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02

알라딘: [전자책] 책, 이게 뭐라고

알라딘: [전자책] 책, 이게 뭐라고

] 책, 이게 뭐라고  대여 epub 
장강명 (지은이)arte(아르테)2020-09-28 

책소개

책, 팟캐스트, TV 프로그램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책을 중심에 둔 소통을 시도해온 작가 장강명. 결혼에 대한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던 첫 번째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 이후 4년 만에 펴낸 장강명의 두 번째 에세이 <책, 이게 뭐라고>는 독서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2년여간 진행하면서 만난 책과 사람, 직접 만든 작은 독서 공동체에 대한 경험 그리고 전업 작가의 현실적인 고민과 미래를 향한 작가적 야망까지 진솔하게 써 내려간 40편의 글로 엮었다.

명백하게 ‘읽고 쓰는 인간’ 장강명이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통해 말하고 듣는 세계에서 펼치는 고군분투가 퍽 실감 나게 그려져 있다. 장강명은 ‘읽고 쓰는 세계’와 ‘말하고 듣는 세계’를 대비하면서 “맥락과 교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소통 방식을 배워가는 과정이 “꽤나 분열적인 작업”이었다고 고백하면서도, 마치 묘기를 부리는 듯한 재치와 우애가 한껏 담긴 대화는 예술의 경지와도 같았다고 말한다. 두 세계의 균형을 익혀가는 성숙의 과정을 솔직하게 풀어냈다.
목차
프롤로그_ 어지간하면 다 나간다는 자세와 최순실 게이트

1장_
말하는 작가의 탄생
오후 4시 52분 마산행 무궁화호 열차와 코딱지 삼촌
정액제 스트리밍 상품과 우리의 미래
셀럽 비즈니스와 비굴한 후보정 프로필 사진
점점 더 화려해지는 백화점 인테리어와 손오공이 처음으로 받은 불경
소크라테스식 산파술과 ‘비포’ 시리즈
회의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는 소설가와 온갖 암초 같은 딜레마
진짜로 들으려 하는 사람과 공포의 지하 특훈

* 장강명의 읽고 쓰는 세계 ① ― 내 인생의 책

2장_
책을 읽는 일, 책에 대해 말하는 일
한밤중에 TV 책 소개 프로그램과 거기에 나오는 특이한 이력의 소설가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공동체와 짧고 차가운 경멸의 시선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열아홉 살들과 무앙 사르투에서 열린 도서전
예비 장인이 예비 사위에게 하는 질문과 맨정신 토론
1만 명과 교제한 사람과 1만 권을 읽은 사람
안타인지 파울인지 애매한 타구와 비 오는 날 반납해야 하는 책
비논리적인 생각의 결론과 물성을 강조하는 흐름
이라크 공군 조종사를 회유하는 작전과 아카데미상 수상자 자레드 레토
울란바토르 백화점에서 산 미니어처 보드카와 이스라엘 소설가 에트가르 케레트
논쟁적인 주제를 파고드는 책과 공공도서관에 보급하기 위해 구매하는 도서 목록
폴리네시아 원주민들이 쓰는 말과 고매한 인간에 대한 판타지
당신만의 오디오 콘텐츠와 크리스마스 책 홍수
마오쩌둥의 다채로운 독서생활과 곰팡이가 만드는 기하학적인 균사

* 장강명의 읽고 쓰는 세계 ② ― 끝내주는 책

3장_
말하기-듣기의 세계에서 만난 작가들
저승에서 돌아온 남자와 마케팅의 부스터
신선한 피에 환장하는 드라큘라와 몰래 우월감을 품는 작가들
단 한 사람의 독자와 죽음을 기다리는 병든 짐승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와 구식 저널리즘의 열렬한 지지자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감각과 젊은이들이 이별하고 들었던 노래
기준 없이 손 가는 대로 집어 들었던 몇 권과 포인트 적립이라는 유혹
첨단 플랫폼에서 강조하는 정절과 내가 고치지 못하는 나쁜 버릇
막시밀리안 3세 요제프 선제후의 답장과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느님 품으로 돌아오는 험버트 험버트와 옛 연인이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 장강명의 읽고 쓰는 세계 ③ ― 숙제 같은 책

4장_
그럼에도 계속 읽고 쓴다는 것
사람을 장난감처럼 여기는 악취미와 길들지 않는 야수들의 왕국
수도꼭지를 올리는 순간 콸콸 쏟아지는 뜨거운 물줄기와 저음을 잘 구현하는 오디오 장비
불확정성원리에 대한 20세기 예술가들의 반응과 변화를 일으키고 발전의 길을 제시하겠다는 실제적인 전망
부잣집 딸과 결혼하겠다는 생각과 인간이 스스로를 가축화한 과정
영화 제작자들이 제인 오스틴을 좋아했던 이유와 제인 오스틴을 너무 싫어했던 마크 트웨인
세 번째 소챕터의 제목과 유튜브로 검색하는 아이들
세탁실의 배수구와 바둑 기사들의 전성기
영원한 갈증에 시달리는 탄탈로스와 렉사프로를 처방받은 소설가
축제의 열기와 반드시 흔적을 남기는 글

* 장강명의 읽고 쓰는 세계 ④ ― 충동 대출

에필로그_
지향성 마이크와 서툴게 걷는 양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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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이게 뭐라고>에 출연하기로 한 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날 새벽에 연락을 받았다.
P. 22~23 1장. 말하는 작가의 탄생

