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기억의 장
정지영,이타가키 류우타,이와사키 미노루 (엮은이)삼인2015-03-20
기본정보
양장본624쪽160*230mm990gISBN : 978896436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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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피에르 노라의 '기억의 장' 프로젝트를 '동아시아 관점'에서 풀어본 책이다. 프랑스의 집합적 기억을 재구성하려고 시도했던 노라의 '기억의 장' 프로젝트에는 1984년부터 1992년까지 총 8년에 걸쳐 120명에 달하는 역사가, 문학인, 사상가 들이 참여했으며, 그 결과 전 7권 총 135편으로 이루어진 장대한 시리즈가 발간됐다.
'역사' 대신 '기억'을 전면에 내세운 이 작업은 역사학계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 책은 프랑스를 넘어 여러 나라에 번역됐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러시아, 룩셈부르크 등에서도 같은 기획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프랑스나 독일처럼 '일본의 기억의 장'이나 '한국의 기억의 장', '중국의 기억의 장' 등 소박한 국가 단위의 기억 논의를 진행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우리의 역사는 중화 제국, 일본의 제국주의와의 전쟁, 냉전, 한국전쟁, 그러한 역사가 만들어낸 디아스포라, 오늘날의 글로벌화 등 '일본'이나 '한국'이라는 단위를 국민사적으로 나누기에는 너무나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과거 다른 국가들에서 행해진 '기억의 장' 프로젝트처럼 일 국가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일본과 한반도에 축을 둠으로써 보이는 '동아시아'를 그려냈다. 동아시아 국가 '사이'의 넘나듦의 문제, 제국과 식민지의 문제 등에 대해 고민하면서 역사를 '기억'의 차원에서 살펴본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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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동아시아 기억의 장을 찾아서 | 정지영, 이타가키 류타, 이와사키 미노루
제1부 고전고대의 공간
제1장 삼한정벌 | 이성시
제2장 관우 | 김석우
제3장 공자묘 | 류미나
제2부 이야기의 역동
제4장 효녀 심청 | 정지영
제5장 삼년고개 | 미쓰이 다카시
제3부 페르소나의 분열
제6장 윤동주 | 김신정
제7장 역도산 | 이타가키 류타
제4부 중층의 풍경
제8장 지산암 | 고마고메 다케시
제9장 금강산 | 테사 모리스 스즈키
제10장 벚꽃 | 다카기 히로시
제5부 몸 떨림의 기억
제11장 빨갱이 | 이와사키 미노루
제12장 조센진 | 최진석
제6부 규율의 반전
제13장 운동회 | 오성철
제14장 지문 | 이타가키 류타
초출 정보
집필자 / 번역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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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9-10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기억론적 전회 이전에는 바다의 수면 위에 떠 있는 섬만을 역사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기억이라는 망망대해의 작은 섬,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음을 인식하고 거대한 바다 전체가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이는 역사적인 범주에 속하는 것이 확대됐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것이 기존의 역사에서 빠진 것을 발굴해 더 많은 사실들이 역사 속에 흡수됐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을 포함하는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의 논의에서 무엇이 선택되고 무엇이 배제됐는지 비판적 재검토가 진행되는 것이야말로 기억론적 전회가 지니는 의미이다. 접기
P. 13-14 근대 역사학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을 보면 통설, 속설, 억설, 풍설, 전승, 신화, 민화, 소문, 대중적인 역사소설 등은 이른바 ‘2차 사료’로서 비판적으로 의심해야 하는 대상이 되거나 무시해도 되는 것이 된다. 그다음 과거의 ‘1차 사료’를 비판적으로 읽고 해석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을 확정해가는 것이 정통 역사서술의 모습이다. 노라는 그런 역사학이 구축하는 ‘역사’와 살려진‘ 기억’들‘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기억의 장’에 착목했다. ‘1차 사료’이건 ‘2차 사료’이건, 애초부터 ‘사료’나 ‘역사서술’로 생각되지도 않았던 것이건, 공식적인 기억이건 버내큘러적인 기억(vernacular memory)이건, 과거를 상기시키는 ‘장’의 형성과 전개를 오히려 논의의 중심으로 삼았다. 즉 ‘사실이 어떠했는가’라고 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인식되고 기억됐는가’를 일차적인 논의 대상으로 삼았다. 접기
