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에서 천상으로”
루트에너지 윤태환 대표를 만나다
1. 태양의 후예
태양은 압도적이다. 태양에 견주면 지구는 티끌에 불과하다. 태양계의 전체 질량에서 99.86%를 태양이 차지한다. 근 100퍼센트에 가까운 것이다. 지구를 비롯한 여타 행성은 태양이 형성된 뒤 남겨진 찌꺼기를 뭉쳐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 안에는 지구만한 행성이 100만개나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지구와 1억 5천만 km나 떨어져 있음에도 그 존재감이 또렷하다. 태양의 핵융합이 산출하는 빛과 열이 46억년 지구 진화사를 추동해왔던 에너지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수성은 너무 가까워 생명체가 타버린다. 토성은 너무 멀어 충분한 빛과 열이 가닿지 못한다. 오직 지구만이 생명이 번성하는 행성이 될 수 있었다. 지금도 변함없이 아낌없이 베풀어주고 있다. 태양 에너지가 지구까지 닿는 데는 불과 8분이 다. 단 15분간 내리쬐는 태양 에너지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1년 동안 소비하는 에너지보다 더 많다. 매일 지구로 보내지는 태양 에너지와 같은 양의 에너지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대형 화력 발전소 1억 7300만 개가 필요하다.
물이 생명의 발상지라면 식물과 동물의 진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빛과 열의 힘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야 생명의 탄생과 진화도 가능해진다. 태양열과 태양광은 대기에 의해 30%가 우주 공간으로 분산된다. 47%은 대기에 흡수되어 기상 현상에 영향을 준다. 22%는 물의 순환을 일으킨다. 태양이 우주날씨와 지구날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지표면에 닿는 나머지 1%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활동이 바로 광합성이다. 태양 에너지의 단 0.02%만 사용하는데도 식물은 지표면을 온통 녹색으로 뒤덮을 수 있을 만큼 번성하게 되었다. 잎과 줄기, 꽃과 씨, 뿌리 같은 정교한 기관 또한 태양 에너지를 최적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진화의 소산이었다고 하겠다. 그 식물들에 축적된 에너지를 먹으면서 동물들도 번창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동식물을 먹으며 생활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태양 에너지가 만물의 근원이라는 것도 헤아릴 수 있는 존재로까지 진화하였다.
그 중 조선이라는 나라를 일구며 살아갔던 일군의 사피엔스들은 이 태양과 지구와 만물 사이의 먹고 먹히는 되먹임(feed back) 관계를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고 표현했다. 그 최초의 발상이 솟아난 브레인 속의 스파크 또한 우주의 빅뱅과 무연할 수 없는 것이다. 태초에 태양이 있었다. 단군의 후손도 결국 그 근원에서는 모두 태양의 후예이다. 태양이 곧 태조이다.
2. 불의 발견, 불의 발명
지구는 불길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태양계의 행성들 중 가장 독특하다. 하늘 위의 번개나 땅 아래의 용암이 곧 불은 아니다. 불길을 만들어내는 연소는 매우 특수한 화학적 과정이다. 우주에는 연소될 수 있는 물질도 그리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 불 또한 지극히 지구적인 현상이다. 광합성의 소산인 탓이다. 광합성을 통하여 풀과 나무 등 바이오매스를 많이 만들어두었고, 대기 중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게 된 것이다. 탄소와 수소를 구성하는 원자들이 산소 원자와 결합하여 일어나는 화학 반응이 연소이고 불이다. 지구는 불이 붙거나 불길이 타오를 수 있는 매우 예외적인 행성이 된 것이다.
그 자연적 불길은 오래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었다. 다른 동물들은 그 뜨거운 기운을 피해 멀리 도망쳤을 것이다. 오로지 유인원만이 타닥타닥 타오르는 그 붉은 꽃을 유심히 관찰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불길이 타오르는지 골똘히 고심했던 것 같다. 그만큼 유용했기 때문이다. 모기를 비롯한 성가신 존재들을 쫓아낼 수 있었다. 위험한 야생동물로부터 보호받을 수도 있었다. 어느 날 부싯돌을 바위에 내려치자 불꽃이 일어났다. 나무 꼬챙이를 다른 나무토막 위에 올려놓고 빠르게 돌리자 서서히 열이 나더니 끝내는 빛도 났다. 인공적으로 불을 피우게 된 것이다. 불을 관리할 수 있는 최초의 생물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지구에서, 아니 최소한 태양계에서 불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종이 탄생한 것이다. 유기물에 축적된 태양에너지를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인간의 지배력은 폭발적으로 증폭되었다. 완력에서 앞서는 동물도 불로써 제압했을 뿐더러 잡아먹을 수도 있게 되었다. 동굴을 훤히 밝혀 주었고 밤새도록 따뜻하고 아늑한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불을 손에 쥐는, 내 손 안에 작은 태양을 부여잡는 최초의 계몽(enlightment)과 함께 인간은 지혜로운 존재, 사피엔스가 되어갔다. 모든 제단에는 지금도 촛불을 켜두고 있다. 모든 중요한 행사에는 요즘도 성화를 밝히고 불꽃놀이를 한다.
불을 장악함으로써 인간이 얻은 가장 큰 혜택은 음식을 익혀 먹게 되었다는 점이다. 요리가 시작되었다. 요리는 철저하게 문화적인 것이며 인공적인 것이다. 자연계의 어떠한 생물도 불을 가하여 요리를 하지 못한다. 오로지 인간만이 행하는 진화사의 일대 혁명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먹을거리를 높은 열로 처리하면 말 그대로 ‘단순해지면서’ 이빨이나 소화관이 더 쉽게 다룰 수 있게 된다. 즉 소화라는 필수 과정의 일부를 몸 밖에서 대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씹거나 소화시키는 기능을 덜 해도 되는 셈이다. 더 많은 영양소를 더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침팬지는 하루에 여섯 시간을 날것 그대로의 먹이를 씹으며 보낸다. 자연스레 인간의 몸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충분한 여가 시간으로 뇌를 더 유용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익혀먹기의 발명 이후로 인류의 뇌의 크기는 무려 세 배나 커지게 되었다.
고로 사피엔스는 초식성도 육식성도 잡식성도 아닌 ‘요리성’ 동물이라 할 수도 있다. 손길의 불길이 이제 두뇌의 불길로 전이된 것이다. 구석기에서 신석기로의 이행과는 전혀 상이한 청동기 시대를 열어젖혔다. 불로써 구리와 주석을 합금하여 청동이라는 인공물질을 주조해내기 시작했다. 철기를 생산해내었고, 유리도 만들어내었다.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인류는 지구의 태양처럼 군림하게 되었다. 인간무리의 최고 지도자를 태양으로 묘사하거나 종교 지도자의 초상에는 후광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난 한밤중에도 사피엔스가 무리지어 살아가는 도시는 불야성(不夜城)으로 번쩍거리게 되었다. 태양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인공적인 열과 인공적인 빛으로 가득 찬 지구 행성을 인류가 만들어낸 것이다. 진화의 끝자락에 등장한 한없이 미미했던 존재가 이제는 거대한 힘을 장착하여 지구의 미래를 주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피조물이기를 그치고 창작자이자 창조주가 되었다.
