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0

알라딘: 아나키즘 이야기 - 자유.자치.자연 박홍규 2004

알라딘: 아나키즘 이야기


아나키즘 이야기 - 자유.자치.자연   
박홍규 (지은이)이학사2004-08-24


- 절판 확인일 : 2020-02-18

새상품 eBook 중고상품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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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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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아나키즘하면 떠올리는 생각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나키즘은 무법, 무질서, 혼란과 무관하다."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도 일탈자들의 반항도 극단적 자유주의나 이기주의도 아니다." "아나키즘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다"라는 등등.

그렇다면 지은이가 생각하는 아나키즘은? 과도한 국가주의와 과학기술 만능주의, 과잉 소비주의를 완화시키는 대안 사상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자유롭게, 자치적으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아나키즘이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 아나키스트이다.

책은 '자유, 자치, 자연'으로 풀어낸 아니키즘 오디세이라 할 만하다. 아나키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현실을 고려하여 기본이념과 사상, 선구적 아나키스트의 주요 활동을 소개하고, 페미니즘, 에콜로지, 사회주의와의 관계를 통해 아나키즘의 다양한 면면을 쉽게 풀어 소개했다. 더불어 아나키즘이 현실에서 가장 잘 실천되고 있는 예술과 교육 분야를 살폈다.

아나키즘 사상의 역사 및 이념을 소개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당하고 있지만, 아나키즘을 새로운 대안 사상으로 보는 주관적인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이를 중심으로 아나키즘의 전체상과 비전을 그린 책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아나키즘 맛보기: 노래 속의 아나키즘
1. 레논
2. 레논의 후예들

제2장 왜 아나키즘인가?
1. 아나키즘에 대한 오해들
2. 아나키즘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3. 새로운 아나키즘을 위하여

제3장 아나키즘의 기원과 유형
1. 아나키즘의 기원
2. 아나키즘의 유형

제4장 아나키스트들
1. 선구자 아나키스트들
2. 러시아 아나키스트들
3. 미국 아나키스트들
4. 동아시아 아나키스트들
5. 현대 아나키스트들

제5장 아나키즘의 사상
1. 아나키즘 인간론
2. 아나키즘 사회론
3. 아나키즘 국가론과 시민적 저항
4. 아나키즘과 에콜로지
5. 아나키즘과 페미니즘
6. 아나키즘과 사회주의

제6장 아나키즘과 예술
1. 아나키즘 예술론의 기본 구조
2. 사회적 아나키즘의 예술론
3.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예술론
4. 아나키즘과 문학