P. 31 우리는 프랑스의 ‘기억의 장’이나 독일의 ‘기억의 장(Deutsche Erinnerungsorte)’이라는 표현과 직접적으로 병행되는 ‘일본의 기억의 장’이나 ‘한국의 기억의 장’, ‘중국의 기억의 장’ 등 소박한 국가 단위의 기억 논의를 진행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동아시아’의 역사적 현실은 국민사적 기억의 토폴로지를 구축하는 것을 간단히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역사는 중화 제국, 일본의 제국주의와의 전쟁, 냉전, 한국전쟁, 그러한 역사가 만들어낸 디아스포라(diaspora), 그리고 오늘날의 글로벌화 등 ‘일본’이나 ‘한국’이라는 단위를 국민사적으로 나누기에는 너무나 얽혀 있다. 접기
P. 34-35 기억은 상기되는 것에서 제외되는 무수한 것들이 있기에 성립한다. ‘기억의 장’을 탐구하는 것은 그 전제에 있는, 또는 그것과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는 망각, 배제, 무시, 무지, 무감각, 공백, 구멍, 곧 ‘겹겹이 쌓인 시체’와 마주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 국민적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해부하는 일은 곧 어떻게 다른 것이 망각됐는가에 대한 논의와 함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기억의 장’에서 중요한 것은 ‘국민적’ 기억의 성립에서 본질적이라 할 만한 망각과 상기, 그리고 이미 성립된 기억의 국민경제의 틀을 벗기고 해부하는 것이다. 곧 어떤 집단에서는 상기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 다른 집단에서는 기억의 장이 되거나 혹은 기억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 불균등한 기억의 방식을 포함해 얽혀 있는 관계성을 해부할 필요가 있다. 접기
P. 35-36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은 ‘동아시아 기억의 장’을 국민국가를 단위로 대칭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주의, 인종주의, 계급투쟁, 젠더 분할이라는 비대칭적인 권력관계도 포함된 연쇄나 분열을 역사화해가면서 해명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혹은 ‘한국에서는’이라고 단순히 구분 지을 수 없는 장소, 또는 복수의 ‘국민적’ 기억의 장 사이에 존재하는 틈과 같은 ‘비(非)장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야기, 어둠에 놓인 것, 그러한 기억의 국민경제로부터 벗어난 경험을 사고하지 않고는 ‘동아시아 기억의 장’을 논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위치’에서 논의할 때 ‘동아시아 기억의 장’의 의미가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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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정지영 (엮은이)
서강대학교 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조선시대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조선시대의 성별질서의 구축과정 및 주변적 여성들의 역사를 서술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20세기 한국 사회에서 근대적 성별관계가 구성되는 과정과 그 속에서 '전통시대의 여성'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소비하고 활용하는 방식을 분석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 『젠더·경험·역사』(편저, 서강대출판부), 『동아시아 기억의 장』(편저, 삼인),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공저, 휴머니스트) 등이 있다. 2015년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접기
최근작 : <동아시아 기억의 장>,<질서의 구축과 균열>,<여성주의 리더십> … 총 6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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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가키 류우타 (板垣龍太) (엮은이)
1972년 생. 일본 도시샤대학 사회학부 교수. 전공은 문화인류학, 조선근현대사, 식민지조선의 사회구조. 도교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대표저서로 『한국근대의 역사민족지: 경북 상주의 식민지 경험』(한국어판 2015), 『동아시아 기억의 장』(공저, 한국어판 2015) 등이 있음.
최근작 : <'위안부' 문제와 미래에 대한 책임>,<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위안부 문제와 식민지 지배 책임> … 총 20종 (모두보기)
이와사키 미노루 (岩崎 稔) (엮은이)
일본 도쿄외국어대학 교수. 철학, 정치사상.