나는 궁금하다. 왜 여섯 살짜리조차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그런 환상을 품는지. 왜 1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조차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어가면 행동이 조심스러워지는지. 책, 그게 뭐라고?
P. 25 나는 인세로 먹고살고 싶었다. 책을 잘 쓰면 책이 잘 팔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문 칼럼이나 시사 프로그램 패널 출연, 외부 강연 같은 가욋일에 한눈팔지 말고, 잘 팔릴 만한 재미있는 신작을 쓰자 마음먹었다.
2017년 봄이 되자 그 결심이 아래서부터 흔들렸다. 당대 한국 소설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 작가 책 괜찮더라’는 평가를 받아도 판매량은 신통치 않다. 애초에 독서 인구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도 사는 작가가 돼야 인세로 먹고살 만해진다.  접기
P. 33 20세기소녀는 나를 연예인처럼 보이게 하려고 작심한 것 같았다. 그날은 말하는 장강명이 말하는 사람들의 업계에 본격적으로 데뷔하는 날이기도 했다. 사진을 찍으며 스타일리스트가 가져온 셔츠 두 벌과 재킷을 번갈아가며 입었다. 사진가는 카메라 앞에 선 내게 “편하게 하시면 돼요”라고 했지만, 그 말은 아무리 들어도 절대 편해지지 않았다.  접기
P. 48 시간을 견디는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하고 물을 수 있겠다. 나는 그 질문이 어쩌면 쓰는 인간과 말하는 인간을 가르는 중요한 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화와 녹음기가 생기기 전까지 말하기와 듣기는 그 행위가 이뤄지는 시공간에 집중하는 의사소통 기술이었다. 실시간 메신저가 등장하기 전까지 쓰기와 읽기는 (필담이라는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보통 마주하지 않은, 다른 시간에 있는 사람을 향했다.  접기
P. 56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논란의 상당수는 예의와 윤리를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 것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예의와 윤리는 폭력을 줄이기 위한 두 가지 수단이다. 이 두 덕성은 서로 겹치지 않으며, 맥락과 상황의 문제(예의)를 보편적인 법칙(윤리)으로 만들고자 할 때 종종 충돌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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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장강명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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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동아일보〉에서 11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상과 오늘의작가상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 《호모도미난스》, 연작소설 《뤼미에르 피플》 《산 자들》, SF소설집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과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 《책, 이게 뭐라고》, 논픽션 《당선, 합격, 계급》 《팔과 다리의 가격》을 출간했다. 접기
수상 : 2016년 오늘의작가상, 2015년 문학동네 작가상, 2015년 제주4.3평화문학상, 2014년 수림문학상, 2011년 한겨레문학상
최근작 : <표백>,<책, 이게 뭐라고>,<책 한번 써봅시다> … 총 60종 (모두보기)
인터뷰 : 소설적 야심을 말하는 작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장강명 인터뷰 - 2015.09.03
SNS : //twitter.com/tesomiom
출판사 제공 책소개


현실에 발을 딛고, 더 멀리 더 깊이 세상을 보고 싶은
‘읽고 쓰는 인간’ 장강명의 책에 대한 생각들

“우리는 읽으며 과거와 대화한다. 우리는 쓰면서 미래로 메시지를 보낸다.
지금의 상식 대부분을 고작 50년 전 사람들이 듣는다면 격분할 것이다.
같은 원리로 50년 뒤 독자들에게 존중받으려면
우리 시대 사람들 다수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할 테다.” _ 228쪽

책, 팟캐스트, TV 프로그램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책을 중심에 둔 소통을 시도해온 작가 장강명의 에세이 『책, 이게 뭐라고』가 아르테에서 출간되었다.
장강명은 2011년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 10년간 장편소설 『댓글부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한국이 싫어서』, 연작소설집 『산 자들』 등 여러 작품을 선보이면서 당대와 그에 속한 인간 존재에 대한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그만의 깊은 사고로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는 한국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결혼에 대한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던 첫 번째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 이후 4년 만에 펴낸 장강명의 두 번째 에세이 『책, 이게 뭐라고』는 독서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2년여간 진행하면서 만난 책과 사람, 직접 만든 작은 독서 공동체에 대한 경험 그리고 전업 작가의 현실적인 고민과 미래를 향한 작가적 야망까지 진솔하게 써 내려간 40편의 글로 엮었다.
명백하게 ‘읽고 쓰는 인간’ 장강명이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통해 말하고 듣는 세계에서 펼치는 고군분투가 퍽 실감 나게 그려져 있다. 장강명은 ‘읽고 쓰는 세계’와 ‘말하고 듣는 세계’를 대비하면서 “맥락과 교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소통 방식을 배워가는 과정이 “꽤나 분열적인 작업”이었다고 고백하면서도, 마치 묘기를 부리는 듯한 재치와 우애가 한껏 담긴 대화는 예술의 경지와도 같았다고 말한다. 두 세계의 균형을 익혀가는 성숙의 과정을 솔직하게 풀어냈다.

말하고 듣는 세계의 한가운데서 시작된 작은 독서 공동체

“처음에는 책 이야기가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번지는 것에 당황했다.
우리가 너무 수다스럽고 사생활 털어놓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가 궁금했다.
그러다 머지않아 이게 여러 독서 모임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_ 97쪽

2016년 12월,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집어삼키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그때 새로운 소설을 발표한 작가 장강명은 ‘책 홍보에 도움이 된다면 어디든 어지간하면 다 나간다는 자세’로 〈책, 이게 뭐라고?!〉에 출연하게 된다. 이후 〈책, 이게 뭐라고?!〉 시즌 2의 진행자 역할을 제안받아 수락하게 된 그는 작게는 프로필 사진 촬영부터 크게는 서울국제도서전 등 대형 행사로까지 ‘말하고 듣는 세계’를 본격적으로 종횡무진 누비며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장강명은 말하고 듣는 사람 사이에서는 예의가, 읽고 쓰는 사람 사이에서는 윤리가 중요하다는 중요한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보편성과 일관성을 지향하는 읽고 듣는 세계의 원칙인 ‘윤리’와 달리 맥락에 좌우되는 ‘예의’는 문화와 주관의 영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비판 의식보다는 그 상황에 필요한 적절한 감수성을 더욱 필요로 한다. 말하고 듣기에 능숙한 이들은 상대의 비언어적인 표현을 빠르게 알아채고 그에 적절히 대응할 줄 아는데, 그런 감수성이 만들어내는 우아한 대화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읽고 쓰듯이 말하고 들으려 했던 장강명에게 말하고 듣는 세계에서의 고군분투는 필연적이었다. 독서를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여기며 독서 모임조차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그가 먼저 팀원들에게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이용한 온라인 독서 토론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스스로가 팟캐스트 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해 제안한 일이었기에 다른 사람의 참여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의 예상을 깨고 모든 팀원들이 적극적으로 독서 토론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작은 독서 공동체 안에서 한 사람의 질문에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간단히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각자의 사적인 이야기를 깊게 나누기도 했다.
그 경험 속에서 장강명은 읽고 쓰는 세계뿐 아니라 말하고 듣는 세계의 소통에서도 책이 중요한 무게중심이 되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좋은 삶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와 같이 일상 속에서는 쉽게 나눌 수 없는 대화를 책은 존재 자체로 강하게 질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누구보다 현실에 단단히 발붙이고 냉정하게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작가 장강명은 ‘책이 중심에 있는 사회’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같은 꿈을 꾸는 ‘읽고 쓰는 인간’들을 향한 나지막하고도 단단한 응원의 메시지