제7장 아나키즘과 교육
1. 아나키즘 교육 사상
2. 사회혁명으로서의 '학교 없는 사회'
3. 아나키즘과 자유교육

맺는말

참고 문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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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 “자유·자치·자연”으로 풀어낸 아나키즘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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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은 모든 지배와 권위, 권력을 반대한다. 즉 아나키즘은 지배가 없는 상태, 권위와 권력이 없는 세계를 지향한다. 바로 인간들이 자유롭게, 자치적으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바라는 것이다. 바로 우리들이 다 함께 꿈꾸는 세상이다.
그러나 아나키즘은 그동안 우리에게는 주로 무정부주의라고 번역되어, 정부가 없는 극도의 무질서한 혼란 상태를 조장하며 절대적 자유를 주장하는 폭력주의이자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쯤으로 치부되어왔다. 즉 무법, 무질서, 혼란으로, 반도덕주의, 반민주주의로, 반항자, 파괴자, 은둔자, 범죄자 등 일탈자들의 반항으로, 극단적 자유주의나 이기주의로, 사회주의의 아류쯤으로 취급되어온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잘못된 우리의 아나키즘 인식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국가 만능주의, 지배 과잉주의, 자본 제일주의에 반대하고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며 자치하는 삶을 아나키즘이라고 보고, “자유·자치·자연”을 기초로 하는 새로운 아나키즘 사회를 모색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자유·자치·자연”이라는 분석과 실천의 틀로 현대 아나키즘의 역사와 미래를 조명하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서구 근대사상의 하나로 아나키즘이 출현한 이래 아나키즘의 이론과 실천, 그 역사와 투쟁을 종횡으로 살피며, 아나키즘이 우리 인간에게 무엇이었나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또한 이 책은 아나키즘에 대한 소개와 이해가 부족한 우리의 현실에서 아나키즘의 기본 이념과 사상, 선구자 아나키스트들과 현대 주요 아나키스트들의 사상과 활동, 그리고 예술과 교육 분야에서 두드러진 아나키즘의 현실적인 적용·실천 등 아나키즘의 전체상과 비전에 대하여 한국인이 처음으로 쓴 본격적인 “아나키즘 이론과 실천”의 오디세이라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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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권력 만능, 자본 만능 시대의 새로운 대안, 아나키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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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적 성향은 우리 인간이 공동체를 만들어 살면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거의 본유적인 삶에 속한다. 우리는 오늘날 아직도 원시적인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는 소규모 사회에서 이러한 아나키즘 사회의 전형을 여전히 볼 수 있으며, 각 민족들이 나름대로 고유한 아나키즘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아나키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근대 서구에서 생긴 사회사상이다. 왜 하필 근대에 들어서 아나키즘이 생겼을까? 그것은 바로 근대화, 산업화와 더불어 국가주의가 과도해지고, 정부의 지배가 강화되고, 권위와 권력과 지배가 인간을 지나치게 억누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아나키즘은 수만 년을 이어온 인류의 평화로운 삶을 짓누르는 근대 국민국가, 제국주의의 지배와 권위와 권력과 국가주의에 반대하여 인간의 생명과 자유와 삶의 회복을 촉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배의 경향은 현대에 들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오늘날 국가는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고, 시민의 자치를 거부하며, 시민이 더불어 사는 자연을 파괴한다. 관료의 국가 운영 주도, 식량 관리부터 에너지까지 모든 일상생활의 국가 관리, 교육에서부터 생활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 조직의 집단 우선 및 질서유지의 원리 등 그야말로 국가 때문에 피로하고, 국가 때문에 비효율이 극대화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여기서 국가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소위 신자유주의가 등장한다. 그러나 기업은 국가 이상으로 문제이다. 그것은 국가를 기업(자본)으로 대체한 더 혹독한 새로운 지배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극소수의 자본가가 대다수의 노동자를 지배하는 또 하나의 지배 체제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인류가 직면한 최대의 문제는 전 지구적인 자연환경의 파괴, 자본주의 선진국에 의한 제3세계 생활환경의 파괴, 세계적인 차별과 억압, 빈곤과 폭력의 재생산 등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환경?생태 문제, 성차별 문제, 인권 문제, 교육 문제 등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들이 분출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와 자본 만능인 이 시대에 국가는 이러한 문제들을 거의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국가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인간의 자유, 공동체의 자치, 자연의 균형을 회복하는 방향을 모색하지 않으면 그 어떤 해결책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권력을 제한하여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동체적인, 지역 자치적인, 정신적인, 이타적인, 생태적인 새로운 삶의 방식을 폭넓게 모색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꿈꾸는 삶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지금이야말로 ‘자유·평등·인권·복지·개인·여성’, ‘자치·민족·전통·문화·예술·교육·지방’, ‘자연·전원·환경·생태’ 등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 곧 자유·자치·자연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선구적인 사상인 아나키즘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아나키즘에서 그러한 대안의 뿌리를 찾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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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레논에서 자유학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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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에게 ‘사랑의 팝송’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반자본주의의 노래’이자 ‘아나키즘의 노래’인 존 레논의 [이매진]으로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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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해봐, 어떤 국가도 없다고/ 그건 어렵지 않아/ 누구도 그 때문에 죽이거나 죽지 않고/ 또 어떤 종교도 없다고/ 상상해봐,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산다고 [……] 상상해봐, 어떤 사유도 없다고/ 넌 상상할 수 있을 거야/ 탐욕도 굶주림도 없다고/ 모두가 형제라고/ 상상해봐, 모든 사람들이/ 세계를 공유한다고// 넌 날 꿈꾸는 사람이라고 할지 몰라/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야/ 나는 언젠가 네가 우리와 함께하길 바라/ 그러면 세계는 하나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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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레논이 노래한, 어떤 국가도, 종교도, 사유재산도, 지배도 없는 세계―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고 공유할 수 있는 세계가 바로 아나키즘의 세계인 것이다. 이 책은 레논에 이어 섹스 피스톨즈, 클래쉬, 첨바왐바 등의 아나키즘 노래를 선보이며, 아나키즘이 저 멀리 있는 죽은 사상이 아니라 우리 삶 속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생활’ 그 자체라는 것을 보여준다.

