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입문 : 네이버 블로그
각원사불교대학
2019. 5. 28.
밀교입문
勝友俊敎 著
慧 能 譯
머리말
근래에 밀교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이전에 춘추사(春秋社)에서 전후 5회에 걸쳐 밀교에 대한 줄거리를 강연한적이 있습니다. 그 때의 강연 내용을 토대로하여 다소 수정을 가한 것이 이 책이고, 「밀교입문」이라고 이름붙혔습니다.
밀교의 입문서로 그 내용을 어떻게 집약하면 좋을까 생각을 했으나, 시간의 제약 때문에 쫓기면서 정리해 본 것이 불충분한 것이긴 하지만 본서의 목차와 같은 내용을 같게 되었습니다.
「제1부 밀교의 줄거리」는 널리 밀교란 어떤 의미의 가르침인가, 또는 밀교발전의 역사와 전해진 지역, 그리고 밀교경전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하는 문제 등, 밀교를 외면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제2부 진언밀교의 사상」은 진언밀교의 사상을 약간 조직적으로 생각하도록 했습니다. 밀교의 사상은 인도에서 성립한 밀교경전을 고찰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으로는 밀교를 한 사람의 종교체험자의 사상으로서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밀교를 하나의 종교로서 스스로 종교체험을 하고 그 밀교사상의 체계를 조직적으로 이해하고 체계를 세운 유일한 사람이 홍법대사 구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2부에서는 홍법대사의 진언밀교사상을 하나의 종교
사상의 기본형태를 나타낸 것으로 보고 그 줄거리를 논술하면서, 홍법대사의 진언밀교사상이 현대인들에게도 <진실하게 사는 길>로서의 빛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하였습니다.
본서의 출판에 대해서는 춘추사의 사장 간다 메이(神田明)씨의 각별한 배려가 있었습니다. 또한 본서의 편집.교정 등 세부적인 일에 있어서 편집부 사또오 세이세이(佐藤淸靖)씨의 적지않은 협력을 받았습니다. 깊이 고마움을 표합니다.
1991년 1월 좋은 날.
勝友俊敎
제 1 밀교란
1. 밀교.진언종의 의미
밀교 - 불교의 한 유파
흔히 「밀교 密敎」란 어떤 특수한 종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 속의 한 흐름으로서, 즉 대승불교의 철저한 후계자로서 오히려 대승불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밀교입니다.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밀교가 힌두교 등 인도의 제종교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불교의 흐름 속에서 특수한 발전을 보아온 하나의 「비밀불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밀 密」이란 비밀을 의미합니다. 「비밀」이라는 말의 산스크리트어(梵語)는 구햐 guhya라는 말이 흔히 쓰이는데 그것을 번역하여 비밀, 또는 밀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밀교」 또는 「비밀불교」는 그 의미하는 바가 종교적 체험의 깊이를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밀교라든가 비밀불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깊고 오묘한 가르침」이라고 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밀교라고 할 때는 곧 현교(顯敎)라고 하는 말이 대조적으로 말해집니다. 사실, 홍법대사(弘法大師) 쿠카이(空海) 이후의 일본의 진언밀교에서는 상대적인 의미로 현교와 밀교라고 하는 말이 쓰여지고, 현교에 대하여 밀교가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를 강조하려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 관계된 것으로 쿠카이가 저술한 것, 또는 그 이후의 천태종의 학자들이 쓴 것, 그리고 헤이안(平安) 말기에 가꾸반(覺종;興敎大師)이 현밀차별을 논한 것 등 대단히 많이 있는데 그러한 것을 통하여, 현교에 대한 밀교의 특색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 상당히 폭넓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이점은 밀교사상편에 들어가서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인도에 있어서의 유파의 명칭
밀교는 인도에서 발달하여 중국과 한국, 일본에 전해지고, 또한 티벳(西藏)에도 전해져서 각자 독자적인 전개를 보이고 있습니다. 먼저 인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호칭은 「바즈라.야나 vajrayana」라고 하고 금강승(金剛乘)으로 번역합니다.
또한 자신들이 대승의 발전 속에 더욱 깊고 크게 발전한 것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바즈라.마하야나 vajra-mahayana」, 즉 금강대승(金剛大乘)이라고 과칭하기도 합니다. 밀교의 근본경전인 대일경에도 대승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대승은 대일경이전의 대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보다 발전한 형태로서의 「우리 대승」이라는 의미의 대승입니다. 또한 진언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강조하여 「만트라야나 mantrayana」, 진언승(眞言乘)이라는 호칭도 있습니다.
그리고 밀교를 서양에서는 「탄트릭 부디즘Tantric Buddhism」, 「에소테릭 부디즘 Esoteric Buddhism」이라고 하는데, 7세기 이후부터 밀교 최후의 무렵(12세기경)까지의 밀교문헌을 탄트라Tantra라고 하는 것에 근거하여 밀교를 탄트라의 불교, 탄트릭 부디즘이라고 한 것 입니다.
인도에서 성전을 나타내는 언어 수트라 sutra(팔리어;sutta)를 불교에서는 경(經) 또는 계경(契經)이라고 번역합니다. 본래 그것은 「날실(縱絲)」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탄트라도 본래는 「씨실(橫絲)」이라는 의미입니다. 탄트라란 <넓게 한다>는 의미의 탄tan으로 부터 나온 말이라 하여 「그것에 의하여 지혜가 넓혀지는 것」 또는 「모든 것을 한데 모은 것」, 「한 번 만들어진 것이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 이것이 탄트라」라고 확대 해석하기도 합니다.
불교성전에서 수트라라고 하면 불설(佛說)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논사(論師)가 설한 것은 논서(論書)라고 합니다. 그것에 대하여 탄트라는 역시 수트라와 같이 경전이지만 「불설」이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르침에는 다름이 없지만 수트라는 사상적(思想的)인 내용이 풍부한 데 비하여 탄트라는 실천적인 면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으로 특징 짓기도 합니다. 아무튼 수트라든 탄트라든 진리를 문자로 기록하여 남기는 것을 기계로 옷감을 짜는 것에 비유하여, 씨실과 날실의 교차에 의하여 우주의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하는 발상이 깔려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좀더 부연한다면 밀교는 독특하고 복잡한 수법(修法)과 관법(觀法)을 하고 있는 것이 현교(顯敎)의 수트라와 다른 점이라 하겠습니다. 그에 관한 의례(儀禮;修法의 規則과 方法)을 설한 문헌을 「의궤(儀軌)」라고 하는데, 그러한 여러 가지 종교적인 실천을 내용으로 하는 불교문헌이라는 의미로 탄트라라고 하는 말이 사용되게 된 것 입니다. 이와 같이 탄트라는 본래 사상이나 철학을 설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대우주 즉 절대 세계와 소우주 즉 인간 세계가 본래 일체 (一體)라는 생각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지향하는 실천의 도(道), 즉 수도의 방법(修法)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읽거나 듣거나 하더라도 혹은 내용을 안다든가 이해한다고 해도 전혀 의미를 지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탄트라는 오로지 그것에 따라 행동하고 실천함으로써 비로소 본래의 의의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같은 불설(佛說), 즉 경전이면서도 수트라라고 하지 않고 탄트라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쿠카이(空海)의 용어
홍법대사 쿠카이는 밀교의 대성자(大成者)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밀교에 대한 용어의 사용방법이 대단히 풍부합니다. 홍법대사의 저작을 통하여 어떠한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습니다.
「진언종」이라고 하는 말은 쿠카이가 일본에 개창한 종파의 종명(宗名)입니다. 그런데 쿠카이의 저술 속에는 이밖에도 진언밀교(眞言密敎), 진언비교(眞言秘敎), 진언승교(眞言乘敎), 진언비밀장(眞言秘密藏), 진언법교(眞言法敎) 등의 말이 자유자재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또한 쿠카이는 「밀교」라고 하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그 밀교라고 하는 계열의 말로는 비밀승(秘密乘), 비밀불승(秘密佛乘), 비밀일승(秘密一乘), 비밀금강승(秘密金剛乘), 비밀진언장(秘密眞言藏), 비밀만다라교(秘密曼茶羅敎) 등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강일승 金剛一乘」이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일승불교라고 할 때는 법화일승, 화엄일승이라고 하듯이 여러 종파에서 제각기 자신의 종파의 우위를 내세우기 위해 강조했던 표현 가운데 하나입니다. 즉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쿠카이는 금강일승, 그것이 우리 진언밀교이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쿠카이는 그야말로 밀교의 대성자로써 밀교를 철저하게 자신의 것으로 한 실천가였던 것인만큼 밀교를 나타내는 데에 여러 가지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사용하는 단어에 대해서도 제각기 밀교의 특성을 나타내는 깊은 의미를 간직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진언종
앞에서 언급한 대로 밀교가 특히 일본에서 하나의 종파로 정착하고 있는 명칭은 진언종입니다. 그렇게 진언종이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불공삼장 (不空三藏)이 번역한 분별성위경(分別聖位經)이라고 하는 작은 경 속에 「진언다라니종(眞言多羅尼宗)」이란 어떤 의미인가 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그 「진언다라니종」이라는 말에 주목하여 쿠카이는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다라니」를 빼고 「진언종」이라는 말을 할 수 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쿠카이는 종명을 「진언종」이라 한 것인데, 다시말하면 헤아안 초기에 중국에서 가지고 온 밀교를 일본불교의 여러 종파 속에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명칭을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천태종이라 한 것에 대하여 자기 쪽은 밀교라 하지 않고 진언종이라 한 것입니다.
산스크리트어 「만트라mantra」를 「진언(眞言)」이라고 번역합니다. 만트라는 오래된 의미로는 신들에게 바치는 찬가, 신을 찬미하는 짧은 말입니다. 그것은 베다veda 등의 종교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들에게 바치는 찬가라는 의미를 가진 말을 쿠카이는 「진실어 眞實語;진실한 말」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의어 如義語」라고도 하는데 「뜻과 같다(如義)」고 하는 것은 진리의 말, 진실의 말을 뜻합니다. 법신 대일여래(法身大日如來)의 자내증(自內證;스스로 깨달은 내용) 그 자체를 설명한 진실의 가르침, 진실의 말씀, 그것을 「진언」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쿠카이는 누구나 믿어서 의심이 없는 우주의 진리 그 자체,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 그 자체를 가르침 속에 나타내고 있다고 하는, 그러한 법신설법(法身說法)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종파를 「진언종」이라고 한 것입니다.
2.밀교의 분류
지역별로 본 밀교의 분류
밀교를 지역적으로 볼 때, 인도에서 중국 한국 일본 또는 티벳 몽고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있고, 시간적으로도 긴 역사적 발전과 변천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단히 밀교의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으며, 따라서 밀교라고 할 경우는 어디의 밀교인가를 한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흔히 말합니다. 우선 지역적으로 분류하여 인도에서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도의 밀교는 1,300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밀교는 근본불교시대부터 13세기의 초기까지, 처음에는 미미한 정도였지만 7세기 이후는 급속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도의 밀교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뒤에 중국에 전해진 밀교는 한역경전에 의한 밀교입니다. 처음은 3세기 무렵이고 역경에 의해서 그 밀교의 사상이 겨우 보급되는 정도였는데, 8세기 중당(中唐)무렵이 되면 밀교 경전의 전역도 왕성하게 되고 밀교라는 한 종파가 여러 종파 사이에 독립하여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계열의 밀교가 그대로 일본의 밀교로 된 것입니다.
일본의 밀교는 중국밀교의 전래에 의한 것이지만, 나라(奈良)시대에는 아직 하나의 종파로 독립을 보지 못하고, 헤이안 시대의 초기에 홍법대사 쿠카이에 의해서 비로소 한 종파로 독립한 진언종이 성립한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전교대사 사이쵸(傳敎大師最澄)가 전한 일본의 천태종에는 천태밀교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일본의 천태종은 법화경 뿐만 아니라 밀교를 겸해서 배우고 있는데, 법화경과 밀교는 똑같이 높은 사상적 입장에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을 흔히 「원밀일치(圓密一致)」라고 합니다.천태밀교는 「태밀(台密)」이라 하고 진언밀교는 「동밀(東密)」이라고 합니다.이 경우 동은 교또(京都)의 동사(東寺)를 가리킵니다. 고야산의 밀교라고 해도 좋지만 어느 시대에 동사가 진언종의 가장 중심으로 되고 동사의 쵸쟈(長者)가 진언종의 대표이고 다른 큰 본산(本山)을 통제한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동사가 진언종을 대표하는 의미에서 동밀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의 밀교는 동밀과 태밀의 두 가지 흐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티벳에 전해진 밀교의 흐름도 있고 많은 경전의 티벳역과 밀교의 홍통, 그리고 티벳밀교의 발달 변천이 있습니다.
인도밀교의 분류
인도에서의 밀교의 발생.발달.변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인도의 문헌에 의해 밝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의 인도불교에 대해서도 사정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도문헌으로서의 불교문헌이든 밀교문헌이든 어느것도 거의 현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충분하긴 하지만 중국에 전역된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인도불교 또는그 일부문으로서의 밀교경전의 성립사를 추정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도밀교경전의 성립사에 대해서는 뒤에 중국밀교의 성립사를 개관하면서 함께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인도밀교에 대해서 내용적으로 구분하여 중국.일본과 티벳이라고 하는 두 가지 방향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중국.일본에서의 분류방법
먼저 중국.일본의 사람들이 생각하거나 약속한 것으로는 밀교를 「잡부밀교(雜部密敎)」와 「순수밀교(純粹密敎)」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 경우 인도밀교의 흐름 속에 초기밀교에서부터 650년 경까지의 사이에 성립된 것을 경전의 내용으로 보아 이들을 일괄하여 잡부밀교라고 합니다. 그리고 현장삼장 현장삼장이 인도에 갔다 돌아올 무렵, 또는 그 직후, 650-700년경에 대일경과 금강정경이 성립하는데, 그들 경전은 그 내용으로 보아 순수밀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우선 ① 성불(成佛), 즉 부모에 의하여 생긴 이몸 그대로 부처님의 경지를 체현한다고 하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을 강조하고, ② 마하비로자나불(摩訶毘盧遮那佛;大日如來)이라고 하는 부처님이 등장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되며, ③ 석가모니불이 설하신 것이 아니고 법신 대일여래가 설하신 경전이라고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경전입니다.
여기서 순수(純粹)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 순수하다는 것인가. 밀교라고 하면 자칫하면 정통의 불교에서 벗어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러나 밀교는 석존 이래의 불교의 흐름, 즉 대승불교의 역사적인 발전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오히려 대승불교의 철저한 후계자로서 가장 훌륭하고 우수한 것이 밀교의 정통적인 흐름이라고 평가하여 순수밀교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잡부(雜部)라고 하는 것은, 좀 순수하지 않다든가 여러 가지의 것이 포함되어 있다든가 하여, 언어적으로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으나 그쪽에도 밀교의 한 특징은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중국이나 일본의 학자들이 인도밀교를 「잡부밀교」와 「순수밀교」로 구분한 방식은 그다지 엄밀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전혀 구별하지 않고는 웬지 모르게 좀 이상하게 보일 경우에는 요즈음도 이러한 구별 방법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2) 티벳불교에서의 분류방법
그러나 티벳에서의 인도밀교에 대한 관점은 상당히 진보된 방법을 보이고 있습니다. 티벳의 전승으로는 1,300년 정도의 인도밀교의 역사를 구분하여 제1기에서 제4기까지 네 가지의 시기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 제1기는 작(作)탄트라(kriya-tantra)라고 합니다. 크리야(作)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종교적인 행위, 다시 말하면 수법(修法)에 대한 작법(作法)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그러한 것을 쓴 탄트라가 성립한 시대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내용적으로 말하면 이 속에는 밀교의 중요한 것이 거의 들어 있습니다. 주법(呪法), 다라니, 인계(印契;mudra) 등 여러 가지 수법의 작법, 만다라 등도 이미 자세히 설해져 있습니다. 다만, 즉신성불 또는 속질성불(速迭成佛)이라고 하는 것은 아직 그다지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수법(修作)한다는 것은 현세이익적인 내용, 즉 사람들의 바램은 어느 것이라도 이루어 준다는 기원적인 수법을 말합니다. 주문이나 다라니를 외우면 모두 구해진다든가 재난으로부터 구원된다고 하는 밀교입니다. 그것이 제1기의 밀교라고 합니다.
제2기가 행(行)탄트라(CAriya-tantra)입니다. 챠리야는 「행 (行)」으로 번역합니다. 대승불교의 여러 가지 수행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수법만이 아니고 넓은 의미의 수행도 하고 이론화(理論化)도 합니다. 이론화란 대승불교를 근거로 하여 거기에다 여러 가지를 생각해 간다는 것입니다. 경전의 내용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행과 이론의 양방면을 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일경등을 읽어 보면 잘 알 수 있는 것인데, 그래서 구체적으로는 대일경 등을 가리킵니다. 밀교의 티벳 전승이라고 하면 이것이 제2기 입니다.
제3기가 유가(瑜伽)탄트라(Yoga-tantra)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요가를 중심으로 하는 밀교입니다. 요가 또는 삼마디 (samadhi)라고 하는데, 이른바 선정(禪定)을 닦아 정신통일을 하고 그 속에서 부처님과 내가 합일한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는 그것을 「요가밀교」라고 합니다. 그것의 대표적인 것이 금강정경입니다. 그러므로 대일경과 금강정경의 성립은 연대적으로도 조금 다릅니다. 금강정경 쪽이 조금 후대에 성립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대일여래가 설법하고 즉신성불을 설하는 등의 의미로는 순수밀교(純密)에 속하지만 순밀을 전반과 후반으로 나눈다면 금강정경은 그 후반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큰 문제로 되는 것은, 중국.일본의 불교에서는 대일경과 금강정경을 「양부(兩部)의 대경」 또는 「양부불이(兩部不二)」라 하고 그것이 지금까지의 진언종의 전승인데, 티벳 불교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 전과 후, 이를테면 챠리야 탄트라와 요가 탄트라에 차이가 있다를 것을 티벳의 학자는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의 밀교연구자는 이러한 문제를 매우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고, 일본의 밀교 쿠카이의 밀교도 다시 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학문적으로는 저도 거기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대일경과 금강정경이 일본불교에서는 순수밀교라고 하는 하나의 틀 속에 넣어져 있는 것입니다.
제4기가 무상유가(無上瑜伽)탄트라(Anuttarayoga-
tantra)입니다. 이것은 후기밀교(後期密敎)라고도 하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변천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후기밀교의 분야는 중국이나 한국, 일본밀교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은 소위 탄트리즘(tantrism) 이라는 것인데, 인도와 구미의 학자가 연구하는 영역은 거의가 이쪽입니다. 750년부터 1,000년 정도까지의 경향을 모아서 무상유가 탄트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쾌락사상이라든가 좌도밀교(左道密敎)라고 하는 여러 가지 발달.변천도 그 최후의 후기밀교 속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국, 한국, 일본의 밀교에서는 전혀 수용한 흔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상유가탄트라가 인도에서 융성하였던 것은 9세기 이후의 일로 홍법대사 쿠카이 및 그 제자가 유학했던 시대에는 그것이 아직 중국 불교계에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인도밀교의 긴 역사를 보면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잡부밀교와 순수밀교라는 비교적 단순한 구분만이 있으나, 티벳의 네 가지 시기로 구분하는 쪽이 인도밀교를 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연유에서 저는 밀교를 분류할 때에는 어디의 밀교를 가리키는가 라고 하는 것을 반드시 전제로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 것입니다.
제2 밀교경전의 성립과 특색
밀교의 경전은 어느 정도 있으며, 어느 시대에 성립한 문헌이 가장 많은가 하는 문제는 전문적으로 연구하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므로 여기서는 그 대강의 줄거리만을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1. 밀교의 원류 인도 고대의 베다종교
밀교경전의 성립을 고찰할 경우, 맨 먼저 밀교의 기원이라고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밀교는 석존이 설한 것이 아니다 라든가 석존시대에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 논의가 최초에 대두되게 되는데, 이 단원에서 말하고자 하는 밀교의 원류라는 것은 실은 인도의 고대 베다(Veda) 종교 속에 나타나고 있는 밀교의 한 요소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하나의 특징은 만트라(mantra;呪文)를 외우고, 신들에게 양재초복(攘災招福), 즉 재앙을 없애고 행복을 가져올 수 있도록 기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베다가 후에 네 가지 베다로 발전한 것 가운데 특히 아타르바베다(Atharva-veda)에 식재(息災).주저(呪詛) 등의 주법(呪法)으로 신들에게 기도하는 것이 설해져 있습니다. 더우기 바라문교의 성립시대가 되면 그런 신들에 대한 기원이 한층더 왕성하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다신교(多神敎)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들에게 기원할 때에 만트라를 외우는 것은 나중에 불교 속의 밀교에서도 형식상으로는 그와 같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다종교나 바라문교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되는 신과, 불교의 흐름 가운데 있는 밀교에서 신앙되고 있는 제존(諸尊)과는 당연히 차이가 있지만, 자신의 생활 속에서 원망(願望)을 이루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정은 시간을 초월하여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특히 인도인들은, 불교 이외의 사람들도 당연히 현세이익적인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있었던 것이고, 그러한 의미에서 공통적인 원류를 갖습니다.
다른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화천공양(火天供養)의 호마법(護摩法)도 그 기원은 바라문교에 있습니다. 그것이 밀교 속에 받아들여져서 마침내 진언종에서도 호마법이 성하게 수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2. 불교 속에서의 밀교의 발전과정
원시불교
다음에 밀교가 발전하는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면, 밀교는 석존시대부터 손제자의 시대(근본불교시대)에 그 싹이 있었다고 지적할 수가 있습니다. 근본불교경전 속에 이미 석존은 세속적인 주술이나 주법. 주문을 외우거나 해서는 안된다고 금지한 부분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 속에서는 재난을 없애고 행복을 구하는 현세이익적인 마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독을 없애거나 아픔을 치료하는 것, 예를 들면 이빨이 아플 때 치통을 낫게하는 주문을 외운다든지 또는 독사나 독충을 쫓기 위해서 방호주(防護呪;parita)라고 하는 주문을 외워서 재해를 면하는 것은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어느 시대이든 무언가에 의존해서 몸의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무언가에 의존하고 싶어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정도를 넘지 않도록 한다든가 또는 그러한 형태를 견지하면서 정신적으로 안정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 원시불교의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밀교의 기원을 원시불교에서의 주법이라든가 방호주(파리타)의 존재 등 다만 이와같은 주술의 개재(介在)에서만 찾고 후에 발달된 고도로 정신적인 밀교를 다만 「순화」의 한마디로서만 설명한다면 그것은 자가당착이라고 학계에서 지적하고 있으며, 따라서 밀교의 기원을 주술적인 요소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밀교가(密敎家) 자신이 대승불교도로서 자인하고 있듯이, 역사적으로든 교리사상적으로든 철저하게 대승불교를 후계하고 발전시킨 것이 곧 밀교이다고 하는 것이 최근의 학계에 정설로 되어 있음을 아울러 밝혀 둡니다. 譯者>
부파불교에서 대승불교.밀교에로
부파불교에서 대승불교의 중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지만 그 시대에 밀교경전은 점점 많이 성립되었습니다. 경전이 성립했다는 것은 그것이 널리 보급되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들어지기만 한 것이 아니고 만들고 보급되어 밀교를 믿는 사람, 실천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후기가 되면 더욱더 급속히 밀교경전이 많이 성립되어 인도불교사에 있어서 이른바 밀교시대에 돌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밀교경전의 성립과정
밀교경전의 성립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경전의 수, 번역연대를 기준으로 하여 도표를 만들어 보는 것이 이해하기 쉬우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인도의 밀교이지만 인도의 자료든지 인도의 문헌에서는 대단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부득이 중국에서 번역된 한역불전(漢譯佛典) 속에 있는 밀교경전을 분류하여 역으로 인도밀교의 성립과정을 추측하는 방법입니다.
年222 280 316 420 581 618 716 800 960 1030
國吳 西晋 東晋 南北朝 隋 初唐 中唐 後唐 宋
譯 4 2 18 27 10 63 200 37 120
經
數
현재 대정신수대장경(100권)이라고 하는 방대한 대장경에서는 4권(제18,19,20,21권) 속에 밀교부로 수록되어 있고, 그밖에 반야부 보적부 대집부 등에도 밀교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경전들이 편집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는 아주 많은 부수를 밀교경전이라 하고 그 경전과 번역자, 년대를 분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경전의 번역년대와 경전의 수를 기준으로 하여 인도불교사를 추정해 보면 위와 같은 표가 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삼국시대의 오吳 시대에 네 가지 정도의 밀교경전이 역출되고 있습니다. 결국 중국에 소개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그들의 밀교경전이 성립되어 있다는 것이 됩니다. 그로부터 서진 시대에 두 가지, 동진 시대에 18, 남북조 시대에 27, 수 시대에 10, 당의 초기부터 중기 무렵이 되면 밀교경전의 수는 급격히 많아지게 됩니다. 현장(玄 ?)도 의정(義淨)도 밀교경전을 역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초당 시대에 많은 번역자에 의해서 역출된 밀교경전의 수를 세어보면 63종류 정도 됩니다.
당의 중기 무렵(中唐時代), 700년대가 되면 선무외(善無畏)삼장에 의해서 대일경이 번역되고, 금강지(金剛智)삼장에 의해서 금강정경이 번역됩니다. 그리고 조금 늦게 불공(不空)삼장이 거듭 금강정계의 밀교경전을 많이 번역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들에 의해서 비로소 중국밀교가 중국불교의 한 종파로써 성립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시대의 역경은 거의 200가지에 달합니다. 더군다나 당의 말기(後唐) 무렵에도 아직 밀교경전의 역경이 계속되어 37종류 정도의 경전이 더 역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대시대(五代時代)라고 하는 혼란의 시대가 있고 뒤이어 송나라가 됩니다. 그 송대의 초기에 밀교경전이 120종류나 번역되고 있습니다.
한역(漢譯)은 1030년 쯤에 끝나버리지만 인도밀교는 그 후에도 계속됩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인도밀교는 이슬람교도에 의해서 무참하게 전부 파괴됩니다. 비크라마시라사(Vikramasira寺)라고 하는 밀교의 가장 큰 사원이 그때 철저히 파괴되어, 밀교가 완전히 인도에서 소멸되어 버리는 때가 1203년쯤이고, 이것을 인도밀교의 종말이라고 합니다.
한역경전을 통해서 본 인도밀교라는 것은 대략 이런 과정으로 발달.변천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강물의 흐름에 비유하면 좁은 개울이 흘러흘러서 점점 크고 넓은 강물이 되듯이 인도불교의 최후는 밀교시대로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불교는 점점 쇠퇴해져서 마침내 밀교 속에 흡수되어져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밀교는 대승불교의 철저한 후계자로서 불교의 오랜 흐름과 함께 하는 이러한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들 많은 밀교문헌을 총칭하여 특히 「밀교경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 밀교경전의 분류
밀교경전의 분류는, 한 가지 시안(試案)이긴 하지만 다음과 같이 구분하면 좀더 이해하기 쉬우리라 봅니다.
⑴ 태장법부(胎藏法部)
태장법부는 엄밀히 말하면 금강계.태장법이라고 할 때의 태장법의 부문이고, 그 대표적인 것은 대일경입니다. 그리고 그밖에 광대의궤(廣大儀軌) 등이 있는데 역시 대일경 계통의 경전을 의미합니다.
⑵ 금강정부(金剛頂部)
금강정경 계통의 경전입니다. 여기에는 금강정대교왕경(金剛頂大敎王經), 약출염송경(略出念誦經), 반야이취경(般若理趣經)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전을 금강정부라고 하는데, 금강정경 계통의 경전으로는 작은 경전까지 포함하면 숫자가 매우 많습니다.
⑶ 제경부(諸經部)
세번째는 제경부 입니다. 하나하나 따로 부를 정하면 매우 다양하고 많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한데 묶어서 제경부라고 합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경전은 소실지경(蘇悉地經), 소바호동자경(蘇婆呼童子經), 공작명왕경(孔雀明王經), 대운청우경 (大雲請雨經),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 수호국계주다라니경 (守護國界主陀羅尼經), 대승이취육바라밀경(大乘理趣六波羅蜜經), 대승밀엄경(大乘密嚴經) 등이 있습니다. 제경부에는 이런 종류의 경전이 매우 많이 있습니다.