3. 지하자원
진화의 소산으로 문화가 탄생하였고, 그 문화적 진화가 거듭하여 또 다른 계몽(enlightment)을 촉발하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을 밝히는 근대를 열어젖혔다. 증기기관을 만들고 내연기관도 만들어내었다. 이 인공기구들로 말미암아 인간은 자신의 근육과 동물의 근력을 빌지 않고서라도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더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원료의 투입이었을 뿐이다. 지상의 자원으로만은 충분치가 못했다. 혹은 덜 효율적이었다. 땅 밑에도 자원이 있었다. 지하자원, 화석연료의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석탄을 발굴하고 석유를 채굴하였다.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
산업혁명이 야기한 그 열기(와 광기) 또한 태양과 전혀 무연하지는 않았다. 아니 무수한 시간동안 지구에 쏟아졌던 태양 에너지가 농축되어 있었다. 생명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지구상에 존재해왔다. 년년세세, 수십억 세대에 걸쳐 태어나 살던 동식물이 죽으면서 사체를 남겼다. 이들 중 일부는 우연히 땅속에 묻혔고, 그 중 극히 일부가 일정한 조건 하에서 화석연료로 바뀐 것이다. 석탄은 키가 30미터나 되는 양치식물이 쓰러져 땅에 묻힌 채 수억 년이 지난 결과 생성된 것이다. 석유는 바다에 살던 작은 생명체인 식물성 플랑크톤이 죽어 침전된 뒤 지하 깊은 곳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높은 열과 압력에 의해 액체로 변한 것이다. 그 지하에서의 장구한 시간의 압축만큼이나 지상으로 다시 나오자 활활활 타오를 수 있었다.
20세기를 불태운 산업문명의 열과 빛은 공룡이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질학적 축복에 근간했던 것이다. 지질학적 시간과 생물학적 시간이 인류의 20세기를 주조해 내었던 것이다.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경험하게 되었고, 전례없는 도시화를 추진하게 되었다. 해가 진 뒤에도 커피하우스에 모여 먹고 마시고 담소하며 ‘공론장’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가로등과 전등 등 인공조명이 많아지면서 밤과 낮이라는 자연의 리듬을 버리고 각자 제 나름의 사이클대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디킨스부터 톨스토이까지 위대한 문학 작품이 한밤중에도 쓰여지게 되었다. 두툼한 세계문학전집이 만들어졌고, 독자들은 밤새 불을 밝히며 책을 읽게 되었다.
자동차는 지난 20세기를 규정하는 가장 영향력이 큰 발명품이었다. 농촌에서 도시로 대거 사람들이 이동할 수 있었으며, 기왕의 이동수단이었던 수만 마리의 말이 쏟아내는 대소변을 처리하지 않고도 대도시를 형성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세계 각국은 거대한 거미줄 같은 도로망으로 묶이기 시작했으며, 그 도로를 오고가는 자동차의 연료를 보급하기 위하여 남극 대륙을 제외한 세계 도처에서 석유를 캐고 해저유전 시추를 하게 되었다. 응당 지하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격화되었으며 세계대전이라는 전대미문의 폭력도 경험하게 되었다. 급기야는 이례적인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도 초래하게 되었다. 문화적 진화가 자연적 진화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수많은 동식물이 6번째 대멸종 단계로 진입했으며, 인류의 존속 여부도 불투명하게 되었다. 인간의 생각과 생활과 생산이 생명 전체의 진화를 좌지우지하는 지구사의 새 단계, 인류세(anthropocene)가 열린 것이다.
4. 천상자원
인류세는 충적세, 홀로세 등등 그 이전의 지질학적 시대와는 달리 단명하게 될지도 모른다. 22세기, 23세기 과연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절박함과 절실함으로 인류는 재차 빛을 발하고 있다. ‘지속가능성’이 온통 화두가 되고 있다. 살아남고자 전력으로 전속력으로 문명의 변화를, 의식의 진화를 꾀하고 있다. '잘 살아보세‘에서’ ‘잘 살려보세’로 시대정신이 바뀌고 있다. 문명의 기초인 에너지의 생산과 유통과 소비에도 파격적인 실험과 획기적인 혁신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전기자동차가 휘발유와 경유 자동차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탄소세라는 새로운 조세 정책을 입안하여 기업 활동의 대전환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기후위기를 호소하며 학교에 가지 않는 북유럽의 10대 소녀가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정치인들과 언론인들, 지식인들은 온통 SDGs를 만트라처럼 읊어대기 시작했다. 그만큼이나 20세기 내내 중독되었던 석탄과 석유와 가스로부터의 해독 과정이 급속도로 진행될지도 모른다. 관건은 대안이다. 근원으로의 귀환(Back to the Basic), 지상자원과 지하자원 시대를 지나 다시금 만물의 에너지의 근원인 천상자원, 태양을 주목하고 있는 까닭이다.
돌아보면 인류가 돌을 다 써버렸기에 석기시대가 종식된 것이 아니다. 더 나은 기술인 청동기가 등장하면서 석기를 몰아냈던 것이다. 바위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소용이 없어졌을 뿐이다. 마차의 시대가 끝난 것도 말이 사라져서가 아니었다. 상위 기술인 내연기관을 장착한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기왕의 운송 산업을 무너뜨린 것이다. 말 역시도 여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관광용과 스포츠용으로 사용처가 달라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석탄과 석유 등 지하자원 시대 또한 고갈로 인해 종언을 고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새로운 기술과 제품, 비즈니스 모델이 촉발하는 파괴적 혁신으로 기존의 에너지산업을 붕괴시킬 수 있는 것이다.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 등과 융복합된다면 문명 대전환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도 있다.
조짐은 이미 도처에서 여실하다. 유럽에서는 깨끗하고 분산된 에너지로의 전환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딱 10년 전, 원자력발전의 위험성을 극적으로 보여준 3.11 후쿠시마 사태가 일어났다. 바로 그해에 유럽에서 건설된 발전소의 47%가 태양광이었으며, 21%가 풍력이었다. 신규로 건설된 발전 용량의 7할이 청정에너지였던 것이다.
세계에서 태양광패널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였던 중국은 이제 태양광 제품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로 잠시 멈추었던 중국의 에너지 대전환은 조기에 팬데믹을 극복하면서 더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신설될 태양광 발전소가 지난 10년간 건설되었던 발전소를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기하급수적 속도로 재생에너지 산업을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는 것이다. G2 간의 기술패권 경쟁은 태양광 부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솔라시티(SolarCity), 선지비티(Sungevity), 선런(SunRun)과 같은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캘리포니아 주와 미국 전역에 태양광발전 설비를 시공하고 있다.
전력 수요의 100%를 태양광으로 공급하는 나라도 이미 등장했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토켈라우가 그 주인공이다. 세 개의 산호초로 이루어진 토켈라우에서는 야간에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 배터리 은행을 만들었다. 100% 디젤 발전에서 100% 태양광발전으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단 1년이었다.
이처럼 현재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지하자원에서 천상자원으로의 대전환을 선도한 나라로 북유럽의 덴마크를 꼽을 수 있다. 이미 반세기 전부터 신재생에너지의 대전환을 실험했다. 20세기 21세기를 먼저 살았다. 지금은 풍력발전으로 전력 수요의 100%를 감당할 수 있다고 한다. 조금 전에 내 뺨을 스쳤던 바로 그 시원한 바람이 방 안의 빛을 밝히고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열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바로 그 미래에너지 최선진국에서 유학하며 배우고 익힌 기술과 노하우를 한국의 에너지 대전환에 접목하는 비즈니스를 개척하고 있는 CEO가 루트에너지의 윤태환 대표이다. 오래 손꼽으며 기다려왔던 만남이었다. 사무실도 서울에서 가장 미래에 근접한 동네, 성수동의 헤이그라운드 5층에 자리했다. 이야기를 나눈 장소는 건물 맨 꼭대기, 투명한 유리창으로 사방이 활짝 트인 곳이었다. 포근한 봄 햇살을 맞으며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조근조근, 차분차분, 진지한 말투로 밝고 맑은 미래를, 산뜻하고 깨끗한 내일을 견인해주었다.
에너지 민주주의 : 시민 참여형 임팩트 투자
이병한 :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인 질문부터 드려볼까 합니다. 역시 이력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지점이 덴마크 유학 같습니다. 언제부터 에너지 전환에 관심이 있으셨을까요? 원래 관심이 있어서 덴마크로 공부하러 가신 것인지, 혹은 다른 경로로 덴마크를 방문했다가 눈이 뜨여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 그 출발이 궁금합니다.