노래를 통해 아나키즘의 본질을 소개한 이 책은 반지배, 반권위, 반권력으로서의 아나키즘의 본래 모습을 해명하며, 열린 아나키즘을 향한 비전을 제시한다. 그리고 아나키즘의 기원을 살펴보고, 개인주의, 상호주의, 집산주의, 아나르코 코뮤니즘, 아나르코 생디칼리즘으로 대표되는 아나키즘의 유형을 자세하게 분석함으로써 아나키즘이 이상으로서만이 아니라 현실에 강고하게 토대를 내린 사상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책은 주요 아나키스트들의 사상과 활동을 조명한다. 먼저 고드윈, 슈티르너, 프루동 등 세 사람의 선구자 아나키스트들과 바쿠닌, 크로포트킨, 톨스토이 등 러시아 아나키스트들을 알아보고, 이어 미국 아나키스트들과 동아시아 아나키스트들을 간략하게 살펴본 뒤, 본격적으로 모리스, 간디, 일리히, 부버, 마르쿠제, 프롬, 북친, 로작, 푸코, 촘스키, 사파티스타 등 오늘날의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대 아나키스트들의 아나키즘을 자세하게 조명한다.

이어서 이 책은 아나키즘의 인간론, 사회론, 국가론 등과 아나키즘과 에콜로지, 페미니즘, 사회주의 등과의 관계를 통해 아나키즘의 핵심 사상을 알아본다. 특히 여기서는 페미니즘과 에콜로지가 아나키즘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다는 점에서 그것들을 넓은 의미의 아나키즘으로 이해한다. 또한 이 책은 사회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사회주의”를 지향한다. 새로운 사회주의란 종래의 맑스 엥겔스식의 정통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사회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비판의 초점은 종래의 사회주의가 지닌 국가주의, 산업주의, 계급주의 등에 맞추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아나키즘이 현실에서 가장 잘 실천되고 있는 분야인 아나키즘 예술과 교육을 다룬다. 
  • 아방가르드로서, 권위에 대한 부정으로서 아나키즘 예술론을 다루고, 
  • 이어 프루동, 크로포트킨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아나키즘의 예술론과 
  • 슈티르너, 말라르메, 와일드 등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예술론
  • 그리고 카프카, 카뮈, 울프, 베른하르트 등의 아나키즘 문학을 자세히 조명한다. 

교육에서는 고드윈, 톨스토이, 간디, 부버 등의 교육 사상과, “학교 없는 사회”를 주장한 굿맨, 일리히, 라이머 등의 교육 사상을 알아본다. 그리고 페스탈로치, 톨스토이, 돈 보스코, 슈타이너, 프레네 등의 교육의 뿌리인 자유학교의 이념과 특징 및 그 현대적 실천을 조명하고, 자발성, 자주성, 주체성 및 개성과 개인차를 중시하는 자유교육의 원리를 자세하게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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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말로 국가라고 하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국가 때문에 살고 죽는가, 국가에 의해 살고 죽는가, 국가가 우리의 삶과 죽음을 결정해야 하는가? 우리의 생각도 행동도 국가 없이는 불가능한가? 언제까지 국가가 명령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가? 우리는 진실로 인간으로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주인으로서 자치하고, 자연과 더불어 인간답게 살 수는 없는 것인가?”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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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그렇다. 아나키즘은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자고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너무나도 비자연적으로 살고 있다는 점이고, 그러나 보니 자연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믿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나키즘은 그러한 생각과 생활 태도에 도전한다. 자연스러운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지금의 부자연스러운 삶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하기에 아나키즘은 가치가 있다. - 본문 68쪽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박홍규 (지은이) 

1952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법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 박사학 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학 법대·영국 노팅엄대학 법대·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학·고베대학·리쓰메이칸대학에서 강의했다. 현재 영남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로 전공뿐만 아니라 정보사회에서 절실히 필요한 인문·예술학의 부활을 꿈꾸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회장을 지냈으며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다. 1997년《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2015년《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저항하는 지성, 고야》, 《인문학의 거짓말》, 《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놈 촘스키》,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공저), 《아돌프 히틀러》, 《누가 헤밍웨이를 죽였나》, 《카프카, 권력과 싸우다》 외 다수의 책을 집필했으며 《간디 자서전》, 《예술은 무엇인가》,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외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접기
최근작 : <혼돈의 시대, 리더의 길>,<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저항하는 지성, 고야> … 총 217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최근작 : <행복 철학>,<인공지능과 포스트휴머니즘>,<철학적 생각을 배우는 작은 수업>등 총 193종
대표분야 : 철학 일반 9위 (브랜드 지수 58,227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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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분포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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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아나키즘을 이 정도로 정리한 책은 흔치 않다.  구매
도가도비상도 2014-01-10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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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자유, 자치, 자연을 위한 아나키즘