최근작 : <동아시아 기억의 장>,<총력전하의 앎과 제도 1933∼1955년 1>,<반일과 동아시아> … 총 19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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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세계사적으로는 냉전이 붕괴됐다고 했던 1990년대, 아직 냉전의 분단 구조 속에 있던 동아시아에서는 역사적 기억을 둘러싸고 커다란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전후(戰後) 50년’을 전후해 일본에서는 역사를 둘러싼 논의가 들끓어 올랐고, 또 정치체제로서는 민주화를 이룬 한국에서도 1990년대 후반 이후 ‘과거청산’에 관한 제반 사업들이 급속도로 전개됐다. 그런 과거에 대한 논의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일이었다. 그들이 침묵을 깨고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역사에 대한 정부의 자세나 역사 교과서 같은 공식적인 역사의 영역도 흔들렸다. ‘새역모’를 비롯한 일본의 여러 단체들도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반동적으로 태어났다. 여기서 기억의 항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이 국경을 넘어 생겨났다. 이러한 현실은 국경을 넘은 대화를 요청했으며, 그 속에서 역사학이라는 제도를 재검토할 필요를 제기했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한 걸음 더 그 ‘밖’으로 나아가 ‘기억의 장’이라는 주제를 안겨주었다. 기존의 역사서술을 둘러싼 제도의 틀 밖에서 역사와 마주하는 하나의 장치로서 ‘기억의 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진 것이다. 더 이상 과거에 대한 논의를 역사학의 문법 속에 모두 맡길 수 없다는 현실의 절박한 필요에 따라 ‘기억의 장’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 서문에서
동아시아 관점에서 풀어본 ‘기억의 장’ 프로젝트
『동아시아 기억의 장』은 피에르 노라(Pierre Nora)의 ‘기억의 장(lieux de memoire)’ 프로젝트를 ‘동아시아 관점’에서 풀어본 것이다. ‘프랑스’의 집합적 기억을 재구성하려고 시도했던 노라의 ‘기억의 장’ 프로젝트에는 1984년부터 1992년까지 총 8년에 걸쳐 120명에 달하는 역사가, 문학인, 사상가 들이 참여했으며, 그 결과 전 7권 총 135편으로 이루어진 장대한 시리즈가 발간됐다. ‘역사’ 대신 ‘기억’을 전면에 내세운 이 작업은 역사학계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 책은 프랑스를 넘어 여러 나라에 번역됐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러시아, 룩셈부르크 등에서도 같은 기획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프랑스나 독일처럼 ‘일본의 기억의 장’이나 ‘한국의 기억의 장’, ‘중국의 기억의 장’ 등 소박한 국가 단위의 기억 논의를 진행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우리의 역사는 중화 제국, 일본의 제국주의와의 전쟁, 냉전, 한국전쟁, 그러한 역사가 만들어낸 디아스포라(diaspora), 오늘날의 글로벌화 등 ‘일본’이나 ‘한국’이라는 단위를 국민사적으로 나누기에는 너무나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과거 다른 국가들에서 행해진 ‘기억의 장’ 프로젝트처럼 일 국가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일본과 한반도에 축을 둠으로써 보이는 ‘동아시아’를 그려냈다. 동아시아 국가 ‘사이’의 넘나듦의 문제, 제국과 식민지의 문제 등에 대해 고민하면서 역사를 ‘기억’의 차원에서 살펴본 작업이다.