윤태환 : 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초등학교 6학년부터였어요. 과학자가 꿈이었거든요. 왜 6학년이면 초등학생이라기보다는 곧 진학하게 될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더 눈길이 가잖아요? 형과 누나들을 선망하면서 그들이 보는 책을 미리 따라 읽기도 했습니다. 대학 진학을 위한 고등학교 권장도서 목록에 있는 책들도 읽어보려는 욕심이 컸어요. 과학을 무척 좋아하는 초등학생이었던 셈이죠. 그 중에 한 권으로 <실험실 지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꽤나 어려운 책이었어요. 내용을 과연 얼마나 이해했을까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펄펄 끓는 물속의 개구리에 대한 비유는 강렬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점점 온도가 올라가는데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다가 결국 죽어가는 과정을 지구온난화에 빗댄 것이죠. 어린 마음에 열흘 동안 잠을 잘 자지 못했습니다.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에서 환경과학자가 되어야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긴 것이죠.
이병한 : 그러면 대학에서도 환경 쪽을 전공하셨을까요?
윤태환 :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했습니다. 자연과학의 가장 근간이 되는 학문을 제대로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어머니가 수학 선생님이기도 하셨어요. 영향이 없지 않았습니다. 첫 직장이 “에코 프런티어”라고 하는 에너지 환경 컨설팅 회사였어요. 카이스트 대학원의 박사과정생들이 창업한 회사였죠. 제가 입사할 당시에는 70여명이었고요. 나중에는 120명까지 늘어납니다. 에코프런티어에서 3년 정도 일하면서 이 방면으로 일생을 투신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컨설턴트 역할을 했는데, 아무래도 해외 사례들을 많이 참조하게 되거든요. 그 전에는 막연하게 에너지 환경 분야에서 독일이 가장 앞섰다고 알고 있었어요. 에너지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룬 나라라고 익히 듣고 있었죠. 그런데 여러 사례를 찾다보니 덴마크가 사회민주주의 국가로서 에너지 전환을 가장 먼저 시도한 나라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덴마크가 취한 접근 방식을 10년 정도 터울을 두고 독일도 그 나름으로 차용해서 적용시켰던 것이죠. 아무래도 시장의 성숙도나 시민의 성숙도에서 덴마크가 좀 더 앞서있음을 배운 것입니다. 그때가 2008~2009년도 무렵이에요. 자문하던 기관에서 덴마크에서 500만 달러 정도 투자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덴마크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연구하게 된 것이죠.
이병한 : 그럼 대학원 시절부터 매우 오랫동안 창업을 준비해 오신 셈이네요.
윤태환 : 직접 사업 할 생각은 못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선생님이셨고요. 집안에 사업가는 없었습니다. 가르치는 것에 관심이 많고, 또 잘 가르치는 편이었습니다. 어려운 개념을 쉽게 풀어내서 설명하는 일에 재미를 많이 느껴요. 덴마크에서 유학을 할 때도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적었어요.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연구를 지속하거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되지 않을까 했었죠.
이병한 : 학자가 아니라 경영자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취업이 아니라 창업을 하게 된 것인데요.
윤태환 : 귀국부터 예정보다 일찍 했습니다. 학업을 다 마치지 않고 사업을 시작한 것이죠. 2012~2013년도 밀양 송전탑 사건이 있었잖아요? 어느 날 제가 속해 있던 덴마크 공대의 연구실로 연락이 왔어요. 제 연구실이 어떻게 하면 풍력 발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가장 손실을 줄이면서 사용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곳이었거든요. 밀양 송전탑 같은 것을 굳이 짓지 않아도 되는 기술적인 대안이 있는지를 자문해 온 것이죠. 한국에서 첨예하게 갈등을 빚고 있는 사안을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를 깊이 고민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한국 상황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고요. 기존의 발전소가 워낙 중앙 집중화되어 있기 때문에 송전망이 도처에 깔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병폐가 역력했습니다. 해결책은 태양광과 풍력 위주의 분산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었어요. 한국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고 그 일을 직접 감당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났습니다. 당시에 저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부양할 가족도 없었어요. 이때가 아니면 창업을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래도 결혼을 하면 모험을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한국에 일찍 돌아가서 창업을 하고 도전을 해보자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대학원 공부야 언제든지 다시 와서 할 수도 있으니까요. 부모님께도 딱 3년만 도전해 보겠다고 설득했습니다. 3년의 실험이 여의치 않으면 다시 덴마크로 돌아가서 박사 공부를 마치겠다고 약속드렸죠. 그런데 벌써 8년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병한 : 학업을 작파하고 창업해서 성공한 전설이 여럿 있죠. 빌 게이츠부터 일론 머스크까지. 여전히 미혼이시고요? (웃음)
윤태환 : 아니요.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겼습니다. (웃음)
이병한 : 연구하고 교육하는 사람들의 기질과 시장의 최전선에서 사업하시는 분들 사이에는 간극이 참 크다고 느낍니다. 훌륭한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해도 그게 곧장 비즈니스의 성공을 담보해주는 것도 아닌 것 같고요. 양쪽을 두루 겸비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윤태환 : 부모님의 기질을 천성으로 물려받은 것 같아요. 아버지는 꼼꼼하고 치밀하셨고, 어머니는 외향적이고 사교적이셨습니다. 어머니랑 더 닮은 구석이 있어요.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지향이 강합니다. 교직과 사업이 아주 다르다고도 생각되지 않더라고요. 잘 가르치는 것과 잘 만들고 잘 파는 것이 비슷한 것도 같아요. 저는 여전히 미숙한 CEO이기는 하지만 제 성향과 잘 맞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직접 기업을 경영하면서 배우는 것이 정말 많아요. 한 인간으로서도 더욱 많이 성장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대학에서 학자로만 있었다면 배울 수 없었던 세상의 여러 면들을 두루 경험하고, 해볼 수 없었을 일들을 직접 체험하게 된 것이죠. 물론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창업하지 말고 공부나 계속할 걸 하는 생각도 종종 듭니다만...(웃음)
이병한 : ‘이렇게까지 힘들 줄 몰랐다’의 그 힘듦이란 뭘까요?
윤태환 : 사업이 늘 예상대로,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가 않거든요. 도중에 정말로 많은 사고들이 일어납니다. 강물이 그렇잖아요. 겉보기에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 속에서는 매우 치열하게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죠. 사업을 하다보니 중간중간 정말로 많은 돌발 변수들이 생기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그래서 비즈니스는 일종의 종합예술 같은 느낌입니다. 모든 걸 다 고려해야 하고, 사소한 하나라도 놓치면 언제든지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죠. 저만 잘한다고, 저희 직원들만 열심히 일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에요. 운도 따라주어야 하고요. 타이밍도 잘 맞아야 하지요.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을 잘 만나야 합니다. 시운과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절절하게 절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조건들이 딱딱딱 들어맞아야 비로소 사업도 성공하는 것이죠.
그런데 어제의 성공이 또 내일을 담보해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매일매일 끊임없이 진화해야하고, 더더욱 앞장서서 앞서나가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잠자는 시간 외에는 늘 사업 생각을 합니다. 아니 잠잘 때조차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기를 안고 있을 때에도 생각하죠. 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내가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뭘 더 잘할 수 있을까 항상 골똘히 골몰하게 됩니다. 이건 창업가의 숙명이 아닌가 싶어요.
이병한 : 아기는 몇 살인가요?
윤태환 : 이제 8개월, 아들입니다.
이병한 : 한참 꼬물꼬물 귀여울 때네요. 루트에너지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며 요즘 말로 ‘신박하다’고 느낀 것은 에너지 사업에 파이낸스와 로컬 커뮤니티를 잘 결합시켰다는 점 때문입니다. “에너지 x 로컬 x 파이낸스”의 조합이라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처음 나온 것일까 궁금합니다.