이상 세 가지가 전체적인 커다란 구분인데 다음은 밀교의 부처님 속에는 보살이나 명왕(明王), 천(天) 등의 신앙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나누어 보면 보살부, 명왕부, 천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⑷ 보살부(菩薩部)
보살부 가운데 먼저 관세음보살은 종류가 다양하여 성관음(聖觀音=正觀音),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천수천안관음(千手千眼觀音), 불공견삭관음(不空 ? 索觀音),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마두관음(馬頭觀音) 등이 있습니다. 이른바 변화관음이라고도 부르고 관음계통의 부처님은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관음부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일여래의 다음 자리에 있다고 하는 금강살타 (金剛薩 ?)를 중심으로 한 것, 또는 대승불교에서 이미 설해져 있는 문수보살, 보현보살, 미륵보살, 허공장보살, 지장보살, 8대보살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보살을 중심으로 각각의 보살에게 기원하는 데에 필요한 경전류가 있습니다.
⑸ 명왕부(明王部)
명왕은 산스크리트어 비드야 라쟈(vidya-raja)의 번역인데, 명(明)은 우암(愚暗)을 깨뜨리는 지혜의 광명을 의미하고 진언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명왕은 명을 지닌 명의 주(主)로서,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분노(忿怒)의 상을 나타낸 존(尊)이므로 지명왕(持明王), 분노존(忿怒尊). 위노왕(威怒王)이라고 하고 삼종륜신(三種輪身) 가운데 대일여래의 대지(大智)로부터 현신(顯身)한 교령륜신(敎令輪身)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명왕부에는 부동명왕(不動明王), 항삼세명왕(降三世明王),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대위덕명왕(大威德明王), 금강야차명왕(金剛夜叉明王) 등 오대명왕이 대표적이고, 그밖에 명왕부의 제존을 공양하는 방법이 쓰여져 있는 경전들이 여기 명왕부에 해당됩니다.
⑹ 천부(天部)
천부에는 범천(梵天), 제석천(帝釋天), 비사문천(毘沙門天), 대길상천(大吉祥天), 환희천(歡喜天), 마리지천(摩利支天), 기타 많은 천(天)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밀교는 다채로운 제불 제보살 제명왕 제천에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밀교에서는 단지 신앙하는 것만이 아니고 각각의 신앙의 대상과 일체화(合一)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그 신앙의 대상에 어떻게 예배하고 신앙하고 기원하여 성불에 이를 것인가를 밝혀 놓은 경전이 있습니다. 다음 장에서 밀교경전의 특색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4. 밀교경전의 특색
여러 가지 경전이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외면상으로 본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경전과 의궤
다채로운 밀교문헌의 특색이라고 하면 우선 「경전(經典)」과 「의궤(儀軌)」의 두 가지 구분이 있습니다. 밀교경전에는 보통 대일경이라든가 금강정경 등이 있으나, 경전의 이름 끝 부분에 「의궤」라고 되어 있는 것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의궤란 범어 깔빠(kalpa)의 번역으로 밀교의 경전에서 설한 불.보살.명왕.천.신 등을 염송.공양하는 의식이나 궤범을 말합니다. 즉 교리 사상을 가르치는 경전으로서만이 아니고, 그 경전을 수행과 실천적인 행법으로서의 「의궤」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600종류 이상의 밀교문헌 가운데 제목에 「의궤」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 106종류 정도 있습니다. 또한 「공양법供養法」이라든가 「염송법 念誦法」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 것도 20종류 이상이나 됩니다. 이와 같이 밀교의 경전에는 다른 종파의 경전과 크게 다른 것이, 신앙의 대상을 향하여 적극적으로 어떤 방법을 행하여 갈 것인가 하는 수법의 방법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경전을 의궤화하거나 의궤로 된 것이 매우 많다는 것이 특징
입니다.
밀교경전은 다라니장(陀羅尼藏)
밀교경전을 「다라니장」이라고도 합니다. 「다라니장」이란 다라니(dharani)의 곳집(藏)이라는 것입니다. 장(藏)은 산스크리트 피타카(pitaka)의 번역으로, 용기(容器), 곡창(穀倉), 암기된 것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삼장(三藏)이란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의 셋을 말하는데, 불교성전을 이 세 가지로 나누어 모았다는 뜻으로 불교성전을 총칭하여 「삼장」이라합니다. 그런데 그 뒤 밀교가 발전하여 밀교경전이 늘어나게 되자 그것을 하나의 장으로 모아서 「다라니장」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밀교경전에는, 여러 가지 좋은 법을 가져 잃지 않고, 온갖 무거운 죄장을 소멸하여 열반을 속히 깨닫게 하는 미묘한 힘을 가지고 있는 「다라니」에 관한 것이 아주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다라니집경(陀羅尼集經)(12卷 唐 阿地瞿多 譯), 다라니잡집(陀羅尼雜集)(10卷 失譯)이라는 경전이 있습니다. 그밖에 「0 0 0 다라니」 라든가 「다라니 0 0 0」라는 식으로 제목 속에 다라니라는 말이 반드시 나오는 것이 200종 이상이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밀교경전 속에는 「다라니장」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다라니가 많다는 것이 두번째의 특징입니다.
밀교경전에 설해진 밀교적인 것
밀교경전에 설해져 있는 내용의 특징으로는 우선 「진언(眞言)」 또는 「다라니」가 많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진언은 산스크리트어 「만트라 mantra」의 번역으로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말이란 뜻입니다. 어원적으로는 <사념한다>는 뜻의 「만man」과 <그릇(器)>의 뜻을 지닌 「트라tra」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에 의해 신神의 덕을 사념할 수 있다든가 사념을 표현하기 위한 그릇, 즉 신성한 문자 또는 언어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라니는 산스크리트어 「다라니dharani」의 음역으로 총지總持, 또는 능지能持라고 번역합니다. 정신을 통일하고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지니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언과 다라니는 엄밀히 말하면 서로 구별이 되는 것이지만 흔히 「0 0 의 진언」, 「0 0 의 다라니」라고 하고, 명(明;vidya 學問.知識의 뜻)이라든가 명주(明呪)라고 하기도 합니다.
다음은 「인계(印契)」를 들 수 있습니다. 인(印)은 산스크리트어 「무드라 mudra」의 번역인데, 표시.증거.상징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보살 등 제존의 깨달은 내용을 손이나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것을 수인(手印)이라 하고, 칼.지팡이 연꽃 등 제존이 지물(持物)로 나타내는 것을 계인(契印) 또는 상인(相印)이라 합니다. 그리고 불.보살이 깨달은 내용을 나타내기 위하여 인을 맺는 것이지만, 밀교의 수행자가 수법과 수행을 행할 때에도 반드시 인을 맺게됩니다. 수행자가 인을 맺는 것은, 사실 부처님에 대한 단순한 외형적인 모방이나 흉내의 영역을 뛰어넘어, 진리의 어느 한 면 바로 그 자체로 되어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인계가 매우 다양하고 많은 것도 밀교경전의 특징입니다.
또한 「만다라(曼茶羅)」가 있습니다. 만다라는 범어 「만달라(mandala)」의 음역으로 단(壇), 단장(壇場), 윤원구족(輪圓具足) 등으로 번역합니다. 원래는 비법을 닦을 때 마중(魔衆)의 침입을 막기 위해 그려놓은 원형(圓形)이나 방형(方形) 으로 구획한 지역을 「만다라」라고 합니다. 그러나 밀교에서는 주로 「취집(聚集)」의 뜻을 취하여, 제불.보살 등의 성중이 모이는 곳을 말합니다. 인도에서는 토단土壇을 쌓고 그 위에다 제존을 그려 놓고 행사가 끝나면 부수어 버리는데,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주로 종이나 천(帛)에 그려 놓기 때문에 그런면에서 조금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단을 쌓아서 그 위에 제불을 그려 모시고 만다라의 제불을 예배하는 방법이 상세하게 쓰여져 있는 것이 밀교경전의 한 특징이라고 할 것입니다.
신앙의 대상
밀교의 특징적인 신앙의 대상에 「태장계의 만다라」와 「금강계의 만다라」가 있습니다. 이들 만다라에는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하여, 제불.제보살, 제명왕, 제천 등 지극히 복잡하고 다채로운 신앙의 대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밀교에서는 불타관(佛陀觀)의 통일적인 견해가 진행되어, 대일여래는 「보문(普門:samantamukha無量門이라고도 하며, 모두에 골고루 미치는 보편적인 門戶라는 뜻)의 부처님」이고, 그밖의 제불.제보살.명왕.천 등은 일지(一智).일덕(一德)을 나타내는 「일문(一門)의 부처님」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밀교경전을 보면 신앙의 대상이 전체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와 개개의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 수가 매우 많습니다. 이것은 밀교에 있어서 불타관의 문제입니다. 밀교에서는 불타관이 이처럼 복잡하게 되어있으나 그 복잡함 속에 매우 교묘하고 정교한 통일성이 있습니다. 그것도 밀교경전 속에 설해져 있는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관법과 기원
다음에 밀교경전 속에는 관법(觀法)과 여러 가지 기원(祈願)에 관한 내용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두 가지 예를 들어보면, 보리심(菩提心)을 관하는 방법[菩提心觀]이 있습니다. 우리들 마음 속에 근본자성인 정보리심(淨菩提心)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도록 하기 위한 관법인데, 여기에는 월륜관(月輪觀)과 아자관(阿字觀)이라는 관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월륜본존도(月輪本尊圖)나 아자본존도(阿字本尊圖)를 걸어두고 그 앞에 정좌하여 호흡을 조절하고 정신통일을 하여 「월륜」 또는 「아자」로 상징된 정보리심이 본래 내 마음 속에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관법입니다.
또한 「삼밀가지(三密加持)」의 묘행도 설해져 있습니다. 「삼밀」이란 비밀의 삼업(身密.語密.意密)이란 뜻이고, 「가지」는 범어 아디스타나(adhisthana)의 번역으로, 상응하여 관계하는 것, 호념(護念).가호(加護)를 나타내는 의미에서 부처님과 중생이 상응하여 일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과 중생이 서로 명합하는 유가(瑜伽)의 경지에 들어가서, 행자(行者)가 몸에 인을 맺고[身密], 입으로 진언을 외우고[語密], 뜻으로 본존을 관하여[意密], 행자의 삼업 위에 부처님의 삼밀이 더하여 섭지(攝持)되는 것을 「삼밀가지」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여 행자와 본존은 일체(一體)로 되고, 이몸 그대로 부처가 되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의 깨달음을 이룬다고 하는 밀교의 독특한 수행방법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진언이나 주문.다라니를 설한 경전이 많고, 특히 다라니집경이라고 하는 경전도 있습니다.이들 진언이나 주문.다라니는 양재초복(攘災招福)의 기원, 즉 병을 낫게 하고, 연명(延命)하여 오래 살게 하고, 비가 오도록 기우를 하고, 재보(財寶)를 얻게 한다는 등 이른바 현세이익적인 기원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현세이익적인 기원의 신앙은 진언밀교에서 뿐만이 아니고 천태종이나 기타 불교의 모든 종파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 3 중국밀교의 성립
1. 밀교경전의 역출 삼국시대에서 초당시대까지
인도에서 성립한 밀교경전은 다른 일반적인 불교경전과 함께 일찍부터 중국에 전해져서, 삼국시대부터 서진, 동진, 남북조시대(200-600년경)까지 많은 역경자에 의해서 50여 종류의 밀교경전이 역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隋)에서 초당시대(600-700년)까지 거의 100년 사이에 급격히 인도밀교경전이 성립한 듯이 그들 밀교경전이 많은 번역자에 의해 역출되어 그 경전의 수는 거의 60여 종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밀교경전에 의해서 밀교적인 불타관의 다양성과 의궤에 의한 수법, 진언.주(呪).다라니의 지송과 그 공덕의 신앙 등 밀교의 특색있는 제양상이 중국불교계에 나타난 것입니다. 따라서 초당시대에는 그 새로운 밀교에 주목하는 경향도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 밀교라는 한 종파가 성립하기에는 미흡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밀교의 수행법 등을 구체적으로 지도할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2. 중국밀교의 성립 中唐以後
그러나 중당이후(700년대)가 되면 즉신성불의 사상과 실천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순수밀교의 경전이 중국에 전해져 역출되고, 또한 밀교의 실천적인 수행방법이 전해집니다. 그것이 많은 문제(門弟)에 전해지게 되어, 비로소 중국사회 속에 새로운 밀교라고 하는 한 종파가 성립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중국밀교라는 한 종파를 탄생시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분들은 다름과 같습니다.
⑴ 선무외 善無畏(637-735)
먼저 첫번째가 선무외 삼장입니다. 선무외는 「슈바카라싱하Subhakarasimha」의 번역인데 동인도 마갈타국 왕가(王家)의 출신이며, 나란다(Naianda) 절에서 달마국다(達磨 ? 多)에게 대일경 계통의 밀교를 배워 인도에서 이미 밀교의 아사리(阿舍梨 acarya;軌範師. 正行이라 번역하며, 제자를 敎授하고 제자의 행위를 바르게 하여 그 궤범이 될 수 있는 스승을 말하는데, 밀교에서는 만다라 및 제존의 印明에 통달하여 傳法灌頂을 받은 자를 말함.譯註)로써 유명했던 분입니다. 80세의 고령으로 개원4년(716)에 중앙아시아를 거쳐 장안에 도착했습니다. 그후 장안과 낙양의 두 곳을 왕래하면서 그사이에 대일경 소바호동자경 소실지경등 20여 종류의 밀교경전을 번역하고 또한 밀교의 수법 등을 많은 문제(門弟)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⑵ 금강지 金剛智(671-741)
다음이 금강지 삼장입니다. 원명은 바즈라보디(Vajrabodhi)라고 하는데 중인도 왕가(王家)에 태어나 나란다 절에서 대승불교를 배우고 남인도에서 용지(龍智)보살(密敎付法相承의 第4代 祖師)을 만나 밀교를 배웠습니다. 바닷길로 해서 중국의 남쪽지방에 도착하고, 개원7년에는 중국에 이르러 그 익년 개원8년(720)에 장안까지 온 것입니다. 선무외보다 4년 정도 늦었으나 선무외와 거의 때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강지는 금강정약출염송경(金剛頂略出念誦經)(4卷) 등 금강정경 계통의 20여 종류의 밀교경전을 번역했습니다.
선무외와 금강지 두 사람은 모두 인도에서 이미 밀교의 아사리로서 밀교를 수법하여 밀교의 의식을 모두 체득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이 중국에 와서 바로 제자들을 기르고 밀교의 수법과 관정의식, 그리고 만다라를 그리는 방법 등을 제자들에게 가르쳤기 때문에 중국밀교의 성립에 제1기는 선무외와 금강지에 의해서 그 기초가 다져졌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⑶ 일행 一行(683-727)
또한 이무렵에 일행선사가 나와서 중국밀교의 수용과 성립에 커다란 업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중국의 학자로서 금강지와 선무외의 양쪽에서 배웠는데, 특히 선무외에 대해서 대일경의 번역을 도왔고, 더우기 진언밀교의 대표적인 주석서인 대일경소(大日經疏)(20卷)를 저술했습니다. 그러나 일행선사는 선무외, 금강지보다 빠른 727년에 45세의 아까운 나이에 입적한 수재였습니다. 일행선사는 원래 천태의 학자로서 밀교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동시에 천문학. 역법학(曆法學)에도 정통하여 유명한 개원대연력(開元大衍曆)을 만드는 등 이 부문에도 매우 많은 저작을 남기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에서는 일행선사를 종교가보다도 과학자로써 커다란 엄적을 남긴 사람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고, 북경의 역사박물관에 가면 「과학자 일행(一行)」이라고 한 동상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것이 중국밀교성립의 제1기에 해당됩니다.
⑷ 불공 不空(705-774)
제2기는 불공삼장입니다. 불공은 범어 아모가바즈라(Amoghava-
jra)의 역명인데 바라문의 혈통을 이은 인도 사자국 사람으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를 따라 남양의 여러 나라로 다니다가 쟈바에서 금강지삼장의 제자가 되고, 개원8년 16세 때 스승을 따라 중국에 왔습니다. 금강지삼장을 모시고 역경에 조력하고, 밀교를 배워 양부(금강계와 태장계)의 대법과 밀교의 깊은 뜻을 계승하여 부법(付法)의 조사가 되었습니다. 개원19년(731) 금강지가 입적한 뒤에 그의 뜻을 이어 인도의 아릉국(阿陵國)을 거쳐 사자국의 불아사(佛牙寺)에 있으면서 보현(普賢)아사리에게 밀교의 대법을 전해 받고, 금강정경 계통의 여러 경과 논을 가지고 다시 중국에 돌아와서 밀교를 전하고 경론 번역에 종사하게 됩니다. 700년대 후반은 오직 이 불공삼장이 중심이 되어 밀교경전의 번역과 수법을 성하게 하여 많은 제자를 두고, 또한 밀교의 사찰을 여러 곳에 건립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불공삼장의 시대에 비로소 중국의 다른 종파와 비교하더라도 불공의 밀교쪽의 세력이 우세하게 되고, 당의 후반에 밀교가 왕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데에는 밀교와 당의 왕실과의 밀접한 관계도 있었지만, 그 외호에 힘입어 중국밀교는 급격히 발전해 가게 된 것입니다.
⑸ 혜과(慧果) (745-805)
그 불공의 법을 이은 제자 가운데 가장 우수한 제자가 혜과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혜과 화상(和尙), 또는 혜과 아사리라고 하는데 이사람이 바로 쿠카이의 스승입니다. 혜과아사리는 장안의 청룡사 동탑원에 있었고 당조(唐朝)의 신임을 얻어 밀교를 크게 홍포하고 많은 제자를 두었습니다. 60세가 되었을 때 32세의 쿠카이가 이 스승을 만나 밀교의 비법을 전해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밀교는 거기서부터 시작되는데, 중국밀교는 그 뒤에도 발달.변천을 하여 800년대 후반 무렵까지 의연히 인도밀교의 경전을 가지고 와서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공이나 혜과의 문하가 왕성하게 활동하여 각각의 밀교를 발전시켰던 것입니다. 중국밀교의 성립은 이정도로 살펴보고, 그 중국밀교가 일본에 전해져서 어떠한 양상을 띄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다음장에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제4 나라(奈良)시대의 밀교
아스카(飛鳥), 하꾸호오(白鳳)부터 나라(奈良)시대까지 중국불교는 급속히 일본에 전해졌는데 밀교경전도 널리 불교경전 속에 포함되어 전해졌습니다.
밀교경전의 전래
나라(奈良)시대에 밀교경전은 거의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잡부밀교의 경전이었고 순수밀교의 대일경이나 금강정경 계통의 경전은 극히 조금밖에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나라(奈良)의 정창원(正倉院) 문서에 엄청나게 많은 사경(寫經)의 기록이 남아 있고, 학자들이 여러 가지 경전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는데 밀교경전에 대해서도 정리가 이미 되어 있습니다. 나라시대의 정창원 문서를 보면 잡부밀교경전의 거의 전부와 극히 일부의 대일경과 금강정경 계통의 경전이 전해졌고, 다소간 연구가 되었던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라시대에 겐보오(玄昉 ?-746)라는 법상종(法相宗)을 전한 유명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분은 중국에 십수년간 유학을 하고 덴헤이(天平)7년(735)에 일본으로 돌아올 때, 번역된 「일체경(一切經)」 5,000여권이나 되는 엄청난 경론을 가지고 왔다고 하는데, 이는 덴헤이 시대에 이미 중국어로 번역된 경전류는 거의 가지고 왔다는 것이 됩니다. 그 속에 잡부밀교의 경전이 대부분 들어 있고, 그래서 나라(奈良)시대의 학자가 그것을 서사(書寫)하고 공부하는 것도 비로소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밀교홍통의 상태
그렇게 전해진 밀교의 보급 형태를 살펴보면 첫째로 사경(寫經)이 행해졌습니다. 그리고 밀교의 불상(佛像)이 매우 많이 조성되었습니다. 이것도 전문학자들이 통계적으로 조사한 것에 의하면, 140-150체(體) 정도 있는 나라(奈良)시대의 불상 가운데 40체 정도가 밀교의 불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한 다라니를 외우면 병이 낫는다든가 재난을 면할 수 있다고 하는 「다라니신앙」이 상당히 보급되어 있었습니다. 헤이안 초기의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라고 하는 책을 보면 그러한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다라니신앙이 상당히 보급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와 같은 양상이 쿠카이 이전의 밀교의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쿠카이도 젊은 나이에 출가하여 수행했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앙에 역시 쿠카이가 만족할 수 없었고, 자신이 중국에 가서 배워 전해야겠다는 결의를 하기까지에는 그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헤이안 초기가 되면 드디어 쿠카이가 등장하게 됩니다.
제5 쿠카이의 입당구법과
진언종의 개종
1. 젊은날의 수행
쿠카이(空海 774-835)는 시꼬꾸(四國)의 사누끼(讚岐), 지금의 젠추우지 시(善通寺市)에서 호우끼(寶龜)5년(774)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사하끼 아타이타(佐伯直田公), 어머니는 아또우지(阿刀氏), 어릴 때의 이름은 마오(眞魚)라고 합니다. 15세 때 백부 아또노(阿刀大足)를 따라 상경하여 백부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18세 때 대학에 들어가서 널리 중국의 학문을 배웠는데 그 공부는 대단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쿠카이 자신도 삼교지귀(三敎指歸)의 서문에서 자신은 대학에 들어가서 잠이 오면 송곳으로 다리를 찔러 졸음을 쫓으며 공부를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쿠카이는 중국의 학문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고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교를 배우고 수행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껴 미련없이 대학을 중도에 퇴학하고 불교 수행의 길에 들어간 것입니다. 처음에 우연히 한 스님에게서 허공장구문지법(虛空藏求聞持法)(1卷, 善無畏 譯;허공장보살을 염하여 기억력이 견고해지기를 구하는 수법.譯註)이라고 하는 밀교의 수법을 전해받고 먼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시꼬꾸에 가서 아와(阿波)의 오오타키다께(大瀧嶽)와 토사(土佐)의 무로토미사끼(室戶岬) 등지에서 구문지법을 닦으면서 혹독한 수행을 계속했습니다. 또한 시꼬꾸의 산야를 두루 순레하기도 하고, 나라(奈良)에 가서 요시노(吉野)의 남쪽지방에서 엄격한 산악수행의 나날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나라불교의 연구에도 정진하여 당시 나라에는 법상종, 삼론종, 화엄종, 율종 등의 학문이 성했으므로 그들 제종의 불교문헌을 독파하고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20세 무렵에 출가득도하여 이름을 쿠카이(空海)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쿠카이의 불교연구와 수행은 크게 진전되어 24세 때 유교와 도교와 불교의 우열을 밝힌 삼교지귀를 저술했습니다. 이것은 쿠카이의 출가선언서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마침 그 무렵 쿠카이는 야마토의 구미사(久米寺)에서 대일경을 발견하고, 그 경전에 「자기의 탐구와 깨달음에의 진실한 삶의 길」이 설해져 있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 그 이후 대일경 등의 밀교경전연구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밀교경전은 단지 읽는 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고 반드시 밀교의 아사리에게 비법을 전수받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쿠카이는 가만히 입당구법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24세부터 입당(入唐)하는 31세까지의 쿠카이를 「울지않고 날지않는 7년간」이라고 흔히 말하는데, 그동안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는 지금의 자료로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 중국에 가서 공부할 충분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합니다. 이리하여 쿠카이는 입당구법의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 입당구법(入唐求法)
쿠카이 31세 때 견당사(遣唐使)의 배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때 견당사의 배는 네 척이었는데, 첫번째 배는 견당대사 후지와라(藤原葛野 ?)와 쿠카이가 타고, 두번째 배에는 전교대사 사이쵸(最澄)가 탔습니다. 난바(難波=大阪)를 출발한 것이 5월이고 7월 6일에 큐슈(九州)의 타노우라(田浦)를 출항하였는데 바로 폭풍우를 만나 한 척은 침몰하고 다른 한 척은 되돌아 갔지만 제1선과 제2선은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그때의 견당사의 일정과 동향 등은 속일본후기(續日本後紀)에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신용할만한 사료(史料)입니다.
그래서 표류하여 8월 10일에 중국 복주(福州) 근처의 적안진(赤岸鎭)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해적선으로 오해를 받아 상륙하기가 어려웠던 일 등은 쿠카이 자신의 문장 속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고충을 겪은 끝에 11월 3일에 간신히 복주를 출발하여 긴 대륙의 여행을 계속하여 12월 23일에 당의 수도 장안에 다다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익년 2월 견당대사의 일행은 중책을 완수하고 귀도에 오르고, 유학생인 쿠카이와 타찌바나(橘 逸勢)는 장안에 머물러 처음으로 서명사(西明寺)에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2월부터 5월까지 장안의 큰 사원을 방문하거나 중국의 문화인들을 만나기도 하고, 인도에서 와 있던 반야(般若)삼장과 모니실리(牟尼室利)삼장을 만나서 인도의 사정을 듣기도 하고 범어를 배운 것도 이 시기였다고 봅니다. 이 삼개월을 쿠카이는 매우 유효하고 정력적으로 듣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5월 말에 청룡사의 혜과아사리를 찾아가서 밀교의 비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때 혜과아사리는 60세, 쿠카이는 32세 였습니다. 혜과아사리는 불공삼장의 문하에서 당시 밀교계의 제일인자로 추앙받던 사람입니다. 이 스승과 제자의 만남의 정경은 쿠카이 자신이 써서 남긴 문장 속에 자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스승은 기뻐하며 외국에서 온 젊은 학승을 맞이하여 자신의 여명이 얼마남지 않음을 알고 밀교상승의 가장 중요한 의식인 관정(灌頂)을 빠른시기에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이때의 사정을 쿠카이는 「나에게 발보리심계를 주시고, 관정도량에 드는 것을 허락하시어 수명관정(受明灌頂)을 받은 것이 세 번에 이르고, 아사리위阿舍利位를 받은 것이 한번이었다」(고쇼라이목록御請來目錄)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수명관정이란 밀교를 수학하고 제자가 되는 것을 허가하는 의식의 작법으로, 인연있는 일존(一尊)의 인(印)과 명(眞言)을 주게 되며, 허가관정(許可灌頂)이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사리위를 받는다는 것은 밀교 교수(敎授)의 자격으로 금강계 태장계 양부의 비법을 관정단(灌頂壇)에서 받는 것인데 전법관정(傳法灌頂)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보리심계를 받는 것과 태장계와 금강계의 양부의 관정을 받는 것은 진언밀교의 최고비밀의 법을 상승하는 것입니다. 쿠카이는 이 최고의 의식을 수반한 비법의 전수에 의해서, 혜과아사리 만년의 가장 우수한 제자가 되었고 일본에 돌아가서 밀교를 보급시킬 자격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후 더욱 밀교의 여러 가지 비법을 전수받기도 하고 밀교경전의 서사에 침식을 잊기도 하고, 또한 양부의 대만다라와 밀교 법구(法具)의 제작을 의뢰하여 밀교상승(相承)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12월 15일에 스승 혜과아사리는 60세로 입적합니다. 쿠카이가 유학생으로서 스승에게 배운 것이 겨우 반년이었습니다. 쿠카이의 슬픔이 얼마나 컸었던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때 쿠카이는 스승을 추모하고 그 덕을 칭송하여 「혜과화상비문」을 썼습니다(성령집(聖靈集)卷2). 그 문장에는 스승과의 만남, 스승의 따뜻한 지도에 대한 감사, 스승의 높은 학덕, 민중의 교화에 커다란 업적을 남기고 있는 것을 찬탄하는 내용으로 쓰여져있습니다. 스승에 대한 추모와 경앙을 잘 드러낸 명문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승이 입적하신 그 익년 1월에 장례가 끝나고 2월에는 귀국의 길에 오릅니다. 그것은 마침 장안에 와 있던 견당대사 타카시나(高階遠成)가 귀국하기 때문에 함께 귀국하기로 한 것입니다.
4월에는 월주(越州)에 도착하여 거기서도 널리 중국의 문헌을 모집하고 8월에는 명주(明州)를 출항하여 10월 초에 무사히 큐슈에 도착한 것입니다. 이 입당구법은 출발에서 귀국까지가 불과 2년 8개월, 장안에 체재한 것이 1년 2개월, 혜과아사리에게 사사한 것은 반년으로 됩니다.
큐슈에 도착한 쿠카이는 다자이후(太宰府)에 머물면서 10월 20일부로 고쇼라이목록을 조정에 올렸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입당구법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입니다. 그 가운데 쿠카이가 혜과아사리로부터 관정을 받은 것, 혜과아사리에게서 배운 밀교라는 것은 ① 불교 가운데서도 가장 우수한 가르침이고, ② 즉신성불의 가르침이고, ③진호국가(鎭護國家)의 가르침이고, ④ 민중의 양재초복의 가르침이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밀교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그 핵심을 잘 파악하여 정리한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쿠카이가 그 후, 일본에 진언종을 열고 사상 교화 활동을 전개 함에 있어서 그 근본이념이 되었던 것이 바로 이 네 가지 조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쇼라이목록에 의하면 가지고 온 문헌에는 일본에 전해지지 않았던 불공삼장역의 새로운 경론의궤와 범자진언 등을 비롯하여 그밖의 많은 경론장소(經論章疏)가 있고, 또한 양부의 대만다라와 밀교법구 등 중요한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참으로 얻은 바가 많은 입당구법의 여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쿠카이가 처음 들여온 것 가운데 많은 경론은 「삼십첩책자(三十帖策子)」라 하여 처음에 동사東寺와 고야산에 각각 비장되었다가 후에 인화사로 옮겼는데, 현재 인화사에 국보로 비장되어 있고, 법구의 일부도 동사에 국보로 비장되어있습니다.