“내게 독서는 호흡이다. 나는 이미 읽고 쓰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경고한 그 세계다.
나는 물을 벗어난 물고기들처럼 몇몇 용감한 선조들이 2,400년 전에 그 땅으로 올라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깨달음을 얻은 어류가 되기보다 서툴게 걸으며 공기를 직접 들이마시는 양서류가 되기를 택했다.
언젠가 우리는 보다 우아하고 빠르게 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상상한다.” _ 310~311쪽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진행하면서 장강명 작가가 꼽은 즐거움이자 특권은 바로 다양한 작가들을 직접 만나 고민과 아이디어를 나눠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전에 없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작가들부터 동지 의식을 느꼈던 소설가들, 특별히 더 큰 응원의 목소리를 보태고 싶었던 르포르타주 작가들과 웹소설 작가들까지 다양한 읽고 쓰는 사람들을 만났다. 장강명은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글에 대해 조금 더 뾰족하게 질문의 날을 세워 고민하게 된다. 출판 기획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고, 장강명이 추구하는 르포르타주는 어떤 방식인지도 생각해본다. 트렌디하고 가벼운 글이나 책을 손에 들었을 때는 동시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과 미래의 평가 사이에서 떠오른 갈등과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이런 대화를 통해 장강명은 자신의 읽고 쓰는 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식사가 주는 기쁨 이상의 것을 추구’하며, 그것을 추구하는 행위로 읽고 쓰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자신이 속한 읽고 쓰는 세계를 돌아보며 ‘우리 시대의 어떤 작품이 고전이 될까’ 궁금해한다. 읽으며 과거와 대화하고, 쓰면서 미래로 메시지를 보낸다고 믿고 있는 장강명은 동시대에 사랑받는 것을 넘어 미래의 독자와도 의미 있는 소통을 나눌 작품을 남기길 원한다. 그렇게 장강명은 세계문학전집에서 작가 연표를 유심히 살피며 그들이 의미 있는 작품을 마지막으로 남긴 때를 확인해본다. 그리고 자신에게 현실적으로 허락된 작가로서의 시간을 가늠해본 후 단호히 ‘읽고 쓰는 세계’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그동안 장강명의 현실적 삶의 기반을 만들어주었던 ‘말하고 듣는 세계’와의 거리 두기를 선택한 그의 작가로서의 야망과 진솔한 속내가 담겨 있다.
장강명은 ‘읽고 쓰는 사람’이 ‘말하고 듣는 사람’에 비해 훨씬 역사가 짧고 어려운 방식의 소통을 추구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깨달음을 얻고 우아하게 헤엄치는 어류가 되기보다 물을 벗어나 ‘서툴게 걷고 공기를 들이마시는 양서류’와 같이 서툴게 읽고 쓰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장강명은 그들을 같은 꿈을 꾸는 ‘동족’들이라 여기며 강한 유대감을 표한다. 그리고 ‘읽고 쓰는 세계’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그들을 향해 나지막하고도 단단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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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북스 2020-09-08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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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에 밀려 있던,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나치다 보니 소신이나 주관이라기 보다는 변명처럼 들린다.  구매
깐따삐야 2020-09-17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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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책에서 말하는 시시한 책이 바로 이 책.  구매
stolidcan 2020-09-25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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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얏호 !! 주문했습니다
장강명 작가님 책 거의 다 읽어온 팬입니다
팟캐스트도 잘 들었었는데 팟캐 제목과 같아서 더 친근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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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2020-09-11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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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제가 젤 좋아하는 작가님 책이라 알람뜨자마자 바로 구매했어요 빨리 배송왔으면 좋겠어요 헤헿 기대됩니다  구매
happy9238824 2020-09-08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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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닌 참 낙천적이야.”
그게 싫다는 것인지 좋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말투로 동생이 말했었다. 응? 모처럼의 칭찬인가? 귀를 쫑긋했는 데 뒤에 따라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역시 비아냥이었다. 살면서 본성이 낙천적인 사람 딱 두명 봤는 데 OO과장님이랑 언니야, 차암~ 맑아~ 사람이. 왜, 그게 싫어? 아니, 걍, 그런 사람들 보면 부럽다는 거지, 나는 왜 이렇게 꼬였나 싶다는 거지.

어쨌든 낙천적이지는 않은 동생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자기는 부정적인 사람이라서 나랑 이야기하면 자기가 부정적인가 싶어서 자괴감이 들었다고. 그래서 자신과 뜻이 맞는 부정적인 친구를 사귀었는 데 둘이 아주 죽이 잘맞아서 세상을 비관하고 타인을 혐오하고 특히(!) 지인의 뒷담화를 하며 공감하는 게 정말 즐거웠다고. 덧붙여 둘이서 내욕도 많이했다고ㅋㅋ. 한동안 그 친구한테 홀딱 빠져있었는 데, 어느 날 친구 만나러가는 것을 매우 피로해하는 자신을 느꼈고 얘는 너무 비관적이어서 자주 만나면 안되겠다 싶어졌다나? 나는 속으로 말했다. 응^^, 그게 내가 너와의 만남을 한달에 두 번으로 제한하는 이유야. 동생에게 큰 깨달음을 주신 그분에게 감사함을 느꼈다ㅋㅋ

내가 낙천적인가? 스스로한테 물어봤다. 아닌데? 난 불만 많은데?라고 생각하다가 초등학교 저학년 방학 때 선생님이 써주는 가정통신문(?)에 ‘낙천적임’이라고 적혀있던 기억이 빼꼼났다. 그 때, 그 말이 뭔지 국어사전 찾아봤거든. 초등학교 저학년때 부터 낙천적이었고 지금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낙천적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나는 낙천적인 사람이 맞겠다는 결론이다. 슬픈 노래도 좋고 슬픈 영화도 좋고 특별히 슬픈 드라마는 내가 애정하는 장르지만 그건 취향인거고, 현실의 나는 대체로 잘 웃고 잘 떠드는 긍정가인 것이다. 가끔 세상에서 제일 시니컬한 독설가 모드를 장착하기도 하는 데 그건 가끔이고(-_-) 그러고 난 날에는 항상 이불킥을 한다(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라고 생각하며).