윤태환 : 제 머리 속에서 독창적으로 나온 것은 전혀 아니고요. 덴마크와 독일에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시작된 것이에요. 특히 협동조합 형태로 많이 구성되었죠. ‘에너지 민주화’, ‘에너지 민주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독일에서는 ‘에너지 주권’이라고 많이 말하고요. 그 나라들에서는 지역과 금융의 결합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덴마크에 유학가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공학적 지식을 얻는 것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나라 사람들과 어울려보고 싶었습니다. 덴마크가 자랑하는 협동조합 활동을 직접 해보고 싶었던 것이죠. 에너지 민주화의 물결에 제 발을 담궈 보고 싶었습니다. 덴마크 시민들과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그들의 생활과 문화를 배워보고 싶었던 열망이 매우 컸습니다.
1970년대부터 거의 반세기를 경험하고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오늘날 독일은 거의 800만 주민이 재생에너지에 투자해서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충분히 성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궁리하게 된 것이죠. 우리나라 사람들도 돈을 싫어하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에너지를 잘 모르는 정보의 불균형 문제는 심각하죠. 에너지 문제를 돈과 연결시키면 한국에서의 반응이 덴마크나 독일보다 더 뜨거울 수 있다고 가설을 세운 것입니다. 여전히 검증하고 있는 단계이기는 해요. 지난 8년간 18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느 정도 입증되고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이병한 : 한국에서도 적용가능하다고 보시는 것이죠?
윤태환 : 네.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과 금융과 지역주민의 결합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할 수 있다고 결론이 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반응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요.
이병한 : 덴마크의 오랜 사민주의 전통을 이야기하셨잖아요? 독일은 또 비례대표제로 운영되는 국가이죠. 비즈니스라고는 해도 아무래도 정치제도와 사회문화와 무연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에너지 사업을 하시다보면 자연스레 공공적인 영역까지 관심이 미치지 않을까 짐작이 되는데요. 사업 그 이상의 어떤 액션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안해보셨을까요?
윤태환 : 일단 정치나 행정은 제 깜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고요. 사회민주주의나 비례대표제 같은 문화와 제도의 영향이 분명히 컸다고는 생각합니다. 다만 저로서는 좌/우나 진보/보수에 상관없이 재생에너지 사업에 시민들이 동참했던 동기와 이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사업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100만이 넘고 300만을 넘고 500만을 돌파하면서 정치가 바뀐 측면도 크거든요. 보수당이라고 하는 기민당조차도 에너지 전환에는 적극 참여할 수밖에 없는 동력을 민이 만들어낸 것이죠. 보수가 진보로, 우파가 좌파로 전향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재생에너지 정책으로 가지 않고서는 표를 얻을 수 없고 집권을 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죠.
저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형태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발산할 수 있는 미래의 씨앗을 심어보고 싶어요. 아직 루트에너지의 고객이 만 명이 안 됩니다. 현재 국내의 에너지협동조합에 가입한 분들을 모두 합해도 만 명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아요. 이 씨앗이 10만이 되고 100만 명이 되고, 300만이 되면...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도 좌/우와 보/혁에 상관없이 에너지 환경 분야만큼은 누구나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전망하는 것이죠.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고 하잖아요? 그 양-질 전환의 티핑포인트가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정치인들과 행정가들도 재생 에너지를 최우선으로 삼는 예측 가능한 정책을 설계할 수 있겠죠. 그래야 정권의 교체에 무관하게 정책의 지속성이 담보될 수 있고, 그래야 환경 비즈니스 또한 안정적이고 또 과감하게 도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루트에너지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저희들이 일하는 최고의 목적입니다.
이병한 : 사명이 ‘루트에너지’(Root Energy)인 것은 풀뿌리가 주도하는, 민초가 선도하는 재생에너지로의 대전환이라는 비전도 담겨 있는 것이겠군요. 그러함에도 기후재앙은 이미 진행 중인 것 같고요. 인류에게 주어진 대전환의 시간이 넉넉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정부와 대기업의 이니셔티브 또한 간과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정부가 설파하고 있는 그린뉴딜 정책도 있지 않습니까? 꼼꼼히 살펴보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실지요?
윤태환 : 저야 당사자가 아니고 주변자라서요. 정책을 직접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가 없으니, 결과만 지켜보는 입장이지요. 큰 방향성은 맞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비판이나 비평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계획이 나온 게 없습니다. 세부적인 디테일은 거의 없어요. 거창한 선언만 있었지 아직 구체적인 계획안을 본 적이 없습니다. (웃음)
이병한 : 가장 신랄한 비판이네요. (웃음)
윤태환 : 구상만 있을 뿐이라는 점은 정부나 여당도 다 인정하고 계세요. 저도 녹색성장위원회의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거든요.
이병한 : ‘녹색성장’이라 함은 이명박 정부 때 만들어진 기구인가요? 지금도 있는 것인지?
윤태환 : 네. 10년째 지속되고 있고요. 저는 3년차 활동하고 있습니다. 녹색성장위에서 활동을 해보아도 부족한 점이 태반이죠. 우리나라 정책은 여전히 경제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니까요. 코로나 대응에서도 마찬가지고요. 민생 회복을 최우선시하면서 정책을 입안하다보니 탈탄소 정책은 우선순위가 한참 떨어집니다. 많이 안타까운 상황이죠. 그간의 경험을 미루어 보아도 정치인이나 행정가들에게 맡겨둘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설령 그러한 의지가 있고 역량을 갖추고 있는 분이라 해도 여럿 중의 일부에 그치는 것이거든요. 지난 10년이 그러했듯이 아마도 앞으로 10년도 정치가 바뀌어서 짠-하고 대전환을 선도하는 그림은 어렵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말하자면 MB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현재 정부랑 똑같거든요. 변한 게 없어요. 앞으로 10년 정권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에너지 정책에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래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가 없을 테고요.
이병한 : 말잔치만 무성하고 요란했던 것이군요.
윤태환 : 결국 민간에서 저희들이 더 많이 더 깊이 더 넓게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이나 행정가가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의 힘은 국민들로부터 주민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2030년이 오기 전에 100만 명의 국민들이, 1000만 명의 주민들이 신재생 에너지 혹은 탄소중립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도 하고 금전적인 소득도 올릴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이유입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변화의 씨앗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사업에 동참한 바로 그 분들에 의해서 올바른 투표가 이루어지고, 그들이 선택한 정치인과 행정가들이 올바른 정책을 추진하게 되고 말이죠. 그 분들도 그런 변화를 기다리고 계신 것 같아요. 앞장서서 변화를 선도하기는 요원해 보입니다.
이병한 : 뼈아픈 지적이네요.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윤태환 : 어디까지나 제 경험에서 비롯한 주관적인 견해이니까요.
이병한 : 객관적인 팩트인 것 같습니다. 정부는 그렇다 치고요. ESG 등등 해서 기업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전환해 가려고 시도 중인 것 같은데, 이런 흐름은 어떻게 보실까요?
윤태환 : ESG가 글로벌 트렌드이기는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여전히 찬반이 여지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린 워싱(green washing)의 사례가 워낙 많아서요. 국내 ESG는 특히나 그린 워싱이 빈번하다고 생각합니다. 잠깐이기는 하지만 10여 년 전에 ESG를 평가하는 애널리스트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국제적인 기준의 인덱스를 활용해서 기업을 평가한 정보를 국민연금에 판매하는 일이었는데요. 그때나 지금이나 평가 기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당시에도 평가 지표는 너무 포괄적이고 기업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는 너무 불완전해서, 과연 분석 정보가 차별성이 있을까 의문이 많았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석유를 시추하는 회사인데 재생에너지에 조금 투자를 한다고 해서 ESG 기업으로 편입될 수는 없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는 긍정적인 평가 보고서를 올려요. 그래서 저는 ESG에 너무 맹목적으로 빠지면 안 되고, 그 추세와 지표 또한 제 3자의 견지에서 계속 비판적으로 지켜보고 견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기는 하되, 녹색세탁 없이 제대로 가야 하는 것이죠.
이병한 : 한국전력도 재생에너지 쪽으로 전환하겠다고 하죠?