3. 새로운 밀교 진언종의 개종
고웅산사(高雄山寺)시대
쿠카이는 귀국하고나서 당분간 다자이후의 관세음사에 머물렀다가 다이도오(大同)4년(809) 36세 때 교또의 고웅산사에 주석하게 됩니다. 이 절은 와께시(和氣氏)가 창건한 것으로 전에 천태종의 전교대사 사이쵸가 법화십강(法華十講)을 열었고 또한 사이쵸가 일본에서 최초로 밀교의 관정의식을 행했던 곳이기도 합니다.이제는 쿠카이가 이 절에 들어와서 진언밀교의 제일성(第一聲)을 놓게 된 것이니다.
고우닌(弘仁) 원년(810) 10월에 인왕경(仁王經)과 수호국계경(守護國界經)에 근거하여 진호국가의 비법을 닦아 후지와라 야쿠시(藤原藥子)의 반란 직후의 국내평화를 위한 기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우닌 3년 11월과 12월에 고웅산사에서 금강계와 태장계의 양부관정을 행하고, 천태종의 사이쵸와 그 문하의 사람들, 그리고 남도(南都)의 학승들이 관정을 받았는데 이것을 고웅의 관정이라고 하고 쿠카이의 진언밀교가 높이 평가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때 쿠카이 자신이 관정을 받은 사람들을 기록한 것이 현존하는 고웅관정기(국보)입니다.
또한 이무렵 천태종의 사이쵸와 쿠카이는 친밀하게 교제를 하여 사이쵸가 자주 쿠카이에게 밀교의 경론을 빌려가기도 하고 양사양사가 몇 번이나 서간을 주고받고 있는데, 쿠카이가 쓴 유명한 풍신첩(風信帖)(국보) 등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이쵸의 제자인 타이한(泰範)이 사이쵸를 떠나 쿠카이의 문하에 들어오는 일도 있었고, 쿠카이는 밀교경론을 널리 각지에 서사하도록 권하는 서간을 보내면서 밀교와 현교가 어떻게 다른가를 밝혀 밀교의 특색을 크게 선전하는 일에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쿠카이는 서도(書道)에도 뛰어나서 사가(嵯峨)천왕과 친분을 맺게 되어 사가천왕의 외호로 새로운 진언밀교를 제종파 사이에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야산의 개창
고우닌 7년(816) 쿠카이 43세 때 고야산에 수선(修禪)의 일원(一院)을 건립하기를 발원하고 그것이 허락되어 드디어 고야산 개창의 대사업에 착수하게 됩니다.
고야산의 개창에 대해서는 고야산의 토지신인 니우츠히메(丹生津姬)가 나타나서 그 토지를 쿠카이에게 주었다든가, 또는 네 마리의 개를 거느린 사냥꾼의 모습을 한 고야묘오진(高野明神)을 만나 안내를 받고 고야산에 올랐다고 하는 전설도 있습니다.
어쨌던 고야산의 개창은 나라(奈良)의 도시불교의 부정을 상징하고, 또한 산악불교(山中佛敎)의 부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쿠카이가 소년시대 이래 체험하고 사색해 온 본래의 불교의 모습에 대한 확신과 그 실현의 제일보를 보인 것입니다.
고야산 개창의 칙허를 얻어 그 익년에 개창사업에 착수하고 먼저 제자 타이한(太範)과 지쯔에(實慧) 등을 고야산에 파견하여 실지조사를 시키고 그 후에 쿠카이가 산에 올라, 고우닌 10년 산상(山上)에 가람(伽藍)을 건립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수도인 교또에서 멀고 산이 높은데다 산속의 공사였기 때문에 건축자재나 인부의 식료 등이 부족하여 쿠카이는 유지의 사람들에게 서간을 보내어 원조를 의뢰한 것 등이 고야잡필집(高野雜筆集)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덴죠(天長) 년간이 되면 고야산상에 다보탑, 강당, 승방 등이 건립되어 금강봉사(金剛峯寺)라고 하였습니다.
덴죠 9년에는 고야산에서 만등회(萬燈會)가 처음으로 열리고, 쇼와(承和) 원년에는 대탑, 서탑도 건립되어 쿠카이의 만년에 고야산은 확고한 진언종의 근본도량으로 된 것입니다. 고야산의 개창이야말로 쿠카이의 생애에 있어서 최대의 사업이었습니다.
헤이안 초기의 불교를 상징하는 것은 사이쵸의 비예산(比叡山)과 쿠카이의 고야산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남도의 여러 큰 절들은 대부분 관사(官寺)이거나 유력한 씨족들의 절이었고, 또한 도시불교의 성격을 띄고 있음에 비하여, 비예산의 일승지관원(一乘止觀院)과 고야산의 금강봉사는 함께 구도자의 수행도량이고 산악불교의 성격을 가지고 있것이 특색입니다. 여기에는 학문불교, 종교의례 중심의 불교에서 구도수행의 불교라고 하는 반성이 불러일으켜지고, 불교 본래의 모습에로의 자각이 높여지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후의 일본불교 속에서 고야산이 완수한 종교적인 역할을 생각할 때 쿠카이의 고야산 개창의 의의는 지극히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동사(東寺)의 경영
쿠카이의 교단활동 중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동사를 칙사 받아 교또에서의 진언종 근본도량으로 한 것입니다. 동사와 서사(西寺)는 엔랴꾸(延曆) 13년(794), 헤이안 천도 후 곧 착공한 것입니다. 고우닌 14년(823) 쿠카이 50세 때 이 절을 칙사 받아 여기에 쿠카이의 많은 제자가 모여들어 진언종의 유력한 종단이 성립한 것입니다. 그래서 덴죠2년에 강당이 건립되어 동사에서 인왕경법을 닦아 진호국가, 전화수복의 기원을 한 것입니다. 이어서 덴죠3년에 5중탑의 건립에 착수하게 되는데, 그 5중탑은 쿠카이의 재세 중에는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관정당, 종루, 경장 등이 완성되어, 동사를 교왕호국사라고 칭하고 진호국가의 근본도량으로 한 것입니다.
사회적 활동
이보다 앞서 쿠카이는 고우닌 10년 고야산개창의 대사업이 한창일 때 공사를 제자들에게 맡기고 하산하여 한 때 나까쯔까사쇼(中務省)의 관리직에 종사했는데 이것은 쿠카이의 정치적인 수완을 엿볼 수 있는 일면입니다. 고우닌 12년에는 시꼬꾸 사누끼(讚岐)의 만농지(萬濃池)의 수축사업을 완성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덴죠 5년에는 사꾜꾸죠(佐京九 ?)에 있는 후지와라(藤原三守卿)의 토지를 기증 받아 여기에 서민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고 종예종지원(綜藝種智院)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이 학교의 교육이상과 교육방법, 교육조건 등을 서술한 것으로 「종예종지원식병서(綜藝種智院幷序)」가 있습니다(성령집권10). 여기에서 쿠카이의 교육사상을 엿볼 수가 있는데, 아쉽게도 이 학교의 경영은 쿠카이의 뜻을 계승하지 못하고 겨우 20년 후에 폐교하게 됩니다. 그러나 쿠카이가 보인 서민교육에의 열의와 그 실행력, 그리고 교육이념은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문예방면의 활동
쿠카이는 위대한 종교가이고 사상가인 동시에 또한 문예방면에도 다채로운 활동을 남기고 있습니다. 먼저 서도의 방면에는 사가천왕과 타찌바나(橘 逸勢)와 함께 삼필(三筆)이라고 불려지고, 현재 쿠카이의 진필이 많이 남아 있는데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시문(詩文)에도 능하여 쿠카이의 입당구법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계속 쓴 시문과 서간, 비문, 원문, 상소문 등은 변조발휘성령집(遍照發揮聖靈集)(줄여서 성령집이라고 함.)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시문의 이론을 기술한 것으로 문경비부론(文鏡秘府論)과 문필안심초(文筆眼心抄)가 있고, 일본에서의 최초의 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전예만상명의(篆隸萬象名義)라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다음에 쿠카이의 사상활동에 대해서는 이것이 밀교사상의 조직 대성(大成)이라고 하는 중요한 측면이기 때문에 제2부 진언밀교사상(眞言密敎思想)의 단원에서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제2부 진언밀교의 사상
제1 밀교사상의 조직화
여기서부터는 밀교사상의 가장 특징적인 것에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 보겠습니다. 밀교사상은 긴 밀교의 사상사의 흐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많은 밀교문헌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그들 밀교문헌에는 여러 가지 사상이 설해져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하나로 정리된 사상을 포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정은 중국밀교를 봐도 마찬가지 입니다. 선무외와 일행, 금강지, 불공, 혜과 등 뛰어난 밀교의 학자들은 중국밀교라는 하나의 종파를 성립시키기 위해 종단의 조직이나 여러 사원의 건립에는 현저한 성과를 보이고 있으나 밀교사상을 조직화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두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밀교를 보는 것만으로는 밀교사상의 특징적인 것을 파악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밀교사상을 조직적으로 받아들이고 밀교사상의 특징을 밝히는 일은 홍법대사 쿠카이에 의해 비로소 이루어지게 됩니다. 쿠카이의 수많은 저작들을 보면 밀교를 진언종 또는 진언밀교로 받아들이고 그 한 종파의 성립역사와 교학사상의 특징을 밝히고자 노력한 흔적
이 많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진언밀교의 상승과 홍통의 대강을 보이기 위해 비밀만다라교 부법전(秘密曼茶羅敎付法傳)과 진언부법전(眞言付法傳)을 저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밀교의 특색을 현교와의 비교에서 밝힌 것으로 변현밀이교론(弁顯密二敎論)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사상계나 불교의 소승(성문과 연각)과 대승의 제종(법상종.삼론종.천태종.화엄종)과의 대비 속에서 밀교의 특색을 밝히고, 한편으로 보리심의 전개 순서로도 볼 수 있는 비밀만다라십주심론(秘密曼茶羅十住心論)과 비장보약(秘藏寶 ?)이라고 하는 중요한 저작을 남기고 있습니다.
또한 진언밀교의 가장 중요한 사상이고 인도밀교, 중국밀교에서도 강조된 즉신성불사상을 받아들여 그 이론과 실천의 양면에서 상세히 논술한 것이 즉신성불의(卽身成佛義)입니다. 그리고 법신설법(法身說法)이라고 하는 밀교 독자의 사상을 종래 대일여래의 설법이라고 하는 전승의 영역을 넘어서, 진언과 표현된 문자가 진실한 것이라 보고 법신설법의 실상을 밝힌 성자실상의(聲字實相義)와, 자상(字相). 자의(字義)를 설하여 진언다라니의 본질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해명한 훔자의(훔字義)라고 하는 저작도 있습니다. 그리고 보리심의 사상과 삼매야계의 사상에 대해서도 그 참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더우기 현대적인 문제로 생각되는 인간관이나 불타관의 문제, 진실한 삶의 길 등이 쿠카이의 사상에 의해서 밝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쿠카이의 저작활동은 밀교사상의 재검토와 조직화에 집중되어 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또한 밀교의 일본적 전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제 2 밀교사상의 교판
1. 진언밀교의 교판
밀교사상의 교판이라고 하면 좀 어려운 것 같지만, 「교판(敎判)」이라고 하는 말은 불교용어로 흔히 사용되고 있는 「교상판석(敎相判釋)」을 말합니다. 가르침이 여러 가지 있을 경우 그것을 비교하고 구별하여 우열을 명확히 하는 것을 교판사상이라고 합니다. 천태종, 화엄종, 법상종 등 중국의 불교에서는 교판이 활발하게 행하여졌습니다. 따라서 쿠카이도 진언종을 열면서 교판이라고 하는 하나의 방법론을 사용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것과 비교해서 어디가 어떻게 우수한가, 또는 어떤 점에서 밀교가 뛰어난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를 논증하는 것이 교판입니다. 진언밀교의 특질을 밝히기 위해 여러 가지 사상, 여러 가지 종교와 비교를 하고 그리고 그 비교속에서 밀교가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밀교는 확실히 우수한 가르침이다 고 하는 것을 논증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쿠카이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현교와 밀교를 비교해서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십주심의 사상(십주심의 교판)이라고 하는 주심(住心)사상을 근저로 하면서 여러 가지 사상과 종교를 나열하고 그 위에 밀교의 특징을 명확히 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입니다. 결국 쿠카이의 교판사상은 첫째는 현밀이교의 교판이고, 둘째는 십주심의 교판이라는 방법을 써서 밀교의 특색을 밝히려 한 것입니다.
2. 현밀이교의 교판
먼저 첫째로 현밀이교의 교판에는 중요한 문헌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 하나는 고우닌 6년(空海 42세)에 쓴 밀교경론을 옮겨적는 서사(書寫)에 대한 의뢰의 서간입니다(성령집 권9). 그 내용은 밀교의 경전을 각지에 보급시키도록 하기위해 밀교경전을 서사해 줄 것을 의뢰한 편지를 여러 지방에 보낸 것입니다. 그 편지의 전단에 밀교는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는 것을 매우 간결하게 밝힌 문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를 쓴 시기와 거의 비슷한 무렵에 변현밀이교론을 쓰고 있습니다.
이 서간과 변현밀이교론과는 내용적으로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데, 결국 서간 쪽은 취의만을 쓴 것이고 이교론은 자료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경론을 인용하여 비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편지와 자료를 중심으로 한 변현밀이교론을 살펴보면 쿠카이가 밀교를 명확히 하기 위해 현교와의 비교라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에 쿠카이가 현밀이교론의 교판 속에서 무엇을 밀교라고 말하고 있는지 그 요지를 파악하여 다섯 가지로 들어 보겠습니다.
⑴ 능설(能說)의 불신(佛身)
첫째로 가르침을 설한 능설의 부처님에 대한 차이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설한(佛說) 경전 가운데 현교는 보신(報身)과 응신(應身)의 부처님이 설한 것이고, 밀교는 법신(法身)의 부처님이 설했다는 것입니다.
느닷없이 이렇게 말해서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인도의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에 삼신(三身;법신.보신.응신)이 있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법신(dharma-kaya)이 가장 근원적인 부처님이고 다음이 보신(vipaka-kaya)이고 응신(nirmana-kaya)의 순서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응신을 변화신(變化身),또는 응화신(應化身)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석가모니부처님을 말합니다. 그리고 보신은 수행을 하여 부처가 된 부처님인데 석가모니부처님이 아니고 아미타여래나 약사여래 등 대승불교의 제불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석존은 역사적인 부처님이지만 초기 대승불교부터 제불의 신앙이 대두되게 되는데, 이 부처님을 보신의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두 부처님(보신불과 응신불)의 가장 근저에 있는 부처님 그 자체를 법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삼신설에서 현교는 보신.응신의 부처님이 상대의 근기(이해력)에 따라 이해하기 쉽게 설한 가르침이라고 쿠카이는 본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밀교의 경우는 법신인 대일여래가 자내증의 경지(깨달음의 내용 그 자체)를 설한 심원하고 심비(深秘)한 가르침이며, 그 가르침이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교화할 수도 있는 것 그것이 밀교라고 한 것입니다. 즉 법신이 설법한 가르침이 밀교라는 것입니다.
대승불교에서의 법신은 부처님 그 자체로서, 구체적인 설법 등의 활동을 하지 않음에 대하여, 밀교에서의 법신은 <대일여래>라고 하는 새로운 불타관을 내세우면서 그 법신 대일여래가 설한 것이 밀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교와 밀교는 첫째 그 능설의 불신(佛身)에 대해서 상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⑵ 소설(所說)의 교법
두번째의 차이는 소설의 교법, 즉 설해진 가르침의 내용에 대한 차이를 들고 있습니다.
현교의 가르침의 내용은 인분의 가르침이라고 하여 인분가설(因分可說)의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인(因)이라고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의 단계, 수행의 프로세스(過程)입니다. 그러므로 미혹한 사람에 대하여 이러이러한 수행을 하라든가, 또는 수행이 조금씩 나아지면 이번에는 이 수행을 하라는 식으로 수행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그것을 「권(假)의 방편(수단)」이라고 하는데, 이와 같이 이해하기 쉬운 수행의 방법을 설한 것이 현교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하여 밀교는 과분가설(果分可說)이라고 하여 깨달음의 내용, 깨달음의 경지 그 자체를 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내증의 법이라고도 합니다. 법신의 깨달음의 경계 그 자체를 설하고 있다는 의미이고, 이것이야말로 진실.심비한 가르침이다고 쿠카이는 이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밀교는 설해진 가르침의 내용도 매우 깊이가 있는 것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밀교의 심비성(深秘性), 또는 신비성(神秘性)이라고 하는 의미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⑶ 수행의 방법
수행의 실제 방법에 있어서 현교는 기본적으로 대승보살의 「육바라밀의 수행」입니다. 이것은 반야경에서 시작되어 대승불교에서 널리 실천되고 있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여섯 가지의 피안에 이르는 수행으로서 육바라밀이라고 합니다.
그것에 대하여 밀교에서는 「삼밀가지(三密加持)의 수행」이라고 하는 독특한 수행이 있습니다. 이것은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요컨대 삼밀가지란 부처님과 내가 하나가 되고, 가지감응(加持感應)하여 부처님이 내게 들어오고 내가 부처님에게 들어가서(入我我入) 일체(一體)가 되는 수행방법입니다.
그밖에 밀교에서는 수법과 관법을 중시하여 아자관(阿字觀), 월륜관(月輪觀) 등 밀교적인 수행방법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밀교에는 현교에서 설해지지 않은 새로운 밀교적인 수행방법이 있다는 것이 특색이기도 합니다.
⑷ 성불의 빠르고 드딤
성불의 지속(遲速)에 대해서 현교의 가르침에는 무한히 긴 시간 동안 수행을 하여 비로소 부처가 된다고 하는 「삼겁성불(三劫成佛)」을 주장합니다. 겁(kalpa)은 셀 수 없는 긴 시간, 무한히 긴 시간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셀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긴 세월에 걸쳐 수행한다는 것은 결국 이 세상(現生)에서 수행하더라도 바로 부처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수행은 쉬운 것이 아니므로 보살도는 꾸준히 실천하지만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 최종 목적인 성불에 이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밀교는 성불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고 이 몸 그대로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 깨달아 성불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하는데, 그것을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성불(成佛)을 둘러싸고 「삼겁성불」이냐 「즉신성불」이냐 하는 성불의 지속에 대한 문제는 현밀차별의 사상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특히 즉신성불에 대해서는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빠른 지름길임을 혜과아사리에게서 배우고, 쿠카이가 귀국 후 바로 쓴 쇼라이목록에도 현교는 삼겁성불을 설하지만 밀교는 즉신성불을 설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우닌 6년경에 변현밀이교론을 저작하고 거기에서 대일경과 금강정경에 있는 현생에 바로 성불한다는 증문(證文)과, 용맹(龍猛)보살이 지은 보리심론(菩提心論)에 「보리심을 일으키고 보리심계를 지키고 삼마지(三摩地;定)에 들면 부처님과 일체가 되어 부모에게서 태어난 육신 그대로 속히 위대한 각자(覺者)인 부처님의 경지를 증득할 수가 있다」고 한 것에 근거하여 즉신성불이라는 말이 비로소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설해져 있는 사상만으로는 즉신성불사상이 충분히 해명 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쿠카이는 그 후 삼매야계서(三昧耶戒序)와 즉신성불의(卽身成佛義) 등을 저작하여 즉신성불하는 가능성의 원리와 실천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정립하였습니다.
그 요지를 살펴보면, 사람들에게는 본래 청정한 깨달음의 마음(淨菩提心)이 있기 때문에 그 보리심이 있는 것을 잊지 않고 항상 자각하여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의 움직임과 몸의 동작, 말하는 언어를 모두 올바르게 하고(十善戒), 또한 손으로 부처님의 인(印)을 맺고 입으로 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인 진언을 외우고 마음을 삼매의 경지에 두어 부처님과 일체가 되는 수행(삼밀가지의 행)을 하면, 부처님의 자비심이 수행자의 마음 속에 비치고 불심을 체득하여 부처님과 일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삼밀가지하면 속히 성불한다」고 설한 것입니다.
⑸ 교익(敎益)의 우열
마지막으로 교익의 뛰어남과 열등함(勝劣)을 들고 있습니다.
교익이라는 것은 불교에서는 이익이라고도 합니다. 교익의 승열이란 가르침의 이익이나 감화력 등의 효과가 우수한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차이를 말합니다.
현교에도 교익에 대하여 더 말할 나위없이 훌륭하게 설해져 있지만, 극악한 사람이라든가 무불성(無佛性)의 사람(一闡提;icchantika 斷善根.信不具足.極欲 등으로 번역하며, 成佛하는 印을 갖지 못한 이를 말함譯註) 등 어떻게도 손을 쓸 수 없는 사람까지를 구한다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고 하는, 즉 구제나 교화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하여 밀교는 어떠한 악인이라도 죄가 깊은 사람이라도 모두 포용하고 구제할 힘을 가지고 있는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밀교의 문헌 속에는 이러한 사실을 자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다라니신앙에 마지막 부분을 보면 다라니의 공덕(이익)이 쓰여져 있습니다. 이 다라니를 외우면 여러 가지 것, 무엇이든지 구해지는 것으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한 그 공덕은 엄청난 것이고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교익의 승열이라는 것도 이런 것에서 나오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쿠카이는 현교와 밀교를 끝까지 알고 비교하여 그 결론으로서 자신이 지금 보급하고 있는 진언종, 즉 진언밀교는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감히 보급시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그러기 위한 한 가지 방법론으로 당시 유행한 교판사상을 도입하여 이로써 한 종파의 독립을 선언한다는 방법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쿠카이는 만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저작 속에서 현교와 밀교의 차이를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현교와 밀교의 차이라는 것을 통하여 밀교의 우월성과 밀교를 보급하고자 하는 쿠카이의 태도가 전 생애를 통해 일관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제 3 십주심(十住心)의 사상
1. 십주심 사상의 구성
열 가지의 주심(住心)
다음에 쿠카이는 십주심이라고 하는 사상으로 밀교의 특징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이것을 쿠카이의 십주심 사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심(住心)사상은 이미 쿠카이가 가장 존중했던 대일경에 있습니다.
대일경의 제1장이 「주심품(住心品)」이라는 것인데, 쿠카이는 그 「주심품」에 주목하여 사상적 영향을 매우 크게 받고 있습니다. 대일경「주심품」에는 미혹한 사람이 보리심을 일으켜 최후에 밀교의 신앙에 들어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쿠카이는 당시의 사상계, 또는 불교계에 적용시켜서 헤이안 초기에 있어서의 현대적인 사상 문제로서 명확히 하고 한편으로 일상적인 우리들의 마음이 차제로 향상하여 본래 마음의 자태를 찾아내어 가는 과정을 열 단계로 나눈 것이 십주심의 사상으로 된 것입니다. 이것도 쿠카이의 근본적인 사유의 체계로 한다면 열 가지로 한정시키지 않아도 좋고, 좀더 수를 늘여도 좋은 것입니다. 결국 어떠한 사상이라도 그 시대의 사상이나 주장을 전부 문제로 하게 되고, 그리고 비교사상론적인 정리를 하면서 특정의 사상을 명확히 하여 그 중에 어느 것이 가장 좋은가 하는 방향성도 세우게 되는 것이 비교사상연구의 학문하는 방식인 것입니다.
쿠카이가 24세 때 쓴 것으로 일종의 출가선언서라고도 말하는 삼교지귀가 있습니다. 그것은 유교.도교.불교에 대한 비교사상론의 책입니다. 쿠카이는 유학을 공부하고 도교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교사상의 깊이에 도저히 견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참으로 깊이 궁구하기 위한 가장 뛰어난 사상과 행동은 불교에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 삼교지귀입니다. 이 삼교지귀는 방법론적으로 말하면 이미 비교사상론적인 연구서라고 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쿠카이가 젊은 시절에 익혔던 비교사상론적인 방법론이 만년에 쓰여진 십주심의 사상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 십주심의 사상을 쓴 것이 비밀만다라십주심론(秘密曼茶羅十住心論)(10권)과 비장보약(秘藏寶약)(3권)입니다. 이것은 덴죠 7년경(830)의 원숙한 쿠카이의 만년의 대표적인 저작이었다는 것과, 또 하나는 이 책이 덴죠의 「육본종서(六本宗書)」의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쥰나천왕(淳和天皇)이 당시 불교의 여러 종파 속에 가장 우수한 학자에게 여러 종파의 사상을 써서 제출하라고 하는 칙명에 의해 제출된 책을 「덴죠의 육본종서」라고 합니다. 여섯 명이 제각기 자신의 종파의 사상을 정리하여 제출하였고, 진언종은 쿠카이가 칙명을 받아 써 낸 것인데, 서문에도 그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쿠카이가 가장 원숙한 시대에 가장 심혈을 기우려 쓴 것이 이 책입니다. 그리고 진언종에서는 10권본을 광본(廣論)이라하고 3권본을 약본(略論)이라고 하는데, 내용적으로는 모두 십주심에 대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십주심이란, 제1 이생저양주심(異生저羊住心), 제2 우동지재주심(愚童持齋住心), 제3 영동무외주심(영童無畏住心), 제4 유온무아주심(唯蘊無我住心), 제5 발업인종주심(拔業因種住心), 제6 타연대승주심(他緣大乘住心), 제7 각심불생주심(覺心不生住心), 제8 일도무위주심(一道無爲住心), 제9 극무자성주심(極無自性住心) 제10 비밀장엄주심(秘密莊嚴住心)입니다. 이 제10의 비밀장엄주심이 밀교의 수행을 완성한 사람의 주심(住心)이고 자못 밀교적인 말입니다.
① 이생저양주심
첫째의 「이생저양주심」이라는 말은 대일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생(異生)이란 범부라는 말과 같이 「미혹한 사람」이라는 의미이고, 저양(저羊)이라는 것은 숫양을 말합니다. 결국 동물과 같이, 동물적인 욕망 그대로 살고, 미혹에 미혹을 거듭하고 있는 사람, 종교나 도덕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인간성이 최저인 사람들이 꽤나 있다고 하는 것은 쿠카이의 두 가지 저작을 읽어보면 놀랍게도 오늘날 우리사회에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양상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표현방법입니다.
헤이안 초기의 사회도 역시 혼란스러웠던가 하고 생각하게 하는 문장입니다. 요컨대 거기에는 도덕도 종교도 없고 사람이 마치 동물적인 욕망 그대로 노닥거리고 더우기 물건을 빼앗고 사람을 죽이고 도무지 어떻게 구제할 수 없는 인간들의 집단이라고 써고 있습니다. 쿠카이는 이러한 인간의 가장 낮고 저열한 밑바닥의 정신 생활을 참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이생저양주심입니다.
② 우동지재주심
둘째는 「우동지재주심」으로 우동(愚童)이란 어린아이와 같이 그다지 지혜가 발달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지재심(持齋心)은 불교의 용어인데, 인도의 재가신자는 한 달 중에 6일간은 음식을 먹지 않고 절약하여 그 몫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그것을 지재(持齋)라고 합니다. 요컨대 자기가 먹을 음식을 줄여서라도 가난한 이웃에게 베푼다고 하는 베푸는(布施) 마음을 일으킨다는 의미입니다.