 한 사람의 의식과 신념은 하루 아침에 바뀌거나 형성되지 않는다. 가끔 그런 경우를 접하기도 하지만 특별한 외부의 충격이나 경이로운 삶의 변화를 겪지 않은 다음에야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박홍규의 <아나키즘 이야기>는 저자의 오랜 기간에 걸친 자신의 세계관을 진지하게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그것은 개인의 사유로 얻은 깨달음이 아니라 깊은 연구와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지식의 차원이나 이론적 접근 방식에만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들의 삶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는가를 밝히고 있다. 

상상해봐. 천국이 없다고 노력하면 너무 쉬워 우리 밑에 지옥도 없다고 우리 위에는 하늘 뿐이라고 상상해봐.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산다고
상상해봐. 어떤 국가도 없다고 그건 어렵지 않아 누구도 그 때문에 죽이거나 죽지 않고 또 어떤 종교도 없다고 상상해봐.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산다고 - 존 레논의 ‘이매진’중에서

  노래 속에 아나키즘으로 가볍게 시작해 보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생각과 이념을 확인하지 않고 살아왔거나 발전된 형태의 주의나 주장들을 외면하면서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잘못된 편견과 시선으로, 고정관념과 선입견으로 ‘아나키즘’을 거부하지는 않았는지.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로 이해된다. 폭력적이며 비현실적이고 반항적인 이미지의 아나키즘에 대해 저자는 하나하나 그 오해와 진실을 풀어나간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지금 이 나라에는 국가주의가 너무 과도하여 인간의 자유와 자치 그리고 자연이 과도하게 제한되고 파괴되고 있으므로 이를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서는 아나키즘이라는 생각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뿐이다."고 말한다. 시대가 달라지고 사회가 변하면서 대안을 모색하고 새로운 이념과 이론이 등장하는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필연처럼 다가왔다. 저자가 얘기하는 아나키즘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근대에 등장한 개념으로 우리에게 잘못 이해되어 부정적 이미지와 의미도 모른 채 소외되었던 개념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노래속의 아나키즘을 보여주면서 책을 시작한다. 그리고 아나키즘에 대한 오해들을 해명하며 필요성을 역설하고 기원과 유형을 보여준다. 핵심적인 아나키스트들을 소개하며 핵심 사상들을 정리해 준다. 마지막으로 예술과 교육 측면도 점검하고 있다. 그간 저자가 얼마나 깊이있게 아나키즘에 대해서 고민하고 연구했는지 알 수 있는 책이다. 물론 그것 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는 태도 변화이다. 삶의 태도와 고정관념에 대한 생각의 변화 말이다. 그냥 그저 그렇게 거기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 ‘왜’라는 질문에 인색했던 나에게 많은 질문과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게 만든 책이다. 평소 피상적으로 관념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아나키즘’에 대한 의문들을 풀어준 책이다.

  저자는 아나키즘을 ‘자유 ․ 자치 ․ 자연’이라는 개념의 삼자주의(三自主義) 개념으로 풀어낸다. 이론과 개념 속에 갇혀 관속의 시체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아나키즘은 저자에 의해 현실 가능태로 탈바꿈한다. 우리의 삶에 투영된 잘못된 믿음과 생각을 바꿔나가고 새로운 생활습관과 태도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말처럼 “실천 전략이 없는 이데올로기는 그 어떤 것도 환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실천 전략들을 저자는 알기 쉽게 설명한다. 역사적 배경과 그간의 논의를 통해 독자들의 생각을 바꾸고 인식의 틀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아나키즘에 대한 저자의 개념은 핵심적으로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

  인간은 그런 모든 강요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스스로 자치를 해야 자신이 사는 터인 자연에 합치된다. 우선 부모와 교사 그리고 종교적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나아가 기성의 도덕과 윤리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권위와 절대, 관념과 사상, 조직과 전체, 편견과 허위 등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따라서 자유는 당연히 반항과 부정을 내포한다. (본문 47)