청춘시절 좌파사상에 심취하지 않았다면, 엄청난 자기계발형의 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장점을 보고 교훈을 찾는 게 싫은 감정을 느끼는 것보다 수월하다. 그걸 낙천적이라고 하는 걸까? 싫어하거나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하는 게.

“(28)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살아있는 개인을 미워하지 말자는 개인적인 결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말하는 장강명쪽의 철학이자 신념이다.”

장강명씨는 결심을 해서 실천하고 계신다지만 살아있는 내 앞의 개인을 미워하지 못하는 건 나에게 성격에 가깝다.  그건 나에게 고나리질과 폭언을 일삼는 류의 개인에게도 마찬가지고(그걸 학대라고 인식한 것도 멀지않은 과거의 일이다) 대놓고 무시ㆍ질투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랬었다. (으음, 그랬었군.)

왜 그래? 라고 묻는다면 - 글쎄,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해하고 나면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고 보는게 맞다. 사회생활이건 일상생활이건 당장 손절 할 수 없는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워하는 데에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이해하는 데에 에너지를 재빨리 쓰고 덜 미워하는 것이 ‘나’라는 한정적인 자원을 경제적으로 쓰는 거다, 라고 생각한다. 이래서 밉고 저래서 싫고 보단, 이런 저런 싫은 점도 있지만 요론조론 괜찮은 점도 있지 뭐. 나한테 다 맞을 수는 없는 거지 뭐~ 가 편하다. 물론 부작용도 많다. 나를 향한 대놓고 공격의 말들마저 튕겨내지 못하거나(그말도 맞긴 해), 아주 작은 친절을 확대해석(이런 좋은 점도 있었네) 할때도 있다는 거지. 확실히 스톡홀록 증후군에 취약한 성격인 것이다.....

일례로 얼마전에 단톡방에 회사에서 일어난 요론조론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했었는 데, 친구들이 다 내 대신 분노했다. 기분 안나쁘냐며 나더러 순둥이라고까지 했다. 아, 순둥이....... 망했다. 나는 자본주의에 길들어졌다. 그렇지만 역시 다시 생각해봐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뭐랄까. 이 정도로 기분이 나쁘면 여기서 어떻게 살아남죠?

“(29) ‘인류를 사랑하는 건 쉽지만 인간을 사랑하는 건 어렵다’는 명언이 있다. 내 기억에는 버트런드 러셀이 한 말 아니면 <피너츠>에서 나온 스누피의 대사다. 어쨌든 이 말에 썩 동의하지 않는다. 인류와 인간을 동시에 사랑하는 건 어렵다. 그러나 어느 한쪽만 사랑하는 것은 가능하다. 인류를 사랑하고 인간을 미워하는 것보다, 인간을 사랑하고 인류를 미워하는 편이 더 낫다. 아주 더. 굉장히 더. 쓰는 장강명과 말하는 장강명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좇같은 화풀이의 대상이 될 때. 매일 얼굴을 봐야하는 너를 미워하는 것보다 이 상황이 가능하게 하는 세상이 싫다고. “화내서 미안.” “괜찮아요, 어떤 부분에서는 이해가 되니까.” 오해하지마. 너를 이해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것이 가능해지는 권력의 작동방식에 대해서 이해한다는 뜻이야. 착각하지마. 너라는 사람이 괜찮다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정도에는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괜찮다는 뜻이니까. 언제나 맥락을 읽는 것은 중요하단다.

“(54) 말하고 듣는 사람 사이에서는 예의가 중요하다. 읽고 쓰는 사람 사이에서는 윤리가 중요하다. 
예의와 윤리는 다르다. 예의는 맥락에 좌우된다. 윤리는 보편성과 일관성을 지향한다. ... 예의는 감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무례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윤리는 이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비윤리적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비판 의식을 키워야 한다. 전자도 쉽지 않지만 후자는 매우 어렵다. 직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윤리에 대해서는 보편 규칙을 기대해 볼 수 있으며, 온갖 암초 같은 딜레마를 넘어 우리가 어떤 법칙을 발견하거나 발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의는 끝까지 그런 법칙과는 관련이 없는, 문화와 주관의 영역에 속해있을 것이다.”

그가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감수성을 키웠겠지만, 굳이 그 감각을 동원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는 피곤하게 눈치 볼 필요가 없으며, 눈치 볼 상황이 적어질 수록 눈치에 속하는 감수성은 도태되었을 테니- 아마 영원히 내 언어의 맥락은 읽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길 바란다.

그러니까.... 이런 나는
정말로 낙천적인 걸까.
순둥이인가.
내 앞의 개인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일까.
.....
세가지 다 생존의 기술로 터득한 방법인 것 같은 데....
음.. 이게 진짜 착한거야?

*

지구멸망, 재기, 자살, 인류애 폭망, 그 인간 쓰레기라는 말을 달고 사는 동네 친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자리 대화 상대 중 한명이다. 그가 얼마나 개인에게 예의바르게 대하며, 착실히 노동하고, 일을 야무지게 처리할지는 안봐도 비디오처럼 알 것 같다. 그냥 봐서는 멀쩡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 입을 열면 달라지지. 아직까지 나는 그 이상으로 인류를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우리의 대화는 엄청난 블랙코메디 같아서 평소에 착한(?) 내가 구구절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살아야하는 이유를 막 설파하면, 친구는 온갖 근거들을 들어 우리모두가 자살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그럼 넌 왜 자살안하는 건데요? 그건, 언제라도 할 수 있으니깐요. 와하하하. 나는 그 친구를 만나면서 나를 덜 미워하는 방법을 배웠다. 어쩌면 그 친구는 나를 만나면서 사람을 조금은 덜 미워하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인생은 단짠단짠. 세상은 소리없는 아우성. 내가 아는 최악의 인류멸망찬성론자가 비건을 지지하는 페스코 생활을 하는 것은 일관적이면서 신기하다. 나는 말하곤 한다. “저기요, 당신 누구보다 인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살고 계신데요?”