일본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동아시아에서의 역사 인식에 대한 논쟁을 벌였던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 포럼’ 구성원들이 2006년부터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동아시아 기억의 장’에 대한 논의를 거듭했고, 이에 대한 결과로 2011년 일본에서 『東アジアの記憶の場』을 출간했다. 이번에 도서출판 삼인에서 나온『동아시아 기억의 장』은 이 책을 단순한 번역한 것을 넘어 수정, 보완한 것으로 한국어판이면서 증보판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학이 구축하는 ‘역사’와 살려진 ‘기억’들 ‘사이’
최근 20년 사이 과거를 이야기하는 방법에는 어떠한 변화가 나타났다. 한마디로 ‘기억’, ‘상기’, ‘망각’이라는, 넓은 의미에서 ‘기억’과 관련된 단어를 사용해 많은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촉구된 방법론적 반성, 즉 ‘기억론적 전회(memologic turn)’는 사고의 준거점을 역사에서 기억으로 바꾼다. 사각지대에 있던 것이 가시화되면서 역사적인 범주가 확대됐을 뿐 아니라, 이제까지 역사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배제했는지까지 비판적으로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앞서 말한 ‘기억의 장’ 프로젝트도 여기에 영향을 받은 여러 지적인 논의에 속한다.
특히 ‘기억의 장’은 역사학이 구축하는 ‘역사’와 살려진 ‘기억’들‘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기억의 장’에 착목했다는 데 그 방법론적 혁명성이 있다. 애초에 ‘기억의 장’은 역사학에 대한 준엄한 비판 의식을 바탕으로 시작됐다. 노라는 근대적 장치로서의 역사학이란 그것이 참칭하는 것과 달리 ‘기억’의 파괴자라고 말한다. 정통 역사서술은 과거의 ‘1차 사료’를 비판적으로 읽고 해석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을 확정해간다. 반면 통설, 속설, 억설, 풍설, 전승, 신화, 민화, 소문, 대중적인 역사소설 등 2차 사료는 쉽게 무시된다. 노라는 여기에 반기를 내걸었다. 즉 ‘사실이 어떠했는가’보다는 ‘어떻게 인식되고 기억됐는가’를 일차적인 논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내셔널 히스토리의 한계를 넘어서
‘동아시아 기억의 장’ 또한 이러한 노라의 정신을 이어받는다. 그렇지만 이 책은 단순히 노라의 ‘기억의 장’을 동아시아로 확대하려는 작업이 아니다. 노라가 프랑스라는 국민국가의 틀 속에서 ‘기억의 장’을 논하면서 프랑스 식민지를 둘러싼 요소는 대부분 ‘기억의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내셔널 히스토리를 비판했던 프로젝트가 오히려 또 다른 국가적인 역사서술이 되어버린 셈이다. 여기에서는 이런 노라의 한계를 확실히 인식한 후 그 한계점을 동아시아 ‘기억의 장’에 대한 모색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동아시아 기억의 장’을 “일본에서는…”, “한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단순히 비교사적으로 병렬한다면, 그것은 그저 여러 국민의 ‘기억의 장’을 긁어모아 나열해놓은 데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관계성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우리는 상기되어온 것뿐만 아니라 망각되어온 것도 동시에 생각하게 되고, 그것이 집단 사이의 어떤 관계에 유래하는지도 주목하게 된다. 기억은 상기되는 것에서 제외되는 무수한 것들이 있기에 성립한다. 이 책에서 국민적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해부하는 일은 곧 어떻게 다른 것이 망각됐는가에 대한 논의와 함께 이루어진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은 ‘동아시아 기억의 장’을 국민국가를 단위로 대칭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주의, 인종주의, 계급투쟁, 젠더 분할이라는 비대칭적인 권력관계도 포함된 연쇄나 분열을 역사화해가면서 해명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혹은 ‘한국에서는’이라고 단순히 구분 지을 수 없는 장소, 또는 복수의 ‘국민적’ 기억의 장 사이에 존재하는 틈과 같은 ‘비(非)장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야기, 어둠에 놓인 것, 그러한 기억의 국민경제로부터 벗어난 경험을 사고하지 않고는 ‘동아시아 기억의 장’을 논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위치’에서 논의할 때 ‘동아시아 기억의 장’의 의미가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미완성인 채로 열려 있는 ‘동아시아 기억의 장’
구체적으로 이 책에서 다룬 ‘기억의 장소’는 무엇일까. 우선 아시아의 공통적인 요소는 바로 한문으로 쓰인 고전이다. 또한 근대 주권국가의 경계선이 그어지기 훨씬 이전, 고대 동아시아의 역동적인 역사적 변동 또한 현대인들에게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고전고대의 공간 가운데 이 책에서 다룬 것은 무(武)의 상징인 ‘관우’와 문(文)의 상징인 ‘공자’, 그리고 고대 한일 관계에 관한 서술에서 중요한 ‘삼한정벌(三韓征伐)’이다.
