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그라운드] 거대한 전환이 시작되는 곳, 로컬 - 로컬그라운드|local life Magazine
거대한 전환이 시작되는 곳, 로컬
좋은 삶이란 어떤 삶일까? 각자가 지향하는 바에 따라 정의가 달라지겠지만 우리는 일단 좋은 삶을 꿈꾼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삶에 근접해 살고 있을까? 신자유주의는 부자는 부자대로 서민은 서민대로 저마다의 불만을 품에 안고 살아가게 만든다. 우리에게 세상은 원래 그러니 네가 세상에 맞춰 살라며 은연중에 포기하는 삶을 강요한다. 그렇다보니 ‘행복한 노동’은 실종된 지 오래다. 그저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면 뭐라도 해야 한다. 인간은 점점 자본의 노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소비하지 않으면 단 하루도 생존이 어려운 도시의 삶은 더욱 인간의 삶을 가혹하게 만든다. 소확행이나 워라밸은 바로 이러한 세상을 그래도 정신 차리고 버텨보려는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노동의 주체가 되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천연균에서 찾은 오래된 미래》에서 와타나베 이타루는 말한다. ‘빚을 지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그렇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는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빚을 지지 않는 삶을 사는 게 훨씬 어렵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디선가 돈을 빌려야하는 사회. 아파트를 사기 위해, 주식 투자를 위해 돈을 꾼다. 은행도 기꺼이 빌려준다. 이렇게 빚은 레버리지가 되어버렸다. 또한 차를 사고, TV를 바꾸고 장을 보기 위해 우리는 카드를 긁는다. 카드 또한 빚이란 걸 잊은 채 말이다. 이처럼 빚은 이미 우리 삶 깊숙하게 침투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빚을 갚기 위해 우리는 일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노동이 삶을 짚어 삼키고 있는 형국이다. 더구나 요즘에는 일자리라도 끊이지 않으면 다행이니 삶은 고달픔의 연속이다.
와타나베의 삶도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시의 가혹한 노동과 부조리한 경제 구조로 삶을 위협받았었다. 그랬던 그가 돌연 아내와 함께 도시를 떠나 일본 시골 마을로 들어가 빵집 ‘타루마리’를 연다. 특히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삶의 터전이었던 동일본 지역이 방사능 오염에 노출되자 또다시 더욱 깊숙한 시골로 이주한다. 이른바 소멸위기에 처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지역으로. 그런데 와타나베 부부가 야생 상태의 천연균에서 직접 채취한 효모로 빵을 굽기 시작하자 와타나베 부부의 삶뿐만 아니라 마을이 변하기 시작했다. 쇠락일로에 있던 마을이 활력을 되찾은 것이다.
도대체 타루마리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대안형 혁신학교 이우학교 교사 우경윤은 타루마리에서 보여준 와타나베 부부의 삶에 노동의 참된 가치가 있음을 발견하고 즉시 타루마리 빵집을 향한다. 마침 마을 회복이 미래의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이우학교의 철학과 맞닿은 지점도 있었고 학생에게 보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천연균에서 찾은 오래된 미래》는 이처럼 이우학교 교사와 타루마리 빵집의 와타나베 부부가 수차례 교류하면서 교육을 비롯한 정치, 사회, 경제에 이르기까지 삶과 미래 등을 주제로 더 나은 삶의 방향을 모색해 본 좌담집이다. 또한 타루마리 부부의 전작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이후의 타루마리 이야기이가 담겨있는데 로컬에서 찾은 미래가 이 책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와타나베는 돗토리 현의 작은 마을의 자원을 발굴한다. 그 자원이란 다름 아닌 깨끗한 자연 환경과 지방 정부 소유이 유휴 공간 그리고 풍부한 지역 농산물이다. 지역 소멸로 폐교한 어린이집을 싼값에 임대해 천연균을 채취하고 빵을 만들 수 있는 시설을 마련했다. 무엇보다 지역 커뮤니티와 관계를 맺으면서 빵을 만드는 데 필요한 밀가루를 비롯한 각종 원재료를 공급 받으면서 지역 내 경제순환 생태계를 구축했다.
지역에서 인간관계를 넓혀가고, 교육을 포함한 다양한 지역 과제를 해결할 방법도 조금씩 찾아가다 보면 뭔가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가장 중요한 생산 활동을 착실하게 계속하는 한 반드시 무언가가 바뀔 거라고 믿습니다.와나타베 이타루
빚을 지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와타나베는 무에서 유를 낳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돈이 없더라도 빵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는데 무엇보다 발효에 필요한 균을 사지 않고 직접 채취하는 방식을 택했다. 아울러 인근 농가에서 재배한 밀을 사용하기 위해 제분기를 샀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밀가루를 사면 편리하겠지만 그러한 소비 행위는 지역 경제와 전혀 상관없기 때문이었다. 지역경제 순환에 초점을 맞춘 타루마리의 경영철학이 담긴 선택이라 할 수 있다.
타루마리가 보여줬듯이 로컬의 삶이란 단순히 도시의 빡빡한 삶을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도시를 지탱하는 촘촘한 자본주의 시스템 영향에서 벗어나 나 자신이 원하는 일과 삶을 되찾기 위한 도전이기도 하며 삶의 태도를 전환하는 일이기도 하다. 최근에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청년마을 지역 유치 사업이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할지 참고할 만한 대목이라 하겠다. 타루마리가 실험하고 도전하면서 이뤄낸 변화는 보기에는 미약하지만 그 파장과 영향은 크리라 생각한다. 특히 코로나19 판데믹으로 미래가 더욱 불투명해진 세상에서 이 책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
로컬그라운드 편집부 / local@localgroun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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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크리에이터 이주 지방소멸 천연균에서찾은오래된미래 타루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