이건 글을 쓰며 내려보는 어떤 결론인데.
난 내 앞의 개인을 미워하지 못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성격은 종종 방향을 잘못틀어 나를 미워하는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더는 나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 나를 더 미워하다간 내 앞의 개인마저 미워하게 될 판이다.
어쨌든, 미움이라는 건 어디론가는 가야한다.
그렇다면?
인류를 미워하기로 한다.

인간을 사랑하고 인류를 미워하는 편이 낫다.
역시
그편이 낫다.


*

장강명 에세이에 장강명 이야기를 아니할 수 없으니 또 장강명을 안좋아하는 이몸이 나서서 에세이 대해서도 몇마디 더 적자면

“(131) 이제 나는 내 이상형에 대해 안다. 맥주와 책을 모두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내 인생의 두 가지 낙인데, 그중 어느 하나라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즐길 수 없다면 참 아쉬울 것 같다. 그런데 맥주와 책을 다 좋아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나 정도로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도 대한민국 인구의 10퍼센트 미만일 것이다. 나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확실히 전 인구의 10퍼센트 미만이다. 그러니까 나 정도로 맥주를 좋아하고 동시에 책도 좋아하는 사람은 백에 한 명도 안된다.”

엄마, 나 장강명 이상형됐어... 하아.... 심지어 대한민국 일프로야.

그리고 놀랍게도

“(306) 나의 친구여, 플라톤이 뭐라고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네. 중요한 것은 ‘파이드로스’라는 책에 무어라 적혀있느냐가 아니라, 문자의 영향에 대한 우리의 진정한 앎이지. 그렇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그 앎으로부터 제각기 다른 거리로 떨어져 있기에 가르침은 맞춤식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네. 바로 대화이지. 사실 그것이 책의 함정이기도 하다네. 책과는 대화를 할 수 없으니 말일세. ....”

장강명 에세이에도 테스형이 등장해.. 읔큭큭큭..

말하고 듣는 인간, 읽고 쓰는 인간 사이에서의 진지한 고찰 -읽고쓰는 인간을 은근 위에 올려놓지만-이 돋보이는 이 에세이를 구입해 읽은 것은 이제는 들을 수 없는 동 제목의 팟캐스트 때문이다. 사실 싫어했던 작가였던 장강명에 대한 시선이 바뀐 것은 팟캐스트 속 ‘예의’를 갖추는 ‘말’하는 장강명의 인간적 매력 때문이었다. 글과 사람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글보다 사람이 나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222) 분노의 포도 같은 작품을 쓸 수 있다면 팔을 한 짝 잃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 지금은 말하는 일과 쓰는 일에서 오는 수입이 달리는 자전거의 양쪽 페달 같다. 두 페달을 번갈아가며 열심히 밟아야 프리랜서 글쟁이라는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고 달린다.”
“(228) 50년 뒤의 독자들에게 존중받으려면 우리 시대의 사람들 다수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할 테다. ... 가끔은 내가 당대를 굉장히 못마땅해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세상이 너무 좋고 아름답고 옳은 방향으로 제대로 굴러간다고 보는 사람은 중요한 글은 못 쓸 것 같기 때문이다.”

세상과 정면으로 싸우는 작가이고 싶다는 장강명을 응원한다. 작가 장강명이 세상과 불화하려면 미디어에 좀 덜 노출되어야 할텐데, 세상이 책을 안사읽으니 문제긴 문제다. 하지만 또 생계를 도외시 할 수 없는 부류의 인간(같아보였다)이라 페달밟듯 산다고 하니 미디어에 좀 덜 나오시도록 나도 열심히 벌어서 책사서 한국문학 응원할게요! 힘내요!! 장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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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11-08 공감(43) 댓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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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들이마시는 산소, 질소, 수소, 이산화탄소지. 새창으로 보기
-20201108 장강명.

작년 여름 책꽂이 하나를 들이면서 더는 늘리지 말자, 생각했다. 그 다짐을 어기고 그때와 같이 120센티 넓은 폭에 한단 더 올려 5단 짜리를 저렴하다고 사 버렸다. 이번에는 심지어 DIY…내가 저지른 일은 내가 해결한다, 하면서 혼자 조립하고, 2미터 가까운 높이를 혼자 일으켜 세워서, 집 이곳저곳 낑낑대며 대보지만 놓을 곳이 없었다...망했다. 결국 집에서 이곳만은 유일한 책장 청정지대라고 (내 맘대로) 정해두었던 침실을 침범하게 되었다. 서랍장, 책상 등의 가구를 이리저리 밀고 돌리고 당기고 테트리스 하다가 겨우 책장이 들어갈 자리를 마련했다.
거실을 비롯한 책장 여기저기 이중으로 꽂힌 책을 윗줄에 모셨지만...나는 나의 책 지름욕구를 과소평가했다. 이중 책장은 완벽하게 해소될 수 없었다. 새 책장은 집에 있는 폐휴지 더미의 열에 하나를 수용할 수 있을 뿐이었고...(그렇다 사진에 나온 이런 덩어리가 집구석에 아홉 개 쯤 더 있다....) 새 책꽂이에서 내가 읽은 책이 얼마나 되나 세어보니 이십 권 남짓...꽂아둔 책의 십퍼센트만 쳐읽었구나. 그만 사고 좀 읽어라 이새끼야. 이렇게 열심히 종이책을 정리한 나는 오늘도 전자책을 읽고 전자책을 또 샀다. 이건 무슨 병입니까.
책꽂이 아래층은 어른 책을 공격해 겉지와 띠지를 마구 벗기는 어린이(만31개월)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어린이책을 일부 채워주었다. 만족한 어린이는 책장 옆에 앉아 고양이와 해양생물 등이 나오는 책을 본 뒤 호방하게 내패대기 쳤다. 책을 던지는 걸 제일 좋아했다.

