우리는 할 수 없거든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드니까요. 우리 아시아인들은 그걸 해낼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가 성공해서 우리를 구해주면 좋겠어요. 세계를 구하는 겁니다. 인류가 우리가 왔던 우리의 대지로, 우리의 공동체 사회로, 우리의 문화로 돌아가는 거예요. 우리는 그에게 이렇게 축원해야 합니다. 트럼프 오래 사세요!
안 =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어떻게 끝날 것 같습니까.
원 = 저는 과학자가 아닙니다. 바이러스가 어떻게 종식될지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회마다 문화적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해요. 특히 서구 사회는 많은 확진자가 나왔고 사망자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경제위기는 언제까지 지속될지, 어떤 종류의 사회적 위기가 일어날지 더욱 알 수 없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더 이상 이런 거대한 위기를 감당할 수 없을 만한 상태에 도달할 수도 있어요. 그럼 어떤 방법이 쓰일까요? 인류에겐 엄청난 무기가 있습니다. 어쩌면 어떤 정치인들은 광기 어린 행동을 표출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 대해 말을 하는 것조차 달갑지 않습니다.
원톄쥔 교수가 인터뷰 후 직접 써서 보낸 노자의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 글귀. 안희경씨 제공
현대화, 우리를 대지 밖에 던져
바이러스가 비평문 대신 써
독립적인 존재가 아닌 인류
빠르게 질주하던 관성 멈추고
자연과 공동체로 돌아가야
안 = 문명사적으로 코로나19 위기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원 = 바이러스는 현대화에 대한 일종의 비평문을 작성했다고 봅니다. 현대화가 우리의 머리채를 잡아 대지 밖으로 던졌어요. 인류는 자연과 분리되기를 바랐습니다. 우리는 성찰해야 합니다. ‘어떻게 다시 자연 깊숙이 뿌리내릴 수 있을까’라고요. 인류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에요. 자연의 일부입니다. 바이러스의 도전과 마주한 지금 자연은 우리에게 각성하라고 호통칩니다. 가르침을 주려 하죠. 우리는 이 수업을 잘 듣고 어떤 행동을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적어도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어요. 빠르게 질주해오던 관성을 멈춰야죠. 그런 다음 자연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역사 속으로요. 우리의 오랜 문화로 돌아가면 됩니다. 그 속에 살아남을 방법이 있습니다.
안 = 2014년 인터뷰에서 당신은 CSA 운동에 대해 말했습니다. 최근에 검색해보니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도시와 마을이 2000곳이 넘더군요. 어떻게 이렇게 확산할 수 있었죠.
원 = 지역 단위 협동조합들을 세웠습니다. 개인과 농장들이 결합하고, 농촌 사람과 도시 사람이 함께하죠. 이제 협동조합은 지방정부뿐 아니라 중앙정부로부터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미래는 협동조합 속에서 지역 자립을 이뤄나갈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도시의 중산층은 대지로 돌아가고 싶어 해요. 농민들은 시장 속에서 거래 주체로 자리하길 원합니다. 우리는 단지 농촌 사람들이 유기농 식품 생산자가 되고 도시 사람들이 유기농 소비자가 되는 것뿐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번성하도록 틀을 짜고 있습니다. 그래서 농촌 재건 운동인 CSA 운동 아래 5개 부문 운동도 벌여 나갑니다. 도시 중산층의 잉여 자본이 농촌으로 가도록 하면서 농촌과 도시 사람들이 생산·소비뿐 아니라 문화의 주인공이 되도록 창작 문화를 키우는 운동을 합니다. 반응이 매우 좋아요. 또 이주민으로 불리는 농촌을 탈출한 3억명을 위한 운동도 합니다. 농촌에서 해안 공업지대로 이주해 온 인구가 거의 3억명입니다. 미국 인구와 맞먹는 숫자예요. 이 중 1억2000만명은 시골에 거주지를 둔 채 현금 받는 일을 하며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거주 도시의 시민으로 등록되지 못하기에 복지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이들의 자녀를 위한 교육과 이들의 노동자 권리를 지키기 위해 지역 센터를 만들어 운영합니다.
안 = 중앙이나 지방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나요.
원 = 중앙으로부터의 경제 지원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방정부들과는 함께합니다. 요청을 받아 몇몇 지방 대학교에 우리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학과와 연구소를 설치했고, 지원하고 있어요. 20년 전에 방송국 기자가 저를 취재하며 묻더군요. 왜 이런 바보같은 일을 하냐고요.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말해도 알 수 없는 일이죠. 노아의 방주 아시죠? 우리는 사람들이 방주를 짓도록 지원하는 거예요. 우리가 도시에 살건 농촌에 살건 서로를 인식하는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다면 이는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주가 될 겁니다.
안 =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원 = 우리는 서구 문화, 서구적 행동을 너무 많이 답습했어요. 스스로 변화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던지 생각해보는 거예요. 우리 부모님, 부모님의 부모님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우리에게 남겨진 역사적 유산은 무엇인가? 그러면 안전을 구축하리라 봅니다. 제가 요즘 되새기는 글귀가 있습니다.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 도(道)의 움직임에 대한 노자의 말씀입니다. 불합리하게 진행해온 세계 자본화 흐름이 지금 다각적으로 변화하고 있어요. 노자의 말씀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는 오늘입니다.
다음 석학은 닉 보스트롬
다음 회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미래연구소 소장인 닉 보스트롬 교수와 함께 코로나19 위기 너머 인류가 직면할 잠재적 위기에 대해 살펴본다.
<글 싣는 순서>
①장하준 ②제러미 리프킨 ③마사 누스바움 ④반다나 시바 ⑤케이트 피킷 ⑥원톄쥔 ⑦닉 보스트롬 ⑧에필로그
▶원톄쥔(溫鐵軍)은
2016년 중국 런민(人民)대학교 ‘지속 가능성을 위한 선진교육대학’ 교수를 정년퇴임 하기 전인 2013년부터 런민대학 ‘농업 및 농촌발전대학’ 학장, 중국 경제개혁회 사무차장과 중국 거시경제연구재단 사무차장, 제임스 옌 농촌재건기관 대표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푸젠 농림대학교 농촌재건대학 학장이자 신농촌건설연구소 최고 책임자이며, 난시(南西)대학교 중국 농촌재건대학 학장을 겸직하고 있다. 그는 강단을 넘어 생태운동가로서 중국 전역 2000여개 지역에서 로컬경제 시민조직인 공동체 기반 농업(CSA) 운동을 20여년간 이끌고 있다.
1983년 런민대학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군사위원회 총정치부 연구실, 국무원 농촌발전연구센터, 농업부 농촌경제연구센터, 중국경제체제개혁연구회 등에서 일했으며, 1999년 중국농업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8년 지역으로 파견된 후 11년 동안 노동자·농민·군인으로 일했다. 20년 넘게 여러 중앙 정책 싱크탱크에서 연구했으며, 30여개 국가의 국제조직, 학술집단에 자문해왔다.
▶필자 안희경은
재미 저널리스트다. 2002년 미국으로 이주, 서구의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 모색 등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세계적 마음 전문가들의 인터뷰집 <사피엔스의 마음>, 리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화를 엮은 <어크로스 페미니즘>,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 지성 11명과의 대담집 <문명 그 길을 묻다>, 놈 촘스키 등 세계 석학 7인과의 대담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윌리엄 켄트리지 등을 인터뷰한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등 저서와 다수의 번역서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