윤태환 : 한전은 참 예민한 사안인데요. 재생에너지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으로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정부에서는 재생에너지 영역을 대규모로 키우기 위해서 공기업이 앞장서야 한다는 명분이 있다고는 생각해요. 전 지구적인 기준에 보자면 하루 빨리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들어야 하는 것인데요. 과연 어느 방식이 더 빠르면서도 더 많은 사회적 임팩트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공기업이 주도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지, 아니면 민간에서 선도하여 시장을 확장시키고 일자리까지 창출하는 선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등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죠.
이병한 : 한전 공대는 어떨까요? 에너지에 특화된 대학을 만들겠다는 것인데요.
윤태환 : 저에게도 이미 강의 요청도 들어왔습니다. 우리나라에 아직 에너지 전문 대학원이 없기는 해요. 카이스트나 유니스트도 에너지 전문 인력을 양성하지는 않거든요. 그런 기관이 필요하다는 점은 예전부터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당장 저부터가 국내서는 마땅히 공부할 곳이 없었기에 덴마크까지 유학을 간 것이니까요. 에너지 분야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기관을 만드는 것에는 찬성하는 편입니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괜찮을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관건은 어떻게 만들 것이냐 하는 것이죠. 과연 공기업에서 세우는 건이 좋을까? 한전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국립대학으로 만드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덴마크 공대는 학비가 전혀 안 들어요. 석박사 대학원 과정은 도리어 돈을 받으면서 배웁니다. 물론 그만큼의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죠. 사견이지만 저는 한전 공대보다는 국립대학이 더 좋은 방안일 것 같습니다.
이병한 : 기왕 민감한 사안을 여쭤본 김에 하나만 더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탈원전을 둘러싼 논란도 많잖아요. <인사이드 빌게이츠>라는 다큐나 그의 신간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을 보아도 원전을 폐기하기보다는 더욱더 진화시키는 쪽으로 접근을 하고 있는데요. 미래 에너지로서의 원자력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윤태환 : 저도 한참 빌 게이츠의 신간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그 분 또한 태양광과 풍력을 근간으로 하는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급진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 주된 논지라고 보고요. 그 외에 소형 원자로 기술도 앞으로 발전시켜야 할 분야로 꼽고는 계시죠. 저는 그 분의 관점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에너지에 보태어 금융까지 하는 사람의 견지에서 복합적으로 사안을 판단하게 되는데요. 온실가스 감축의 효과만 보자면 원전 또한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경제적 측면에서 리스크가 적지 않다고 생각해요. 과연 내 돈을 가지고 원자력에 투자할 수 있을까? 투자한 액수 이상의 이득을 회수할 수 있을 것인가를 궁리해 봅니다. 경제성에서 원전을 가동하는 운영비용이 매우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고가 나면 워낙 대형사고가 날 수 밖에 없는지라 보험 설계도 취약하고요. 이미 미국이나 프랑스의 원전 업체들이 적지 않게 파산하고 있어요. 투자자의 관점에서 원전은 리스크가 몹시 높은 상품인 것이죠. 아무리 한국의 원전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정부가 보증하지 않는 이상 펀드레이징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이병한 : 경제적 리스크는 그렇다 치고, 에너지 주권이랄까요. 에너지 민주주의 차원에서도 원전은 결국 중앙집중형 발전 방식을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윤태환 :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소형 원자로 기술이 이미 많이 진척되었고요. 분산 에너지로도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빌 게이츠도 이런 점을 주목하고 있죠. 빌딩 단위로도 소형 원전을 가동시킬 수 있으니까요. 다만 역시나 그 안전에 대한 보장을 누가 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딜레마가 있습니다. 우리 건물에 경수로가 설치되어 있는데 만의 하나로 사고가 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재난을 대비한 보험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금융을 하는 입장에서는 보험이 되지 않으면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거든요. 기술적으로야 원전을 작게 만들어서 분산 에너지로 쓸 수 있지만, 시장에서의 사업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보증보험을 만들지 않는 이상 상품이 보호되기 힘들다고 봐요. 2~30년 잘 쓰다가도 사고가 한 번만 터지면 그 건물 일대의 지역 전체가 초토화되는 것이니까요. 그 복구비용은 어떻게 할 것이며, 책임은 누가 얼마나 질 것이며, 간단치가 않다고 봅니다. 반면에 태양광이나 풍력은 태풍이 불어 사고가 나도 다 보험이 되거든요. 소형 원자로는 기술적인 차원이나 에너지 분산보다는 금융의 관점에서 회의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병한 : 금융 공부는 또 언제 하신 걸까요?
윤태환 : 일하면서 했습니다. 창업을 준비하면서 금융 공부도 시작했고요. 저도 공대 출신이라 금융에는 문외한이었는데, 직접 회사를 경영하자니 모르면 안 되더라고요. 닥치니까 배운 거죠. 지금은 어떤 금융 회사를 만나도 다 협상이 가능한 정도의 실력을 키웠습니다. 새로운 금융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까지 역량이 올라온 것 같아요.
이병한 : 사업을 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공부까지 병행하고 계신데, 사생활 없이 정말 모든 시간을 일에 쓰시겠구나 라고 짐작하게 됩니다. 지금 저희가 이야기 나누고 있는 이 공간은 회사인데요. 개인적인 공간은 어떠할까요? 평소에는 어떤 곳에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일상이 궁금합니다.
윤태환 : 조그마한 아파트에 부인과 어린 아기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방이 따로 있지도 않아요. 옷 방에 책상 달랑 하나 있는 게 제 방처럼 되었습니다. 거실에 TV를 없애고 서재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와이프나 저나 워낙 책을 좋아하거든요. 지금은 육아가 가장 중요한 시기인지라, 집에서는 아이 보는데 시간을 가장 많이 쓰고 있죠. 퇴근하면 육아 출근을 하는 셈입니다. (웃음) 밥 먹이고 목욕 시키고 젖병 소독까지 끝나면 얼추 밤 12시? 그제야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이병한 : 가정적이시군요? (웃음)
윤태환 : 부인이 올 타임 육아를 하고 있어요. 양가가 도와줄 수 없는 형편이라서요. 제가 귀가해야 그나마 잠깐 쉴 수 있는 것이죠. 그렇게 8개월째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책도 더 많이 읽고 여행도 가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 또한 여의치 않게 되었죠. 저희도 늦게 결혼을 하고 늦게 아이를 가져서 임신부터 출산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조산의 위험도 없지 않았고요. 병원에 일찍 입원해서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아이와 부인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갓난아기를 겨우 재우고 나면 잠깐 영화를 보거나 커피 타임 가지는 정도? 맥주 한 캔 하면서 담소를 나눕니다.
이병한 : 집에 태양광을 설치해 두지는 않으셨고요?
윤태환 : 베란다도 없는 아파트에 살아서요. 대신에 단열을 제대로 해두었죠. 4중창 통유리로 에너지 관리비는 훨씬 적게 나옵니다. 태양광은 달지 못했지만, 태양광에 투자는 많이 해두었고요. (웃음)
이병한 : 제가 요즘 파타고니아 맥주를 즐겨 마시는데요. 친환경 비즈니스 하시는 분들이 가장 선망하는 기업 중의 하나가 파타고니아잖아요. 아까 인사드린 직원 한 분도 파타고니아 외투를 입고 계시기도 하던데요. 파타고니아와 협력하는 활동도 있으시죠?
윤태환 : 네. 한국에 파타고니아 매장이 마흔 개 정도 있습니다. 그 전국 전 매장의 모든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전환시키려고 해요. 원래는 2025년까지가 목표였는데, 올해까지 그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기로 앞당겼어요. 어떻게 전면적 혁신을 달성할 수 있을지 자문하고 협의하는 중입니다.
이병한 : 덧붙여 자랑하고 싶거나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윤태환 : 저희 루트에너지의 미션이 재생에너지 전환을 10년 이상 앞당기는 것입니다. 탄소 중립을 10년 이상 앞당기는 것이죠.
이병한 : 그럼 2040년이 목표인가요?