쿠카이는 여기에서 도덕적으로 눈을 뜬 사람의 모습을 여러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나쁜 사람이 마음을 고쳐먹고 부모에게 효도하여 후세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착한 사람이 된 중국의 실예를 들고 있는 것이 두번째의 마음입니다. 불교적으로 말한다면 5계 10선을 잘 지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5계와 10선을 지킨다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첫번째의 이생저양심에서 전혀 구제할 수 없던 사람이라도 언제까지나 구제할 수 없는 불가능의 존재가 아니고, 두번째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두번째의 우동지재심의 문장도 매우 격조 높고 첫머리의 몇줄만 읽어봐도 대단한 문장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③ 영동무외주심
세째의 「영동무외주심」의 영동(영童)은 갓난아기라는 뜻이고, 무외(無畏)라고 하는 것은 두려움이 없고 마음이 평온함을 말합니다. 이것은 인도의 여러 가지 종교(天乘)의 사람들이 수행하고 신앙하여 마음의 평온을 얻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인도의 여러 가지 종교의 신앙이나 중국의 도교, 그밖의 신앙에서도 일시적인 평안은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편안해 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④ 유온무아주심
제4주심에서 제10주심까지에서는 불교적 신앙의 여러 가지 양상을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구분한 것입니다. 먼저 네번째의 「유온무아주심」이라는 것은 현상계의 모든 개체적 존재는 오온(五蘊)이 가화합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이어서 거기에 고정적인 자아(自我)는 인정될 수 없다는 사상입니다. 불교에서는 몸을 색(色;rupa)이라 하고, 마음의 활동을 분석하여 수(受;vedana;감수작용), 상(想;samjna;표상작용), 행(行;samskara;의지작용), 식(識;vijnana;의식작용)의 네 가지로 하여 이 다섯 가지가 일시적으로 화합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오온(panca skandha)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거기에 변하지 않는 고정적인 자아(常.一.主宰性을 띠는 것)는 없기 때문에 무아(無我;anatman)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유온무아를 자각하고 있는 것은 소승 가운데 성문승(聲聞乘;sravaka)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⑤ 발업인종주심
다섯째 「발업인종주심」이라는 것은 소승 가운데 연각승(緣覺乘;pratyeka-buddha)의 주심으로 12인연을 관찰하여 무명과 업의 종자(因)를 제거하고, 괴로움을 소멸하여 적멸의 평안을 실증하는 경지를 말합니다.
이상의 두 가지 주심은 불교 가운데 성문과 연각의 주심이지만 구체적으로 원시불교에서 부파불교시대의 불교사상과 수행법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성문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 수행하여 번뇌를 모두 꾾어서, 부처는 될 수 없지만 그 아래의 아라한(아라한)의 지위까지 나아가기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연각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고 12인연, 제법연기(諸法緣起)라고 하는 연기관(緣起觀)을 스스로 조용한 곳에서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은 이로, 적정한 고독을 좋아할 뿐 아무에게도 설법교화하지 않으며 그 결과를 혼자서 누리려 하는 사람들을 가리킴니다. 그래서 이 성문과 연각의 소승인들은 대승의 보살승에 비하면 이타의 대비심이 없는 것입니다.
⑥ 타연대승주심
여섯째의 「타연대승주심」이라는 것은, 특정한 사람들에 대해서만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없이 평등하게 자비심을 일으키고 이타(利他)의 행을 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대승불교에 공통적인 특색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일체 사물은 환상과 그림자와 같이 실체가 없고 다만 마음의 움직임만이 존재한다고 하는 유식(唯識)의 입장을 나타내는 법상종(法相宗)의 가르침을 배워 깨달음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⑦ 각심불생주심
일곱째의 「각심불생주심」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 사물의 본성은 상대를 떠난 공(空;sunya), 즉 불생불멸이라고 깨닫는 마음을 말합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반야공관과 팔부중도(八不中道)를 설한 중관사상(中觀思想) 즉 삼론종(三論宗)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말합니다.
⑧ 일도무위주심
여덟째의 「일도무위주심」이란, 일도(一道) 즉 일불승(一佛乘)에 의해서 진여무위(眞如無爲)를 깨닫는 마음을 의미하는데, 때로는 여실일도심(如實一道心), 여실지자심(如實知自心), 공성무경심(空性無境心)이라고도 합니다. 요컨대 모든 사람들에게 불성이 있고 심성은 청정하며, 그리고 모든 사물도 대립을 떠난 본래적 입장에서 보면 하나요 청정이며 자기와 남의 구별도 없다고 자각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이 주심은 천태종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⑨ 극무자성주심
아홉째의 「극무자성주심」이란, 일체 사물은 고정된 성질을 갖지 않는다고 하는 일체법의 무자성(無自性)의 이법을 통달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 주심은 화엄종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상의 제6주심부터 제9주심까지는 차례대로 법상종.삼론종.천태종.화엄종의 주심이고, 거기에 교판적인 구별이 되어 있는 것인데, 그러나 또한 밀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순차적으로 미륵보살, 문수보살, 관세음보살, 보현보살의 삼매이고 함께 대일여래의 보문총덕(普門總德)을 부분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⑩ 비밀장엄주심
그런데 마지막의 「비밀장엄주심」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신.구.의 삼밀(三密)을 가지고 부처님의 자증(自證=깨달음)의 극위(최고위)를 장엄하는 마음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심의 근원적인 자리를 깨달은 마음, 또는 자기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아는 마음(如實知自心)으로 일체의 것에 본래 갖추어져 있는 가치에 눈 뜨고, 세계의 진실한 모습을 깨닫는 가장 궁극적인 경지입니다. 이것은 진언종의 가르침을 배워 진언종의 수행을 완성했을 때에 도달하는 마음입니다. 또한 만다라에 완전히 합일된 마음, 또는 마음의 만다라(心曼茶羅)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현교는 표면적으로 티끌을 털어버리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밀교는 깨달음(成佛) 그자체에 직접 부딪쳐서 그 비밀의 장(藏)을 여는 것이므로 이 비밀장엄주심이야말로 최고의 주심이고 앞의 아홉 가지 주심은 제10주심에 도달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상의 열 가지 주심(주심)을 좀더 이해하기 쉽게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비밀만다라십주심
제 1주심:이생저양심-삼악도(조금도 善心이 없는 자리)---------윤리이전의 세계
제 2주심:우동지재심-人 乘(오계.십선을 지키는 자리)-------------윤리적 세계 세간도
제 3주심:영동무외심-天 乘(四禪.六行을 닦는 자리)-------------종교심의 자각
제 4주심:유온무아심-성문승(四聖諦를 관하는 자리)------------------無我를 앎 소 승
제 5주심:발업인종심-연각승(12因緣을 관하는 자리)-----자기자신의 무지를 제거 (二乘) 현교
제 6주심:타연대승심-법상종(萬法唯識을 관하는 자리)---사람들의 고뇌를 구제함 권대승
제 7주심:각심불생심-삼론종(八不中道를 관하는 자리)------------일체는 空이다 (三乘)
제 8주심:일도무위심-천태종(一念三千.智境不二를 관하는 자리)-모두가 진실이다 실대승
제 9주심:극무자성심-화엄종(事事無碍法界를 관하는 자리)------대립을 초월한다 (一乘)
제10주심:비밀장엄주심-진언종(三密妙行을 닦아 卽身成佛하는 자리)-무한의 전개 비밀불승 밀교
구현일밀(九顯一密)과 구현십밀(九顯十密)
이와 같이 제1주심부터 제10주심까지 열거하고, 1에서 9까지를 현교라 하고 제10만을 밀교라고 하여, 현교와 밀교라고 하는 커다란 구분을 한 것이므로 십주심의 사상은 「구현일밀」의 사상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고 1에서 10까지는 결국 보리심의 전개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마음의 상태가 그대로 밀교 아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구현십밀」이라고 합니다. 이 두 가지 의미에서 밀교가 지닌 포섭과 융화의 사상, 그리고 현실긍정의 철저한 형태를 십주심 사상은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십주심 사상은 교판 사상만이 아니고 결국 보리심의 전개와 그 위치, 그 사상 체계로서의 주심사상인 것입니다. 대일경의 「주심품」에 보리심의 전개라고 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쿠카이도 십주심을 설하면서 9현1밀보다도, 9현10밀의 사상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십주심사상의 특징
십주심사상의 장점은 어떤 면에 있는가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인간 마음의 여러 가지 모습
십주심 가운데 제1에서 제3까지는 세간의 주심(住心)이라 하고 제4, 제5의 주심은 소승의 주심, 그리고 제6에서 제9까지는 사가(四家)의 대승주심, 제10이 밀교의 주심입니다.
십주심의 사상은 사람들의 마음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제1주심 제3주심 제10주심의 세 가지로 구성하여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결국 제1주심의 욕망 그대로 살아서 도덕도 무엇도 되는대로 마구하는 인간의 마음, 제2주심과 같이 도덕적으로는 어느 정도 눈을 뜨고 있지만 종교로서는 불교의 깊은 신앙에 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사람, 제10주심의 불교 특히 진언밀교의 깊은 신앙을 회득하여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우리들 마음의 여러 가지 모습으로서 십주심 사상을 생각하면서 생각나는 것은 나 자신의 정신생활이라는 것도 1에서 2로, 그리고 2에서 10에로 왔다갔다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비밀장엄주심의 아득하고 훌륭함을 우러러 보면서도 내 마음은 1에서 2를 왔다갔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1주심의 부분을 읽어보면 인간의 죄악이라고 하는 것이 자세히 표현되어 있는데, 제2주심이 되면 어렴풋이 구원이 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겨울의 마른 나무숲도 언제까지나 마른 숲이 아니고 봄이 되면 싹이 트고 꽃이 피듯이, 그리고 깊은 산의 얼음도 언제까지나 얼음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여름이 되면 얼음이 녹아 시원한 물이 되어 흘러가는 것처럼 인간도 언제까지나 악인 것이 아니고 어떤 동기가 있으면 반드시 마음이 선으로 향하여 구원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1과 2와 10을 한데 묶어서 그 속에서 밀교적인 신앙을 어떻게 형성하고 살릴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비교사상론적 고찰
또한 여러 가지 사상과 종교라는 것을 구조론적으로 고찰해 보는 일, 그리고 그것을 비교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것은 헤이안 초기의 쿠카이의 방법론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도 그러한 방법론은 당연히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음의 만다라
마지막으로 비밀장엄주심의 핵심은 대체 무엇이며, 어떤 마음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십주심론과 비장보약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보면 거기에는 역시 즉신성불한 때의 마음이 곧 비밀장엄주심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쿠카이는 그것을 「마음의 만다라」 또는 「자심(自心)의 불(佛)」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만다라」라든가 「자심불」이라는 생각은 언제나 쿠카이의 사상에 근저를 이루는 것이라고 봅니다. 쿠카이의 사상에서는 그러한 「인간의 마음의 깊이」라고 하는 것을 항상 강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밀교가 목표하는 것도 바로 그곳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와 같이 쿠카이는 밀교의 진실을 밝히고 진언종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밀교의 장점과 우수성.우월성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렇게 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현밀이교론」 및 「십주심」 사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4. 밀교의 불타관
불타관(佛陀觀)이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진언종 또는 진언밀교에서는 어떠한 부처님을 신앙하고 예배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다른 종파에서는 어떠한 부처님을 예배하는가 하는 문제와도 관련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나 이슬람교 등 여러 종교에서는 어떠한 것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가 라고 묻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종교의 기본적인 구조속에는 반드시 신앙의 대상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밀교에서는 신앙의 대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어떻게 신앙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종교의 주요한 테마의 하나로서 충분히 고찰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입니다.
사실은 같은 불교의 흐름 속에서도 진언밀교의 불타관이 가장 복잡한 것입니다. 단지 신앙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고, 신앙의 대상이 매우 다양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의미로 그 의미하는 바가 깊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밀교의 미술 또는 밀교의 예술로써 불상 등을 그리거나 만들기도 하는데, 단 거기에도 밀교의 불타관을 배경으로 할 때 비로소 밀교미술로 충분히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도 밀교의 불타관에 대한 고찰은 매우 중요한 것인데, 먼저 전체적으로 진 언밀교의 불타관을 이해하고 난 뒤에 부분적인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총설
석존에서 제불제보살로
대승불교라는 커다란 불교의 흐름이 있고, 거기에 많은 불보살에 대한 다양한 신앙이 나타납니다. 불타관의 발달.변천이라고 하는 문제는 불교연구의 범위에서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석존은 무사독오(無師獨悟)하여 스스로 깨닫고 자신이 부처가 된 것입니다. 바라문교 등에서는 여러 가지 신들이 존재하지만, 석존은 그런 것을 숭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불타라고 하는 것은 석존 자신이 자신을 가리켜 나는 불타가 되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제자와 신자를 두어 새로운 불교교단을 형성하고 발전시켰습니다. 이것이 석존의 일대(一代)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석존이 입멸하신 뒤 최소한 석존으로부터 설법을 들은 제자나 신자들이 생존해 있을 동안까지는 순수한 신앙이 유지되었으나, 더 후대가 되면 석존을 단지 인간 불타로서만이 아니라 초인간적인 불타로 생각하고 그 석존의 일불을 숭배의 대상으로 하기에 이릅니다. 초기에는 아직 불상이 없었고 간다라지방에서 비로소 불상이 등장합니다. 그 이전에는 스투파(불탑)를 세우고 그 속에 불사리(영골)를 모셔서 숭배하는 불탑신앙이 있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고 보리수 아래에서 석존이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보리수(bodhi tree)를 조각하거나 그려서 그것을 숭배하는 보리수 숭배가 있었는데, 지금도 여러곳에 그 조각작품이 남아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챠크라 숭배라고 하여 법륜을 숭배하는 것이 있습니다. 전법륜(轉法輪)이란 석존이 법을 설했다는 것인데, 그 가르침(法;dharma)을 상징하는 법륜(dharma cakra)을 만들어 그것을 숭배한 것입니다. 이 세 가지 형식이 오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원 1 - 2세기경 간다라지방에 그리스(희랍)의 기술자가 와서 그리스의 조각기술로 부처님을 조각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비로소 불상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간다라의 불상은 대부분이 석가모니부처님의 불상입니다. 석가모니불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조각하고 있는데 그 무렵에는 아직 불타관이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승불교, 이른바 초기대승에서 중기대승불교시대가 되면 삼세시방(三世十方)의 제불제보살이라는 식으로 갑자기 불세계가 꽃핀 것처럼 전개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석존 일불의 신앙이어서 석존만이 있었던 것인데 후세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지 대승불교가 되면 동방의 아촉불, 서방의 아미타불 이런 식으로 사방(四方) 또는 시방(十方) 네 간방에도 상하에도 모든 곳에 부처님이 계시다고 한 것입니다.
요컨대 보편적이고 영원한 것, 변하지 않는 것,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부처님을 신앙하게 된 것 입니다. 초기 대승불교에서 중기 대승불교의 경전들을 보면 삼세 시방의 제불 제보살이라고 하는 신앙의 대상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통일적인 불타관의 성립
이러한 큰 변화가 있은 후에 밀교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밀교는 초기에서 중기 대승불교에 있어서의 여러 불보살의 갖가지 신앙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명호도 대승불교와 거의 같은 것을 많이 받아들이다가 밀교시대가 되어 비로소 대일여래라고하는 근본적인 불타의 신앙이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명왕(明王)과 같은 시대적인 특수한 부처님도 계속해서 출현하게 된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부처님에 있어서도 매우 특수한 부처님인 대일여래를 각각 다른 각도에서 비춰 본 여러 부처님이 등장하게 됩니다. 밀교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부처님이 탄생했다고 하는 것이 바른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밀교의 부처님들인 것입니다.
이상을 요약해 보면 초기불교의 석존 일불신앙과 대승불교의 삼세시방의 불타관을 받아들이면서 거기에 밀교시대의 특이한 불타관을 발전시켰습니다. 소위 그들 전체를 포함하면서 그 전체를 통일하는 부처님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법신 대일여래이고 그 대일여래가 여러 부처님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통일적인 불타관이 성립한 것입니다. 이것은 대일경이나 금강정경에 나타난 불타관의 입장입니다.
이러한 진보된 밀교의 불타관의 입장에서는 제불은 바로 대일여래의 현현이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불타신앙의 긴 역사를 그 속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한 기본적인 사상에 근거하여 모든 것의 절대적인 불타, 즉 보문총덕(普門總德)의 부처님을 대일여래라 하고, 다른 제불.보살.명왕.천 등은 일문별덕(一門別德)의 부처님으로서 위치를 정하게 됩니다.
대일여래 보문총덕불
보문즉일문
제불.보살.명왕.천 ������ 일문별덕불 (普門卽一門)
제각기 다른 불.보살.명왕.천 등이 있어도 그것은 대일여래의 덕의 일부분을 나타내고 있다든지, 또는 대일여래가 그러한 특정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일여래가 그들 제불을 통일시키고 있기 때문에 「보문즉일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는 「일문즉보문」이라고 해도 무방한 것입니다.
여기 이렇게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예컨대 관세음보살을 신앙한다는 것은 일문의 신앙이지만 그것이 법신 대일여래의 신앙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의 이면에 대일여래가 뒷바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제각기 따로따로의 다른 모양이 아니고 그 이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대일여래입니다. 개개의 존재가 있고 그 어느 존재의 배경에도 뒷받침되고 있는 것, 절대적인 보편을 가진 존재를 대일여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대일여래를 배경으로 하여 개개의 부처님은 제각기 여러 가지의 서원,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원력으로 구원의 손길을 뻗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없이 넓으면서도 그러나 정확하고 말끔하게 통일하는 통일적인 불타관이 대일경이나 금강정경 등의 순수밀교라고 하는 경전 속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일적인 불타관을 어떤 형식이나 틀 위에 나타내어 구체화한 것이 「만다라(mandala)」입니다. 만다라라고 하는 것은 대일여래를 중심으로하고 제불제보살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는 것을 도식(평면적인 표현)으로, 또는 조각(입체적인 표현)으로 나타내어 이해하기 쉽게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알기 쉽게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 나타낸 것을 말합니다. 쿠카이의 문장을 보면 “부처님의 세계는 매우 알기 어렵다. 그러므로 도화(圖畵)에 의지하지 않으면 깊은 의미를 나타낼 수가 없다.”(쇼라이목록)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다라는 이러한 목적으로 성립한 것입니다.
밀교의 불타관은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하는 통일적인 불타관으로 되어있지만 그러나 다시 구체적으로는 제불.보살.명왕.천 등이 제각기 커다란 서원을 가지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구원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밀교의 세계가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2. 본존 구제적인 신앙의 대상
사찰에 가면 한 법당에도 예배의 대상으로 여러 부처님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본존(本尊)」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됩니다. 결국 구체적으로는 일문별덕의 부처님이 반드시 신앙의 대상으로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찰에 가서 참배하게 되면 반드시 본존이 가운데에 모셔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들이 사찰이름을 보거나 듣게 되면 대개 이 사찰의 본존은 어떤 부처님이구나 하는 것을 추정할 수가 있습니다. 사찰 이름은 본존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찰을 참배해 보면 본존이 모두 다릅니다. 부처님으로는 대일여래(비로자나불), 아미타여래, 약사여래 등이 있고, 보살에서도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과 부동명왕. 애염명왕. 비사문천 등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제각기 다른가 하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진언밀교에서는 대승불교의 불보살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고 게다가 밀교시대에 새롭게 신앙의 대상으로 등장한 것도 전부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어느 분을 본존으로 하게 되면 그 본존에 걸맞는 사찰 이름을 짓게 되므로 본존의 다양성만큼이나 사찰의 이름도 매우 수가 많고 다양하게 된 것입니다.
정토종에서는 모두 아미타불 일불신앙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하여 밀교는 지나치게 수가 많고 폭이 넓어 망망한 느낌도 있지만 그러나 밀교는 그 모든 불보살에는 대일여래가 배경이 되어 있다고 보는 독특한 불타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불보살이라도 그 정신적 내용에 있어서는 모두 자비와 지혜이고 그것을 제외시켜 버리면 불교의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외형적인 모습이야 어떻게 변하고 바뀌든 모든 부처님은 자비의 정신, 더우기 절대의 자비(대자비), 절대의 지혜(대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동존(不動尊)이든 관세음보살이든 형상은 바뀌어 전혀 다른 모습일지라도 그 근원을 밝힌다면 중생에 대한 지혜와 자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본존은 어떤 곳의 절에 가더라도 모두 다릅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일여래로 통일되어 있다고 하는 통일적인 불타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대일여래와 사불(四佛)
밀교의 중심적인 부처님을 밀교사상적인 입장에서 말한다면 대일여래와 사불을 포함해서 오불(五佛)이 밀교 불타관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앙에 대일여래, 그리고 사방에 사불을 합해서 오불이라고 합니다. 오불사상의 성립과정을 살펴보면 초기대승불교에서 중기대승불교로 발전해 갈 무렵에 먼저 사방의 사불사상이 성립한 것입니다. 그기고 그 후에 대일경이 성립하는 시대가 되면 대일여래가 새로운 신앙의 대상으로 나타납니다. 그 대일여래를 사방 사불의 중앙에 위치시키고 사불은 대일여래의 화현이라고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비로소 밀교의 오불사상이 성립한 것입니다.
밀교의 오불에는 태장계의 오불과 금강계의 오불로 나눕니다. 이것은 앞에서 잠간 언급했듯이 금강정경에 의한 부처님의 세계를 금강계 만다라, 대일경에 의한 부처님의 세계를 태장계 만다라라고 하는 데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래서 금강계의 오불에는 대일여래, 아촉여래, 보생여래, 아미타여래, 불공성취여래이고, 중앙에 대일여래, 동남서북에 차례대로 사불을 배치하는 것입니다. 태장계의 오불에는 중앙에 대일여래, 사방에 보당여래, 개부화왕여래, 무량수여래,, 천고뇌음여래를 배치한 것입니다. 그 가운데 아미타여래는 무량수여래이고 그것은 물론 같은 의미(AMITAVA;無量壽.無量光으로 번역)이지만 그밖의 부처님은 다소 명호가 다릅니다. 그러나 결국 같은 부처님입니다. 다만 전문적으로 말할 때는 예컨대 「불공성취여래」는 금강계의 부처님이고, 「천고뇌음여래」는 태장계의 부처님이라는 식으로 구별하는 정도입니다.
또한 부처님의 지혜로서 다섯 가지 지혜를 말합니다. 그 오지는 법계체성지(法界體性智), 대원경지(大圓鏡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묘관찰지(妙觀察智), 성소작지(成所作智)를 말합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는 유식사상이고 유식에서는 대원경지 이하의 네 가지 지혜를 설하는 사지설(사지설)입니다. 법계체성지만이 밀교의 말입니다. 유식사상의 사지에 법계체성지를 더하여 밀교의 오지사상이 성립한 것입니다. 이른바 사지설에서 오지설로 발전한 것입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밀교는 대승불교의 장점을 모두 토대로 하고 그위에 발전시켜간 것입니다. 요컨대 대일여래와 사불을 중심으로하여 오불사상이 성립한 것인데 그 오불에 오지를 배대하여 오지여래(五智如來)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4. 불신관(佛身觀)
불타관의 발달에 따라서 제불을 불신(佛身)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구별하는 방법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불신관의 문제입니다. 이 불신관은 일신설(一身說)에서 이신설(二身說)로, 이신설에서 삼신설(三身說)로, 삼신설에서 사신설(四身說)로 진행된 것입니다.
일신설에서 이신설로
석존 일불의 경우는 일신설로 말하는데 초기대승의 시대에는 이신설로 됩니다. 석존은 원래 역사적인 부처님이지만 좀더 깊은 곳에 있는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석존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80세로 입멸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나타난 부처님이기 때문에 변화신(變化身)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굳이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고, 그리고 사람들을 구제하고 불교교단을 형성하고 그 목적을 거의 달성했기 때문에 열반에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석존은 변화신(응화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한다고 하는 것의 이면에는 변화하지 않는 좀더 근원적인 부처님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부처님 그자체라고 할 수 있는 변하지 않는 본래의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을 신앙하게 된 것입니다. 초기대승불교의 신앙형태를 보면 석존 일불 이외에 아촉여래, 아미타여래, 약사여래 등의 신앙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법화경처럼 석존을 붓다가야 가까운 곳에서 성불한 부처님 곧 가야근성(伽耶近城)의 적문(迹門)의 부처님과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본문(本門)의 부처님을 세우는데 이것이 부처님의 이신설(二身說)입니다.
이신설에서 삼신설로
그런데 중기대승불교가 되면 이신설에서 삼신설로 발전합니다. 그 삼신이란 법신(法身).보신(報身).응신(應身)의 삼신을 말하기도 하고, 자성신(自性身).수용신(受用身).변화신(變化身)의 삼신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알기 쉽게 말하면 응신과 변화신은 석존이고, 보신.수용신은 아미타여래. 약사여래 등 대승불교에서설하는 제불을 말합니다. 보신.수용신이라고 하는 것은 인(因)의 수행을 하여 그 결과로서 보(報)를 받아 성불한 부처님이라는 의미인데, 예를 들면 아미타여래는 원래 법장보살이었지만 법장보살이 48대원(大願)을 세우고 수행하여 마침내 그 수행을 완성하여 아미타(무량수.무량광)여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하여 법신 또는 자성신은 부처님 그자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특정한 부처님이 아니고 아미타여래나 약사여래 등 모든 부처님의 근저를 이루는 것이고, 또한 석존의 근저도 되고 있는 부처님 그 자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법신.자성신은 모습도 형태도 없고 설법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념으로서는 그 존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부처님인 것입니다. 이렇게 대승불교에서는 이신설에서 삼신설로 발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밀교의 불신관 四身說
그런데 밀교에 오면 제일 먼저 법신의 내용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종래의 이념으로 또는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법신.자성신은 법신 대일여래에 다름아니다고 단정하고, 따라서보신이나 응신의 제불의 근저에 있는 것은 바로 법신 대일여래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기에 불신관.불타관 상의 커다란 변화.발전이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삼신설에 새롭게 등류신(등류신)을 보태어 사신설이 성립하게 된 것도 밀교 불신관의 특색입니다.
등류신이란 똑같이 흐른다는 의미인데 석존 이외의 보살.연각.성문.제천. 그밖에 불계(佛界) 이외의 구계(九界;四聖(불.보살.연각.성문)과 六凡(천.인.아수라.축생.아귀.지옥)을 십계라 함. 譯註.)에 있어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구제하는 것은 모두 대일여래에서 등류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등류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강계.태장계의 만다라에서의 최외원(最外院)인 외금강부원에 불교 이외의 신들이라든가 혹은 축생이나 아귀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교화하여 만다라 속에 존격으로 받아들이고 밀교의 제존으로서 숭배하게 된 것도 이 등류신 사상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등류신은 일반불교에서는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는 밀교의 독자적인 불신관으로 부처님의 개념을 매우 넓게 확대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한 통일적인 불타관, 또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나타낸 만다라적 불타관에서는 이러한 사신설도 인정될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또한 사종신(四種身)을 밀교에서는 사종법신이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법신이 그 사신(四身) 모두에 현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신을 자성법신. 수용법신. 변화법신. 등류법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법신의 확대해석을 볼 수 있습니다.
5. 신앙의 대상
다음에 신앙의 대상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총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제불.보살.명왕.천 이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대체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또한 오래된 사찰이나 밀교미술전 등에 가서 실제로 눈으로 볼 수 있는 부처님은 매우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부처님들 가운데 주가 되는 부처님은 대체 어느 정도 되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그것은 특별히 사상의 문제라기 보다 소위 신앙의 대상에 관한 영역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본존이라는 것도 이러한 범주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부류를 구분하여 보겠습니다.
여래부(佛部)
먼저 중심이 되는 것이 대일여래와 사방 사불입니다. 큰 사찰에서는 오불을 모두 모셔놓기도하지만 대일여래 또는 사불의 한 부처님만 모시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어떻든 이런 경우에 그 부처님은 밀교의 오불 가운데 한 부처님이라는 것입니다. 가령 아미타불을 모셔도 오불 속의 아미타불이라고 진언밀교에서는 말합니다. 정토종에서는 아미타불만을 신앙하는 것으로 통일되어 있지만 진언밀교에서는 아미타불의 신앙이든 다른 어떤 부처님의 신앙도 가능한 것입니다. 그 중에 대일여래의 특징적인 모습은 머리에 보관(寶冠)을 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모습은 보살의 모습과 구별이 됩니다. 즉 부처님의 형상은 출가의 모습을 하고 있고, 귀족의 모습으로 여러 가지 훌륭한 장신구로 몸을 꾸미고 있는 것이 보살입니다. 부처님은 장식을 하지 않는 출가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미타불이나 그밖의 여러 부처님이 모두 같은 출가의 모습입니다. 다만 가장 나중에 등장한 대일여래만은 보살의 모습을 하고있습니다.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장신구를 가득 붙이고 있는 것이 대일여래입니다. 그러나 대일여래의 경우에는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태장계의 대일여래와 금강계의 대일여래가 모습이나 인(印)을 맺는 방법 그리고 진언에 차이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장신구를 하고 화려한 모습을 한 형상이 금강계의 대일여래입니다. 아미타불의 형상에 가까우면서 인(印)의 모습만 다른 쪽이 태장계의 대일여래입니다. 이와같이 같은 대일여래에도 그 모습에 차이가 있습니다.
