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9

평화가 곧 길이다! 때밀이 신학자, 평화운동가 박성용 박사 - 당당뉴스

평화가 곧 길이다! 때밀이 신학자, 평화운동가 박성용 박사 - 당당뉴스






평화가 곧 길이다! 때밀이 신학자, 평화운동가 박성용 박사전 세계에 평화의 물결을 이루자! 올해 10월, 세계평화행진 준비하는 ‘비폭력평화물결’의 공동대표
양재성 | hfmc1004@kornet.net





입력 : 2009년 04월 10일 (금) 22:08:56
최종편집 : 2009년 04월 10일 (금) 23:03:50 [조회수 : 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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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이 만난 사람

평화가 곧 길이다
때밀이 신학자, 평화운동가 박성용 박사

대담 양재성 목사 | 사진 심자득 목사


전 세계에 평화의 물결을 이루자
올해 10월, 세계평화행진 준비하는 ‘비폭력평화물결’의 공동대표

“언제나 평화는 어두움과 시작했죠? 2009년 시작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시작되었어요.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민중이 뽑은 법적 정당성을 가진 단체이며 실질적인 생계문제와 평화형성의 단체에 대한 가시적 조치에 대한 파레스타인의 요구가 전혀 먹히지 않은 절망적 상태에 직면해 왔습니다. 모든 생필품이 통제를 받고 있고 거대한 벽에 갇혀 있어요. 이건 사람 사는 것이 아니지요.”

새해에 대한 소감을 묻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폭격에 대한 말로 말문을 연다.

“지금까지 어린이 300여명을 포함하여 900여명이 학살당했어요. 어린이 학교와 민간시설까지 하마스가 숨어있어서 폭격을 감행했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유엔의 평화안을 이스라엘은 거절하였고 미국과 가자지구 안에 무기반입을 금하는 법을 요구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민중의 실질적인 인권과 복지문제에는 등한히 하고 있습니다. 사방이 막힌 담벽 안에서 민중을 가둬놓고 하마스를 찾는다고 시가전을 벌이면서 토끼몰이식 사살을 감행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끔찍한 상황입니까?
2009년 10월 2일은 세계비폭력의 날이다. 비폭력평화물결에서는 세계평화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http://marchamundial.org/en)”은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지난 1년여간 준비된 캠페인으로 금년 10월 2일 세계비폭력의 날을 시작으로 90일 동안 전 세계 16만km를 걸으며 평화와 비폭력에 대한 전 세계시민의 염원과 행동을 모으게 됩니다. 한국은 10월 13일경에 3일간 들르게 되는 데 약 50여명의 외국인들이 올 예정입니다. 가자지구 공습은 평화에 대한 염원을 가중시키고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어요. 이 캠페인에는 데이몬드 투투 주교, 브루스 개그논, 마이클 러너, 촘스키, 마르셀라 오소리오, 주빈 메타 등이 지지하고 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금년 가을경에는 오바마 당선과 세계금융위기의 영향이 이명박 정부의 우익성향의 강성일변도의 현 분위기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 모멘텀이 있기를 바라고 그런 점에서 평화와 비폭력 세계행진은 하나의 좋은 기회라고 보고 있습니다.“




평화활동가를 양성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
평화를 생활화하는 현장을 일구어내야

박성용 박사는 군사보호지역인 강화도 양사면 철산리 철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강 건너로는 북한 전시마을이 보였고 마을 한 가운데엔 선전전을 할 수 있는 방송탑이 높이 솟아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남쪽과 북쪽에서 선전전이 있었다. 남북 대립이라는 한복판에서 자랐기 때문에 평화에 대한 갈망이 누구보다도 강했다. 그것이 오늘날 평화운동을 하게 한 동기가 되었고 대화신학에 관심을 갖게 했다.
박 박사는 덕수상고를 나와 은행에 취직을 하기도 하였으나 신학에 대한 강한 열망을 따라 감리교신학대학에 들어갔고 대화신학과 토착화신학에 관심을 가졌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첫 파송을 받은 곳이 이화령 근방 고사리마을 고사리교회이다. 그곳에서 7년 2개월간의 시골목회는 삶을 지치게 만들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결국 유학을 선택하였다.
“미국으로 건너간 1991년 가을, LA폭동을 경험했어요. 한인 점포 2,000개가 불에 탔고, 한인사회의 최대 위기였습니다. 그때부터 기존의 영성과 자유에 대한 내 희망은 사회적 폭력에 대한 깊은 고민과 함께 평화에 대한 고민을 키워가기 시작한 것 같아요. 실제 관심의 영역을 자유보다는 갈등과 폭력, 평화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그 당시 통일단체인 미주자주연합의 학교선배인 한호석 선생과 정기열 목사를 만나면서 통일운동에도 관여하게 되었어요. 이 단체는 당시 95년에 동포회의에서 자주연합으로 전환되었고 2000년엔 필라델피아 6.15 지부장을 맡아 일하면서 통일문제와 소수자 인권문제에 깊이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2001년 마지막 학기에 911 사태가 발생했어요. 이제 더 이상 평화문제는 지체할 수 없는 문제로 받아들여졌어요. 박사학위 마지막 학기를 퀘이커의 영성원인 펜들힐(www.pendlehill.org)에서 지내며 그곳에서 평화세례를 확실히 받았어요. 완전히 삶에 정리가 되고 비폭력과 평화에 대한 삶에로의 결단이라는 극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었지요.”