  이렇게 당연하고 신선한 이념을 우리는 실천전략으로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현실속에서 실현되지 않거나 막연한 관념 속에 묻힌 이론들은 공허하다. 아나키즘을 실천한 대표적 아나키스 중에서 쿠닌에 대해 저자는 “아나키스트는 항상 원칙에 충실하고 철저했으며 타협을 거부했다고 했다. 그야말로 지식인으로서, 사상적 대결의 가장 철저한 모범으로서 그들은 평생을 두고 원칙에 충실하고자 집요하게 싸웠고 진지?정신적 고투를 경험했으며 철저하게 결단했다고 했다. 그 가장 순수한 원형이 바로 바쿠닌이었다. 그는 그 어떤 아나키스트보다도 더 아나키스트다운 아나키스트였다.”고 평가한다. 이 평가를 보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어려운 사상도 실천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원칙에 충실하고 철저하며 타협을 거부하고 정신적으로 깨어있는 일이 어려운가? 사회적 합의와 개인적 실천이 부족한 것 뿐이다. 마지막으로 직업병처럼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렇다. 상징자본과 상징권력으로서 계급을 재생산하는 교육이 아니라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교사가 달라져야 한다.

  피교육자에 대한 강제나 조작은 교육자의 우월성과 피교육자의 의존성으로 성립되는 상하 관계를 전제로 한다. 이에 비해 피교육자에 대한 강제와 조작의 배제는 교육자가 피교육자를 독립된 개인으로 인정하는 양자의 ‘평등한 인간관계’를 전제로 한다. (본문 267)

  성인은 청소년 자녀를 여전히 아이로 취급하거나 부당한 권위를 강요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평등한 인간으로 대우해야 한다.(Godwin, 1965:118) (본문 267)

  이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이들에게 더 이상 공부를 시키지 않는 것이다. 자유롭게 놀게 하고, 즐겁게 말하며 읽고 쓰게 하고, 그리고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사는 권위를 버리고 학생과 평등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교사의 독재는 사회의 독재, 정치의 독재를 허용하는 기반이다. 학교의 비민주화는 사회와 국가 전제의 첩경이다. (본문 285)

모든 아나키스트가 교사일 필요는 없지만, 모든 교사는 아나키스트여야 한다.


200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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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힘 2006-11-0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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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얻는 즐거움, 뜻밖의 수확

아나키즘에 대한 비판적, 그러나 애정깊은 소개에 충실한 책이라고 보면 되겠다.

저자는 노동법학자인 박홍규 교수인데 법학 쪽 계통의 서적보다는 사상 서적을 

훨씬 더 많이 출판한듯하다. 이 분의 특징은 보수적인 학계의 관습에 반해  

거침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견해를 내놓는다는 점이다. 어줍잖은 예의나 우회적인 

비판같은 것은 없다. 혹자는 비주류 학자라고  딴죽을 걸지도 모르지만 오늘날의 

과도기에 그것은 얼마나 명예로운 타이틀인가? 적어도 그는 그의 신념에 충실하다.   

여튼 본서는 서구의 대중 음악에 녹아있는 아나키즘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다.

존 레논이나 핑크 플로이드, 섹스 피스톨즈와 같은 유명한 록스타들의 노래에  

흐르는 아나키즘으로 시작하니 누구라도 흥미를 가지고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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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이후에는 아나키즘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대한 비판 및 교정으로 시작해서 

자유, 자치, 자연(순서대로 중요성을 가진다)의 삼자주의로 아나키즘을 정의한다. 

대충 요약하면 아나키즘이란 특정한 인물에서 비롯된 사상도 아니고 어떤 역사적 

사건에서 기원하는 것도 아니며 그저 자유, 자치, 자연을 위한 인간 본연의 비판적 정신의 

발로이다. 물론 이러한 정의는 너무 포괄적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되나 저자는 그에 대한  

세부적 보완도 잊지않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정도의 엄밀함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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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런 식으로 본서는 목차에 충실한데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4장이다. 