불정부(佛頂部)
불정부는 보통의 대승불교 속에는 등장하지 않는 매우 밀교적인 부처님입니다. 불정(佛頂;buddhosnisa)이란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없고 오직 부처님만이 정상(頂上)에 나타나는 훌륭한 상(相;無見頂上相이라고 하는 80種好의 하나)인데 그 공덕을, 즉 부처님의 가장 훌륭한 점을 불격화(佛格化)한 것을 말합니다. 결국 대일여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고 역시 보살형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정부의 부처님으로는 일자금륜불정(一字金輪佛頂), 존승불정(尊勝佛頂), 치성광불정(熾盛光佛頂) 등이 있는데 밀교의 사원에 가보면 이러한 부처님을 실제로 그려서 모시거나 불상을 조성하여 안치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불안부(佛眼部)
불안(佛眼) 즉 부처님의 눈이라는 것은 세간을 비추는 지혜의 눈을 불격화한 것입니다. 또한 불모(佛母)라는 것은 반야를 말하므로 반야불모(般若佛母)라 하고, 불안불모(佛眼佛母)라고도 합니다. 실제로 부처님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고, 불안불모의 진언이 있을정도로 밀교에서는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형상을 나타내고 있고 이 부처님에게 예배.공양하는 방법 즉 수법하는 의궤도 있습니다. 이것도 밀교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금강부(金剛部)
이 금강부도 밀교적인 부처님입니다. 금강살타(金剛薩타;va- jrasattva)는 금강수(金剛手). 집금강비밀주(執金剛秘密主). 일체여래보현(一切如來普賢). 대락금강(大樂金剛). 보현살타(普賢薩타)라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가장 대표적인 밀교의 보살이라 할 수 있는데, 부법전(付法傳)에 의하면 대일여래로부터 법신의 자내증(自內證)을 설한 밀교의 비밀법을 전해 받은 최초의 사람이 금강살타라고 합니다. 즉 대일여래→금강살타→용맹보살→용지보살 →금강지삼장 →불공삼장 →혜과아사리에서 홍법대사 쿠카이는 여덟번째라고 하는 부법의 8조 가운데 한 사람으로 대일여래의 바로 다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역사상으로 실재한 사람처럼 여겨지겠지만 사실은 실존인물이 아니고 신앙상으로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 마침내 성불(成佛)했다는 교리상의 보살입니다. 즉 보리심을 상징하는 보살을 금강살타라고 하는 것입니다. 태장계 만다라의 금강수원(金剛手院)에 있는 제존 가운데 중심이 되는 분이 금강살타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금강살타는 대일여래의 뒤를 이었다고 한 것이고 그러나 실재는 보리심을 상징한 부처님인 것입니다.
보살부
보살부는 대승불교와의 관계가 꽤 많은 부분입니다. 현교에서 보살 중에 관음신앙이 압도적이듯이 밀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도의 관음신앙이 그대로 중국이나 한국.일본의 관음신앙이 된 것입니다. 먼저 성관음(聖觀音)은 가장 최초의 관음인데, 법화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입니다.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천수관음(千手觀音), 불공견삭관음(不空견索觀音) 등의 관음신앙은 일본에서는 나라(奈良)시대부터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준제관음(準提觀音), 마두관음(馬頭觀音)은 대략 8세기 이후에 성립한 관음입니다.
요컨대 관음신앙의 역사는 법화경이 성립한 무렵부터입니다. 결국 기원 1세기 경부터 밀교가 왕성하게 된 8세기 이후까지 관음신앙은 계속되어 온 것입니다. 그 사이에 변화관음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 밀교시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 와서 더욱 변화관음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는데, 관세음보살만큼 폭넓은 신앙을 모은 부처님은 없을 정도입니다. 그다음에 문수.보현.미륵.지장.일광.월광 등 제보살은 대승불교의 보살을 그대로 밀교에서도 계승한 것입니다. 그러나 허공장보살(虛空藏菩薩)이나 제개장보살(除蓋障菩薩)은 밀교에서 등장한 보살입니다.
명왕부(明王部)
또한 밀교의 독자적인 것으로 명왕부에도 여러 부처님이 있습니다. 명왕이란 산스크리트어 비드야(vidya)를 주(呪) 또는 명주(明呪)로 번역하는데, 진언.다라니의 공덕력을 매우 중요시하여 그러한 명주.진언.다라니와 같이 뛰어난 위력을 지닌 존(尊=부처님)을 명왕이라 합니다. 밀교시대가 되어서 초능력을 갖추고 파괴력이 강한 부처로서 험상궂은 분노의 모습을 한 명왕의 신앙이 성립하게 된 것입니다.
공작명왕경이라고 하는 경전이 있는데 그 속에 공작명왕이 설해져 있습니다. 명왕에는 오대명왕(五大明王)이 가장 대중적이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부동명왕(不動明王=大日如來의 敎令輪身)이 가장 중심이고, 항삼세명왕(降三世明王=아촉여래),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보생여래), 대위덕명왕(大威德明王=무량수여래), 금강야차명왕(金剛夜叉明王=불공성취여래)을 오대명왕(五大尊)이라 합니다. 그밖에 애염명왕(愛焰明王). 태원수명왕(太元帥明王;曠野神이라고도 함)이라고 하는 명왕도 있습니다.
천부(天部)
다음이 천부입니다. 천(天)이란 산스크리트어 데바(deva)라 하는데, 원래는 바라문교 속에서 신앙되고 있는 여러 가지 데바(神)들 입니다. 그 신들을 불교의 수호신이라는 것으로 불교에 수용된 것입니다. 특히 12천은 호세의 천부(天部)라고도 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⑴제석천(帝釋天;동방) ⑵화천(火天;동남방) ⑶염마천(焰摩天;남방) ⑷나찰천(羅刹천;서남방) ⑸수천(水天;서방) ⑹풍천(風天;서북방) ⑺비사문천(毘沙門天;북방) ⑻이사나천(伊舍那天;동북방)의 8존은 사방사우의 8존이고 거기에 ⑼범천(梵天;상방) ⑽지천(地天;하방) (11)일천(日天) (12)월천(月天)의 4천을 더하여 12천이라고 한 것입니다.
또한 동서남북의 사방에 각각 5천(天)을 배대하여 20천(天)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길상천(吉祥天), 변재천(辯財天), 환희천(歡喜天) 등이 있습니다. 환희천은 성천(聖天;ganesa)이라고도 하는데 얼굴을 코끼리 형상을 하고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의 비불(秘佛)이라고 합니다. 그밖에도 대흑천(大黑天) 등 여러 가지 천부의 신앙이 있습니다.
6. 팔조(八祖)
팔조는 진언종의 가르침을 전한 조사로 추앙되고 있는 분들인데, 여기에는 「부법의 팔조」와 「전지의 팔조」라고 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부법의 팔조
부법의 팔조라는 것은 밀교의 가르침을 스승에서 제자로, 제자에서 손제자에게로 직접 부법상승(付法相承).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하는 형식으로 전해진 계보를 더듬어가는 것입니다.
대일여래 - 금강살타 - 용맹 - 용지 - 금강지 - 불공 - 혜과 - 홍법대사로 부법상승한 8조를 부법의 8조라고 하는 것입니다. 대일여래. 금강살타는 신앙상의 조사이고 용맹보살 이하의 6조는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그 가운데 용맹과 용지는 인도의 밀교상승자이고 금강지는 인도사람으로 중국에 와서 밀교경전을 역출하고 밀교를 전한 사람입니다. 불공은 서역사람인데 중국에서 성장하여 금강지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금강지가 입적한 후 인도(세일론)에 유학하여 밀교를 배운 뒤 많은 밀교경궤를 중국에 가져와서 역출하고 밀교를 크게 보급시켜 중국에 밀교라고 하는 하나의 종파를 창설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혜과는 불공의 많은 제자 가운데 뛰어난 제자로서 중국밀교의 홍통에 힘썼습니다. 그 혜과에게서 밀교를 상승하고 일본에 전하여 진언종을 개창한 사람이 홍법대사 쿠카이입니다.
전지(傳持)의 8조
그러나 부법과 같이 직접 상승하여 전한 것은 아니지만 전지(傳持)라고 하여 밀교를 전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8인이 있습니다. 용맹.용지.금강지.불공까지의 4인은 부법의 8조와 같은데, 거기에 선무외(善無畏)와 일행(一行)을 더한 것입니다.
선무외는 인도사람으로 중국에 와서 대일경을 번역하였고, 일행은 대일경소라고 하는 주석서를 저작한 사람입니다. 이 6인에 부법의 8조 가운데 혜과와 홍법을 더하여 이것을 전지의 8조라고 한 것입니다. 즉 용맹 - 용지 - 금강지 - 불공 - 선무외 - 일행 - 혜과 - 쿠카이 입니다.
진언종의 절을 참배하게 되면 본존의 양쪽에 조각상으로 8조가 나란히 모셔져 있는 경우가 있고, 그림으로 그려진 족자로 되어 있는 것도 있는데 그것은 모두 전지의 8조입니다.
7. 만다라
1. 만다라의 성립과 의미
밀교에서는 신앙의 대상인 본존과 그 권속을 함께 통합하여 그려 모셔두고 공양하거나 기원하는 수법이 있습니다. 5세기의 밀교경전에 이미 그 본존과 권속의 집회(집회)인 만다라가 성립되고 있습니다. 그후 밀교에서는 많은 불.보살.명왕.천 등을 신앙하고 있고, 그 신앙의 대상이 다채롭게 됨과 동시에 또한 공양하고 기원하는 수법도 갖가지로 많아지게 됩니다. 이러한 신앙의 다양성 속에 한편으로는 각각의 일존과 그 권속이라고 하는 그룹의 집회 만다라가 성립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채로운 신앙의 대상을 밀접하게 관계 맺는 통일적인 불타관이 성립하여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하는 종합적인 만다라가 성립합니다. 그것이 7세기 경에 성립한 대일경에 의한 태장계의 만다라와 금강정경에 의한 금강계의 만다라입니다.
만다라라고 하는 말은 산스크리트어 만다라(mandala)의 음사입니다. 만다라(mandala)는 어근 만다(manda;本質.心髓.醍호)에 라(la;所有의 뜻)라는 접미어가 붙은 합성어로써, 「본질을 가지고 있는 것」 「본질이 소유된 것」 「진수를 얻은 것」이라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종교적으로 말하면 「 정각(正覺)을 얻은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부처님이 모든 공덕을 갖추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의역하여 「윤원구족(輪圓具足)」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부처님의 모든 공덕을 그 가운데 원만하게 갖추고 있다고 하는 의미 입니다.
만다라는 처음에는 방당(方壇)이나 원단(圓壇) 위에 여러 부처님을 그려서 예배.공양하는 것을 의미한 것인데, 후에는 제불.보살 등을 그려 놓은 집회의 상태를 일컫게 된 것입니다.
2. 양부(兩部)만다라
만다라에는 특정의 본존과 그 권속의 집회라고 하는 형식의 만다라를 「별존만다라(別尊曼茶羅」라고합니다. 그것에 대하여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한 사방의 사불을 비롯하여 많은 보살.명왕 등을 배치한 종합적인 만다라를 태장계 만다라라고 하고, 대일여래와 사불을 중심으로 하면서 금강살타가 성불하는 양상을 나타낸 것을 금강계만다라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만다라를 총 칭하여 「양계만다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태장계만다라
먼저 태장계만다라는 구체적으로는 「대비태장생만다라」라고 하며 대일경과 그 주석서인 대일경소에
<<<< 태장계만다라 도표>>>> 한 페이지에.
근거하여 마치 어머니가 태아를 사랑으로 기르듯이 부처님이 자비스런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정신을 나타낸 만다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경소(經疏)에 해설되어 있는 만다라이기 때문에 「경소 만다라」라고도 하고, 그것을 알기 쉽게 도회로 나타내고 있으므로 「현도(現圖)만다라」라고도 합니다. 현도만다라는 중국밀교가 성립할 때 함께 성립된 것이라고 생각되고, 쿠카이가 입당구법 후 일본에 처음 들여온 것도 「현도 만다라」입니다.
이 태장계의 만다라는 13대원(大院)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대팔엽원이 있고 그 주위에 12원이 있습니다. 먼저 동방에 변지원. 석가원. 문수원. 외금강부원. 남방에 금강수원. 제개장원. 외금강부원. 서방에 지명원, 허공장원, 소실지원, 외금강부원, 북방에 관음원, 지장원, 외금강부원이 있고, 그리고 사방의 사대호원이 배치되어 있습니다.현도만다라에서는 그 사대호원을 생략하고 12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현도만다라와 원의 이름 그리고 각 원의 제존의 수는 별도에 보인 것과 같습니다.
⑴ 중대팔엽원(中臺八葉院)
먼저 중대팔엽원은 태장계만다라의 중앙에 위치하고 대일여래(법계정인)를 중심으로 사방에 보당여래(여원인;동), 개부화왕여래(시무외원;남), 무량수여래(법계정인;서), 천고뇌음여래(촉지인;북)의 사불과 사우(四隅)에 보현보살(동남;종교적 각성-발심문에서의 정보리심의 덕), 문수보살(남서;종교적 실천에서의 지혜-수행문에서의 지혜의 덕), 관음보살(서북;종교적 증오-보리심문에서의 보리의 덕), 미륵보살(동북;종교적 이상경-열반문에서의 열반의 덕)의 사보살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그 사불.사보살이 팔엽의 연화 위에 제각기 앉아 있기 때문에 「중대팔엽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중대팔엽원은 대체로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불.보살을 배치하고 있고 그 중앙에 밀교의 대일여래를 안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일여래가 사불로 화현하고 사불이 사보살로 화현하여 중생을 구제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⑵변지원(遍知院)
이 원의 부처님은 불안불모, 칠구지불모, 대안락불공금강 등 7존이 있고 전적으로 밀교의 독자적인 부처님입니다. 이 원의 중앙에 삼각지화(三角智火)의 변지인(遍智印)이 그려져있기 때문에 「변지원」이라고 합니다.
이 변지인은 일체여래지인(一切如來智印) 또는 무불심인(無佛心印)이라고도 하고 사마(四魔;身心.煩惱.死.天)를 항복하는 부처님의 지혜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을 하는 이는 대일여래에서 화현한 부처님들이라는 것입니다.
⑶지명원(持明院)
이 원의 부처님은 뛰어나고 훌륭한 명주(mantra;眞言)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지명원」이라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원에는 반야보살과 부동명왕.항삼세명왕.대위덕명왕.승삼세명왕의 5대존이 있기 때문에 「5대원」이라고도 합니다. 그 오대존 가운데 반야보살은 대일여래의 자비를 나타내는 정법륜신(正法輪身;진리 자체인 대일여래를 현실에서의 수용형태)이고, 다른 4명왕은 대일여래의 절복의 지혜를 나타내는 교령륜신(敎令輪身;대일여래의 의지나 행동에서의 표현)이라 하는데 그 교령륜신은 분노신(忿怒身)이기 때문에 이 원을 「분노원」이라고도 합니다.
⑷관음원(觀音院)
이 원의 중앙에 있는 존이 관자재보살이기 때문에 「관음원」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 원은 불부(佛部).연화부(蓮華部).금강부(金剛部)의 삼부 가운데 연화부에 속하므로 「연화부원」이라고도 합니다. 이 원에는 성관음.여의륜관음.마두관음 등 주존(主尊)이 21, 권속이 16, 합해서 37존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관자재보살은 무량수(아미타)여래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화현한 것이기 때문에 대일여래의 대비(大悲)의 덕을 나타내고 있다고 합니다.
⑸금강수원(金剛手院)
이 원의 중심에 있는 존이 금강수보살이기 때문에 「금강수원」이라 합니다. 금강수는 금강살타라고도 하므로 이 원을 「살타원」이라고도 하고, 불부.연화부.금강부의 삼부 가운데 금강부에 속하므로 「금강부원」이라고도 합니다. 관음원이 대일여래의 대비의 덕을 나타내고 있는 것에 대하여 이 금강수원은 대일여래의 대지(大智)의 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원을 중대팔엽원의 좌우에 각각 배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원에는 33존이 있습니다.
⑹ 석가원(釋迦院)
이 원의 중심에 있는 부처님이 석가모니불이기 때문에 「석가원」이라고 합니다. 이 석가여래는 대일여래가 밀교를 설하여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응현한 부처님이기 때문에 변화법신의 석가여래입니다. 그리고 이 원에는 관음.허공장.8불정(佛頂), 그밖에 밀교적인 제존 등 39존으로 되어 있습니다.
⑺문수원(文殊院)
이 원은 문수보살이 중심존으로 되어 있으므로 「문수원」이라고 합니다. 문수보살은 대일여래의 지혜가 일체의 희론(戱論;번뇌)을 끊어 없애는 활동을 나타내는 보살로 되어 있습니다. 이 원에는 주존과 권속을 모두 합해서 25존이 있습니다.
⑻제개장원(除蓋障院)
이 원은 제개장보살을 중심존으로 하므로 「제개장원」이라 합니다. 이 보살은 대일여래가 일체의 장애(번뇌)를 제거하는 서원을 가지고 화현한 보살로서 「이뇌금강(離惱金剛)」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금강수원이 대일여래의 지혜의 체(體;본체)에서 유현한 것임에 대하여 이 원은 대일여래의 지혜의 용(用;작용)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는데 모두 9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⑼지장원(地藏院)
이 원은 지장보살이 중심존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지장원」이라 합니다. 지장보살은 대일여래의 발고여락(拔苦與樂;괴로움을 없애고 즐거움을 주는)의 덕을 나타내는 보살입니다. 관음보살이 대비의 보살임에 대하여 지장보살은 특히 악취(惡趣;악도)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보살로 되어 있습니다. 이 원은 모두 9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⑽허공장원(虛空藏院)
이 원의 중심존이 허공장보살이므로 「허공장원」이라고 합니다. 문수보살이 지혜의 보살임에 대하여 허공장보살은 복덕의 존입니다. 대일여래가 모든 복덕을 허공처럼 무한히 포장(包藏)하고 중생의 원에 응하여 시여(施與)하기 위해 화현한 보살, 즉 부의 생산과 분배의 무한한 가능성을 나타낸 보살입니다. 이 원은 모두 28존입니다.
(11)소실지원(蘇悉地院)
이 원의 중심존은 소실지(susiddhi의 음역.妙成就의 뜻)보살이므로 「소실지원」이라고 합니다. 이 보살은 허공장보살이 유현한 것이고 허공장보살의 만덕을 출생하여 묘성불(妙成佛)의 작용을 하는 보살로 되어 있습니다. 모두 8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2)외금강부원(外金剛部院)
이 원은 태장계만다라의 외부에 있기 때문에 「외금강원」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제천선신이 모두 등장하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일반적인 제천선신이 아니고 대일여래가 그들 모두에 유현하여 구제하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즉 고대인도인들이 존숭하던 신들뿐만아니라 정령.귀신들까지 소위 6도윤회의 모든 중생이 모두 이곳에 포함되어 있는데 그들 모두는 대일여래의 변화법신 또는 등류법신으로서 모두가 그 가치를 균등하게 가짐을 나타냅니다. 그런 뜻에서 이 최외원에 이르러 비로소 아즉대일(我卽大日), 당상즉도(當相卽道)라는 밀교의 교지가 가장 구체적으로 표시되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외금강부원은 이 만다라의 사방의 외부에 배치되고 모두 205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상 12원의 대강을 살펴보았는데, 12원의 배치와 그 주존에 대해서는 대일여래의 온갖 덕성의 여러 모습(총덕제상)을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으로써 극히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주존이외의 다른 제존이나 권속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다종다양하다는 것과,, 1부원에 제존을 배치하는 혼란도 볼 수 있습니다. 그들 많은 존에서 아무래도 인도밀교의 토착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요컨대 이 태장계만다라는 대승불교의 불타신앙을 계승하면서 밀교에 있어서 급속히 발전한 밀교적 신앙도 포괄하고 그것을 법신 대일여래의 대지.대비로 섭수하여 통일적인 불타관을 확립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일여래를 중심으로하는 하나의 대만다라(大曼茶羅)로써 성립하고 있는 것(現圖에서 전체 390尊)입니다. 그리고 태장계만다라의 12원 배치를 보면 중앙에 중대팔엽원이 있고 그 상하에는 사중원단이고, 좌우에는 삼중원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너무 전문적인 것이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합니다.
금강계 만다라
금강계만다라는 금강정경을 소의로 하여 그려진 것으로, 영원히 부서지지 않는 다이야몬드(金剛)처럼 견고한 깨달은 마음, 즉 보리심을 본체로 하는 만다라란 뜻입니다. 모두 9회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금강계9회만다라」라고도 합니다. 9회란 ⑴갈마회 ⑵삼마야회⑶미세회 ⑷공양회 ⑸사인회 ⑹일인회 ⑺이취회 ⑻항삼세갈마회 ⑼항삼세삼마야회를 말합니다.
⑴갈마회(갈磨會)
금강계만다라 9회의 중심이 되는 것이 갈마회입니다. 갈마는 카르마(karam)라고 하는 범어의 음사어이고, 사업(事業). 행위로 번역합니다. 이 회는 대일여래가 모든 것을 구원하는 화타(化他)의 사업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갈마회」라고 한 것입니다. 또한 이 회는 성불의 과정 또는 불신(佛身)이 성취되는 회처(會處)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성신회(成身會)」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이 회는 9회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회이므로 「근본회」라 하기도 합니다.
이 갈마회를 잘 살펴보면 사각의 이중 틀 속에 커다란 원을 그리고 그 중앙과 사방에 작은 원이 있습니다. 이 커다란 원은 오불(五佛)의 주처이고 보루각에 해당되는데, 그것은 또한 중생의 마음을 상징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다섯개의 원은 월륜(月輪)이고 이것을 「5해탈륜」이라고도 하고 5지와 5불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금강계만다라 도표>>>>
그런데 다섯개의 작은 원 가운데 중앙의 원은 대일여래(백색. 지권인. 사자좌), 그 사방에 금.보.법.업의 4바라밀보살이 있습니다. 이것은 대일여래의 4친근보살로서 4불이 대일여래를 공양하기 위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동방의 윤원에는 중앙에는 중앙에 아촉여래(흑색.촉지인.코끼리좌), 그 사방에 살.왕.애.희의 4보살이 있습니다. 남방에는 중앙에 보생여래(황색.여원인.마좌), 그 사방에 보.광.당.소의 4보살이 있습니다. 서방에는 아미타여래(적색.법계정인.공작좌)를 중심으로 사방에 법.리.인.어의 4보살이 있습니다. 이것은 4불과 그 활동을 나타낸 것으로 대일여래의 활동(karma) 그 자체를 인격화하여 4불과 16대보살로 나타낸 것입니다. 이어서 대륜원의 사방에 희.만.가.무의 4천녀가 있는데 이것을 「안의 4공양(內四供養)」이라 하고 대일여래가 4불에게 공양하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큰 원의 밖의 사방에는 현겁(賢劫;現在의 劫임.)의 천불(千佛)을 그리고 사방의 네 모퉁이(四隅)에 향.화.등.도의 4보살이 있는데 이것을 「밖의 4공양(外四供養)」이라 하고 4불이 대일여래를 공양하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다음에 사방의 4문에 구.삭.쇠.령의 4보살이 있고 이것을 4섭지(섭지)의 보살이라고 합니다. 이 4섭지 보살의 발상은 대승불교의 보시.애어.이행.동사의 4섭법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일여래가 4불을 공양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거기에 밖의 사방(第3重)에는 일체의 천(天)을 포섭하여 그 대표로써 28천을 그리고 있는데 이것이 외금강부에 해당됩니다.
이 회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대일여래와 4불인데, 그 5불에게 제각기 친근(親近)의 보살을 대응시키고 각각의 부처님의 특색있는 심상(心象)과 활동을 교묘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할 사상의 전개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향.화.등.도나 구.삭.쇠.령과 같은 구체적인 공양물을 불격화하여 보살로 하고 더우기 그것을 상호 공양하는 보살이라는 형식의 발상은 참으로 심묘하다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갈마회는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하고 4불, 4바라밀보살, 16대보살, 8공양 4섭의 12보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갈마회37존만다라」라고도 합니다.
⑵삼마야회(삼마야회)
이 회는 중앙의 갈마회 아랫쪽, 즉 동방에 위치하고 부처님의 본서(本誓)인 삼마야형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삼마야회라고 한 것입니다.
삼마야는 「평등」 「본서」 「약속」 「계약」등의 의미를 가진 범어 삼마야(sammaya)를 음사한 것인데, 부처님의 본서라는 것은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는 마음의 비밀을 가리키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부처님이 가지고 있는 물건인 윤보(輪寶). 오고저(五股杵). 칼. 연꽃. 탑 등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삼마야회는 그러한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그린 집회이기 때문에 4종만다라 가운데 삼마야만다라(상징의 만다라)에 해당됩니다.
⑶미세회(微細會)
이 회는 9회의 동남방에 위치하고 부처님이 미세한 지혜를 가지고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나타내므로 「미세회」라고 합니다. 이 회의 제존은 모두 삼고저(삼고저) 속에 머물고 부사의하고 미세한 지혜로 중생을 교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4종만다라 가운데 법만다라에 해당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종자(種子;梵字).진언으로 나타내는 법만다라는 아닙니다.
⑷공양회(공양회)
이 회는 남방에 위치하고 4불이 대일여래를 공양하고 대일여래가 4불을 공양하여 상호 공양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공양회라고 한 것입니다. 이 공양은 부처님의 작업.활동이기 때문에 4종만다라 가운데 갈마만다라에 해당됩니다.
이상의 4회 갈마회.삼매야회.미세회.공양회는 각각 대만다라(전체), 삼매야만다라(상징), 법만다라(理性), 갈마만다라(행동)을 따로 나누어 설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⑸사인회(四印會)
이 회는 서남방에 위치합니다. 지금까지 갈마.삼매야.미세.공양의 4회는 대.삼마야.법.갈마의 4종만다라에 각각 해당하는 것이었는데, 그러나 이 4회는 제각기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4만(曼). 4지(智).4불(佛)이 일체불리(一體不離)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4회흘 한 곳에 안치하여 「4인회」라고 한 것입니다.
인은 지인(智印)이라는 뜻이고 4종만다라를 4지인이라고도 하므로 여기서는 4회를 한 곳에 모은 것을 사인회라 하게 된 것입니다. 이 회에는 중앙의 대일여래와 사방의 4불이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⑹일인회(一印會)
이 회는 서방에 위치하고 중생과 부처의 일체성(一體性), 즉신성불의 이상을 나타내는 지권인(智卷印)이라는 일인을 맺고 있는 금강계의 대일여래 한 부처님만을 크게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일인회」라 한 것입니다. 이것은 금강계의 지금까지의 제회는 모두 대일여래 한 부처님에게 귀입해야 한다(歸依大日)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일인회로 독립하여 그린 것입니다.
⑺이취회(理趣會)
이 회는 서북방에 위치하고 대일여래가 그 불변의(=금강) 본질(=살타)을 중생을 위하여 보살의 모습을 취한 금강살타의 몸으로 현현하여 진실한 지혜(=理趣)는 욕.촉.애.만 같은 번뇌 속에도 예외없이 깃들어있으므로 번뇌 그 자체가 곧 보리(煩惱卽菩提)라는 것을 나타낸 만다라입니다.
중앙에 금강살타, 그 사방에 욕.촉.애.만의 4금강보살을, 네 모퉁이(四隅)에 4보살의 금강녀(金剛女)를 배대하고, 제2중(重)에는 사방에 4섭보살, 사우에는 안의 4공양보살(內四供養)을 배대하여 전부 17존으로 되어 있습니다.
⑻항삼세갈마회(降三世갈磨會)
이 회는 북방에 위치하고 대일여래가 좀처럼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마음 속에는 자비로 가득 넘치지면서 밖으로는 무서운 분노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항삼세명왕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그린 만다라입니다. 이 회의 구성은 근본회(갈마회)와 비슷한데, 근본회 37존에서 금강살타대신 항삼세명왕을 두고 현겁의 16존, 외원의 20천, 그리고 제3중의 사우에 4명비(明妃)를 배대한 것으로 모두 77존으로 되어있습니다.
⑼항삼세삼마야회(降三世三摩耶會)
이 회는 동북방에 위치하고 항삼세명왕의 삼마야형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나 제3중의 사우에 4명비가 없기 때문에 73존으로 되어있습니다.
앞의 항삼세갈마회가 화타(化他)를 위한 외면적인 활동을 하고 있음에 대하여 이 삼마야회는 내심(內心)의 활동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이 9회만다라인데 그 전거를 살펴보면 제1회에서 제6회까지는 금강정경의 「금강계품」에 의한 것이고, 제7회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금강정경 18회 속의 제6회 「대안락불공진실유가품」에 의한 것이라는 견해와 초회의 「일인회」에 의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8, 제9는 「항삼세품」에 의한 것입니다.