2002년 한국에 돌아와 유네스코아태교육원에서 시민사회 실장을 맡아 3년여 기간동안 일했다. 마침 2년간 아시아 갈등문제를 조사하게 되었고 특히 필리핀과 스리랑카를 방문하여 직접 조사하면서 전쟁과 빈곤의 문제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알았고 아시아의 평화가 절실하게 느껴졌다. 유네스코를 그만두고 진로를 모색하고 있을 때 비폭력평화물결의 대표인 박성준 대표의 제의로 비폭력평화물결 공동대표로 자리를 옮겨 평화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2008년 11월 25일 청파교회에서 열렸던 기독교환경연대 주최 환경포럼에서 강연하는 박성용 박사 ⓒ 심자득


비폭력평화물결은 유엔의 경제사회이사회의 특별자문기구로도 전 세계70여개 회원단체가 있는 국제평화운동단체(www.nonviolentpeaceforce.org)이다. 무장하지 않고 훈련받은 국제시민들이 분쟁지역에 직접 들어가 갈등에 개입하고 평화를 구축하는 전위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비폭력 평화에 대한 전통적 모델은 간디의 사회방어와 사회변혁이 있는데 이제 새로운 제3자 개입모델이 국제평화운동에 출현하게 된 것이다. 스리랑카에서부터 시작한 이 모델은 상당히 좋은 결실을 얻고 있어서 UN에서도 국제평화운동의 5개 최상의 모델의 하나로 소개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여러 갈등 해소를 위한 학습모델을 가지고 교육하고 있습니다.. 평화활동가들을 양성하고 있죠. 사람을 키우는 일이 가장 시급하고 소중한 일입니다. 평화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 거의 대다수가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회에서 폭력과 갈등을 봅니다. 단순한 염원만으로는 안되는 것이지요. 사람을 죽이는 군인을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재원 그리고 기관들이 협조하고 있습니까? 군대복역과 예비군 훈련, 대학에서 군사학과 각종 전략학 강의, 군산복합체와 씽크 탱크, 언론과 정치간의 결합이 수없이 그물망식으로 얽혀서 소수 지배 엘리트의 특정이익을 위해 대다수를 군사문화로 지배하고 있지요. 비폭력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일생을 건 훈련없이 비폭력 문화가 형성되기 어렵지요.
저의 기본 신념은 비폭력과 평화를 내면화하고 생활화하는 현장들을 일구어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현장을 일구고 지킬 수 있는 사람의 양성이 시급하지요. 그런 사람의 양성은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훈련모델에 의해 창출될 수 있습니다. 간디가 좋은 예이지요. 비폭력 실천이라는 사티아그라하운동이 성공하게 된 배경은 그가 아쉬람공동체를 통해 같이 비폭력 훈련을 생활하고 서로 지원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간디가 기획하는 다양한 사티아그라하운동을 지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그냥오지 않습니다. 준비하고 사는 것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평화는 목적이자 과정이기 때문이지요. 평화의 한 걸음의 과정들이 곧 목적인 것입니다.”

나의 스승은 때밀이 일을 하셨던 나의 어머니
세상의 때를 해결하셨던 주님의 사역 따라…




박성용 박사의 어머니는 목욕탕에서 일하는 때밀이였다. 때밀이를 하면서 자녀들을 키웠다. 박 박사는 자기 인생의 오직 한 분의 스승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때밀이 어머니다. ‘때밀이 신학’의 시작은 그러하다. 예수께서도 거룩한 하늘을 버리고 죄악이 만연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어두움과 죄악을 해결하시기 위해서이다. 세상의 때를 해결하시는 것이 주님의 사역이었다면 기독교인들의 사역은 당연히 그 일이다. 때를 밀고 계신 어머니가 박 박사의 삶의 자리가 되었다. 영혼과 삶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되었다.