윤태환 : 가능하면 더 일찍 달성되면 좋겠습니다. 최소한 정부가 설정한 목표보다는 10년 이상 빠르게 진척시키고 싶어요. 크게 두 가지를 준비 중인데요. 첫째가 저희가 가덕산 풍력발전소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내었습니다. 강원도 태백에 43메가와트 풍력발전소를 설치하면서 태백시민들만 제한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내었죠. 덕분에 올해는 전국 몇몇 곳에서 주민들의 커뮤니티 펀딩으로 대규모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들을 짓는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 프로젝트들이 잘 진행되어 가면서 규모가 더 큰 사업 또한 다섯 건 정도 담당하게 될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그간의 저희 플랫폼에서는 재생에너지 사업, 태양광과 풍력 중심으로만 투자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있었는데요. 앞으로는 이것을 탄소중립 프로젝트 전체로 확대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이셀프로젝트에 대한 인터뷰도 하셨잖아요? 그런 대체육이라든가 대체가죽, 전기버스, 로컬 푸드 등등 그 모든 비즈니스가 다 온실가스와 관련된 것이니까요. 그런 사업들에게도 저희가 금융을 해주는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려고 합니다.
이병한 : 임팩트 투자를 직접 하시겠다는 뜻인가요?
윤태환 : 임팩트 투자를 일반 국민들이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다는 것이죠, 탄소 중립을 지향하는 임팩트 투자에만 특화시켜서 말이죠. 그쪽으로는 저희가 전문성이 있기 때문에 유망한 기업들과 의미있는 프로젝트를 발굴해서 금융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어요. 특히 모든 국민들과 시민들과 주민들이 다함께 탄소중립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드리고 싶은 것이죠. 올해 꼭 해보고 싶은 일입니다.
이병한 : 굉장히 신선한 아이디어 같습니다.
윤태환 : 기후위기나 에너지, 환경 등등 거대한 이야기를 하면 정작 일반 시민들은 자신들의 일상에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낙담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희를 통해서, 루트에너지가 확보하고 있는 정보를 잘 활용해서 새로운 도전에 직접 나서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드리고 싶습니다. 올해는 재생에너지 전환을 넘어서 전방위적인 탄소중립으로까지 루트에너지의 미션이 확장되는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뜻을 함께하는 우군들을 많이 모아야지요. 안타깝게도 온실가스를 줄이는 사업에 뛰어들었던 분들이 그사이 많이 줄었거든요.
이병한 : 줄었다고요? 이제야말로 시작인 것 아닌가요?
윤태환 : 저랑 비슷한 시기에 창업했다가 사업을 접은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시장이 대기업과 공기업 중심으로 많이 왜곡되어 있어요. 에너지 환경 쪽으로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밖에 없는 시장인데다가 정권에 따라서 방향이 많이 바뀌기 때문에 건강한 시장 생태계가 잘 만들어질 수 없는 구조입니다. 지난 정권에서는 원전을 중시하는가 했더니, 현재 정권에서는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갈팡질팡, 오락가락하는 것이죠. 다음 정권에서는 또 어떻게 바뀔지 확실치 않은 것이고요. 이처럼 예측 불가능성이 증폭되면 스타트업들은 살아남기 힘들어집니다. 자본으로 버텨낼 수 있는 대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죠.
한때는 태양광 업체가 2만개가 넘었어요. 2014년 전후로 싹 사라지고 3000여개만 남았고, 작년부터 또 그런 변화가 진행 중입니다. 현재 정부가 말하는 탄소 중립 정책 또한 아젠다만 있지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국민들의 인식도 아직은 따라오지 못하고 있고요, 우리가 사업을 준비하는 동안 의식의 전환도 벌어지면 좋은데, 한참 후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요. 고객들의 선택은 늘 나중이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6개월, 1년이라도 앞당길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유럽을 보면 폭스바겐 전기차와 기존의 가솔린 차 사이의 가격 차이가 꽤 많이 납니다. 여전히 전기차가 더 비싼 것이죠. 대신에 정부가 가솔린차에 세금을 엄청 매겨서 전기차 가격과 거의 비슷하게 만들었어요. 정부의 정책으로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선택을 전기차 구매로 유도하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여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편이에요. 전기차에 비하면 디젤차가 월등히 싸기도 하고요. 탄소세나 기후환경세 등 조세 제도 개혁 등 게임의 룰을 바꾸어야 합니다.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시장의 규모와 성숙도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죠. 아이디어와 테크놀로지가 있다고 해도 시장에서 팔려면 비싸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과연 소비자들이 그 제품을 구입해 줄 것인가. 쉽지 않아요. 아니 매우 힘든 형편입니다.
이병한 : 이런 쪽 스타트업들이 어렵다는 것은 한국적인 상황인가요? 아니면 글로벌한 상황일까요?
윤태환 : 한국적인 상황입니다. 비건 문화가 잘 형성되어 있고, 탄소 세금이 잘 정착되어 있는 독일이나 유럽은 지구와 생명을 살리는 스타트업들이 창업하면 훨씬 잘 될 수 있죠. 리사이클이나 업사이클 하는 의류 회사들도 유럽에서도 꽤나 잘 나가고 있어요.
이병한 : 그래도 최근에 SNS 등을 보면 이런 방면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젊은 세대들이 꽤 많아지고 있는 것 같던데요?
윤태환 : 네.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10대와 20대가 의식 있는 가치소비활동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겠죠. 정부가 조금 더 강력한 시그널만 줄 수 있으면, 전 연령대가 그렇게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탄소 배출이 적은 비건 상품이 더 저렴해져야 하고, 탄소 배출이 적은 자동차가 더 싸져야 하고, 탄소 배출을 줄인 옷과 신발이 더 잘 팔리게 유도해 주어야죠. 정책이 그렇게 설계되어야 소비자들의 인식과 선택도 바뀌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친환경 비즈니스에 대한 임팩트 투자도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겠죠. 그런 선순환의 고리가, 산업 생태계가 조성되기길 바랍니다.
이병한 : 태양광에 주력하고 계시잖아요? 최근에 일각에서는 인공태양을 주목합니다. 핵분열이 아니라 핵융합을 시켜서 미래에너지를 확보하자는 것인데요. 인공태양은 어떻게 전망하세요?
윤태환 : 핵물리학자들의 이상적인 기술인데요. 많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20년 전에도 20년 후에는 된다고 그랬거든요. 지금도 20년 후에는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지요. 저 또한 인공태양광이 달성된다면 정말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 20년 동안에는 다른 대체재가 반드시 필요한 것 아니겠어요? 저는 태양광이나 풍력으로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미국의 텍사스에서 한파로 정전 사태가 일어났잖아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정유업계가 있는 곳이 텍사스입니다. 석유화학 공장들부터 시추공장까지 엄청나게 많아요. 최근에는 셰일가스 기업까지 많이 생겼고요. 화석연료를 가장 많이 쓰는 텍사스가 한파 피해가 가장 컸던 것이죠.
그런데 텍사스에 테슬라 공장도 있거든요? 테슬라 공장은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ESS 배터리를 설비해 두었기 때문이죠. 즉 굳이 핵융합까지 가지 않더라도 태양광과 풍력에 수소와 배터리 기술만 더욱 고도화되면 에너지의 생산과 보급과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인공태양 연구를 꾸준히 할 필요는 물론 있겠죠.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늘 최악과 차악을 준비해 두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인공태양을 기다리고 있기보다는 하루 빨리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전력을 기울이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라도 텍사스처럼 될 수 있다고 보아요. 한파부터 폭염까지 기후재난은 앞으로 수시로 찾아볼 것이니까요.
이병한 : 일각에서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기 위해 멀쩡한 산을 깍는다 등등, 환경을 더 파괴한다는 설도 없지 않습니다.