더우기 9회만다라에 대해서는 제1회에서 제6회까지는 일련의 관계가 있는 것이지만, 제7회 이하가 어떻게 해서 추가 되었는가, 또는 9회의 순서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따위의 교학상의 문제가 있지만, 생략하기로 합니다.
아무튼 양부의 만다라는 그 성립이나 양상 등에 현저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커다란 불타관의 상위가 있다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태장계만다라가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하는 통일적인 불타관을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하여, 금강계만다라는 대일여래와 4불로 금강살타를 주축으로 하고 성불의 과정과 교화의 양상을 보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사종만다라(四種曼茶羅)
만다라는 그 표현 형식상으로 네 가지가 있기 때문에 사종만다라라고 합니다. 그 네 가지는 ⑴대만다라 ⑵삼매야만다라 ⑶법만다라 ⑷갈마만다라 입니다.
⑴대만다라
먼저 대만다라에 「대」라고 하는 것은 보편적이라든가 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제불.보살 등의 모습을 완전하게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만다라를 대만다라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만다라의 기본적인 표현형식인 것입니다. 실제로는 부처님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만다라를 말합니다.
⑵삼매야만다라
삼매야는 범어 사마야(samaya)의 음사어로서 부처님의 서원. 본서를 의미합니다. 밀교에서 부처님의 본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방법으로 부처님이 가지고 있는 물건(持物)으로 나타내는 경우와 손으로 인을 맺는 인계(印契)로써 나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부처님의 지물을 주의해서 살펴보면 칼.윤보.약병.연화.오고저 등이 있는데, 이러한 것을 모두 아무렇게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의 본서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은 손으로 여러 가지 인을 맺고 있는데 그것도 그 부처님의 본서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만다라 대신 부처님의 지물이나 인계로써 나타낸 만다라를 「삼매야만다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⑶법만다라
법만다라는 제불.보살을 범자의 한 글자로 표시한 만다라입니다.밀교에서는 제불.보살.명왕 등에는 그 존을 일컫는 진언이 있기도 하지만 범자의 한 글자로써 간단히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만다라를 각각의 부처님을 상징하는 범자의 한 글자로써 나타낸 것을 「법만다라」라고 합니다. 또한 그 한 글자를 종자라고도 하기 때문에 「종자만다라」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법만다라라고 할 경우 「법」에 가르침이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모든 범자, 넓은 의미로는 경전, 언어, 문자 등이 모두 법만다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경전을 흔히 법만다라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때문입니다.
⑷갈마만다라
갈마라고 하는 말은 범어 카르마(karma)의 음사어이고 작업.활동.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세 가지 만다라는 부처님(대만다라)과 본서(삼마야만다라)와 기호(법만다라)이지만, 그 각각이 모두 부처님으로써의 구제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 활동의 상태를 「갈마만다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삼갈마(通三갈摩)」라고 합니다. 즉 세 가지 만다라를 통한 활동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제불.보살 등을 철.청동.돌.흙.나무 등의 재료로 입체적으로 주조하거나 조각한 부처님의 군상을 갈마만다라라 하기도 하는데 그것을 「별체갈마(別體갈摩)」라고 합니다.
⑸만다라의 확대해석
이상을 다시 정리해 보면 사종만다라는 부처님의 표현형식으로서 대단히 훌륭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 만다라를 좀더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보면 한 가정에 주인이 가족을 구성하고 있으면 그것은 대만다라이고, 가족들이 제각기 가장 애용하고 있는 것으로 그 가족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삼매야만다라입니다. 또한 가족들의 이름은 법만다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만다라 사상은 부처님의 세계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그것을 확대해석하면 십계(지옥.아귀.축생.수라.인.천.성문.연각.보살.불)의 유정(有情=살아 있는 모든 것)세계를 대만다라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유정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것, 또는 그들이 살고 있는 산천초목의 세계는 삼매야만다라이고, 살아 있는 모든 것(유정)의 이름이나 기호는 법만다라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다라의 세계는 부처님의 세계 뿐만아니라 인간의 세계도 우주도 모두 만다라의 세계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다라의 사상은 밀교사상의 특색이기도 하지만, 이제 세계적인 규모의 사상으로 이 세계를 이끌어갈 제3의 사상으로 새롭게 평가되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4. 마음의 만다라
그러한 만다라의 세계를 홍법대사는 「마음의 만다라」라고 하는 사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만다라는 부처님의 세계이지만 그것은 또한 마음의 만다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융합한 사상입니다. 홍법대사 쿠카이가 「비밀장엄심」을 설명하면서
「五相五智法界體 四曼四印此心陳
刹塵渤태吾心佛 海滴金蓮亦我身」
「즉신성불의 수행도인 5상(相)과 5지(智)와 법계체,
4종만다라와 4종의 지인(智印)은 모두 이마음(비밀
장엄심)에서 설하는 것이다.
세계를 미진으로 한 만큼 한없는 불부(佛部)의
제불은 모두 내 마음의 부처이고,
바닷물을 물방울로 한만큼 한없는 금강부와
연화부의 제불도 또한 내 몸(의 부처님)이다.
(비장보약「비밀장엄주심」)
라고 하고있습니다.
오상(五相)이라고 하는 것은 진언밀교에서 행자가 대일여래와 본질적으로 일체임을 깨닫게 하는 관법으로 오자엄신관(五字嚴身觀;태장법)과 오상성신관(五相成身觀;금강계법)이 있습니다. 그중에 통달보리심(通達菩提心).수보리심(修菩提心).성금강심(成金剛心).증금강신(證金剛身).불신원만(佛身圓滿)의 다섯 단계를 순차로 관상(觀想)하는 것을 오상성신관이라 합니다.
그리고 오지는 대원경지.평등성지.묘관찰지.성소작지.법계체성지를 말하는데, 이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모두 구체성을 지닌 아촉불.보생불.아미타불.불공성취불.대일여래불 등 5불의 지혜로서 표현됩니다. 그리고 즉신성불의에 「불(佛)이 육대(六大)를 설하여 법계체성이라 하였다.」고 하였듯이 6대를 법이라고 보고 동시에 불(佛)이라고 봅니다.
또한 사만이라고 하는 것은 사종만다라를 말하는데 모든 만다라라는 뜻이고, 4인(印)은 4만(曼)과 같은 것인데 다른 표현으로 「사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상.오지.육대체대의 법계.사종만다라 등은 모두 내 마음 즉 비밀장엄심 속에 나열 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찰진이라고 하는 것은 헤아릴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부태(발태)는 불타(불타)를 말합니다. 범어 붓다(buddha)를 음사한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즉 티끌수 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들이란 바로 내 마음의 부처님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해적(해적)이란 넓고 넓은 바다라는 것도 하나하나의 물방울로써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것도 셀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금련은 금강부와 연화부 즉 부처님을 가리키고 있는데, 결국 대해를 물방울로 세는 만큼이나 많은 금강부 연화부 등 모든 부처님은 또한 내 몸이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다라의 제불은 모두 내 몸과 마음 속에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쿠카이의 사상에서 보면 결국 부처님은 초월적이지만 내재적입니다. 만다라는 객관적이고 초월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또한 주체적이고 내재적인 내 마음의 만다라이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의미 깊은 사상이라고 봅니다.
5. 별존만다라(別尊曼茶羅)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양부만다라로서, 그것은 전체적인 만다라이지만 그것에 대하여 「별존만다라」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별존만다라는 어느 특정의 일존을 중심으로 하고 그 들 권속과 관계 있는 제존을 배대하여 하나의 만다라를 구성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존승만다라, 약사만다라, 아미타만다라, 석가만다라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을 중심으로하여 십대제자를 배치하면 석가만다라가 됩니다. 또한 미륵만다라, 보현만다라, 이취경만다라 등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별존만다라는 얼마든지 확대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정토종에서는 본래 만다라라는 개념이 없지만 만다라의 사상을 받아들여서 정토만다라가 있습니다.
또한 문학의 세계에서도 만다라라고 하는 말이 자주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만다라라고 하는 사고방식은 우리들의 구체적인 생활경험 속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집단 속에서의 여러 가지 존재양식 등 아주 가까운 형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만다라는 본래 「부처님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지금 문학적으로는 「인간의 세계」를 가리키고 있고, 더우기 만다라라고 하는 말은 거의 국제어가 되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제5.진언밀교의 인간관
앞절에서 진언밀교의 불타관에 대해서 고찰했는데, 이어서 진언밀교의 인간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종교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가지의 종교를 신앙하게 되는데, 그것은 근본적으로 인간과 부처, 인간과 신(神)이라고 하는 문제가 됩니다. 이러한 복잡한 문제를 진언밀교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다음의 문제입니다.
1. 홍법대사의 구법의 중심과제
실마리를 풀어가기 위해 먼저 홍법대사 쿠카이의 구법의 중심과제가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쿠카이는 밀교자로서 대성한 사람이자만 밀교자인 쿠카이는 무엇을 구법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었을까 ? 젊은 쿠카이의 왕성한 에너지가 종교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무엇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언급한 쿠카이 자신의 문장이 있습니다.
「제자 쿠카이, 성훈(性熏)의 나를 권하여 환원(還源)을 생각했다. 길(徑路)을 알지 못하여 갈림길에서 몇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그 정성에 감응이 있어 이 비문(秘門)을 얻었으나 문(文)에 임해서 마음이 혼미하여 적현(赤縣)을 찾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나의 원에 하늘이 따라 주어 대당(大唐)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성령집권7)
여기에서 「성훈이 나를 권하여」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 속에 심어져 있는(훈습된) 마음(보리심, 마음의 근저에 있는 것)을 움직여 환원을 일편단심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환원이란 근원에 돌아간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근원이란 깨달음의 본원, 청정한 마음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청정한 마음(보리심)에 어떻게 되돌아 갈 수 있을까, 또는 어떻게 하면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을까 하는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길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여러 갈래의 길이 나누어져 있는 갈림길에 서서 어느 쪽으로 가면 좋을지를 몰라서 몇번이나 울면서 고민했다는 것입니다.이것은 쿠카이가 젊을 때 나라(奈良)의 불교를 여러 가지 공부했으나 유식의 법상종에서도, 중관의 삼론종에서도, 화엄종. 율종에서도 자신이 참으로 구하고 있는 것을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을 탄식하고 있는 말입니다. 쿠카이의 말에 「괴롭다」든가 「슬프다」는 말은 여러 번 나오고 있지만 「울었다」고 하는 말은 여기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정성에 감응이 있어 이 비문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대일경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밀교 특히 대일경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에 임해서 마음이 혼미했다」고 합니다. 쿠카이만큼 뛰어난 사람이라도 글을 읽고는 이해할 수 없는 곳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밀교의 진언, 수법, 만다라, 관정의식 등 여러 가지가 쓰여져 있기 때문에 확실히 읽기만 해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현(중국의 당나라)에 가서 구법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원에 하늘이 따라 주었다」고 한 것은 다행하게도 조정에서 허락하여 쿠카이 31세 때 중국(당)에 갈 수가 있었다는 문장입니다.
간단한 문장이지만 쿠카이가 젊은 시절에 무엇을 진지하게 구했는가를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즉 「환원을 생각했다」고 하는 말이 매우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근원에 돌아간다는 말인데 어딘가 특정의 부처님 세계 즉 극락세계 또는 도솔천의 정토에 간다든가, 자신을 초월한 무엇인가를 구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깊이 파고 들어가서 그러는 가운데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그것을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쿠카이의 종교적인 출발점은 「자기를 응시한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2. 미오적 존재로서의 인간
결국 쿠카이에 있어서 인간이란 미오적(迷悟的) 존재입니다. 즉 미망의 상태만이 아니고 깨달음의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미오의 양쪽을 함께 가지고 있는 인간입니다. 그 가운데 어느 쪽에 좀더 중심을 두는가 하는 문제를 추구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반야심경비건의 서문에
「대저 불법(佛法;깨달음의 지혜.菩提)이라는 것은 우리를 떠난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들 마음 가운데 본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다. 진여(眞如;깨달음의 진리.涅槃)도 우리의 마음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닌데 마음이 머무는 우리 몸을 돌이켜 보지 않고 도대체 어디를 찾고 있는가. 미혹도 깨달음도 모두 우리들 안에 있으므로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기만 하면(發菩提心) 반드시 깨달음에 도달할 수가 있고, 진여의 지혜의 빛도 번뇌의 어두움도 우리들 몸 이외에 다른 곳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믿고 수행하면 마침내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는 유명한 글이 있습니다.
미혹(暗)도 깨달음(明)도 우리들 마음 속에 있기 때문에 발심하고 신앙을 깊게하여 수행하기만 하면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의 활동에는 선심과 악심의 양면이 있으므로 선도 생각할 수 있고 악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혹에는 여러 가지 번뇌.망상이 있습니다. 그것을 탐.진.치라고 하는 삼독(三毒)의 번뇌라고 하기도 합니다. 유식사상에서는 선(善)의 마음은 11가지 있고, 악의 마음에는 6근본번뇌, 20수번뇌(隨煩惱) 등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쿠카이는 그러한 유식사상을 통하여 마음의 활동문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3. 마음의 본성의 탐구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마음의 본성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은가 또는 마음의 본성을 깊이 파고 들어 탐구해 가는 거기에 환원이라고 하는 사고방식이 이어져 오는 것입니다. 더구나 쿠카이가 왜 대일경을 읽고서 놀랐는가 하면 「여실지자심(如實知自心)」이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심(自心)은 자기 마음의 본성이라는 것이므로, 여실히 있는 그대로 자기 마음의 본성을 확실히 보고 그 경지에까지 도달한다고 하는 것인데, 그 「여실지자심」이라는 말에 매우 마음이 끌렸던 것입니다. 결국 「환원을 생각한다」는 것과 「여실지자심」이라는 말은 같은 의미입니다. “바로 이것이다.”하고 쿠카이가 놀란 눈으로 대일경을 읽었으리라고 상상이 됩니다. 그것을 좀더 달리 표현하면, 자기를 깊이 응시하여 마음의 본성란 결국 청정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고 그런 깨달음에 의해 진실한 자기, 참다운 나라고 하는 것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쿠카이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성불(成佛)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목표로 하는 것이 바로 성불 그 자체이기 때문에 쿠카이에 있어서는 결국 성불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그 성불의 가능성에 대한 문제가 매우 큰 문제로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불교의 수행으로 성불이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는가, 또는 빨리 성불하는가 더디게 성불하는가 하는 복잡한 문제를 쿠카이는 자신의 마음을 깊이 파고들어 가면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4.심성본정(心性本淨)의 사상
대일경의 「여실지자심」이라는 것은 마음의 본성은 청정하다는 것을 밝힌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대일경에만 있는 사상인 것은 아닙니다. 그 사상의 원류는 사실 쭉 거슬러 올라가서 중기 대승불교사상의 흐름에서 밀교의 대일경이나 금강정경에 흘러 든 긴 사상의 흐름이 있고, 또한 그것은 불교사상의 가장 중요한 본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심성본정 객진번뇌(心性本淨客塵煩惱)」라는 유명한 말이 많은 경전들 속에 나오고 있는데, 마음의 본성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며, 미혹과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면 좋은가 하는 문제를 한마디로 명확히 대답한 것이 「심성본정 객진번뇌」라는 말입니다.
객진이란 주인과 손님, 중심적인 것과 밖에서 들어 온 것이라는 식으로 미오적이지만 마음의 구조(중심)를 청정심(淸淨心)의 쪽에 둔 것입니다. 청정심의 둘레에 미혹의 마음이 있고, 더우기 그것을 곁에서 보게되면 모두 번뇌에 둘러 싸여 있는 마음이라는 생각입니다. 객이라는 것은 「딴 곳에서 날아왔다」(agantuka)고 하는 산스크리트어의 의미가 있는데, 아침에는 깨끗한 책상이지만 문을 열어두면 강한 바람이 불어 먼지 티끌이 날아들어와 떨어져 있다는 것이 예컨대 「객진번뇌」입니다. 번뇌라고 하는 미혹의 마음이 갖가지로 나오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에 있어서 본래적인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경험 속에서 욕심이나 미혹이 일어나서 남을 미워하거나 여러 가지 것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딴 곳에서 날아온 티끌과 같은 것으로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전혀 어떻게 할 수 없는 미혹한 마음의 인간으로 되어버린다는 견해입니다.
또한 열반경이라는 경전에도 여러 가지 중요한 사상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가지 중요한 포인트로서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어떠한 사람에게도 반드시 불성이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미혹한 사람, 나쁜 사람, 도무지 성불할 수 없을 것 같은 극악한 사람(一闡提;iccanti- ka), 그런 사람에게도 불성은 있으며, 부처님이 될 가능성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일체개성불(一切皆成佛)」이라는 것입니다. 대승불교의 일승사상(一乘思想)은 모두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또 「여래장(如來藏)」이라고 하는 사상이 있습니다.이것은 여래장경과 승만경이 이 계통에 속하고 그 밖에도 몇 가지 중요한 문헌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인간을 여래장적인 인간으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즉 이 사람은 미혹한 상태에 있지만 여래장(如來胎)이 그 마음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언젠가 마침내 여래(부처님)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여래장사상입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모두 공통적인 측면입니다. 누구든지(일체중생) 부처님의 태아(胎兒)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부처님의 장(여래장) 속에 모든 사람이 둘러싸여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이 여래장 사상도 인간과 부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고, 그것을 「여래장」이라고 하는 말로 표현한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대승기신론과 그 주석서라고 하는 석마하연론에는 「본각사상(本覺思想)」이라고 하는 것이 설해져 있습니다. 「본각」이란 「본래 깨달아 있는 마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보리심」 「자성청정심」 등을 설하고 있는 경전도 있습니다. 밀교 이전의 중기 대승불교시대에 등장한 많은 경전이나 논서를 보면 이러한 사상이 매우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의 마음을 깊이 파고 들어가보고 성불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해 이러한 여러 가지 사상이 계속해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한마디로 말하면 여래장계통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사상이 그대로 밀교사상 속에 계승되어져 온 것입니다. 그것이 대일경과 금강정경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또한 중국밀교에서 쿠카이의 사상으로 쭉 이어져 온 것입니다. 쿠카이는 그러한 사상의 커다란 흐름을 배경으로 한 것이 바로 대일경의 사상이라는 것에 커다란 자신을 가졌던 것입니다.
5. 깨달음이란 비밀장엄심.마음의 만다라
결국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것이 불교인의 수행의 목적인 것인데, 그 깨달음이라는 것은 대일경에 의하면 「여실지자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심의 근저를 깨닫는다」고 하는 말을 쿠카이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밀만다라십주심론에 나오는 말인데, 「자심의 근저를 깨닫는다」는 것은 자기 마음의 근저에 있는 가장 청정한 마음을 깨달아 그 마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이란 자신의 마음 속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환원을 생각한다」는 것에 연결되어 있는 생각인 것입니다.
더우기 쿠카이의 저작을 읽어 보면 자심(自心) 속에 부처님이 있다고 하는 것에서 「자심불(自心佛)」이라는 말이 여러번 나오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의 본성인 부처님, 그러한 것을 자각하는 것이 곧 깨달음이라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의 마음은 달리 표현하면 십주심사상 가운데 제10 「비밀장엄심」이고 또한 「마음의 만다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다라는 부처님이 모여 있는 모습인데 그 만다라는 바로 마음의 만다라라는 것입니다. 비밀장엄심이란 마음의 만다라이며, 부처님이라는 것도 자기 마음 밖 또는 자기 몸 이외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절대타자라든가 절대인 초월자로 보는 것이 아니고 내재적인 불(佛)이 곧 나의 부처님이고 또한 「마음의 만다라」라고 하는 견해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쿠카이는 한결같이 마음의 문제를 깊이 파고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쿠카이 자신의 사색 속에 자리 잡고 있고, 그리고 그것을 많은 저작 속에 전개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6. 범성불이(凡聖不二)
요컨대 쿠카이의 인간관의 요제는 범성불이(凡聖不二;범부와 성인이 둘이 아님)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범」은 범부, 즉 미혹한 사람이라는 의미이고, 「성」은 깨달은 사람 부처님을 말합니다. 사람과 불(佛)이 둘이 아니며 따로따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사람과 부처와의 일여(一如)라고도 합니다. 그러한 인간관을 쿠카이는 확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언밀교의 인간관은 사람을 응시하면서 사람 속의 부처를 보는 것입니다. 인간관과 불타관이 서로 상즉하여 전혀 별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을 깊이 파고 들어가서 부처를 발견한다든가 또는 부처를 응시하면서 마음의 만다라라고 하는 곳까지 인간의 쪽으로 되돌아 온다고 하는 사고방식입니다. 그것이 쿠카이의 기본적인 입장입니다. 인간의 존엄성, 사람이라는 것을 존중한다는 것은 사람에게는 그러한 보리심이 있고 불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과니 확립된다는 것은 성불의 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이미 그 속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쿠카이의 즉신성불 사상의 근저에는 우선 쿠카이의 인간관이라고 하는 것이 가로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이 없고서는 갑자기 성불한다든가 즉신성불이라고 말하더라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쿠카이의 즉신성불 사상이 성립하게 된 근저에는 쿠카이의 인간관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7. 자심불사상(自心佛思想)
자심불의 사상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약간 언급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쿠카이의 두 세 가지 문장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자심을 알면 곧 불심을 알게 되고, 불심을 알면 곧 중생심을 알게 된다. 자심과 불심과 중생심의 세 가지 마음이 평등하다고 아는 것을 큰 깨달음(大覺)이라고 이름한다.」(성령집 권9)
「삼심평등(三心平等)」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 중생(사람들)의 마음, 부처님의 마음이 모두 평등하여 다름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을 아는 것을 「대각(大覺;부처님.깨달은 자)이라고 이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밀교상승의 제7대 조사 혜과아사리의 말이기도 하고, 화엄(華嚴)의 사상이기도 합니다. 불교사상의 흐름 속에 면면히 전해지고 있는 하나의 사고방식입니다.
부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완전히 부처님의 마음이 되어버린다는 것이고, 완전히 부처가 되어버린다는 것은 중생(사람들)의 마음도 역시 알게 되어 하나가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삼심평등이라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이 부처의 마음과 내 마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구별이 없고 평등하다는 것이고, 그렇게까지 알고 있는 것은 단지 부처님뿐이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삼심이 모두 다르다고 생각하고, 부처님도 아득히 먼 곳에 계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그것은 평등하다고 하는 것에까지 안다는 것은 용이하지 않지만, 부처님만은 그런 평등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생의 체성(體性)과 제불의 법계는 본래 한 맛(一味)이어서 모두 차별이 없다. 중생은 깨닫지 못하여 장야(長夜)의 고통을 받으며, 제불은 잘 깨달아 항상 안락하다. 그러므로 중생으로 하여금 속히 심불(心佛)을 깨닫게 하고 조속히 본원에 돌아가도록 하고자 이 진언의 법문을 설하여 미방(迷方)의 지남(指南)이 되게 하였다.」 (平成天皇灌頂文)
요컨대 중생(미혹한 사람들)의 체, 제불의 세계는 본래 일미(평등)이어서 차별이 없는 것이지만, 중생은 그런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무명의 장야에 고통을 받고, 제불은 그것을 잘 깨닫고 있기 때문에 항상 안락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미혹한 사람들에게 우리들 마음 속에 본래 부처님이 있다는 것(心佛.自心佛)을 깨달아 속히 마음의 근본으로 되돌아가게 하기 위해, 즉 깨달음의 경지에 빨리 돌아가게 하기 위해 이 진언의 법문(대일경 등의 가르침)을 설하여 길을 잃고 있는 자에게 깨달음의 방향을 기리켜 보인 것입니다.
여기서도 「심불(心佛)을 깨닫는다」든가 「본원에 돌아간다」라고 하는 표현은 결국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딴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의 근본에 돌아가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과 비슷한 내용으로 다음과 같은 문장도 보입니다.
「또한 광인(狂人)이 독이 해소되어 문득 귀택(歸宅)의 마음을 일으키고, 유객(遊客)이 일이 끝나서 홀연히 고향생각을 일으키는 것과 같이 보리심을 구하는 마음도 또한 이와같다. 이미 알지 못하고 광취(狂醉)하여 삼계의 감옥에 머물러 있고 깊이 잠들어 육도의 풀섶에 누워있다. 어찌하여 신통의 수레(神通乘;眞言乘)를 몰아 속히 본각장엄의 자리에 돌아가려 하지 않는가.」(삼매야계서)
「광인이 독이 해소되어 문득 귀택의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은 독으로 정신을 잃은 사람이 독을 제거해 버리면 갑자기 미혹에서 깬 마음으로 돌아온다(귀택의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유객이 일이 끝나서 홀연히 고향생각을 일으킨다」고 한 것은 여행을 하는 사람이 여행이 끝나서 문득 내집 또는 고향을 그리워하여 빨리 돌아갈려고 하는 것처럼, 보리심을 구하는 마음도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미혹하여 삼계(욕계.색계.무색계)의 미혹의 세계 속에 있고, 또한 미혹의 세계인 육도(지옥.아귀.축생.수라.인.천)를 풀섶으로 표현하여, 그런 미혹의 세계에 깊이 잠들어 있다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미혹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신통력으로, 다시 말하면 진언밀교의 가장 빠른 수레(神通乘)에 태워서 속히 본래 깨달은 삶(비밀장엄심)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즉 미혹해 있다면 곧바로 깨달음의 경지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본원에 돌아간다든가 귀택의 마음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련의 문장에 모두 공통하고 있는 것은 범성불이 또는 생불일여의 인간관을 근저로 하면서 성불의 가능성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쿠카이에 있어서 인간관은 불타관과 겹쳐져 있기 때문에 인간관을 추구하면 곧 불타관과 교차하고, 불타관을 탐구하면 인간관에 마주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상이야말로 불교사상의 가장 근본적인 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6 즉신성불에의 길
진실한 삶에의 길
종교적인 입장에서 밀교를 관찰할 때, 신앙의 대상(佛陀觀)과 신앙하는 사람(人間觀)과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世界觀)를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가 있기 때문에 그 세계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는 속에 사람이 어떠한 생활을 하고 어떠한 종교적 수행을 하고 무엇을 목표로 하고 살 것인가 하는 하나의 종교체계 또는 종교의 기본구조로서의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사람과 부처라는 관계에 있어서 사람이 어떻게 하여 즉신성불에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1. 귀의삼보
진언밀교이든 선종(조계종.조동종 등)이든 정토종이든 어떠한 종파라도 불교인 한 「귀의삼보」라고 하는 기본적인 귀의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귀의불 귀의법 귀의승의 세 가지 입니다.
석존이 가르침을 설하여 5비구가 최초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석존을 포함하여 전부 여섯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최초기의 불교교단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불교의 신자가 되는사람
은 반드시 부처님에게 귀의합니다(귀의불),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귀의법), 청정한 교단에 귀의합니다(귀의승) 라고 하는 말로 삼보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이미 인도에 이러한 전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데 불교가 발전하는 속에 신앙하는 사람은 언제나 삼보에 귀의한다고 하는 것이 정해지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남방불교에서는 팔리어(Pali語) 그대로 외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교의 집회에 반드시 삼귀의를 외우는 것이 전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홍법대사의 저작을 보면 형식은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지만 그 가운데 부처님에게 귀의할 때는 만다라에 귀의한다고 되어있습니다. 밀교이기 때문에 그 점이 약간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밀교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만다라이므로 태장계와 금강계의 만다라(즉 諸佛)에 귀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아미타여래.대일여래.약사여래 등을 본존으로 하여 귀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밀교에서는 그러한 일존에게 귀의하는 경우도 있고 만다라에 귀의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라도 부처님에게 귀의한다는 형태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삼보에 귀의하지 않으면 밀교의 신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밀교의 수행, 즉신성불에의 길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입니다.
2.발보리심
다음이 발보리심입니다. 보리심을 일으킨다는 것 그것이 뭐니뭐니해도 가장 최초의 문제이고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발보리심이 없으면 진정한 신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백정(白淨)의 신심을 일으켜 무상의 보리를 구한다」는 표현도 있는데, 즉 참으로 위없는(無上) 깨달음을 열기 위해 신심을 일으키는 것 그것이 발보리심입니다.
「발보리심」이라는 말도 밀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원래는 대승불교 보살도의 출발점이어서 보살이 수행하고 보살임을 자각하는 원점은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자리이타의 여러 가지 보살의 수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밀교의 경우도 역시 발보리심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더우기 그 보리심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은 앞절의 인간관에서 이미 살펴 본 그대로 입니다.
발보리심에느 내재적인 가능성(內緣)과 외적인 동기(外緣)가 있습니다. 내연 즉 안으로의 직접적인 연이라는 것은 보리심의 씨앗(종자), 다시 말하면 본래의 청정심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끌어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끌어 낼 때에 외연 즉 외적인 여러 가지 동기가 더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에 의해서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보리심의 「인과 연」이라는 것도 밀교 이전의 유가사지론 「보살지」에 설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발심의 문제는 밀교이전의 대승불교에서 충분히 연구되어 있고, 그것이 불교의 세계에 그대로 계승되어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3.보리심계를 지킴 삼매야계
보리심계(삼매야계)의 의미
다음에는 「보리심계를 지킨다」는 것인데, 여기에 오면 확실히 밀교적인 문제가 됩니다.