박성용 박사는 평화운동을 하면서 하나님의 실제를 경험하였다고 한다. 개념으로 수많은 신학적 지식의 아카데미아 영역에서 일종의 회의주의에 있던 그가 하나님의 자비를 실재하는 현실로 경험한 것은 바로 평화운동의 사회적 밑바닥에서였다. 그것이 그를 여러 사회적 갈등이슈와 문제들의 파도속에서 지치면서도 힘을 얻고 사는 비결이었다. 평화를 위해 일하고 사색하고 현장의 소리를 듣는 곳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란” 그리스도의 말이 실제로 경험되는 실체로 다가왔다. 자비와 은총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과거에 수줍고 수동적이며 책상에 주로 앉아 있던 사색가로 하여금 이제 다른 형태의 적극적이고 의지를 지닌 부드러운 비폭력 투사로 바꾸어 놓았다.

“세상은 하나님의 실제를 알리는 암호입니다. 성과 속, 교회와 세상, 영과 육, 시간은 분리될 수 없지요. 24시간 하나님의 통치를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음을 느껴야 합니다. 평화운동을 하면서 매 순간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하나님은 종교적 언어가 아니라도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영역을 넘어서서 계신존재입니다. 교회의 존재이유는 하나님의 나라 실현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생명과 평화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평화에 대해 무지하죠. 깨어나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물량주의나 성장주의로 간 것은 본질을 상실하게 하였고 가치를 하락시켰습니다. 한국교회의 새로움은 진리에 대한 경험이 절실하며 근본, 본질에 대해 다시 서는 일이 절실합니다. 한국교회가 깨어나기를 성령이 탄식하고 있어요.

진리로 가는 길은 능동적 비폭력으로만 가능하며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가 생명평화에 대한 헌신과 결단으로 이끕니다. 저는 요한복음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말을 거꾸로 이해합니다. 요한복음의 여러 차례의 ”나는...이다“라는 신비한 문법어의 본체는 실상 그것이 드러내는 길, 진리, 생명이 주어라는 데 있지요. 즉, 길, 진리, 생명이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길을 가고 진리는 인식하고 생명을 사는 프락시스(실천)에서 신적 사랑의 경험을 비로소 알게 되고 거기에 그리스도가 현존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진정한 나의 정체성이 발견되어지는 것이지요. 따라서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삶의 실천은 진리이신 신을 경험하는 길이요-그리스도가 유일한 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가는 길이 유일하게 비폭력과 평화에 의한 것이다. 왜냐하면 샬롬이 하나님의 존재성이기 때문이다-이는 자신의 참 본성을 깨닫는 상호순환관계를 갖게 되는 것이지요.”

박 박사에게 영향을 준 책은 월터윙크(Walter Wink)의 책들(예,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과 간디의 책들이다. 간디는 ‘영원한 샘’이라고 극찬하였으며 영성과 실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분으로 비폭력을 가장 잘 실험하신 분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틱낫한의 평화, 노자의 도덕경, 퀘이커의 책들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사람으로부터 충격을 받은 것은 역사적 평화교회인 일반 퀘이커들의 일상에서 여러 평화활동을 운동가보다 더 심도 깊게 생활로 살고 있는 것에 대한 미국에서의 경험이었다고 한다.

박성용 박사는 2009년 새해에도 할 일이 많다. 평화활동가들을 양성하기 위한 평화훈련자료들을 번역하는 일, 평화교회를 위한 훈련교재 작업과 그룹들을 이끄는 일, “폭력에 대응하는 새로운 평화훈련(AVP; Alternatives to Violence Project)"이라는 국제모델을 감옥, 학교, 공동체에 적용하기 위한 국내 전문 진행자를 앞으로 3년간 아름다운 재단의 재정도움을 받아 50명을 목표로 키워내는 일, 평화활동가들과 비폭력직접행동 훈련커리큘럼 원서강독 모임을 진행하기,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을 조직하고 캠페인을 벌이는 일, 7.27 한강 평화의 배 띄우기, 기독교평화아카데미 운영 등 집중력을 가지고 깊이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이 시대의 예수를 보는 듯 정겹다.

