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2

13 공동체를 넘어 무소유 마을로 < 한국농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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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를 넘어 무소유 마을로
대안적 삶을 찾아서 화성의 산안마을

현재위치기획 입력 2013.07.07 21:58
수정 2014.03.03

몇 해 전에 서울대학교 대입 논술고사에 한 마을이 소개된 적 있다. 꽤 긴 지문을 인용하면 이렇다.

<1953년 일본의 야마기시 미요즈가 제창한 공동체 운동을 야마기시즘이라고 부른다. 야마기시즘이 꿈꾸는 공동체는 한마디로 ‘돈이 필요 없는 사이좋은 마을’이다. 1958년 일본에 야마기시즘 공동체가 처음 탄생한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해 스위스, 브라질,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 세계 각국에 40여 개가 세워졌다.
이곳에서는 환경 친화적 농법으로 먹거리를 생산한다. 우리나라에는 1984년에 최초로 야마기시즘 공동체가 생겼다. 이 마을의 홈페이지에는 “모든 생활과 경영을 일체 생활, 일체 경영, 일체 사회로서 해 나가고 있습니다. 양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고 함께 모여 살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양계장이나 공동체로 보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형태만을 본 오해이고 실제 목적은 다른 데 있습니다. 그 목적은 급료나 분배가 없는 일체 생활 속에서 사이좋게 즐겁게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저희 자신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밝고 평화로운 사회로 바뀌기를 염원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 마을은 무엇보다 무소유(無所有)를 삶의 근본 가치로 삼고 있다. 무소유는 공동소유와 다르다. 이들은 마을의 재산도 주민들의 공동소유물로 보지 않을 정도로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태양과 공기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삶도 그러해야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것도 그냥 존재할 뿐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며 누구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마을 공동체의 무소유 개념이다. 그러므로 이 마을은 돈이 필요 없는 사회이며, 필요한 물건은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다른 야마기시즘 공동체가 물건을 필요로 할 때에도 물론 무료로 공급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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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안마을 사람들은 연찬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이용, 이웃과 소통한다.이 지문을 읽고 학생들이 어떤 내용의 답을 썼는지 궁금하지만, 그것까지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마을은 언제라도 찾아가 볼 수 있는 화성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곳으로 발길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



마을의 역사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발안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얼마 가지 않으면 화성군 향남면이 나온다. 그곳 구문천리라는 동네에 바로 산안마을이 있다. 10여 가구쯤이 모여 사는 마을 곳곳에는 커다란 나무들과 각양각색의 꽃들이 가득 심겨 있어 온통 꽃밭이다. 농장이자 거주지인 마을 입구에는 안내문이 서 있는데, ‘야마기시즘 실현지 영농조합법인’의 명의이다.

마을을 한 바퀴 빙 둘러보면, 10여 동의 양계축사가 늘어서 있고, 그 옆에 커다란 생활집과 식당, 작업공간, 마을회관 등이 모여 있다. 여느 양계장보다 상당히 깨끗하다는 느낌과 놀랍게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양계장의 규모는 보통의 양계로 치면 이십만 마리를 키울 수 있는 크기라고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자라는 닭은 삼만 여 마리다. 그만큼 닭들의 사육 여건이 남다르다.

야마기시즘이라는 말이 일본말이라 낯설게 들리기는 한다. 야마기시(山岸)라는 일본 사람의 이름에 이즘을 붙여 일종의 이념처럼 들리는데 그다지 복잡한 사상체계는 아니다. 물론 복잡하지 않다고 해서 깊이가 옅은 것은 아니다.

창시자인 야마기시는 청소년 때부터 어떻게 하면 모두가 하나 되어 사이좋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상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 사회주의 운동에도 관심을 가졌고 여러 사상을 섭렵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닭을 키우던 야마기시에게 인생의 전기가 된 것은 1950년에 불어 닥친 태풍 때문이었다.

당시 태풍으로 들판의 벼가 다 쓰러졌는데 한쪽 논에서만 벼가 쓰러지지 않고 꼿꼿이 서 있는 것을 한 농촌 보급원이 발견한 것이다. 신기해서 누구 논인지 알아보니 그 곳이 바로 야마기시의 논이었고, 그의 농사법과 양계법이 독특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농촌 보급원은 야마기시를 설득하여 농사법에 대한 강연회를 개최하게 했다.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야마기시의 양계법에 공감하다가 점차 이러한 양계법을 낳은 독특한 사고방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즉, 이상사회와 인간성 회복운동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우주삼라만상이 하나다’, ‘나 아닌 것이 있어서 내가 존재한다’, ‘무소유 일체 사회’, ‘교육이 아니라 함께 배우며 성장한다는 점에서 학육이다’ 등이 주요한 내용이었다.

1956년 교토의 한 절에서 162명이 모여 야마기시즘 특별 강습 연찬회가 처음으로 열렸고 이 강습은 매월 2회씩 개최되었다. 1958년, 7월 야마기시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일본 미에현 가스가야마라는 곳에서 일체생활을 시작함으로써 '야마기시즘 실현지'라는 것이 처음 만들어졌다. 현재 야마기시즘 실현지는 일본을 비롯하여 한국, 스위스, 브라질, 타이,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 8개국에 걸쳐 있다.


우리나라에서 야마기시즘 특별 강습 연찬회가 시작된 것은 1966년이었다. 현재 영농법인의 대표이자 마을의 촌장 역할을 하고 있는 윤성렬 씨의 아버지가 1965년 일본 가스야마 세계중앙실현지에서 연수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야마기시즘은 당국으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여러 사람이 모이면 일단 조사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자꾸 모여서 이상사회니 무소유니 하는 이야기를 하니까 당국에서 이상하게 볼만도 했지요."