보리심에 계율의 「계」라고 하는 말을 덧붙여 「보리심계」라고 하고 그것은 보리심이 있다는 것을 언제나 잊지 않도록 마음에 경계하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밀교를 신앙하는 사람의 기본이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반드시 기켜야한다는 것입니다. 보리심계라고 하는 것은 보리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 그것이 「보리심계를 지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삼매야계」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삼매야는 본서.제장.경각이 뜻이 있는 범어 「사마야(samaya)」의 음사어로 평등계(平等戒)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부처님과 내가, 즉 우주의 이법과 우리들 인간의 이성이 본래는 일체평등함을 말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깊이 파고 들어가면서 부처님과 다름없는 나(我)이다 라고 하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보리심이 있다고 하는 것은 바꿔 말하면 부처님과 다름없는 나이다고 하는 자각입니다. 그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보리심계이고, 또한 그것이 보리심계를 언제나 단단히 지키고 있다는 것이 됩니다. 밀교에서는 그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보리심계를 갖추는 방법
보리심계는 이처럼 중요한 것이지만, 누구나 처음부터 몸에 배이도록 완전히 갖춰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처럼 좋은 것이라면 그것을 완전히 제것으로 갖추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나 실제에는 그렇게 되지 않아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⑴문신(聞信)
그중에서 한 가지 방법으로 문신(聞信)이라는 것이 있는데, 듣지 않으면 그것도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무엇보다도 듣는다고 하는 것이 입신(入信)의 첫문이 됩니다. 이것은 특히 밀교에서만이 아닙니다. 들어서 좋은 가르침이라면 그것은 좋은 가르침이다고 하는 것으로, 거기에 훌륭하고 좋은 가르침을 듣고 보리심을 일으켜 그것을 언제나 지켜 나갈려고 하는 노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대일경 등의 경전을 열심히 읽고 그것을 마음에 새겨둔다고 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문.사.수의 삼혜(三慧)」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있는 것이 문(聞) 즉 들어서 얻는 지혜입니다. 「문신」, 즉 훌륭하고 좋은 가르침을 듣고 그것을 깊이 생각하고 실천.수행하게 되면 반드시 들었던 그것을 실증(實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⑵ 수계(受戒)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고 좀더 직접적인 것이 있습니다. 즉 수계작법(受戒作法)에 의해서 보리심계를 받는 것이 더 좋은 방법입니다. 홍법대사는 입당구법할 때에 혜과아사리로부터 먼저 보리심계를 받고 그 다음에 전법관정(傳法灌頂)을 받았습니다. 진언종의 승려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보리심계(삼매야계)를 받고 그리고 나서 관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자서득계(自誓得戒)라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마음 속으로 맹세하고 스스로 회득하여 자신에게도 절대인 보리심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고 부처님께 맹세하면 그것으로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왠만큼 의지가 강하지 않으면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보리심계를 지키는 의미
보리심계를 지키는 것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첫째로 우리들 마음의 본성을 탐구하여 거기에 보리심 또는 자심불(自心佛)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나아가서는 인간성의 존중이라는 것이 거기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좀더 달리 표현한다면 보리심계를 지킨다고 하는 것은 사상적으로는 범성불이(범성불이), 즉 부처와 내가 별체(別體)가 아니다고 하는 인간관을 언제나 확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천적으로는 매일의 생활 속에 십선계(十善戒)를 지킨다든가 여러 가지 선행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 또는 성불을 위한 수행에 힘쓴다고 하는 것의 기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리심계를 지키는 의미는 밀교의 신앙생활과 가르침의 실천적인 입장에서도 매우 크고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보리심의 내용
다음에 보리심의 내용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쿠카이의 삼매야계서를 보면, 보리심을 네 가지 마음(四種心)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⑴신심(信心)
첫째가 신심입니다. 신심이라는 것은 견고하게 믿어서 물러서지 않는 마음인데, 구체적으로는 청정.견고.수순.찬탄.자애가 충만한 마음을 말합니다.(十信을 말함)
⑵승의심(勝義心)
보리심은 직접적으로 신심에 해당되지만 승의심의 의미도 갖습니다. 또한 심반야심(深般若心)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반야의 마음입니다. 승의(paramartha)는 제일의(第一義).진실(眞實)이라고 번역하며, 최승진실의 도리 또는 훌륭한 지혜의 마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깊은 반야의 마음.지혜의 마음은 바로 진실한 가르침을 찾아내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보리심은 단지 신앙하고 정신적으로 고맙게 여기는 마음뿐만 아니라 보리(菩提)를 구함에 있어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제거해 없애고 참으로 진실한 것을 골라내는 반야지혜의 활동도 있다는 것입니다.
⑶행원심(行願心)
세번째는 행원심입니다. 이것은 대비심이라고도 합니다. 대비.행원이라고 하는데, 서원을 일으켜 대비의 마음으로 이타의 행을 하는 것도 보리심의 한 측면입니다. 이타행을 하는 근저에 있는 마음은 행원심이라는 것입니다.
⑷대보리심(大菩提心)
마지막 네 번째는 대보리심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보리심 그 자체를 두 가지로 나눈 것입니다.
능구(能求)의 보리심(보리를 구하는 마음)과 소구(所求)의 보리심(구해지는 보리심)입니다. 소구(所求)라는 것은 깨달음(菩提) 그 자체라는 의미이고, 능구(能求)라고 하는 것은 깨달음을 구하려고 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구하는 마음과 구해지는 깨달음 그 자체, 이 두 가지의 의미가 보리심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는 삼마지행(三摩地行)입니다. 삼마지란 범어로 사마디(samadhi)라고 하는 것인데 선정에 들어서 정신통일이 되는, 그리고 부처와 내가 일체로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행을 하는 것에 의해서 능구의 보리심이 소구의 보리심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보리심은 특히 밀교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보리심론에 있는 내용을 근거로 하면서 좀더 발전적인 해석을 덧붙혀 쿠카이는 네 가지의 마음 사종심을 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정보리심(淨菩提心)을 관하는 방법
월륜관(月輪觀)
보리심이 존재하는 것을 자각하는 방법은 정보리심관인데, 구체적인 방법으로 월륜관과 아자관이 있습니다. 월륜관은 우리 정보리심은 청정결백한 것이 마치 보름달과 같다고 관하는 관법입니다. 여기에는 일정한 작법이 있습니다. 먼저 월륜본존도(月輪本尊圖)를 걸어두게 되는데, 월륜이란 보리심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조용한 방에 정좌(가부좌)하여 자세를 바로하고 호흡을 고르게 하면서 눈을 반쯤 뜨고(半眼) 정신통일을 하여 마음을 청정히하고 월륜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깊이 삼매의 경지에 들어가면 청정결백한 월륜이 그대로 나의 보리심임을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월륜을 매개로 하여 내마음 가운데 정보리심이 존재함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 월 륜 본 존 도 >>>>> 그림
진언종의 중흥조인 흥교대사 가꾸반(각종)은 자주 월륜관과 아자관의 수행을 한 내관(內觀)의 성자로 추앙되고 있는데, 이 흥교대사는 근래산(根來山)에 은퇴하고 부터는 작은 연못의 물에 비치고 있는 중추(中秋)의 명월을 보고 그 대자연 그대로의 모습에서 단좌하여 월륜관을 닦았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대자연 속에 자신이 융합되어 청정한 달을 바라보면서 자기 마음의 청정함을 자각하는 것은 실로 한 폭의 동양화처럼 훌륭하고 멋있는 일일 것입니다.
아자관(阿字觀)
아자관이라는 것은 범자(梵字)의 阿라고 하는 글자를 관하면서 우리들의 마음에 본래 정보리심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관법입니다. 아(A)라고 하는 글자는 범어 알파벳의 최초에 있고 또한 범어의 알파벳은 모든 소리에 아(阿:A)의 음가(音價)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철학적으로 아자(阿字)를 「근원(根源)」이라든가 「제일원리(第一原理)」 등으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자(阿字)가 맨 처음에 나오는 단어 가운데 「아누투파다(anuttupada)」라고 하는 말을 번역하
여 불생(不生)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철학적으로 「아자본불생(阿字本不生)」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근원적인 의미를 확대하여 아자(阿字)는 대일여래와 보리심을 상징(종자)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자(阿字)에는 본불생의 이치(理)와 대일여래, 그리고 보리심이라는 세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특히 아자를 보리심의 상징으로 보고 아자관(阿字觀)을 닦는 것입니다.
아자관을 닦을 때는 먼저 아자본존도를 내겁니다. 그 본존도의 중심에는 아자(阿字)가 있고 그 아래에 연꽃이 있습니다. 연꽃은 아자(阿字)의 연대(蓮臺)로 되어 있으나 원래 연꽃은 진흙에서 생장하고 있고 더우기 진흙에 물들지 않는 청정무구한 꽃을 피우기 때문에 연꽃도 보리심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쿠카이의 말에 「연꽃을 관하고 백정(白淨)을 안다」고 한 것이
<<<< 아 자 본 존 도 >>>>
있는데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아자(阿字)와 연꽃이 월륜 가운데 그려져 있는 것입니다. 이 월륜은 앞의 월륜관에서 관하던 보리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자본존도는 아자(阿字). 연꽃. 월륜의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고 어느 것이나 모두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진언종의 기본적인 사상과 가르침이 이 본존도에 모두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자관(阿字觀)은 아자본존도를 본존으로 하고 월륜관과 마찬가지로 정좌하여 호흡을 고르게 하고 정신통일하여 아자(阿字)로 상징되는 정보리심이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여 진실한 자기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 범성불이의 인간관을 확립한다고 하는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쿠카이의 말에 「남녀가 만약 일자(一字)를 지니려면 아침마다 한결같이 자심(自心)의 궁전을 관하라.」(성령집 권1)고 한 것이 있습니다. 일자라고 한 것은 아자(阿字)를 말하고, 아자관을 닦아서 자기 마음의 본래 모습, 자심불(自心佛;자기 마음의 부처)을 관하라고 한 것입니다.
아자관은 밀교선(密敎禪), 또는 일자선(一字禪)이라고도 합니다. 고야산에는 아자관도량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자관은 누구든지 가정생활 속에서도 아침 한 때에 닦는 것이 바람직한 것입니다.
6. 사중금계(四重禁戒)
다음에 보리심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중심으로 하면서 지켜야할 것을 네 가지 조항으로 설하고 있는데, 그것을 「사중금계」라고 합니다. 이것은 대일경에도 금강정경에도 설해져 있어서 자못 밀교의 독특한 계(戒)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우기 대승불교의 좋은 점을 잘 모은 계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⑴대승의 제법(대승의 가르침)을 비방해서는 안된다.
첫째는 대승의 가르침을 비방(謗法)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대승의 가르침을 비방한다는 것은 법을 비방하는 죄(謗法罪)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법화경에도 이러한 방법죄(謗法罪)를 설하고 있습니다. 불자가 대승의 가르침을 비방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신자가 자신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을 좋지 않은 것, 소용없는 것이라고 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 가르침에서 제외되고 벗어나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밀교보다도 오히려 대승불교적인 분위기가 강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⑵ 보리심을 버려서는 안된다.
두번째는 보리심을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 성불의 인(因)을 방해하고 성불의 인을 잃기 때문이라는 이유입니다. 이 두번째 것이 이른바 보리심계에 해당됩니다. 보리심을 버려서는 안된다, 언제나 보리심을 지키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리심을 버려버리면 성불의 직접적인 씨앗(因)을 잃어 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⑶교법을 아껴서는 안된다.
세번째는 교법을 아까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간인( )이란 아낀다는 것으로 좋은 가르침을 아까워하여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갖으려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하게 되면 정법이 널리 보급되지 않기 때문에 교법을 아껴서는 안된다고 한 것입니다.
⑷사람들을 괴롭게 해서는 안된다.
마지막 네번째는 사람들을 뇌해(惱害)하지 말라, 즉 괴롭히거나 해롭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그것은 이타의 보살행에 위배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타행)이 보살행입니다. 사람을 위해 진력하는 것이 보살이 본래 해야 할 태도인데도 오히려 사람을 뇌롭게 하거나 사람을 해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밀교의 사중금계라고 하는 것인데 밀교계의 특색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계율에는 실로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많은 소승불교의 계(사미.사미니계,비구.비구니계 등), 그리고 대승계(보살계)라는 것도 있습니다. 거기에 근거하여 생겨난 것이 밀교의 사중금계(四重禁戒)입니다. 이것을 계상(戒相)이라고 하는데 상(相)이란 모습.형태라는 의미로 구체적인 계의 조항을 말합니다. 밀교의 계로서는 네 가지 조항이고, 그 네 가지 조항 가운데 두번째 보리심을 떠나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이 그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중금계를 대일경에서는 확대하여 십중계(十重戒)로 하여 수계작법을 할 때는 이것을 주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번거로우므로 생략하기로 합니다.
7. 십선계(十善戒)를 지킨다.
보리심계가 좀더 구체적으로 나타난 형태가 십선계입니다. 십선계는 「신(身)3, 구(口)4, 의(意)3」으로 이루어져 있는 계입니다.
이것은 신체상(身業)으로 산 것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 것(不殺生),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 것(不偸盜), 부부 이외의 남녀의 음란한 관계를 하지 않는 것(不邪淫)입니다.
입(口業;언어)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不妄語),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 것(不綺語), 욕설을 하지 않는 것(不惡口), 두 가지 말을 하지 않는 것(不兩舌)입니다.
마음(意業)으로는 탐내고 아끼는 것을 하지 않는 것(不간貪), 화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不嗔에),잘못된 생각 또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不邪見)입니다. 이 세 가지가 대표적인 마음의 미혹입니다. 이것을 더 자세히 관찰하여 6번뇌라든가 20수번뇌(隨煩惱), 그리고 108번뇌 등 여러 가지 번뇌의 수를 세기도 하지만, 요컨대 마음에 잘못됨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십선계(십선업)로 사람의 모든 행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열 가지라고 하지만 열 가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몸과 입(언어)과 마음의 모든 행위를 올바로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쉬운 것 같지만 매우 엄하고 어려운 것입니다.
이 십선계는 원시불교(근본불교) 이래 설해지고 있고 대승불교의 화엄경 「십지품」에도 설해져 있는 대승불교의 기본적인 계(戒)로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밀교의 대일경에서도 이 십선계를 중시하여 자세하게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현교와 밀교를 통하여 가장 중요시되고 있는 것이 이 십선계입니다. 그리고 2 - 3세기 무렵의 대승의 유명한 용수보살은 대지도론에서 「십선계란 모든 계의 총상계(總相戒)이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즉 십선계는 소승의 비구 250계와 비구니 348계 등 많은 조항들이 있지만, 그들 계율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십선계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홍법대사 쿠카이도 십선계를 매우 중요시하여 홍인유계(弘仁遺戒)에서 「발심하여 먼 길을 갈 때 발이 없으면 갈 수가 없다」고 하고 있는데, 즉 먼 길을 감에 그 첫걸음부터 걸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도를 향하여 나아감에 계에 의지하지 않으면 어찌 도달할 수 있으랴.」고 하였습니다. 불도에 들어가 성불에의 길을 더듬어가려면 계율을 지키지 않고서야 어떻게 불도를 수행하여 깨달음의 도에 도달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계를 중시하는 사상이 매우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계율이야말로 불도로나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말하고, 「반드시 모름지기 현밀(顯密)의 오계를 견고히 수지하고 청정히하여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현교와 밀교의 계를 모두 버리지 않고 수용하고 있는 쿠카이의 계율사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와 같이 모든 계는 십선을 근본으로 한다」고 하여 현교와 밀교의 계가 있어도 그것은 십선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십선이란 신삼.구사.의삼을 말한다. 끝을 거두어 근본에 돌아간다고 하면 일심을 근본으로 한다.」고 하여 십선계도 그 근본은 일심(一心;한마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일심의 성품은 부처님과 다른 것이 아니다」고 하여 그것은 부처님 그 자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과 중생의 마음(衆生心)과 부처님의 마음(佛心)의 셋은 차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마음에 머물면 곧 이것이 불도를 닦는 것이다.」고 하여 이 내 마음(我心), 중생의 마음, 부처님의 마음의 세 가지 마음이 평등하다는 생각에 철저해지면 불도를 참으로 닦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십선계는 대일경에서도 중요시하고 있지만, 홍법대사도 여러 가지 계는 십선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고 말하고, 십선의 근저에 있는 것은 바로 일심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요컨대 일심은 청정심이라는 의미이고, 청정심은 불심(佛心) 즉 부처님 그 자체와 다름아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8. 보리심계와 종래의 계와의 관계
마지막으로 보리심계를 지킨다고 하는 것과 종래의 여러 가지 계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계에는 소승의 계와 대승의 계가 있습니다. 대승계에는 보통 「범망계(梵網戒)」라 하여 「10중대계(重大戒)」, 「48경계(輕戒)」라는 것이 있고, 소승계에는 비구계. 비구니계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계는 모두 계상(戒相)이라는 것을 하나하나 세고 있기 때문에 매우 번거롭고 복잡한 것이지만 어쨌던 수행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밀교의 보리심계는 이러한 제계(諸戒)의 성립의 근원이 되는 그것을 「계」로 한 것이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리심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계도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보리심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고 단지 계만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그 계마저도 지키지 않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즉 마음가짐이 우선되고 중요한 것이며 지계정신에 기본이 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계율이라는 문제가 여러 가지로 제정되고 실천되고 논의된다 하더라도 최후에 보리심계라고 하는 것을 마음에 자리잡지 않는 한 개개의 조항을 이것저것 지킨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현상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갖가지 현상의 근저에 있는 것 그것이 보리심을 자각한다고 하는 것에 있으므로 그 보리심을 차라리 계로써 취급하는 것이 「밀교의 계」인 것입니다.
이것을 십선계와 보리심계와의 관계에서 생각해 보면, 예컨대 부채의 펴진 끝 부분이 십선계이고, 그 부채의 사북(중심축)의 부분이 보리심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채는 사북이 있어야만 펼 수가 있는 것처럼 보리심계를 지키는 것에서 비로소 십선계를 지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리심계를 생각하면 그것은 현대인에게 가장 적합한, 현대에 살아 있는 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라도 보리심이 있고, 그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인간성의 기본이며, 이것을 잊지않는다는 것은 정말 훌륭한 일입니다. 최근에 마음의 문제를 여러 가지로 논의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바로 여기에 제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9. 사은(四恩) 지은. 보은
즉신성불의 길에서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네 가지 은혜(四恩)의 가르침입니다. 은혜를 알고(知恩) 은혜를 갚는다(報恩)고 하는 은혜의 사상입니다. 이 사은을 쿠카이는 매우 강조하고 있고 많은 그의 저작 속에 자주 설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은혜의 사상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혼자서 살아 갈 수는 없습니다. 부모.형제.가족이나 친척.이웃 또는 선생님.직장의 상사.친구.선배.후배 등 널리 사회의 여러 사람들 속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천지자연의 은혜, 즉 사회환경과 자연환경에 의해 비로소 자신이 살려지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은혜의 사상입니다. 그것을 지은.보은이라고 하고 이러한 은혜의 사상은 불교사상의 흐름에서 찾아보면 이미 원시불교경전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대승불교에도 「지은.보은은 보살행이다.」고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후기대승불교경전에 속하는 대승본생심지관경에서는 이 은혜를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고 쿠카이는 그 심지관경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네 가지 은혜의 첫째는 부모의 은혜입니다. 이것은 여기서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두번째가 중생(사람들)의 은혜입니다. 이 중생 속에 부모 이외의 모든 사람들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승의 은혜라든가 온갖 사람들의 은혜를 모두 여기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가 국왕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 시대는 국왕이라고 생각한 것인데, 현대에는 국가.나라의 은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해외여행을 하게 되면 여권(패스포트)에 전적으로 의지하게되므로 나라의 은혜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내 나라의 정부가 신분, 생명, 재산을 보증한다는 것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안심하고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삼보(三寶;불.법.승)의 은혜입니다. 이것은 불.법.승 삼보를 말하는데 불교의 가르침에 인도되어 우리들은 올바른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하는 불교의 신앙을 기본으로 하여 그것을 고맙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네 가지 은혜 속에는 우리들이 마음에 짐작이 가는 모든 은혜를 여기에 망라하고 있는 셈입니다. 홍법대사도 그의 저작 속에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부모의 은혜를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스승의 은혜도 많이 강조하고 있는데, 특히 중국에서 직접 입은 스승 혜과아사리에 대한 은혜는 일평생 잊을 수 없는 것이라고 진솔한 문장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많은 저작 속에 이렇듯 은혜를 강조하고 있는 점은 그 시대 사회의 사람들을 향하여,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다고 하는 것을 잊어서는 인간의 사회생활이 목적한 대로 잘 되어 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웅변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은혜란 사람과 사람의 관계입니다. 그 관계를 불교에서는 「연(緣)」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좋은 연으로 맺는다는 것은 특히 결혼할 때의 좋은 인연(良緣)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생활에서 또는 가까운 이웃이나 마을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모두 잘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바로 좋은 연인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이라는 것은 매우 깊고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은.보은,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일체중생)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있는 것의 배경에는 불교사상으로서는 연(緣)의 사상이 근저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연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게 될 때에 비로소 감사의 마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그 은혜를 보답하려고 하는데 그 은인이 이미 죽어 이 세상에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추선공양(追善供養)을 하여 은혜를 갚는다는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불교적인 보은의 사상에는 직접적으로 은혜에 보답하는 것과 돌아 가신 분에게 추선공양을 한다고 하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10. 사섭(四攝)의 이타행
다음은 사회윤리로서의 사섭법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거두어 들인다(攝)고 하는 것은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 인간관계를 잘 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결국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한 네 가지 방법이라는 것이므로 사회윤리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더 부연한다면 대승보살의 이타행이고 사람들을 위해 진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도 여러 가지 사회윤리 가운데 특히 사섭법을 강조한 것인데, 은혜의 사상과 같이 이 사섭법도 밀교에서만이 아니고 원시불교(根本佛敎)이래 대승불교에 있어서도 크게 강조되고 있는 덕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밀교시대에 있어서도 사회생활의 기본윤리로서 받아들여졌고, 삼매야계를 받을 때에는 반드시 실천해야 할 덕목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네 가지 덕목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시(布施)
그 첫째가 보시, 베풀어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에는 재시(財施)와 법시(法施)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재시란 물질적인 어떤 물건 또는 돈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법시란 가르침이라든가 지도(指導).훈계 등 정신적으로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시는 실제로 물심양면으로 나누어 준다고 하는 정신을 가지고 실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대승불교 속에서도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육바라밀은 보살행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여섯 가지 덕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제일 먼저 강조되고 있는 것이 보시입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서로간의 물심양면의 보시행을 제하고 나면, 가족관계든 사회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든 아무것도 남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딘가에 여행을 하고 선물을 사오는 것도 기뻐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사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역시 보시행의 하나일 것입니다. 참으로 곤란을 격고 난처한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정신적으로 어떤 뒷받침이 되어 주는 것도 보시행입니다. 그만큼 보시행은 폭이 넓은 것입니다. 아무튼 인간은 물질과 정신의 양면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상, 그 생활 속에서 서로에게 잘 해 준다고 하는 것이 기본인 것입니다.
애어(愛語)
두번째의 애어는 부드럽고 온화한 말입니다. 언제나 사랑스럽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말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량수경에 「화안애어(和眼愛語)」라고 하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이 「애어」란 결코 나쁜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꿔말하면 입(언어)의 네 가지 불선업(不善業)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선계 가운데 불망어. 불기어. 불악구. 불양설을 말합니다. 결국 애어라는 것은 네 가지 「입(口業)의 선계(善戒)」를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행(利行)
세번째의 이행이라는 것은 「이타행」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나서서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폭이 매우 넓은 것입니다. 흔히 「대승보살의 이타행」이라고 말하는데,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대승계를 「삼취정계(三聚淨戒)」라고 하는데, 그 가운데 섭선법계(攝善法戒)와 요익유정계(饒益有情戒)의 두 가지가 「이행」에 해당됩니다. 좋은 일은 무엇이든지 한다는 것입니다. 요익이라는 것은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고, 유정이라는 것은 사람들을 의미하므로 사람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한다는 것이 대승의 계율정신이라는 것입니다. 미륵보살이 지은 유가사지론에는 30가지 정도의 이타행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인도사회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도사회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생활에 곤란한 사람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병든 사람을 어떻게 간호할 것인가,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하는가 하는 것 등을 가르친 것인데, 이러한 내용을 살펴보면 4세기에서 5세기 무렵의 인도 사회의 상황이 선명하게 떠올려집니다. 그러한 일들도 모두 「이행」이라는 범주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현대적으로는 우리들이 대인관계에 있어서 언제든지 남들에게 무엇이든지 도와 줄려고 하는 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바로 불교의 정신인 것입니다.
동사(同事)
마지막 네번째 동사란, 상대방의 사람과 같은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그 사람을 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대립이나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대체로 상대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고 분별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서도 자식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단절이 있게마련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인간관계 속에서 상대방이 어떠한 입장에 있고, 무엇을 고민하고 있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까지 알아차려서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슨 일이든 잘 되어갈 것입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단지 자신만의 입장에서 상대를 큰소리로 호통친다든지 자기주장만 늘어놓거나 거친말로 일방적으로 공격하기만 한다면 거기에는 다툼이 끊일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동사」 즉 모든 일을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섭법은 오래된 인도의 불교사상이지만 역시 현대에도 적합한 네 가지 사회윤리로서의 덕목이라고 봅니다. 불교사상 속에도 훌륭하고 좋은 가르침과 사상은 비록 오래된 것이라 하더라도 이와 같이 언제나 신선하고 새로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초기 불교사상 속에 이 사섭법 사상이 성립하여 대승불교의 보살행에도 중요한 부분으로 계승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밀교시대에서도 사섭법을 실천한다는 것은 불교정신의 발로라고도 할 수 있고, 불교정신의 구체적인 실천은 거기에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적인 의미에서도 불교사상은 낡고 케케묵은 것이 아니라인간의 사회생활의 양식을 아주 선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즉신성불에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일상생활에 있어서 삼보에 귀의하고 보리심을 일으켜 보리심계를 지키고 십선계와 사중금계를 준수하는 일, 그리고 대인관계의 네 가지 은혜와 사섭법 등의 실천이 바로 즉신성불에의 길임을 밝혔습니다. 거기에 이어서 다음에 즉신성불에의 가장 직접적으로 중요한 수행에 대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삼밀가지(三密加持)」입니다. 그러나 이 수행의 방법은 다음장의 즉신성불사상에서 상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제7 즉신성불사상 원리와 실천
1. 즉신성불사상의 원류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임과 동시에 「부처가 되는 가르침(成佛敎)」이라고도 합니다. 특히 대승불교에 있어서는 이 성불의 사상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불의 사상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고, 여러 경론(經論)에서도 제각기 강조하는 것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즉히 심성본정(心性本淨)이라든가 불성. 여래장. 보리심. 본각(本覺) 등을 설하는 중기대승불교에서 후기대승불교에서는 성불의 가능성에 대한 사상이 현저하게 발전하였고, 그후 그들 사상은 밀교경전 속에 계승되어 새로운 밀교의 행법을 통하여 현신(現身) 즉 부모에게 받은 이 몸으로 속질성불(速疾成佛)하는 가능성이 강조되게 된 것입니다. 그 중요한 경론은 대일경 금강정경 보리심론 등입니다. 그들의 경론을 소의로 하여 성립한 중국밀교에서는 밀교의 특색을 즉신성불과 양재초복(攘災招福)이라고 했으나 즉신성불을 조직적으로 고찰하기 까지에는 이르지 못했던 것입니다.
