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김칫국
이왕 천국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만 덧붙입니다. 전에 예수 재림 시기를 정하고 기다리던 휴거파가 떠들썩할 때 쓴 글이지만 아직도 휴거파 비슷한 단체가 말썽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지금도 이글이 유효하지 않나 하는 느낌입니다. 가볍게 드라이브 하는 기분으로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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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통으로 들이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예수님은 생각지도 않는데 자기들 마음대로 예수님의 여행 계획을 다 짜 놓고, 언제 예수님이 꼭 오시는데 그렇게 되면 자기들은 공중으로 ‘들림’을 받아 거기서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하며 살리라고 부산을 떨던 ‘휴거파’ 신도들 같은 광신적 종말론자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것은 세기말만이 아니라 천 년대 말이기에 더욱 극성을 부리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을 마시는 사람들이 이런 휴거파 사람들이나 미국에서 집단 자살을 한 ‘하늘의 문’ 신도들뿐인가? 일반 종교인들은 어떤가? 사실 가만히 따져 보면 상당수의 종교인들은 어차피 김칫국 마시기 전문가들인지도 모른다.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전도자들의 말처럼,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이 오로지 천당 가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기대와는 반대로 결코 천당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결국 모두 헛물켜고 말 팔자라고 하는 역설적이면서도 엄연한 사실 때문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천당 지옥이 없다는 이야긴가?’ 하고 물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천국 지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천국이 이렇게 천국 가겠다고 기를 쓰는 사람들의 집합 장소일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천국이라는 것이 종교에서 말하는 지고선(至高善)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십자가에 완전히 못 박아 죽인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삶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어도, 누가 뭐라 하더라도 ‘나만은’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잘 살아보겠다고 안간힘 쓰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나’라는 생각이 생생히 살아 있다는 증거다. 예수를 믿든지, 남을 도와주든지, 헌금을 내든지, 무슨 좋은 일을 하든지, 그것이 모두 ‘내가’ 천국에서 얻을 ‘나의’ 복락을 위한 투자라는 생각에서 한다면, 엄격히 따져서 나는 아직도 ‘나 중심주의’의 삶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인 셈이다.
생각해보라. 고통당하고 있는 동료 인간들을 외면한 채 나 먼저 천국에 들어가려고 애를 쓴다면, 설령 외면하지 않고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내가 천국 가는데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하는 일이라면, 이보다 더 이기적이고 반종교적인 마음가짐이 어디 있겠는가? 천국이란 결코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닐 터이고, 또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찌 그런 곳이 천국일 수 있겠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의 실천자라면 자기 먼저 천국에 들어가겠다고 발버둥치는 대신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정신으로 오히려 지옥행을 자원할 것이고, 설혹 천국을 생각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먼저 들어가도록 도와준 다음에야 비로소 자기도 마지막으로 들어가겠다는 결의를 다짐할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질 때 우리가 어디 있든지 그 곳이 그대로 천국이 되는 것이고,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 진정한 의미의 천국이 아닐까?
엄격한 의미에서 천국은 천국 가는 것 자체를 제일의 목표로 삼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문이 열린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에 관한 한 “구하지 말라. 그러면 주어질 것이오”가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오, 주님, 제가 주님을 섬김이 지옥의 두려움 때문이라면 저를 지옥에서 불살라 주시고, 낙원의 소망 때문이라면 저를 낙원에서 쫓아내 주소서. 그러나 그것이 주님만을 위한 것이라면 주님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유명한 8세기 수피 성녀 라비아(Rābiʻa)의 기도입니다.
물론 우리 주위에서도 천국에 들어가려는 일념에서가 아니라 진정한 사랑과 자비를 가지고 가난하고 억눌리고 억울한 일 당하는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하려는 훌륭한 신앙인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유대 민족의 지도자 모세처럼 내 이름이 생명책에서 말소되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이 내 민족을 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길이라면 그 길을 택하겠다는 충정의 마음을 가진 종교인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원효대사의 환속도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우리가 이런 마음가짐과는 상관없이 그저 “잘 믿어 천국 간다”는 식의 태도로 일관한다면, 아무리 우리만 잘 믿는다고 열성을 내고, 진리를 전매특허나 낸 것처럼 선전해도, 결국 자기 비움을 목표로 하는 진정한 신앙의 방향과 반대가 되는 자기중심적 태도 때문에, 안타까운 일이지만 결국은 김칫국만 켜다마는 셈이 되고 말 것이다. 무서운 일이다.
우리의 신앙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인가? 혹은 그 나라에 ‘들어가기만’을 위해 애쓰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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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일 이야기.
1. 테레사 수녀님도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지옥행을 자원하셨을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2. 열반에 들 자격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을 다 열반에 들게 하고 나서 자기가 마지막으로 들겠다고 하여 열반에 들기를 늦추는 마음이 ‘보살정신’입니다.
3. 조선시대 그리스도교가 조선에 처음 들어왔을 때 조선 유학자들이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것이 천당 지옥의 가르침이라고 보았습니다. 선한 일은 보상이나 형벌을 생각하지 않고 할 일이지 그것을 천당으로 유혹하고 지옥으로 협박하는 것은 ‘異端邪說’ ‘曲學阿世’가 아닐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4. 명동 한복판에 천막을 치고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 영어, 일어로 써 붙이고 선전하는 것은 국제적 수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슨 조치를 취하면 그것도 ‘종교탄압’일까요.
라비아 기도 영문:
"O Lord, if I worship You because of Fear of Hell,
then burn me in Hell;
If I worship You because I desire Paradise,
then exclude me from Paradise;
But if I worship You for Yourself alone,
then deny me not your Eternal Beauty.
118Cho-nyon Kim, Myung-kwon Lee and 116 others
12 comments19 shares
방영식 충분히 공감하며 적절한 지적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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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일 공감합니다.
· 4h
김인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표현은 틀린 말은 아닙니다. 분명 성경도 그 천국과 지옥을 언급하고 있기도 하구요. 문제는 그 예수나 천국 또는 불신이나 지옥 이라는 표현이 담은 개념 이해가 문제가 된다고 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그것과 일반적으로 우리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일반적인 이해의 괴리가 그런 어려움을 만드는 것이겠지요. 사실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곧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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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강 김인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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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강 김인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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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같은 상징적인 말들은, 그 시대의 상황에 따른 분위기에서 나온 시대적 당위성의 산물들 입니다.…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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