그는 전직 교사다. 젊은 시절, 이상적인 공동체 마을을 만드는 데 모든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다. 실패와 온갖 역경을 거친 끝에 1984년 지금의 자리에 실현지를 마련했다. 그들은 야마기시즘 생활을 하는 곳을 실현지라고 부른다.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는 곳이란 뜻이다.

산안마을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개인의 소유는 물론이고 공동체의 소유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이 아예 필요 없는 세상을 이들은 실현하고자 한다. 한편 그들은 물질적으로 풍부하며 안정되고 쾌적한 사회를 꿈꾼다. 이러한 목표가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자.


▲ 야마기시즘 실현지 영농조합법인 안내문이 서 있는 산안마을 입구.무소유와 풍요를 함께 꿈꾸다



산안마을에서 개인은 가진 게 없지만 공동체가 가진 것은 적지 않다. 5만여 평의 농장에서 일년에 십억이 훨씬 넘는 수입을 올린다.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는 재정은 양계를 통해 마련하는데 야마기시즘 실현지는 독특한 양계법을 통해 맛있는 유정란을 생산한다. 비법은 닭도 하나의 생명체로 존중하며 키우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닭을 사람 대하듯 한다.

닭장 안으로 들어가 사료를 주거나 알을 꺼낼 때 닭들에게 노크를 하거나 양해를 구한다. 말없이 들어갈 때는 ‘안녕’하고 눈짓으로라도 인사를 건넨다.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라야 양계를 할 자격이 있다는 심성과 철학으로 양계를 하기 때문에 닭들이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다.

옴짝달싹 못하게 가둬 키우는 보통 양계장의 닭들과 달리 아주 건강하다. 그렇게 닭의 생명을 존중하며 키워서 그런지 이곳 닭이 낳은 유정란은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시중에서 팔리는 계란보다 3배 가량 비싸지만 한번 먹어본 사람은 대부분 이곳의 계란을 다시 찾게 된다고 한다. 야마기시 양계법을 배워서 그 방식대로 닭을 키우는 농부들이 전국에 여럿 생기기도 했다.

산안마을은 유정란을 팔아서 번 돈으로 의식주 등 필요한 것을 모두 공동체에서 해결해 준다. 개인에게는 한 달에 5만원정도의 용돈이 주어지는데 이 돈으로 책을 사고 영화를 보고 바깥 음식을 사먹기도 한다. 돈이 더 필요하면 더 달라고 하면 되고 큰돈이 드는 물건이 필요할 경우에는 마을 회의에서 논의를 해서 결정한다.

양계와 함께 마을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일은 서로 나눠서 한다.

일은 생활 부문과 생산 부문으로 나뉘는데, 생활은 가정이고 생산은 일터라고 할 수 있다. 생활 부문에는 식생활부, 의생활부, 주생활부, 학육 부문이 있고, 생산부문에는 양계, 채소, 공급 부문이 있다. 일은 가능하면 전문화, 분업화를 하려고 하는데 돌아가면서 일을 하면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던 일만 계속하면 타성에 젖을 수가 있어서 이곳 사람들은 6개월마다 자신이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산안마을 사람들은 아이들도 함께 키운다. 이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모두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릴 때는 낳은 부모가 데리고 키우지만 초등학교 2학년을 전후해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진 공간에서 함께 생활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마을의 모든 어른들을 부모처럼 여기며 호칭도 엄마, 아빠라고 한다.

비슷한 뜻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족도 아닌 남남인 사람들이 항상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보통 우리들은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어하고 그 때문에 그 조직을 떠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산안마을에는 그렇게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게 만드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 그것은 연찬이라는 독특한 방식이다.

"연찬이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주적이고 자발적인 의지의 바탕에서 스스로 사는 법, 인생관, 일상의 생활이나 사회생활 등, 인생의 모든 주제에 관하여, 모두의 지혜를 모아 모두와 함께 진리는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연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집을 버리는 것이다. 연찬을 할 때 야마기시 사람들은 상식, 선입관, 고정관념 등에서 벗어나 모두가 사이좋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방안을 찾고자 한다. 사람들이 다투는 것은 각자 다른 경험을 가진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만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그 판단이 맞다고 고집하기 때문에 서로 싸운다.

산안마을 사람들은 이를 잘 알고 다르게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자신만이 아닌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을 찾는다. 그렇게 연찬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혜가 생긴다고 한다. 모두와 사이좋게, 건강하게, 물자가 풍요롭고, 정이 가득한 쾌적한 마을을 만들어가는 일은 어떤 것이고, 그를 위해 자신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를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생활을 그들은 연찬생활이라고 부른다.



이 마을에서 들어와서 거주하는데 특별한 자격은 없다. 하지만 일단 야마기시즘 회원이 되기 위해선 무소유의 삶에 동의해야 한다. 이것을 참획이라고 하는데, 마을에서 거주하려면 자신의 모든 재산을 야마기시즘회에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14박 15일로 진행되는 연찬학교를 마쳐야 한다.



산안마을은 자신들이 꿈꾸는 무소유와 일체생활의 이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공동체 바깥과의 소통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벌이는 무소유 체험마당인 '초록축제', 어린이들이 산안마을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어린이 낙원촌', 국내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워크캠프, 한일 대학생 교류 모임인 '테손', 청년들이 산안마을에서 한 달 동안 살아볼 수 있는 생활체험 등이 그러한 프로그램이다.

돈이 필요 없고 이웃들이 사이좋게 어울려 사는 마을이 곳곳에 만들어지고 지구촌 전체가 그런 공동체 마을이 되는 꿈을 꾸는 것은 허황된 것일까? 산안마을을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꿈은 또 다른 세상을 염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최용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