구카이는 입당구법하여 혜과아사리를 사사하고 즉신성불이 밀교사상의 특색인 것을 배우고는 귀국 후 바로 쓴 쇼라이목록, 고우닌 6년의 편지, 변현밀이
교론 등에서 자주 즉신성불을 말하고 있는데, 그 사상의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2. 즉신성불의의 성립
그러나 구카이는 드디어 즉신성불의 1권을 저작하여 비로소 즉신성불의 이론과 실천의 체계를 확립한 것입니다. 이 즉신성불의는 첫머리에 많은 경론에는 삼겁성불(三劫成佛;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을 수행하고나서 성불함)을 설하지만, 밀교의 경론에는 즉신성불을 설하고 있다고 하여, 2경(經) 1론(論) 8개(個)의 증문(證文=대일경 2文, 금강정경 4文, 보리심론2文)을 들어보이고 이어서
「①우주의 여섯 가지 힘(六大)은 서로 섞이어 걸림이 없고(無碍) 더구나 언제나 통일(瑜伽)되어 있다.(體)
②우주와 자기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면, 그 네 가지 방법(四種曼茶羅)의 어느 쪽이든 상호간에 깊이 연휴되고 있다.(相)
③인간의 동작의 어느 것을 가지고서도(삼밀), 그것을 일심으로 부처님의 동작과 통하게 한다면 성불(成佛)이라고 하는 효과는 이내 나타나게 된다.(用)
④이것(六大.四曼.三密)이 그물의 눈처럼 서로 얼키설키 섞이어 있는 것은 마치 제석천(인드라)의 보배그물과 같다고 하는 것을 이몸 그대로의 성불(卽身)이라고 비유한 것이다.(無碍)
⑤사람은 모두 있는 그대로 부처님의 지혜를 몸에 갖추고
⑥마음의 활동(心數). 심자체(心自體;心王) 어느 것이나 티끌 수 보다도 많다.
⑦마음의 활동의 결과인 오지(五智)는 제각기 무한의 활동(無際智)을 가지고 있다.
⑧이러한 오지(五智)는 어느 것이나 그 근원의 지혜인 대원경지(大圓鏡智)의 힘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진실을 깨달은 지혜(實覺智)라고 말한다.(成佛)
六大無碍常瑜伽 (體) 四種曼茶各不離 (相)
三密加持速疾顯 (用) 重重帝網名卽身 (無碍)
法然具足薩般若 (佛寶) 心數心王過刹塵 (法寶)
各求五智無際智 (僧寶) 圓鏡力故實覺智 (三寶一體)」
라고 하는 2송(頌) 8구(句)를 들고 그것을 해설한 것입니다. 이 송은 당의 혜과아사리가 설한 것이라고 하는 설(이본즉신성불의)도 있으나, 구카이의 독창적인 식견에 의해서 조직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3. 육대무애(六大無碍)
육대
먼저 제1송의 처음에 「육대가 무애하여 항상 유가이다」고 설했는데, 육대란 지.수.화.풍.공의 오대(五大)와 식(識)을 합한 것입니다. 이것은 원시불교이래 설해지고 있는 만유의 원소로서 지.수.화.풍.공.식의 육계설(六界說)과 말은 같지만 다른 사상입니다. 육대사상의 성립과정을 살펴보면 대일경 「주심품」에 일체지지(一切知智)의 깨달음에 대해서 땅(地)과 같고, 물(水)과 같고, 내지 불(火).바람(風).허공(空)과 같다고 설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지.수.화.풍.공의 오대가 절대인 깨달음의 경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인도밀교경전 속에 이 5대사상은 5자(字), 5색(色), 5륜(輪), 5불(佛), 5지(智) 등에 배치하는 사상으로 발전시키고 있어서 5대사상 그것은 이미 인도밀교에 있어서 중요한 사상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5대에 식대(識大)를 더한 6대사상(六大思想)은 인도밀교경전 속에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고, 구카이에 이르러 비로소 「6대사상」이 구성된 것입니다.
육대체대(六大體大).육대능생(六大能生)
이 육대는 법성(法性). 공성(空性)과 다른 것이 아니고, 법성이나 공성의 보편성과 절대성을 강조하기 위해 체.상.용의 삼대 사상을 도입하여 6대체대, 6대주변법계, 6대법계체성이라고도 하고, 또는 그것이 모두의 존재 근거라는 점에서 육대능생(六大能生)이라고 하고, 여기에서 사종법신(자성법신.수용법신.변화법신.등류법신)과 사종만다라(대만다라.삼매야만다라.법만다라.갈마만다라)와 삼종세간(기세간.중생세간.지정각세간), 그리고 십계(十界;四聖,六凡) 등을 소생(所生). 소조(所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능생과 소생의 관계는 단지 무엇이 생기고 생기게한다는 인과관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근원적인 것과 현상적인 것과의 논리적인 관계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므로 본래적으로는 능소의 대립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구카이는 「능소이생이라 하더라도 모두 능소가 없다. 법이(法爾)의 도리에 조작이 있으랴. 능.소의 이름은 모두 밀호(密號)인데, 상도천략의 뜻을 집착하여 여러 가지 희론을 해서는 않된다.」고 주의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소생이 능생에 대한 소생이 아니고, 능소불이인 소생이라는 것이 생각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체대(體大)를 떠나서 상대(相大)로서의 소생이 아니고 체대의 나타남으로서의 소생의 법이고, 불생(不生)의 생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육대무애
다음에 「육대가 무애하여 항상 유가이다」고 한 것에는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6대는 5대와 식대이므로 그것은 심즉색 색즉심, 또는 지즉경 경즉지, 또는 지즉리 리즉지의 구조를 가지기 때문에 육대가 상호 무장무애하여 상응(유가)하고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두번째 육대법계체성으로 이루어진(所成) 몸인 사종법신.삼종세간.십계의 일체제법은 각각 자체가 육대소생이어서 내 몸도 다른 몸도 모두 불신(佛身)과 섭입하고 상응하여 걸림없다(無碍)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범성불이. 중생즉불의 원리가 성립한다고 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육대무애라고 하는 사상은 이와 같은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즉신성불에 대한 가능성의 원리가 여기에서 명확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대연기
더구나 육대법계체성이라고 하는 사상은 불타관과 인간관, 세계관의 상대적인 입장을 넘어 그들을 성립시키고 있는 절대성을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고, 여기에 사상사상(思想史上)에 커다란 철학적인 과제를 제기하게 됩니다. 그 절대성의 추구를 우주생명의 철학이라고 이름 붙인 학자도 있는데, 이쨌던 우주의 근원적인 것에 눈을 돌린다고 하는 것은 6대사상의 커다란 하나의 특질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진언교학에서는 육대법계체성이 일체법 성립의 근거라고 생각하는 점에 연기사상(緣起思想)을 도입하여 6대연기사상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불교의 연기사상 가운데 주목해야할 하나의 사상입니다.
4. 사만각불리(四曼各不離)
사종만다라
다음에 「사종만다라가 각각 떠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사종만다라란 대만다라, 삼매야만다라, 법만다라, 갈마만다라의 네 가지 만다라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사종만다라사상은 이미 금강정경에 설해져 있는 것으로 앞에서 고찰한 바 있으나 다시 한 번 간략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대만다라란 불.보살 등의 상호구족한 몸과 그것을 채화한 것을 말합니다. 삼매야만다라는 불.보살 등의 본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소지하고 있는 도검.윤보.금강저.연화 등과 그것을 그린 것 및 인계(印契) 등이고, 법만다라는 제존의 종자.진언과 그것을 그린 것입니다. 갈마만다라는 제존의 활동상태, 또는 금.석.목.토 등의 조상을 말하는데, 전자는 대.삼매야.법의 세 만다라에 통한다는 의미에서 「통삼갈마(通三갈摩)」라 하고 후자를 「별체갈마(別體갈摩)」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종만다라의 관념은 대만다라의 제불보살을 기본으로 하고 그것을 소지물.인계 등의 표치로 나타내거나(삼매야만다라), 또는 종자.진언으로 나타내거나(법만다라), 또는 입체적인 조각으로 표현하기도 한 것(갈마만다라)이므로 그것은 표현형식의 네 종류인 것입니다.
만다라적인 세계관
그렇지만 이러한 사종만다라의 사상도 확대해석하면 대만라는 불보살 등 뿐만아니라 널리 십계의 유정들 모두에 적용시켜 생각할 수 있고, 삼매야만다라는 산천.초목.국토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법만다라는 일체경전의 대의와 모든 언어.문자를 가리키는 것이고, 갈마만다라는 십계 유정의 행주좌와의 모든 동작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주만유의 모든 것은 사종만다라의 어쪽인가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고 모든 것에 만다라적인 사고를 적용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밀교의 만다라적인 세계관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사만각불리
그런데 이러한 사종만다라는 구체적으로 네 가지이지만 그것은 또한 동일한 것의 네 가지 표현형식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사종만다라의 관계를 「각각 떠나지 않는다」고 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종만다라의 불리.상즉.무애라고 하는 것의 의미에는 첫째, 사종만다라의 각각이 불리이라고 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는 본래적인 것과 상징적인 표현형태와의 불리라는 의미이고, 좀더 널리 말하면 인법불리(人法不離)의 일체관(二類不離)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둘째 부처의 사종만다라와 범부의 사종만다라가 불리이다고 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점에서 중생즉불, 범성불이의 일체관(同類不離)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에서 즉신성불의 가능성의 원리가 명확하게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 삼밀가지
삼밀
다음에 「삼밀로 가지하면 속히 드러난다」고 하였는데, 삼밀이란 신밀.구밀.의밀을 말합니다. 그것은 법신의 신.구.의의 활동은 심심미묘하여 등각(等覺)이나 십지의 보살조차도 보거나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세 가지 비밀한 활동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시불교 이래, 일반적으로 인간(범부)의 의식 및 행위경험은 신.구.의의 삼업이라 하고, 때로는 십선업과 십악업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밀교에서는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 본성에서 말하면 부처님의 삼업과 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실천의 장에 있어서 법신불의 삼밀과 가지감응하면 범부의 삼업이 정화되어 범부의 삼업이 그대로 삼밀이 되어서 즉신성불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을 삼밀가지의 묘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삼밀가지성불
이 삼밀가지의 묘행은 인도밀교의 여러 가지 수행의 체계 속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많은 밀교경전 속에 자주 설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카이는 그들 경전에 설해져 있는 삼밀의 수행에 주목하여 삼밀가지의 수행방법을 제시하고 「만약 진언행인이 이 뜻을 관찰하여 손으로 인을 맺고, 입으로 진언을 외우고, 마음이 삼마지에 머물면 삼밀상응하여 가지하기 때문에 속히 대실지(성취.성불)를 얻는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의하면 삼밀의 묘행은 구체적으로는 손으로 부처님의 본서를 표하는 인계를 맺고, 입으로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인 진언을 외우고, 마음을 고요하고 맑게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가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수행을 계속해 나아가면 부처님의 신.구.의 삼밀의 활동과 수행자의 신.구.의의 삼업이 가지감응하여 수행자의 삼업이 정화되고 더우기 삼밀에 까지 맑아지고 고양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지」라는 것이 부처님과 수행자와의 어떤 관계를 말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구카이는 「가지란 여래의 대비와 중생의 신심을 나타낸다. 불일(佛日)의 그림자가 중생의 심수에 나타남을 <가>라 하고, 행자의 심수에 불일을 감득하는 것을 <지>라고 이름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지(adhisthana)는 원래 부처님의 가호, 호념이라는 뜻인데, 구카이는 가와 지를 구별하여 <가>는 부처님의 대비의 힘, <지>는 중생(사람들)의 신심의 힘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처님과 수행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알기 쉽게 태양의 빛과 그 빛을 비추어 나타난 수면과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고 했습니다. 또는 중추의 명월과 맑은 연못의 물과의 관계로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가을 달이 높은 하늘에서 교교히 비치고 그 밝은 달 그대로 똑같은 빛을 깨끗하고 맑은 수면에 나타내고 있는 광경은 참으로 신비적인 자연의 감동을 느끼게 하는데, 수행자가 삼밀가지의 묘행을 닦을 때 부처님의 대비를 그대로 수행자의 마음에 인식하여 부처님과 일체가 되는 체험을 하는 그것이 부처님이 나에게 들어와서 나와 부처님이 일체가 되는 「입아아입(入我我入)」의 종교적 신비체험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여러 종파의 신도들이 부처님을 예배할 때 손을 합장하고 입으로 나무아미타불, 나무묘법연화경,나무관세음보살 등을 외우고, 마음으로 불.보살에게 귀의하거나 또는 기원을 하는 예가 많은데, 이것도 삼밀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즉신성불을 목표로 하는 삼밀의 묘행은 마음을 삼마지에 머물고 입아아입의 신비적인 체험을 한다는 것에 신앙의 깊은 차이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삼밀가지의 묘행에 의해서 즉신성불한다는 것을 「가지감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 가지감응이야말로 즉신성불사상의 핵심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 즉신의 의미
그리고 즉신의 의미에는 「현신(現身)에 속히」라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비유적으로는 「중중제망인 것」의 의미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중중제망이라는 것은 제석천의 궁전에 둘러 싸여 있는 보배구슬 그물의 많은 구슬의 빛이 서로 비추고 비쳐져서 다르면서 다르지 않는(不異) 것이므로 평등이라고 하는 것을 즉신이라 한 것입니다. 따라서 즉신이라는 말에는 「이몸 그대로」라든가 「현신에 속히」라고 하는 의미 이외에 내 몸과 부처님의 몸 그리고 중생의 몸이 불이평등의 관계에 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7. 체.상.용의 삼대(三大)
이상이 2송 8구 가운데 제1송 4구의 요지인데, 제1구에서 제3구까지의 6대와 4만과 3밀은 체.상.용의 3대사상을 근거로 하여 6대체대.4만상대.3밀용대의 사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삼대사상은 대승기신론의 3대사상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6대사상과 4만사상은 제각기 깊은 사색에 기인한 사상체계를 가진 것입니다. 동시에 즉신성불의 가능성의 원리를 거기에서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3밀사상은 즉신성불의 수행적인 측면을 밝힌 것입니다.
8. 일체지지.오지.실각지
다음 제2송의 4구는 즉신성불의 심리적인 방면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이미 인도불교에 있어서 성불사상의 발전에 수반한 대승불교의 보살도가 설해지고 그 속에 일체개성불(一切皆成佛)을 주장하면서 성불 사상의 심리적 근거를 밝히기 위해 실유불성,여래장,보리심,심진여,본각,자성청정심 등의 사상이 설해져 있습니다. 그것에 이어 성립한 밀교경전에서도 더욱더 본유의 정보리심,일체지지,오지 등의 사상이 설해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즉신성불사상을 구성하게 된 것이고, 심리론의 입장에서도 즉신성불사상을 명확히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본래 일체지지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보이기 위해 대일경 금강정경 등의 문장을 증거로 들고,일체지지(일체지가운데 최고의 지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오지(五智).37지(智).무제지(無際智) 라고 하고, 또는 심왕(心王).심소(心所)의 모든 마음의 활동(心作)을 설하고 있는데, 그들의 지혜는 법신여래의 지혜임과 동시에 같이 중생의 본유의 지혜이다는 것을 밝힌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본유의 지혜는 삼밀가지의 수행에 의해서 현증되면 중생이 그대로 부처가 되고, 불지를 체득하게 되는데, 그것을 「실각지(實覺智)」라고 하는 것입니다.
9. 삼종즉신성불
이본즉신성불에 의하면 즉신성불에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세 가지라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세 가지의 보는 법이라고 함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세 가지라 함은 이구성불.가지성불.현득성불의 셋을 가리킴니다.
⑴이구성불
이(理)로서 우리들에게는 부처로서의 자질이 구족되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밀교에서는 현교의 성불은 수행에 의한 단계적인 해탈의 과정을 보여줄 뿐이라고 합니다. 즉 「현교는 유루의 분단신(分段身)을 떠나서 변이신(變易身)에 의하여 범부가 불(佛)이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정토종의 성불도 결코 이 몸 그대로의 부처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 현신(現身)의 국토에서는 수행의 장애를 이겨낼 수가 없으므로해서 이 국토를 예토(穢土)라하고 정토에는 화생(化生)한 뒤에야만 성불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보리심론에 「오직 진언법에서만 즉신성불하기 때문에 이에 삼마지법을 설한다. 여러 다른 교(諸敎)에서는 이것을 말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듯이, 이구성불이라는 것은 이 이법으로서의 즉신성불의 확신입니다. 자기 안에는 불.보살로부터 아귀.축생에 이르는 모든 가능성이 내재합니다. 그것은 무한한 퇴폐와 몰락의 심연을 말하여 주는 동시에, 또 한이 없는 승화와 변모의 약속도 역시 말하여 주는 것입니다. 이같이 자기의 마음 가운데 있는 십계(十界)의 구족을 믿고 자기의 안에 6대가 무애하게 깃들어 있으며, 4만이 항상 갖추어 있어서 떠나지 않고 대일(大日)의 이법은 모두 자기 안에 본래 구족되어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대전제로서 본 자기의 즉신성불, 이념으로서의 성불을 「이구의 성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⑵ 가지성불
이에 대하여 「가지성불」이라고 함은 그 이념으로서의 성불을 현실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실천의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3밀의 가지력에 의한 즉신성불을 말합니다. 이 경우에 「가지」는 그 심화의 정도에 따라서 일시적으로 실현될 때도 있고 더 나아가서 상시 체현되게도 됩니다. 옛부터의 설명에 의하면 초심 안에는 유가의 관상에 몰두하고 있을 때에만 부처님과 우리들 행자와는 가지섭입할 수 있는데, 관행이 원숙하게 되면 행주좌와에 항상 우리들과 대일여래와의 사이에는 감응이 왕래하고 부처님의 내증의 본서와 우리들의 보리심과는 일치명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지성불입니다.
이경우의 가지는 대일경과 그 소에서 말하는 「3력 즉 우리의 공덕력(공덕력). 여래의 가피력(가피력). 법계력(법계력), 이 세 가지 힘이 합하기 때문에 곧 능히 부사의의 업을 성취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의 공덕력이란 의료를 예로든다면, 자기자신이 가지는 회복력을 말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여하한 의약도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의약은 단지 이 생명이 가지는 자연의 회복력을 촉진시키고 거기에 대한 장애를 제거하여 줄 뿐인 것입니다. 죽은 자에게는 어떠한 좋은 약이라도 주효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래의 가피력은 그 의약에 해당되고, 일반적으로 병자를 둘러싼 치료를 위한 사회적.가정적.경제적 좋은 조건 등의 간호의 힘이 법계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⑶현득성불
마지막으로 현득성불은 결과로서의 즉신성불입니다. 즉 자기 안에 직접 체현된 즉신성불의 경지를 말합니다. 본래의 이구(리구)가 3밀가지의 힘, 연(연)에 의하여 불과(불과)의 만덕으로서 완전하게 발현되고 자기가 정히 부처가 된 경지를 말합니다. 부모소생의 이 몸이 곧 대각의 자리를 증득한다(즉신성불)고 함은 바로 이 경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세 가지 즉신성불은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살아 있는 개인의 종교적 체험으로서의 성불론이 됩니다. 이것을 도식적으로 이해한다면,
이구성불 因 이념 범부
가지성불 緣 실천 보살
현득성불 果 이념과 실천의 합일 불
이라고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3종성불은 하나의 동일한 경험적 사실인 즉신성불을 인식상의 편의에서 가(假)로 셋으로 나누어 본 데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철학적 근거(本有의 內證)로 본다면 이구성불이 되고, 종교적 실천과 그 궁극의 목표로 본다면 가지.현득의 성불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 이르러서 우리는 밀교의 성불론에서 만물을 법신의 이념하게 긍정하는 대전제를 허용하면서, 거기에 이르고 그것을 터득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때로는 다난한 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로 직시하는 철학이 개발되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만약 밀교의 성불설이 다만 즉신성불의 이념만을 말할 뿐 만인의 수행의 노력을 부정하였더라면, 어떻게 넓고 깊은 마음의 아주 깊은 곳에 들어 가서 개인의 마음 속에서 밀하고도 심엄한(密嚴) 세계를 개발할 수가 있었겠는가고 생각하면, 이 세 가지 성불설이야말로 밀교 철학의 종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8 밀교의 특성
지금까지 밀교경전의 특색과 밀교사상의 여러 양상을 보아왔습니다. 마지막으로 밀교의 특성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보는 방향이 있겠으나 크게 다섯 가지 특성으로 요약해보겠습니다.
1. 신비성(深秘性)
밀교의 특성으로서 첫째로 밀교사상의 신비성 또는 심비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구극성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밀교라고 하면 신비적인 체험이 쓰여져 있다든가 또는 신비적인 체험을 하는 것이 밀교라고 생각하는 예가 많습니다. 올바른 이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실 신비성이라고 하는 표현으로 밀교체험의 깊이, 가르침의 깊이를 강조하는 면이 있기도 합니다. 그 한 예로 삼밀가지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대일경에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카이의 즉신성불사상에서도 중심으로 된 것이 삼밀가지의 실천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부처님에게 예배하는 것에 의해서 부처님의 신비적인 또는 대자대비의 힘을 자신이 받아서 이윽고 부처님과 똑같은 마음, 경지에까지 고양되어 가는 그것이 삼밀가지의 성불이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밀교는 「입아아입」, 즉 부처님이 나에게 들고 내가 부처님에게 들어서 부처님과 일체가 된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마지행이라고 하는 것은 정신통일하여 마음을 순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밀교의 행으로 부처님을 예배하거나 수법을 함에 있어서도 그 근저에 삼마지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 삼마지라고 하는 것은 대승불교 또는 원시불교에서도 강조하고 있듯이 정신통일의 극치이고 그리고 그것은 오직 수행하는 그 사람에게만 체험되는 신비의 세계입니다.
또 한 가지 신비성이라는 것은 법신설법을 말합니다. 현교에서는 법신이란 무형.무색.무설법이므로 모습도 없고 설법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밀교에서는 법신 대일여래가 설법을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설하고 불.보살이 듣고 있는 그러한 세계는 보통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세계입니다. 결국 현교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깊고 오묘한 심비의 세계라고 하는 것을 사상적으로 강조하고 실천에 의해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설한 것이 바로 밀교라는 것입니다.
2. 상징성
다음에는 상징성을 들 수가 있습니다. 어떤 형상 위에 나타내면서 그 나타낸 형상에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심볼리즘, 상징주의입니다. 우선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 사종만다라가 있습니다. 이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만다라를 대만다라, 삼매야만다라, 법만다라, 갈마만다라의 네 종류로 분류한 것입니다.부처님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대만다라이고, 부처님의 정신세계라고 할 수 있는 본서(本誓)를 어떤 물건이나 인계로 나타낸 것이 삼매야만다라입니다. 법만다라를 종자만다라라고도 하는데 불.보살을 범자의 한 글자로 나타낸 것입니다. 갈마만다라의 갈마(karma)란 부처님이 활동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갈마만다라는 조각 등 입체적으로 표현한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종만다라는 만다라의 표현형식이므로, 예를 들면 부처님을 네 가지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징적인 것은 인계와 지물 그리고 진언입니다. 삼매야만다라는 부처님의 정신적인 내용을 상징으로 나타낸 것이므로, 손으로 인을 맺기도 하고, 부동명왕은 칼을, 관세음보살은 연꽃, 약사여래는 약병이라는 식으로 제각기 독자적인 지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계와 지물로 부처님 그 자체를 나타내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법만다라는 범자(梵字)로 부처님을 나타냅니다. 범자의 아(阿)라고 하는 글자는 본불생(本不生)이라고 하는 절대성, 또는 대일여래와 보리심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또한 흐리(hrih)라고 하는 한 글자로 아미타여래를 나타내고, 하(ha)라고 하는 글자로 지장보살을 나타내는 등 어떠한 불.보살.명왕이라도 범자의 한 글자로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문자라고 하는 기호를 존중하여 기호를 의미화한 것입니다.
3. 주술성
주술이라는 말에 좀 좋지않은 여운을 가질지 모르지만, 주법(呪法) 또는 주경(呪經)이라고 하는 경전이 실제로 번역경전 속에 있고, 「주(呪)」라고 하는 글자가 밀교경전 속에 매우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더우기 그러한 것을 외우면 많은 공덕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라니를 외우면 병이 낫는다든가 재난을 피할 수 있다든가 하는 여러 가지 공덕을 설하는 것에서 「다라니 신앙」이 유행되게 된 것인데, 순수밀교 이전의 잡부밀교의 경전에 특히 그러한 것을 강조한 것이 많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시 진언.다라니가 갖는 교학적인 깊은 사상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밀교 속에 주술적이고 주법적인 성질이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도 밀교의 한 특색이라고 할 것입니다.
4. 사상(事相)과 교상(敎相)
어떤 종교에서도 또는 불교의 어떤 종파에서도 그것이 종교인 한 교학적인 부문과 실천적인 부문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밀교에서는 특히 그 실천부문에서 수행과 수법.관법.의례 등 두드러지게 다양한 면이 있는데, 그것을 특히 사상(事相)이라 하고, 밀교의 특색을 나타내는 중요한 부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교상과 사상이라는 말은 일찍부터 중국밀교에서 쓰여지고 있습니다. 밀교의 교상이란 밀교의 교리나 교법.사상 등을 연구하는 부문인데, 넓게 말하면 사상의 실천에 대해서도 그것을 이론화 하는 것이 교상입니다. 그래서 교상을 떠난 사상은 형식화일 뿐이고, 사상을 떠난 교상은 공리공론이라 하여 사상과 교상은 수레의 두 바퀴, 새의 양쪽 날개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교상의 부문은 많은 밀교관계의 출판물에 의해 공개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른바 밀교사상 또는 진언교학을 누구나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상(事相)은 실천적으로 수행. 수법. 관법. 의례를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기본이 되는 사상의 차제 또는 법식의 차제는 반드시 스승(아사리)에게서 전수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상부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출가에서 관정을 받기까지의 여러 가지 수행방법을 지도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출가수계의 방법과 사도가행(四度加行;18도, 금강계,태장계,호마법의 네 가지 수행)의 법, 삼매야계, 전법관정 등이 있고, 밀교의 사상(事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둘째, 많은 본존을 공양하고 기원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관음법.약사법.부동명왕법 등 많은 제본법이 있고, 또한 밀교경전을 강찬하기 위한 인왕경법.이취경법, 그밖에 열반회.대반야회.피안회 등이 있습니다.
세째, 장례의식.연기법요.우란분회 등 사람의 죽음과 추선(追善)에 관한 행사도 사상(事相)의 부문에 속합니다.
네째, 실담(悉曇)과 성명(聲明)도 사상(事相)부문입니다. 실담이란 범자를 말하고 이 범자로 진언을 쓰거나 제존의 종자를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명은 경문에 음곡을 붙여서 외우는 불교음악인데, 여러 가지 법요는 거의 성명(범패)으로 된 법요로 하고 있습니다.
5. 양재초복과 즉신성불
마지막으로 밀교는 무엇을 목표로하고 활동하는 종교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구카이는 혜과아사리에게서 배운 밀교의 특질을 설명하면서 밀교에는 양재초복과 즉신성불의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성령집권5)
양재초복
구카이의 말에 의하면 「재난을 없애고, 행복을 가져오는 마니(摩尼;如意珠)」라고 한 것이 있습니다. 밀교경전에는 현세이익적인 신앙을 설한 것이 많고, 제존에 귀의하고 예배하고 기원하는 가운데 특히 다라니의 공덕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밀교의 폭넓은 민간신앙으로서 양재초복의 현세이익적인 신앙의 형태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세이익적인 신앙은 밀교에서만이 아니고 대승불교의 제불.제보살의 신앙 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종교의식의 형태입니다.
예를 들면, 약사여래,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은 어떻게 중생들을 구제한다고 하는 서원(본원)을 세우고 있고, 이 제불.보살에게 기원을 드리면 여러 가지 원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데서 현세이익적인 신앙이 행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밀교에서 한층더 강하여 관음신앙에도 종래의 성관음에서 천수관음.십일면관음.불공견삭관음.여의륜관음 등의 변화관음신앙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동명왕. 항삼세명왕.애염명왕 등 새로운 명왕의 신앙이 성립하고, 더우기 비사문천.성천.변재천 등 많은 천신들에게도 여러 가지 소원의 성취를 기원하는 등 현세이익적인 다채로운 신앙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속질성불.즉신성불
즉신성불사상에 대해서는 앞에서 논술한 그대로이지만, 여기에서는 양재초복과 대비하여 즉신성불사상도 밀교의 가장 중요한 일면이라는 것을 지적하여 둡니다. 대일경과 금강정경에 설해져 있는 순수밀교에서는 밀교야말로 범부(人)에서 성인(佛)이 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하여, 속질성불.즉신성불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불(成佛)을 목표로 하는 것은 소승이든 대승이든 기본적으로는 큰차이가 없으나, 소승불교는 성불을 목표하면서도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체의 번뇌를 끊고 아라한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하여 대승불교는 모든 사람들이 성불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이 세상에서의 성불은 용이하지 않으며 삼아승지겁의 긴 보살행이 필요하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불에의 동경과 서원 속에 순수밀교에서는 삼밀가지의 행에 의하면 곧 이 몸 그대로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밀교는 확실히 양재초복의 현세이익적인 면과 대승불교의 연장선상에 즉신성불의 사상을 전개하면서, 인간이 이 인생에 있어서 무엇을 목표로 하고 어떻게 진실하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밀교입문|작성자 U V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