작년에 산 책꽂이 왼쪽 아래 한 칸에 장강명과 구병모의 책이 사이좋게 채워져 있다. 북플이 독서통계 메뉴에서 알려준다. ‘장강명의 책을 좋아하시는 군요.’ 16권 읽으셨음다. 내가 정말? 2018년 출산 후 장강명의 ‘우리의 소원은 전쟁’을 수유하느라 밤새는 틈틈 읽고 푹 빠져버렸다. 몇 달만에 그의 소설 전권은 물론 르포와 에세이까지 다 읽어버렸다.
그러고나서 읽는 책이 점점 넓어지면서 꼴에 눈이 높아져 버렸고, 그렇게 물고 빨던 장강명이 이제는 성에 차지 않는다고, 신작들을 까면서도 애증으로 꾸준히 찾아 읽는 이상한 짓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도 펼쳤지. 독서 에세이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지난 번에 SF소설집 읽고 사정 없이 까버려 놓고 손절할 것처럼 굴더니 그래도 또 신작이 궁금했다.

그간 작가는 요조와 함께 독서 팟캐스트를 진행했고, 그래서인가 처음 읽을 때는 요 며칠전 읽은 김하나의 말하기를 말하기와 조금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김하나 작가도 이 책에 나온다. 그런데 책 후반부로 갈수록 장강명의 소설가적 자의식이 드러났고, 난 이게 뭐라고 마음에 들었다.

책을 열심히 읽은 지는 몇 년 되지 않았고, 그래서 독후 감상도 클라우드 앱에 몇 줄 간단하게 남기는 수준이었다. 2018년부터 알라딘과 네이버블로그에 독후감을 남기기 시작했는데, 그 계기는 ‘당선, 계급, 합격’을 읽은 덕이었다. 책 말미에 장강명은 독자들의 서평 공동체? 정확하진 않은데 이런 다소 유토피아 같은 바람을 표현했고, 짧은 악평일지라도 읽은 사람이 뭔가를 남기는 일이 가치있다고 설파했다(고 기억한다). 그래서 아기 낳고 두 달 째 심심한 어느 하루, 몇 년 간 끄적인 독후 기록을 블로그에 다 올렸다. 이후 읽는 책들은 꼬박꼬박 독후감을 온라인에 올리기 시작했다.
좋아요 하나 없이 혼자 기록장으로 쓰던 알라딘 블로그에 왠 똥글뱅이 AI같은 게 좋아요를 누르기 시작했다. 이상한 사람인가 편집증 환자인가 서점 알바인가 고민하다 댓글을 주고받아보니 그냥 사람이었다. 알라딘 서재 페이지와 북플이라는 앱이 있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고…
오늘부로 즐겨찾는 이웃 100명을 채운 알라디너가 되었습니다. ㅎㅎㅎㅎㅎㅎ

소설쓰는 장강명이 권해주는 책은 이전의 책들에서도 여러 번 낚여 봤었는데, 이번에도 이 책 읽다가 결국 이토준지가 그린 ‘인간실격’, 제임스 엘로이의 ‘블랙달리아’1,2권 전자책으로 질러버렸다… 독서 팟캐스트에서 장강명을 진행자로 섭외한 것은 어쩌면 탁월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닌가 나한테만 한정되는 전문 책팔이인 것인가…

작가와 나는 연배 차이도 약간 있고, 읽은 책 중에는 겹치는 것도 있지만 취향이 다른 부분도 있고(나는 그가 어려서 신나게 보았다는 추리나 SF같은 장르 문학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의 글을 읽다보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자주 마주쳐 놀랄 때가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독후감을 쓸 때, 책, 이게 뭐라고? 라는 질문에 답하듯 책, 이게 뭐냐고? 내가 들이마시는 산소, 질소, 수소, 이산화탄소지. 이렇게 제목 붙이고 필수 요소도 있고 그닥 쓸모 없는 것도 있지만 숨쉬는 것처럼 멈출 수 없지. 이러고 혼자 자문자답 하는 말을 쓰자 하고 있었는데, 책 말미에서 작가가 독서를 호흡이라 비유하는 부분이 나와버렸다. 에잇 선수치다니. 소설을 읽을 때도 소재나 문장에서 에잇 선수치다니, 하는 부분이 자주 있었다.
그래서 묘하게 얄미운데 또 사실 완전 얄밉지도 않은게, 전작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처음부터 엄청 탁월하게 잘 썼다기보다 오랜 기간 꾸준하고 끈질기게 쓰고 읽은 덕에 성장해 온 작가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직장인에서 소설가로 전업한 것도,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작가라는 점도 롤모델처럼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렇지만 역시 약간의 애정이 남아있을 뿐 오늘날 저의 최애는 아니십니다...그래도 애정합니다…

장강명은 확실히 장편에 강한 작가이다. (장강명으로 삼행시 가면 장편에/강한/명작가 해야지. 아무도 안 시킴...) 새 장편이 나올 때까지 일단은 블랙달리아를 읽을 것이고 ㅋㅋㅋ범죄물을 쓰고 있다는 작가가 얼마만큼 또 성장해서 어떤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면서 다음 소설을 펼칠 것이다. 그리고 나도 계속 열심히 써야지. 봐줄만한 게 나올 때까지 무럭무럭 자라는 수 밖에는 없다. 열심히 읽고 쓰고 고치고 또 고치고 게을러지지 않고 꾸준하고 끈질기게 써야 뭐라도 되겠지. 그렇게 산소 함량을 높인 쓸모있는 공기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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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11-08 공감(42) 댓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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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책, 이게 뭐라고 새창으로 보기 구매
뉴스에서 얼핏 본 기억이 있었다.
˝귀염상이군..˝라고 생각 했던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이 책 표지를 보고 상당히 특징을 잘 살렸다고 느꼈다.
지인에게 권유받은 ‘산 자들‘의 작가였다니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책이라서 이 책을 우선 급히 집어들었다.

시작은 ‘굳이 이런 소소한 꺼리까지 다 적네‘였다.
한 번 책을 접을뻔 했다. 그 후로는 쭉 읽어나갔고 자주 웃었고 자주 놀랐다. 그의 말대로 어딘지 시니컬하고 염세적인 생각들과 재치에 웃었고
작가로서의, 읽고 쓰는자로서의 고뇌와 솔직한 면면이 와 닿았다.

