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ng-nam Oh 등잔 밑이 어둡다 -우리 전통의 재발견
며칠 전에 <남의 밥의 콩이 굵다 = 나의 종교 남의 종교>라는 제목의 글에서 종교적 배타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그 연장선에서 서양종교를 절대시하는 우리의 일반적 경향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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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시성 괴테(Goethe)는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 말도 모른다고 했다. 현대 종교학의 창시자라 여겨지는 맥스 뮐러(Max Müller, 1823-1900)는 이 말이 언어에 해당되는 것보다 종교 문제에 더 적절한 표현이라 보고 “하나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고 선언했다.
우리 중에는 종교나 철학의 문제라면 서양 사람들만 생각해 본 일이 있는 것으로 믿고 있는 이들이 더러 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겠지만, 내가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철학개론 시간에 달레스가 어떻고, 소크라테스가 무슨 말을 했고, 칸트, 데카르트, 누구 누구 하다가 끝났다.
그 후 철학을 논한다는 것은 의례 서양 철학을 들추는 것, 종교 철학을 이야기한다는 것도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하는 서양 종교사를 살피는 것쯤으로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지는 이야기다.
영국의 사상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라는 사람은 1940년대 초반에 출판된 그의 책 영원의 철학(Perennial Philosophy)에서 그 당시 동양 종교에 대한 자료가 충분히 번역되고 소개된 형편인데, 서양 사람들 중 ‘아직도 종교나 형이상학의 문제에 관한 한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그리스도인들 이외에는 생각해 본 일이 없는 것처럼’ 착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오늘 같은 시대에 이런 무식은 전적으로 자의적이고 고의적이며, 불합리하고 창피스러운 일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고 했다. ‘모든 형태의 제국주의와 같이 신학적 제국주의도 영원한 세계 평화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1960년대 70년대를 거치면서 서양 사람들 중에는 동양의 종교 사상에 심취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정신의 진정한 의미를 재발견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그 대표적 예로 20세기 미국 종교사상가로 가장 영향력이 많았던 사람 중 하나인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을 들 수 있다. 그는 “서양이 동양의 정신적 유산을 낮게 평가하거나 등한시하기를 계속한다면 인류와 인류의 문명을 위해하는 비극을 자초하게 될지 모른다.”고 선언하고, 기독교 시작에 동방에서 선물을 받은 것처럼 지금 기독교에 필요한 것은 동방에서 오는 동양의 정신적 유산이라고 했다.
동양인 자신들은 어떤가? 아니 우리 한국인들은 어떤가? 이제 우리는 우리의 정신적 유산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있는가? 슬프지만 선뜻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요즘은 한류 붐에 따라 한국 정신이나 사상에 대해 새롭게 보는 시각이 움트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도 한국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마치 ‘빛은 서방에서’라는 것이 현대판 진리쯤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뭣이나 서양 것이라면 좋고 옳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데가 특히 한국 그리스도교의 경우다. 상당수 그리스도인들은 아직도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이 전통적 동양의 종교 사상이나 철학을 배격하고 서양 역사에서 형성된 그리스도교 사상에만 충성하는 것쯤으로 믿고 있다.
이런 이들 대부분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동양의 정신적 유산과는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빛과 어둠이 어찌 합하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떻게 손을 잡으며, 진리와 거짓이 어이 어울릴 수 있느냐고 한다. 따라서 동양의 전통적 종교 사상에 대해 무지하면 할수록 더욱 충성된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 혹시 동양 사상에 대해 듣거나 읽거나 인용하려면 오로지 그것을 반박하고 비웃기 위해서일 뿐이다.
영국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에 의하면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어차피 배타적인 종교들로서 자기들의 절대성을 주장하지 않고서는 속이 시원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도 요즘 서양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그런 절대적 배타주의에서 탈피해야만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스도교에만 계시가 있고 다른 모든 종교들은 ‘거짓 종교’라고 주장하여 그리스도교 배타주의의 선봉장이던 칼 바르트(Karl Barth)가 죽고 그의 후계자로 들어선 하인리히 오트(Heinrich Ott) 교수마저도 오래전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에드먼튼 저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치에 대해 열린 마음, 그리고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가 있어야 하는데, 이 일은 모든 종교 전통들의 공헌을 감안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가 없다”고 공언했다.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로 꼽히는 폴 틸리히(Paul Tillich) 교수도 죽기 전, 시카고 대학교 세계 종교사학의 거장 머치아 일리아데(Mircea Eliade)와 세계 종교를 섭렵하고, 자기에게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세계 종교의 빛 아래서 새로운 조직신학 책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서양 사람들이 동양의 정신적 유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아보겠다고 하는 판국에 우리는 어느 때까지 강 건너 불 바라보듯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들에게 와서 우리의 전통적 종교 사상에 대해 물어오는 그들에게 본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라는 진리만을 일깨워 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의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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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에 대한 훌륭한 책으로 J. J. Clarke지음, 장세룡 옮김, <동양이 어떻게 서양을 계몽했는가>(Oriental Enlightenment) (우물이 있는 집, 2004)을 참조할 수 있다. 동양 사상이 서양에 미친 영향을 세심한 고증을 거쳐 상술한 책이다.
특히 한국 사상가로 최제우와 , 류영모와 함석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