이 부분은 근대 이후에 본격화된 아나키즘의 선구자들을 다루는데 영국의 고드윈, 

독일의 슈티르너, 프랑스의 프루동을 유럽 아나키즘의 시원으로 소개하면서 이후 러시아의  

아나키스트들을 비롯한 각국 아나키스트들(동아시아도 포함되어있다)의 생애와 사상을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으로 느낀 인물은 바쿠닌이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내에는 

그의 저서는커녕 평전조차 없다. 본서에는 E.H Carr의 바쿠닌 평전이 번역된적이 있다고  

나와있는데 그마저 절판인 모양이다. 뭐 이번이 처음도 아니지만 괜히 짜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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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후반부에서 재미있던 부분은 6장인데 아방가르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고치는 것부터 

시작해서 프루동과 톨스토이를 비롯한 아나키스트들의 예술론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는 

걸작이나 천재같은 개념들을 철저히 부정하고 민중의 집단적이고 창조적인 예술을 주장한 

프루동에게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이 장은 아나키스트들의 예술론들을 비롯해 미술, 건축, 

문학등 분야를 막론하고 무엇이든 비판적 고찰의 대상으로 삼았던 아나키스트들의 용감한(?)  

그리고 거침없는 반권위주의를 음미할수 있다. 이 장으로 하여 크로포트킨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와 '백치'같은 작품의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나 베른하르트라는  

오스트리아의 독설가도 알게 되었다.  

 

아나키즘에 대한 입문을 겸해 뜻밖의 수확을 거두고 싶은 독자에게 적합한 책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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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cizizou 2009-12-01 공감(2) 댓글(0)

     
아나키스트는 똥 폼을 잡지 않는다 새창으로 보기
박홍규, <아나키즘 이야기>, 이학사, 2004.

우연한 계기로 관심을 가지게 된 아니키즘. 물론 예전부터 기회가 다으면 한 번 보고 싶긴 했던 테마다. 다만 그것을 꼭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까 하는 변명과 게으름으로 미뤘던 주제다.
생각보다 아나키즘에 대한 공감이 컸다. 특히 이 책은 외국 학자의 것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충분히 소화한 한국의 학자가 쓴 글이라 더욱 이해가 쉽다. 영남대 박홍규 교수가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양반의 오지랖은 참으로 넓다. 법을 전공한 학자이면서도 예술에도 밝다. 내가 그를 처음 접했던 건 아마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번역한 사람으로이거나 혹은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번역한 사람으로의 인연일 것이다. 암튼 대단한 사람이다.
박홍규는 아나키즘이 무정부주의라고 번역되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더욱 정확한 명명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우리말로 대응시킬 단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자치적 조합주의'정도가 그나마 어울릴까? 하지만 그것으로는 한참 부족이다. 그럴 경우 그냥 아나키즘으로 부르는 게 낫다.
하지만 그는 아나키즘이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킨 데에는 그동안 아나키스트들 자체의 책임도 있다고 말한다. 반성을 촉구한 것이다. 아나키즘은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고자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무작정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친다고 해서 돌아가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과도한 낭만주의적 치장은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일부 아나키즘의 농촌 지향성, 자연에 대한 과도한 신비화, 성선설적 인간성론, 상호부조론, 국가의 전면적 부정 따위는 비판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전략이 없이는 사회주의가 아나키즘을 공상이라고 매도한 것이 정당화되어 버린다.
그래서 그가 제시한 핵심어는 자유.자치.자연이다. 물론 이것도 어떤 정형을 갖거나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누구의 아나키즘도 절대적인 진리라고 할 수 없다. 아나키즘은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하나의 방법이고, 아나키스트들은 그것을 보여준 선배들에 불과하다. 그런 고로 '자신만의 아나키즘'을 가질 필요와 의무가 주어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박홍규는 확실한 아나키스트다. 그러나 그는 그런 말을 말라고 손을 젓는다. "아나키스트라는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나도 분명히 말한다. 나는 아나키스트가 아니다. 나는 그 무엇도 아니다. 나는 나다. 아나키즘은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만큼 자신의 권위도 인정해서는 안 된다"라며 스스로 아나키스트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건 아니다. 그가 한 말의 취지는 '나는 아나키스트요"하면서 거들먹거리는 순간 그것은 아나키즘의 가치관과 배치된다는 의미다. 그러니 어떤 규정 없이 아나키즘적 삶을 살아가는 게 좋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어깨에 실린 그 힘을 빼라는 것이다. 말로, 권위로, 폼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자연스런 일상 생활에서 실천하는 아나키즘적인 삶, 그것이 정답이라는 말이다.
어쩌면 지난 우리의 시대는 이념의 과잉, 아니 구호의 과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구호보다는 생활이 중요하다. 새롭게 만나는 아나키즘, 결코 도그마에 빠지거나 겉멋으로서 내게 감겨오지 않길 생각한다. 성찰 속에서의 아나키즘 수용.
나는 아나키스트다 혹은 나는 아나키스트가 아니다 라는 따위의 이야기는 필요치 않다. 권위에 반대하며, 자연으로, 자치로 조화 속에 만들어 가는 생활 그 자체가 진정 아나키스트들의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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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08-11-07 공감(1) 댓글(0)
     