오랜 생각과 고민의 결과물들은 파장을 낸다.
비슷한 것들을 어렴풋이 떠올리곤 정리해내지 못했던 사람들은 덕분에 힌트를 갖게 되기도한다. 그것이 읽기의 힘이고 하늘의 별만큼이나 다양한 인류의 개성들이 글을 써냈을때 가치를 발하는 이유인것같다.
각자가 세상을 통해 얻어내고 뱉어내는 결과물도 제각각이니까.

그의 다른 책들도 빨리 읽어보고 싶다.
‘표백‘이나 다른 책들도 관심갔었는데
이제 더 반갑게 여겨진다.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것도 쏠쏠한 즐거움이건만 작가님은 아무래도 잠이오는 걸까? 그부분이 좀 안타까웠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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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0-12-09 공감(2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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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게 뭐라고 새창으로 보기 구매
독자들이 책을 읽고 상상하는 작가들의 이미지와 실제와는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한 것이 이문열의 경우였다. 정치 사회적인 성향을 말하는것이 아니다. 이십 대 초반의 나에게 지적인 감성을 아낌 없이 선사했던 이문열을 티브이에서 잠깐 보았는데 웬 늙수그레한 아재가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내 뱉는데 그 때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은연중에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의 문어처럼 세련되고 유려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책, 이게 뭐라고>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탐 낼 만한 책이다. 알고 보니 유명한 작가인데 이 책을 읽기 전엔 그가 어떤 이력을 가졌고 어떤 책을 냈는지 몰랐다. 책과 관련된 사람이라면 닥치고 친구추가를 해온 터라서 그가 내 페이스북 친구라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페이스북 친구와 책에 관한책’ 이라는 조합을 내가 어떻게 피하겠는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주문을 했다.
다른 직장에 비해서 업무 강도가 낮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사 일을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내 방에는 읽고 싶은 책, 글을 쓰기 위해서읽어야 할 책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펼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도록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순전히 그의 역량이다. 내가 이 책에 반한 것은 달곰쌉쌀한 소제목인데 그가 얼마나 재기 발랄한 작가인지를 잘 알게 된다. 가령 이런 소제목들
기준 없이 손 가는 대로 집어 들었던 몇 권과 포인트 적립이라는 유혹
하느님 품으로 돌아오는 험버트 험버트와 옛 연인이 보낸 카카오톡 메세지
부잣집 딸과 결혼하겠다는 생각과 인간이 스스로를 가축화한 과정
대체 어떤 이야기를 담았길래 저런 소제목이 나오는지 궁금했다. 이 책은 <책, 이게 뭐라고>라는 책 소개 팟캐스트 진행자로서 겪은 에피소드와 독서와 책에 관한 장강명 작가의 재미난 이야길 담았다. 인세로 먹고 살고 싶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진 사람이라서 그런지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책을 냈는데 ‘한 번 읽어줄 테니 보내 봐’라고 말하는 지인에게 ‘그래 보내줄께’라고 대답한 다음 그 지인과 연락을 끊는다는 구절을 읽고 통쾌 하기도 했는데 ‘까칠하다’는 생각을 하게도 된다.
내친김에 가수 요조와 함께 진행한다는 <책, 이게 뭐라고>를 유튜브에서 찾아보았다. 눈에 띄는 대로 클릭을 했더니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쓴 책’을 논한다. 너무나 따분한 주제에 식겁을 하고 닫기 버턴을 급하게 누를려는데 내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감미로운 서울말과 부드러운 억양이 쏟아져 나온다. 빠져드는 목소리다.
책에서 느꼈던 아주 약간의 까칠함이 전혀 없었다. 가수 요조와 장강명 작가의 방송을 듣자니 내가 마음의 평온을 얻고자 할 때 자주 보는 골프 중계 방송이 떠오른다. 성우처럼 맑고 부드러운 그리고 억양의 변화가 적은 세상 편안한 방송 말이다.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는 책을 자상하고 재미나게 소개해서 마치 발라드 음악 방송을 듣는 느낌이다.  이 글을 쓰면서 배경 음악처럼 듣는데도 진행자가 하고 싶었던 중요한 말은 어느새 듣게 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마력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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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0-10-13 공감(20)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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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것으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새창으로 보기
SNS에 올라온 『책, 이게 뭐라고』 리뷰를 보고 인터넷서점에서 미리보기 서비스를 통해 앞부분을 살짝 읽어보았다. 개인사와 자기 감정에 충실한 에세이를 싫어하는데다가, 평소 책 읽어주는 팟캐스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전에 그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어서 소설가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에세이의 문체는 다를 수 있으니 직접 확인하고 선택하고 싶어서였다. 감정 과잉이 없는 시니컬한 문장을 보고 (다른 책들과 함께 구매하려고) 바로 장바구니에 담아뒀는데, 사지 않고도 읽을 기회가 생겼다. 직접 구매해서 읽을 생각이 없었던 책이라면 증정도서나 협찬도 받지 않는다. 책값을 아껴보겠다고 그럴 가치도 없는 책에 내 시간을 낭비하는 꼴이니까. (읽고 싶은 책을 읽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고, 맘에 안드는 책의 리뷰를 쓰는 것만큼 고역인 것도 없으니) 한마디로, 사려고 맘 먹었는데 운 좋게 도서 협찬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나는 TV나 유튜브, 라디오, 팟캐스트의 독서 프로그램 애청자도 아니다. 책 소개 프로그램을 보거나 듣느니 그냥 책을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어느 책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 역시 글로 접하면 된다고 여긴다. 그래도 그런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다. 신간을 낼 때마다. 책 홍보하러. 77쪽


장강명 작가는 요조와 함께 독서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의 진행을 맡은 적이 있었다. 북이십일 출판사와 팟빵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던 팟캐스트였는데, (그런 이유에서 나는 듣지 않았다.) 이 책은 '읽고 쓰는 인간' 장강명이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세계, 생각에 대한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독서 팟캐스트는 무엇일까? 긴 글 읽기를 버거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요약 서비스인가? 그런 팟캐스트도 있다. 특히 고전을 쉽게 설명하는 채널이 인기가 높다. 아니면 독서 팟캐스트는 교양 있는 사람들의 점잖은 토크쇼일까, 책은 그저 거들 뿐인? 그렇다면 진행자의 대화 솜씨와 매력 있는 초대 손님을 섭외하는 일이 중요할 터다. 그것도 아니면 신간을 알려서 구매로 이어지게 하는 홍보용 매체일까? 그게 분명한 목표이고 다른 사항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면 오히려 창의적인 시도들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199쪽