윤태환 : 산에 나무를 심는 것보다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게 더 낫다고 말하는 강경한 재생에너지론자도 있기는 해요. 국가 간 전쟁보다 기후재앙이 더 큰 위기이기 때문에 서둘러 그렇게 가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저는 나무가 줄 수 있는 가치를 온실가스 감축 효과로만 따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제가 남산 근처에 사는 이유가 산책을 어릴 때부터 좋아해서거든요. 자연에서 누리는 여가 활동의 가치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 산에다가 태양광을 짓는 사업은 시행이 어렵도록 정책이 바뀌었습니다. 산을 깍아 지은 태양광 발전은 대부분 지난 정부에서 허가를 내준 것이에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구태여 멀쩡한 산을 깍아서 태양광을 설치할 필요는 없다고 여깁니다. 공장의 옥상이나 건물의 지붕을 활용해도 좋고요. 간척지에도 쓰임이 다한 땅도 적지 않거든요. 수상 발전과 해상 발전의 여지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동해와 서해, 남해까지 3면이 바다이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산이 아니더라도 재생에너지 전환을 100% 달성하는데 하등의 문제가 없습니다. 전남 고흥이나 당진에도 염해 농지가 많아요. 염도가 높아서 더 이상 농사를 못 짓는 땅이 되고 만 것이죠. 거기에 태양광 발전을 설치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앞바다에서는 해상 풍력을 해볼 수 있고요. 해상 풍력은 아직 한국의 기술이 선진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태양광은 충분히 해볼 만한 프로젝트가 되겠죠.
이병한 : 시중에는 태양광 패널이 다 중국산이어서 중국에만 이로운 일라는 설도 있습니다.
윤태환 : 사실 중국산 패널이 성능도 좋고 가격은 더 싸요. 사업하는 입장에서는 중국제를 선호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상품들 가운데서도 중국제가 엄청 많잖아요. 그 중국화 되어 있는 공산품 시장 가운데 태양광도 있는 것이지요. 유독 태양광만 꼬집어 국산 타령하면서 딴지를 거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과연 국산품을 보호하면 만사형통일 것인가도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오히려 기술력을 더 떨어뜨릴 수도 있어요. 앞으로 태양광은 세계적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큰 시장인데요. 국내 업체들도 경쟁력을 확보해야 해외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중국과 인도와 미국 등 가장 큰 시장에서도 기술경쟁력과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경합할 수 있으려면 보호가 능사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병한 : 태양광도 풍력도 결국 천상자원인데요. 하늘의 변화, 기후와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년에는 장마가 석 달 가까이 지속되기도 했잖아요. 간헐성의 제약은 어떻게 극복할 수가 있을까요?
윤태환 : 재생에너지 발전의 유일한 흠이죠. 햇볕의 내리쬠과 바람의 불어옴과 멈춤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으니까요. 지리적으로도 편차가 있어요. 극지방으로 갈수록 바람이 좋고요. 적도로 갈수록 태양광이 유리합니다. 그래서 기술적인 대안과 금융적인 대안을 함께 마련해야 합니다. 간헐성을 채울 수 있도록 리튬이온 같은 배터리 기술을 고도화시키고, 수소 저장 기술도 발전시켜야 하고요. 금융적으로는 보험 상품을 잘 설계해야 하겠죠. 그래도 작년의 긴 장마에도 불구하고 평균 이상의 발전은 했던 것으로 나와요. 역시 기술적 진화의 성취였습니다. 패널당, 단위 면적당 발전 효율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죠. 지난 2년 사이에 2배 이상 높아졌습니다. 기술적 대안에 먼저 주력하고, 금융적 대안까지 보완이 된다면 간헐성 문제는 제법 해결이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이병한 : 역시나 테크놀로지에 파이낸스까지 결합시켜서 대안을 궁리하시는군요. 8년간 사업을 해오시면서 체화된 접근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국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임팩트 투자 플랫폼은 꼭 만들어 주시면 좋겠어요. 저도 기꺼이 참여해 보고 싶습니다. 새로운 차원의 ‘동학개미운동’으로 업그레이드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긴 시간 긴한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윤태환 : ‘에너지 시민성’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부와 대자본이 주도하는 흐름에 수동적으로 따라가고 끌려갈 것인가. 아니면 내 돈을 내는 자발성과 직접성으로 시민이 주도하는 에너지 대전환을 견인해 낼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라도 좋은 정보를 계속 제공해야 하고, 좋은 교육 프로그램도 많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에요.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양성되어 생명산업으로 유입이 되고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결국은 나라와 세계 전체가 바뀌어 가는 것이죠. 저는 이미 강원도 태백의 사례를 통해서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목도한 바 있습니다. 2040년, 2050년, 제 아들이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었을 미래를 내다보면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긋하게 꾸준하게 지극한 정성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일구어내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후회가 없도록, 아낌없는, 남김 없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 또한 감사합니다.
윤태환 대표가 초등학생 때 읽었다는 <지구 실험실>을 찾아 읽었다. 지금은 절판되어 알라딘 중고책에서 구했다. 내가 좋아하던 사이언스북스의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의 열 번째 책이었다. 그 시리즈를 탐독하던 시절이 대학생 때이다. 초등학교 6학년에 읽었다고 하니, 역시나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남다른 모양이다. 시종 진지하고 신중하며 사려 깊었다.
오는 6월 21일이 ‘세계 로컬화의 날’(world localization day)이다.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호지가 이끌고 있는 '로컬 퓨처스'(Local Futures)에서 정한 미래를 기념하는 날이다. 생명살림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춘천시가 올 가을 준비 중인 <생명:하다, 춘천써밋>을 소개할 수 있는 1시간을 할당받았다. 나는 그간 인터뷰해왔던 스타트업 CEO들도 소개하고 싶었다. ‘생각하다’, ‘생활하다’에 ‘생산하다’까지 결합되어야 생명하는 문명, 살리는 문명, 생명문명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강원도 태백에서 거둔 루트에너지의 성과를 전 세계의 로컬 운동가들에게 알리자고 했더니, 아직은 이르다며 손사래를 친다. 태양광 커뮤니티 펀딩에 투자한 태백 주민들의 만족도를 이제야 모니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행복감이 높아졌는지 제대로 추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채 1만 명도 되지 않는 참여자 규모는 본인이 목표로 하고 있는 수십만, 수백만에 한참 모자라다고도 했다. 그 정도의 성취를 이룬 다음에야 당당하게 루트에너지를 세계를 향해 소개하고 싶다는 것이다. 춘천 행사의 총기획자로서 아쉬움이야 말할 바 없으나, 그의 이러한 태도에 더 큰 감동을 받았다. 울림이 있고 떨림이 있는 사람이다. 믿음직스러웠고 미래가 더욱 기대가 되었다. 당장 나부터 루트에너지의 앱을 다운로드했다. 밝은 미래를 청정한 미래를 접속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겠다.
에너지 민주주의, 라는 말을 거듭 곱씹어본다. 에너지 시민성, 참여 에너지라는 표현도 흥미롭다. 기왕의 민주주의는 역시나 인간 중심, 사람과 조직이 쥐고 있는 권력과 권한을 민주화하는데만 골몰했던 것 같다. 권력(power)의 근간에 에너지(energy)가 있다. 에너지를 얻는 자,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 에너지의 생산과 유통과 소비를 민주화시켜야 권력의 민주화도 내실을 다질 것이다. 20세기의 에너지 산업처럼 계층적이고 위계적이며 지휘 통제적인 세계도 없었다. 대형은행은 대형에너지 자산에 투자하고, 대형발전소는 개인과 가정, 기업에 에너지를 판매했다.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 흐르고, 현금은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대형 에너지기업의 의사결정은 소수의 개인과 이사회에서 이루어졌으니 사용자와 사회는 배제되어왔던 것이다. 참여에너지란 에너지를 최종적으로 소비하는 개인과 가정과 지역사회에 에너지의 발전과 송전과 저장과 관리와 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루트에너지의 실험이 기대가 되는 것은 여기에 참여금융까지 접목시켰다는 점이다. 개인과 가정과 지역사회가 자신들이 사용할 에너지 자산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개인과 지역에 권능을 부여하는 것(empowerment)이다.