현대적 아나키즘, 비학문성, 비과학성을 탈피하라 새창으로 보기
박홍규, ‘자유, 자치, 자연’ 아나키즘 이야기 서평

 


박홍규의 아나키즘 이야기는 아나키즘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솔직하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인데 아나키즘에 대해서 솔직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는 것과 그 견해를 밝히는 방법론이 솔직하다는 의미이다. 즉 박홍규는 아나키즘에 대해 자신이 아는 모든 이야기를 이 한권의 책에 모두 담았다는 느낌이다. 중간 중간 번역상의 오류나, 논의의 밀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아나키스트(본인은 아나키스트라는 자각이 없다고 한다.)의 고뇌가 충분히 느껴지는 책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이 갖는 아나키즘의 정치적, 학문적 한계

 


‘이러한 문제점을 가장 예리하게 비판하는 생태주의자로서 스스로 아나키스트임을 명백히 주장하는 북친이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책을 옮긴 이에 의해 아나키스트가 아닌 것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이는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왜곡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북친의 책을 처음으로 소개한 문순홍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북친.1997)’(57)

 


아나키즘은 사상이다. 인간의 생각이고, 생각의 경향성이다. 아나키즘은 그 근본적인 생각을 포기하지도 않고, 가장 완벽한 포괄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자만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과학화 하지 못한 학문성 성취는 현대에 까지 이르러 엘리트주의, 비학문적,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신세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은 아나키즘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무관심’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사회이론의 과학화로 인한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에코 아나키즘 비판
‘이제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이론화되어야 한다. 무조건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친하고 해서 우리가 별안간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아나키즘이 국가는 악이라고 외친다고 해서 졸지에 국가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69)

‘특히 나는 아나키즘의 과도한 낭만주의적 치장을 없애고자 한다. 예컨대 일부 아나키즘의 농촌지향성, 자연에 대한 과도한 신비화, 성선설적 인간성론, 상호부조론, 국가의 저면적 부정 따위를 비판한다.(70)

 


맑스주의적 시각에서 에코 아나키즘을 비판한다면 이러한 논의가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농촌에서 도시로 논의가 옮겨간 것은 농촌의 많은 비판점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에코 아나키즘은 이점을 묵과한다. 이러한 논의는 똑같은 메커니즘으로 ‘녹색평론’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녹색평론이 90년대 이룬 업적은 90년대 문학보다 클지 모르지만, 2000년대 이후 녹색평론은 얼마나 발전하였는지 의문이다. 녹색평론은 존재자체로 의미 있지만, 이제 또 다른 매체를 필요로 한다.

 


사회주의는 아나키즘의 전략적 선택?

 


‘아나키즘이 사회주의를 국가주의로 비판한 것은 정당했다. 그러나 아무런 전략이 없는 아나키즘을 사회주의가 공상이라고 매도한 것도 정당했다. 이제는 전략을 짜야 한다.(70)


‘슈티르너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은 특히 미국 아나키즘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는 북친이 생활태도Lifestyle 아나키즘이라고 비판하는 비사회적, 비정치적 아나키즘을 말한다.(116)


아나키스트의 본질은 자유이고 그 출발은 개인이다. 반면 맑스주의는 본질이 평등이고 그 출발은 사회이다. 아나키즘은 자유로운 인간이야말로 평등한 사회를 형성하는 조건이고,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 올바른 사회를 형성한다고 본다. 반면 맑스주의는 평등한 사회조건이 자유로운 인간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고, 올바른 사회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을 낳는다고 본다.(221)

 