▲ 국제 비폭력평화세력 회원단체들의 총회에서 장기 계획 수립을 위한 모임



국제시민평화세력의 출현
비 폭 력 평 화 물 결

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준비하라
폭력의 실재에 대해서 간디는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이것이다. 3억이 넘는 인도인들이 겨우 10만의 영국군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는 이 현실이 어떻게 가능한가?? 평생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저항과 건설적인 프로그램이란 적극적 비폭력의 실천이란 형태로 나타난다. 저항이란 ‘악에 대한 비협조’와 이를 위한 고난의 힘을 말하며 건설적인 프로그램은 현실극복을 위한 대안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가 확신한 것은 악에 ‘협조안하면 무너진다’는 것이며, 소금행진과 물레 돌리기 등에서 보듯이 약하고 부드러운 것은 사실상 제국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적극적인 비폭력 힘에 대한 것이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무기와 폭력의 지배와 강자의 논리를 넘어서서 부드럽고 약한 자들의 적극적인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위해 간디는 1906년 9월 11일 지지자 3000명이 모인 남아공의 한 호텔 앞에서 사티그라하(the truth-force)를 선포하였다. 평화 건설은 미래나 목적이 아니라 지금이요, 수단이자 과정이다. 평화는 단지 염원이나 말, 토론이나 행사로 실현되지 않는다. 군인이 ‘적’을 죽이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을 받고, 학문(군사학), 과학이란 도구(무기), 이를 정당화하고 뒷받침하는 수단(대학, 연구소, 국방부, 무기산업) 그리고 이를 수행하는 공동체(군사전문가, 학자, 정치가)들이 존재하듯이 사티그라하를 자신의 피와 살로 그리고 영혼속에 각인한 새로운 비폭력 평화군(상티 세나)의 출현이 필요하다고 그는 암살당하기 직전에 말하였지만 그 꿈을 현실화하진 못하였다.

1999년 헤이그평화회의에서 이 꿈은 다시 살아났다. 데이빗 핫소(퀘이커평화활동가)와 멜 덴컨(공동체조직가)는 지난 세계대전이후 군사주의에 의한 평화가 실제로 가장 고비용저효율의 결과만을 얻었기에 국제평화운동에 새로운 전환, 곧 간디의 비폭력 평화군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분쟁지역에서 평화인지력과 갈등해결의 능력을 갖춘 훈련된 시민평화세력(nonviolent peace-force)의 창설을 주창하였고, 이 국제단체를 따르는 30여개 나라에서 간디의 이념을 현실화하기 위한 단체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중의 하나가 2002년에 출현한 한국의 ‘비폭력평화물결 www.peacewave.net’이다.

2001년 9.11 사건으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미명하에 분쟁지역에서 희생되는 90%가 무고한 시민임을 감안하여 이제는 무기와 군인이 아닌 시민이 시민을 방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 3자개입”이란 이름으로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진행된 비폭력 평화운동의 흐름인 사회방어(social defense), 사회변화(social change)에 의해 군사갈등지역에서의 강력한 시민개입이라는 3번째 새로운 흐름으로서 비폭력 국제평화운동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단체는 현재 유엔의 경제사회이사회의 특별자문지위를 갖고 스리랑카, 필리핀, 과테말라 등의 여러 국제분쟁지역에서 갈등모니터링, 소년병의 구출, 인권운동가 보호와 동반, 활동지원과 자문, 국제단체와의 현지 활동가의 연결, 현지인 평화구축훈련워크숍과 갈등 중재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그대가 세상에서 보기 원하는 변화가 되라
한국에서 비폭력평화물결의 창설자인 박성준님(퀘이커)은 창립초기에 부드러움, 약함 그리고 경청의 힘을 기반으로 한 ‘움직이는 평화학교’ 및 열린 토론을 위한 ‘평화너른마당’ 그리고 시민들의 평화에 대한 참여를 위한 ‘한강하구평화의배띄우기’를 통해 한국에서 비폭력 운동의 단초를 마련하였다. 2006년에 직접 합류하면서 군인이 훈련받는 것처럼 비폭력 실천도 일생을 건 훈련과 생활에 대한 실제 적용을 하며 사는 평화일꾼이 필요하다는 신념에 따라 비폭력 힘과 실천에 기초한 ‘훈련’과 ‘직접행동’에 대한 다양한 워크숍을 시민사회에 제공하여 장차 국내외 갈등분쟁지역에 직접 파견하는 시민평화군 이념을 실현할 초기단계를 마련하고 있다.

궁극적인 비폭력 평화시민세력을 양성하기 위해 본 단체는 비폭력과 관련된 전문 활동가 양성을 위해 2007년부터 국제 훈련 모델인 ‘비폭력 대화(NVC),’ ‘폭력에 대응하는 새로운 평화훈련(AVP)’를 개설하고 그리고 2008년에는 ‘비폭력직접행동(Nonviolent Direct Education)’ 등의 훈련가 양성 워크숍을 개설하고 있다.
국제 비폭력 단체들이 세계 곳곳에서 사용중인 비폭력 활동가 양성을 위한 ‘비폭력 영성과 실천’ 모델 그리고 개인의 내면적 자각에 기초한 진리공동체 형성을 위한 파커 팔머(Parker Palmer)의 교육모델 등 다른 몇 가지 모델도 소개하고 있어서 이들 모델을 구체화하여 개인과 사회 그리고 신앙공동체(교회)에 실제적인 변화를 잉태하고 자신의 삶을 걸고 헌신하는 비폭력 평화지기들을 양성하는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비폭력평화물결 www.peacewave.net
 
▲ 국제 분쟁 지역에서 국제 비폭력 평화 세력의 활동 사진 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