내가 만나서 어느 정도 친해지고 사정을 알게 된 다른 책 팟캐스트 중에서 운영비를 자체적으로 벌어서 해결한다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대형 서점이나 출판사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고, 대기업이나 독지가의 지원을 받는 곳도 있었다. 221쪽


앞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독서 팟캐스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서 듣지 않는다. 예전에 독서 모임을 할 때 이런 일들이 있었다. 책을 못 읽어서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대신 찾아서 들었다거나 거기서 나온 이야기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감상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들은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책을 완독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독서 팟캐스트나 유튜브를 통해 책에 흥미를 느끼고 직접 읽을 수 있어야 하는데,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 끝이라니. 장강명 작가 역시 팟캐스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지만 이런 부분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책과 독자 사이가 너무나 멀 때 그렇게 해서라도 책 쪽에서 한 걸음 독자 쪽으로 가야 하는 것인가, 그러다가 너무 많이 가면 이게 책이 책이 아닌 게 되는 것 같고. 그분들이 책 쪽으로 오지 않을 거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우리가 『이방인』이나 『인간 실격』에 대해 이야기해도 그건 책에 대한 콘텐츠이지 책 자체는 아닌데." 271쪽


그는 팟캐스트 뿐만아니라 출판시장 전반에 걸쳐 다양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셀러브리티들, 표지만 바꿔서 리커버 에디션이니 초판본 에디션이니 하는 것들, 매년 곳곳에서 선정하느라 바쁜 올해의 책들과 유력 노벨문학상 수상자 관련 마케팅들, 두께는 얇은데 표지는 고급스러워지는 각종 경장편 시리즈들, 온갖 찬사로 무장하는 띠지들, 비판적인 독자들이 적다는 지적, '젊은 피'에 대한 평론가들의 찬사와 요구들. (최근에 우리는 한 젊은 작가를 통해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던가.)


이제는 한국이 출판업이 사실상 '셀럽 비즈니스'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셀러브리티가 쓴 책이 잘 팔린다. 아니, 셀러브리티가 쓴 책만 잘 팔린다. 아예 처음부터 셀러브리티를 섭외해서 책을 만든다. 실제로 원고를 쓰는 거야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셀러브리티이기만 하다면 반려견도 만화 캐릭터도 책을 낼 수 있다. 나는 한편으로는 그런 현실이 못마땅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알쓸신잡'에서 연락이 오기를 고대하는 마음이기도 했다. 34~35쪽


몇몇 기표를 뽑아내 신자유주의라든가 여성 혐오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 역시 게으르다고 본다. 거기에도 '읽어내겠다'는 의지는 희박하다. '젊은 피'에 대한 평론가들의 찬사와 요구는 강박에 가까워 보인다. 나는 신선한 피라면 환장하는 드라큘라가 아니기에, 그 지점에서 자세한 해설을 원한다. 새로운 얼굴은 새로운 얼굴일 따름이며,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늘 나타난다. 나는 읽고 쓰는 사람들 간의, 글자를 통한 대화를 원한다. 악평도 좋다. 181쪽


사실 많은 독자들이 생각하고 있던 부분들일텐데, 이런 이야기들을 이해관계자(=장강명 작가)의 글을 통해 듣게 되니 반가웠다. 물론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이해관계자라면 쉽게 드러낼 수 없는 부분을 진솔하게 쓰고 있다는 점, 이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읽고 쓰는 것으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ㅡ『책, 이게 뭐라고』 뒷표지 ㅡ

'읽고 쓰는 인간'인 그는 읽고 쓰는 것에 대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읽고 쓰는 일만으로 우리는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153쪽) 신형철 평론가의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에 나오는 문장인데,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질문에 신형철 평론가는 김연수 작가의 주장을 소개하고 있는데, 김연수 작가는 어느 정도 긍정하고 있다. 반면, 장강명 작가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나는 오히려 '읽고 쓰면 더 좋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실제로는 편리한 면죄부로 쓰이는 것 아닐까 의심한다. 힘들게 행동하지 않으면서, 읽고 쓴다는 쉽고 재미있는 일만으로 자신이 좋은 인간이 되고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그런 허약한 가설에 기대 은근한 우월감을 즐기는 듯 비칠 때에는 좀 딱해 보인다. 156쪽


그는 에필로그에서 소크라테스(요즘 세간에서 자주 등장하는)와의 대화 형식을 빌려 이런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나의 친구여, 그대는 1년에 책을 150권 가량 읽는다고 했지. 그렇다면 묻겠는데, 그중에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을 암기하는 책이 한 권이라도 있는가?"

"아니오. 없는데요."

"혹시 내용의 절반을 외우는 책은 있나? 반의 반은? 아니, 단 한 장이라도 정확히 암송할 수 있는 책은 몇 권이나 되는가? 읽은 뒤에 대략적인 개요만 떠올릴 수 있다면 애초에 그 책을 정독할 필요는 무엇이었나?"

이렇게 소크라테스는 나를 또 한참 가지고 논다.

"나의친구여,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언어가 그대의 앎에 봉사하지 않고 제멋대로 힘을 부려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일세. 자네가 읽고 쓰는 세계라고 말하는 바로 그 세상 말이야. 그곳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바로 언어 그 자체라네. 친애하는 동료들이 공자, 석가모니, 예수와 내가 글을 쓰지 않고 제자들을 말로만 가르친 이유가 궁금하지 않나? 우리는 글을 남기면 그것이 죽은 경전, 헛된 신학이 되어 펄펄 살아 움직여야 할 깨달음의 순간들을 방해할 것임을 알았다네." 307~308쪽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나는 읽고 쓰는 것이 사람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이고, 그 행위는 어쩌다가 듣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시간을 내어 이뤄지는 행위니까. 타인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이 있다는 건, 귀를 닫고 아예 듣지 않으려는 사람보다는 적어도, 조금은 나은게 아닐까. 물론 작가의 우려처럼, 듣는 척만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일부 사람들의 일이라고 믿고 싶다.


내게 독서는 호흡니다. 나는 이미 읽고 쓰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경고한 그 세계다. 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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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20-10-04 공감(17)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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