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7

‘민족 통일의 길’ 밝혀온 ‘시대의 불침번’ 반세기 고행 마치다 : 궂긴소식 : 사회 : 뉴스 : 한겨레

‘민족 통일의 길’ 밝혀온 ‘시대의 불침번’ 반세기 고행 마치다 : 궂긴소식 : 사회 : 뉴스 : 한겨레


‘민족 통일의 길’ 밝혀온 ‘시대의 불침번’ 반세기 고행 마치다

등록 :2021-02-16
 
‘마지막 망명객’ 정경모 선생 별세
일본 요코하마 자택에서 노환으로

1970년 박정희 군사정권 피해 떠나
1989년 ‘문익환·김일성 회담’ 배석
민주화 이후에도 ‘자수서’ 요구하자
“전향·배신 못한다” 내내 서명 거부
작년 귀국 추진했으나 코로나 발목

올 1월 초 일본 요코하마 히요시의 자택에서 새해맞이 술을 마시고 있는 고 정경모 선생. 가족 제공“내가 못 가는 게 아니잖소, 안 가는 것이오!”

한국 분단사의 비극을 상징하는 ‘마지막 망명객’이 반세기 넘도록 귀국하지 못한 채 이국땅에 묻히게 됐다. 재일 통일운동가이자 언론인인 정경모 선생이 16일 요코하마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7.



고인의 맏아들 정강헌씨는 이날 “아버지께서 지난해 가을부터 폐렴으로 입퇴원을 반복해오다 오늘 새벽 히요시의 집에서 돌아가셨다”고 전해왔다. 1970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박정희 독재를 비판하는 언론 활동을 하다 ‘정치적 망명’을 택했다. 이어 1989년 평양을 방문해 고 문익환 목사와 김일성 주석의 ‘4·2 공동선언’을 이끌어낸 그는 민주화 이후에도 ‘국가보안법 기소중지’의 벽에 막혀 51년이 지난 지금껏 귀국하지 못했다.

“준법서약서보다 더 고약한 게 자수서야. 간첩이었으니 자수하라는 거 아니야? 내가 뭘 잘못해서 간첩이라고 자인하란 말인가. 그때 문 목사가 서울로 돌아갔을 때 얼마나 고역을 당했나 새삼 절감했어. 화가 났지만 스스로 분노를 참았어. 그때 시키는 대로 도장 쳤으면 여권은 줬겠지만, 나 스스로 존재를 부정하고 문 목사를 욕보이며 민주화 세력 전체를 배반하는 건, 할 수 없었어. 그게 끝이었지.”

지난 2009년 <한겨레> ‘길을 찾아서’를 통해서 회고록을 직접 집필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고인은 2003년 한국의 정보기관에서 요구한 ‘자수서’의 서명을 거부한 일화를 공개하며 “일본 땅에 묻히겠다”는 결기를 보였다.

특히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새 정부가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시켰을 때는 “죽기 전에 70년 한국전쟁이 끝나는 순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감격스러워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정보기관에서도 여전히 법적 절차 해소를 전제로 내걸어 발목을 잡자 “내가 원해서 돈도 없고 출세도 못 했고, 내가 가지 않기로 했으니 여한이 있을 게 없다”며 ‘타협’을 거부했다.

그러다 지난해 초 암 발병 등으로 고인의 노환이 깊어지자 가족과 지인 등을 통해 법적 절차 수용 의사를 전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 대유행 탓에 추진 논의가 차일피일 미뤄졌다. 결국 그는 ‘마지막 망명객’으로 남았다.



1989년 3월27일 평양을 방문한 정경모(왼쪽) 선생이 문익환(가운데) 목사와 주석궁에서 김일성(오른쪽) 주석과 첫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1924년 서울에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맏이로 태어난 고인은 게이오대학 의대에서 유학하다 해방 직전 귀국했다. 이승만 정부의 첫 국비장학생으로 미국 에머리대학에서 다시 유학 중 한국전쟁이 터지자 도쿄의 맥아더사령부에 소환됐다. 문익환·박형규 목사 등과 함께 통역관으로 복무하면서 1951년 판문점 휴전회담에 배석해 ‘38선’으로 한반도가 갈라지는 현장을 목격했다. 고인은 ‘그때 절감한 비애와 미국에 대한 울분이 ‘한반도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스스로 짊어지고 ‘시대의 불침번’으로 살게 했다’고 토로하곤 했다.

1972년 <어느 한국인의 마음―조선통일의 새벽에>(아사히신문사)를 시작으로 일본에서 저술 활동을 해온 그는 1980년대 해적판으로 먼저 나온 <찢겨진 산하>로 국내에 이름을 알렸다. 브루스 커밍스의 <조선전쟁의 기원>(제1권)을 일본어로 번역해 내기도 했다. 1981년께부터 일본어 잡지 <씨알의 힘>을 독자 발행하며 언론 활동을 해온 그는 <일본의 본질을 묻는다> <이제 미국이 대답할 차례다> 등 저서를 통해 우리가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한국 현대사의 진실을 밝혀왔다.

2010년 ‘길을 찾아서’ 연재글을 모은 <시대의 불침번>(한겨레출판사)에 이어 2011년 일어 번역판 <역사의 불침번>(후지와라서점)이 나왔다. 전 10권짜리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 일본어 번역본 출간과 생애 마지막 숙제로 삼아 집필해온 ‘한·일 고대사의 비밀’은 미완의 유작이 됐다.


유족으로는 게이오대학 시절 하숙집 딸로 인연을 맺은 동갑의 일본인 부인 나카무라 지요코와 아들 강헌·아영(리쓰메이칸대학 교수)씨 등이 있다. 장례는 일본에서 가족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obituary/983219.html#csidx4445727b9d5f02b9694d2a5ae6578d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