‘기억의 장’에서 ‘장소’는 반드시 실재하는 것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실재’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대상은 이야기이다. 정지영은 위안부 동원과 조선인 협력자 등 근대의 ‘딸을 판’ 문제를 둘러싼 역사적 상흔이 논의되는 기억의 각축장으로 ‘심청’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미쓰이 다카시는 최근 일본의 국어 교과서에 한반도의 민화로 소개된 ‘삼년고개’라는 옛날이야기를 다룬다.
또한 ‘동아시아 기억의 장’에서는 복잡하고 여러 집단과 관계하며 일생을 살아간 개인을 주제로 삼기도 한다. 개개인은 그와 관계된 집단에 따라 무엇이 기억되고 무엇이 망각되는가가 달라진다. 김신정은 서울(한국), 교토(일본), 룽징(중국)에 각각 세워진 시인 ‘윤동주’의 기념비에 주목한다. 이타가키 류타는 현대 일본과 한반도에 걸쳐 ‘영웅’으로 잘 알려진 프로레슬러 ‘역도산’을 다룬다.
‘장(lieux)’이라는 것이 반드시 실제의 장소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지만 어떤 구체적인 장소에 역사가 지층처럼 겹쳐져, 그것이 방문하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기억으로 상기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는 타이완의 ‘지산암(芝山岩)’과 조선의 ‘금강산’, 그리고 ‘벚꽃’ 명소를 그 장소로 삼았다.
동아시아에는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온몸의 떨림과 함께 상기되는 ‘집단적’ 기억도 충만하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불쾌한 기억이 상기되는 장으로 ‘빨갱이/아카(赤)’와 ‘조센진(朝鮮人)’에 대해 논한다. 아와사키 미노루는 근현대 동아시아에서의 ‘빨갱이’ 상징주의를 해부하고, 최진석은 자신 속에 내포된 ‘조센진’의 흔적을 쫒아간다.
근대의 감시나 규율은 사람들을 분단시키면서도 여러 경험을 안겨주었다. ‘운동회’는 ‘위’로부터의 국민 통합의 장, 전쟁 연습의 장으로 기능했지만 민중 속에서 유희나 잔치의 계보로 이어지면서 반드시 국가의 의도대로 기억되는 것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타가키 류타는 ‘생체 인식(biometrics)’라는 명칭으로 여러 곳에 도입된 ‘지문’ 장치 속에서 지문 날인을 거부했던 식민주의의 경험이 사라져간다고 주장한다.
‘전체’를 파악한 후 ‘단정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 익숙한 저자들에게는 불확정적으로 넓혀지는 기억이나 사료의 공백이라는, 비(非)존재만으로만 존재하는 망각이 정말 ‘당혹스러운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기억에 대한 글은 ‘부분적’이며 ‘미완성’이라는 느낌으로 남았다고. 그렇지만 이렇게 ‘동아시아 기억의 장’이란 항상 미완성인 채로 열려 있는 것이리라. 이제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새로운 기억을 접붙이고 지형도를 재편해 나갈 차례이다.
【집필자/번역자】
정지영(鄭智泳)
이타가키 류타(板垣龍太)
이와사키 미노루(巖崎稔)
이성시(李成市)
김석우(金錫佑)
류미나(柳美那)
미쓰이 다카시(三ツ井崇)
고마고메 다케시(駒こ武)
테사 모리스 스즈키(Tessa Morris-Suzuki)
다카기 히로시(高木博志)
최진석(崔眞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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