지역 분권을 이야기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권력의 분산을 논의한지도 한참이다. 그럼에도 서울 중심, 수도권 중심, 대기업 중심의 사회체제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집중도가 도리어 더 심화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모순의 근저에 만물과 만사를 움직이는 근원, 에너지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윤태환 대표가 직접 정치를 언급한 적은 단 한마디도 없었으나 그가 하는 사업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다. 혁신적인 에너지-파이낸스-로컬 비즈니스의 융복합으로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가 합작한 한국 근대화의 결실, 서울공화국의 적폐를 청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인터뷰를 정리하던 와중에 새만금개발공사의 강팔문 사장을 뵈러 갈 일이 생겼다. 새만금 일대에도 루트에너지가 참여한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이 가동되고 있었다. 산부터 섬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루트에너지의 흔적을 발견할수록 한국의 민주주의는 뿌리로부터 달라질 법하다.
지난 8년 잘 버티어내어 기본기를 탄탄히 다져두었으니, 앞으로 10년이 관건이 될 것이다. 십년이면 강산이 바뀌고, 강산(江山)이 바뀌는 십년이 삼세번, 한 세대가 이어지면 재조산하(再造山河), 새 나라를 이룰 수도 있다. 파괴적 혁신이 일어날 것 같다. 핸드폰이 유선전화 시장을 붕괴시키는데 필요한 시간이 10년이었다. 스마트폰이 디지털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버리는 데도 10여년이 소요되었을 뿐이다. 구리가 모자라서 유선전화 비즈니스가 종식된 것이 아니다. 핸드폰이 더 빠르고 더 깨끗한 서비스였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더 편리하고 매력적인 도구였기 때문이다. 누구나 콘텐츠를 생산하고 저장하고 전송하고 소비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한 것이다.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이용자에게 권력을 선사한 것이다. 기왕의 미디어산업과 통신산업을 ‘참여 소비자’들이 뒤흔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기술 혁신만으로 기왕의 상품과 산업을 몰아내 시장을 붕괴시키는 것은 아니다. 기술 혁신 못지않게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도 수반이 되어야 한다. 공학에 경영학이 결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역시 금융 혁신이다. 일백년 전의 사례를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1918년 미국에서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가정은 8% 남짓이었다. 상위 10%에 드는 사람들만 소유할 수 있는 고급의 사치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불과 10년 만에 80%의 집안이 자동차를 보유하게 된다. 자동차 기술이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서가 아니었다. 엔진이나 변속기를 새로 달았다고 자동차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금융의 혁신으로부터 말미암았다. 할부금융이라는 당시로서는 전례가 없던 신상품을 개발해낸 것이다. 한 번에 제값을 지불하지 않고도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그 10년간 자동차를 구매한 사람의 8할이 할부금융으로 구입한 것이다. 금융의 혁신이 자동차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했던 것이다. 태양광 기술도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패널의 효율도는 날로 높아지고, 배터리의 저장 기술도 점점 고도화되어간다. 전기자동차와 자율차 역시도 앞으로 10년 비약적인 성장을 이룰 것이다. 이 모든 생명산업 생태계가 공진화하여 그린-클린 에너지 비즈니스를 추동해갈 것이다. 다시금 화룡점정이 금융이 될지 모른다. 이 거대한 에너지 대전환의 물결에 개개인이 동참하고 기여하고 그 결실을 나누어가질 수 있는 참여금융의 혁신적 솔루션을 루트에너지가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생명평화운동이라는 것이 있었다. 죽임의 문명을 살림의 문명으로 반전시키려는 깨어있는 사람들의 정성스러운 운동이었다. 그 생명평화운동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지리산의 실상사이다. 도법스님이 터하고 계신 곳이다. 스님을 뵈러, 또 생명평화운동의 차세대 3040 활동가들을 만나러 지리산으로 향했다. 테슬라를 몰고 가며 탄소 한 움큼 배출하지 않고 세 시간을 달렸다. 기왕의 생명평화운동에 가지는 터럭 하나의 아쉬움이 바로 이 지점이다. 새로운 생각이 있었다. 새로운 생활도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생산에는 이르지 못했다. 생각과 생활과 생산의 선순환으로 새로운 생명문명의 건설까지는 이루지 못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생명평화‘운동’에 그쳤다. 운동이 문명으로 나아가는 데, 대안이 대안으로 그치지 않고 주류로 진화하는 데 필히 기술과 경영과 금융이 접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고민과 고뇌가 켜켜이 쌓여 있었기에 2021년을 맞이하여 나부터 생명산업 스타트업의 CEO를 만나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나는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 순진한 시장 숭배자도 아니요, <포스트-피크>에서 설파하는 것처럼 시장 경쟁이 강요하는 기술혁신이 환경문제까지 완전히 해소해줄 것이라는 환상도 일절 품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시장의 혁신이 상당한 에너지 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무시하고 자본과 기업과 금융에 담을 쌓고 땅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능사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올해가 마침 <녹색평론> 창간 30주년인바, 녹색평론과 녹색대학과 녹색연합과 녹색당 등등 녹색진영에서 고수해 왔던 농본주의적 생각과 생활에 일대 파괴적 혁신이 필히 요청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인류사를 곰곰 되돌아보면 농업의 시작이야말로 가장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자연에 대한 개입의 출발이었기 때문이다. 즉 농업은 태초부터 자연스럽지 않았다. 자연을 강조하며 기술과 산업과 공학을 배타하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이제야 때가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부도 ‘그린 뉴딜’을 설파하고, 기업도 ESG로 전속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10년, 이 거대한 물결에 적극적으로 타고 올라 그린 워싱(green washing)이 아니라 그린 웨이브(green wave)로 심화하고 확장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도맡아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이 흑 아니면 백으로 양단간에 나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 아니면 도라는 태도 또한 무책임할 수가 있다. 생명평화운동가들과 생명산업 비즈니스맨들부터 눈빛을 나누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대동소이, 구동존이의 태도를 견지하며 기왕의 좌/우, 노동/자본, 진보/보수, 농촌/도시라는 낡은 구도를 혁파하는 대통합과 대연합과 대연정을 솔선수범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구 공학(geo-engineering)’조차도 마냥 삐딱하지만은 않다. 지구에 대한 인간의 개입의 끝판왕이 지구공학이라 할 것이다. 이미 대기 중의 탄소를 포집해 돌로 만들어 땅에 묻어버리는 기업도 생겨났다. 우주에 방어막을 설치해 지구에 내리쬐는 일사량을 줄이려는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이 모든 사업이 시행착오를 반복하다 죄다 실용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될 지도 모른다. 이러한 인위적인 지구 관리는 결국 차선책에 그칠 뿐이라는 점 역시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러나 그 무모한 시도와 도전에 있었기에 인류가 진화하여 현재의 문명까지 이룩할 수 있었다는 사실 또한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무모한 도전, 무한도전에 나설 것이다. 그들을 향해 미리 녹색 근본주의의 견지에서 그것은 답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단정 짓는 사람이야말로 교만하고 오만한 것이며 인류의 진화에 훼방을 놓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재 등장하고 있는 수많은 기후-테크(climate-tech), 어스-테크(earth-tech) 가운데 그 어느 것도 금세기에 현실이 될 수 없다고 해도, 그 가능성과 기회를 탐구하고 실험하는 일만은 배척할 것이 아니라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할 일이다.
<마이셀프로젝트>는 땅에서 피어나는 곰팡이, 균사체에서 지구의 미래를 구한다. <마린 이노베이션>은 지구의 7할, 바다의 해조류에서 청정한 환경의 대안을 찾는다. <루트에너지>는 태양이 떠있고 바람이 불어오는 하늘로부터 지속가능한 인류의 내일을 열어가고자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우뚝 솟아난 것이 산이다. 한국은 국토의 7할이 산이라고 한다. 그 산에서 산삼을 키우는 여성 CEO가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산삼을 재배하는 것이 아니었다. 로봇이 한다. 로봇공학과 임업의 창조적인 융복합, 심바이오틱(SYMBIOTIC)의 김보영 대표를 만나러 간다. 첩첩산중 강원도에 계셨다. 굽이굽이 원주와 평창을 차례로 찾았다.
출처 |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