박홍규는 맺음말에서 ‘아나키즘을 검토하여 새로운 사회주의를 수립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296)’ 라고 한다. 스스로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에 대한 자각이 없다고 밝혔듯 박홍규는 회색인을 자처하고 있다. 결론은 참 ‘그’답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그 솔직함에 딴죽을 걸고 싶다. 아나키즘을 검토하여 새로운 사회주의를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 사실 이에 대한 논의는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알튀세, 발리바르 얼마 전 방한한 랑시에르까지 프랑스의 맑스주의자로부터 국가주의에 대한 낯설게 보는 접근이 바로 그러한 흐름일 것이다. 그렇다면 반문하고 싶다. 아나키즘은 사회주의를 얼마나 검토하고 있는가? 아나키즘은 근본적인 하나의 흐름이지 사회주의에 대해서 메타적 개념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어떠한 현실적 대안이나, 과학적방법론을 거부한다면 사회주의와 똑같은 선상에서 비교되고 서로에게 영감을 줄 수 없을 것이다.

박홍규의 아나키즘은 존레논으로 시작해서 사회주의로 끝난다. 아나키적 영향력이 큰 교육과 예술에 대한 부분을 각각 하나씩 챕터로 띄어내어 보다 체계적인 접근이 가능하게 하였다. 사상적 측면에서도 에콜로지와 아나키즘, 페미니즘과 아나키즘에 대한 연관을 하승우의 책보다 방대하게 설명(개념사 시리즈의 기획 상의 한계라고 보는 것이 더 온당하겠지만)하고 있다. 심지어 프랑크푸르트학파(마르쿠제와 프롬)와의 연관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아나키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연관에 대한 논의는 제외되어 있다. 두 사상의 연관이 긴밀하다는 문장과 푸코의 논의정도를 제외하면 두 사상의 직접적인 연관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박홍규의 아나키즘이 솔직하다고 하는 부분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나는 아나키즘의 비과학적, 비학문적, 비정치적, 비사회적 경향성을 개선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맑시즘이 행위를 통해 사고를 이끌어낸것은 온당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사고에 앞서 행위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맑시즘은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프롤렐타리아 혁명이후, 프롤렐타리아 독재에 대한 어떠한 해답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나키즘과 맑시즘은 동등한 선상에서 서로 사상적 연대를 추구해야 한다. 그것은 가장 구체적인 실천에서부터 고민하고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그 첫 번째 물음으로 나는 실천적인 측면에서 '한살림'을 잡았고. 사상적 측면에서 촘스키와 푸코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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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 2009-02-0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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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째 책시사회]에서 만난 아나키즘 이야기 ba**rani | 2004-10-21 | 추천: 0 | 5점 만점에 4점

①내용 : ★★★★-예술에서 교육까지 새롭고, 쉽게 아나키즘을 말하다. ②표지 : ★★★-생물학 책같은 느낌은, 조금 부족한 면. ③편집 : ★★★★ 역시나 인문학 서적에는 취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나같은 부류의 독자들의 눈도 잡아둔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아나키즘의 기원과 사상, 예술과 교육에 이르기까지 아나키즘이 미치는 영향을 쉽게 이야기하고, 우리가 가진 아나키즘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며, 끝내 왜 우리에게 지금 아나키즘이어야 하는가를 설득시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더욱 완벽한 이상주의의 아나키즘-작가는 아나키즘과 동시에 페미니즘, 생태주의까지 아나키즘으로 본다-이라는 것을 누구나 동감할 수 있지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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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에 잘못된 이해 바로잡기 my**oi3454 | 2004-09-03 | 추천: 0 | 5점 만점에 4점

흔히 아나키즘이 히피나 염쇄주의자들처럼 세상을 삐딱하게 보고 법을 부정하는 무정부나 무법이라고 생각해온 우리들에게 이 책은 아나키즘을 자유롭게, 자치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다. 더구나 불온하게만 여겨진 아나키즘이란 주제로 아니러니하게도 법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책을 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왔다. 자칫 딱딱하게 흐를 수 있는 무거운 주제를 팝송 가사를 인용하여 일반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써 내려간 저자에게 배려에 감사드린다. 또 출판계에 극심한 불황속에서 모처럼 내용이 충실한 좋은 책을 만난 기분이다. 인문학 서적이라 비싼 책값이 부담되긴 하지만 다 읽고 나면 후회되진 않는다. 몇 년 전에 개봉했었던 아나키스트(Anarchists)를 본 독자들이라면 일제하에 독립자금을 되찾아오기 위해 무력을 행사하는 독립군만을 연상하지만 사실 우리 교육, 사상, 예술 전반에 아나키즘이 이미 펴져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